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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갓파더 1권 (1화)

2017.06.15 조회 13,851 추천 131


 코리아 갓파더 1권 (1화)
 1. 고국에서 온 소식
 
 
 얼룩덜룩한 위장크림을 덕지덕지 발라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모습의 군인들이 완전 군장을 하고 질서정연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부대 차렷!”
 누군가의 구령에 군인들은 절도 있는 모습으로 자세를 바로 하였다.
 그들의 동작에 맞춰 앞에 있는 단상에 모자에 별 두 개가 반짝이고 있는 소장 계급의 장군이 자리했다.
 “충성!”
 “충성.”
 그들의 비장한 경례에 장군은 올라간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쉬어.”
 “쉬어!”
 “오늘 이 자리에 귀관들이 있는 것은······.”
 경례를 받은 장군은 일장 연설을 시작하였다.
 곧 작전에 투입될 군인들.
 그들은 어쩌면 다신 고국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작전에 투입되어야 했다.
 대한민국은 현재 같은 민족인 북한과 휴전을 하고 있는 상황.
 언제 어떻게 전쟁이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분단 국가였다.
 특히나 2000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은 세계적 평화 분위기에 편승하여 평화와 화합이라는 주제로 화해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2008년을 기점으로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더욱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당사자였던 북한의 국방위원장과, 김대한 전 대통령의 서거(逝去)로 분위기는 더욱 냉각되었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나 핵 실험은 그러한 분위기에 대한민국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귀관들의 이번 임무는 조국의 내일을 위해 무척이나 중요하다. 북한은 남북이 협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을 위반하였다.”
 장군의 연설은 점점 고조되자 연설을 듣는 군인들도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무사히 돌아오기 바란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전군에서 거르고 거른 끝에 최정예 군인들을 모아 만든 특수부대원.
 반년의 시간 동안 모의 시설에서 훈련을 한 관계로 이들은 침투할 곳의 지형을 숙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안전이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들이 침투할 목표는 북한군 중에서도 최정예라는 정예 2군단이 주변을 경계하고, 내부 시설에는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금의 친위 부대인 천리마 군단이 지키고 있었다.
 이들이 침투할 목표는 바로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저장 시설로 의심되는 함경북도의 한 시설이었다.
 조용히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군인들은 비장한 각오로 연설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연설이 끝나고 한 명, 한 명 장군은 작전에 투입되는 군인들과 악수를 하였다.
 하지만 여느 군대와 다르게 상관과 악수를 하면서도 관등 성명을 대지 않고 있었다.
 이들의 신분은 부대장인 장군에게도 비밀이었다.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각 팀의 팀장만이 자신의 소속원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장군도 팀장의 계급과 이름만 알고 있을 뿐 더 이상의 것을 알지 못했다.
 그만큼 이번 작전을 위해 급조하여 만든 부대였다.
 또한 많은 것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 상황이 급변하는 바람에 작전이 시행되어 많은 부분에서 허술한 점이 보였다.
 물론 이번 임무가 끝나면 해체될 예정이라 더욱 그랬다.
 부대장과 악수가 끝나고 이들은 고무보트를 타고 동해 바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개새끼들, 어떻게 작전을 짰기에 적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야!’
 성환은 자신을 추적하는 북한군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팀원들의 생사는 현재 알 수가 없다.
 북 핵 시설을 폭파하기 위해 침투했던 팀원들은 현재 뿔뿔이 흩어진 상태.
 하지만 성환은 자신의 팀원들의 생사보다 쫓기고 있는 지금 자신의 목숨을 더 걱정해야 할 때였다.
 팀원들의 안전을 위해 성환은 부팀장에게 지휘 권한을 넘기고 스스로 미끼가 되어 북한군을 유인했다.
 그 뒤로 성환은 계속 쫓기는 중.
 작전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생각해 보나마나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북한의 눈을 피하기 위해 동해에서 출발한 자신의 팀은 울릉도를 돌아 두만강 일대의 러시아 땅으로 침투하였다.
 그리고 침투할 때 타고 온 보트를 숨기고 두만강을 건너 나진 특구로 들어갔다.
 이곳은 북한이 러시아와 무역을 하는 곳이라 외부 사람이 들어와도 어느 정도 신분을 숨길 수 있었다.
 1차 기착지인 나진으로 들어온 팀원들은 하루를 쉬고 작전대로 흩어져 목표가 있는 회령으로 침투를 하였다.
 그때가 D―02.
 작전 계시를 위해 팀원과 합류하기로 약속한 후 헤어지고 만 하루 만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들의 행적이 모두 발각이 되었다.
 침투할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발각이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들의 행적을 알고 추적을 하는 것인지 북한군은 집요하게 자신들을 토끼몰이 하듯 한곳으로 몰았다.
 이런 북한군의 움직임에 위기감을 느낀 성환은 부하들은 대신해 북한군을 유인, 목표를 우회하며 움직였다.
 하지만 성환의 시도는 절반만 성공을 하였다.
 많은 숫자의 북한군이 성환을 뒤쫓았지만, 많은 숫자의 북한군이 부하들을 추적하였다.
 그렇게 부하들과 헤어진 성환은 이후 그들의 생사를 알 수가 없었다.
 성환을 쫓는 북한군이 아주 집요하게 성환을 추적하는 바람에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 이 없기 때문이다.
 탕!
 “윽!”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성환은 옆구리에서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아마 고통을 참는 훈련이 없었다면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지친 나머지 느껴지는 고통을 참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벌써 나흘이나 잠도 못 자고 쫓기고 있어 성환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제기랄, 개새끼들 내가 돌아가면 보자. 이번 작전을 입안한 놈들의 뼈를 갈아 마셔 버린다.”
 성환은 그렇게 이번 작전을 세운 작전사령부의 누군가를 욕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이런 독기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가 있었다.
 조금만 물렁했다면 진작 탈출을 포기하고 북한군에 붙잡히거나, 아니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살을 했을 것이다.
 “개자식들 이거나 먹어라!”
 탕! 탕! 탕!
 성환은 도망치는 와중 북한군을 향해 총을 발사하였다.
 성환과 북한군은 300여 미터를 두고 쫓고 쫓기는 상황.
 북한군은 간간이 사격을 하며 성환의 진로를 방해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환은 침착하게 반격을 하면서 도망을 치고 있었다.
 북한군 역시 성환으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어 아직까진 간격이 좁혀지지 않았다.
 만약 성환이 저항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피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성환은 이렇게 반격을 하여 북한군에게 피해를 줌으로써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 성환은 저 멀리 산에서 연기가 나는 것이 보였다.
 상당히 높은 산.
 상 정상 부근이 흰 눈으로 덮인 것을 확인하고 산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헐, 내가 이곳까지 도망을 쳤던가?’
 쫓기다 보니 목표인 회령을 지나고 무산군까지 거쳐 양강도에 들어와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백두산.
 정말이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서 이곳까지 올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성환은 문득 부하들이 생각이 났다.
 조금만 더 가면 백두산에 진입을 한다.
 백두산은 북한이 오래전 중국에 팔아먹어 북한군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부하들과, 임무가 생각이 났다.
 그은 이번 임무가 실패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작도 못해 보고 북한군에 발각되어 자신과 팀원들은 흩어졌다.
 자신은 뒤를 쫓는 북한군을 유인해 도망을 쳐 이렇게 살아 있지만, 부하들은 아마도 임무 완료를 위해 목표인 회령으로 접근을 했다가 실패했을 확률이 높았다.
 이런 현실은 성환을 화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신은 살아서 돌아가 꼭 따져야 했다.
 이번 작전을 발안한 놈들이 어떤 근거에 의해 계획을 세웠는지 궁금했다.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나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걷는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
 
 백두산 기슭에 들어서자 더욱 많은 연기가 보였다.
 2014년 휴화산이던 백두산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때문에 백두산을 찾던 관광객의 숫자는 현재 많이 줄어들었다.
 성환에게 백두산에 대한 정보나 풍경은 아무런 감흥을 줄 수 없었다.
 지금 성환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휴식이었다.
 닷새나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쫓겼다.
 성환은 오직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백두산을 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중국 국경이 보일 것이다.
 그곳만 넘으면 더 이상의 추격이 없을 것이란 희망에,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백두산을 올랐다.
 도중 성환은 온몸으로 무언가 느꼈다.
 땅이 울리는 미진.
 산이 숨을 쉬려고 하는 것인지 작은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북한군의 추적은 중단되었다.
 시점은 성환이 백두산으로 진입하고부터였다.
 하지만 정신없이 성환은 어떻게든 북한군과 멀어지기 위해 빠르게 산에 올랐다.
 ‘조금만.’
 한참을 백두산을 오르는데, 전과 다르게 거리가 벌어지면 울리던 총성이 들리지 않았다.
 북한군은 쫓으며 거리가 벌어지는 듯하면 자신의 걸음을 늦추기 위해 총을 쏘았다.
 그런데 너무 조용했다.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해 보자, 자신을 쫓던 북한군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따돌린 것인가?’
 성환은 자신이 북한군을 따돌린 것이라 판단을 하고 잠시 쉬기로 하였다.
 적당한 곳에 앉아 등에 메고 있던 군장을 풀어 배를 채우기로 했다.
 북한군이 보이지 않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허기가 몰려왔기 때문이다.
 조금 더 올라가 바위가 있는 곳에서 아래쪽에 은폐를 하고 군장을 열었다.
 하지만 화불단행이라 했던가.
 도망치는 데 정신을 집중해서 느끼지 못 했는지 성환의 군장 오른쪽 뒷부분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구멍이 뚫린 듯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많은 물품들이 빠져나가 많은 물건들을 잃어버렸다.
 중요한 것은 작전을 완료하고 부대와 통화를 할 무전기도 포함이 되어 있다는 사실.
 부대와 연락할 수단이 사라졌기에 성환은 전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군장을 살펴보니 절반 이상 짐들이 사라졌다.
 그나마 만약을 위해 챙긴 전투식량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물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에너지 바 형태의 전투식량은 적게 먹으면 하루를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개발된 최신의 것으로 특수부대에만 보급이 되는 물건이다.
 에너지 바 반 정도를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보다 안전한 장소를 찾아 이동을 하였다.
 혹시라도 추적을 하는 북한군이 자신이 안심을 하고 있을 때 뒤를 덮칠지 모른다.
 조금 여유가 있어 이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흔적이 남지 않게 정리를 하며 움직였다.
 단단한 바위만 밟고 이동을 하면 뒤를 추적하는 북한군이라도 어느 방향으로 도망을 쳤는지 알기 힘들 것이기에 발자국이 남지 않게 이렇게 단단한 바위나 돌을 밟으며 이동을 했다.
 
 ***
 
 얼마를 이동했을까?
 꼭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환상적인 비경이 돋보이는 폭포가 보였다.
 며칠 동안 쫓기며 씻지를 못해서인지 갑자기 온몸이 간지러웠다.
 쫓길 때는 못 느꼈지만, 이젠 어느 정도 안심이 되자 여유가 생긴 것 같다.
 폭포 가장자리에 군장을 풀고 물로 뛰어들었다.
 옷을 벗고 할 정도의 여유가 없어 그냥 입은 채로 물로 뛰어들었다.
 물에 들어간 성환은 머리부터 감기 시작하여, 옷 밖으로 나온 부분을 씻었다.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며 씻어 내자 무척이나 개운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 씻고 물 밖으로 나가려던 성환의 눈에 이상한 것이 포착되었다.
 폭포 뒤쪽으로 검은 그림자가 언 듯 보인 것이다.
 크기를 가늠했을 때 생물은 아닌 것 같았다.
 성환은 호기심에 폭포 가장자리를 돌아 폭포의 뒤를 확인했다.
 그곳에 커다란 동굴이 있는 것이 보였다.
 성환은 동굴이 폭포 가까이 오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물가에 벗어 둔 군장을 챙겨 동굴로 들어갔다.
 나이트비전을 착용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간 성환은 처음 생각한 것보다 깊어 한참을 걸었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곳이 자연적인 동굴이 아니라 누군가 인공적으로 뚫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굴은 비록 구불구불 꺾여 있었지만 바닥이나 표면이 생각보다 매끄러웠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세월의 흔적 때문에 벽면이 이끼들로 덮여 있기는 했지만, 자연적인 동굴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곳을 만들었을까?’
 성환은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일단 자신이 필요한 것은 휴식을 취할 안전한 장소.
 그런 안전한 장소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건들지 않고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커다란 굉음과 함께 동굴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구구구궁.
 그리고 천상에서는 돌덩어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쾅!
 ‘어?!’
 갑작스런 동굴의 변화에 성환은 당황했다.
 밖에서라면 어느 정도 피할 공간이라도 있을 것인데, 이곳은 피할 공간이 부족했다.
 앞과 뒤에서 돌들이 떨어지고, 성환은 등에 매고 있던 군장을 머리 위로 들어 보호하며 빠르게 안으로 뛰었다.
 보통 이런 일이 발생하면 밖으로 뛰는 것이 정상.
 하지만 성환이 판단하기에 밖으로 나가 봐야 이미 입구가 막혔을 것 같고, 나가는 도중 큰일이 생길 확률이 더 높았다.
 혹시라도 안쪽에 넓은 공간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안으로 뛴 것이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인지 흔들리던 동굴 바닥이 쩍 하고 갈라졌다.
 성환은 자신의 앞에 땅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달리던 성환은 갈라진 틈을 건너뛰지 못하고 그 안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악! 안 돼!”
 성환이 갈라진 틈으로 사라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동굴의 진동은 멈추고, 갈라진 틈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
 
 “으악!”
 성환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금방 깨어나 주변의 사물이 불분명하긴 하지만 동굴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흐리게 보이는 시선 속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조금은 삭막해 보이는 작은 탁자와 거울 그리고 몇 개 되지 않는 화장품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벽에는 얼룩무늬 군복이 보였다.
 ‘아, 꿈이구나. 훗, 벌써 몇 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그때 꿈을 꾸다니······.’
 너무도 생생한 그 꿈은 성환이 12년 전 비밀 작전을 하던 때의 일이었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조국에 충성한다는 신념으로 나라에 위협이 되는 북한의 핵 시설을 타격하기 위해 출동을 했다.
 결과적으로 작전은 성공을 하여 그 시설은 파괴가 되었다.
 하지만 목표를 파괴할 목적으로 출발했던 성환의 팀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특수부대가 이뤄 낸 성과였다.
 동맹국인 미국에 팀원들의 복수를 해 준 것 같아 작게나마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된 진실은 너무도 잔인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성환의 팀은 성공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단순히 미끼였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군부 내 상층부에선 미국과 공조하여 자신들을 미끼로 쓰는 것에 적극 찬성을 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은 팀원들과 미끼로써 이미 행보가 북한군에 노출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같은 편에 의해서 말이다.
 그때서야 침투한 지 하루만에 자신들이 들킨 것이 이해가 갔다.
 진실을 알았을 때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덧없이 꺾인 팀원들을 생각하면 눈이 뒤집힐 일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분노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자신이 살아오자 놀라던 그들의 모습, 급하게 작전이 성공했다며 자신을 특진을 시키는 것으로 모든 진실을 숨기려 하였다.
 하지만 진급을 하여 계급이 오르자 비취인가 등급이 상향되었다.
 아이러니하게 비밀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진 성환은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이전 부대는 이미 목적을 완수하고 해체가 된 상태이기에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했다.
 더욱이 모두 비밀로 묶여 더 이상 언급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묻어 두고 지냈는데, 오랜만에 그 일이 꿈에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잊고 싶은 일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꿈이 이상하게 불길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짝!
 ‘정신 차리자!’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세게 치고는 정신을 차렸다.
 현재 성환은 세계 특수부대 경연 대회에 한국군 고문단 위원으로 참석을 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37살의 젊은 나이지만 그의 계급은 각종 특수전을 수행하며 중령의 계급을 달고 있다.
 성환의 대단한 무술 실력이 인정되어 평상시에는 대한민국의 특수부대의 무술 교관으로 각종 전투 기술을 가르치며 활동했다.
 그래서 이번 경연 대회에도 고문단에 속해 각국 특수부대들이 가진 전투 기술을 관찰하는 임무를 가지고 참가하고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찬물로 샤워를 하여 정신을 깨우고 군복을 챙겨 입어 밖으로 나왔다.
 이번 경연 대회가 벌어지는 곳은 미국의 대도시 뉴욕.
 비록 중심가와 떨어진 외곽이기는 하나 그리 매연 때문에 공기가 맑지 못해 텁텁했다.
 이번 경연 대회는 많은 나라들이 참여하였다.
 각국의 자존심을 걸고 나온 이들의 면면을 보면, 미국에선 델타포스와 그린베레, SEAL, MEU가 참가하였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전 세계의 모든 특수부대의 모태가 된 영국의 SAS와 프랑스의 헌병 특공대인 GIGN이 참가를 하였고, 독일에서는 GSG―9이 참가를 하였다.
 또 러시아에서도 서방 세계의 해병대, 해군육전대소속의 스페츠나츠가 참가하였다.
 성환은 각국의 부대를 돌아보며 한국과 비교를 하며 배워야 할 점들을 체크하고 다녔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번 경연에 이스라엘의 사이렛 매트칼이 참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경연에 오게 된 성환은 그들이 수련한다는 크라브마가를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가장 현대전에 적합한 무술이라고 평가받는 그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것도 미국의 델타포스나 SEAL 등에 알려진 것이 아닌, 오리지널 이스라엘 특수부대원들이 익히는 것을 말이다.
 모든 나라가 그렇듯 아무리 가까운 동맹이라고 하지만 자국의 최신 기술이나 무기 등을 그대로 넘기지 않는다.
 분명 다운 그레이드를 시켜 넘겼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무술을 어떻게 다운 그레이드를 할 수 있느냐 물어본다면 다 방법이 있다.
 무협 영화에 나오는 비장의 기술, 즉 최후의 순간에 목숨을 구할 구명 초식을 알려 주지 않는 것이다.
 적을 대함에 있어 나보다 못한 존재만 있는 것이지 않은가?
 그럴 때 강한 상대에게서 나 자신을 보호할 그런 기술.
 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서 버티는 기술 등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성환의 지대는 허망하게 꺼져 버렸다.
 요즘 이스라엘과 레바논, 시리아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어, 이번 경연에 참가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환은 개인적으로 절반의 성과만을 가지고 돌아가야 했다.
 물론 그동안 본 각국의 특수부대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델타포스나 SEAL의 조직력, SAS의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적응하는 적응력과 생존력, 프랑스 특수부대 GIGN의 작전에 대한 상상력과 독일의 GSG―9의 작전에 대한 신속 정확성, 마지막으로 스페츠나츠의 과감성 등, 모든 특수부대들에게 어느 것 하나 없어서는 아니 될 그런 것들을 보았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국의 특수부대들은 자신의 임무에 꼭 맞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것을 종합해 대한민국의 특수부대는 더욱 강한 힘을 길러야 한다.
 자체적으로야 어느 곳에 내놔도 꿇리지 않는다, 자부하고 있지만 성환이 비교해 본 결과 작은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특수부대들 사이에서 생사를 결정해 주는 중요한 요소.
 어제 실시한 평가에서도 한국의 대표로 참가한 707특임대는 독일의 GSG―9과 경쟁을 하였다.
 참관단은 두 팀 모두 테러 진압과 인질 구출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니만큼 경합을 벌인 결과로 평가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참담하였다.
 초반에 먼저 자신들의 존재를 들킨 것이 패인이었다.
 너무도 어이없게 당한 감도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자신을 적에게 노출시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707이나 GSG―9모두 테러범들에게서 인질을 구출하고 테러범을 제압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를 먼저 들켰다는 것은 인질의 생명뿐 아니라 자신, 나아가 동료의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행위.
 작전에 들어가기 전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는 것도 능력이다.
 하지만 그게 완벽하지 않아 뒤를 잡혀 전멸하고 말았다.
 물론 그 와중에서 반격을 하여 많은 수의 GSG―9대원을 사망 판정받게 하였다고 하지만, 일단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의 특수부대와의 경쟁도 마찬가지.
 비록 근소한 차이라고 하나 707이 그나마 비슷하게 싸운 상대가 GSG―9나 프랑스의 GIGN정도.
 다른 부대와의 경쟁은 처참했다.
 그들과 화력에서 밀려 어쩔 수 없었다.
 특히 미국의 델타포스와 SEAL과 겨뤘을 때는 봐 주기 어려울 정도였다.
 성환은 한국에 돌아가면 할 일이 참으로 많을 것 같았다.
 대한민국 특수부대 중에서도 최고라 칭하는 707특임대가 이러니, 자신에게 맡겨질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자신이 일선에서 떠나 있던 동안 후배들의 악과 깡이 많이 사라진 모양이다.
 저 월남전 때만 해도, 미국의 특수부대인 그린베레도 대한민국의 해병대에겐 한 수 양보를 했다고 들었다.
 해병대는 결코 특수부대가 아니다.
 그저 조금 힘든 훈련을 하는 부대일 뿐.
 그런 선배들을 미군은 귀신도 잡는다 했었다.
 신출귀몰한 베트콩을 척척 잡아내며, 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선배들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받고 질 좋은 것은 먹고 생활하였는데, 이런 결과를 보인 것은 대한민국 전군의 명예에 먹칠을 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문단 단장인 박재상 대령이 성환의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봐, 정 중령. 아무래도 오늘 자네가 좀 나가 줘야겠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성환은 단장인 박재상 대령이 느닷없이 나서라는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일정이라면 경연에 참가한 부대들에서 대원 몇 명이 부대 대표로 나와 개인 기량을 겨루는 것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대 대 부대로 겨루는 것이었다면, 오늘은 개인의 기량을 비교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부대에서 임무 수행을 위해 어떤 수련들을 하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대 간 겨루기에서 참패를 맞은 대한민국.
 개인 겨루기에서라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부대원이 아닌 무술 교관인 성환에게 참가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이다.
 전군에서 최고의 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성환이라면 덩치 큰 서양인들과 겨루기에서도 충분하리라 생각하고 단장인 박재상은 성환에게 요청을 하는 것이다.
 “아니, 애들 노는 곳에 저보고 나가라고요?”
 성환도 자존심이 있어 지금 경연에 참가하고 있는 각국 특수부대원들이 고만고만해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현역으로 뛰던 때에 저들은 아직 입대도 하지 못한 파릇파릇 틴에이저들이었다.
 솔직히 특수부대원으로서 활약한 것은 서른 살 이전.
 그 뒤로는 그저 각 부대를 전전하며 부대원들에게 무술을 가르치기만 하였다.
 그렇다고 현역 특수부대원들과 비교해 작전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사실 그 누구도 성환을 따라오지 못해 팀을 이룰 수가 없어 배제된 것이다.
 현대전은 한 개인이 능력이 뛰어나다고 작전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각 팀원들 간의 유기적인 협조 안에, 시계의 톱니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맞춰야 한다.
 하지만 성환은 그러지 못했다.
 성환이 그들의 보조에 맞춰 주면서 작전을 수행한다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건 효율의 문제.
 그래서 성환은 현역에서 물러나 특수부대원들을 양성하는 일에 힘쓰고 있었다.
 그런 성환에게 지금 박재상은 명령 아닌 명령을 하는 것이다.
 군대에서 상급자의 부탁은 바로 명령이지 않은가.
 속으론 기가 막히면서도 상관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휴······ 알겠습니다.”
 “하하, 그래 자네가 있기에 대한민국은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거야!”
 박재상 단장은 성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
 
 핫!
 쿵!
 웅성, 웅성.
 여기저기서 울리는 기합과 매트에 떨어지는 소리 등, 소란이 일고 있는 체육관.
 커다란 원을 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지금 가운데 공간에서 벌어지는 남자들의 결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190센티에 이르는 커다란 덩치의 서양인이었다.
 상대는 그보다 약간 작은 동양인 남자.
 한눈에 봐도 서양인이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작은 동양인 남자는 현장 분위기와 전혀 다르게 긴장감 하나 없이 상대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서양인처럼 전방을 향해 상체를 기울여 언제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반응할 수 있게 준비를 하지도 않고, 그저 덤덤히 몸을 살짝 사선으로 비껴 선 정도로 상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제이슨, 뭐하는 거야! 어서 끝내 버려!”
 “야, 델타포스의 용맹함은 어디 간 거야! 끝내 버려!”
 그의 동료인 듯한 사람들이 서양인을 응원을 하면서 빨리 끝내란 주문을 하였다.
 하지만 제이슨은 지금 자신과 마주한 남자가 결코 녹녹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주변에서 구경을 하는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자신의 피부를 따끔하게 하는 감각이 무언지 제이슨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 조금만 딴생각을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을 하였다.
 왜 그런 것인지는 제이슨 본인도 몰랐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상대만 주시할 뿐.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제이슨은 고난도 훈련을 받았던 자신의 감각을 믿으며 상대의 틈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의 자세에서는 어떻게 해볼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변에 있는 자신의 동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에게 엉뚱한 주문만 하고 있어 무척 답답했다.
 그렇게 둘의 대치가 지속되다, 어느 순간 제이슨의 이마에 땀이 매쳐 이마를 타고 눈가에 흘렀다.
 잠깐 눈을 깜박이는 순간.
 제이슨은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잠시 잠깐 중력을 느끼지 못하던 제이슨은 등에 매트가 닫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식하지 못한 그는 멍한 상태로 바닥에 누웠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한순간에 상황이 변해 버리자 제이슨은 무슨 일이 벌어진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건 제이슨과 성환의 대련을 보고 있던 사람들 모두 공통된 생각이었다.
 한순간에 상황이 끝나 버렸다.
 분명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순식간에 동양 남자가 접근하여 제이슨을 제압했다.
 순식간에 제이슨의 몸이 공중에 떠서 빙글 회전을 하더니 등부터 매트에 쓰러졌다.
 뒤이어 몸이 팬케이크 뒤집히듯 빙글 뒤집히고, 칼을 들고 있던 손목이 제압되어 뒤로 꺾였다.
 그로써 상황 종료.
 지금 제이슨과 성환은 한 손에 군용 대검을 들고 대련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각 부대에서 사용하는 군용 단검을 들고 육탄전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너무 싱겁게 끝나긴 하였지만, 지금까지 성환을 상대한 이들은 모두 이렇게 싱겁게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모르게 끝나 버렸다.
 현존 최강의 실전 무술이라는 크라브마가를 수련한 이들은 물론이고, 주짓수나, 코만도 삼보를 수련한 스페츠나츠도 다르지 않았다.
 모두 한순간에 끝나 버렸다.
 일련의 사건들은 델타포스의 대표인 제이슨이 그렇게 쓰러져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언제까지 누워 있을 건가?”
 성환은 상황이 끝나도 일어나지 않는 제이슨에게 영어로 말하였다.
 제이슨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성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감사합니다.”
 제이슨은 처음 대련을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을 교육시키는 교관을 대하듯 이번 대결에 대해 인사를 하였다.
 그동안 제이슨을 델타포스 내에서도 최고의 정예라 평가를 받아 자만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 볼 일 없던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남자에게 형편없이 당할 줄을 꿈에도 몰랐다.
 특히 그 나라에서 온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 나온 이들은 자신이 속한 델타포스나 다른 특수부대들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이가 많아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는 남자에게 자신은 물론이고, 여기 모인 각국의 특수부대의 대표들이 모두 나가 떨어졌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사람을 교관으로 모시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수고했다.”
 이미 성환과 이들은 서로의 계급을 알고 있다.
 대련을 할 때야 계급에 상관없이 행동을 하지만, 대련이 끝난 지금 나라는 달라도 예의는 지켜야 했다.
 그래서 부사관인 제이슨은 성환에게 존칭을 하는 것이다.
 성환은 계급이 무려 중령.
 이렇게 체육관에서 성환이 대련을 마치고 체육관을 나오는데, 군인 한 명이 성환에게 다가와 무언가 쪽지를 넘겼다.
 “충성! 중령님, 한국에서 전보가 왔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급하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보를 했나 보다.
 아직 대회 중이라 전화기를 숙소에 두고 왔기 때문에 연락이 닿지 않아 급하게 전보를 했나 보다.
 내일이면 모든 일정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뭐가 급해 전보를 보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구지?’
 성환은 전달된 전보를 펼쳐 보았다.
 
 조카 실종.
 긴급 연락 바람.
 
 전보에는 아주 짧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자못 심각했다.
 자신의 조카가 실종이 되었단다.
 그녀는 가수가 되겠다고 연예 기획사에 들어가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조카가 실종이 되었다는 전보가 날아왔다.
 전보를 보낸 사람은 바로 자신의 누나.
 파삭.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는지 손에 쥔 전보가 덧없이 구겨졌다.
 성환의 누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신과 단 둘이 살게 되었을 때, 대학까지 중도 포기하고 자신의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
 자신은 누나의 뒷바라지에 힘입어 육사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누나의 고생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육사에 입대하기 전 어려운 처지에 성실한 매형을 만나 결혼을 하였다.
 누나의 형편을 잘 알면서도 자신까지 받아들이며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성실했던 매형은······ 호사다마라 했던가?
 조카의 탄생과 자신이 육사에 합격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오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누나는 아직 한창인 나이임에 불구하고 매형을 잊지 못해 홀로 조카를 키웠다.
 자신이 육사에 입대를 하는 바람에 더 이상 뒷바라지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여자 혼자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어린 조카를 키우고 조카가 장성해, 꿈을 펼치기 위해 연예 기획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실종이 되었단다.
 자신이 얼마 전 들은 소식으론, 곧 데뷔할 것이라 했었다.
 한데 이런 어이없는 소식이 들려오자 성환은 믿을 수가 없었다.
 꼭 누군가 자신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구겨진 전보만 뚫어지게 쳐다보던 성환은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2. 조카를 찾아서······.
 
 
 간밤의 꿈의 내용이 불길하더니······.
 성환은 전달된 전보의 내용을 보고 그 기분 나쁜 꿈이 암시한 일이 이것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성환은 전보의 내용을 믿을 수 없어 급하게 공중전화가 있는 전화 부스로 달렸다.
 뚜우, 뚜우, 뚜우.
 뭔가 잘못된 것이 확실했다.
 수화기에 들리는 것은 전화기가 잘못 놓여 있는지 단순 신호만이 들려올 뿐이다.
 탁!
 ‘제길!’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응답 없는 전화기를 쳐 버렸다.
 
 ***
 
 성환이 누나의 집을 찾은 것은 전보를 받은 날부터 10일이 지난 뒤였다.
 다음 날로 귀국을 했지만, 군인 신분인 그가 마음대로 위수지역을 벗어날 수는 없는 문제라 휴가를 신청하여 수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친족이 실종됐다는 것을 알기에 금방 휴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이번 경연 대회가 성환의 대령 진급과 맞물려, 진급 휴가를 가는 것으로 처리를 하였기에 행정상 아무 하자도 없었다.
 전보를 받고 10일이나 늦게 나온 것이 미안했던 성환은 누나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누나!”
 집으로 들어간 성환의 눈에 조카의 사진이 들어가 있는 어지럽게 흩어진 전단지가 처음 보였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은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억! 누나, 누나! 정신 차려 봐, 누나!”
 놀란 그는 혼절한 누나를 깨우기 위해 품에 안고 뺨을 토닥였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안 되겠다 싶어, 아직 공기가 차지만 창문을 활짝 열고는 욕실로 들어가 바가지에 찬물을 떠와 얼굴을 적셔 보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성환은 재빨리 119에 전화를 걸어 구조 요청을 하였다.
 “여보세요, 119죠? 지금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여기는······ 빨리 와 주십시오!”
 성환은 집 주소를 불러 주며 현 상황을 자세히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 20분쯤 지나 구급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자 성환은 얼른 그녀를 업고 대충 두꺼운 코트로 몸을 감싼 뒤 구급차를 향해 뛰쳐나갔다.
 
 ***
 
 응급실에 들어가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고 일반실로 옮겨진 누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성황은 담당의에게 누나의 상태를 물었다.
 “선생님, 누나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의사는 내려온 안경을 올리며 누나의 상태를 알려 주었다.
 “영양실조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심리적으로 뭔가 큰 충격을 받았는지 심신이 모두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성환은 누나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젊은 날 과부가 되어 어린 딸만 보고 살던 누나에게 애지중지한 딸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것이다.
 성환은 일단 조용히 잠든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침대보 밖으로 나온 누나의 손은 이제 겨우 마흔인 여자의 손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거칠었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탄력도 떨어지고 무척이나 까칠까칠 하였다.
 군인인 자신의 손보다 더 거친 느낌이 들어 잡고 있는데도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누나, 걱정 마. 수진인 내가 꼭 찾아 줄게······.”
 성환은 그렇게 자신에게 다짐을 하듯 말을 중얼거렸다.
 이때 말소리를 들었는지 기절해 있던 누나가 깨어나려는 듯 신음을 하였다.
 “으······ 음, 음······.”
 
 ***
 
 자신이 기절했나 보다.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20여 일을 헤매고 다녔다.
 처음 며칠은 집에 안 들어와 딸이 다니는 연예 기획사에 연락을 해 보았다.
 그곳에서 딸이 곧 데뷔하는 그룹에 들어갔기에, 합숙을 하느라 연락을 하지 못하는 중이라고 들었다.
 그러면서 정중히 사과를 하는 통에 그냥 넘어갔다.
 자신은 연예인에 대하여 흉흉한 이야기도 있고 해서 혹시나 싶어 전화를 했는데, 다행히도 마무리 훈련을 위해 합숙을 한다고 하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로 며칠이 더 지났다.
 아무리 합숙이라고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합숙을 하더라도 일주일 넘게 집에 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는 것이 성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아이가 속옷도 갈아입지 않고 일주일간 연습을 한다는 게 도저히 자신의 상식으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딸의 소속사에 연락을 해 보았다.
 혹시나 연예계에 대하여 잘 모르는 자신 때문에 딸에게 불이익이 가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연락을 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불안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딸이 자신에게 이렇게 오래도록 연락을 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수학여행을 갔을 때도 그날 밤 바로 연락을 했었다.
 연예인이 되겠다고 기획사에 들어가 수련회를 갔던 때도 마찬가지.
 그랬는데······.
 이번엔 장장 일주일 동안 단 한 번의 연락도 없는 것이다.
 분명 저번에 전화를 했을 땐 마무리 연습을 위해 합숙 훈련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만에 말이 바뀌었다.
 마무리 훈련을 끝내고 집으로 갔다고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성희는 어떻게 된 것인지 따졌다.
 하지만 딸의 회사에 찾아가 들은 답변은 수진이 말도 없이 무단으로 팀을 이탈을 했기에 제적했다는 소리뿐이었다.
 이런 황당한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들의 태도가 어딘지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일단 딸을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런 것을 접었다.
 우선 최근에 찍은 딸의 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전단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딸의 사진이 들어간 전단지를 딸이 다니던 회사 근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경찰에 실종 신고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경찰들은 자신의 신고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기가 막힌 것은 자신이 신고를 하면서 회사에 전화를 했을 때 들은 답변을 이야기하였지만 경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마도 딸이 연습이 힘들어 가출을 한 것은 아니냐.
 혹시 같이 다니던 남자 연습생과 도망간 것은 아니냐.
 하는 황당한 소리들뿐이었다.
 자신의 딸은 곧 데뷔할 그룹에 속해 있어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은 씨알도 안 먹혔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참고인으로 딸의 회사에서 실장이란 사람이 와서 한 소리.
 딸인 수진이 실력도 형편없었고, 또 연습 스케줄을 따라가지 못해 조만간 퇴출될 위기였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고는 아마 그래서 도망친 것이 아닌가?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듣고 온 성희는 그날 밤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
 그런데 깨어 보니 집이 아니다.
 하얀 벽과 천장의 형광등은 거실에 있는 것과 전혀 달랐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피려는데, 누군가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누가 내 손을 잡고 있는 거지······?’
 아는 사람도 드문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이 궁금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성희의 눈에 다른 누구도 아닌 든든한 자신의 동생이 들어왔다.
 어려운 형편에 피나는 노력을 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동생.
 힘들게 들어간 사관학교에서 각종 표창과 훈장까지 받아 자신은 물론, 조카 수진이도 자랑스러워하던 삼촌.
 동생이 자신의 앞이 있으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마음 조렸던 성희는 자신도 모르게 서러움이 복받쳐 두 눈에선 눈물을 흘렸다.
 “엉엉엉! 성환아, 성환아! 우리 수진이, 우리 수진이······! 억!”
 성희는 그렇게 동생과 딸의 이름을 부르다 다시 실신하였다.
 “누나, 누나! 의사!”
 성환은 그녀를 보고는 거칠게 의사를 불렀다.
 그 모습에 뒤에 있던 의사가 급하게 다가와 기절한 성희의 눈을 까 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
 
 잠시 손을 잡고 있다 보니 누나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또 조카의 이름을 부르다 기절을 했다.
 ‘으윽!’
 성환은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악물고, 누나의 손을 잡은 손이 아닌 그 반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눈은 분노에 충혈 되고, 힘이 들어간 손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지금 눈앞에 조카의 실종과 관련이 있는 자가 있다면 갈아 마셔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의사가 기절한 누나의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성환은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병원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전화를 하였다.
 
 ***
 
 “통신보안, 난 특전사령부의 정성환 대령인데, 최세창 중령 있나?”
 ―통신보안, 이 번호는 어떻게 아시게 된 것입니까?
 수화기 너머에선 여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성환은 대답할 마음이 없었다.
 “알 바 아니니까, 얼른 최 중령 바꿔!”
 단호한 성환의 목소리 때문인지 수화기 너머로 뭔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성환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사정이 급했기에 누군가의 사정을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여자가 다시 말을 하였다.
 ―현재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무슨 용건으로 그러시는 겁니까?
 전화기 너머로 들린 여자의 답변은 성환을 실망시켰다.
 그가 지금 자리에 없다는 말에 잠시 생각을 하였다.
 잠시 통화를 멈추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기 너머에서 다시 소리가 들렸다.
 ―최세창 중령님,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자신에게 도움 줄 만한 사람이 생각이 나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나 최세창이다. 정성환이, 정말 오랜만이네. 그런데 무슨 일로 네가 날 찾냐?
 “오랜만이다. 내가 너한테 전화할 일이 뭐 있겠냐. 도움 좀 받자.”
 ― 하, 별일이네, 천하의 정성환이가 내게 도움을 청하다니.
 “그럴 일이 좀 있다. 네가 정보사에 있으니 알겠지만, 혹시 주변에 밖의 사정에 훤한 사람 알고 있냐?
 ―뭐 때문에 그러는데? 뭔 일 있냐?
 성환은 군에 투신한 후로 누나와 조카에 관한 일 빼고 한 번도 부대 밖 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니 조카의 실종 사건에 대해 어떻게 조사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렇게 군에 있는 정보 계통의 전문가인 동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 성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최세창 중령은 뜻밖에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성환의 전화에 놀란 것이다.
 특히 이 전화는 군대 내에서도 특별 보안이 되는 번호였다.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물론 우연한 기회에 성환을 만나 알려 주긴 했지만, 이렇게 밖에서 전화를 걸 줄은 몰랐다.
 사실 번호를 성환에게 알려 주는 행위도 군법에 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단 일이 벌어졌으니 도움을 주고 나중에 자세하게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도움이 될 만한 이를 소개해 주었다.
 ―그럼 일단 번호 하나 받아 적어라.
 “그래, 오늘 도움 잊지 않겠다.”
 자세히 묻지 않고 도와주는 최세창의 말에 성환은 감사의 말을 전했다.
 막막한 상태에서 정말이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조난자와 같은 심정이었다.
 성환은 전화번호를 받아 적고 최세창 중령과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바로 최세창 중령이 알려 준 번호로 전화를 하였다.
 “여보세요, 거기 진성 기획 맞습니까?”
 ―네, 맞는데······ 누구시죠?
 “네. 정성환이라고 하는데, 최세창이란 분의 소개로 전화를 했습니다.”
 성환은 전화를 건 용건을 간단하게 전했다.
 사실 최세창 중령이 알려 준 번호는 정보사령부 산하에 있는 용역 회사로, 정보사의 분소(分所)였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성환은 최세창이 알려 준 대로 자신의 사정에 대하여 설명을 하며 용역 회사의 사장을 찾았다.
 “혹시 거기 사장님 계십니까?”
 ―사장님은 잠시 출타 중이십니다.
 “그럼 언제쯤이나 들어올까요?”
 ―그건 언제 들어온다, 확답을 드리기 힘들겠습니다. 사장님의 스케줄이라는 것이······.
 성환 역시 여직원의 말이 이해가 갔다.
 외근을 나갔으니 사장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느꼈다.
 “그럼 전화번호 하나 전달해 주시겠습니까?”
 ―네, 불러 주시겠습니까?
 성환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불러주었다.
 “010에 XXXX, XXXX. 정성환 대령이라고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금 급한 일이라 그러니 들어오는 대로 연락 부탁한다고도 전해 주십시오.”
 성환은 자신의 번호를 알려 주면서 부탁을 하였다.
 여직원이 알았다는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 통화를 마친 성환은 다시 누나가 입원한 병실로 갔다.
 
 ***
 
 한편 성환과 통화를 마친 최세창 중령은 어디론가 연락을 하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성환이는 자신의 일에 대하여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육사에 있을 때부터 그는 동기들 중에서 아주 특출 난 존재였으니까.
 리더십이면 리더십, 운동이면 운동, 그리고 전술이나 전략을 짜는 것에도 아주 독보적인 사람이었다.
 최세창이 만나 본 사람 중 그와 같은 천재는 없었다.
 물론 한 방면에 특화된 이들은 몇 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정성환이 같은 인물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육사를 졸업하고 특전사에 지원했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할 때도 자신은 그라면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자신의 짐작대로 동기들보다 빠르게 진급을 하고, 특전부대의 팀장이 되어 비밀 작전까지 다녀왔다.
 자신이 알게 된 것은 정성환이가 작전을 다녀온 뒤였지만.
 아무튼 비록 그 작전을 하면서 부하들을 모두 잃어 방황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특별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존재가 다급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한 것에 최세창은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결코 이번 일이 가볍게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느낌도 받았다.
 그래서 자신의 밑에 있는 정보부 요원들을 호출했다.
 
 ***
 
 성환이 병실로 들어서자, 언제 깼는지 누나가 침대에 반쯤 기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누나 언제 일어났어?”
 누나의 곁으로 얼른 뛰어간 성환은 망연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누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성환이 손을 잡아 주자 뭔가 불안해 보이던 성희의 눈빛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조용히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다.
 아직도 성환은 조카의 실종이나 누나의 상태가 현실 같지 않았다.
 그런 동생의 물음에 성희는 다시 또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그러다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성희는 성환에게 지금까지 있던 일들에 대하여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러니까 20여 일쯤 전인가? 수진이가 들어오지 않아 연락을 해도 꺼져 있다는 응답만 있기에 회사로 전화를······ 그런데 합숙을 끝나고 나갔다고······ 그런 적이 없다는 거야. 그리고······.”
 성환은 누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조카의 실종에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느껴졌다.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지만 조카의 실종과 소속되어 있던 기획사 간에 뭔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합숙 때문이라고 하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말을 번복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더군다나 누나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니, 데뷔하려는 그룹에서 뽑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실력도 없어 곧 퇴출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완전히 앞뒤가 맞지 않은 답변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성환은 자신이 직접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나의 이야기를 듣다 성환을 화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조카의 실종 신고을 접수한 경찰들의 태도.
 어떻게 부모가 자식의 실종 신고를 하는데, 그렇게 무성의하게 접수를 받을 수 있으며, 또 자식의 실종으로 억장이 무너진 부모 앞에서 요즘 애들이 그렇다, 동료 남자 연습생과 도망친 것은 아니냐?!
 어떻게 그런 소릴 지껄일 수 있는지 그 정신을 뜯어보고 싶었다.
 “누나,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찾아볼 테니 누나는 일단 몸부터 챙겨.”
 “아니야, 나도 수진이 찾아봐야지! 나, 다 나았다.”
 성환의 몸부터 챙기라는 말에 성희는 자신은 다 나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성환은 의사가 당부했기에 억지로 일어나려는 성희의 몸을 침대에 눕혔다.
 “누나, 의사 선생님이 누나 영양실조래. 도대체 얼마나 굶은 거야······. 수진인 걱정 말고 기다려.”
 강제로 자신을 눕히는 동생의 힘을 당하지 못하고 억지로 침대에 누운 성희는 하는 수 없이 동생을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알았다, 우리 수진이······ 꼭 좀 찾아 줘······. 약속한 거다.”
 “알았어. 내가 지구 끝까지라도 뒤져서 수진이 찾을 테니, 나만 믿고 누난 몸조리나 잘해! 그럼 난 알아볼 게 있어 가 볼게.”
 성희를 뒤로 하고 병실을 나섰다.
 일단 조카의 실종을 접수한 담당 경찰서로 향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 그따위로 접수를 받았는지, 또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자신이 직접 봐야 했다.
 
 ***
 
 보라매 파출소.
 성희가 딸 수진과 연락이 되지 않은 일주일이 지난 뒤 급하게 딸의 실종 신고를 한 곳이다.
 성환은 파출소 앞에 잠시 서서 입구를 쳐다보았다.
 입구에 있는 표어가 보였다.
 민중의 지팡이라 적혀 있는 것을 잠시 주시하던 성환은 안으로 들어갔다.
 성환이 파출소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경찰들이 의아해 했다.
 군인.
 그것도 장교 복장을 한 군인이 경찰서를 찾는 일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 경찰들은 조금 당황하였다.
 성환은 그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차가운 표정으로 경찰서 내부를 살펴보았다.
 잠시 내부를 살펴보던 성환은 가장 자신과 가까이 있는 경찰에게 물었다.
 “최수진 학생의 실종 신고를 받은 사람이 누굽니까.”
 성환의 딱딱한 억양의 말투에 경찰이 긴장을 했다.
 차갑게 물어오는 성환의 몸에선 저절로 만인을 누르는 위압감이 풍겨 나왔다.
 “저, 저······.”
 더듬거리는 그의 모습에 짜증이 난 성환이 그의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쳤다.
 쿵!
 큰소리가 울리자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놀란 것보다 성환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성환은 조카의 사건을 누나에게 전해 듣고 화가 난 상태.
 그런데 이들은 뭐에 겁을 먹은 것인지 잔뜩 긴장해, 자신의 물음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답답했다.
 “내말 안 들리나! 누가 사건 접수를 한 것인가!”
 성환은 답답한 경찰들을 보자 평소 특전사에서 쓰던 버릇 그대로 소리쳤다.
 그러자 경찰들은 조심스레 누군가를 쳐다보았다.
 성환은 경찰들의 반응에 아마도 그가 사건 접수한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정황을 파악한 성환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사건 진행에 대하여 듣기로 하였다.
 “그동안 수사 진행에 대해 설명해 보시오.”
 이미 성환의 모습에 기가 질린 그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아니, 아직까지 이들은 수진의 실종 신고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청소년의 가출 정도로 생각하고 시간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들은 성환은 파출소를 한바탕 뒤엎어 버렸다.
 “뭐?! 가출한 걸 수도 있어서 아직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고?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야! 만약 이게 단순 가출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납치나, 감금, 아님 그에 준하는 상황이면 너희들 각오하는 것이 좋을 거야!”
 성환은 분을 참지 못하고 데스크의 하단을 힘껏 걷어차고 파출소를 빠져나왔다.
 
 ***
 
 파출소에서 한바탕하고 나온 성환은 누나 집에 가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병원으로 왔다.
 성환은 병원에 돌아와서 병상에 있는 누나를 보았다.
 안정제를 맞고 잠이 들었는지, 곤히 자는 누나를 보니 가슴이 짠했다.
 이제 겨우 40인데 너무나 고생을 해서 그런지 50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늙어 있었다.
 ‘누나 걱정하지 마······.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진이 찾아 낼 테니.’
 진성이 그렇게 누나의 손을 잡고 속으로 다짐하고 있을 때, 호주머니 안쪽에 넣어 둔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정성환입니다.”
 차분하게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아주 반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정성환 님 전화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아, 예. 전 진성 기획의 사장인 김진성이라 합니다. 전화 주셨다고 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전화를 건 남자는 바로 낮에 자신이 찾던 흥신소 사장이었다.
 “예, 제가 연락드렸습니다.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의뢰할 일이 있어 그러는데.”
 ―알겠습니다. 의뢰를 하기 위해 전화를 주셨다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어디가 좋겠습니까?
 “아, 제가 지리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어디가 편하겠습니까?”
 성환은 말을 하다 내일 자신이 청담동에 있는 조카의 소속사를 찾아가 보기로 했던 일이 기억이 났다.
 “제가 내일 청담동 쪽에 일이 있어 그러는데, 될 수 있으면 그쪽 방향이면 좋겠습니다.”
 ―그럼 청담동에 있는 호텔 티파니 안, 커피숍에서 뵙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그곳에서 뵙기로 하고, 오전 중에는 제가 일이 있으니 오후 1시가 어떻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기로 하죠. 그럼 내일 13시 청담동 호텔 티파니에서 뵙기로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예, 그럼 그때 보기로 하고 이만 끊겠습니다.”
 ― 예, 그럼 들어가십시오.
 진성과 통화를 마치고 성환은 눈을 감고 차분히 내일 할 일을 떠올렸다.
 ‘일단 아침엔 수진이가 다녔다는 회사에 가서 알아보고, 오후엔 사장을 만나 이번 실종에 관해 의뢰를 해야겠군.’
 성환은 이번 실종이 생각보다 가벼운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자신이 연예계라는 것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지만 듣기로 무척이나 지저분한 곳이라 들었다.
 더욱이 연예계 일부에선 조직폭력배와 같은 쓰레기들도 많이 연관되어, 자칫 잘못하다 패가망신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 소리도 들었다.
 ‘만약 수진이에게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관련자들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성환은 이번 일이 정말로 루머로 떠도는 그런 지저분한 일과 관련이 있다면 그에 관련된 모든 인간들을 가만 두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갓 대학에 들어갔던 누나는 겨우 20살에 학교도 그만두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때 당시 자신은 중학생.
 집안에 도움이 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려 해도 나이가 어려 아무것도 못했다.
 다행이라면 누나가 대학을 휴학하고 들어간 직장의 사장이 누나를 좋게 보았는지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는 것.
 작은 회사의 경리지만 누나는 열심히 일을 했다.
 사장의 소개로 결혼도 하고, 금슬이 좋아 금방 조카도 보았다.
 고아였던 매형은 그만큼 가정에 충실하고, 또 형제가 없다 보니 자신도 많이 귀여워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성실하고 착하던 매형은 외근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음주 운전 차량과 추돌 사고가 나고 말았다.
 매형은 현장에서 사망을 하고, 자칫 잘못했으면 피의자로 뒤집어쓸 뻔하였다.
 다행히 매형이 타던 차에 블랙박스가 장착이 되어 있어 누명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고아에, 힘도, 빽도 없다 보니 이제 겨우 30대였던 매형의 보상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적은 보상금과 매형이 다니던 회사에서 들어 둔 보험이 있어, 그나마 누나와 조카가 살아가는 데 밑천이 되었다.
 누나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보상금으로 작은 식당을 시작하였다.
 맞벌이였던 부모님의 영향 때문인지 살림을 도맡던 누나의 음식 솜씨는 제법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포함한 세 식구가 살기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었다.
 새벽 일찍 장을 봐서 음식을 장만하고,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던 누나.
 그런 누나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성환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성적이 좋았던 성환에게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에 들어가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성환은 미래를 위해 육군사관학교에 지원을 하였다.
 전액 장학금에 기숙사로 입교해야 하기에, 자신이 육사에 들어가면 누나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육군사관학교에 입교를 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고생한 누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한 보상을 받듯 사관학교에서도 수석을 차지하였다.
 몇 년간 여생도에게 수석과 차석을 빼앗겨 자존심이 상했던 남자 생도들과 교관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그렇다고 수석을 성환에게 빼앗긴 여생도들이 성환을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키도 크고, 잘생긴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언제나 그의 주변에는 많은 생도들이 있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성환과 손이라도 잡아 보기 위해 모여든 여생도들, 그리고 그런 여생도들과 연분을 만들어 보려는 남생도들, 또 미래가 보장된 성환과 인연을 맺어 두려는 사람들까지, 모두 각자 생각이 있어 성환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역대 최고로 많은 친구를 거느린 성환의 졸업식 때 축하하기 위해 왔던 누나와 조카가 그런 그를 보며 놀랐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성환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었다.
 옛 추억들을 떠올리며 그렇게 성환은 의자에 앉아 잠깐 눈을 붙였다.
 
 ***
 
 날이 밝자 성환은 가까운 사우나에서 몸을 씻고 수진이 다니던 회사로 갔다.
 성환이 알아보니 강남에는 많은 연예 기획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 연예 기획사들이 많은 이유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일단 방송국과 가깝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방송국이 여의도에만 있었다면, 지금은 일산 쪽에도 녹화장이 생겨 양쪽을 다 다녀야 했기에, 그 중간 지점에 있는 것이 교통에 용의했기 때문이다.
 또 대형 기획사인 MS나 YJP가 자리하다 보니 연예인이 꿈인 꿈나무들이 많이 찾는다.
 대형 기획사에서 탈락한 이들을 잡기 위해서 규모가 작은 기획사들 역시 모여들기도 했다.
 수진이 다니던 곳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MS엔터테인먼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M&S엔터테인먼트.
 그곳이 수진이 다니던 회사였다.
 오전 10시.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성환은 실종된 조카의 마지막 소식을 들은 곳이기에 M&S엔터테인먼트를 찾았다.
 성환이 입구에 들어서니 안내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난 여기 연습생으로 있다 실종된 최수진의 외삼촌입니다. 사장님 좀 뵈러 왔습니다.”
 성환이 자신의 신분을 알리자 직원은 잠시 당황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연습생 한 명이 실종된 문제로 회사 내에서도 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위에서 그 일에 대하여 함구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상태였다.
 “저······ 지금 사장님이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을 만나시려면 사전 약속을 잡으셔야······.”
 “내가 군인이라 시간이 한가한 것이 아니니, 바로 연락해 주십시오. 사장이 아니면 그 일에 책임 있는 사람이라도 있을 것 아닙니까?”
 성환은 다니던 연습생이 이곳을 나간 뒤 실종이 되었으니, 누구라도 책임자가 있어 그 사건에 대하여 담당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그리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소리는 성환의 기대를 저버렸다.
 “저희는 연예 기획사지 경찰이 아닙니다. 그런 건 경찰서에 가셔서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당신들과 말이 안 되니,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 오라고 하든지, 아니면 사장을 만나게 해 주시오.”
 성환은 일개 안내 직원을 상대로 자신이 떠들어 봐야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 사장이나 아니면 그에 준하는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인사를 만나기로 하였다.
 입구에서 이렇게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자 안으로 들어오던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무슨 일입니까?”
 검은 양복을 입은 40대 남자가 소란이 일고 있는 데스크로 다가왔다.
 그런 그를 보며 직원이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전무님.”
 성환은 직원이 전무라 인사한 이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래,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스러운 거야?”
 손님이 있기에 존댓말을 하던 전무란 사람은 직원들에게 무엇 때문인지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직원보다 성환이 먼저 앞으로 나와 말을 하였다.
 “전무면 어느 정도 책임자라 생각되니, 말 좀 합시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성환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말을 하였다.
 성환의 몸에서 일고 있는 기세가 심상치 않아 본능적으로 움찔하고 말았다.
 “난 이곳에 연습생으로 있던 최수진의 외삼촌인데, 조카의 실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왔소.”
 성환의 말에 전무는 잠시 눈을 반짝였다.
 그를 살펴보기 위해 말을 바로하지 않고 성환의 전신을 한 번 훑어보았다.
 깔끔한 양복을 입고 있긴 하지만 고가의 제품은 아니다.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오자 전무는 조금 전 긴장한 것은 어디로 가고, 편하게 말을 놓았다.
 “뭘 알아보겠다는 거지?”
 전무의 반말에 성환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였다.
 “내가 누님께 듣기로는 처음 전화를 했을 때만 해도 데뷔를 앞두고 합숙 훈련을 하느라 연락을 못한다고 했는데, 그 다음에는 합숙이 끝나고 보냈다 말을 하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뒤로는 실력이 없어 퇴출시키려던 중이라 했다는데······ 이거, 말의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소?”
 성환의 말에 전무는 잠시 신음을 했다.
 “음······.”
 남자는 다시 성환을 보며 일단 회사 입구서 이렇게 떠드는 것이 회사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일단 제 방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하지.”
 
 성환을 대리고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간 전무는 성환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소리를 듣고 오셨는지 모르지만 모두 맞는 이야기입니다. 합숙을 시킨 것도 맞고, 합숙이 끝나 보낸 것도 맞습니다. 그리고 퇴출이 결정된 것도 사실입니다.”
 전무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환에게 하던 말투가 바뀌어 있었다.
 성환의 억양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사람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 회사의 간부들이 부하 직원에게 하는 말투가 아니라 무언가 조직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랬기에 성환이 어느 조폭 조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이렇게 저자세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성환의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나 그런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딱 봐도 조폭과 연관이 있어보였다.
 머리도 짧고 피부도 검붉게 탄 것이, 외부에서 많이 활동을 한 것 같이 강인해 보였다.
 전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떠들고 있지만 성환의 머릿속엔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말을 하면서도 남자의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이며, 마른 침을 자꾸만 삼키고 있었다.
 뭔가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한다는 것이 여실히 들어나 있었다.
 성환이 비록 전문가처럼 심문에 대하여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심리에 대한 공부는 육사에서 많이 했기에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가 무척이나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았다.
 거짓을 감추기 위해서 다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훤했다.
 “당신의 말이 사실이길 빌겠소. 내 따로 조사를 해, 당신의 말이 거짓이라 밝혀졌을 땐 그만한 각오를 해야 할 것이오.”
 이미 숨기려고 작정을 했는지, 남자는 계속해서 했던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만 있었다.
 결국 성환은 알고자 하는 말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은 이 회사가 어떻게 연습생을 관리하고 어떤 시스템으로 연예인을 데뷔시키는 것이 아니다.
 실종된 조카의 행방이 궁금할 뿐이다.
 그렇기에 성환은 남자에게 경고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에 겁을 먹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성환은 별 성과 없이 M&S엔터테인먼트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
 
 M&S엔터테인먼트를 나온 성환은 진성과의 약속 장소로 갔다.
 회사를 방문함으로써 심증을 굳혔다.
 수진의 실종에 어떻게든 회사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성환은, 그들이 숨기고 있는 것이 무언지 알아보기 위해 김진성에게 의뢰를 하기로 했다.
 M&S엔터테인먼트에서 호텔 티파니까지 거리가 좀 있지만, 아직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기에 성환은 천천히 걸어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면서 성환은 평일인데도 많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그들이 소속된 기획사 주변을 배회하는 것을 목격하곤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한창 공부할 때에 저게 무슨 짓들인지······.’
 그렇게 오랜만에 사회에 나와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약소 장소인 호텔 티파니에 도착을 하였다.
 너무 일찍 도착을 해서 그런지 호텔에 있는 카페테리아에는 몇몇 손님뿐이 없었다.
 “이거 너무 일찍 온 것 같네.”
 아닌 게 아니라 약속 시간인 13시까지는 아직도 2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M&S엔터테인먼트에 10시에 도착을 하여 안내 직원과 잠깐의 실랑이와 전무란 자와 이야기를 하고 걸어 왔는데도 11시.
 성환은 조금 전 전무와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조카가 다녔다는 회사가 결코 정상적인 회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긴 한데, 그게 무언지 확실하게 잡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정성환 손님, 정성환 손님! 안 계신가요?”
 성환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어떤 젊은 여자가 팻말을 하나 들고 자신을 찾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여자 옆에는 어떤 인물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성환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성환이 자신이 있는 자리를 표시하자 여자와 함께 있던 남자가 성환에게 성큼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진성이라 합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정성환입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김진성은 상관인 최세창 중령으로부터 긴급하게 연락을 받았다.
 자신의 육사 동기 중 한 사람이 도움을 청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단순한 장교가 아니라, 정보사령부 내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은밀하게 관찰하는 사람이라는 주의를 받았다.
 그러니 그가 무슨 이유로 도움을 청하는 것인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용역 회사인 진성 기획 자체가 사실 정보사령부에서 위장으로 만든 회사였다.
 군에서는 오래전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불온한 움직임은 없는지 감시를 하고 있었다.
 비밀리에 정치인들이나 경제계 인물의 내사 역시 하고 있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군인의 신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성처럼 위장된 신분을 가지고 조사를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들키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비밀 임무를 하고 있는 진성에게 엉뚱한 명령이 내려왔다.
 정보사령부 중령으로 있는 최세창으로부터 자신의 동기가 무엇 때문에 도움을 청하는지 알아 오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김진성은 몰래 자신의 상관 모르게 정성환이란 사람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비취인가로는 연람이 되지 않았다.
 1급까지 보안 등급 열람이 가능한 자신이 안 된다는 것은, 정성환이란 인물이 그 이상의 보안이 걸린 사람이라는 말과 같았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일개 장교로서 그 정도의 인물이 누가 있을까?
 고민을 해 봤지만 진성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늦은 시간 전화를 해 만나기로 한 것이다.
 직접 들어야 상관인 최세창 중령에게 보고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환은 진성이 용건을 물어 오자 자신이 의뢰할 것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제가 의뢰를 하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조카의 실종에 대하여 알아봐 달라는 것입니다.”
 성환의 의뢰 내용을 듣고 진성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것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라면 경찰에 연락을 하시는 게······.”
 “경찰에 신고를 하고 벌써 20일이 지났는데, 경찰에선 아직도 수사를 하지도 않고 있다고 해서, 이렇게 군에 있는 동기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을 찾은 겁니다.”
 진성의 물음에 성환은 자세한 설명을 했다.
 오늘 조카가 다니던 기획사에서의 일도 말을 하였다.
 “그런데 오늘 조카가 다니던 기획사에 알아보기 위해 그곳 책임자를 만나려 했는데······ 그들의 태도가 좀 이상하더군요.”
 “그곳이 어딥니까?”
 진성은 성환의 이야기를 듣고 이번 문제가 가족 중 조카의 실종에 관해 조사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최세창 중령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을 좀 더 깊게 조사를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M&S엔터테인먼트라는 곳입니다.”
 성환이 질문에 대답을 하자 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사해 보겠습니다.”
 진성의 대답을 들은 성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시원스러운 답변이었다.
 그동안 경찰서나 수진이 다녔던 연예 기획사에 들어가 듣던 답답한 변명들이 아니라 군인처럼 확실하게 간단명료하게 대답을 하는 그의 태도에 생각보다 믿음이 갔다.
 더욱이 정보사에 있는 동기의 추천을 받은 사람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제가 지금 휴가 기간에 조카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신속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진성의 이야기를 들은 성환은 그에게 의뢰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의뢰비는 얼마를 주어야 합니까?”
 그런 성환의 물음에 진성은 잠시 고민을 했다.
 솔직히 자신의 신분은 위장된 신분이지 않은가.
 군인인 자신이 이렇게 따로 의뢰를 받을 줄 몰랐기에 대답을 하기가 난감했다.
 그러다 기지를 발휘해 말을 하였다.
 “음, 일단 조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착수금으로 100만 원 정도면 되겠습니다. 나머지는 일이 끝나면 소모 경비랑 해서 영수증을 첨부해 청구하겠습니다.”
 진성은 그나마 본 영화 덕분에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 진성을 보면서 성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의뢰금이 얼마인지 몰라 은행에서 돈을 챙겨 오지 않았는데, 계좌 번호가 어떻게 됩니까?”
 성환의 말에 진성은 다시 한 번 진땀을 흘렸다.
 이건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은 그저 상관인 최세창 중령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온 것이라 계좌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성은 계좌 번호는 회사에 가서 문자로 보내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게 제가 회사 통장 번호를 모르니, 그건 회사에 가서 문자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문자 받으면 바로 이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진성과 헤어졌다.
 성환이 먼저 자리를 떠나고 진성은 얼른 자신의 상관인 최세창 중령에게 연락을 하였다.
 
 
 
 3. 연예계의 검은 그림자
 
 
 성환이 M&S엔터테인먼트를 나가고 전무는 급하게 사장실로 뛰어갔다.
 “형님! 큰일 났습니다.”
 전무는 사장실로 뛰어들며 소란을 피웠다.
 하지만 M&S엔터의 사장인 최신규는 요즘 연습생 하나가 잘못된 것 때문에 고민이었다.
 곧 데뷔가 잡힌 그룹의 멤버 한 명이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다.
 밑에 놈들이 일을 잘못 처리하는 바람에 사단이 벌어졌다.
 병신들이 다른 애를 보내야 하는데, 투자자 아들이 그 애를 원했다고 아직 미성년인 애를 데려갔다.
 물론 데려간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부에 알려지면 연예인 성상납이니 뭐니 떠들겠지만, 연예계라는 곳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알면서 쉬쉬하는 것뿐이다.
 더욱이 알려져도 다들 힘 좀 쓰는 자리에 있기에 전화 한 번이면 금방 흐지부지된다.
 그런 것을 잘 알기에 이번에도 그냥 그 애만 잘 달래면 될 문제였다.
 하지만 일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흐르지 않았다.
 이 자식들이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쳐 버렸다.
 투자자의 아들이 그 아이에게 마약을 먹인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많은 양을 먹이는 바람에 사고가 발생했다.
 그 때문에 그 아이의 집에 돌려 보내지도 못하고, 정신 차릴 때까지 감금시켜 놓고 있었는데, 그 애 부모가 실종 신고를 해 버렸다.
 물론 경찰에는 모른다고, 이미 퇴출된 상태라 둘러대긴 하였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그런 와중 전무라는 놈이 소리를 치고 들어왔다.
 “이 자식아! 내가 사장님이라고 부르라 했지!”
 사장인 최신규는 자신을 예전처럼 형님이 부르는 전무를 향해 명패를 던져 버렸다.
 족히 3~4㎏은 나가는 명패를 맞으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명패는 전무를 지나 사장실 문에 부딪혔다.
 쾅!
 “넌, 언제까지 예전 양아치 티내고 다닐 거야! 가득이나 신경 쓰이는 일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최신규는 예전 양아치 짓을 하고 다닐 때, 함께했던 최진규를 보며 이야기를 하였다.
 사실 둘의 관계는 이름이 비슷할 뿐 친척도, 무엇도 아니다.
 다만 이름이 비슷하고, 고등학교 다실 때 같은 서클에 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함께하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나와 공부 안 하고, 양아치 짓만 했기에 갈 데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이 빈둥빈둥하다 우연히 연예 기획사에서 매니저를 구한다는 소리에 입사를 하였다.
 그렇게 밑바닥부터 일을 하면서 둘은 형님, 동생 하면서 끝까지 함께 하였다.
 그러다 연예계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닌 아주 지저분한 뒷거래가 만연한 곳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최신규는 이곳이야말로 자신의 적성과 아주 잘 맞는 세계란 것을 알게 되었다.
 순수한 실력만 있다고 성공하는 곳도 아니고, 실력이 없다고 성공을 못하는 곳도 아니었다.
 실력이 없더라도 PD나 방송국 관계자, 권력자, 조폭 등에게 어떻게든 연을 대고 돈이건, 여자건 로비를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런 생리는 최신규에게 욕심을 심어 줬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여자 장사.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여학생들을 홀려 포주 노릇을 했었다.
 용돈이 필요한 여자들은 최신규의 알선에 거리낌 없이 나이 많은 남자들과 데이트를 하였다.
 웃긴 것은 당시 고등학생들 사이에 은밀하게 원조 교제가 유행처럼 번졌다는 것이다.
 잘 나가는 학생일수록 원조 교제를 잘했다.
 원조 교제, 스폰 등등 많은 용어들이 있지만, 일단 당시 학생들에게는 훈장과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최신규의 사업은 아주 잘 됐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그 일은 분명 범죄다.
 자신이 한 일이 학교에 알려지면서 최신규는 학교의 강요로 자퇴를 하였다.
 만약 자퇴를 하지 않으면 강제 퇴학을 시키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자퇴를 하였다.
 그 후 나중에 다른 학교에 편입을 하여 만난 것이 최진규다.
 동급생으로 만나기는 했지만 1년 꿇은 최신규와 최진규는 이름도 비슷해, 형, 동생하게 되었다.
 자신이 예전에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는 곳이 연예계라 생각하게 된 최신규는 그때부터 회사 연습생을 꼬셔 방송 관계자들과 인맥을 형성하였다.
 그러다 일이 커져 자신이 몰래 방송 관계자와 연을 맺게 해 준 연습생이 방송 데뷔를 시켜 주지 않자 신고를 하는 바람에 감방까지 다녀왔다.
 그렇게 처음 들어갔던 연예 기획사에서 퇴출되었다.
 하지만 이미 다져 놓은 인맥이 있기에 금방 연예계 복귀를 하였다.
 아니, 이번엔 그냥 매니저가 아닌 자신이 직접 사장으로 회사를 차렸다.
 대한민국엔 연예인을 꿈꾸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최신규는 과감하게 그동안 뒤로 꿍쳐 두었던 돈을 가지고 강남에 작은 연예 기획사를 차렸다.
 역시나였다.
 기획사를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빈 것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그중에는 돈 많은 부모를 가진 이들도 있었고, 얼굴은 되는데, 배경이 없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애들은 예전에 그랬듯 자신이 잘 아는 PD나 방송 관계자를 불러 대가를 주고 방송에 몇 번 출연을 시켰다.
 그럼 TV에 몇 번 나온 애들은 자신들이 금방 스타라도 된 듯 굴었고, 그런 것들을 적당히 벗겨 먹으며 이곳저곳에 돌렸다.
 그렇게 커 온 M&S.
 M&S엔터의 지분은 현재 사장인 자신이 30%, 눈앞에 있는 전무가 10%, 그리고 투자자들이 60%를 가지고 있다.
 투자자 중에는 여러 가지 직업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많은 20%의 지분을 가진 이가 이곳 청담동 일대를 주름잡는 만수파의 보스 최만수였다.
 그 최만수 보스의 아들이 이번에 사고를 단단히 쳐 버렸다.
 자신의 친구들과 파티를 한다며 아이들을 몇 보내라 한 것이다.
 M&S엔터에는 최신규를 감시하기 위해 만수파 조직원 몇이 직원으로 들어와 있었다.
 배운 것이 없다보니 예전 최신규가 처음 했던 것처럼 매니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놈 중 한 놈이 이번 회사에서 야심차게 준비하던 걸 그룹 멤버를 데려가 버렸다.
 돌아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는 애들 때문에 걱정이 되 찾아갔던 파티장.
 그곳에서 최신규는 어린놈들이 벌인 일이라고는 믿지 못할 광태를 보고 말았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인 놈들이 마약에 절어 광난의 섹스 파티를 벌인 것이다.
 그곳에 이제 겨우 17살인 회사가 준비하던 걸 그룹 멤버 하나가 입에 거품을 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급하게 다가가 숨을 쉬는지 살펴본 최신규는 다행이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며칠 데리고 있다, 정신을 차리면 어떻게든 달래서 집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커졌다.
 그 아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혼수상태로 있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최신규는 관계자들에게 접대를 하기 위해 준비해 둔 아파트에 아이를 숨겼다.
 여자를 이용할 줄만 알지 어떻게 수습할 줄을 몰라 전전긍긍하는 최신규.
 더군다나 사고를 친 이들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 너무도 막강했기 때문이다.
 처음 애들을 부른 것은 만수파 보스 아들이지만, 그 파티에 있던 그 친구들의 배경이 너무 대단했다.
 오히려 만수파 보스 아들이란 타이틀이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만수파 보스 아들의 친구 중 한 명은 만수파가 있는 청담동은 물론이고, 강남 전체와 강동까지 세력권으로 하는 대조직의 간부 아들이었다.
 또 다른 친구는 국내 도급 순위 10위 안에 드는 건설사 사장 아들에, 뿐만 아니라 남은 두 명의 신분도 그들보다 더 배경이 탄탄했다.
 바로 육 선 의원 손자이며, 아버지까지 국회의원인 놈과, 국내 재벌 순위 50위의 뉴월드 그룹의 손자였다.
 아마도 만수파 보스 아들은 자신의 생일을 맞아, 이들에게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아니면 접대를 하기 위해 아이들을 부른 듯하였다.
 하지만 그 일로 자신의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준비했던 걸 그룹의 멤버 한 명이 데뷔가 불투명해졌다.
 아니, 그 아이는 이젠 M&S엔터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아이 엄마가 실종 신고를 하는 바람에 경찰에 불려가 변명을 하다가 일이 꼬였다.
 그렇다고 이 아이를 어디 갔다 버릴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바로 이 아이의 신분이 언론에 공개될 것이고, 그에 대한 조사가 들어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무섭기도 하고, 혼수상태라고 하지만 산 사람을 생으로 바다에 버릴 정도로 모질지 못하는 최신규는 자꾸만 가슴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어려서도 최신규는 양아치밖에 되지 못했다.
 만약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사람을 스스럼없이 죽일 수 있었다면, 최신규는 이런 연예 기획사를 하는 사람이 아닌 조직폭력배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무라는 놈은 예전 버릇 못 버리고 자신에게 형님이란 말을 하여 간담이 철렁하게 만든다.
 “오늘은 뭔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조금 진정이 되자 방금까지 하던 고민은 털어 버리고 최진규에게 물었다.
 그러자 최진규는 얼른 최신규에게 다가가 조금 전 자신이 만난 성환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방금 전 내가 여기 오기 전 누굴 만났는지 알아?”
 밑도 끝도 없이 묻는 최진규의 말에 최신규는 다시 열이 받기 시작했다.
 “야, 이 새끼야! 지금 나하고 장난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말 똑바로 못해? 누굴 만났기에 그리 호들갑 떠는 거야!”
 최신규의 호통에 최진규는 얼른 바른 자세로 대답을 했다.
 비록 양아치이긴 했지만 최신규의 싸움 실력은 웬만한 조폭 못지않았다.
 다만 그 하는 짓이 대범하지 못하고 양아치 같아 그렇지.
 최진규는 이젠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질 만도 한 최신규에게 아직도 겁을 먹고 있었다.
 “그, 그게······ 실종된 수진이 외삼촌이란 사람이 왔다 갔는데, 그게······.”
 말을 하면서도 뭔가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여간 겁을 먹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진규를 달래며 계속 물었다.
 “그래, 수진이 외삼촌이 뭐. 뭐라고 했는데?”
 “그게, 만약 수진이 실종과 우리가 연관이 있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어.”
 “뭐, 그런 거야 걱정할 거 없잖아. 수진이 다 조사를 했는데, 우리가 신경 쓸 만한 건 없었잖아.”
 최신규의 말에 진규는 얼른 조금 전 만난 성환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오늘 본 그 외삼촌이란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심상치 않다니?”
 “그게 그러니까······!”
 진규는 자신이 본 성환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하였다.
 아주 고급은 아니지만 양복을 입고, 다부진 체격에 짧은 머리, 구리빛 피부 등 전체적으로 몸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는 말을 하였다.
 부연 설명으로······.
 “그게 내가 보기에 아무래도 조폭이나 아니면 경찰의 고위직 같아!”
 최신규는 진규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생각하길 경찰은 아닌 것 같았다.
 만약 경찰이라면 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찰 간부가 양복을 입고 이곳을 찾아올 이유가 없다.
 오히려 경찰 제복을 입고 찾아왔다면 그가 경찰이라고 생각할 것인데, 그러지 않고 양복을 입고 찾아 왔다고 하니, 어쩌면 처음 말한 것처럼 조폭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맞을 것이란 생각했다.
 조폭들이 양복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신규는 내려놓았던 수진의 일이 다시금 떠올라 골치가 아팠다.
 “아, 제길! 그 개새끼들은 누굴 건들인 거야!”
 최신규는 자신도 모르게 광란의 파티를 벌이며 여자아이들에게 마약을 먹인 그 인간들을 씹어 댔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김 부장님 계십니까? M&S엔터의 최신규 사장입니다.”
 최신규는 만수파에 전화를 건 것이다.
 수진의 외삼촌이 조폭이라 단정하고, 회사의 뒷배를 봐주는 만수파에 연락을 하였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것이 만수파 두목 아들이니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다.
 “예, 잠시 뒤 뵈었으면 합니다. 예, 예. 그 일 때문에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통화를 한 최신규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넌 아파트에 가서 수진이 어떤지 확인해.”
 최신규가 진규에게 수진에 대하여 말을 하자 눈을 크게 떴다.
 “어? 수진이 어디 있는지 형님은 알고 있었어?”
 자신도 모르게 다시 최신규에게 형님이라 했다.
 하지만 이번에 최신규도 실수한 진규를 뭐라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려 주었다.
 “하······ 젠장! 지금 수진이 상태 말이 아니다. 그 새끼들 지 두목 아들이 파티 한다고 애들 데려가 돌린 모양인데, 그때 마약을 얼마나 먹였는지······ 애가 지금 정신 못 차리고 있다.”
 진규는 신규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수진이 실종된 지 벌써 한 달이 거의 다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약을 얼마나 했으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단 말인가?
 아니,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진규도 양아치 짓을 하며, 또 최신규를 따라 연예 기획사에 입사를 해 매니저 일을 하며, 마약을 하는 스타들을 보았었다.
 아무리 심하게 해도 보통 3, 4일이면 깨어났었다.
 그런데 벌써 한 달 가까이 정신을 못 차린다는 것은 이미 가망이 없을 수도 있었다.
 “알았어, 내가 가 볼게.”
 대답을 하는 진규를 보며 최신규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다 당부를 하였다.
 “당분간 너만 알고 있어라! 외부에 알려져 봐야 좋을 것 없다.”
 “알았다니까! 그런데 어디 가는데?”
 “수진이 외삼촌이 심상치 않다며. 그래서 이번 사건 일으킨 만수파에 도움 좀 요청하러 간다. 쌌으면 치워야 할 거 아냐!”
 최신규는 그렇게 밖으로 나갔다.
 그런 신규의 모습을 지켜보던 진규도 다시 뛰어나갔다.
 
 ***
 
 신규의 당부대로 혼자 운전을 하여 접대를 위해 준비한 아파트로 갔다.
 최진규도 몇 번 이곳을 이용한 경험이 있었다.
 방송관계자를 접대할 때, 자신도 함께 이곳에서 같이 파티를 즐겼다.
 한 올의 옷도 걸치지 않은 태초의 모습으로 오페라 가면을 쓰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라 방으로 들어가 데이트를 하면 되는 그런 파티였다.
 올 누드로 즐기는 것은 이곳에서만의 규칙이었는데, 그만큼 연대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오페라 가면을 쓰는 것은 접대를 하는 연예인이나, 데뷔를 앞 둔 연습생들이 자신이 접대하는 사람의 신분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철저한 준비를 하고 만나는 비밀 장소이다 보니, 접대를 받는 회원들 간에도 서로의 신분은 비밀이었다.
 최진규가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 있는 화장실 쪽에서 지독한 썩은 냄새가 풍겨 오고 있었다.
 냄새가 나는 곳을 돌아본 최진규는 손으로 코를 잡았다.
 그가 본 화장실은 정말이지 너무도 처참했다.
 바닥은 온통 오물이 뒤덮여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수진이 싼 것으로 보이는 인분과, 억지로 먹을 것을 먹였는지 그녀가 토해 놓은 토사물이 범벅이었다.
 “으······ 제길!”
 욕밖에 나오지 않는 광경.
 도저히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확인한 수진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오물이 가득한 화장실 욕조에 온몸이 묶여 있었다.
 물론 수진이 걸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도 사장의 말대로 수진이 약에 취해 정신을 놓고 있던 곳에서 바로 데려와 숨기기 위해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은 듯하였다.
 그녀의 몸에 난 상처로 보아선, 아마도 금단 증상 때문에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을 막기 위해 묶어 둔 것으로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본 진규는 갑자기 수진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연습생을 그저 자신들의 돈벌이로 생각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한 적이 없었다.
 정말이지······ 이건 사고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조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분명 오늘 아침에 본 수진의 외삼촌이 수진의 일에 조금만 관계가 있어도 죽이겠다는 식으로 협박을 했었다.
 더군다나 성환의 모습에 겁을 먹고 있는 진규는 수진이 잘못되면 정말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욕조에 가서 물을 틀었다.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수진을 씻기고, 상처가 덧나지 않게 약을 바르기 위해서다.
 
 ***
 
 최진규에게 수진을 맡기고 최신규는 만수파 부장인 김용성을 만나기 위해 그의 사업장으로 찾아갔다.
 호텔 샹그릴라 지하에 있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장 그곳이 바로 만수파에서 바지사장을 내세우고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러면서도 부장인 김용성을 지배인으로 두고 감시를 하는 만수파였다.
 보통 이런 일엔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 보통 건달들의 룰.
 하지만 만수파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그들이 무사할 수 있던 것은 만수파 두목인 최만수가 그만큼 수완이 있는 사람이기에 감히 주변의 대조직도 일개 동 두 개를 잡고 있는 만수파를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강남의 최고 노른자만 잡고 있는 만수파는 이름과 다르게 가장 머리가 좋다고 할 수 있는 엘리트 건달 조직이었다.
 덩치는 작지만 가장 실속 있는 조직.
 그렇기에 그들의 사업 영역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대표적인 카지노 사업은 물론이고, 주류 도매, 경호 용역, 나이트클럽, 거기에 연예 사업 지분 확보 등 연관될 수 있는 많은 분야에 걸쳐 사업을 넓히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샹그릴라 카지노의 지배인인 김용성은 연예 사업과 카지노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브레인이었다.
 
 ***
 
 샹그릴라 카지노 복도를 지나 한쪽에 마련된 문 앞에 섰다.
 그 문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푯말이 붙어 있었다.
 한숨을 쉬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 뒤로 긴 복도가 있어 쭉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방문 앞에 서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검은 양복을 입은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몇 명의 비슷한 복장의 남자들이 가운데 쇼파에 앉아 있었다.
 보기만 해도 절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풍경.
 최신규는 매번 보지만 간담이 서슬한 분위기였다.
 비록 담이 약해 그렇지, 싸움 실력은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이런 풍경을 보면 역시나 기가 죽고 위축이 되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이곳을 찾지 않는데, 오늘은 어쩔 수가 없었다.
 수진의 외삼촌이란 사람의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란 소리에 일단 자신과 연결이 된 만수파 최고 윗선과 의논을 해야만 했다.
 “김용성 부장님 계십니까?”
 최신규의 물음에 쇼파에 있던 남자 중 한 명이 일어나 대답을 하였다.
 “성님은 안에 계셔. 근데 최 사장, 요즘 좀 뜸하네?”
 남자의 이름은 김성일.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아주 좀생이였다.
 자신에게 조금만 서운하게 해도 나중에 보복을 하는 아주 소인배였다.
 그랬기에 자신만 보면 어떻게든 접대를 받으려는 그를 피해서라도 이곳을 자주 찾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서 자신을 봤으니 조만간 연습생 중 반반한 애 하나 불러서 회포를 풀게 해 줘야 뒤탈이 없을 거란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개새끼들, 위나 아래나 요즘 발정긴가. 이놈들은 나만 보면 껄떡거리네!’
 오늘 이곳을 찾은 것도 지들 두목 아들이 친 사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온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저렇게 껄떡대고 있으니 최신규는 속에서 열불이 났다.
 하지만 자신이 약자인지라 어쩔 수 없이 웃는 낯으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요즘 일이 좀 많아서 그렇습니다. 조만간 자리 한 번 마련하겠습니다.”
 신규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김성일은 웃으며 대답을 하고 그를 안내했다.
 “그래, 그래. 내, 기다리지!”
 최신규는 자신보다 대여섯 살은 어린놈이 반말을 하는 것도 참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똑똑!
 “형님, 성일입니다.”
 “들어와.”
 김성일의 물음에 문 너머에서 굵직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
 
 김성일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간 최신규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뭔가 의논을 하고 있는 남자 두 명이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김 부장, 다른 한 명은 부장인 용성과 함께 자리하기엔 모자라 보이는 어린 남자였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그 어린 남자가 더 상급자인 것처럼 보였다.
 만수파에 자신이 모르는 간부가 있던가?
 생각을 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젊은 남자의 얼굴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김용성이 최신규를 보며 말을 반겼다
 “어서 오시오, 최 사장. 그래,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한 것이오?”
 최신규는 용성의 말을 들으며 앞으로 가 쇼파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온 용건을 말하였다.
 “내가 김 부장님을 보자고 한 것은 이번에 일어난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스 아드님께서 벌인 일의 뒷수습 때문에요.”
 최신규의 말에 김용성은 물론이고 맞은편에 있던 젊은 남자도 고개를 돌려 최신규를 보았다.
 “무슨 뒷수습 말이지?”
 김용성 부장이 아닌, 젊은 남자가 행동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용성을 보았다.
 그건 이 젊은 남자의 정체를 모르기에 그 일이 밖으로 세나가지 않게 말을 아낀 것이다.
 그런 최신규의 모습에 김용성은 간단하게 젊은 남자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첫째 도련님이네.”
 만수파의 보스인 최만수에게는 2남 3녀의 자식이 있었다.
 본 부인에게서 1남 3녀를 낳고 후처에게 1남을 봐 총 5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중 사고를 일으킨 아들은 바로 후처의 아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강남의 노른자인 압구정과 청담동을 집어삼켰다.
 처음 그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서울의 그 누구도 그가 당시 강남과 강동을 통일한 진원파의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진원파는 만수파를 공격하지 않았다.
 알짜 노른자 땅을 고스란히 만수파에 양보를 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기는 했지만 진원파는 그 뒤로 대립을 하지 않았다.
 그런 입지적인 인물이니 본처를 두고 후처를 두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냐 하겠지만,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이를 불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본처는 최만수가 강남에 나타나기 전부터 옆에 있던 여장부.
 최만수의 부인은 최만수가 압구정과 청담동을 평정할 때 많은 내조를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지위는 확고하지만 최만수 다음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비록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아들도 있지만 최만수와 그녀의 결합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그의 야망의 결과였기 때문에 그들에겐 애정이란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느 날 최만수는 후처와 새로운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자신의 구역에 있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술에 취해 술집 마담과 잠자리를 하게 되었다.
 물론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술에 취해 강제로 벌어진 강간.
 단 한 번의 강제적 성관계가 수시로 이루어지면서 그 마담은 최만수의 후처 아닌 후처가 되었다.
 그리고 당연한 결과로 그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되고, 그때의 아이가 바로 사고뭉치 최종혁이다.
 친구들과 마약을 흡입하고 난교 파티를 벌인 그 최종혁이 후처에게 난 아들이라면, 눈앞에 있는 남자가 바로 본처가 낳은 아들이다.
 눈앞의 젊은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된 최신규는 눈을 반짝였다.
 비록 자신이 그때 수진을 데려오며 자세히 본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최종혁 많이 닮았다.
 하지만 최종혁의 인상이 눈 코 입이 오밀조밀하니, 가는 선을 가지고 있는 꽃미남이라면, 눈앞의 남자는 선이 굵은 마초적인 스타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또 허여멀건 한 최종혁과 다르게 남자의 피부는 태양에 잘 그을린 구리빛의 강인한 인상을 선사했다.
 “아, 네. M&S엔터의 최신규라고 합니다.”
 최신규는 얼른 그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그런 최신규를 보던 남자도 자신의 명함을 꺼내 최신규에게 건넸다.
 “샹그릴라의 전무인 최진혁이라고 합니다.”
 서로 명함을 교부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주시하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조금 전 사건이라 했는데, 무슨 일입니까?”
 최신규는 자신이 이곳을 찾아온 용건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진혁도 만수파 간부.
 거기다 자신의 동생 문제이니 숨길 필요가 없었다.
 “20여 일 전, 동생 분이 사고를 쳤습니다.”
 “······?”
 “아직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군요.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최신규는 사건의 내용을 상세히 알려 주었다.
 자신의 회사에서 심열을 기울여 데뷔시키려는 그룹이 있었다.
 그런데 보스의 아들 즉, 최종혁이 자신의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회사에 있는 만수파 조직원을 통해 그들을 데려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애들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잘 다독여 두어 해결을 보았는데, 한 명에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무슨 문제, 말을 듣지 않나?”
 진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얘기했다.
 그런 물음에 최신규는 한숨을 쉬었다.
 “파티를 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그 파티가······ 마약 파티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뭐, 마약 파티? 이런 개······!”
 
 ***
 
 진혁은 동생이 벌인 망종 같은 일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아버지의 관심을 받다 보니 대체로 막무가내인 성격인 동생.
 자신과 생각하는 것, 생활하는 것, 모두 달라 물과 기름 같은 성격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참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약만은 용납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비록 조직에서 마약을 다룬다고 하지만 그건 자신들은 판매하는 것이지, 소비하는 곳이 아니다.
 조직의 방침상 마약에 손을 댄 조직원은 모두 은퇴를 시켜 버렸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조직이 붕괴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마약을 하는 이들의 의지는 어린 계집보다 못하다.
 약을 위해선 처자식은 물론이고 제 생명까지 담보로 약을 원하는 족속들.
 그러니 언제 어느 때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라 조직에서는 철저하게 처리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동생이 마약에 절어 파티를 했다는 소리에 화가 났다.
 “그래서······.”
 일단 일의 수습이 먼저란 생각에 그 문제의 연습생에 대하여 물었다.
 “그 애는 너무 많은 마약 투여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못 차린다면 해결된 것 아닌가, 뭐가 문제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용성이 끼어들어 물었다.
 첫째인 진혁과 둘째 종혁 간에 다툼이 벌어지면, 자칫 조직이 흔들릴 수도 있는 문제.
 젊은 조직원들에게 지지를 얻고 있는 첫째 진혁과, 둘째 최종혁은 조직 보스인 최만수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존재다.
 그 말은 결국 만수파의 후계는 둘째 최종혁 쪽에 가깝다는 말이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냐만, 더 사랑하는 자식이 있을 수 있고, 그게 둘째라는 것이 문제다.
 강간에 의해 태어나긴 했으나, 그래도 최만수가 사랑해 강제로 차지한 여자에게서 난 자식.
 여장부 스타일인 본처보단, 비록 마담 출신이지만 나긋나긋하고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진 후처를 더 사랑하는 최만수다.
 그러니 만약 이번 문제로 두 형제 간에 싸움이 벌어지면 최악으로 아들과 아버지의 싸움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김용성은 어떻게든 일을 쉽게 끝내려고 했다.
 “그 집안에서 찾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는데, 알고 보니 그 아이 집안도 좀 심상치 않은 것으로 파악되어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자세히 들어봅시다.”
 최신규는 오늘 진규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 주었다.
 “그 아이의 외삼촌이란 남자가 오늘 찾아왔습니다. 말이 안 통했는지, 협박을 하고 갔는데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심상치 않다?”
 “예, 전무가 보기에 사람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무래도 조폭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조폭 앞에서 조폭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최신규.
 하지만 김용성이나 최진혁은 그런 그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자신들은 조직 폭력배가 아닌 사업가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파라 그러던가?”
 용성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전적으로 자신들의 판단하기에 성환의 분위기가 조폭과 비슷해 보인다고 판단했기에 그리 말하는 것이다.
 거칠고 주변을 억누르는 카리스마.
 그건 결코 혼자 움직이는 독고다이의 모습이 아니라,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지시를 내리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였다.
 아무리 소심한 최진규지만 그런 것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지 않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조금 모자란 최진규지만 그와 오랜 세월 함께 하며 보고 듣고 한 경험은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무란 자리에 맞는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도 느낌이 좋지 않아 이렇게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 아이 가족 사항에 별거 없었는데······.”
 최신규는 말을 하면서도 끝에는 수진의 가족 사항에 대하여 작게 언급을 했다.
 그런 최신규의 말을 집어낸 김용성은 자세히 말해 보라는 말을 하였다.
 “그 가족 사항이?”
 “그게 홀어머니 한 명과 외삼촌이 다입니다. 다른 친척이나 관계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외삼촌도 이번에 그가 찾아와 알게 된 것입니다.”
 최신규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김용성은 일단 그 외삼촌이란 자의 신분이나 그런 것을 파악하고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음 처리하기로 하였다.
 “알겠소, 그건 우리가 처리할 테니 당신은 다른 문제없게 잘하시오.”
 용성의 말을 듣고 최신규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조폭이라 생각되서 걱정을 했는데, 만수파에서 처리를 해 주겠다고 했으니 안심이 되었다.
 
 ***
 
 진성을 만나 일을 의뢰하긴 했지만, 그냥 기다리고만 있긴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자꾸만 엉뚱한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넌 조국을 위한단 핑계로 너를 위해 희생한 누나를 외면했다. 불쌍한 누나, 조카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자신의 무술 실력만 믿고, 넌 그렇게 자신을 자위하고 있었냐.’
 끝없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소리에 성환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무언가 올라와 가슴을 틀어막는 듯한 느낌에 참으며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예전 백두산 지하 동굴에서 배운 심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공이라는 것이 마음을 쌓는 무공, 지금 마음이 흔들린 상태에서 심공을 하려니 몸속에서 불안정하게 날뛰던 내공이 더욱 발광했다.
 솔직히 성환이 이른 나이에 특수부대 무술 교관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런 기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전을 나갔다, 팀원들을 모두 잃고 쫓기는 도중 백두산에서 조난을 당했다.
 당시 성환이 작전을 나간 시기에 휴화산인 백두산이 한참 활동을 하려던 시기였다.
 북괴군에게 쫓기다 발견한 폭포수 뒤 동굴로 들어간 성환, 하지만 하필 그때 백두산에 화산지진이 일어났다.
 대폭발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동굴 바닥이 갈라지며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천우신조로 성환이 떨어진 바닥은 다른 동굴과 연결이 되었다.
 그곳에서 성환은 기연을 얻었다.
 고대 선인 중 한 명이 민족을 걱정하여 그곳에 많은 무공 서적을 남겼다.
 그리고 또 자신의 능력 일부를 남겨 성환이 그곳의 무공을 익히는 것을 도왔다.
 성환이 동굴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익힌 무공은 뇌정심공.
 뇌정심공은 말 그대로 하늘의 번개를 닮고자 하는 심공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빠르고, 강하며, 파괴하지 못할 것이 없는 그런 것이 바로 뇌정.
 선인이 남겨 준 능력을 이어받고 그 뜻을 계승한 성환은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배운 뇌정심공을 토대로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조카의 실종과, 자신의 뒷바라지했던 누나의 고통을 지켜본 성환은 그동안 자신이 한 일이 모두 부질없었다는 생각과 함께 심마에 빠졌다.
 만약 심마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말로만 듣던 주화입마의 단계로 넘어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만약 그것을 입 밖으로 토해 낸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생각한 성환은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결가부좌를 하고 동굴에서 익힌 그대로 뇌정심공을 운용하였다.
 점점 꼬여 가던 화두(話頭)는 뇌정심공을 운기하자마자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댓글(14)

정구의검    
강해지는가 닝겐이여
2017.08.07 18:12
용서받은자    
병신인가 ㅋ힘은 두고 머하는짓 조카는 그동안 먼짓을 더당하려고ㅋ 고문을 해서라도 알아야지 ㅋ
2017.10.07 22:15
대한제국11    
00
2018.03.20 03:31
대한제국11    
000
2018.03.20 03:42
대한제국11    
000 0
2018.03.20 03:44
pc***    
흠..매형이 진급이었나 그거 축하해주러간거 아니었나?? 갑자기 음주운전이...
2018.07.22 03:05
김영한    
봐 주기 봐주기
2018.08.22 01:11
낭만달봉    
글이 좋게 말해서 너무 디테일하네요 나쁘게 말하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글을 읽으면서 상상할 시간이 없네요 디테일 하게 다 적어놔서 소설이 아니라 자서전 읽는줄 알았습니다
2018.10.02 22:17
검정콩우유    
7프로에 그은>그는
2018.10.03 11:25
너솔    
좀더 강하고 빡시게 가자
2019.06.10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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