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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 (1화)

2017.06.19 조회 248 추천 0


 헬 블레이드 1권 (1화)
 프롤로그
 
 
 당신은 배고픔의 고통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다이어트의 고통을 알고 있는가?
 이건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배고픔의 고통.
 음식이라고 하는 건 원한다면 언제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음식을 양껏 먹는다는 것은 살이 찐다는 얘기이지 않은가.
 살을 뺀다는 것은 정말 지독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나에게는 그게 더더욱 심하다.
 남들보다 적게 먹어도 살이 찌고, 남들보다 열심히 운동을 해도 살은 찐다.
 세상에 이런 열 받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남들보다 노력해도 살이 찔 수밖에 없다니······.
 무얼 해도 계속해서 살이 찐다니······.
 
 나는 다짐한다.
 나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 준 그 녀석을 찾아가 반드시 죽여 없애 버릴 것임을. 감히 나의 가문에 무한비만증이라는 빌어먹을 저주를 걸어 이런 열 받는 고통에 빠지게 한 그 녀석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할 것임을.
 마지막으로 지금 한 나의 다짐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킬 것임을 마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작은 메모지에 쓰인 다짐의 말
 
 
 
 Chapter1 시작되는 다이어트
 
 
 올해 세 살이 된 아기. 하지만 뭔가 조금 이상하다.
 이 아기가 정말 세 살이 맞기는 한 걸까? 아기는 세 살이라는 나이치고는 너무도 컸다. 족히 육칠 세의 나이로 보이는 아이는 다름 아닌 아웬 백작의 하나뿐인 아들인 베스렐 갈루안스였다.
 “우웅······.”
 뾰로통한 표정의 베스렐.
 녀석은 이미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두 살 때 이미 대륙 공용문자를 깨우치고 마법에 꼭 필요한 룬어를 비롯한 기초수리를 깨우친 천재가 바로 녀석이지 않은가. 당연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베스렐이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작은 식탁에 놓여진 몇 가지의 음식, 아니 이건 음식이라기보다는 계집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할 때의 그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베스렐의 시선이 식탁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시녀장인 케이시 옆에 있는 한 사내.
 그는 백작가의 요리장인 페리스였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소영주님?”
 “우웅. 이게 정말 오늘 아침부터 내가 하게 될 식사인 거야, 페리스?”
 놀라운 일이었다.
 분명 베스렐은 세 살 난 아기였다.
 한데 녀석은 지금 말을 하는 데 있어 그 어떠한 장애도 보이지 않고 또박또박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예에, 그렇습니다, 소영주님. 그게 앞으로 일주일 중 첫 번째 날의 아침식사로 소영주님께서 드실 음식들입니다.”
 “우웅, 그런데 이거 양이 너무 적지 않아? 나도 내가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같은데 말이야.”
 페리스 요리장의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아닙니다, 소영주님. 그건 절대로 심한 게 아닙니다. 지금 소영주님이 하시려는 식사는 절식요법이라고 해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 정도로만 식사를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소영주님은 일반적인 비만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체질을 타고나시지 않았습니까.”
 절식요법.
 이것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씩은 해 보는 것들 중 하나다.
 먹는 양을 줄이거나 며칠간 끊어 버리는 일.
 절식요법은 몇 가지로 구분 지어 나눌 수가 있는데 이제부터 소영주인 베스렐이 하게 될 절식요법은 초저열량 식이요법으로 하루에 600칼로리 이하의 열량만을 섭취하는 것이었다.
 성인 남자가 하루에 최소한으로 섭취해야 할 열량이 1,200칼로리에서 1,500칼로리 정도라고 하니 600칼로리 이하란 것은 상당히 무리를 해 가면서 하는 다이어트다. 그리고 베스렐의 경우는 나이가 어려서 600칼로리보다 훨씬 적게 먹어야만 했다. 당연히 녀석의 앞날은 배고픔과의 끊임없는 싸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릴 것은 소영주님께서는 앞으로 보름에 한 번씩 완전단식에 들어가시게 될 것입니다.”
 “완전단식?”
 “예, 그렇습니다, 완전단식. 하루 동안 먹는 것을 일절 금한 채 오로지 생수만 드실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두 번씩 있을 예정입니다.”
 순간 베스렐의 통통한 얼굴에 자리한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져 버렸다.
 “뭐라고, 페리스? 내가 앞으로 한 달에 두 번을 굶어야 한다고?”
 “예, 소영주님.”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페리스 요리장.
 그는 소영주에게 미리부터 모든 걸 알려 주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더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당일 겪게 될 충격을 미리부터 조금씩 흡수시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베스렐은 페리스 요리장 옆에 서 있는 케이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녀석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페리스 요리장의 말이 사실이냐고.
 진정 그러한 것이냐고. 그리고 결과는 녀석이 원치 않은 대답으로 나왔다.
 “그건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소영주님. 완전단식 건은 이미 영지 내 마탑에 계시는 영주님께서 그리 하라고 허락이 떨어진 상황이니 말이에요.”
 케이시는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제 세 살이 된 어린 아기가, 비록 덩치는 육칠 세의 아이와 비슷했지만 어쨌든 그런 아기가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완전단식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소영주님, 힘들겠지만 참으셔야 합니다. 가문에 내려진 저주가 생각보다 더욱 강해지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소영주가 세상 밖으로 나온 그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3년 전의 그날.
 어마어마했다. 모두가 놀랐다. 역대 백작가의 누구보다 우람한 몸으로 태어나신 소영주였다. 믿을 수 없겠지만 베스렐은 당시 9.3크롬(kg)의 몸무게로 태어났다. 보통의 우량아가 아닌 초우량아로 태어난 것이다.
 “우웅······ 밥을 굶는다는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인데. 나는 그냥 식사량만 조금 줄이는 걸로 알았단 말이야.”
 베스렐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 같은 일을 허락했다고 하니 실망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아버지 선에서 모든 게 끝난 상황이라 하는데. 때를 써 봤자 되지도 않을 일이었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스윽, 척.
 베스렐은 식탁에 놓여져 있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그리곤 자신이 오늘부터 먹게 될 음식들을 왼쪽부터 차례대로 살펴보았다.
 “요건 땅콩 일곱 알, 옆에 있는 건 체리 두 알, 그리고 녹색의 뭔지 알 수 없는 풀뿌리 하나와 붉은 사과 한 조각. 거기다 요거는 호밀 빵처럼 보이는데 크기가 겨우 내 엄지손가락만 하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일이다.
 이걸 아침식사 한 끼라며 내놓다니.
 고기 음식은 하나도 없이 전부 채식으로만 이루어진 식사거리들이지 않은가. 그것도 대부분이 가공되어지지 않은, 그 어떠한 조미료도 첨가되지 않은 그런 것들.
 페리스 요리장은 생각했다.
 ‘짜게 먹게 되면 체지방률이 높아진다고 했으니 웬만하면 앞으로도 싱거운 음식들을 올려야 해. 나트륨을 적게 넣어서 말이야. 맛은 정말 없겠지만 그래도 과일이 한 조각 있으니 텁텁한 맛을 약간이라도 희석시켜 주기는 할 거야.’
 앞으로 베스렐이 먹게 될 음식은 조미료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채식 위주가 될 것이다. 물론 어쩌다 가끔씩은 등 푸른 생선요리가 올려지겠지만 그것도 양념은 거의 쓰지 않을 것이니 맛을 기대하기는 힘들 터였다.
 “휴우우. 정말 이게 다야, 페리스?”
 세 살 아이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예에, 그게 답니다, 소영주님. 아아, 생각해 보니 그거 말고도 하나가 더 있군요.”
 “어어, 정말?”
 금세 밝은 표정을 짓는 베스렐.
 하지만 다음에 이어서 나오는 페리스의 말이 녀석을 절망케 만들어 주었다.
 “저번부터 가끔 드시던 ‘루안차’를 앞으로는 하루 세 번씩 끼니때마다 드실 겁니다.”
 “에엑! 그 맛없는 루안차를?”
 “예, 그렇습니다, 소영주님.”
 베스렐은 둥글둥글한 자신의 얼굴을 잔뜩 구겼다. 그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구겨질 일이었다.
 루안차!
 이것은 ‘루안’이라는 이름의 버섯을 차로 달여 마시는 것인데 그 맛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썼다.
 세상의 쓰다는 음식이나 차 음료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지독히 쓴맛을 내는 게 그 루안차인 것이다.
 하지만 입에 쓴 게 몸에는 좋다는 말이 있듯이 이 루안차를 장복하면 몸이 튼튼해지고 만병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한다.
 “그 쓴 것을 꼭 마셔야 하는 거야? 안 마시면 안 되는 거야?”
 “예. 안 됩니다, 소영주님.”
 페리스 요리장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모든 일이 술술 풀어지는 것이다.
 “소영주님의 몸을 생각해서 그리하는 것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꾸준히 계속될 절식요법을 생각해 보면 그 ‘루안차’는 앞으로 소영주님께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휴우우······.”
 세 살 난 아기의 입에서 나오는 한숨 소리치고는 정말 처량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시기는 정말 싫은 일이었지만 베스렐 자신을 생각해서 그런다는데 어쩌겠는가.
 녀석은 곧 시무룩한 표정으로 식탁 앞에 놓여 있는 음식들을 하나씩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소영주님! 음식을 드실 때에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서른 번 이상씩 꼭꼭 씹어 드셔야 합니다. 그건 물을 드실 때도 마찬가지이니 잊지 마세요.”
 “알고 있어, 케이시.”
 시녀장인 케이시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소영주의 식사를 챙겼다.
 음식은 되도록이면 천천히 먹어야 한다.
 못해도 삼십 분 이상으로 천천히 먹어야지만 배에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소영주인 베스렐이 먹을 하루 식사량은 지극히 적을 것이니 한 끼를 먹더라도 더욱 천천히 꼭꼭 씹어서 배고픔을 잊을 수 있도록 해야만 했다.
 
 잠시 후.
 베스렐은 식탁에 올려진 음식을 모두 들고는 이제 한 가지 차 음료만을 남겨 놓게 되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찻잔에 올려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오고 있는 루안차.
 “우웅, 이 맛없는 걸 앞으로 하루 세 번씩 먹어야 한다니. 휴우우, 그냥 하루에 한 번으로 줄이면 안 되는 걸까?”
 베스렐의 시선이 요리장과 시녀장에게로 향했다.
 불쌍한 표정. 하지만 그건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의 고개는 똑같이 가로저어졌다.
 “소영주님, 얼른 드시고 이제 이를 닦으러 가셔야지요. 알고 계시겠지만 소영주님은 오늘부터 무척이나 바쁘십니다. 오전부터 오후 세 시까지는 기사수련을 받으셔야 하고 그 후로는 메드레스 마도사님으로부터 마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시간을 아끼셔야 해요.”
 그랬다. 오늘부터 베스렐의 하루 일과는 무척이나 바쁘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기사수업과 마법수업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세 살 된 아이에게 너무하다 싶은 그런 조기교육이 오늘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어서 드세요, 소영주님.”
 “우웅, 알았어. 지금 마시려고 하잖아.”
 베스렐은 심통 난 표정을 짓더니 곧 눈앞에 있는 루안차를 한 번에 들이켜 마셨다. 지독히 쓴맛을 내니 단번에 들이켜 입 안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는 의도에서였다.
 “후르릅, 우와, 뜨거워!”
 “조, 조심히 드세요, 소영주님. 차는 그렇게 급하게 드시는 게 아닙니다.”
 “에이, 그럼 쓴 걸 어떡해? 케이시도 한번 마셔 봐! 이렇게 단번에라도 마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혀가 아프단 말이야.”
 베스렐은 계속 심통이 난 표정을 짓고는 되도록이면 빠르게 루안차를 마시기 위해 노력했다.
 “후르릅, 후르릅, 아우, 써!”
 뜨거우니 입으로 ‘호호’ 불며 결국 두세 번 만에 모두 다 마신 베스렐.
 스윽.
 녀석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살이란 어린 나이지만 베스렐은 일고여덟 살의 아이들처럼 잘 걷고 잘 뛰어다닐 수 있는 그런 아기였다.
 “자아, 다 마셨으니 이제 이 닦으러 가. 그리고 오늘부터 하게 되는 기사수련이란 게 어떤 건지 빨리 보러 가자구.”
 베스렐은 기사수련이 궁금했다.
 커다란 덩치의 아저씨들이 들고 있던 커다란 검.
 그 검을 가지고 놀고 싶은 베스렐이었다.
 “예, 그럼 저의 손을 잡으세요.”
 케이시가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됐어. 내가 아기야? 나도 이제 다 컸단 말이야.”
 “호호호. 예에, 알겠습니다, 소영주님.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뭐야? 왜 그렇게 웃는 거야?”
 “호호. 아닙니다, 아니에요.”
 케이시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곧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영주를 데리고 세면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흐음······.”
 페리스 요리장은 밑에 있는 젊은 요리사 2명을 불러서 식탁을 치우게 하고는 시선을 돌려 세면실로 향하는 소영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걱정 어린 그의 눈빛.
 그는 눈을 감고 잠시 삼 일 전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삼 일 전 그날, 영주님의 부름으로 오전부터 옷을 잘 빼입고 집무실로 향했던 페리스 요리장. 그날은 소영주의 운명이 결정된 날이었다.
 
 “페리스 요리장은 이걸 받게.”
 아웬 백작은 오전 일찍부터 페리스 요리장을 불러서는 그에게 두툼한 책자 한 권을 전해 주었다.
 집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는 어마어마했다.
 사람인지 돼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웬 백작은 엄청나게 살이 쪄 있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못해도 250크롬(kg)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것은 혹시 저번에 주신 책과······.”
 “그래. 그것과 연관이 있네. 바로 식재료들의 영양분석과 칼로리를 기술하고 있는 책자인 것이지. 사실 그게 우리 가문사람에게는 그다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네는 그걸로 초저열량의 음식을 만들어 베스렐의 식사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게.”
 그가 방금 전해 준 책자는 마법사들이 심심풀이로 연구해 놓은 것으로 음식들의 열량을 품목별로 적어 놓은 것이었다.
 일반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필요가 없는 책자이지만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한 비만인들에게는 한번씩 봐 두면 크게 도움이 되는 그런 책자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으음, 드디어 시작이 되는구나.’
 페리스는 속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얼마 전에 얘기한 그것을 이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걱정이군. 아무리 저주가 무섭다고 해도 이제 세 살 난 소영주님께 벌써부터 다이어트를 시켜야 한다니 말이야.’
 아웬 백작은 말했다.
 “잘해 보게. 식사 문제는 살을 빼는 것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니까.”
 “아, 알겠습니다, 영주님. 양은 비록 적더라도 최선을 다해 맛있게 요리를 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지, 아니지. 그게 아니지.”
 아웬 백작이 급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네는 뭘 잘못 이해하고 있군. 요리를 맛있게 해 주면 어떻게 하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페리스 요리장의 두 눈에 의문이 차올랐다.
 요리사의 생명은 맛있는 요리를 해서 그걸 식탁에 올리는 것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인 것이다.
 한데 지금 영주가 하는 말은 그와 반대로 음식을 맛없게 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지 않은가.
 “나 이런 참. 생각을 해 보게, 페리스 요리장! 음식을 맛있게 해서 그걸 베스렐이 들면 어떠한 반응이 나오겠는가?”
 “그야 당연히 맛있으니 더 드시려······ 아아, 그렇구나. 그럼 안 되는 일이구나.”
 페리스 요리장은 영주의 말을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지금부터 죽음의 다이어트를 시작하려는 소영주에게 맛있는 음식을 올린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해 보면 괴롭히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음식.
 식탁의 앞에 있는 그 맛있는 음식을 더 이상 들지 못한다는 것은 어린아이에게는 정말 고문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영주님의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흐음, 알아들었다니 다행이군. 영양은 있지만 최대한 맛없게, 먹는다는 거 자체가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란 것을 각인시켜 주게. 그리고 그런 음식은 성내의 다른 모든 식당 주인들에게 알려 주어서 만일 베스렐이 음식을 주문하면 맛없게 요리를 하라고 일러두게, 알아들었는가?”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래. 이건 전쟁이야, 전쟁. 바로 살과의 전쟁! 전쟁에서 패배한 자는 죽을 수밖에 없으니 우리는 반드시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하네. 그러니 소영주가 불쌍하다고 음식을 더 내주거나 그러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야.”
 아웬 백작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원래 유순한 사람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는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들을 위하고 가문을 위한 것이니 독하게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영주님이 명하신 일, 큰 사명을 갖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좋네. 내 자네만 믿겠어.”
 아웬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두 눈엔 신뢰의 빛이 담겨 있었다. 페리스 요리장은 영주가 전해 준 책자를 소중한 보물인 것처럼 품속에 꼭 넣어 두고는 인사를 한 뒤, 바로 집무실을 나왔다.
 
 “흐음······.”
 페리스 요리장은 감겨 있던 두 눈을 뜨며 시선을 돌려 식당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세면실로 향하는 작디작은 소영주.
 이제는 힘든 길을 걸으셔야 한다.
 어쩌면 도중에 쓰러지실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영주가 한 달 전에 백작가의 가신들을 모두 모아 놓고 한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그중 하나는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바로 기사수련에 관련된 이야기. 그것은 가신들 모두를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절식요법도 모자라 기사수련이라니. 정말 영주님도 너무하시지. 잘은 모르지만 기사수련이라는 게 무척이나 혹독하다고 하는데······.”
 기사가 되기 위한 수련은 어느 정도 몸이 만들어져 있는 자들만이 하는 걸로 페리스 요리장은 알고 있었다.
 한데 소영주는 이제 세 살이 된 어린 아기지 않은가. 비록 덩치는 나이를 초월했다지만 말이다.
 “탈이 나지 않을까 모르겠어. 아무리 기사수련이 다이어트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말이야.”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소영주의 신형을 따랐다. 정말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에게도 여섯 살 난 아들이 하나 있지 않은가. 자신의 아들과 소영주의 모습을 겹쳐 보고 나니 지금의 소영주가 너무도 불쌍한 그였다.
 “에휴, 모르겠다, 모르겠어. 영주님이나 기사님들이 알아서 잘하시겠지. 나야 소영주님의 식사만 알아서 잘 챙겨 드리면 되는 일이니까.”
 그는 고개를 살래살래 내젓고는 곧 소영주의 전용 식당을 벗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페리스 그는 백작가의 요리장으로서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다. 이제 점심시간부터는 그가 아닌 아랫사람들이 소영주의 식사를 책임지리라. 물론 소영주의 음식을 만드는 일은 요리장인 그의 몫이다. 그가 만든 음식을 다른 요리사들이 이곳으로 가지고 와 소영주의 식사를 챙기는 것이었다.
 
 ***
 
 무더운 여름이다.
 13개로 나누어진 달 중 가장 덥다는 팔월 말. 그중에서도 가장 더운 때인 오후 두 시 경이다.
 보통 이 시간이면 사람들 대부분이 휴식을 취한다.
 되도록이면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그늘진 곳을 찾아 들어가 뜨거운 햇살을 피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지금 이곳 기사들의 연무장을 보면 뙤약볕 아래서 열심히 수련을 쌓고 있는 기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이 연무장에는 아이가 하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고여덟 살로 보이지만 사실은 세 살이라는 아기의 나이를 가진 베스렐. 녀석은 지금 그 넓은 연무장의 외곽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후읍, 후읍, 후읍······.”
 깊은 호흡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베스렐의 짧은 반팔 튜닉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상태였다.
 연무장의 한 바퀴는 400미르(m).
 그리고 지금 베스렐은 그 연무장을 다섯 바퀴를 넘어 여섯 바퀴째를 돌고 있는 것이니 진정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늘 목표로 한 게 일곱 바퀴니 이제 조금만 더 달리면 되는 베스렐이었다.
 사실 세 살 난 아이가 하는 것치고는 너무하다 싶은 훈련이었다. 아니, 너무하다 싶은 훈련이라기보다는 미친 짓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세상 어느 누가 세 살 난 아이에게 3페르(km) 가까이 되는 거리를 뛰게 할 수 있겠는가. 보통의 아이들이었다면 단번에 나가떨어질 일이었다.
 “후읍, 후읍, 조금 힘들긴 하지만 이제 복식호흡은 의식하지 않아도 잘돼 가는구나.”
 그래도 조금은 익숙해진 것일까?
 녀석은 크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처음엔 정말 죽을 것같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견딜 만하다 생각했다. 연무장을 한 바퀴 뛰는 것도 처음엔 너무 힘들어 중간에서 멈추어 주저앉곤 하지 않았던가.
 처음이던 5개월 전의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이제는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복식호흡 때문인 걸 거야.’
 베스렐은 생각했다.
 ‘가슴으로 하는 흉식호흡보다 이렇게 좀 더 안정되게 뛸 수 있는 걸로 봐서는 틀림없어. 블레스 경이 살을 빼는 데에는 복식호흡이 좋은 거라고 앞으로는 숨을 쉴 때에는 무조건 그걸로 하라고 했잖아. 그래서 이렇게 배로 하는 호흡을 5개월 전부터 의식하지 않아도 할 수 있게 연습하고 있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여러모로 몸에 좋은 거 같아. 앞으로도 이 복식호흡을 더욱 갈고닦아 잠을 자면서도 할 수 있게 연습해야겠어.’
 복식호흡.
 이것은 가슴이 아닌 배 부근, 다시 말해 복근운동에 의해 횡경막을 상하로 열심히 움직여 주는 호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복식호흡을 하게 되면 복압이 커지게 되고 그것은 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해 주게 되는 것이다. 소화흡수를 돕고 배설작용을 원활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칼로리의 소모량을 따지자면 가슴으로 하는 흉식호흡보다 복식호흡이 두 배 이상 높다고 하니 다이어트에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 게 복식호흡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법사들의 연구에 의하면 가만히 앉아서 1시간 복식호흡을 하는 게 25분간 걷는 것과 같은 양의 칼로리를 소모한다고 하니 복식호흡을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하면 그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후흡, 후흡. 이제 조금씩 힘이 드네. 이제 한 바퀴, 한 바퀴만이 남았으니 빨리 돌고 잠시만 쉬는 거야. 그리고 목이 많이 마르니 물을 한 모금만 마시자.”
 점점 힘이 부침을 느끼지만 참고 견뎠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베스렐이다.
 녀석은 고지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복식호흡과 함께 계속해서 힘을 내달렸다.
 탁탁탁.
 
 “흐음, 정말 대단하군.”
 “그러게요, 단장님. 놀라운 일이에요, 놀라운 일. 저는 정말 소영주님을 다시 봤습니다. 저렇게 어리신 분이 연무장을 다섯 바퀴를 넘게 돌고 있다니. 그것도 걷는 게 아닌 뛰는 거잖습니까.”
 라이언 기사단의 단장인 블레스 라신과 부단장으로 있는 로가드 저윈.
 그 두 사내는 연무장을 돌고 있는 베스렐을 감탄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연무장의 한 편에 있는 막사에 서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은 계속해서 베스렐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정말 처음엔 힘들다고 울고불고 난리 치던 분이신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저주받은 육체를 생각하면 영주님 말씀대로 지금부터라도 혹독한 다이어트를 해야지.”
 로가드는 처음 소영주의 훈련을 맡게 된 5개월 전의 일을 떠올리고 갑자기 입가에 미소를 담으며 말했다.
 “후후, 어찌 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웃긴 일이에요. 살을 빼기 위해 기사들이 하는 수련을 한다니 말이에요. 그렇죠, 단장님? 단장님도 그리 생각하시죠?”
 “웃기긴. 지금 보니 영주님 말씀대로 소영주님을 이렇게 처음부터 기사수련을 시키는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확실히 효과는 있잖은가. 짧은 5개월간의 훈련으로 비록 여전히 뚱뚱한 체형이지만 물렁한 지방덩어리들은 보이지 않잖은가.”
 “헤헤. 뭐, 그건 그렇긴 하지만요.”
 스윽, 척.
 두 사람은 목이 마른지 옆의 탁자 위에 있는 물병을 들고 한 모금씩 마셨다.
 “벌컥벌컥······!”
 그리곤 다시 연무장을 돌고 있는 소영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베스렐은 여섯 바퀴를 돌고 마지막 일곱 바퀴째를 향해 가고 있었다.
 로가드는 소영주의 모습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으음, 마법사로서의 재능뿐만 아니라 저렇게 신체적인 능력도 좋으니······. 후후후. 제 바람이기는 합니다만 앞으로 소영주님이 마법사의 길이 아닌 기사의 길을 가셨으면 하네요, 단장님.”
 “그게 무슨 소리인가? 명색이 갈루안스가의 차대 영주님이 되실 분인데 당연히 마법사의 길을 걸으셔야지.”
 블레스 기사단장의 말에 로가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에이. 꼭 그렇게만 생각하실 게 아니지요, 단장님. 재능이 기사 쪽으로 더 뛰어나다면 당연히 그쪽으로 가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니겠습니까.”
 “쯧쯧쯧······.”
 “아니, 왜 혀를 차고 그러십니까, 기분 나쁘게. 제가 하는 말이 뭐 틀린 거라도 있는 겁니까, 단장님?”
 블레스 단장은 로가드가 이 순간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다고 생각했다. 잊고 있으면 깨닫게 해 주면 되지만 설명해 주는 게 문득 귀찮다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쯧, 이보게, 로가드 저윈!”
 “예, 말씀해 보십시오.”
 “생각을 한번 해 보게. 소영주님의 재능이 기사 쪽으로 더 뛰어나겠는가, 아니면 마법사이겠는가?”
 로가드는 단장의 말에 바로 바로 대답해 주었다.
 “그야 당연히 마법사겠죠. 지금까지 갈루안스가는 언제나 7써클의 대마도······ 아아, 그렇구나.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당연히 소영주님의 재능이 전대 영주님들처럼 7써클의 대마도사에 이를 정도로 뛰어날 텐데 말이야.”
 로가드는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인정했다.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그는 뭐든 잘 받아들이고 또한 자신의 잘못된 점은 순순히 인정하는 사내였다.
 하지만 금세 또 다른 생각이 드는 로가드였다.
 ‘으음, 그래, 맞아. 이거, 이거 잘만 하면 소영주님께서 찾아보기 극히 힘들다는 마검사가 될 수도 있겠는걸.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소영주님이 가지고 계신 기사의 재능도 심상치 않아 보이니까 말이야. 후후, 마검사라······. 이거 앞으로가 정말 기대가 되는걸······.’
 로가드는 지금의 이 생각은 블레스 단장에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삼키며 소영주의 미래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품었다.
 ‘후후, 정말 그리 됐으면 좋겠군.’
 즐거운 상상을 하는 로가드. 그런 그와는 다르게 블레스 기사단장의 눈은 깊게 가라앉았다.
 “흐음······.”
 연무장을 다 돌고는 이제 자신들 두 사람이 있는 막사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소영주를 보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다음부터는, 아니 내일부터라도 당장 다른 뭔가를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소영주님의 체력이 어느 정도 돼 가는 것 같으니 이제는 슬슬 마나 소드를 가르쳐 봐야겠군. 거기다 내일부터는 몸에 작은 모래주머니도 하나 이고 뛰게 해야겠어. 저주받은 육체를 극복하려면 계속해서 한계 이상으로 수련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그의 눈에는 소영주가 하는 달리기가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전에 비해 몸에서 흘리는 땀의 양이나 얼굴 표정들이 한결 편해 보였던 것이다.
 그의 예리한 두 눈에 걸려든 소영주.
 안타깝게도 진정한 다이어트의 고통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었다.
 
 “우물우물······.”
 베스렐은 탁자 위에 놓인 물통을 입에 가져다 대서는 음식을 씹듯이 꼭꼭 씹어서 천천히 마셨다. 그리곤 어느 정도 목의 갈증이 해소가 된 것 같자 물통을 내려놓고는 시선을 돌려 막사 안의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기사단장과 베스렐 자신처럼 갈색머리를 하고 있는 작은 눈의 로가드 저윈.
 그들 중 기사단장인 블레스 라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삼 일 내로 소영주님이 그렇게 배우고 싶어 하셨던 ‘마나 소드’를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순간 베스렐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동그랗게 치켜떠졌다.
 “정말?”
 “예, 정말입니다, 소영주님.”
 “우와아, 좋았어.”
 베스렐은 기사단장의 말에 기쁜 듯 자신의 두 주먹을 꼭 쥐고는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기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베스렐 자신도 본격적으로 기사가 되기 위한 수련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나 소드!
 이것은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비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기사가 발휘하는 오러의 힘은 그냥 생겨나는 게 아니었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나와 마찬가지로 기사들도 공간 속에 스며 있는 마나를 흡수해 몸에 쌓아야만 오러가 생겼는데 그 마나를 흡수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바로 마나 소드란 것이었다.
 특이한 검의 형식, 그리고 그에 맞는 특이한 호흡법.
 검의 춤이라고 할 수 있는 검무에 맞춰 호흡법을 행하면 주위의 마나는 시전자의 몸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몸속으로 들어온 마나는 기사의 원천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오러로 바뀌는 것이었다.
 “하하. 소영주님, 아주 기쁘신가 봅니다.”
 로가드 부단장의 말에 베스렐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기쁜 일이지. 정말 잘됐어. 무려 5개월 동안을 빨리 걷기나 오래달리기같이 재미없는 것만 해서 무척이나 지루했었는데. 헤헤, 정말, 정말 잘됐어.”
 베스렐은 자신도 이제는 마나 소드를 배울 수가 있다고 하니 문득 궁금증 하나가 치밀어 올랐다. 녀석은 곧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블레스 경! 근데 어떤 걸 가르쳐 줄 거지? 마나 소드도 몇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잖아.”
 블레스 단장은 소영주의 물음에 짧게 대답했다.
 “이안 마나 소드입니다.”
 “이안 마나 소드?”
 “예, 이안 마나 소드. 이것은 기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으로 기본 마나 소드라고도 합니다.”
 “으응, 그렇구나.”
 베스렐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자신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배운다고 하는데도 전혀 실망의 모습이나 기분 나쁘다는 표정은 짓지 않았다.
 베스렐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이다.
 마법을 가르쳐 주는 6써클의 메드레스 마도사는 베스렐에게 마법을 비롯한 모든 학문은 다 기본이 중요한 것이라고 수시로 가르침을 내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일부터 소영주님께서는 좀 더 강한 훈련에 들어가실 겁니다. 그건······.”
 블레스 기사단장은 소영주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제 좀 있으면 소영주는 마법을 배우기 위해 저택으로 돌아가 봐야 했기에 필요한 말만 빠르게 전했다.
 내일부터 시작될 좀 더 강도 높은 훈련에 대한 이야기.
 분명 오늘보다 힘들 터였다.
 살을 빼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기사수련이지만 어쨌든 본격적으로 하게 될 혹독한 기사수련이지 않은가.
 하지만 베스렐은 기사단장의 그 같은 말에도 별달리 어두운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지금 녀석의 머릿속에는 오직 마나 소드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지루한 달리기가 아닌 연무장의 다른 기사들처럼 검을 들고 하는 그런 수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지친 몸이지만 저도 모르게 힘이 나는 베스렐이었다.
 잠시 후.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소영주님.”
 “응, 잠깐만 기다려 봐.”
 베스렐은 어느새 자신을 데리러 온 저택의 하인에게 탁자 위에 놓인 자신의 소지품을 챙기게 했다.
 그리곤 기사단장과 로가드 부단장에게 간단한 인사의 말을 전했다.
 “그럼 나 이제 돌아갈게. 내일 봐.”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로가드 부단장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하하. 마법공부 열심히 하십시오, 소영주님.”
 “응, 열심히 할게.”
 베스렐은 곧 마법을 공부하기 위해 하인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이제 막사 안에는 블레스 기사단장과 로가드 부단장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후후, 마나 소드를 배울 수 있다고 하니 정말 기쁘긴 기쁜가 보군요. 내일부터는 좀 더 강한 훈련이 될 거라고 하는데도 저리 기쁜 얼굴로 저택으로 돌아가시다니 말이에요.”
 “으음, 맞아. 하지만 내일 와서 훈련을 받게 되면 얼굴빛이 금방 사색으로 바뀌겠지.”
 “하하, 그렇군요. 이거 웃으면 안 되는 일인데 웃음이 절로 나오는군요.”
 이제 시작이었다.
 기사가 하는 혹독한 훈련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지금까지 베스렐이 해 온 속보나 오래달리기는 필요한 체력을 얻기 위한 기본적인 훈련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요? 요즈음 보니 먹는 것도 상당히 부실한 것 같던데 말입니다. 정말 어떻게 그것만 먹고 하루를 버티시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갑자기 걱정이 드는 로가드 부단장이었다.
 “뭐, 그건 영주님이나 요리장이 알아서 잘하겠지. 내가 봐도 그건 아니다 싶지만 말일세.”
 “한데 정말 신기하긴 해요.”
 “뭐가 말인가?”
 “먹는 건 정말 쥐꼬리만 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매일같이 훈련을 받으시고. 그런데도 살이 빠지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찌고 계시니 정말 신기한 일이에요.”
 “그게 뭐가 신기한가? 그건 자네도 알고 있는 일이지 않은가. 갈루안스가 사람들은 저주로 인해 살이 찌는 체질로 바뀌었다는 걸 말일세.”
 “후후.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긴 하네요, 단장님.”
 두 사람은 계속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야기의 주제는 대체적으로 소영주의 훈련 방향을 어떠한 식으로 이끌어 가는 게 좋을지가 대부분이었다.
 혹독한 수련. 정말 지옥의 수련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
 
 
 
 Chapter2 계속되는 다이어트
 
 
 사람의 성격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인 어떤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성.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천성이라고 하는 것은 주변 환경에 의해서 얼마든지 바뀔 수가 있는 것이었다.
 정말 지독하다 싶은 수련에, 배불리 먹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가슴에 남겨진 어떤 응어리. 그런 것이 매일같이 반복되다 보면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조금씩은 성격이 바뀌게 될 것이다.
 약간은 모난 성격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그런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터였다.
 여기 마델즈 왕국의 서남쪽 변경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갈루안스 백작가의 영지도 마찬가지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성이 변화를 일으켜 약간은 신경질적이고 조금은 거친 성격을 지닌 사내아이 1명이 지금 거친 산을 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푹푹푹.
 어제 늦은 밤부터 내린 눈. 그것은 발목 아래를 덮을 만큼 쌓여 있었다. 당연히 지금 같은 때에 산을 오른다는 건 평소보다 더 힘들고 훨씬 더 많은 체력을 소진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의 끝자락이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동녘 하늘에서 햇살이 떠오를 것이다.
 “훅훅훅훅······.”
 발자국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묵직한 호흡 소리.
 베스렐 갈루안스는 호흡을 규칙적으로 내뱉으며 산을 올랐다. 작지 않은 체구다.
 키 179다르(cm)에 몸무게 141크롬(kg).
 이 정도면 주위의 누구나가 뚱뚱하다고 말할 수 있는 체격 조건이었다.
 이제 열네 살인, 이 겨울이 지나면 곧 열다섯이 되는 소년치고는 정말 커다란 체구를 지닌 베스렐이었다. 또한 녀석의 얼굴을 보면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양 미간 사이.
 그 부위는 어찌 된 일인지 불꽃 모양으로 네 가닥의 굵은 주름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녀석의 그동안의 삶이 상당히 힘들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시간은, 그리고 세월은 아이를 그렇게 소년으로 만든 것이다.
 그때 한참 산을 오르고 있던 베스렐의 귀로 두 가닥의 짧은 외침이 들려왔다.
 “소영주님! 같이 올라가요.”
 “좀 쉬었다 오르는 게 어떻습니까, 소영주님!”
 “에이······!”
 베스렐은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더니 곧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100미르(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힘들게 올라오고 있는 두 사람에게 한 소리를 했다.
 “그러게 나 혼자 산 탄다고 했잖아? 왜 따라와서 그렇게 지랄들이야, 지랄들은?”
 녀석은 백작가의 소영주치고는 상당히 거친 언행을 보였다. 그리고 녀석의 그 같은 언행을 밑에서 올라오고 있는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하고 있었다.
 베스렐은 다시 신형을 돌려세워 이번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뽀드득, 뽀드득.
 하얗게 눈 덮인 대지가 그의 걸음걸이마다 작은 소리를 내 주었다.
 “헉헉헉. 잠시만요, 잠시만요, 소영주님.”
 “우와, 죽겠네, 죽겠어.”
 잠시 후에 두 사람은 힘들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도 악착같이 산을 올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소영주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휴우, 휴우, 휴우우······.”
 “헉헉헉, 정말 너무하시네요, 소영주님.”
 갈색머리에 올해 열여덟 살인 그월더 저윈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베스렐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영지의 하나뿐인 기사단인 라이언 기사단 부단장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길게 호흡을 내쉬고 있는 사내는 올해 스무 살로 역시나 같은 기사단의 부단장인 에돈 페튜스의 아들로 이름은 베로 페튜스였다.
 그리고 녀석은 특이하게도 이곳 알트라스 동대륙 사람들에게서는 드물게 보이는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뭐가 너무해, 이 자식아? 처음부터 따라오지 않았으면 될 거 아냐?”
 “헉헉. 에이, 소영주님도. 휴우, 휴우. 그래도 명색이 우리가 나중에 소영주님의 친위대가 될 인재들인데, 너무 야박하게 대하시네요.”
 “후으읍, 휴우우. 그건 그월더의 말이 맞습니다, 소영주님. 그리고 친위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소영주님이 하시는 훈련에 동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스렐은 걸음을 다시 빠르게 옮기며 말했다.
 “훈련에 동참을 해? 머리가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지금 너희 둘이 하는 짓거리는 나의 새벽훈련을 방해하고 있는 거란 걸 모르는 거야?”
 푹푹푹.
 “어어, 소영주님, 같이 가요, 같이 가!”
 “이런 또 달리시는군.”
 눈앞에 고지가 있었다.
 백작이 머무는 성의 뒤편에 있는 오그란 산의 정상.
 베스렐은 산의 정상이 눈앞에 보이자 수련기사의 신분인 두 녀석을 따돌리고 성큼 그 산의 정상으로 올라섰다.
 “같이 가요, 소영주님!”
 밑의 두 녀석은 다시 한 번 소영주를 찾아야 했다.
 
 ***
 
 휘이이이잉.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두터운 옷깃을 뚫고 들어왔다.
 작은 바위의 위.
 베스렐은 그 바위 위에 올라서서는 산 아래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끝으로는 강이 하나 보였고 그 주위에는 눈 쌓인 숲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커다란 백작 성이 보였고 그 안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흐음······.”
 베스렐의 시선이 다시 옮겨져 이번엔 동녘 하늘로 향했다.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는 붉은 태양.
 태양을 보면 언제나 희망을 생각하게 된다.
 지난날의 힘들었던 고통을 몰아내고 다시 기운찬 하루의 시작을 알려 주는 태양.
 ‘매일같이 반복되는 힘든 수련, 그리고 마법공부. 그 모든 건 참을 수 있어. 그래, 그건 그리 어렵지 않아. 하지만······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참기 힘든 건 배고픔이야. 마음껏 먹을 수 없다는, 배불리 먹을 수 없다는······.’
 꼬르륵.
 그때 때마침 녀석의 배에서 나직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그건 배고픔에 지쳐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이제 그만 밥을 달라고 하는 소리였다.
 베스렐이 새벽훈련에 나서기 전에 입에 가져다 댄 건 물 세 잔과 땅콩 일곱 알이 전부였다. 당연히 배가 고파 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베스렐은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태양을 보자 자신의 가슴속에서 뭔가가 꿈틀댐을 느낄 수 있었다.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참고 싶지 않았다.
 녀석은 곧바로 가슴에서 차오르는 답답함을 밖으로 터트렸다.
 “으아아아악! 이 개자식 카스트리온! 언제고 네 녀석을 반드시 찢어 죽이리라! 그때를 기다려라. 으아아아악······!”
 바위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베로와 그월더.
 “흐엑, 깜짝이야!”
 “헉!”
 그 두 사람은 갑작스런 고함 소리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고함 소리가 마치 천둥이 터지는 소리와 같지 않은가.
 “으아아악! 개자식 카스트리온! 죽인다, 반드시 죽여―!”
 마치 미친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베스렐은 몇 번을 더 그렇게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고함으로 풀어냈고 베로와 그월더는 그런 소영주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만 보아야 했다.
 “어휴, 깜짝 놀랐네. 한데 카스트리온이 누구지? 누군데 소영주님께서 저렇게 원한에 찬 말씀을 하시는 걸까?”
 베로 페튜스는 팔짱을 낀 채 생각해 보았다.
 카스트리온이란 이름.
 하지만 생각해 본다고 처음 들어 보는 그 이름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은 아니고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는 한데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때 옆에서 같이 쉬고 있던 그월더가 말을 꺼냈다.
 “에에, 카스트리온이라면 혹시 그거 아니야?”
 “그거라니?”
 베로의 말에 그월더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말했다.
 “에이. 그거 몰라? 드래곤 있잖아. 드래곤! 나이가 오천 살 가까이 되는 그 에이션트 블랙 드래곤.”
 “아아, 맞아, 그랬지. 그 고룡의 이름이 카스트리온이었군. 그럼 지금 소영주님이 터트리는 고함은 녀석에게 향한 것이겠군.”
 베로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월드는 바위 위에 서 있는 소영주의 커다란 뒷모습을 바라보며 측은한 눈빛을 내보였다.
 “에휴, 소영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한다고 해서 어찌 인간인 우리가 이곳 중간계의 절대자에게 대적할 수 있겠어. 그냥 운명이려니 생각해야지.”
 “으음, 그건 그렇긴 하지. 하지만 너무 안타까워.”
 천재마법사 가문이라 불리는 갈루안스 백작가.
 이 마법사 가문은 130여 년 전에 고룡인 카스트리온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살이 계속적으로 찌게 되어 결국은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베로와 그월더는 자신들이 모시는 백작가의 그 저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혹자는 말한다. 살이 찌면 다이어트를 해서 빼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그것은 인력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갈루안스가 사람들은 남들보다 적게 먹는다.
 하루에 먹는 칼로리의 양이 초저열량이라고 할 수 있는 600칼로리 이하이니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는데, 문제는 그렇게 적게 먹고도 살이 찐다는 것이었다. 그건 운동을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빠지는 것 없이 계속적으로 찌는 것.
 그것이 바로 에이션트 드래곤이 내린 갈루안스가의 저주였다.
 그때였다.
 “응?”
 “저건?”
 무얼 보게 됐는지 베로와 그월더 두 사람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곳 오그란 산 정상에서 북으로 연결된 산길.
 지금 그곳에서 낯선 것들이 이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게 두 사람의 눈에 포착되었다.
 “으르르르릉.”
 “크르릉.”
 회색빛깔의 털을 지닌 7마리의 커다란 늑대.
 놈들은 두 눈은 붉은 기운을 흘리고 입가에는 하얀 거품을 물고 있었다.
 오랫동안 굶은 듯한 모습.
 녀석들은 바람에 섞여져 오는 사람 냄새를 맡았다. 당연히 근처 어딘가에 사람이 있음을 알고는 이렇게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한걸? 저것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갈루안스 성이 있는 이곳 근처로는 맹수들이 나타날 수가 없는데 말이야.”
 베로의 말에 그월더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한데 저 녀석들은 아무래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모양인데? 원래 회색 늑대들은 50여 마리 이상씩 함께 몰려다니잖아. 헤헤, 어쨌든 잘됐다. 저놈들을 잡아서 점심식사로 삼으면 되겠군.”
 스르릉.
 그월드는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숏 소드를 빼 들었다. 베로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의 검을 들어 천천히 자신들에게로 다가오는 회색 늑대를 향해 내밀었다.
 두 사람은 모두 수련기사다.
 그리고 수련기사는 소드 익스퍼트의 바로 밑자락에 있는 소드 스컬러의 최상급 경지에 이른 자를 말한다.
 비록 능력의 한계로 인해 소드 오러(검기)를 발할 수는 없다지만 검에 실리는 오러의 양은 충분하니, 그들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 회색빛 늑대 7마리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사실 저 정도의 녀석들은 그들 중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녀석들은 자신들의 검술 실력을 밖으로 내보일 수가 없었다.
 “그만! 저 녀석들은 내가 때려죽인다!”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
 휘이익.
 베스렐은 4미르(m) 높이의 바위 위에서 신형을 날려 바닥으로 내려섰다. 백사십이 넘는 몸무게가 그 어떠한 소음도 없이 안전히 착지한 걸로 봐서 그의 검술 실력은 아무래도 상당한 경지에 이른 모양이었다.
 “이거나 받아!”
 베스렐은 자신의 양털로 만들어진 두터운 외투를 벗어 곁에 있는 그월더에게 건네주었다.
 “에이, 소영주님도 참. 저 정도의 녀석들은 저희들만으로도 충분한데······.”
 “됐어. 나 기분이 좋지 않아. 좋지 않은 기분 너희 둘에게 풀기 싫으니까 잔소리 마.”
 베스렐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그월더였다.
 “으헥! 그 무슨 끔찍한 소리를? 저희 둘을 죽일 일 있으십니까?”
 “그러니까 닥치고 조용히 하라고.”
 한데 지금 보니 베스렐의 몸이 조금 이상했다.
 외투를 벗고 나니 그의 상반신에 이상한 것들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던 것이다. 튼튼한 가죽주머니 같은 게 가슴과 등에 매달려 있었고 그것은 허리와 양팔에도 마찬가지였다.
 무거워 보이는 가죽주머니들.
 베스렐은 그 가죽주머니들을 하나씩 풀어서 눈이 조금 쌓인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순간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쿠웅!
 이제 보니 그 가죽주머니 속에는 상당한 무게의 쇳덩이가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베스렐은 상반신에 채워져 있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는 이번엔 허리를 숙여 자신의 발목에 차여져 있는 가죽주머니도 모두 떼어 냈다.
 “휴우우, 정말 대단해. 저게 무게가 아마 180크롬(kg)정도 되겠지?”
 “으음, 그럴 거다. 열흘 전에 5크롬을 더 늘린다고 했으니 그사이에 더 늘리지 않았으면 네 말대로 180크롬 정도 되겠지.”
 “정말, 놀라운 일이야. 확실히 소영주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니까. 완전 괴물이야, 괴물······.”
 그월더는 마지막 말은 작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내 생각도 그래.”
 베로와 그월더 두 사람은 항상 보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놀랍다는 생각을 해야만 했다.
 사람이 자신의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것을 들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것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닌 뛰어다니면서 훈련을 쌓고 있지 않은가.
 베스렐은 신체에 매달려 있던 가죽주머니를 모두 내려놓고는 마음을 서서히 다잡았다.
 마음속에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죽인다, 죽여 버린다······!”
 답답한 마음속에 피어나는 한 줄기의 살기. 상대하는 적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여 버리겠다는 살기.
 녀석의 미간에 자리한 불꽃 모양의 주름이 점점 짙은 색깔로 바뀌어 갔다.
 “으르르릉.”
 “크르릉.”
 지척에까지 다다른 7마리의 회색 늑대들은 그런 베스렐의 살기에 낮게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녀석들은 왠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무리에서 쫓겨나면서 삼 일째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상황이라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아마 이대로 하루 이틀 정도 더 굶으면 어쩌면 녀석들은 서로에게 이빨을 들이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 이상의 사냥감이 나타나지 않으면 말이다.
 “좋다, 이 늑대 새끼들아! 덤벼라―!”
 “조심하십시오, 소영주님!”
 휘이익.
 베스렐은 자신의 둥그런 얼굴을 흉악하게 만들며 7마리의 회색 늑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필요 없었다.
 주먹 하나면 족했다.
 “크아아아앙!”
 “크어엉!”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녀석들은 자신들에게 덤비는 인간인지 멧돼지인지 알 수 없는 것을 향해 다같이 달려들었다.
 “죽어랏! 카스트리온―!”
 베스렐은 고룡의 이름을 외치며 먼저 자신의 정면으로 다가오는 늑대를 향해 오른 주먹을 날렸다.
 콰직!
 붉은 피가 분수를 이루며 사방으로 치솟았다.
 녀석은 비명 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머리가 뭉개져 날아가 버렸다.
 “크아아앙!”
 그때 또 1마리의 늑대가 곧바로 덤벼들었다.
 주먹을 거둬들여 다시 사용하기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왼 주먹을 사용해도 되겠지만 자세가 조금은 불안했다.
 베스렐은 어쩔 수 없는지 두 눈을 매섭게 빛내며 자신의 머리로 녀석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빠각!
 순간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두개골이 깨진 상대는 당연히 제대로 된 방비를 하지 못한 늑대였다.
 털썩.
 녀석은 몸을 부르르 떨며 눈밭에 쓰러졌다.
 피범벅이 된 늑대의 머리. 하지만 죽은 건 아니었다. 다만 머리가 깨진 충격으로 어지러워 중심을 잡지 못해 쓰러져 있는 것뿐이었다.
 “흐흐흐······.”
 베스렐은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그런 녀석의 머리를 자신의 발로 있는 힘껏 차 주었다.
 “죽어랏! 카스트리온!”
 콰직!
 붉은 피는 또 한 번 허공을 수놓았다.
 
 베로와 그월더.
 그 두 수련기사는 소영주가 늑대들을 다루는 모습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건 늑대들이 불쌍하다는 그런 눈빛일지도 몰랐다.
 “살을 뺀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중압감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시군.”
 베로의 말에 그월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우······. 그래, 맞아. 가문의 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고룡의 이름을 외치며 저렇게 늑대들을 묵사발로 만들고 있으니.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도를 빨리 찾았으면 좋겠어.”
 “그렇지. 먹을 걸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같이 힘든 검술수련에 그 어렵다는 마법을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하시니, 어찌 보면 너무 안됐어. 사는 낙이란 게 없으니 말이야.”
 두 사람은 소영주가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휴우우······.”
 그들은 그렇게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면서 계속해서 소영주의 신형을 쫓았다.
 “크아아앙!”
 “죽어랏, 카스트리온―!”
 퍼억!
 “깨갱, 깨갱······!”
 오그란 산의 정상.
 이곳에선 잠시 동안 광기에 찬 인간 하나가 굶주림에 허덕이는 늑대들을 때려잡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슬픈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 그것을 베스렐은 몸소 보여 주고 있었다.
 “죽어 버렷―!”
 “깨갱!”
 잠시 후, 7마리의 늑대는 잘 다져진 고기가 되어 있었다.
 
 ***
 
 성내에 자리한 영주관저.
 아웬 백작은 자신의 집무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들러 오래간만에 일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드래곤 산맥 근처의 코펜 마을. 그곳에 있는 마탑에서 마법연구를 하다가 1시간 전에 워프 마법진을 이용 단번에 이곳 집무실에 도착한 그였다.
 한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이제 보니 그는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이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결코 좋은 쪽이 아니었다.
 삼중 턱은 기본이요, 팔다리를 비롯한 온몸이 기괴하게 변해 있었다.
 560크롬(kg).
 현재 그의 몸무게는 이렇듯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쪄 있는 상태였다.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른다면 그는 전대의 영주들처럼 몸무게가 육백을 넘어설 것이고 그러면 그도 어쩔 수 없이 죽음이란 생소한 경험을 가지게 될 터였다.
 고룡이 내린 무한비만증이란 저주.
 그것은 인간의 몸을 끝없이 살이 찌게 하는 것이었다.
 비만은 온갖 만성적인 질병의 원인이라고 하지 않던가.
 인간의 몸무게가 600크롬을 넘기는 그 순간, 죽음의 사신이 인세에 강림하여 그 초비만인을 세상과 결별시키는 것이었다.
 “자아, 다 됐네.”
 아웬 백작은 사무책상에 놓인 몇 가지의 중요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하고는 앞에 있는 남색머리의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얼굴형이 기다란 말상을 하고 그자는 올해 마흔일곱으로 아길러 체이시란 자였다.
 아길러는 10여 년 전에 아웬 백작을 대신해 이곳에 영지 대리로 온 남작 신분의 사내였다.
 “더는 없는 거지?”
 “헤헤. 예에, 다 됐습니다, 영주님.”
 아길러는 자신의 세 가닥 난 기다란 수염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한데 웃는 모습이나 행동이 왠지 조금은 얍삽한 느낌이 들게 하는 영주 대리였다. 영주 대리라면 그래도 진중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조금은 뜻밖이었다.
 “그럼 자네는 이만 나가 보고 밖에 있는 메드레스 마도사하고 블레스 기사단장을 들여보내게.”
 “헤헤. 예에, 알겠습니다, 영주님.”
 아길러는 아웬 백작에게서 받은 결재 서류를 들고는 곧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탁.
 아웬 백작. 그는 밖으로 나간 아길러를 조금은 못마땅한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흐음, 사람이 하는 짓이 조금 경망스러운 데가 있단 말이야. 그래도 일 처리는 잘한다고 하니 뭐, 계속 일을 보게 하는 수밖에.’
 사실 아웬 백작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영지의 일을 모두 다 맡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몸이 2개라면 모를까.
 갈루안스가는 특이하게도 기사 가문이 아닌 마법사의 가문이다. 그리고 마법사란 사람은 일반인들에 비해 무척이나 바쁜 사람들이다. 공부해야 할 것과 연구해야 할 것이 쌓여 있으니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이렇듯 워낙에 바쁘다 보니 갈루안스가는 100여 년 전부터 할 수 없이 능력 있는 하위 귀족을 영주 대리로 삼아 자신들은 편안히 마법의 연구에 매진해 왔던 것이다.
 끼이익.
 그때 또다시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이곳 영지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메드레스 마도사와 블레스 기사단장이었다.
 아웬 백작은 자신의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마치 1마리의 작은 하마가 물에서 솟구쳐 오르는 느낌이 그에게서 풍겨 나왔다.
 “자아, 둘 다 거기에 앉게.”
 “예, 영주님.”
 “알겠습니다, 영주님.”
 아웬 백작은 갈루안스가의 양대 가신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을 커다란 테이블이 있는 곳에 가 앉게 하고는 자신도 특별히 제작된 의자에 몸을 뉘었다.
 덩치가 하도 크다 보니 그가 사용하는 의자는 크면서도 매우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진짜 하마가 앉는다고 해도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나무로 말이다.
 “그럼 간만에 자네들 두 사람을 보는 것이니 뭔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사람씩 말들 해 보게나.”
 아웬 백작은 한 달에 한 번씩 갈루안스 마탑에서 나와 영지의 일을 보고 있었다.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 그래 왔다.
 자신이 하고 있는, 가문에 전해져 오고 있는 몇 가지의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그리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사람을 만나 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메드레스 마도사의 경우도 마탑에서 같이 마법연구를 하고 수련을 쌓고 있기는 하지만 서로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특별히 없습니다. 다만 영주님의 건강이 걱정될 뿐이지요. 부디 영지민을 생각해서라도 건강에 좀 더 신경 써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주님.”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영주의 체격.
 블레스 기사단장은 자신의 주군이 소영주처럼 기사수련과 같은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 왔다면 지금의 이런 모습으로까지는 오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흐음, 건강이라······. 이미 나는 건강에 대해서는 포기했네. 다만 다음을 위해, 나의 후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
 “영주님, 그 무슨 좋지 않으신 말씀을······.”
 아웬 백작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만 됐네. 처음부터라면 모를까, 지금은 너무 늦었어. 그래도 다행인 게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연구가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지.”
 메드레스 마도사의 두 눈이 놀란 듯 커졌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탑주님?”
 “그렇네.”
 “그럼 이제 가문에 내려오고 있는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얻게 되신 거로군요?”
 아웬 백작은 메드레스 마도사의 말에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후후후,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이라······. 그냥 제일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라 생각해 주게. 고룡이 내린 저주를 인간의 힘으로 푼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니, 다만 해 보는 것이지.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메드레스 마도사와 블레스 기사단장.
 그들은 주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룡이 내린 저주다.
 당연히 인간의 힘으로 그 저주를 푼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일 터였다. 하지만 그게 인간들 중에서도 갈루안스가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있는 방법이라면 가능성이 수천 배로 뛸 것이다.
 그들 갈루안스가 사람들은 마법에 있어서만큼은 천재 가문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으니.
 “어째든 그건 됐고. 그럼 이제부터는 다른 이야기들을 해 보세. 우선 영지의 일을······.”
 아웬 백작과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영지의 일에서부터 개인적인 소소한 이야기까지. 그러다 어느 순간 이야기는 아웬 백작의 하나뿐인 아들인 베스렐 갈루안스에게까지 진행되었다.
 아웬 백작은 갑자기 아들 녀석이 어떠한 수련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졌다.
 ‘으음, 그러고 보니 아들 녀석을 보지 못한 지도 벌써 석 달이 넘어가는구나. 휴우우······ 하나뿐인 자식이니 자주 보고 그래야 하는데. 그동안 저주를 깰 방도를 연구하느라 녀석에게 너무 무심했어.’
 문득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아웬 백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블레스 기사단장에게 물었다.
 “지금 시간엔 녀석이 기사들의 연무장에 있을 거라고?”
 “예, 영주님. 점심시간이 이제 1시간여 정도 남았으니 지금쯤은 아마 단원들과 대련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으음, 좋아.”
 아웬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여기 있지 말고 다들 녀석이 있는 연무장으로 가 보세. 잠시만 녀석이 하는 수련을 지켜보고 우리 오래간만에 점심식사를 같이 하도록 하세. 그때쯤이면 얼추 시간이 그리 될 터이니 말이야.”
 “예, 좋습니다, 영주님.”
 “그러는 게 좋겠군요, 탑주님.”
 그들 세 사람은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 세 사람의 신형은 환한 마법의 빛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갈루안스 백작가에는 기사단이 하나 있었다.
 바로 라이언 기사단.
 블레스 라신이 단장으로 있는 이 기사단은 나름대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 오고 있었다. 당연히 그 오랜 역사에 걸맞게 몇 가지의 뛰어난 마나 소드와 검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완 발전되어져 왔다.
 오러를 쌓게 해 주는 마나 소드를 예로 들자면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이안 마나 소드’에서부터 상당한 수준의 ‘라이언 마나 소드’에 이르기까지 서너 가지 정도의 뛰어난 마나 소드가 존재하고 있었다.
 거기다 기사단장의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파우러 마나 소드’ 같은 경우는 극의에 이르도록 수련하면 오러 블레이드를 발하는 소드 마스터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지금 연무장에서 대련을 펼치려 하고 있는 베스렐.
 녀석의 경우는 2년 전부터 이미 마나 소드 중 최고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그 파우러 마나 소드를 익히고 있었다.
 “으음······.”
 베스렐은 눈앞의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기사단의 부단장인 두 사람.
 베스렐과 같은 갈색머리의 로가드 저윈과 검은 머리의 에돈 페튜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지.”
 “예, 좋습니다, 소영주님. 그럼 아머스를 장착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두 사람은 소영주에게 허리를 숙이고는 곧 등 뒤에 매어져 있는 아머스에 오러를 주입했다.
 지이이잉.
 그러자 배갑의 형태로 있던 하얀 그것이 순간 환한 빛 속에서 빠르게 변화를 일으키며 전신갑주의 형태로 변하는 게 아닌가?
 아머스!
 이것은 마법 무구였다. 그것도 보통의 마법 무구가 아닌 기사들을 한층 강하게 만들어 주는 최고의 방어 마법 무구.
 아머스는 보통 아래의 B급에서부터 위의 A급, 그리고 최고의 S급으로 나눌 수가 있었는데 당연히 이것들은 6써클의 마도사 이상이 되어야지만 만들 수가 있는 것이었다.
 “좋았어.”
 베스렐은 두 사람이 아머스를 장착하자 자신도 오러를 주입해 아머스를 전신에 둘렀다.
 지이이잉.
 그러자 순간 하얀빛이 아머스에서 일어났다.
 녀석의 아머스 또한 두 부단장처럼 하얀 빛깔을 띠우는 것이었는데 원래부터 크기를 크게 맞추어 제작된 건지 그것은 베스렐의 큰 체격을 무리 없이 감싸 안았다. 얼굴 부위 중 눈의 아래 부분만 살을 내보인 그것이 완전무결한 형태로 전신을 감싸 안은 것이다.
 스르릉. 스르릉.
 기사단의 부단장 두 사람이 자신들의 검을 빼 들었다.
 커다란 크기를 지닌 바스타드 소드. 그것은 중단세의 자세를 취하며 베스렐을 향해 겨누어졌다.
 베스렐 또한 자신의 등 뒤에 매어져 있는 검을 뽑아 들었는데 그것은 바스타드 소드보다도 훨씬 큰 투헨드 소드 또는 그레이트 소드라고도 하는 괴물 검이었다.
 사실 이런 검은 보통 사람이 사용하기는 상당한 무리가 있었지만 베스렐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180크롬이 넘는 무게를 매일같이 짊어지고 생활을 하는 그로서는 그레이트 소드가 무겁다거나 혹은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볍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럼 내가 먼저 들어가지. 다들 조심해!”
 “걱정 마시지요, 소영주님.”
 “좋아. 그렇다면······.”
 베스렐은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두 부단장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리곤 그 묵직한 검을 휘둘렀다.
 후아아아악!
 거대 그레이트 소드가 무서운 기세와 함께 좌에서 우로 나아갔다. 진정 살벌해 보이는 광경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상대를 다져 버릴 것만 같은 무지막지한 기세.
 “이런······!”
 두 부단장은 재빨리 세 걸음 정도씩을 뒤로 물리며 피해 냈다. 그리곤 검이 지나간 그 순간에 맞추어 다시 신형을 앞으로 돌진하며 자신들의 바스타드 소드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쇄에에엑.
 쉬이익.
 깔끔하게 떨어져 내리는 2개의 칼날.
 베스렐은 처음부터 위기감을 느껴야만 했다.
 “제길······!”
 재빨리 검을 끌어당기며 위에서 다가오는 2개의 날카로운 칼날을 막아섰다. 그러자 커다란 굉음 소리가 들려왔다.
 쾅! 콰앙!
 귀청을 때리는 듯한 굉음.
 오러가 주입된 검들이다. 비록 소드 오러(검기)를 내보이고 있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수준의 검사들끼리 대련을 펼치는 것이니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현재 라이언 기사단의 부단장으로 있는 에돈 페튜스와 로가드 저윈은 둘 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이른 대단한 검사들이었다.
 그리고 베스렐의 경우는 믿을 수 없겠지만 열네 살의 나이로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이른 실력자였다.
 피나는 수련이, 지옥 같은 수련이 그를 그처럼 빠른 상승의 경지로 이끌어 준 것이었다.
 콰앙! 콰콰쾅!
 2개의 바스타드 소드와 하나의 그레이트 소드는 계속해서 커다란 굉음 소리를 내며 부딪쳐 갔다.
 사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이른 두 사람과 그 아래 단계인 중급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대련을 펼치고 있으니 결과는 금방 나와야 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검술이나 마법이나 단지 한 단계뿐인 실력 차이라 해도 그건 어마어마한 간격이 있었다. 특히나 전장에서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싸움에서는 한 단계의 실력 차이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 차가운 고혼이 되기 일쑤인 것이었다.
 콰앙! 콰쾅!
 하지만 지금 연무장에서 대련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상위의 두 사람이 하위의 사람을 상대로 유리하게 대련을 이끌어 가고 있는 듯했지만 확실한 승기를 잡지는 못하고 있었다.
 ‘제기랄, 지지 않는다. 나는 절대로 지지 않아!’
 베스렐은 자신이 조금씩 뒤로 밀리자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여기서 자신이 질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가 떼를 써서 하자고 한 대결이다.
 다른 단원들과의 대련은 아무 소용이 없다 생각한 베스렐은 자신이 보다 높은 경지로 나아가려면 당연히 그 위의 단계에 있는 사람과 대련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 상대로는 자신보다 윗줄인 두 부단장이 적격이었다.
 “하아앗!”
 베스렐은 기합 소리와 함께 자신이 익힌 최고의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기사단장이 자랑하는 파우러 검법이었다.
 후아아아악.
 쾅! 콰앙! 콰앙!
 폭음 소리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런, 너무 격해지는데······.”
 “맞아, 에돈. 휴우우, 정말 엄청나군. 단장님의 검법인 파우러 검법은 원래 속도를 중요시하는 쾌검인데 어찌 된 게 소영주님은 그보다는 무거운 중검으로 사용하시니 이거 상대하기가 너무나 까다롭군.”
 그랬다. 블레스 기사단장의 최강검법인 파우러 검법은 쾌검이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쾌검이라고 해서 파괴력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쾌의 비결이 파우러 검법의 중요 요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데 지금 베스렐은 그러한 파우러 검법을 자신의 힘과 그레이트 소드가 가진 무기의 성격답게 쾌검을 무거운 중검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콰앙! 콰앙!
 귀청을 때리는 폭음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하아앗―!”
 두 부단장은 소영주가 살기를 크게 일으키며 공격을 가해 오자 조금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전장의 상황이라면 그들 두 사람이 당연히 이길 터이지만 상대는 소영주였다. 그들 두 사람의 현 실력으로는 상대를 다치지 않게 이길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지금의 상황을 보자면 잘못하면 그들 두 사람의 목숨도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그들은 할 수 없는지 자신들의 바스타드 소드를 연신 휘두르며 조금씩 소영주의 양옆으로 물러섰다.
 휘이익. 콰앙! 콰앙!
 “제기랄······.”
 베스렐은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래서는 그 무엇도 안 되었다.
 새벽에 홀로 수련하며 녀석은 묘한 기분을 느꼈었다.
 전신이 간질거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뭔가 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회였다. 지금 같은 때에 상승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집중을 해야 해, 집중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신체에 잠재되어 있는 역량을 한순간에 끌어올려야 해. 그리하다 보면 지금보다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거야. 그래, 우선 마나 명상법을 하듯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서서히······.’
 생각과 동시에 들끊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 시작하는 베스렐.
 대단한 녀석이었다. 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다니. 녀석은 차분해진 그 마음을 서서히 하나로 모아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마법수련 할 때의 그것처럼, 아니면 마나 소드를 행할 때의 그것처럼.
 시간은 흘러갔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베스렐은 변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녀석은 자신의 몸이 다시 근질근질거리며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넓은 연무장.
 그것이 서서히 검게 변하며 오직 2개의 점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그 점은 두 사람의 부단장임을 알 수 있었다.
 고오오오오.
 이상한 세계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느낌.
 이것은······ 이것은 한 점의 사념도 없는 순수한 집중의 힘인 것일까? 아니면 지금의 때에 맞춰 잠재되어 있던 역량이 뿜어져 나오려 하는 것일까?
 베스렐은 자신의 안에 있는 오러가 점점 그 크기를 키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같은 느낌은 전에도 몇 번 가진 적이 있음을 녀석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바로 상승의 경지로 나아가려 하고 있는 것임을······. 검술이 소드 익스퍼트의 중급 경지에서 상급의 경지로 나아가려 하고 있는 것임을······.
 “이야핫!”
 녀석은 몸 안에 충만해지고 있는 오러를 자신의 그레이트 소드에 담아 거칠게 휘둘러 가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콰콰콰쾅!
 
 연무장의 한쪽 구석에 있는 넓은 막사.
 그 안에는 지금 세 사람이 모여 앉아 연무장의 한가운데에서 펼쳐지고 있는 대련을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블레스 기사단장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놀랍다는 듯이 베스렐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어, 저거, 저거! 저럴 수가······.”
 아웬 백작은 아들이 하는 대련을 조마조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가 기사단장이 놀랍다는 눈빛으로 말을 더듬거리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인가, 블레스 단장?”
 “예에. 그게 지금 소영주님이 특이한, 아니 아주 대단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서 말입니다.”
 “뭐가 대단한 건데 그런가? 혹시 저렇게 두 사람과 대련하고 있는 게 대단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블레스 기사단장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당연히 아니지요, 영주님. 지금 제가 놀라고 있는 이유는 소영주님이 순식간에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로 올라섰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예, 정말입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대련을 하는 도중에 순식간에 올라섰군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지?”
 아웬 백작을 비롯한 세 사람의 시선이 다시 연무장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콰앙! 콰앙! 콰콰쾅!
 전보다 격렬해지고 있는 대련 상황.
 베스렐의 역량이 상급의 경지로 급상승하다 보니 대련의 양상이 이제는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으로 갔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아직까지 당연히 두 부단장이 우위에 있었지만 그들은 소영주를 상대하는 것이라 자신들의 역량을 모두 발휘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메드레스 마도사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어, 이거 참. 저래서는 안 되는 일인데. 차대의 탑주가 되실 분이 검술 실력이 저리도 뛰어나시다니. 혹시 소영주의 재능이 마법보다 검술에 더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군.”
 “그게 무슨 말인가? 검술에 더 재능이 있는 것 같다니? 현재 저 녀석의 마법 경지가 4써클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는가.”
 아웬 백작은 메드레스 마도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열네 살에 마법이 4써클에 이르렀다는 것은 정말 엄청나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웬 백작 그 자신도 역대 갈루안스가의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마법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받았지만 열여섯에야 4써클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던가.
 “예에, 영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긴 합니다. 마법의 재능도 정말 무섭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시니 까요. 하지만 그래도 검술이 느는 속도가 결코 마법에 못지않으니 혹여나 나중에 마법에 소홀해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 말입니다.”
 “허허, 자네도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다하는군. 마법사의 피가 어디 가겠는가? 더구나 마법이란 학문은 한 번 빠져 들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걸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아웬 백작은 메드레스 마도사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흐음······.”
 옆에 있던 블레스 기사단장. 그는 방금 메드레스 마도사가 한 말에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정말 메드레스 마도사님의 말씀대로 그럴지도 모르겠군. 나는 지금껏 소영주님은 당연히 마법사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어. 이제 며칠 지나면 열다섯의 나이가 되시는 소영주의 검술 실력이 벌써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라니? 그것도 마나 소드를 수련하는 중에 경지에 이른 게 아니라 대련하는 중에 역량이 급상승을 해 버린 거잖아.’
 그는 어쩌면 소영주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오래지 않아 이르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무엇이든 베어 버릴 수 있다는 오러 블레이드.
 소영주가 바로 그 오러 블레이드를 발할 수 있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블레스 기사단장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그리 되면 어쩌면 우리 영지도 마법사의 힘보다는 기사의 힘이 더 강해질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
 갈루안스가는 7써클이라는 대마도사를 한 세대마다 배출해 온 가문이다.
 당연히 마법사의 힘이 기사의 힘보다 강할 수밖에 없었다. 영지에서 쓰여지는 금전도 대체적으로 기사보다는 마법사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다.
 블레스 기사단장은 그 같은 일이 내심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소영주의 검술 실력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머지않아 자신들 기사가 마법사보다도 더 대우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주의 검술 실력이 저리도 높으니 어쨌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마검사의 재능이지 않습니까? 알트라스 대륙 역사상 지금껏 마검사의 재능을 타고난 자는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극히 희귀했는데 말이죠.”
 메드레스 마도사의 말에 블레스 기사단장이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군요, 메드레스 마도사님. 소드 오러를 발할 수 있는 기사의 재능을 타고난다는 것도 어려운데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마법사의 재능을 동시에 타고나셨으니 이건 진정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소영주가 가진 마검사의 재능을 칭찬하는 두 사람.
 하지만 아웬 백작은 그 두 사람이 하는 대화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 사람들, 그게 무슨 대단한 재능이라고. 검술이든 마법이든 하나만을 파야 해. 하나를 이루기도 힘든 일인데 두 가지를 동시에 행한다면 어느 세월에 궁극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겠나. 지금은 단지 다이어트 때문에······.”
 쾅! 콰앙! 콰앙!
 그때 연무장의 한가운데에서 펼쳐지고 있던 대련이 서서히 마무리 상황으로 가는 게 보였다.
 “카스트리온, 죽어랏!”
 베스렐은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고룡의 이름을 외쳤다. 녀석은 가끔씩 저도 모르게 그렇게 고룡의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곤 하였다. 거기다 그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악에 받쳐 올랐다.
 “죽어, 이 새끼야―!”
 베스렐은 자신을 상대하는 두 부단장을 고룡인 카스트리온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음 소리.
 그것은 잠시 후, 한순간에 사라져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침묵과도 같은 세계가 연무장 내에 연이어 펼쳐졌다.
 “······.”
 “······.”
 연무장의 주변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40여 명의 기사단원들. 그들은 모두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 말 없이 방금 전의 살벌했던 대련 상황을 떠올리고 있었다.
 단순한 대련이 지금처럼 살벌하게 펼쳐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들이었다.
 “헉헉헉헉······. 아이구, 죽겠네. 소영주님, 진정 괴물이십니다. 헉헉.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역량이 급상승하실 수 있으십니까.”
 로가드 저윈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소영주를 괴물 보듯이 쳐다보았다. 그것은 에돈 페튜스도 마찬가지였다.
 “헉헉헉, 휴우, 휴우······.”
 자신들은 숨을 ‘헉헉’대며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인데 소영주는 대련하는 와중에 믿을 수 없게도 검술이 상급의 경지로 올라서 버렸다. 거기다 지금 소영주의 모습은 자신들 두 사람과 대련을 끝낸 상황인데도 그다지 지쳐 보이지 않았으니 진정 괴물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휴우우우······.”
 베스렐은 대련을 끝내자마자 고개를 들어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간에 자리한 불꽃 모양의 주름.
 그것이 짙은 음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카스트리온! 언젠가는 네놈을 반드시······.’
 녀석은 속으로 나직한 다짐의 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그런. 절대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그런.
 그리고 녀석의 그 같은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내가 1명 있었다.
 메드레스 마도사와 블레스 기사단장 그 두 사람과 함께하고 있는 아웬 백작.
 “흐음, 카스트리온······. 녀석이 그 블랙 드래곤의 이름을 내뱉다니. 가슴속 원한이 극에 이르도록 쌓인 모양이군. 휴우우. 하긴 매일같이 힘든 다이어트를 해야 하니······.”
 그의 아들인 베스렐이 하는 다이어트는 진정 눈물겨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하루 600칼로리 이하의 초저열량의 식이요법에 매일 사투와도 같은 기사수련. 거기다 늦은 밤까지 계속되는 마법공부.
 힘들 것이다. 산다는 것이 그다지 재미있지가 않을 것이다.
 ‘가문에 이어져 오던 연구가 이제 거의 다 끝나 가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려무나. 오래지 않아 더 이상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
 아웬 백작은 아들 녀석의 왠지 모를 고독한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를 좀 더 빠르게 진행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은 늦었지만 아들만큼은 사람답게 살게 하고 싶은 그였다.
 그것이 아버지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지 않겠는가. 자식만큼은 잘됐으면 하는 마음 말이다.
 
 
 
 Chapter3 희망, 그리고 죽음
 
 
 4층으로 이루어진 대저택이 있다.
 이곳은 갈루안스가의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날은 저녁시간을 지나 서서히 한밤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의 시기는 3월 중순경.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는 시기이다. 계절이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백작가의 뒤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숲은 아직까지 푸릇한 잎사귀들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이곳은 짙은 녹색 빛의 세계로 가득 찰 것이다.
 그때였다.
 무슨 소리인 걸까? 갑자기 백작가의 2층에 있는 한 거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마법등으로 인해 환한 빛이 창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는 그곳.
 곰같이 커다란 체구를 지닌 사내였다.
 베스렐은 지금 운동 중이었다. 아니, 운동을 한다기보다는 마법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 해야 더 옳았다.
 지이이잉.
 이상한 모양의 물품이었다.
 쇠기둥 4개가 책상다리처럼 세워져 있는 그것의 바닥은 검은 고무가죽 같은 게 길이 2미르(m)에 폭이 1.5미르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것은 지금 스스로 돌고 있었다.
 이것은 마법 물품이었다. 걷기나 뛰기와 같은 운동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마법 물품.
 저벅저벅.
 베스렐은 지금 그 고무가죽에 몸을 실은 채 걷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의 앞에는 기다란 탁자 같은 게 있었고 그 위에는 두꺼운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사락사락.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스렐은 걷기 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마법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운동을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것도 보통의 공부가 아닌 마법공부이지 않은가. 하지만 베스렐은 이같이 걷기 운동을 하면서 마법을 공부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지 조금의 흐트러짐도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몸 따로 마음 따로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는 하체의 움직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그 두꺼운 마법서적에만 온 정신을 쏟아 붓고 있었다.
 꼬르륵.
 그때 녀석의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배고픔을 알리는 신체의 알람 소리였다.
 이제는 그만 식사를 하자는 신호.
 하지만 베스렐은 배 속의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마법공부에 열중했다. 배는 고프지만 이 정도는 오랜 시간 동안의 숱한 경험으로 충분히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흐음, 6써클에 있는 활성화 마법. 이 ‘액터배이션’이란 마법이 생각보다는 조금 복잡하구나. 이걸 완전히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나중에 마법 물품을 만들 수 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내일은 메드레스 마도사에게 가서 이것에 대해 물어봐야겠어.”
 베스렐은 현재 4써클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심장에 자리하고 있는 마법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마력.
 그것이 4개의 써클을 완벽히 이루며 심장의 주위를 돌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이제는 보다 높은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 보다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마력을 모을 수 있게 해 주는 마나 명상법을 꾸준히 하고 또한 그 위의 단계에 있는 마법서적들을 탐독해 연구하면 되는 일이었다. 5써클에 있는 마법수식들을 외우고 이해하며 또한 복잡한 마법의 이론들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스렐의 경우는 지금 6써클의 마법서적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녀석은 지금 5써클의 마법사란 말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녀석은 지금 심장에 자리한 써클대로 아직 4써클의 마법사였다. 다만 얼마 전에 5써클에 관한 마법서적들을 모두 읽은 뒤라 지금은 6써클의 마법서적들을 뒤적이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스윽, 척.
 베스렐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리곤 계속해서 걷기 운동을 하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라······.’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마법에 대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자기 자신의 문제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살을 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그 해답은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다만 기사들이 하는 오러 수련이 살이 많이 찌는 걸 억제해 주고는 있어.’
 그의 삶의 가장 큰 부분인 살과의 전쟁.
 살을 뺀다는 것은 정말 지독한 고통의 연속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라면 정신적인 피곤함은 더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베스렐은 매일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하면 드래곤이 가문에 내린 저주를 풀 수 있는지, 또한 어찌하면 보다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지를 말이다.
 “으드득!”
 녀석의 입에서 갑자기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도마뱀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그렇게 이를 갈게 되는 것이었다.
 “휴우우우······.”
 녀석은 다시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육체수련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오천 살 가까이 처먹은 그 드래곤 새끼의 저주를 풀려면 다른 것이 필요해. 마법이 인간으로서는 오르기 불가능하다는 8써클의 경지에 들어선다든가, 아니면······ 아니면 정신적인 어떤 높은 깨달음을 얻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야 해.’
 저벅저벅.
 베스렐은 걷기 운동을 계속하며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았다.
 ‘음차원의 힘인 저주를 푼다라, 그것도 보통의 녀석들의 저주가 아닌 고룡이 내린 저주를 깨부순다라······. 역시나 그걸 깨부수려면 저주를 내린 당사자를 죽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인 거야.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인간이 지닌 한계를 초월하는 수밖에 없는 거지.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정신수련을 아주 깊이 있게 해야만 해. 마나 명상법이나 마나 소드와 같은 정신과 연관되는 걸로 길을 찾아야 해.’
 “응?”
 그때였다. 무슨 일인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베스렐의 시선이 실내의 입구로 향했다.
 똑똑똑.
 곧 거실의 입구 문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저 리렌시아예요.”
 베스렐의 고개가 끄덕였다.
 “들어와!”
 끼이익.
 곧 금빛 머리의 한 소녀가 거실 문을 열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략 열다섯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그녀.
 리렌시아란 이름을 지닌 소녀는 척 보기에도 무척이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었다.
 청순한 미모라고나 할까?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백색의 피부에 붉은 입술. 거기다 소녀의 두 눈은 깊은 혜지가 담겨 있는 것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냥 단순히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
 사실 그녀는 순수한 인간이 아니었다.
 유사 인류의 하나인 수인족.
 리렌시아는 그 수인족 중에서도 폭스족이었고 또한 그 폭스족 중에서도 극히 희귀하다는 골드 폭스족이었다. 마법에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그 골드 폭스족 말이다.
 “무슨 일이야?”
 리렌시아는 곧 부드러운 음성으로 소영주를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예, 다른 게 아니라 지금 영주님께서 주인님을 찾고 계셔서요. 그리고 영주님께서는 저도 같이 주인님을 따라 처소로 들라 하시네요.”
 나긋나긋한 목소리.
 진정 그 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래? 무슨 일이시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베스렐의 부친인 아웬 백작은 며칠 전부터 코펜 마을의 마탑에서 이곳 그의 저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 세 번의 식사를 아들과 같이 들며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늦은 시간에 베스렐을 찾는 것은 처음이었다.
 ‘으음. 설마 벌써······?’
 베스렐은 급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곤 ‘런닝 매직머신’이란 이름의 운동기계에서 내려와 리렌시아에게 고갯짓을 하며 앞서 가라고 말했다.
 ‘별다른 일은 아닐 거야······.’
 녀석은 거실 밖을 나서며 처음 가진 자신의 생각이 기우이기를 바랐다.
 하나뿐인 가족이다.
 그분이 사라지면 이제는 혼자가 된다.
 역대 갈루안스가 사람들은 모두 일찍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남자들은 몸무게가 600크롬을 넘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초비만으로 모두들 죽음을 맞이했고, 여인들은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력 소실로 짧은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으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베스렐이었다.
 
 ***
 
 전대의 영주들을 보는 듯했다.
 아웬 백작.
 그는 현재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살이 찐 상태로 바뀌어 있었다.
 작은 하마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커다란 오인용 침상에 앉아 있는 그는 전의 영주가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보다 단 10크롬(kg)이 적은 602크롬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 올해 서른아홉.
 이미 9년 전에 7써클의 대마도사가 되었고 4년 전에는 7써클의 마법을 완전히 마스터한 천재마법사가 그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제는 마나의 품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만 했다.
 역대 갈루안스가의 대마도사들은 체중이 600크롬이 넘어서면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모두 마나의 품으로 돌아갔으니 그도 별다른 수가 없을 듯했다. 그저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윽.
 아웬 백작은 들고 있던 물건을 베스렐과 녀석의 노예인 리렌시아에게 하나씩 건네주며 말했다.
 “둘 다 그걸 받아서 왼쪽 손목 위에 올려놓거라.”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리렌시아는 순순히 그 물건을 받아서 자신의 왼쪽 손목 위에 올려놓았고, 베스렐은 아버지가 건네주는 검은 물체를 받아서는 잠시 살펴보았다.
 호두 알 크기의 둥글고 납작한 흑석.
 ‘이건 뭐지? 쓸데없는 보석 같은 건 아닐 테고. 그냥 보기엔 마나석처럼 보이는데······.’
 베스렐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아버지가 말한 대로 그것을 왼쪽 손목 위에 올려놓았다. 7써클의 대마도사인 아버지가 시키는 일이니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웬 백작은 베스렐과 리렌시아가 자신이 건네준 물건을 모두 왼쪽 손목 위에 올려놓자 곧바로 한 가지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순간 주위의 마나가 빠르게 아웬 백작의 근처로 몰려들었고 그것은 하나의 마법을 이루기 위해 조합에 들어갔다.
 “유나이트 매직!”
 화아아아악.
 그의 입에서 곧 마법의 시동어가 터져 나왔고 마법은 환한 빛 속에 이루어졌다.
 “으응?”
 베스렐은 자신의 왼쪽 손목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나석처럼 보였던 그 검은 돌이 그의 왼쪽 손목에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일체가 되어 박혀 있었다.
 고통은 없었다. 다만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고 있을 뿐이었다.
 “한 가지가 더 남았다. 둘 다 가만히 있어라.”
 아웬 백작은 두 사람에게 가만히 있으라 하고는 또다시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다른 게 아닌 6써클의 활성화마법이었다.
 “액터배이션!”
 베스렐은 아버지가 마법의 시동어를 외치자마자 바로 자신의 왼 손목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건 리렌시아도 마찬가지였다.
 “······.”
 “······.”
 이런 걸 무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스멀스멀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두 사람의 왼쪽 손목에 박혀 있는 검은 빛깔의 돌에선 순수한 느낌의 마나가 힘차게 휘돌고 있었다.
 “리렌시아는 그만 밖에 나가 보거라. 나중에 베스렐을 통해서 네 왼쪽 손목과 하나가 된 물건에 대해 설명해 줄 터이니 그리 알고.”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럼 두 분이서 말씀 즐겁게 나누세요.”
 리렌시아는 아웬 백작의 말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실내의 문을 통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툭.
 이제 실내에는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아웬 갈루안스와 베스렐 갈루안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실내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마법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실내에서 두 사람은 잠깐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흐흠······.”
 아웬 백작이 먼저 그 침묵의 기운을 쫓아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도 알고 있는 것이지만 지난 100여 년은 우리 가문에 있어서 암흑기라 할 수 있었다. 고룡의 저주를 받아서 후손들 모두가 무한비만증에 걸려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요절하게 되었지.”
 “······.”
 베스렐은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경청했다.
 중요한 이야기리라.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리라.
 “하지만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이냐? 포기를 모르는 집안이 우리 갈루안스 집안이 아니겠느냐?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을 선조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연구해 왔다. 그리고 며칠 전에야 그 연구의 결실이 어느 정도 맺어지게 되었다.”
 쿠쿵!
 베스렐의 가슴이 순간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저주를, 그것도 고룡이 건 저주를 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내셨다니 가슴이 뛸 일이었다.
 녀석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무, 무엇입니까, 아버지? 그,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도마뱀 새끼의 저주를 깰 수 있는 방법이?”
 “어허, 이 녀석! 마법사라는 녀석이 말하는 투 하고는······.”
 아웬 백작은 아들 녀석이 하는 말투가 못마땅한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곧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어미 없이 혼자 자란 녀석이었다. 비록 옆에서 챙겨 주는 사람이 여럿 있기는 했다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녀석의 마음을 다독여 줄 수 있는 건 아니었으리라.
 매일같이 반복되는 고통의 다이어트는 녀석의 말투를 충분히 거칠게 만들 수 있었으리라.
 아웬 백작은 다음의 말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어쨌든 그 연구의 결실은 이곳 저택의 지하에 있는 네 녀석 전용 마법수련실에 남겨 놓았으니 구체적인 것은 그곳에 내려가서 알아보면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내 그것에 대해 간단한 것만 설명해 주도록 하겠다.”
 “예, 빨리 설명해 주십시오. 너무나, 너무나 궁금합니다, 아버지.”
 베스렐은 아버지가 하는 말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인지라 빨리 설명해 달라고 재촉했다.
 ‘저주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방법. 그리고 그 방법은 지금 결실을 맺었다고 하셨어. 우리 집안은 주변에서 다들 천재마법사 가문이라 하니 그동안 해 온 연구가 결코 허술한 것은 아닐 것이야.’
 베스렐은 믿었다.
 아버지가 완성한 연구라면 자신은 머지않아 그 고통의 다이어트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고. 반드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좋다. 그럼 잘 듣도록 해라.”
 아웬 백작은 곧 자신이 완성한 고룡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너도 마법사이니 이 단어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 바로 ‘차크라’라고 하는 단어를 말이다. 이 ‘차크라’라고 것은 알트라스의 서대륙에 있는 마법사들이 연구해 온 것이다. 육체가 아닌 영적인 에너지 바디(Energy Body)에 존재하고 있다는 7개의 차크라. 서대륙 마법사들은 이 7개의 차크라를 모두 열면 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왔다. 물론 그것은 말 그대로 생각으로 끝을 맺었다. 수백 년을 연구해도 그 자리 그대로였으니 생각은 단지 생각으로 끝을 맺을 수밖에. 하지만 우리 갈루안스가 사람들은 그 차크라라고 하는 것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설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짧게 간추려 필요한 것만을 들려주었다.
 “으음······.”
 베스렐은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집중하여 들었다.
 녀석의 두 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커져 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베스렐 그의 두 눈에 희망이란 빛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설명해 주시는 것은 내가 전부터 생각해 오고 있던 것과 같아. 차크라! 이것에 대한 것은 예전에 어떤 한 마법서적에서 잠시 읽어 본 기억이 나. 으음······. 역시 선조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어. 드래곤이 내린 저주를 풀려면 역시나 정신적인 또는 영적인 그 무언가를 깨달아 육체의 한계를 부수어야만 해. 그래야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좋아, 할 수 있어. 반드시 깨부수자.’
 희망의 빛을 보게 되니 베스렐의 눈에 강렬한 신광이 어렸다.
 “······하면 된다. 그러니 너는 앞으로 마법과 병행하여 차크라의 수련에 매진토록 하거라.”
 아웬 백작의 설명은 잠시 후, 그렇게 모두 끝이 났다.
 그는 목이 마른지 옆의 장식장 위에 놓여 있는 물 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
 벌컥벌컥.
 목이 많이 말랐었는지 그는 그 큰 잔의 물을 모두 다 마셨다.
 “그럼 이번엔······.”
 아웬 백작은 다 마신 물 잔을 내려놓고는 이번엔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건 다른 게 아닌 방금 전 베스렐과 리렌시아, 그 두 사람의 왼 손목과 하나가 된 흑석에 대한 이야기였다.
 “로얄 마나석! 나는 그것을 로얄 마나석이라 이름 지었다.”
 “이게 로얄 마나석이라고요, 아버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스렐.
 녀석은 자신의 왼 손목과 하나가 된 로얄 마나석이란 이름의 흑석을 바라보았다. 마나석이란 것은 그 자신이 마법사이니 잘 알고 있는 사항이었지만 로얄 마나석이란 단어는 처음 들어 보는 그였다.
 “그렇다. 아마 너는 그 같은 이름을 처음 들어 보는 것일 게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직 대륙 마법계에 알려지지 않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갈루안스 가문이 드래곤의 저주를 풀 방법을 모색하다가 몇 년 전에야 발견해 낸, 아니 새로 만들게 된 신물질이다. 따지자면 마나석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만 그보다는 훨씬 좋은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지.”
 “새로운 용도라고요? 그럼 이게 그냥 마법 스태프처럼 사용하라고 주신 게 아니란 말씀입니까?”
 아웬 백작은 피식 웃었다.
 “후후, 당연히 아닌 게지. 물론 마법 스태프처럼 그게 마법을 사용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니 비슷하다고 할 수는 있지.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대단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로얄 마나석인 것이다. 바로 인간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한계를 극복한다고요?”
 “그렇다. 그것은 차크라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또한 다른 방도는 없는지 찾아보다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가문인 갈루안스가는 대대로 7써클이라는 대마도사의 경지에 들어섰지만 그게 한계였다. 그리고 그건 인간의 한계라 말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우리 가문은 그걸 용납할 수가 없었지. 8써클을 향한 끝없는 도전 끝에 그 로얄 마나석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의 정식 명칭을 나는 ‘마력 하트’라 붙였단다. 8써클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게 해 주는 마력 하트!”
 마력 하트!
 이것은 진정 대단한 마법 물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7써클의 대마도사라고 해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절대로 아니었다.
 마법사의 심장에 자리한 써클.
 마력 하트는 놀랍게도 이 써클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한계라고 할 수 있는 7써클을 넘어 8써클에 이를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은 마나 명상법을 행할 때에 자신의 심장에 자리한 마력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마력 하트란 이름의 물건에도 주변의 마나를 끌어 모아 마력으로 변화시킨 뒤에 저장하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력 하트에도 써클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마력 하트가 7써클의 대마도사를 완전한 8써클의 현자 급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아웬 백작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걸 듣고 있는 베스렐은 계속해서 놀란 눈을 해야만 했다.
 ‘역시 우리 가문 사람들은 대단한 인재들이었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하셨는지 몰라?’
 “보거라. 나도 너와 리렌시아처럼 마력 하트를 왼 손목과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3년 전에 ‘유나이트 매직’과 ‘액터배이션’으로 활성화시켰지.”
 스윽.
 아웬 백작은 자신의 왼팔에 있는 옷깃을 뒤로 잡아당겨 녀석에게 같은 마력 하트를 보여 주었다. 그리곤 다시 마력 하트에 대해 설명에 들어갔다.
 “어감이 이상하긴 하지만 나는 말하자면 7.5써클의 현자 급 대마도사라고 할 수 있단다. 마력 하트가 나를 그리 만들어 주었지. 7써클의 대마도사보다는 강하고 8써클의 현자보다는 약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
 아무 말 없는 베스렐.
 녀석은 아버지가 하는 말에서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아웬 백작.
 그가 대륙의 마법사들 중 가장 강한 사내임을, 또한 역사상으로 보더라도 마법에 있어서 그가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도 익히고 있는 7.5써클에 존재하는 마법수식들은 언제라도 8써클로 올라설 수 있는 수식들임을 미리 알려 주마. 이미 8써클에 존재하는 수식들은 선조들이 드래곤들이 발휘하는 마법을 보고 몇 가지를 만들어 놓은 상태란다. 그러니 너는 나중에 7써클의 대마도사가 되면 마저 그 위의 경지로 들어서기 위해 심혈을 쏟아야 한다. 물론 그 차크라 수련이 더 중요한 것이니 그것부터 해결을 하고 나서 말이다. 알아들었겠지, 베스렐?”
 “예, 예에. 자, 잘 알아들었습니다, 아버지.”
 베스렐은 더듬거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머릿속에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들어차 있어 평소에 하지 않는 그런 더듬거리는 음성이 나온 것이었다.
 무한비만증을 고치고 더구나 마법을 한계 이상으로 익힐 수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이란 말인가.
 “후후, 그래, 너라면 잘해 내겠지. 우리 가문의 숙원을 말이다.”
 “예에. 걱정 마세요, 아버지. 내 반드시 살을 빼고 강해져서 언젠가는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검은 도마뱀 새끼를 죽여 버리고 말 테니까요.”
 “으응?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아웬 백작은 아들이 갑자기 언젠가는 드래곤을 죽여 버리겠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무슨 소리냐니요? 우리 가문의 숙원이 그 드래곤을 죽여 없애는 거잖아요. 걱정 마세요, 아버지. 내 기필코 그놈을 끝장내 버리고 말 테니.”
 “아니다, 아니야, 이 녀석아! 네 녀석이 무슨 수로 드래곤을 없애? 그런 가당치도 않은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
 그는 아들이 하는 말에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인간이 드래곤을 죽여 없애겠다니.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겠다니.
 그것도 오천 살이 다 되어 가는 고룡을 말이다.
 아들 녀석이 제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설령 검술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고 마법이 8써클의 현자에 이른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룡이란 존재는 거의 준 신 급에 가까운 존재인 것이다.
 “너는 하여간 그런 일은 꿈도 꾸지 말거라. 그냥 저주를 풀고 나중에 8써클에 오를 수 있는 것만 생각해.”
 아웬 백작은 드래곤을 상대하겠다는 아들의 생각을 재차 뜯어말리고는 오늘 녀석에게 해 주려고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하지만 베스렐은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속으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래곤은 인간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고? 흥! 아버지는 그리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야. 언젠가 반드시 놈을 찾아가 죽인다. 가문의 원수를, 나를 다이어트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그 녀석을 가만히 놔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야. 나는 나를 건드린 놈은 절대로 살려 두고 싶지 않아. 꼭, 반드시 놈을 죽인다!’
 녀석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스스스스슷.
 그러자 녀석의 눈에서 무섭고도 살벌한 신광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고개를 숙인 이유는 자신의 결심 어린 눈빛을 아버지가 알아차릴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하 수련실에는 그것 말고도······.”
 아웬 백작의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마치 오늘 중으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려는지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쏟아 냈다.
 시간은 흘러갔다.
 2시간이 지난 후, 베스렐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어두운 밤.
 실내에는 이제 아웬 백작 홀로 남게 되었다.
 그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흐음······. 내가 이제 며칠이나 살 수 있을런지. 체중이 600크롬을 넘겼으니 길어야 보름일 텐데. 전해 주어야 할 이야기는 모두 끝마쳤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기는 한데 왠지 억울하기는 하군. 아직 사십도 되지 못한 나이인데······.”
 그는 자신의 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은 참으로 많은데.
 이제부터는 ‘마력 하트’의 도움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8써클에 오를 방법을 연구하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지 않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휴우우우······.”
 그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밤은 점점 깊어 갔다. 그리고 새로운 날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
 
 화창한 오후.
 백작의 저택에서 후원 뒤쪽으로 3페르(km) 정도 가면 작은 크기의 예쁜 동산이 나온다.
 그리고 그 산은 역대 갈루안스가의 주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바로 대마도사의 경지에 들어섰던 그 주인들이 머무는 묘지인 것이다.
 “자애와 풍요, 그리고 편안한 안식을 주재하시는 대지의 여신이시여. 지금 이 자리에는······.”
 갈색의 사제복을 걸치고 있는 50대로 보이는 사내.
 그는 대지의 여신인 리오나드를 모시는 사제였는데 현재 이곳에 모인 몇 명의 사람들을 대신해 장례식을 주관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신관과 마법사는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지만 이곳 영지는 그렇지가 않았다. 예전부터 리오나드 신전과 갈루안스가는 친분이 두터워 서로 좋은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 오고 있었다. 더구나 영지 내에는 리오나드 신전이 상당히 크게 지어져 있어 많은 수의 영지민들이 대지의 여신을 믿고 따르고 있었다.
 “······아웬 드 갈루안스 백작은 이처럼 영지민들을 자신의 자식인 것처럼 사랑하시어 모든 일에 앞장을 서서 일해 오신 훌륭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사제의 장례식 절차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주위에 모여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은 다들 경건한 마음으로 전대 영주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메드레스 마도사와 블레스 기사단장.
 그 둘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 자신들 둘을 불러서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해 주시던 분이었다. 그리고 늦은 밤에 갑자기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그들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인데, 그처럼 이른 나이에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그들은 시선을 들어 정면에 있는 커다란 덩치의 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소영주님······!’
 그들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올해 열다섯인 베스렐 갈루안스.
 이제 갈루안스가 사람들 중에서는 유일한 생존자라고 할 수 있는 그를 보니 가슴이 찡해져 오는 두 사람이었다.
 ‘아버지······!’
 베스렐은 검은 예복을 차려입고 있었는데 지금 녀석은 무뚝뚝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란 하늘 속에 자리한 흰 구름들.
 베스렐은 그 구름 중에 하나가 왠지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둥그런 형상에 푸근해 보이는 모습이 그런 느낌이 들게 했다.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저는 기필코 살을 빼서 정상적으로 살 겁니다. 아버지가 남겨 주신 그 비술을 빠르게 익혀 내 반드시 정상 체중을 유지하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놈을 찾아가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말겠어요. 제가······.’
 베스렐은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아버지를 닮은 그 구름이 왠지 모르게 화가 나 있는 듯한 생각이 든 것이다. 녀석은 잔뜩 찡그리고 있는 그 구름을 보며 다시 생각의 끈을 이어 갔다.
 ‘후후, 그렇게 화를 내셔도 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저한테 한 번 말씀하신 적이 있었죠? 한계를 미리부터 정해 놓지 말라고. 한계를 정하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은 끝난 거라고.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그래요. 저는 아버지 말씀대로 저의 한계를 미리부터 정해 놓지 않았어요. 그러니 언젠가는 그 검은 도마뱀 새끼를 죽일 힘을 얻게 될 겁니다. 반드시 죽일 겁니다. 반드시······!’
 베스렐은 지금 자신의 생각을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리라 다짐했다.
 꾸구구구구. 짹짹짹.
 기분 좋은 새들의 지저귐이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날은 오늘따라 유난히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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