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뉴얼스 [E]

뉴얼스 1권 (1화)

2017.06.19 조회 271 추천 1


 뉴얼스 1권 (1화)
 프롤로그
 
 
 ‘여기가 어디지?’
 모든 것이 낯선 곳이다.
 눈을 뜬 카일러가 처음 본 것은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건물들이 찌를 듯이 높게 솟아 있는 광경이었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온갖 굉음들이 시끄럽게 머릿속을 울려 온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밝혀진 환한 불빛들이 마치 꿈인 듯 느껴진다.
 지난밤의 일들이 마치 악몽인 것처럼.
 하지만 카일러는 알 수 있었다.
 결코 꿈이 아니었음을.
 이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1장. 새로운 시작
 
 
 ‘힐베르크 단장님은 결국 돌아가셨겠지······.’
 카일러는 아무것도 할 의욕이 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아무리 둘러봐도 생전 처음 보는 것들뿐이다.
 건물, 사람들의 옷차림, 그리고 내가 있는 이 구석진 곳 역시 낯설다.
 “오빠, 저 사람 좀 봐. 노숙자인가?”
 “쳐다보지 마, 괜히 시비 붙일 수도 있어.”
 “근데 옷이 특이하네? 무슨, 중세시대 암살자 코스프레라도 하나?”
 “빨리 가던 길이나 가자.”
 ‘뭐라는 거지?’
 카일러는 그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덕분에 이곳이 카일러에게 얼마나 낯선 곳이고 이곳 사람들이 카일러를 얼마나 낯설게 보는지 짐작이 갔다.
 ‘아주 머나먼 곳이군. 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 있던 그곳과는.’
 카일러는 일어서서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았다.
 역시나 익숙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난 이제 어떻게 하지?’
 카일러는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었다.
 “당신 뭡니까?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그런데 그때 모자를 눌러쓰고 목에 호루라기를 차고 있는 노인이 빛이 나는 무엇인가를 카일러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이봐요, 말 못 알아들어요? 여기서 주무시면··· 뭐, 뭐야?”
 그때였다.
 카일러의 가방 안에서 초록빛이 뿜어져 나와 앞에 있던 노인을 휘감았다.
 노인을 휘감은 초록빛은 잠시 뒤 사라졌다.
 “뭐, 뭐야?”
 “드, 들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던 이곳 사람들의 말이 자신의 모국어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방금 그 빛이 뭐였······.”
 “설마, 내가 그걸 갖고 있었던가?”
 카일러는 자신의 가방 안을 뒤져 보았다.
 그곳에는 초록빛을 발산하는 구체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그, 그 불빛은 도대체······.”
 “별거 없고, 그저 머릿속에 있는 언어에 관련된 기억을 빼 왔을 뿐······.”
 “사, 사람 살려!”
 카일러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골목이 떠나가게 비명을 질러 댔다.
 “목소리 한 번 크군.”
 갑작스러운 노인의 행동에 카일러는 그곳을 재빠르게 빠져나왔다. 그곳에 괜히 있다가는 힘없는 노인네를 죽이려든 비겁한 자로 낙인찍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이곳에서의 생활이 편치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뻔했다.
 
 ‘해는 진 것 같은데··· 완전 대낯처럼 환하군.’
 거리를 환하게 비춰 주는 가로등, 조명, 오색 빛을 반짝이며 건물을 장식하는 간판.
 그리고 큰 건물의 한 벽면에 걸린 대형 TV.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이 밤이 아닌 낯이라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한 풍경.
 하지만 카일러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카일러가 살던 곳에는 밤이 되면 거리는 칠흙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참 신기한 곳이군.’
 어린아이마냥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카일러는 길거리를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꼬르륵.
 거리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카일러에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젠장··· 이곳 화폐도 없는데.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카일러는 허리춤에 달려 있던 물병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굶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카일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먹을 걸 구할 방법이 없을까?’
 카일러는 먹을 것을 구할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답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처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던 카일러에게 빵집이 하나 보였다.
 ‘화폐가 없으니······.’
 “어서 오세요. 어떤 빵을 찾으십니까?”
 “한 번 둘러보겠습니다.”
 카일러는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다른 손님들 뒤쪽에 섰다. 그리고는 가게 주인을 곁눈질로 흘겨보았다. 잠시 뒤 카일러가 빠른 손놀림으로 빵 하나를 집어 품속에 넣었다.
 ‘젠장, 내가 빵이나 훔치는 신세가 되다니······.’
 굶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빵을 훔친다. 그것은 암살자였던 카일러에게는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은 접어 둘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다시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한 번 사셔 드셔 보지 그러세······.”
 카일러는 가게 주인의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빵을 품속에 안은 채 달아나듯이 가게에서 나왔다.
 가게에서 나온 카일러는 재빨리 걸음을 옮겨 가게로부터 먼 길가로 나갔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훔친 빵을 꺼내 우적우적 씹어 먹기 시작했다.
 “어, 오빠. 저 사람 봐봐.”
 “거지인가? 뭔 빵을 저렇게 불쌍하게 먹어?”
 카일러가 빵을 먹는 모습은 사람들이 말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난민처럼 빵을 입에 우걱우걱 쑤셔 넣는 그 모습은 거지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묘사였기 때문이다.
 “근데 저 사람은 옷이 왜 저렇게 지저분해?”
 카일러의 옷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피 터지게 싸우며 바닥을 뒹군 것처럼 더럽혀져 있었다.
 ‘그냥 가던 길이나 갈 것이지.’
 카일러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보통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증오가 담긴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 그 눈빛에 사람들은 황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각자 가던 길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겁쟁이들이로군.’
 카일러는 목적지도 모른 채 그저 정처없이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빵빵!
 ‘이 이상한 소리가 어디서······.’
 “윽!”
 카일러는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기에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자동차가 달려오던 것을 알지 못했다.
 다행히 자동차는 카일러를 치지 않고 멈췄다.
 “당신, 제정신이야?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 혹시 보험금 노리고 그러는 거냐? 젊은 놈이 한심하기는.”
 “도, 도대체 정체가 뭐지?”
 카일러의 귀에 운전자의 말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앞에 있는 눈에서 안광을 내뿜는 거대한 몸짓의 괴물에만 신경이 쏠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동차였다.
 “정체는 무슨 얼어 죽을 정체야, 이게 미쳤나? 빨리 비키기나 해!”
 빵빵!
 운전자는 또다시 경적을 울렸다.
 카일러 보고 비키라는 의미에서 한 행동이었지만 카일러는 또다시 들리는 난생처음 듣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좀전처럼 흠칫 놀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쨍그랑!
 카일러는 허리춤에 있던 검을 빼 들어 자동차의 전조등를 부쉈다.
 “이, 이게 무슨··· 거기 서!”
 카일러는 검을 다시 집어넣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골목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참을 달린 끝에 마침내 카일러가 멈춰섰다.
 ‘이곳에서는 한눈팔았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군.’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동차에 치일 뻔한 것 때문에 놀랐을 상황이지만 카일러는 ‘자동차의 존재’ 때문에 놀랐다. 이곳에 관한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생기는 웃지 못할 비극이었다.
 ‘막막하군.’
 카일러는 또다시 골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어두운 그늘에 몸을 숨기고 앉아 있으면 잠시나마 이 낯선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이, 아가씨∼ 오빠한테 돈 좀 빌려 줄래?”
 그런데 갑자기 옆 골목에서 느끼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보이지는 않지만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으로 추측할 때 골목을 돌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카일러는 옆 골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수상쩍은 두 놈이 어떤 여자에게 찝쩍대고 있었다.
 ‘이곳도 길거리에 인간 쓰레기가 걸어다니는군.’
 카일러는 그 깡패들의 등 뒤로 다가가 그중 한 놈의 목덜미를 강하게 쳤다.
 빡!
 “크흐흑!”
 갑자기 목덜미를 가격당한 깡패가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동료의 고통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나머지 한 놈이 그 광경을 보고 얼어붙고 말았다.
 “너, 넌 뭐야? 나대지 말고 그냥 꺼, 꺼져!”
 어렸을 때부터 암살자 훈련을 받은 카일러. 그런 카일러에게 말까지 더듬으며 기어가는 소리로 내뱉는 깡패의 협박은 씨알도 먹혀들지 않았다.
 카일러는 그 깡패의 면상을 가격했다.
 “윽!”
 “꺼져라.”
 “이, 이 자식이!”
 깡패는 카일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카일러는 가볍게 피하고 깡패의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욱······.”
 “아직도 오기가 남아 있나?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아야지. 분수도 모르고 덤벼들다니.”
 “감히··· 찌질한 거지 새끼가··· 애들 불러 와서 죽기 직전까지 패야 정신을··· 뭐, 뭐야!”
 그때였다. 카일러는 허리춤에 있던 검집에서 검을 빼 들어 깡패의 목에 겨누었다.
 “가치없는 인간을 죽이는데 망설일 이유는 없지. 원한다면 여기서 죽여 주마.”
 카일러가 칼을 빼 들자 깡패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우,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리고는 깡패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급하게 도망을 쳤다.
 “한심하군.”
 도망치는 깡패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카일러가 이번에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밤에는 쓰레기들이 많이 굴러다니니까 조심하······.”
 “사, 살려 줘요!”
 “뭐?”
 여자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넬 것이라 생각했던 카일러의 예상과는 다르게 여자는 카일러를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몸까지 벌벌 떠는 것을 보면 보통 겁먹은게 아닌 듯했다.
 ‘뭐 때문이지?’
 카일러는 그 이유를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여자의 시선이 카일러가 들고 있는 검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널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꺄악!”
 카일러는 말하면서 생각없이 칼을 들어 보였는데 그것이 그 여자를 위협하는 꼴이 된 듯했다. 그 여자는 이제는 공포에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저앉기까지 했다.
 “정말 이곳은 답답한 것들로 가득하군. 난 이만 가 보도록 하지.”
 카일러가 다시 어두운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얼마 가기도 전에 또다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귀찮게 됐군.”
 카일러가 뒤를 돌아보자 아까 도망갔던 깡패가 그 여자의 목에 면도칼을 대고 있었다. 게다가 그 깡패의 동료로 보이는 자들이 열댓 명 정도 같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각각 쇠파이프,
 “도망가려는 거냐?”
 “쓰레기들은 뒤끝도 심하지. 두 명이서 안 되니까 지 친구들을 끌고 온 건가?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서 인질까지 만들어 놓은 건가?”
 “이 자식이!”
 “약해 빠진 놈들이 모였다고 강해지기라도 하는 줄 아나?”
 “이런, 저 자식 밟아!”
 ‘다 죽여야 하나? 하지만 죽일 거면 저 여자까지 죽여야 한다. 살인한 것을 본 목격자가 있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죄 없는 사람까지 죽일 수는 없지.’
 만약 카일러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그 여자가 봤는데도 살려 둔다면 그 여자가 신고라도 하는 날에는 이곳에서 적응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거지 자식, 죽어!”
 빡!
 카일러는 달려드는 깡패에게 검 대신 검집으로 아래턱뼈를 가격했다. 그리고 뒤이어 달려드는 깡패들은 하나둘씩 쓰러뜨려 갔다. 하지만 죽이지 않고 싸우는 것이 죽이면서 싸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싸움이다. 때문에 카일러도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퍽!
 깡패가 분노에 눈이 뒤집혀 있는 힘껏 휘두른 쇠파이프가 카일러의 무릎을 가격했다.
 ‘젠장.’
 뼈가 시리는 고통에 제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웠지만 몰려드는 깡패들을 코앞에 두고 마냥 휴식을 취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비 오는 날에 먼지 나게 두들겨 맞을 것이 분명했다.
 “죽여 버릴 수만 있어도 훨씬 쉬울 텐데.”
 “건방진 놈!”
 카일러의 도발 아닌 도발에 깡패들은 더욱더 거세게 공격해 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허점만 더 드러날 뿐이었다. 그리고 카일러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즉각 공격을 퍼부었다.
 퍽, 퍽!
 “거지 주제에··· 윽!”
 빠각!
 싸움이 계속되자 대부분의 깡패들은 카펫으로 빙의하여 바닥에 깔려 있었다. 남은 깡패는 단 한 명뿐이었다.
 “가까이 오면 그어 버린다!”
 “사, 살려 주세요!”
 그 깡패는 여자의 목에 면도칼을 대고 카일러를 협박했다.
 “네가 사람을 죽일 정도의 위인은 못되는 것 같은데.”
 “우, 웃기고 있네!”
 카일러는 그 깡패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카일러가 그 깡패 코앞까지 다가갔을 때도 깡패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그저 벌벌 떨기만 했다. 카일러는 검을 빼 들어 깡패의 목에 겨눴다. 그러자 깡패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거, 거지 주제에······.”
 “아까부터 도대체 나보고 거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뭐지?”
 “그야 옷이 거지 같으니까······.”
 “옷 벗어.”
 “뭐, 뭐라고?”
 “옷 벗으라고.”
 “그럼 난 뭘 입으라는······.”
 “바꿔 입자는 얘기다. 눈치가 없군.”
 깡패는 얼떨결에 카일러와 옷을 바꿔 입게 되었다.
 “그런데 아까 주머니에서 뺀 건 뭐지?”
 “지, 지갑인데······.”
 “지갑? 마침 잘됐군. 돈도 이리 내놓도록 해라.”
 “하, 하지만······.”
 깡패는 카일러의 요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명 ‘삥’을 뜯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뜯기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깡패였다.
 “여, 여기······.”
 깡패는 주머니에서 파란 배춧잎을 꺼내 카일러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카일러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돈을 달라고 했지 종이 쪼가리를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게 돈이 아니면 도대체······.”
 “죽고 싶나?”
 “아니 이게 돈인데, 돈이 아니라고 하면······.”
 “돈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 정도는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감히 날 농락하려고 해?”
 “······.”
 “안 되겠군.”
 카일러는 깡패의 몸을 뒤져 금속으로 된 것들을 모두 챙겼다. 덕분에 카일러의 주머니에는 ‘100’이라고 적힌 것들이 꽤 많이 들어찼다.
 “돈이 있으면서 종이 쪼가리로 날 조롱하다니. 이딴 건 그냥 찢어 버······.”
 “안 돼!”
 돈이 종이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카일러는 파란 배춧잎 뭉치를 찢으려 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가슴 아픈 행동. 순간 이를 지켜보던 깡패의 눈이 뒤집혀서 카일러를 막았다.
 “이, 이거 정말 돈 맞다니까!”
 ‘이곳은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돈이 종이로 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저 깡패 녀석은 믿음이 가지 않는군.’
 카일러는 인질로 잡혔던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정말인가?”
 “마, 맞아요.”
 ‘정말 이곳은 신기한 곳이군. 돈을 종이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카일러는 돈 뭉치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됐다. 이제 더는 허튼짓은 하지 마라.”
 “······.”
 깡패들에게 경고를 한 카일러는 옆에 서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아까 깡패에게 인질로 잡혔던 일 때문에 겁에 질렸는지 아직도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가 집까지 바래다 드리는 게 좋겠군요.”
 “오늘 구해 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그럼 혼자 가시죠.”
 “자, 잠깐··· 바래다 주세요.”
 “앞장서시죠.”
 그 여자가 앞장서고 카일러는 그 옆에서 동행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전 강혜린이에요.”
 “카일러입니다.”
 “고마워요, 아까 구해 주셔서.”
 “고마울 건 없고, 앞으로는 밤에 조심하시죠.”
 “그런데, 아까 왜 그런 옷을 입고 있어요? 혹시 코스프레 행사에라도 참여했었어요?”
 “코스프레 행사? 그런 건 모릅니다. 그보다 여기가 어디죠?”
 “네? 여기는 서울인데요?”
 “서울이 나라 이름입니까?”
 “아, 아뇨. 나라 이름은 한국이잖아요. 한국말도 잘하면서 왜······.”
 혜린이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날짜는 어떻게 되죠?”
 카일러는 자신이 궁금한 것을 계속해서 물었다.
 “12월 14일이요.”
 “년도는?”
 “2100년이요.”
 “2100년?”
 ‘2100년이라니··· 내가 살던 곳이 1400년이었는데 그럼 내가 700년이나 거슬러 올라온 것인가?’
 카일러는 2100년이라는 말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혜린은 그런 카일러의 반응을 의아해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숙박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아, 그래요. 그 문제는 아마도 제 삼촌께 부탁드리면 해결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뉴 얼스사에서 새로 개발한 게임이 혁신적인 세기의 발명이라 호평을 받고 있······.”
 삑!
 “게임이 무슨 혁신적인 발명이라고 떠들어 대.”
 강현수는 조카가 늦은 시간에도 들어오지 않자 걱정된 나머지 괜한 곳에 화풀이를 했다.
 강현수는 상가 빌딩 몇 채와 원룸 빌딩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월세만 받아도 수입은 충분하지만 그의 직장인 군대로 계속 출근하고 있었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그는 그 누구보다도 군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의 불같이 화끈한 성격 때문에 군대에서 불호랑이로 통했다.
 그의 말 한마디면 자던 군인들도 바로 일어나 자세를 잡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쩔쩔 매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조카 강혜린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대신 돌보게 됐는데 이제 강현수는 자신의 조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고도 남을 정도로 그의 조카를 아낀다.
 ‘벌써 12시인데 아직도 안 들어오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오늘 아침 조카가 빡빡 우기고 늦게까지 놀고 온다고 하자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점점 초조해진다.
 딩동!
 “어, 이제 왔구나?”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사랑스러운 조카가 집에 무사히 왔다.
 그런데 조카 뒤에 음침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놈이 하나 있었다.
 “혜린아······.”
 “네?”
 “뒤에 있는 그 음침하고 우울하고 수상한 놈은 누구냐?”
 강현수가 카일러를 노려보며 물었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무례하군.’
 강현수의 말에 카일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숙박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 분노를 삭였다.
 “사실··· 길에서 험악한 사람 두 명을 만나서 큰일 날 뻔했는데 이분이 도와주셨어요.”
 “험악한 놈? 큰일?”
 ‘험악한 놈, 큰일 날 뻔’이라는 말에 강현수의 미간과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어떤 미친놈이냐?”
 “걱정 마세요. 여기 이분이 다 헤치웠어요. 정말 고마운 분이에요.”
 “저 사람이?”
 “네.”
 “빚을 진 사람한테 내가 너무 무례하게 굴었군. 사과하마.”
 “그래서 말인데 삼촌, 이분이 방을 하나 구하고 있는데 마침 빈 집 하나 있잖아요. 이분하고 계약하면 될 것 같은데··· 괜찮죠?”
 “그래, 뭐··· 빚을 졌으니까 사례하는 셈 치지. 하지만 월세는 선금이다.”
 아무리 은인이라고 해도 집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빼 먹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집세를 꼬박꼬박 제때에 내지 않는 세입자를 들이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겪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저 인간은 상당히 계산적인 인간이로군.’
 “제가 가진 돈이면 충분할 겁니다.”
 카일러는 아까 삥 뜯은 돈을 꺼내 보였다.
 “그 정도면 한 달치 월세로는 충분하겠군. 내 조카를 도와준 것도 있고 하니까 월세는 한 달에 25만 원 내면 된다. 반값이니까 이 정도면 이제 빚은 값은 거다.”
 “반값이면 많이 선심 쓰셨군요. 알겠습니다, 계약하죠.”
 카일러는 월세가 무엇인지 몰랐고 당연히 월세가 25만원이라는 말에도 싼 것인지 비싼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반값이라는 말에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자, 계약서부터 작성하자.”
 계약서를 작성한 뒤 카일러는 한 시름 놓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저, 근데 집은 어떻게 찾아가죠?”
 모든 것이 낯선 카일러에게 주소만 보고 집을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강혜린이 웃으며 자신이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강현수의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카일러를 째려 봤다.
 강현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카일러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조카를 구해 줬는데도 날 의심하는 것인가? 고지식한 인간이로군.’
 “걱정 마시죠. 저는 그런 사람 아니니까.”
 
 
 
 2장. 알바하는 암살자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카일러는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현재 고정 수입이 없어 걱정이던 참에 혜린이 ‘알바’란 것을 주선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내가 설마 암살 이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될 줄이야······.’
 며칠 전만 해도 암살밖에 몰랐던 암살자, 카일러. 하지만 이제는 이곳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씻기 위해 카일러는 물이 나오는 곳을 찾아 나섰다. 원룸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문물에 무지한 카일러는 물이 나오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이 집에는 물도 구비되어 있지 않은 건가?’
 카일러는 집안을 한참 동안이나 빙빙 돌며 헤맸다. 그 결과 마침내 뭔가를 발견해 냈다. 카일러는 항아리 비슷하게 생긴 용기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물이 있었다.
 ‘덮개에 덮여 있어 미처 몰랐군. 물을 이런 곳에 받아 놓았을 줄이야.’
 카일러는 그곳에 있는 물로 세수를 시작했다. 그것이 변기물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물에서 썩은 내가 나는 것을 보니 이곳 수질이 별로 좋지 않은가 보군.’
 그렇게 카일러는 이곳 사람들이 봤다면 토가 나올 법한 ‘더러운’ 세수를 했다.
 꼬르륵.
 ‘그러고 보니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군. 이 집안에 먹을 게 있으려나······.’
 카일러는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마침내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군. 양이 많지는 않지만 이걸로라도 끼니를 해결해야겠군. 그런데 왜 이렇게 미끌미끌거리는 걸까?’
 카일러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것을 집어 들어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어 약간의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만족스러움이 경악으로 바뀌는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우욱, 맛이 왜 이래?”
 카일러가 베어 문 것은 다름 아닌 ‘비누’였다. 그것의 용도도 모른 채 그저 향긋한 냄새만으로 먹을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발생한 불상사였다.
 ‘이곳에서는 정말 항상 조심해야겠군.’
 
 우여곡절 끝에 외출 준비를 마친 카일러는 혜린과 만나기로 한 집 앞으로 나갔다.
 약속 장소로 나가는 카일러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자신이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울하고, 무거운 과제로 느껴졌기에 다시는 자신의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씁쓸한 기분이 들어 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냥 우울해 하기만 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이곳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가야만 한다.’
 카일러가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그곳에 이미 도착해 있던 혜린이 카일러를 반갑게 맞이했다.
 “약속 시간에 맞게 나오셨네요. 그럼 이제 가 보도록 할까요?”
 “그러죠.”
 카일러는 혜린을 따라 알바생을 모집하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알바생을 구한다고 했죠?”
 “네, 학생이 알바하실 건가요?”
 “제가 아니라 이분이 하실 거예요.”
 “성함하고 나이 좀 말해 주시겠어요?”
 “······.”
 성함, 나이는 알바 자리를 구할 때 당연히 물어보는 것이지만 전직 암살자, 카일러에게는 모든 사람을 믿지 않고 경계하는 버릇 때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알바를 하려면 성함하고 나이 정도는 알려 주셔야 해요.”
 카일러의 반응에 당황한 혜린이 카일러를 타이르자 카일러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카일러, 20살입니다.”
 “혹시 전에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한 적 있어요?”
 ‘알바는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고 햄버거는 이곳에서 파는 음식을 의미하는 건가?’
 “아뇨, 없습니다. 그 경력이 꼭 필요합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카일러의 톡톡 쏘는 정곡을 찌르는 말투. 그 말투에 햄버거 가게 점장은 순간 당황한 듯했다. 자칫하다가는 점장이 퇴자를 놓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건 아니더라도 있으면 좋다는 얘기일 거예요. 하지만 없어도 점장님이나 이곳 점원분들이 친절하게 알려 주시겠죠. 그렇죠?”
 “그, 그렇지. 우리가 알려 줄 테니까 잘 따라오면 돼요.”
 다행히도 혜린이 눈치 있게 카일러를 도와주자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좋습니다, 여기서 일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그러죠. 강혜린 씨,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20살이에요. 동갑인데 그냥 편하게 부르세요. 말도 놔도 되요.”
 “다음에 보도록 하자.”
 혜린과 작별 인사를 하자마자 일이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교육’부터 받기 시작했다.
 “손님이 오면 ‘어서 오세요’라고 말한 다음에 주문할 메뉴를 물어보고 그 메뉴를 조리실에 있는 점원에게 말한 다음에 그 메뉴 가격을 계산하기만 하면 끝이에요.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돈 계산은 좀 힘들 것 같은데······.”
 이곳 세계의 돈이 종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카일러였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계산까지 한다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어차피 요즘은 다 카드로 계산하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 아, 손님이 카드를 건네면······.”
 짧지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교육이 끝난 뒤 카일러는 실전에 투입되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이 카운터로 오자 카일러는 교육받은 대로 인사를 했다. 점원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딱딱해?”
 “어서 오세요가 아니라 나가라는 듯한 표정이네?”
 카일러가 인사하는 모습은 가게 안의 누가 보더라도 어색하고 딱딱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뒤에 터졌다. 손님이 메뉴를 주문하고 카일러가 계산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카드로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카드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아무리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워낙 교육 시간이 짧았고 이곳 세계의 문물 중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카일러였다. 카일러는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돌처럼 딱딱하게 제자리에 굳어 있을 뿐이었다.
 “저기, 뭐하세요?”
 “잠, 잠깐만 기다려 주시죠.”
 “5분 동안이나 거기서 그러고 있었잖아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데요? 점원이 그런 것도 못하면 어떻게 해요?”
 결국 기다리다 지친 손님이 화를 내며 카일러를 재촉했다.
 “제가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신입, 그냥 안에 들어가서 음식 조리나 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게 되자 급한 대로 접장이 다가와 수습을 하고 카일러를 조리실로 보냈다. 조리실이라고 해도 햄버거에 들어가는 고기를 굽거나 감자 튀김을 만드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이 정도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겠군.’
 하지만 카일러는 그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기를 태워 먹을 생각이에요?”
 “도대체 감자를 언제까지 튀길 겁니까?”
 “죄송합니다.”
 “그냥 걸레 들고 식사 끝난 손님들 상이나 닦고 다니세요.”
 결국 카일러는 조리실에서도 쫓겨나 냄새나는 걸레를 들고 상이나 닦는 신세가 되었다.
 ‘젠장, 뭔 일이 이렇게 복잡하단 말인가? 이제 이거라도 제대로 못하면 잘리게 생겼군.’
 카일러는 눈물을 글썽이며 걸레질을 시작했다. 자존심 강한 전직 암살자 카일러가 한 순간에 무너져 가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깨끗하다.’
 걸레질을 마친 카일러는 다른 테이블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으악, 갑자기 움직이시면 어떻게 해요?”
 그만 음료수를 들고 이동하고 있던 손님과 부딪혀 음료수 쏟아지며 카일러뿐만 아니라 손님의 옷을 흠뻑 적시는 일이 발생했다.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여기 점장 누구야? 뭐 이런 어리버리한 점원을 쓰고 있어?”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손님의 성난 소리를 듣고 달려온 점장은 카일러를 노려보며 말했다.
 “신입, 그만 나가 주세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잘할 수 있습니······.”
 “나가란 말 안 들려요? 그냥 나가세요!”
 “알겠습니다.”
 결국 카일러는 첫 알바 자리를 몇 시간도 안 되어 잘리고 말았다.
 ‘젠장,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여기서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다른 알바 자리를 찾아야 한다.’
 카일러는 가게 밖으로 나가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아무 가게나 들어가 ‘알바’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길 몇 십 분. 카일러는 또다시 일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학생, 그냥 거리에 돌아다니면서 이 전단지만 다 나눠 주면 돼.”
 “알겠습니다.”
 카일러는 가게 주인으로부터 몇 백장의 전단지를 건네받았다. 이번에 카일러가 얻은 일거리는 바로 전단지 돌리기였다.
 “룰루 치킨입니다.”
 카일러는 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귀찮게 말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고, 그냥 건네주기만 하면 되니까 편하군. 게다가 전단지만 전달하면 되니까 다른 사람들과 싸울 일도 없다.’
 카일러는 전단지 돌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일을 편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카일러는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였던 만큼 사람을 도와주는 업종인 서비스업은 잘 맞지 않았다. 때문에 첫 알바가 카일러에게는 괴로움 그 자체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전단지를 돌리는 일은 카일러는 상당히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룰루 치킨입니다.”
 “학생이나 드세요.”
 ‘뭐 저런 사람도 가끔 있겠지.’
 “룰루 치킨입니다.”
 “그래요, 학생.”
 ‘저렇게 친절한 사람도 있군.’
 팔락팔락.
 그런데 그때, 방금 전 친절하게 전단지를 받은 사람이 카일러가 돌아서자마자 전단지를 가차없이 버렸다.
 ‘이런 빌어먹을 놈.’
 카일러는 화가 났지만 애써 참았다. 아니, 먹고 살기 위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단지를 돌리면 돌릴수록 전단지를 도로 버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카일러의 인내심도 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알바다. 또다시 망치면 안 된다.’
 “룰루 치킨입니다.”
 “그래? 이리 줘 봐.”
 카일러가 전단지를 건네자 그것을 건네받은 사람은 흥미로운듯 전단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전단지를 꾸겨서 카일러에게 던졌다.
 “뭐하는 짓입니까?”
 “그냥 필요가 없어서. 다음부터는 귀찮게 하지··· 악!”
 그 사람의 말이 끝나기 전에 카일러는 그만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카일러는 전단지 뭉치를 앞에 있는 그 사람의 면상에 던져 버렸다.
 “더러워서 때려친다.”
 그 한마디를 내뱉고 카일러는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다.
 ‘젠장, 돈 벌려고 나온 것인데··· 한 푼도 못 벌게 생겼군.’
 카일러는 이 세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3장. 뉴 얼스
 
 
 어느덧 시간은 저녁이 다 되었다. 카일러는 우울함과 고독함 때문에 길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때 반대편 높은 건물에 붙어 있던 대형 TV에 나오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그 광고에서는 자신이 살았던 곳에서 흔히 보던 기사, 마법사, 궁수가 사냥을 하거나 대련을 하는 모습이 나왔다.
 ‘꿈과 희망의 세계, <뉴 얼스>로 오세요!’
 “뉴 얼스?”
 자신이 살았던 곳과 너무도 흡사한 배경에 기쁨 반 놀라움 반이었다.
 ‘저 세계가 뉴 얼스인가? 그리고 그 세계로 갈 수 있다고? 저게 뭔지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카일러는 ‘슈퍼마켓’이라고 적혀 있는 곳으로 들어가 아까 그 뉴 얼스에 대해 물어봤다.
 “뉴 얼스? 그거 새로 나온 가상현실 게임 말하는 거요?”
 “가상현실 게임?”
 “허, 이 사람 참. 뉴스 못 봤소? 그 현실과 거의 차이가 없는 새로운 세계를 구현한 게임 말이요.”
 슈퍼마켓 주인의 말에 카일러는 약간 실망했다.
 ‘세계가 아니라··· 그냥 게임이군. 그런데······.’
 “게임인데 현실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요?”
 “그렇다고 하더라고. 내가 직접 해 본 건 아니니 확실하지 않지만··· 저기 있는 큰 건물, 거기가 뉴 얼스 제작 회사 본사인데 정 궁금하면 가서 물어보시게.”
 카일러는 슈퍼마켓 주인이 말한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에 들어서자 안내 데스크라고 적힌 곳에 텔런트만큼이나 예쁜 여자가 있었다.
 안내원인 듯했다.
 카일러는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고객님.”
 안내원이 예의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뉴 얼스가 도대체 뭐죠?”
 “뉴 얼스는 저희 유니벌스사에서 최근 개발한 가상현실 게임으로 게임계의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뉴 얼스는 캡슐을 통하여 접속할 수 있는 가상현실 게임으로 시각, 청각, 미각, 촉각 등이 현실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카일러는 ‘뉴 얼스’라는 곳에 빨리 접속해 보고 싶은 마음에 들떴다.
 “캡슐? 접속? 그게 뭡니까?”
 “캡슐과 접속에 대한 설명 드리겠습니다, 고객님. 캡슐은 뉴 얼스에 접속하여 게임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장비이고 접속은 뉴 얼스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캡슐이 꼭 필요합니까?”
 “네, 고객님.”
 “그럼 캡슐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800만 원이고 한 달 이용료는 30만 원입니다. 고객님.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뉴 얼스’를 개발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고 ‘뉴 얼스’ 이용자 분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게임을 즐기시도록 하기 위한 유지 비용 또한 막대하기 때문에 저희 유니벌스 회사 측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뉴 얼스’를 이용해 보신다면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고객님.”
 카일러는 캡슐 구입 가격 800만 원에 한 달 이용료 30만 원이 어느 정도 값어치를 하는 액수인가 실감 나지 않았지만 월세가 반값인데도 불구하고 25만 원인 것으로 추측해 볼 때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자신이 월세를 내고 남은 돈의 부피로 볼 때 자신이 800만 원은 커녕 월 이용료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카일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곳을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살았던 곳과 너무도 흡사한 뉴 얼스.
 그곳에 아무리 접속해 보고 싶어도 가격이 비싸니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뭐해 먹고 살지······.’
 당장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갑갑한 상황에 카일러는 한숨만 쉬었다.
 꼬르륵.
 카일러는 돈 한 푼이 아쉽지만 그렇다고 굶을 수도 없었기에 제일 싸 보이는 음식점으로 갔다.
 ‘제일 싼 걸로’ 한마디로 음식을 주문한 카일러는 밥을 먹고 있으나 모레알을 씹는 듯했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뉴 얼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뉴 얼스가 그렇게 재밌다며? 악마의 게임이라고도 한데. 그 게임 한 번 했다가 못 빠져나오는 사람이 엄청 많데.”
 “게임 때문에 폐인되면 직장 잃고 돈은 어떻게 벌어? 결국 굶어 죽는 거 시간문제 아냐?”
 “근데 그 뉴 얼스 게임 머니가 현금하고 값어치가 같다는데? 1:1비율이래.”
 “뭐? 게임인데 그렇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게임으로 돈 버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
 순간 카일러의 머릿속에 번쩍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게임도 하고 돈도 버는 것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문제는 캡슐 구입 비용과 월 이용료.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으는 방법밖에 없다.
 카일러는 침울해졌다.
 ‘캡슐을 어떻게 마련하지?’
 아직 이곳 물가에 대해 잘 모르는 카일러였지만 자신의 월세를 고려해 볼 때 캡슐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는 것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달 이용료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옆 테이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카일러에게 또다시 힌트를 주었다.
 “유니벌스사에서 테스터 지원자 중 천 명 정도를 선발해서 캡슐과 이용료를 모두 대 주겠다고 하던데?”
 “베타 테스트 이미 끝나고 정식 서비스 중인데 무슨 소리야?”
 “그거랑 별개일 걸.”
 “진짜야? 그럼 나도 해 볼까?”
 “인마, 아무나 뽑겠냐? 선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를 본다는 데 그건 그때 가 봐야 아나 봐.”
 “그럼, 학력이라도 보나?”
 “게임하는데 무슨 학력이 필요하겠냐. 그냥 겜 잘할 만한 사람 뽑을 것 같은데?”
 순간 카일러의 눈이 번뜩였다. 자신이 살던 곳을 재현한 듯한 가상현실.
 그리고 자신 있는 검술을 이용하려 살 수 있는 가상현실.
 카일러라면 유니벌스사에서 뽑는 천 명 안에 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카일러는 유니벌스사 본사로 갔다.
 출입문에 붙어 있는 ‘테스터 선발 면접’이라는 문구를 어제는 왜 못 봤을까.
 
 <뉴 얼스 테스터 선발 시험>
 유니벌스사는 게임의 발전을 위해 테스터 천 명을 모집하기로 했습니다.
 선발 기준은 시험 당일 알려드리며 선발된 테스터의 활동 방향은 천 명을 모두 선발한 뒤 테스터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면접 접수 기간:12. 9 ∼ 12. 16, 1주일간.
 선발 면접 실시일:12. 17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번 테스트는 이 게임이 정식 오픈하기 전에 한 배타 테스터들과는 다른 역할을 맞는다고 한다.
 근데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테스터 선발 기준도 발표하지 않았다.
 ‘도대체 유니벌스사는 무슨 꿍꿍이야?’
 카일러는 투덜대며 테스터 선발 면접 접수를 하기 위해 접수처로 갔다.
 접수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름, 나이, 주소, 연락처만 적으면 됐는데 전화번호가 없어 연락처를 적을 수 없었다.
 ‘테스터로 선발돼야 할 텐데······.’
 카일러는 이곳 세계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질수록 점점 더 자신의 고향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고향과 너무나도 흡사한 뉴 얼스. 뉴 얼스에 접속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제인 것은 캡슐 가격과 뉴 얼스 월 이용료.
 카일러가 이 게임을 하기 위해 필요한 캡슐과 월 이용료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이 선발 시험이 운명을 좌우하는 한 판의 게임처럼 느껴졌다.
 ‘선발 시험 때 주어지는 과제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게 만약 내가 자신 있는 검술과 관련된 것이라면 내게도 희망이 있다. 검술이 과제일 경우를 대비해서 연습을 하도록 하는게 좋겠군.’
 카일러는 암살자 시절에 평소에 받았던 훈련 이상의 훈련을 스스로 행했다. 몸이 힘들어도 자신의 고향과 흡사한 뉴 얼스에 접속해 보고 싶은 마음에 결코 훈련을 느슨하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유니벌스사의 ‘뉴 얼스 테스터 선발 시험’ 당일이 되었다.
 ‘반드시 테스터로 뽑혀야 한다.’
 카일러는 굳은 각오를 하고 면접 장소인 유니벌스사의 본사로 갔다.
 본사에 도착하자 이미 수천 명의 사람들이 면접을 보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경쟁자라고 생각하니까 이곳에 오기 전보다 더 긴장됐다.
 ‘잘할 수 있을까?’
 카일러는 걱정이 앞섰다.
 시간이 흘러 테스터 선발 시험 시간이 되자 이번 프로젝트 총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앞에 있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뉴 얼스 테스터 선발 시험을 위해 이곳까지 오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저는 총책임자 박현석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안내 사항을 전달하겠습니다. 우선 이번 테스터 선발은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는 4:1 면접이 진행됩니다. 모두들 신청 접수를 하셨을 때 접수 번호가 적힌 카드를 받으셨을 겁니다. 이번 선발 시험은 접수 번호 순서대로 진행합니다. 면접 보는 장소는 스무 곳이 마련되어 있으며 접수 번호를 저기 계신 안내원에게 보여 드리면 해당 면접 장소를 여러분에게 안내해 드릴 겁니다. 면접은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아주 간단하게 진행합니다. 면접이 끝난 분은 위층으로 올라가시면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시험 장소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총책임자의 긴 설명에도 불구하고 설명하는 동안 숨소리 하나도 안 들렸다.
 잠시 뒤 접수 번호 순대로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마침내 카일러의 차례가 되었다.
 안내원에게 접수 번호를 보여 주고 안내원이 알려 준 면접 장소로 갔다.
 그곳에 들어가자 4명의 면접관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카일러입니다.”
 “반갑습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이번 선발 시험에 응시하기로 한 동기가 무엇입니까?”
 ‘흐음. 뭐라고 대답하나.’
 돈을 벌기 위해라고 하면 너무 속 보이고··· 면접관이 좋아할 만한 답변이 뭘까?
 잠시 고민한 카일러는 입을 열었다.
 “제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뉴 얼스를 통해 이루고 싶기 때문입니다.”
 “무슨 꿈입니까?”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강해져 다른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긴장된 마음을 달래며 답변을 끝마쳤다.
 “좋습니다. 이제 밖으로 나가셔서 바로 보이는 계단을 올라가면 안내원이 있을 겁니다. 그 안내원이 시험 장소를 안내해 줄 겁니다.”
 밖으로 나가 계단을 올라가자 안내원이 있었다.
 카일러는 안내원을 따라갔다.
 잠시 뒤 카일러는 시험 장소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자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안내원이 시험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시험 방법은 시험 전용 캡슐을 통하여 ‘뉴 얼스’로 접속하시면 됩니다. 접속하시면 캐릭터는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본 따 자동 생성되며 정해진 장소로 이동합니다. 그러면 그곳에 접속해 있는 시험 감독관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카일러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는 안내원이 한 명 다가왔다.
 카일러가 사용할 캡슐을 지정해 주고 간단한 유의 사항을 전했다.
 카일러는 캡슐을 바라봤다.
 ‘이게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캡슐인가?’
 캡슐은 사람 하나가 거의 눕다시피 등을 기대고 편히 앉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카일러는 캡슐에 들어갔다.
 카일러가 반눕다시피 앉은 등받이 의자는 상당히 편안했다.
 뿐만 아니라 캡슐은 히터 기능도 있어 따듯했다.
 안내원이 알려 준 버튼을 누르자 캡슐 덮개가 닫혔다. 유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었다.
 카일러가 자리를 잡자 캡슐은 자동으로 신체검사를 했다. 건강에 이상이 있으면 접속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카일러에게 이상이 있을 리 없으므로 카일러는 문제없이 접속할 수 있었고 캐릭터는 자동 생성되었다.
 캐릭터의 모습은 카일러를 그대로 복사한 듯했고 아이디 역시 카일러였다.
 마침내 카일러는 ‘뉴 얼스’ 가상현실 세계에 있는 테스터 선발 시험 장소에 도착했다.
 카일러가 처음 접속하자마자 느낀 것은 당혹감이었다.
 이 가상현실 세계가 게임 속 세상이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현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향긋한 풀향, 그리고 지면을 밟고 있는 발에 전해지는 촉각. 현실과 다른 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대단한데.’
 카일러는 이 가상현실을 구현한 뉴 얼스 제작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인간인가 궁금했다.
 분명히 이 게임 만드느라 고생깨나 했을 것 같았다.
 잠시 멍한 상태로 있던 카일러는 이곳에 온 목적이 시험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수백 명의 응시자들이 바글바글한 체육관이었다.
 아마 시험을 응시하기 위해 카일러처럼 캡슐로 ‘뉴 얼스’에 접속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때 맨 처음 설명을 했던 박현석 팀장이 가운데로 걸어가 설명을 시작했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곳은 저희가 제작한 가상현실 게임 ‘뉴 얼스’ 안에 시험을 위해 임시로 구현한 곳입니다. 여러분이 보실 시험은 3차로 나뉩니다. 각각의 시험에서 일정 인원의 테스터를 선발합니다. 즉, 3가지 시험 중 한 가지를 통과하면 테스터로 선발됩니다. 1차 시험에서 선발된 분은 2, 3차 시험을 응시할 수 없으며 1차 시험에서 탈락한 분들은 2, 3차 시험 중 하나라도 합격하면 테스터로 선발되실 수 있으므로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1차 시험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차 시험은 바로 ‘대련’입니다.”
 ‘대련’이라는 말에 카일러는 기쁜 마음에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주변 시선 때문에 참았다.
 “몬스터, 인간 NPC와의 1:1 대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3분 뒤 각각의 대련 장소로 순간 이동됩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박현석의 말이 끝나자 이번 시험 내용에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잠시 뒤 그곳에 있던 응시자들이 각각의 대련 장소로 이동되었다.
 
 ‘여기가 맞짱 뜨는 곳인가?’
 카일러가 축구장 만한 크기의 대련 장소를 보며 말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 누구와 대련을 하라는 거야?”
 카일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늑대 인간 하나가 나타났다.
 그 늑대 인간의 면상에는 흉측한 흉터가 길게 나 있었다.
 “첫 상대는 반인반수인가? 덤벼라.”
 “가소롭군.”
 늑대 인간은 말을 마치자마자 카일러에게 다가와 돌려차기를 했다.
 카일러는 몸을 살짝 낮춰 인간형 늑대의 발차기를 가볍게 피하고 무릎으로 복부를 걷어찼다.
 “쳇! 귀찮은 녀석이군.”
 그런데 인간형 늑대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인간형 늑대는 자신의 옆구리에 달린 주머니에서 쇠파이프를 꺼냈다.
 “빌어먹을! 무기까지 쓰다니 비겁한 늑대 새······.”
 카일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간형 늑대가 쇠파이프 양손으로 잡고 휘둘렀다. 워낙에 빠른 속도로 쉴 틈 없이 휘둘러 피하기 힘들었지만 잘 피해 냈다.
 그때 열심히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인간형 늑대의 허점을 발견했다.
 쇠파이프를 열심히 휘두른 나머지 옆구리 방어에 소홀했다.
 ‘지금이다!’
 카일러는 인간형 늑대의 옆구리에 돌려차기를 했다.
 빠득!
 공격이 제대로 먹혔는지 발차기 한 번에 늑골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크흑! 이런 빌어먹을 자식! 널 씹어 주겠다!”
 “내가 가만히 씹히고 있을 것처럼 보이나?”
 늑대 인간이 또다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하지만 늑골이 부서졌기 때문에 속도도 느릴 뿐더러 딱 보기에 힘도 별로 들어가지 않은 약한 공격이었다.
 “힘이 다 빠졌나 보군.”
 카일러는 늑대 인간이 쥐고 있던 쇠파이프를 잡고 늑대 인간의 공격을 봉쇄했다. 그리고 곧바로 옆구리에 니킥을 갈겼다.
 “크헉!”
 늑대 인간은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고 카일러는 계속해서 니킥을 갈겼다. 부서진 늑골이 내장을 찔렀는지 인간형 늑대의 입에는 피가 흘러나왔다.
 “이, 인간 따위가!”
 카일러는 고통에 허우적대는 늑대에게 다시 한 번 강하게 니킥을 갈기고 쇠파이프를 빼앗았다.
 그리고 쇠파이프로 늑대의 머리, 늑골을 노리고 미친듯이 휘둘렀다.
 “큭!”
 “마무리다.”
 카일러는 늑대 인간의 무릎을 걷어차 넘어트렸다.
 그리고 쇠파이를 치켜 들고 있는 힘을 다해 늑대의 머리를 내려쳤다.
 “윽!”
 마침내 늑대 인간이 죽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잠시 뒤 늑대 인간은 서서히 희미해지더니 결국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휴, 한 놈은 해치웠군.”
 카일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부신 빛이 카일러를 둘러쌌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몸에서 다시 힘이 솟아났다.
 체력이 회복된 것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늑대 인간과 싸우느라 지쳤는데 힘이 다시 솟아나는 것 같군. 다음 대련 때는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겠군.’
 
 유니벌스 본사의 한 사무실.
 수천 명의 직원이 각각 컴퓨터를 놓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바로 1차 시험을 응시하는 참가자를 보고 평가를 하는 것이었다.
 “오, 싸움 좀 하는데?”
 말단 직원 현달환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늑대 인간을 때려잡은 카일러였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실력이었다.
 “다음 대련이 기대되는군. 흐흐.”
 현달환은 들뜬 마음에 주변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기까지 하며 몰입했다.
 
 잠시 뒤 카일러가 있는 대련장에 새로운 대련 상대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거구의 검사였다.
 “저, 저런 놈하고 무기도 없이 싸우라고?”
 카일러가 당황하여 소리쳤지만 검사는 아무 말 없이 카일러의 옆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언제 생겼는지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 여러 종류의 무기가 있었다.
 “네놈이 가장 자신 있는 무기를 골라라. 선택은 한 번뿐.”
 카일러는 가장 자신 있는 한 손 검을 들었다.
 “자, 이제 덤벼라.”
 검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카일러는 천천히 다가가 거리를 좁힌 뒤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검사는 재빠르게 받아치고 곧바로 카일러의 목을 노리고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검사의 날렵한 동작에 당황했지만 카일러는 몸을 뒤로 젖혀 피해 냈다. 하지만 검사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계속되는 검사의 날카로운 공격에 방어하기도 급급했다.
 ‘이 검사는 지칠 줄도 모르는군. 일단 조금 무리해서라도 공격을 끓어야 한다.’
 카일러는 검사가 수직으로 휘두른 검을 몸을 회전하며 피했다.
 검사가 또다시 공격을 하려 했지만 카일러는 그보다 빠르게 검사의 턱을 노리고 검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검사는 공격하기 위해 휘두른 검의 방향을 재빨리 바꿔 그 공격을 간신히 막아 냈다.
 ‘이번 공격은 속임수고 진짜는 이거다.’
 카일러의 검과 맞닿은 검사의 검을 쳐 내고 빠른 속도로 몸을 바짝 수그려 검사의 발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촤악!
 “이런, 애송이가!”
 카일러가 휘두른 검에 검사의 왼쪽 발목이 베였다.
 “넌 이제 진 거나 다름없다.”
 카일러가 검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일러는 검사에게 맹공격을 퍼부었다.
 검사는 왼쪽 발목을 베였기 때문에 공격에 제대로 힘을 실지 못했고 심지어 방어조차도 버거워했다.
 카일러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검사의 왼쪽을 파고들며 공격했고
 부상을 입은 검사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쫄았나 보군.”
 게다가 검사를 도발하며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마침내 검사가 중심을 잃으며 뒤로 물러날 때 한 쪽 손목을 베어 버렸다.
 양손 검을 사용하는 검사에게 치명타였다.
 “이런, 젠장!”
 “이제 끝이다!”
 카일러는 검사의 왼쪽 발목을 발로 차며 검사의 뒤로 돌아 검사의 양쪽 다리를 횡으로 베었다.
 “크흐흑!”
 “마무리 시간이군.”
 카일러는 몸을 빠르게 회전하여 그 회전력을 이용해 검사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결국 전사한 검사는 쓰러졌고 서서히 사라졌다.
 검사가 사라지자 카일러는 처음 접속했을 때 있던 곳으로 이동되었다. 다시 그곳으로 가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끝내고 대기하고 있었다.
 똑같은 시험을 봤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기뻐하는 사람, 아쉬워하는 사람, 겁에 질린 사람 등 다양했다.
 카일러는 기뻐하는 사람에 속했다.
 이번 시험 덕분에 테스터로 선발될 것이라는 좋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뒤 몇 명의 사람이 더 모이자 총책임자 박현석이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몬스터, NPC와 대련하는 모습을 평가하기 위해 대련 장소 천장에 카메라를 설치해 뒀었습니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 여러분 한 명당 1명의 직원이 평가를 하고 있을 겁니다. 평가가 끝나면 이번 시험에서 합격한 사람들의 명단을 제게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좀 있다가 제가 호명한 분은 ‘로그아웃’하시기 바랍니다. 로그아웃하는 방법은 그냥 ‘로그아웃’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로그아웃하신 다음에는 저도 로그아웃을 하여 제가 직접 인솔하도록 하겠습니다.”
 박현석의 긴 설명이 끝나고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직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나타났다.
 “합격자 명단입니다.”
 직원이 박현석에게 서류 파일을 건네고 다시 사라졌다.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호명하는 분은 로그아웃하시기 바랍니다.”
 박현석이 막 발표를 하려하자 한 응시자가 긴장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만약 이의제기를 하실 분이 있다면 일단 나머지 시험을 모두 응시하시길 바랍니다. 며칠 안으로 저와 그 직원이 재평가를 한 후 합격, 불합격 여부를 전화로 통지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자격이 없는데 합격된 사람들은 어떻게 하죠?”
 “합격자들 역시 나중에 재확인 팀을 구성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할 예정입니다. 그럼 호명하겠습니다.”
 카일러는 대련을 훌륭히 마쳤음에도 초조했다.
 ‘제발 합격돼야 할 텐데······.’
 잠시 뒤 발표가 끝났다. 다행히도 카일러의 이름도 불렸다.
 “그럼 제가 호명하신 분은 로그아웃하시기 바랍니다.”
 박현석은 말을 끝마치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하라는 듯 로그아웃했다.
 카일러도 로그아웃을 외쳤다.
 그러자 주변이 희미해지더니 캡슐이 보였다.
 카일러는 캡슐에서 나왔다. 카일러를 포함한 합격자가 모두 나오자 박현석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지금 합격자 대기실로 갈 것입니다. 한 분 한 분 저와 마무리 면접을 할 계획입니다.”
 잠시 뒤 사무실에 도착했고 차례차례 1:1 면접을 했다.
 마침내 카일러의 차례가 되어 박현석 팀장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카일러 씨, 합격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측에서 공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테스터로 선발되신 분에게 월마다 급여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당연한 것이었나?’
 카일러는 캡슐과 월 사용료 때문에 테스터로 온 것이었고 테스터들에게 급여를 제공하는 것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정, 정말요?”
 “그렇습니다. 월 100만 원씩 지급합니다.”
 “많은 건가요?”
 카일러는 아직까지도 이곳 세상의 화폐 가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보통 직장인들 초봉의 반도 안 되는 액수라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 그렇군요.”
 “그런데 테스터가 뭘 해야 하나요?”
 “그저 뉴 얼스를 충실히 플레이해 주시고 1주일에 한 번 보고서를 보내 주시면 됩니다. 보고서는 제 이메일로 보내 주시면 되는데 캡슐에 게임 플레이 영상을 저장하여 보내 주시거나 글로 보고서를 써서 보내 주시면 됩니다. 저희 유니벌스 사에서는 현실에서의 능력이 게임에도 잘 반영되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련 실력입니다. 하지만 대련 실력이 그저 그러면 실제 실력이 게임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카일러 씨처럼 실력자들을 선발한 것입니다.”
 “흐음··· 제가 좀 하긴 하죠.”
 “하하! 어쨌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주의하실 점이 하나 있습니다. 선발된 천 명 중 캐릭터의 성장이 더디거나 성과가 별로 없는 분들은 테스터에서 제외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게임만 하라는 건가? 뭐 나야 상관없지만.’
 “알겠습니다. 그런데 캡슐은 언제 보내 주시나요?”
 “며칠 안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 주소만 적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통장 계좌 번호도 적어 주세요.”
 박현석이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카일러는 그곳에 주소를 적었다. 그런데 통장이 없었기에 잠시 당황했다.
 “저 통장이 없는데······.”
 “네? 아, 그럼 새로 하나 만드시고 연락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주소로 캡슐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수고하세요.”
 카일러는 당장에라도 날아갈 듯한 마음으로 그곳을 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카일러는 이곳 주민번호가 없었기 때문에 통장을 만들 수 없었다.
 ‘혜린에게 부탁해야겠군.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4장. 초보자, 카일러
 
 
 테스터로 선발된 뒤 혜린의 도움으로 통장 문제도 잘 해결됐다.
 그리고 며칠 뒤 캡슐이 올 때가 되었다. 카일러는 캡슐이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유니벌스사 직원이었다.
 유니벌스사 직원 두 명이 싱글용 침대만 한 크기의 박스를 들고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어디에다가 설치해 드릴까요?”
 원룸이었기에 어디에다 놓든 별 차이가 없었지만 카일러는 한쪽 구석을 가리켰고 직원들은 그곳에 설치를 했다.
 “끝났습니다. 캡슐을 여는 방법은 여기 이 빨간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직원이 빨간 버튼을 누르자 캡슐 뚜껑이 열렸고 딱 보기에도 푹신푹신해 보이는 등받이 의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제법 두꺼운 설명서가 있었다.
 “이 설명서를 한 번 훑어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직원이 떠나자 카일러는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캡슐이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하는군그래.”
 캡슐에는 에어컨, 히터 기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등 일반 컴퓨터가 가진 기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의자는 눕거나 앉을 수 있게 변환이 가능했고 장시간 캡슐 안에 있어도 몸에 무리가 없게 잘 설계되어 있었다.
 또한 설정만 한다면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도 ‘뉴 얼스’에 접속하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더욱 큰 인기를 끌게 되기도 했다.
 어쨌든 설명서를 모두 읽어 본 카일러는 캡슐에 들어갔다.
 “문 닫아.”
 쉬이이잉.
 카일러가 명령하자 캡슐이 곧바로 닫혔다.
 ‘이거 엄청 편안한데?’
 카일러가 캡슐 안에 있는 푹신푹신한 등받이 의자에서 부비적거렸다.
 “작동.”
 위이이잉.
 카일러가 ‘작동’이라고 하자 캡슐이 기계 소리를 내며 켜졌다.
 “안녕하십니까? 저희 유니벌스사의 뉴 얼스 접속용 캡슐을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캡슐 안에서 듣기에 편안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구매한 것은 아니지만.’
 “캡슐 상태를 검사합니다. 온도가 너무 낮습니다. 히터를 작동합니다. 작동을 중지하려면 히터 중지를 말해 주십시오.”
 ‘역시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하는 물건이군. 따뜻하다.’
 “뉴 얼스에 접속하시려면 ‘접속’이라고 말해 주십시오.’
 “당연히 뉴 얼스 접속.”
 “뉴 얼스에 접속합니다.”
 카일러는 눈부신 빛에 휩싸였고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위쪽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뒤 다시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더니 주변이 어둡게 바뀌었다. 그러더니 이내 곧 어두운 공간 속에 서 있었다.
 “여, 여기가 가상현실 공간인가 보군.”
 카일러는 테스터 선발 시험 때 이미 한 번 접속했었으나 이 현실 같은 느낌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홍채 검사를 하겠습니다. 생성하신 캐릭터가 없습니다. 새 캐릭터를 생성하시겠습니까?”
 아까 캡슐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목소리였다.
 “생성할게.”
 그러자 어둠 속 한 곳이 환하게 빛났다.
 그곳에는 카일러의 분신이 있었다.
 “실제 본인의 모습을 스캔한 모습입니다. 성별, 종족을 제외한 캐릭터의 모습은 얼마든지 원하는 모습으로 수정할 수 있습니다. 수정하신 후 ‘캐릭터 생성’이라고 말해 주시면 캐릭터가 생성됩니다. 한 번 생성한 캐릭터는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하시려면 유니벌스사 홈페이지에 ‘삭제 신청’을 하신 다음 통과가 되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신중히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카일러의 캐릭터 옆에 외형 설정 창이 떴다.
 카일러는 캐릭터의 머리 색과 눈 색깔만 바꾸기로 했다.
 “머리 색 빨간색, 눈 색 빨간색.”
 그러자 카일러 앞에 있는 캐릭터의 머리 색과 눈동자 색이 빨간색으로 변했다.
 “캐릭터 생성.”
 “한 번 생성한 캐릭터는 수정할 수 없습니다. 캐릭터를 생성하시겠습니까?”
 “생성.”
 “캐릭터가 생성되었습니다. 이제 생성된 캐릭터의 이름을 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카일러.”
 카일러는 캐릭터 이름을 자신의 실제 이름으로 했다.
 “<카.일.러>가 맞습니까?”
 “맞아.”
 “캐릭터의 이름이 카일러로 설정되었습니다.”
 그러자 캐릭터 머리 위에 ‘카일러’라는 글씨가 떴다.
 “캐릭터 생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접속하시려면 ‘로그인’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최초 접속일 경우 게임 이용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담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 보여 줘 그럼.”
 그러자 눈 앞에 화면이 떴다.
 “뉴 얼스에 처음 접속하면 ‘슬란’ 마을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슬란 마을은 토끼, 사슴 등 뉴 얼스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 사냥하기에 알맞은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 ‘슬란’ 마을의 NPC에게 퀘스트를 의뢰받을 수 있으며 퀘스트를 완료하면 보상을 받습니다. 보상은 퀘스트 난이도에 따라 다르며 퀘스트 난이도의 종류는 S, A, B, C, D, E, F, G 가 있으며 S급 난이도가 가장 수행하기 어려운 퀘스트이며 G급 난이도는 가장 쉬운 난이도의 퀘스트입니다. 퀘스트를 성공하면 퀘스트를 의뢰한 NPC와의 친밀도가 상승하지만 실패할 경우 친밀도가 하락하는 패널티가 있습니다. 친밀도는 퀘스트 외에도 플레이어의 명성이나 행동, 언행의 영향을 받습니다.”
 ‘NPC가 뭔지 설명을 해 줘야 할 것 아닌가? 짜증 나는군.’
 “그리고 뉴 얼스에는 전사, 궁수, 마법사 세 가지의 기본 직업이 있습니다. 기본 직업 전직은 테스칼 도시, 프벤탈 도시, 리바딘 도시, 크로레단 도시 중 한 곳에서 전직이 가능합니다. 또한 기본 직업 이외에 감춰진 직업이 존재합니다. 감춰진 직업은 전직 조건, 장소, NPC가 모두 비공개이므로 유저가 직접 찾아야 합니다. 뉴 얼스는 플레이어가 특정 일을 반복하여 하면 그것과 관련된 스킬이 생성됩니다. 스킬은······.”
 “그만!”
 ‘도움이 된다길래 들어 볼려고 했는데 이건 너무 길잖아. 어차피 실전이 중요한거니까 그냥 넘어갈래.’
 “영상 재생을 종료합니다. 접속하시겠습니까?”
 “접속.”
 “‘뉴 얼스’ 세계로 접속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주변이 환해지더니 전부 빛에 둘러싸였다. 또다시 위쪽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날아가는 느낌이 들더니 곧 멈췄다.
 그리고 빛이 희미해지더니 보이는 장소는 푸른빛의 소형 탑이었다.
 카일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마을 구석에 있는 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데 누군가 카일러에게 말을 걸었다. 마을 주민인 듯했다.
 “이곳에 처음오시는 이방인이군요?”
 마을 주민이 반갑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 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렇군요.”
 “처음 와서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를 테니까 이곳 슬란 마을의 장로님을 찾아가 보세요. 이것저것 궁금하신 것을 알려 주실 거예요. 저쪽에 보이는 건물에 가면 장로님을 뵐 수 있을 거예요.”
 마을 주민이 가리킨 곳은 그 주변에 있는 다른 건물과 거의 차이는 없지만 조금 더 세련되어 보이는 곳이었다.
 “감사합니다.”
 카일러는 인사를 하고 마을 주민이 말한 건물로 갔다.
 도착하자 문 밖에 있는 등받이 의자에 나이 든 노인이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장로님이십니까?”
 “그렇네만. 자네는 이곳에 처음 온 이방인이로구만.”
 “네, 그렇습니다.”
 “여기 앉게나.”
 장로가 자신의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이곳 슬란 마을의 장로 볼보크라네.”
 “반갑습니다. 장로님께서 저처럼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알려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네. 자네같이 이곳에 처음 온 이방인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있다네.”
 “우선 제가 뭐부터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마을 주변에 있는 토끼나 사슴을 사냥하거나 마을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주면 되겠지. 어느 것을 하든 자네의 선택이네.”
 ‘고민거리 해결이라··· 이곳 뉴 얼스에서 적응하려면 혼자 힘만으로는 부족한 것들이 많을 테니까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마을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주고 싶습니다.”
 “훌륭한 젊은이로군. 그러면 저 남동쪽에 있는 정육점을 운영하는 말라크에게 가 보게나. 며칠째 무슨 일이 있는지 장사도 못하고 있다는군. 자네가 가서 얘기를 해 봤으면 하네.”
 그때 메시지 창이 떴다.
 
 [정육점 주인 말라크의 고민거리]
 난이도:G
 며칠 동안 말라크 정육점이 장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당신에게 말라크를 찾아가 걱정거리를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이게 뭐지?’
 카일러는 눈 앞에 뜬 퀘스트 창 때문에 당황했다.
 가상현실 게임이 아니더라도 게임을 이미 수차례 접해 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퀘스트 창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겠지만 카일러는 그저 당황할 뿐이었다.
 ‘정육점 주인 말라크의 고민거······.’
 “내 부탁을 들어주겠는가?”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퀘스트 의뢰를 수락했습니다.”
 
 볼보크 장로가 대답을 재촉하자 얼떨결에 대답한 카일러의 눈 앞에 새로운 창이 떴다. 카일러는 그 창의 내용을 보고 난 다음에야 왜 눈 앞에 정보창이 떴는지 알 수 있었다.
 ‘퀘스트 수락? 그러면 장로의 부탁이 퀘스트라는 것이었군. 그리고 좀전에 눈 앞에 뜬 창이 퀘스트 내용과 관련된 창이겠군.’
 “그러고 보니 자네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구만. 이름이 무엇인가?”
 “카일러입니다.”
 “고맙네, 카일러.”
 “아닙니다. 어쨌든 지금 바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나.”
 카일러는 볼보크 장로에게 인사를 하고 말라크가 운영한다는 정육점으로 갔다.
 정육점에 가자 수염이 덥수룩한 뚱보가 어울리지 않게 침울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다.
 주변을 보니 판매하기 위해 진열해 놓은 고기뿐만 아니라 온갖 가구들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정육점 주인 말라크의 고민거리가 이것과 관련 있는 일인 것 같군.’
 “이곳 주인이십니까?”
 “넌 누구야?”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초면에 반말을 하는 정육점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퀘스트를 위해 가볍게 넘어갔다.
 “카일러입니다.”
 “난 말라크다.”
 “저는 이곳에 처음 온 사람입니다만 볼보크 장로님에게 들은 것인데 걱정거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녀석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
 말라크가 카일러에게 신경질을 냈다.
 ‘저놈을 제거하고 싶군.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곳 생활은 끝이다. 침착하자.’
 카일러는 불타는 분노를 애써 가라앉혔다.
 “이곳 상황으로 추측컨대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누면 반이 되는 것이 고통입니다. 얘기라도 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날 약 올리나? 딱 보기에도 약해 보이는 주제에 뭘 안다고 설쳐 대는 거야?”
 말라크가 자존심 팍팍 긁는 소리까지 하자 카일러의 이마에 혈관 마크가 생겼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만 해도 될 것 같으니까 참자.’
 “맞는 말입니다. 제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혼자 고민한다고 더 나아질 것도 없습니다. 최소한 무슨 일인지 말이라도 하면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도움 안 돼, 분명히. 꺼져.”
 “이런 멍멍이 같은 자식. 감히 도와주겠는 사람을 이렇게 막 대해?”
 마침내 카일러는 그동안 참았던 분노의 마그마를 모두 뿜어냈다.
 말라크에게 음성 서비스를 베이스로 깔고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팽개쳐 굴려 대며 롤링 서비스를 제공해 줬다.
 “이, 이놈이! 네까짓 게 뭔데······.”
 “네놈 버릇을 고쳐 주마.”
 “아,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좀······.”
 카일러의 폭력이 통했는지 말라크는 아까와는 상반된 태도로 대답했다.
 “좋아. 그럼 이제 무슨 일인지 말해 봐라.”
 말라크가 두툼한 턱수염을 만지며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밤마다 누가 내 가게를 다 망쳐 놓고 있어.”
 말라크가 주변을 서글픈 시선으로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서 요새 밤마다 지키고 있었는데 드디어 정체를 알게 됐지.”
 “누구였는데?”
 “멧돼지였다.”
 말라크가 분노와 억울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때려잡으면 될 것 아닌가?”
 “한 마리 잡기도 만만치 않은데 잡아도 잡아도 또 온다는 게 문제지.”
 “······.”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는 것 같군.”
 “뭔데?”
 “그걸 몰라서 묻나? 멧돼지 소굴을 찾아서 멧돼지 가족을 멸족하는 것밖에 없지 않겠나?”
 “······.”
 “그런데 멧돼지가 이 마을 근처에 있는 몬스터 중에 제일 약한가?”
 “지금 장난하나? 마을 밖에 나가자마자 보이는 게 토끼인데. 설마 토끼가 멧돼지랑 맞짱 떠서 이길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여기 처음 온 거라 마을 바깥쪽이라 할 만한 곳은 푸른 비석 있는데밖에 안 가 봤거든.”
 “힘만 셌지 역시 초보였군. 푸풉.”
 비웃음에 다시 이마에 힘줄이 터질듯이 튀어나오는 카일러를 보자 말라크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 소굴이 어딘지 알고 있나?”
 “당연하지. 내가 며칠 동안 멧돼지 잡으며 집만 지킨 게 아니라 멧돼지를 몰래 따라가 봤거든.”
 말라크가 어깨 딱 펴고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곳에 가서 멧돼지 40마리만 잡아 주면 될 듯한데··· 해 주겠어?”
 말라크의 말이 끝나자 눈앞에 창이 하나가 떴다.
 
 [정육점의 불청객]
 난이도:E
 초보 마을 슬란의 말라크가 운영하는 정육점을 밤마다 멧돼지가 와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말라크는 멧돼지를 소탕하여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으나 헛수고였습니다.
 이제 말라크는 자신의 정육점을 지킬 방법은 멧돼지의 소굴을 찾아가 멧돼지 수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말라크가 해결하기에는 벅찬 문제였고 고민하던 말라크는 우여곡절 끝에 당신에게 멧돼지 40마리를 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부탁을 승낙하시겠습니까?
 
 ‘이, 이게 아닌데. 그냥 물어보고 끝내려고 했는데 이게 뭔 상황이지. 그런데 퀘스트를 깨면 보상은 빵빵하게 줄 것 같은데.’
 “좋아. 가서 다 죽여 버리고 돌아올 테니까 위치나 알려 줘.”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퀘스트 난이도가 E라 걱정되었으나 멧돼지라고 해 봤자 결국은 초보 마을 근처에 있는 몬스터이다.
 뉴 얼스는 플레이어의 실제 능력이 어느 정도 반영된다고 했다.
 따라서 아무리 현재 자신의 캐릭터가 레벨 1이라도 멧돼지를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 카일러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잠, 잠깐만. 가기 전에 준비할 게 있잖아.”
 “그러고 보니까 무기가 없군.”
 “뭐? 무기가 없다고? 이방인들은 성능이 별로인 것 같아 보여도 최소한 무기 하나씩은 가지고 있던데.”
 “이방인?”
 “그래, 이방인. 이곳 마을에 처음 온 방문객들을 우리는 이방인이라고 부르지. 너도 이방인이잖아.”
 ‘이방인이라는 말은 뉴 얼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군. 어쨌든, 말라크의 말대로라면 나도 무기를 갖고 있다는 건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겠군.’
 카일러는 주변에 지나가던 사람 중 한 명을 붙들었다.
 “질문 좀 하겠습니다. 무기를 어떻게 꺼내죠?”
 “이 사람이 미쳤나? 그걸 나한테 왜 묻나? 당신이 갖고 있으면 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겠지.”
 “제가 아직 뉴 얼스라는 세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시작할 때 기본적으로 무기가 지급되는 것 같은데······.”
 “참 개념없는 이방인이로군. 본인 물건은 본인이 간수를 잘해야지.”
 “이방인? 그럼 당신은 이곳 사람입니까?”
 “당연하지. 더는 시간 낭비하기 싫으니까 비키게!”
 카일러가 붙들은 사람은 카일러에게 화를 내며 제 갈 길을 갔다. 그 장면을 지켜본 주변의 유저들은 카일러를 우스운 듯 쳐다봤다.
 “저 사람 NPC한테 뭘 물어보는 거야?”
 “NPC는 레벨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런 걸 알겠어? 저 사람 게임 처음 하나 봐.”
 뉴 얼스에서 아이템을 꺼내는 시스템에 대해 물어보려고 아무나 붙들고 물어본 카일러. 하지만 그 사람은 유저가 아닌 게임 시스템에 대해 전혀 모르는 NPC였다.
 사실 유저와 NPC의 차이는 그냥 외모만 놓고 봤을 때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모든 유저들이 시작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장비템, 그러니까 옷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초보자 마을에서는 거의 헷갈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카일러는 생전 처음 해 보는 게임이 뉴 얼스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다. 때문에 NPC를 붙잡고 NPC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게임 시스템을 물어본 엉뚱한 짓을 하게 됐다.
 그 뒤로 몇 명의 사람들을 더 붙들고 물어본 끝에 카일러는 아이템에 관련된 시스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템 창.”
 카일러가 말을 하자 여러 칸으로 구성된 아이템 창이 보였고 그중 한 곳에 초보자용 검이 보였다.
 카일러는 그곳에 손을 뻗어 무기를 집었다.
 “좋아, 무기는 여기 있다. 이제 장소를 알려 줘.”
 “아니, 내 말은 그 무기만 갖고 잡을 수 있는 녀석이 아니라는 거야.”
 그러면서 말라크는 자신의 상처를 보여 줬다.
 무엇인가에 할퀴고 물어뜯긴 자국이 선명했다.
 멧돼지 짓임이 틀림없었다.
 “이 상처가 다 멧돼지를 상대하다 생긴 상처야.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몸이 이 모양이 되다니. 여자들이 보면 무섭다고 도망갈 걸. 한 마리씩 상대하는데도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멧돼지 소굴에 그냥 들어갔다가는 바로 사망이야. 그러니까 준비를 하고 가야지. 그런데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냐?”
 카일러가 멍하니 말라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노총각인가?”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이래 봬도 20살이야.”
 “뭐? 20살이라고? 그 얼굴이? 참··· 인간이 저렇게 삭을 수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멧돼지 소굴로 가기 전에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 된다고.”
 “아, 그렇지. 뭐 준비해 둔 것이라도 있나?”
 “자, 받아.”
 말라크가 카일러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말라크가 카일러에게 건넨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포션이었다.
 “자, 받아. 이것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될 걸.”
 말라크가 호언장담했다.
 카일러가 포션을 받아들고 아이템 창을 확인하자 ‘수상한 포션’이라는 이름의 알 수 없는 포션이 있었다.
 “이게 뭐길래?”
 이게 무슨 포션이기에 호언장담을 하는 걸까?
 “눈치도 없는 놈이네. 동물용 진정제야. 고농축 진정제라 이걸 먹을 거에 타 아무 데나 뿌려 놓으면 멧돼지들이 뭣도 모르고 먹고 뒈져 버리거나 쓰라린 고통에 정신 줄을 놓겠지. 크큭.”
 그동안 당한 게 얼마나 억울했으면 저렇게 사악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카일러는 말라크의 표정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동물용 진정제? 흐음··· 고마워.”
 “그리고 이것도.”
 말라크가 지도를 건넸다.
 
 “멧돼지 소굴 지도를 습득하셨습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군.”
 “그럼. 갔다 올 테니까 보상이나 두둑하게 준비해 둬.”
 카일러는 그곳을 나와 식당으로 가 싸구려 스프를 샀다.
 그리고는 말라크가 건넨 포션에 스프를 넣고 잘 흔들어 주었다.
 ‘진정제가 분량은 적지만 고농축이기 때문에 효과 하나는 끝내 줄 테니까 적어도 10마리는 즉사시킬 수 있겠지.’
 카일러는 지도를 따라 소굴 근처로 갔다.
 ‘일단 소굴 근처에 약을 섞은 스프를 뿌려야겠군.’
 그리고는 소굴로 갔다. 그곳은 동굴이었다.
 동굴 안은 너무 어두워 뭣도 모르고 들어갔다가는 자칫하면 멧돼지한테 다굴을 맞을 것 같았다.
 ‘흐음··· 어차피 스프를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스프가 있는 근처에서 대기 타야겠군.’
 그런데 그때 갑자기 멧돼지 한 마리가 나왔다.
 그러더니 카일러를 발견했고 멱따는 소리를 내 댔다.
 ‘젠장, 다른 놈들도 몰려오겠군.’
 카일러는 재빨리 도망갔으나 어느새 여러 마리의 멧돼지가 카일러의 뒤를 바짝 쫓았다.
 ‘저게 총 몇 마리야? 잡히면 죽는다!’
 카일러는 안간힘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멧돼지들의 달리가 속도는 정말,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결국 총 9마리 정도의 멧돼지가 카일러를 둘러쌌다.
 ‘참 빠르기도 하네. 벌써 달려온 거? 이런, 젠장! 도망가야 된다!’
 사실 이제 막 시작한 레벨 1의 초보 카일러에게 멧돼지는 한 마리씩 상대해도 버거운 상대였다.
 카일러가 뛰어난 검술과 운동 신경을 발휘한다고 해도 한 번에 한 마리씩 상대해야 간신히 이길 수 있는 수준.
 그런데 멧돼지 9마리가 동시에 달려든다면 카일러는 순식간에 사망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젠장, 1마리씩 유인하여 싸웠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경솔했군. 일단 도망가야 하는데··· 포위당해 버렸으니 어쩌나.’
 잠시 고민하던 카일러는 임기응변책을 떠올렸다.
 “아이템 창!”
 카일러는 아이템 창 한 곳에 있는 딱딱한 식빵을 꺼냈다. 그리고는 마을과 반대쪽 방향으로 던졌다.
 “저거 맛있는 거야. 가서 처먹어!”
 하지만 멧돼지들은 생각보다 영리했다.
 9마리 중 한 마리만이 빵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빵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꾸에엑!
 그런데 입에 넣자마자 멱따는 소리를 내며 빵을 내뱉어 버렸다. 그러더니 다시 동료들에게 왔다.
 꾸에엑!
 그 멧돼지가 또다시 멱따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멧돼지들이 분노한 듯이 카일러를 노려보았다.
 “제, 젠장··· 맛 없다고 그러는 건가?”
 꾸에엑.
 마치 알아듣기라도 하듯이 멧돼지가 또다시 멱따는 소리를 냈다.
 ‘멧돼지 주제에··· 이렇게 된 이상······.’
 카일러는 미친듯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멧돼지가 눈부신 속도로 달려와 카일러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우홧! 뭔 돼지 새끼가 이렇게 빨라.’
 
 “데미지 40을 받았습니다.”
 
 “젠장!”
 갓 시작한 카일러의 체력은 100.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카일러의 체력이 반 가까이 깎였다. 이어 나머지 멧돼지들도 카일러를 물어뜯었다.
 
 “사망하셨습니다. 사망 페널티로 8시간 동안 접속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캡슐 안이 보였다.
 말 그대로 강제 로그아웃된 것이다.
 ‘사, 사망 페널티 때문에 8, 8시간 동안 접속할 수 없다고? 그런 패널티가 있었나? 젠장, 게임 안내 영상을 끝까지 다 봤어야 하는 건데······.’
 카일러는 게임 관련 정보를 담은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첫 접속에 죽은 것도 억울한데 8시간 동안 접속할 수 없다고 하자 카일러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카일러, 이것밖에 안 되는 녀석인가······.’
 카일러는 자기 자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5장. 투지 (1)
 
 
 8시간 동안 접속하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인 걸림돌이었다.
 그 사이에 멧돼지들이 어슬렁거리다가 스프를 먹어 치우고 죽거나 기절할 것이다.
 그리고 몬스터이기 때문에 리젠이 될 것이고 기절한 몬스터는 8시간 안에 회복될 것이다. 8시간이면 충분히 그럴 것이 분명했다.
 동물용 진정제를 더 구할 수는 없다. 그 퀘스트를 깨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카일러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뭔지 깨달았다. 그것은 철저한 준비였다.
 사망 페널티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면 분명히 조금 더 조심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멧돼지의 행동 패턴 등을 미리 조사해 봤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언제해도 늦은 것이다.
 ‘앞으로는 철저하게 행동한다.’
 한 번 실수가 두 번 실수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카일러는 철저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인터넷으로 사망 페널티에 대한 것부터 알아봤다.
 
 ―뉴 얼스 사망 페널티
 사망하게 되면 강제 로그아웃되며 8시간 동안 재접속할 수 없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일정 확률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 중 랜덤으로 하나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허.”
 카일러는 아까보다 더 혼란스러워졌다. 단지 8시간 접속을 못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일정 확률로 아이템을 하나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가진 것도 없는 초보자라 잃은 것이 별로 없긴 했지만 반대로 가진 것이 없는 초보자라 한 번 잃은 장비를 다시 살 돈도 없었다.
 쏟아지는 걱정에 당장에라도 접속해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저 떨어뜨린 아이템이 없길 바랄 뿐이다.
 ‘그 퀘스트는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이제 와서 포기하기에는 아까웠다.
 카일러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에는 멧돼지에 대해 조사했다. 그리고 퀘스트를 깨기 위한 대비책도 구상했다.
 한참을 퀘스트 때문에 씨름하다 보니 어느덧 8시간이 지났다.
 카일러는 곧바로 접속했고 처음 접속했을 때 보였던 푸른 비석 옆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부활석인 것 같았다.
 카일러는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이템 창을 열었다.
 그런데 카일러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필이면 카일러의 유일한 무기, 검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나 보고 게임 접으라는 거야?”
 허공에 대고 욕질을 해 봤자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만 돌아올 뿐이었다.
 “저 사람 왜 저래?”
 “시끄럽게 왜 소리를 질러 대.”
 하지만 그런 시선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어떻게 하지?’
 그런데 자포자기하고 아무 곳이나 걸어 다니던 카일러의 눈에 무엇인가가 눈에 띄었다.
 카일러의 눈에 띈 것은 바로 삽과 톱이었다.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톱으로 다듬은 나무창을 세워 놓으면 달려오던 멧돼지가 그곳에 빠져 즉사할 것이 분명했다.
 스프를 사며 돈을 탈탈 털은 터라 무기 하나 살 돈 없는 카일러가 무기를 잃어버렸으니 방법은 트랩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삽은 잠깐 빌릴 거다··· 정말로 빌리는 거다.
 카일러는 삽을 조심스럽게 챙겨 다시 멧돼지 소굴이 있는 산으로 갔다.
 그리고 하루 종일 곳곳에 함정 구덩이를 준비했다.
 힘든 일이었으나 멧돼지들한테 다굴 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까짓 육체적 고통은 참아 낼 수 있었다.
 한창 작업 중인데 갑자기 몸에 힘이 빠졌고 그와 함께 음성 메시지가 떴다.
 
 “쉴 틈 없이 과도한 일을 하여 탈진하셨습니다.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만 탈진하고 만 것이다.
 마음 같았으면 탈진이 와도 계속 구덩이를 팠겠지만 카일러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은 카일러는 상태 창을 확인해 봤다.
 “상태 창.”
 
 아이디:카일러
 생명력:100/100
 마 나:50/50
 
 힘:5
 민첩:4
 지능:4
 운:3
 체력:3
 정신력:1
 
 *상태 이상:탈진
 휴식 없이 과도한 일을 하여 탈진 상태입니다.
 30분간의 휴식이 필요합니다.
 무리하고 몸을 더 움직였다가는 과로사할 수도 있습니다.
 
 “30분이나 가만 앉아 있어야 하다니······.”
 1분 1초라도 쉬지 않고 구덩이를 파 빨리 그 멧돼지 대식구를 괴멸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카일러에게 30분이나 가만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충격이었다.
 꼬르륵.
 잠시 멍하게 있던 카일러는 뱃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는 처음 뉴 얼스를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주어지는 딱딱한 빵을 꺼내 먹었다.
 “아오, 이건 또 왜 이렇게 딱딱해. 차라리 돌을 씹는 게 더 낫겠다.”
 가뜩이나 짜증나는데 딱딱한 빵을 씹고 있자 화만 날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30분이 모두 지나 탈진 상태에서 벗어났다.
 카일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계속해서 함정 구멍을 팠다.
 그런데 그때,
 빠각!
 그만 카일러가 ‘빌려 온’ 삽이 두동강이 나 버리고 말았다.
 ‘이런, 젠장! 아직 다 파지도 못했는데!’
 카일러는 부러진 삽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카일러는 동강 난 삽을 잡고 계속해서 땅을 팠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부분이 짧아진만큼 힘이 배로 들 수밖에 없었고 카일러의 몸은 극도로 피로해졌다.
 빠각!
 그런데 그때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멀쩡했던 부분마저 완전히 부서져 버렸고 이제 카일러에게는 삽이라 할 만한 물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좀만 더 파면 될 것 같았는데. 이를 어쩌지?”
 카일러는 멍한 표정으로 완전히 산산조각난 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카일러의 눈이 순각 번뜩였다.
 “이렇게 된 것, 이판사판이다.”
 카일러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깊이 팔수록 딱딱해지는 땅에 카일러의 손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전직 암살자 카일러는 상식을 넘어서는 독종이었다. 카일러는 두더지로 빙의해서 계속해서 땅을 팠다.
 ‘반드시 끝을 봐야 한다!’
 카일러가 땅을 맨손으로 파자 카일러의 손은 피가 나올 정도로 다쳤다. 그런데도 카일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땅을 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뜻밖의 메시지가 카일러의 눈 앞에 떴다.
 
 “땅굴 파기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땅굴 파기 스킬―초급”
 “땅굴 파는 속도가 기존 속도의 1.5배 빨라집니다.”
 
 “이, 이건··· 설마!”
 카일러는 멧돼지에게 죽은 후 이것저것 조사해 봤었다. 그때 특정일을 반복하면 그 일과 관련된 특화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봤었다.
 하지만 반복 노동이란 것이 워낙 힘든 것이라 이런 특화 스킬을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그런데 카일러가 그것을 이뤄 냈다. 카일러의 독한 성격이 뉴 얼스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1.5배면 지금보다 훨씬 빨라진다. 마무리 작업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군.’
 “역시 뭐든지 포기하면 안 된다. 특화 스킬을 얻게 될 줄이야··· 그럼 계속 삽질이나 해 볼까?”
 카일러가 삽질을 하자 확실히 스킬이 생기기 전보다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만약 스킬 레벨이 최고 등급까지 올라간다면 얼마나 빨라질지 궁금했다.
 “그런데 스킬 레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군. 나중에 인터넷이나 찾아봐야겠다.”
 인터넷 사용 하루 만에 인터넷의 노예가 되어 버린 카일러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모든 준비를 마친 카일러는 멧돼지들이 모여 있는 동굴 입구 근처로 갔다.
 멧돼지가 보였다. 크기가 작은 것으로 볼 때 겁이 많은 새끼 같다.
 주변에 적이 없는 줄 알고 입구에서 어슬렁대는 것 같았다.
 카일러는 슬그머니 다가가 손수 만든 나무창으로 새끼 멧돼지의 엉덩이를 찔렀다.
 역시나 나무창이라 약하다 보니 그저 휘둘러 찌르는 것으로는 멧돼지를 죽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새끼 멧돼지가 고통에 휩싸여 큰소리로 울부짖게 만들 수는 있었다.
 “그래, 그래! 더 크게 울부짖어라! 니네 가족들이 전부 뛰쳐나오게!”
 엉덩이가 창에 찔린 새끼 멧돼지는 계속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마침내 동굴 안의 멧돼지가 우르르 달려왔다.
 퀘스트를 위해 필요한 40마리는 족히 넘는 것 같았다.
 카일러는 냅다 도망쳤다.
 그러자 멧돼지 무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떼거리로 카일러를 뒤쫓았다.
 그런데 멧돼지 몇 마리가 구덩이에 빠져 밑에 세워 둔 나무창에 찔려 피를 흘렸다.
 그냥 찌를 때는 약한 창이었지만 무거운 멧돼지가 깊게 판 구덩이 안에 있는 나무창으로 떨어지자 멧돼지를 꿰뚫기에 충분했다.
 “헥··· 헥··· 역시 돼지는 돼지군.”
 미친듯이 달렸기 때문에 숨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쉴 시간은 없었다.
 나머지 멧돼지들은 다른 멧돼지들이 갑자기 사라지자 당황했지만 곧 다시 카일러를 뒤쫓았기 때문이다.
 멧돼지들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자 더 필사적으로 쫓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멧돼지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있던 밧줄을 못 보고 걸려 넘어지며 뒤에 오던 멧돼지들에게 밟혀 죽었다.
 “좋아, 좋아! 이게 바로 진정한 팀킬 유도지. 크크.”
 카일러는 이번에는 트랩이 대량 설치된 곳으로 방향을 꺾어 냅다 달렸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멧돼지들은 치타로 빙의한 듯한 속도로 달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카일러를 잡기는 커녕 멧돼지들의 수는 줄어 갔다.
 “풋하하하하. 멍청한 돼지 새끼들. 이제 보니 좀 귀여워 보이는구나? 풉하하하하!”
 카일러의 조롱을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조금 겁먹은 멧돼지들이 다시 안간힘을 써 카일러를 뒤쫓았다.
 그런데 갑자기 카일러가 나무 위로 점프하여 매달렸다.
 멧돼지들도 점프를 하여 카일러를 잡으려 했으나 점프를 할 수 없었다.
 멧돼지가 밟고 있는 곳은 바로 함정 구멍 위에 있는 덮개였기 때문이다.
 “잘 가라∼ 멍청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란다!”
 멧돼지들은 전멸하고 말았다.
 
 “레벨 업하셨습니다.”
 
 레벨 3인 멧돼지를 몇 십 마리 사냥하자 카일러는 2업이나 하여 레벨 3이 되었다.
 레벨을 올리고 받은 보너스 스텟은 10포인트.
 카일러는 자세히 알아보고 보너스 포인트를 분배하기 위해 일단 내버려 뒀다.
 “훗. 역시 멧돼지도 돼지일 뿐. 몸에 근육 좀 박혔다고 해도 대가리에 든 게 없으니 상대하기 쉽군.”
 멧돼지한테 다굴 당해서 사망한 주제에 잘난 척을 해 대는 카일러였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아이템.
 구덩이에 빠져 죽은 멧돼지들이 떨어뜨린 아이템을 주우러 함정 구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자칫하다간 꼬치가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 참.”
 동굴 입구에서 사망하면서 떨어뜨린 아이템이 검이다.
 그런데 동굴 입구에 다시 가 봤을 때는 그곳에 검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멧돼지들이 무슨 짓을 했다는 건데··· 아마도 자신들의 소굴인 동굴 안에 갖다 놓은 듯했다.
 ‘동굴 안에 들어가 봐야겠군.’
 카일러는 횃불은 준비하고 기쁜 마음으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들어가자 드디어 카일러의 검을 발견했다.
 “드디어!”
 크르릉.
 “뭐지?”
 카일러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소리가 난 쪽으로 횃불을 돌리자 험악하게 생긴 덩치 큰 짐승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멧돼지였다.
 “아, 아니 무슨 멧돼지가 저렇게 커?”
 아까 카일러가 떼거리로 잡았던 멧돼지들보다 4배는 컸다.
 
 “보스 몬스터 ‘타이푼’이 출현했습니다.”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