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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플레이어 1권-1

2017.07.03 조회 7,145 추천 53


 프롤로그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소행성이 지구를 공전하기 시작하면서였을 것이다.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타나 버리는 괴물들. 몬스터 웨이브라 명명된 그것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참혹하게 죽어 나갔다.
 나 역시 가족을 잃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던 어머니가 몬스터에 의해 찢긴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퇴근을 하시던 아버지가 차량에 깔린 채 우그러져 돌아왔다.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여동생은 몬스터에게 잡아먹혀 그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가슴이 아렸다.
 날카로운 바늘에 살갗이 꿰뚫리고 후벼 파는 비수에 심장이 갈가리 찢긴다면 그러할까? 차라리 죽는다는 게 더 행복하다는 말, 살아 있다는 게 더 고통스럽다는 말. 너무나 절실히 와 닿는 상황들이 나를 괴롭혔다.
 괴로움은 분노로 이어졌다.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무엇이라도 부숴 버리고 싶었다.
 얼마나 강하게 힘을 줬을까. 실핏줄이 터져 버려 붉어진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흠칫거리게 만들었다.
 이성마저 잃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거리를 배회하는 몬스터에게 덤볐다가 그 괴물이 휘두르는 손짓 한 번에 한참을 날아 건물의 벽에 부딪친 나는 피를 토하며 기절했고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이미 지옥으로 변한 후였다.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이성이 돌아왔음인가, 그제야 두려웠다. 무서워서 감히 괴물들에게 다시 덤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몸이 떨려 왔지만 살고 싶다는 더러운 본능을 이기지 못한 채 근처 건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몸을 숨겼다. 떨려 오는 신체를 이기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초라하게, 너무나 추하게, 그렇게 울어 버렸다. 내 자신이 한심했고 저주스러웠다.
 그럼에도 죽을 수 없었다.
 살고 싶다.
 모두가 죽어 버려 아무도 내 곁에 남아 있지 않은 세상. 그래서 더욱 살고 싶었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또 있어서인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날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알 수 없는 힘이 생겼고 플레이어로 각성했다. 덕분에 괴물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자들. 현대 무기도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힘을 지닌 자들을 세상은 플레이어라 불렀고 그들을 기려 영웅이라 칭했다. 그렇게 근근이 약한 괴물들을 사냥하며 그들의 시체를 국가에 팔아 그 돈으로 먹고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플레이어에 대한 대우가 좋았기에 돈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다만 그러는 와중에도 가끔 내 자신이 한심했다. 나름대로 괴물들을 사냥하며 가족의 복수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정작 강한 괴물들은 피해 다녔다.
 살고 싶어서······ 죽고 싶지 않아서······ 두려워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러한 나날들이 몇 년이나 이어졌다. 그사이 나는 안정되어 갔다. 운이 좋게도 참한 여자를 만나 서로를 아끼고 위하며 사랑했다. 나의 공허하게 비어 버린 아픔을 그녀가 보듬어 줬고 그녀의 상처 역시 내가 쓰다듬어 줬다. 위안이 되었다. 무표정하기만 했던 내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고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 다시 알게 되었다. 그녀와 결혼을 결심할 즈음, 그녀는 갑작스레 침공해 온 괴물들에게 난자당해 죽었다.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참사였다.
 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에 절규할 때 세계 몬스터 협회가 전쟁을 선포했다. 괴물의 개체가 너무 빠르게 늘어나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전쟁에 동의해 용병으로 참가했다.
 복수를 위해서.
 잊고 있던 가족의 참혹했던 모습과 허무하게 죽어 버린 그녀를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괴물들을 죽이리라. 단 한 마리조차 남아 있지 않게 쓸어 버리리라.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공포도 없었다. 가족을 잃어 두려움에 떨었던 그때의 내가 아니다. 지옥 같은 삶에 나타난 단 한 줄기의 빛마저 사라진 지금, 나는 처절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몸을 내던졌고 보이는 괴물들을 모두 쓸어 버렸다.
 살기 위해 싸운 게 아니었다.
 죽기 위해 싸웠다.
 죽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싸울수록 강해졌고 강해질수록 더 많은 괴물들을 죽였으며 그 많은 괴물들을 죽이다 보니 또다시 강해졌다. 그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살육했다.
 붉은 피가 난무하는 공간.
 동료들이 쓰러져 절규하는 비틀어진 세상.
 살려 달라 아우성치는 그들과 죽음을 도외시한 채 달려드는 괴물들의 괴성.
 그곳에서 나는 정신마저 놓은 채 살육했다.
 10여 년이나 이어졌던 그 싸움의 마지막.
 결국 해당 단계의 네임드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미치도록 그리웠던 가족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세상이 변화하기 전의 평화롭던 그날이었다.
 
 
 1장 새로운 시작
 
 
 
 
 
 
 
 
 
 
 방에서 눈을 뜬 정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주변을 다급히 훑어봤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간에서 추억과도 같은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망상을 털어 냈다.
 ‘뭐지? 난 분명히 죽었는데······.’
 일단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정면에 걸린 전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의심할 것 없는 자신이었지만 어딘가 미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려······?’
 정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상태 창.’
 마음으로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벌컥 하고 열었다.
 “오빠!”
 그 소리에 놀란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웠던 한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아, 아현아!”
 “뭐야, 왜 그런 표정인데?”
 “아니, 너······.”
 도대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아현, 그녀는 그의 여동생으로 분명 13년 전에 죽었다. 한데 이렇게 눈앞에 있으니 현실감각이 없을 수밖에.
 정우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스윽.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만졌다.
 “아, 뭐야, 징그럽게!”
 그녀가 발을 휘둘러 정우의 정강이를 찼다. 엄청난 통증이 유발되면서 정우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크윽······.”
 “이 씨, 그러게 왜 변태 같은 짓을 하고 그래! 나와서 밥이나 처먹어!”
 그녀가 방을 나서고도 한참 동안이나 정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멍하니 바닥에 앉아 있던 정우는 갑자기 울리는 진동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휴대폰이 있었다. 기종을 보니 꽤나 오래전 거였다.
 의문을 가득 품은 채 휴대폰을 확인했다.
 ‘김유나······.’
 예전에 알고 지냈던 친한 친구다. 문제는 그녀 역시도 몬스터 웨이브 때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화면 상단에 나열된 숫자를 보게 되었다.
 “······!”
 정우의 눈이 커졌다.
 ‘2015년 4월25일······?’
 정우가 살던 세상은 2029년이다. 무려 14년의 갭이 발생했다.
 꿈을 꾼 건가?
 하나 꿈이라고 여기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 순간 고막을 자극하는 그립던 소리에 잡념이 모두 사라졌다.
 “아들! 밥 먹으라니까!”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너무나 듣고 싶었던 그리고 보고 싶었던 한 사람.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꿈을 꾼 것이든 아니면 지금이 꿈이든······.’
 부모님을 볼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감내할 수 있었다. 정우는 이내 방을 나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의 곁으로 향했다. 음식을 차리는 어머니와 식탁 앞에 앉아 신문을 훑고 계신 아버지를 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 어머니······.’
 고개를 숙여 손으로 눈을 비볐다.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식탁 앞에 앉았다.
 “늦게 나왔구나.”
 “죄송해요. 잠이 덜 깨서요.”
 “그래, 오늘 중간고사 잘 보고.”
 “네.”
 그때 어머니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를 식탁의 중앙에 내려놓았다.
 “배고팠지? 어서 먹어.”
 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울컥하는 무언가가 치솟은 탓이다. 그것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애쓰면서 앞에 놓인 숟가락을 들었다. 이미 가족은 아침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정우도 그제야 어머니가 차려 준 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14년 만에 맛보는 어머니의 손맛에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젠······ 지켜 드릴게요, 반드시.’
 아직은 혼란스럽지만 그것만은 다짐할 수 있었다.
 
 평온한 나날을 지내면서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이 겪었던 그 불행의 나날들이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보고 있는 뉴스가 그런 확신을 줬다.
 
 -현재 정체를 알 수 없는 소행성 하나가 지구로 날아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NASA의 발표에 따르면 4주 후 궤도를 틀어 지구를 비켜 간다고 합니다. 하나 크기가 상당하기에 비켜 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정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젠장······.’
 꿈이길 원했다. 지금이 현실이기를 바랐고 자신이 겪었던 불행들 모두 거짓이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그 불행의 나날들은 저 소행성을 시작으로 다시 발생될 것이다. 이미 겪었던 일이 되풀이되고 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럼 나는 예지몽을 꾼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과거로의 회귀일지도 모른다. 하나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고 가족이 지금 옆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와는 다를 거다.
 고개를 돌려 가족을 바라봤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정아현까지.
 ‘이 행복, 반드시 지킨다.’
 이제 그날을 대비하는 일만이 남았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
 정우는 눈을 빛내며 몸을 일으켰다.
 지갑을 챙겨 집을 나섰다.
 
 검도용품점에 들러 적당한 목검을 구입했다. 이후 집 근처 뒷산에 올라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다녔다.
 ‘여기가 좋겠는데?’
 사람이 없는 곳을 확인한 후 목검 가방에서 목검을 꺼냈다. 본래는 진검을 들고 다녔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기에 목검으로 만족했다.
 “후우.”
 얼마 지나지 않아 각성하게 되면 기본적인 운동신경이 플레이어로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본적으로 강한 사람은 플레이어로 각성하면서 더 강해지고 레벨을 올려 더 강해질 수 있게 된다. 그렇지 못했던 정우는 남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아니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중상위권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10년이 넘는 전투 경험이 있고 그 기간 동안 죽어라 익힌 자신만의 실전 검술이 머릿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목검을 천천히 휘둘러 봤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손맛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한 힘을 손에 넣으면 된다. 그 힘으로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 낼 것이다.’
 이윽고 간결하지만 실용적인 동작들이 펼쳐졌다.
 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동작을 멈춰야만 했다.
 “하아, 하아······.”
 운동을 하지 않아 체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괜찮아,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까.’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검을 휘둘렀다.
 
 다음 날, 눈을 뜬 정우는 곧바로 신음을 내뱉었다.
 “으음······.”
 어제 무리를 한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에서 상당한 통증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웠지만 스트레칭을 통해서 뭉쳐 있는 근육을 풀어 줬다. 그제야 움직일 정도가 되었다. 정우는 곧바로 아침을 먹은 후 학교에 간다고 말하고 집을 나왔다. 물론 학교에 가진 않았다. 어차피 4주일이 지나면 세상은 아비규환이 될 것인데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우는 뒷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산을 뛰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쉬는 시간에는 푸시업이나 스쿼트, 윗몸일으키기나 철봉을 이용한 운동으로 근육을 길렀다. 남은 기간 동안 체력과 근육을 단련시키면서 조금이라도 경험에 쫓아올 수 있는 신체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체력 단련과 기본기에 그 모든 시간을 바쳤다. 덕분에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나쁘지 않은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 상태로 플레이어로 각성한다면 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스윽.
 하늘을 바라봤다.
 점처럼 보이는 작은 무언가가 아주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집에서 TV를 켠 채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오늘이었던 것 같은데······.’
 기다렸다, 소식이 나올 때까지.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원하는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속보입니다. 현재 지구로 다가오고 있는 NK-01TY 소행성에 대한 소식입니다. NASA의 발표에 따른다면 오늘 궤도가 틀어져야 정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궤도를 틀어 지구를 벗어나는 것 같았습니다만 약 10분 전 갑작스레 또다시 궤도를 틀더니 다시금 지구로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지구 1분의 36의 크기를 지닌 그 소행성이 직격할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됩니다.
 
 전과 변함이 없었다.
 사람들은 지금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자들로 인해 살인, 강도, 강간 등의 범죄가 갑자기 수십 배로 증가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며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는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정우는 TV를 껐다.
 집을 나와 가로등이 켜진 골목의 끝을 바라봤다.
 저 멀리서 두 개의 형체가 보인다.
 저벅.
 그들에게로 나아갔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형체가 진해졌다. 두 사람이 정우를 알아봤는지 소리쳤다.
 “어, 오빠!”
 “아들, 웬일로 나와 있어?”
 여동생 정아현과 어머니였다.
 “그냥.”
 “호호, 걱정되서 나온 건 아니고?”
 “걱정은 무슨.”
 애써 아니라 말하지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내일부턴 늦게 돌아다니지 마.”
 “응? 왜?”
 “오늘 뉴스를 봤는데······.”
 소행성에 관한 소식을 간략하게 말해 줬다.
 듣고 있던 정아현과 어머니가 순간 굳었다.
 “저, 정말이야?”
 “응.”
 “오빠, 그럼 우리 어떻게 되는 건데? 응?”
 “괜찮아.”
 ‘아무 일도 없도록, 그렇게 만들 거다, 내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대신 사람들이 난폭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을 조심하라는 거야. 알겠어?”
 “으응.”
 “가자.”
 정우는 두 사람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이후 어머니가 차려 준 저녁을 먹고 함께 모여 소파에 앉아 TV를 봤다.
 소행성에 관한 소식이 주를 이루었다.
 토론24시에서도 소행성에 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강 박사님, NK-01TY 소행성이 지구로 빠르게 날아오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일단 소행성으로 인한 결과는 배제하고서 소행성이 다가오면서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하나만으로 세상은 아비규환이 될 것입니다.
 -아비규환요?
 -네. 보면 아시겠지만 소식이 나간 후 벌써부터 거리가 들끓고 있습니다. 시위며 집회는 물론이고 일부는 폭력과 강도짓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범죄자가 늘어나면서 경찰도 현재 혼란스러워 하는 입장입니다.
 -아, 발표가 된 지 이제 2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그 정도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내일부터는 아마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소행성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2주가 남은 건가요?
 -그렇습니다. 14일이 남은 시점입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세상은 더욱 혼란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한데 만약에 말입니다. 정말로 지구에 떨어지게 되면······.
 그 질문에 강 박사라는 사람이 눈을 감았다.
 침묵이 이어지고 그가 눈을 뜨면서 동시에 입을 열었다.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그런······.
 -하나 NASA가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소행성의 궤도를 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다행이군요.
 
 다행이라고 말하는 MC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무려 지구의 36분의 1 크기를 지닌 소행성이었다. 핵을 발사한다고 해도 궤도가 틀어질지 의문인 수준인 것이다. 물론 정우는 그 부분에 관해선 걱정이 없었다.
 그들이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려는 그 순간 소행성은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우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만이 대비하고 있다.
 ‘미래를 안다는 게 반드시 좋다고만은 할 수 없구나.’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함께 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정아현과 어머니의 불안으로 가득한 목소리만이 고막을 때렸다.
 
 편의점으로 향하던 정우는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
 곳곳에 자리 잡고 누워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품을 뒤지는 젊은이들.
 그 젊은이들을 숨어서 지켜보는 청년들.
 그 청년에게 다가서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
 그 여성을 음흉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건장한 사내들.
 세상은 이미 돌아 버린 상태였다.
 거리의 백화점.
 그 백화점에 매달린 거대한 스크린.
 그 스크린에 나오는 영상 하나.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의 모습.
 이제 7일만 지나면 지구로 떨어질 거라는 예측과 저 소행성의 궤도를 틀기 위해 준비하는 NASA의 모습.
 핵을 사용할 거라는 소문이 나돌고 그래도 지구는 멸망할 것이라는 무성한 이야기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지금. 인류는 혼란의 도가니에서 미쳐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며 걸어가던 정우은 어느새 목적지인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이런 와중에도 편의점을 운영하는 주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필요한 물건들을 사들였다.
 편의점을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 남자들에게 끌려가는 여성이 보였다.
 “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대한민국에서만 수십만이 넘는 사람이 죽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는 수천만이 훌쩍 넘는다.
 그런 죽음의 삶을 살아온 정우에게는 알지도 못하는 이의 불행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것은 거리를 배회하는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누구도 끌려가는 여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익숙한 누군가가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정아현······?”
 “오, 오빠!”
 “뭐야? 왜 나왔어?”
 정아현이 등장하는 순간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정우는 애써 무시하며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자.”
 “아, 안 돼.”
 “왜?”
 “친구가, 내 친구가······.”
 그때 다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꺄아아아악!”
 그 소리에 정아현이 반응했다.
 “민아야!”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정우를 바라봤다.
 “오, 오빠, 내 친구야. 도와 줘. 제발······.”
 “위험해.”
 “내 친구란 말이야!”
 정아현의 고함에 절실함이 맺혀 있었다.
 정우는 한숨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 건장한 남자 세 명한테 덤비란 소리야 지금? 그러다 칼이라도 지니고 있으면 찔려서 죽고?”
 그 말에 정아현이 정신을 차렸다.
 “그, 그게 아니라······.”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정우에게 위험을 감수하라고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친구를 버려둘 수도 없었다.
 “그래도, 구해야 하잖아!”
 결국 정아현이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이를 악물고서.
 그 모습에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하아, 별수 없지.’
 정아현의 뒤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섰다.
 가로등 불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여인은 옷이 찢어진 채 울부짖고 있었고 사내들은 흥분에 젖은 채 여인의 온몸을 탐닉하고 있었다.
 정아현의 친구라면 고등학생일 것이다. 나서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나선 이상 깔끔하게 처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정아현의 어깨를 잡고 뒤로 당기며 대신 앞으로 나섰다.
 “그만하지?”
 정우의 목소리가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사내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고개를 돌린 그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이 새끼가······.”
 다른 말은 없었다.
 한마디 욕과 함께 세 명의 사내가 정우에게로 다가왔다. 그들 모두 품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정우는 잠시 흠칫했지만 이내 냉정해지는 스스로를 느꼈다. 아무리 검으로 몬스터들을 상대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격투술도 익히고 있는 그였다.
 ‘그래, 가볍게.’
 정신만 차리게 만들 요량이었다. 한데 거친 웃음이 고막을 때렸다.
 “크큭, 좋은데?”
 정아현에게 시선을 꽂은 채로 말이다. 그 더러운 눈길에 정우의 표정이 변했다.
 나이프를 가슴 높이까지 치켜든 채 겁을 주고 있던 사내는 순간 자신의 손목을 부드럽게 쥐는 정우의 모습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야?”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언제 다가왔으며 또 언제 자신의 손목을 잡은 거란 말인가. 이해하지 못할 두려움이 엄습함과 동시에 손목에서 극도의 고통이 올라왔다.
 콰드득.
 팔을 갑자기 비틀어버린 탓에 뼈가 부러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무릎을 차올리더니 부러진 손목을 타격했다.
 “크, 크어어어억!”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정우의 시선이 너무나 평온해서 감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통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사내는 시선을 내리 깐 채 절규했다.
 “크아아악!”
 정우는 괴성을 지르는 그 사내를 바라보다 이내 좌우에 있던 두 명의 사내를 훑었다. 마침 동료를 돕기 위해 움직이려던 두 사내가 움찔거렸다. 정우는 울부짖는 사내의 부러진 손목을 당겼다.
 “크업!”
 사내가 끌려왔다.
 손에 들린 나이프는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내는 힘없이 정우의 다음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 줄 수밖에 없었다.
 우드득.
 또다시 뼈가 부러졌다. 이번에는 왼손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이후 손가락을 하나하나 분질렀다. 세 개의 손가락을 분지르고서야 정우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얼마 안 남았다.”
 고통 받는 동료의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거리던 사내들의 표정에 일순간이나마 의문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날이 되면 너희들은 죽을 거다.”
 지금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어쩌면 지금의 죽음이 더 축복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싫었다. 이런 녀석들은 몬스터라는 괴물들에게 당할 기회를 줘야만 했다.
 지금은 그저, 잊지 못할 고통만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러니까 얌전하게 지내라.”
 말하며 제압한 사내의 갈비뼈를 세 대 부러트렸다. 쇄골 역시 부러트렸다.
 사내는 경련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절규조차 할 수 없었다.
 콰득, 콰드득.
 계속해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에 사내는 정신을 잃었다. 그제야 때리는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더 이상 사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동료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그저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여인과 그 여인을 보듬고 있는 정아현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아현과 김민아가 앞장을 서고 정우가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으, 으응······.”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너무 무심했나?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여자가 겁탈을 당하려는 것을 외면했다. 10년이라는 전투가 가져다준 처절함이 감정마저 분쇄시킨 모양이었다.
 어찌해야 하나.
 모르겠다.
 굳이 죽어버린 감정을 되살릴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의문도 들었다.
 지금은 가족을 지키는 것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으니까.
 잡념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사이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놀란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엄마!”
 정아현이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내 친군데······.”
 그간의 사정을 짧게 이야기했다.
 정아현의 친구 김민아. 평소처럼 집으로 향하던 그녀는 낯선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 있는 것을 깨닫고 주변을 방황했다고 한다.
 가족들과 떨어져 자취를 하는 그녀는 갈 곳이 없어 정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내가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는데······.”
 그러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좋지 않은 일을 겪은 것이다.
 다행히 성폭행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사내 세 명의 더러운 손길에 나이가 어린 김민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바들거리며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면 누구나 그런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김민아에게 다가갔다.
 “무서웠겠구나.”
 품에 안긴 김민아의 떨림이 빠르게 진정되었다.
 “이제 괜찮다.”
 어머니는 한참이나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제야 안정이 된 김민아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고, 고맙습니다.”
 “고맙긴. 마음 놓고 편안하게 지내렴.”
 “네······.”
 정아현은 힘없이 대답한 김민아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남게 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정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걱정 마라.”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한마디가 공간을 울렸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다.”
 그 말에 정우의 동공이 흔들렸다.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작은 파문 하나가 가슴을 울려대고 있었다.
 
 평온한 일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출근하는 사람도 등교하는 사람도 없었다. 거리는 마치 폐허의 도시처럼 휑하기만 했다. 들끓었던 범죄도 오늘만큼은 잠잠해졌다.
 “시작한다!”
 드디어 오늘 핵 발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가족 그리고 김민아까지 모두 모여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했다.
 
 -드디어 핵을 사용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이라고 합니다. 현재 지구와 소행성의 거리가 43만㎞ 정도인데요, 이는 지구와 달의 거리인 38만 4,400㎞보다 조금 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핵을 늦게 발사해도 되는 건가요?
 -전 세계가 합작해서 만든 이번 로켓은 엄청난 속도와 안정감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단 몇 시간 만에 달까지 주파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대단하군요. 자, 그럼 소행성으로 주제를 옮겨 볼까요?
 -네. 마침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소행성의 크기가 달과 흡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어마어마한 크기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지구에 충돌할 경우 상상도 할 수 없는 지옥이 펼쳐질 것입니다. 하지만 핵을 사용한다면 소행성을 파괴할 순 없어도 방향으로 트는 것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모두의 관심이 이곳에 쏠려 있었다.
 소행성을 향한 핵의 사용 그리고 그 결과에 말이다.
 
 -네. 이제 핵 발사까지 30분이 남았습니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정우는 잠시 소파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향했다. 커튼을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본래의 달과 지구와 가까워지고 있는 소행성이 시야에 잡혔다.
 하나 지구가 자전하는 탓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소행성의 모습은 사라질 터였다. 물론 지금은 달이 두 개인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모두 흘러 드디어 핵이 발사되기 직전에 이르렀다.
 “오빠! 빨리 와!”
 “그래.”
 소파에 앉자 김민아는 사과가 찍힌 포크를 내밀었다.
 “드, 드세요.”
 “아, 고맙다.”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정우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녀는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음에도 빠른 회복을 보이는 중이었다. 특히 정우와 함께 있으면 기운이 넘치는 것처럼 안색이 밝았다. 옆에 있던 정아현이 그 모습을 보더니 크큭 거리며 웃었다.
 “오빠는 좋겠네.”
 “뭐가?”
 “우리 민아가 오빠를······.”
 “아, 아현아!”
 정우가 김민아와 정아현을 번갈아 쳐다봤다.
 “민아가 뭐?”
 “바보, 그런 게 있어.”
 그렇게 의미 없이 토닥거리는 사이 카운트에 들어갔다.
 
 -드디어 핵을 발사합니다! 10, 9, 8······.
 
 시간이 흘러갔다.
 
 -······3, 2, 1, 발사!
 
 핵탄두를 실은 로켓이 쏘아졌다.
 하늘을 향해 치솟는 로켓의 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이윽고 점처럼 희미해지더니 자취를 감췄다.
 로켓이 소행성에 도달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전문가와 의견을 나누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남은 인생이 걸린 일이었기에 누구 하나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조마조마할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전문가와 견해를 나누던 아나운서가 어떤 소식을 전달받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아······.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격앙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 채 아나운서가 말을 이어 갔다.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NK-01TY 소행성에 핵을 떨어트렸다고 합니다.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지만······.
 
 모두가 침묵한다.
 
 -······소행성의 궤도는 틀어지지 않았다는 소식입니다.
 
 침울한 그의 목소리와 함께 세상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물론이고 정아현과 김민아 역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무거운 적막감이 흐르는 가운데 정우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덤덤한 표정을 유지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똑같구나.’
 달라진 건 없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일어날 사건 역시 변함이 없을 터였다. 정우는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활짝 열어 거리를 두 눈에 담았다.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이런, 시팔! 다 죽어! 다 죽여 버릴 거야!”
 소행성이 충돌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사흘. 이제 누구도 멸망하지 않는다 말하지 못했다.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확신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죽음을 앞둔 지금 잠들어 있던 광기가 깨어난 것이다.
 “이 새끼들아! 다 같이 죽자!”
 거리로 나온 수십, 수백의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분노를 풀기 시작했다. 두려울 게 없어진 세상은 전장보다도 더욱 참혹했다. 정우는 이내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채 침대에 누웠다.
 자신 역시 과거에는 소행성 충돌을 앞두고 잠시 미쳤었다.
 다행히 행동으로 옮기기 직전에 소행성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는 바로 내일 세상에 전해질 터였다.
 그리고 플레이어로 각성하게 될 것이다.
 정우는 눈을 감았다.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속보가 전해졌다.
 
 -속보입니다! NK-01TY 운석으로부터의 위험이 사라졌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거리는 달보다 가까운 25만㎞로 30만㎞에 들어서면서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후 25만㎞ 지점에서 갑자기 정지하더니 지구를 공전하기 시작했다는 정보입니다!
 
 다른 채널을 틀어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소식이 들어왔는데요. 이게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공전을 하고 있는데 그 주기를 계산해 보니 지구를 하루에 한 바퀴 반 도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럼 하루에 한 번 이상을 볼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태양이 떠 있는 낮에도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아주 잘 보일 겁니다.
 -쉽게 말해 또 하나의 달이 나타났다고 보면 되겠군요?
 -맞습니다.
 
 또 하나의 달,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나 그로인한 변화는 참혹할 것이다.
 모두가 환호하고 만세를 부르는 지금 정우만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과는 달리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빠, 표정이 왜 그래? 완전 기적인데!”
 “······.”
 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어떤 의미로는 기적일지도······. 이번 일로 인해 몬스터가 나타날 테니까.’
 즉, 그 말은 언제 몬스터의 습격을 받아 먹잇감이 될지 알 수 없는 나날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차라리 행성 충돌로 죽어 버리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매일을 공포에 떨며 살아야 할 것이다. 포식자에서 피식자가 되어 버린 삶. 그 두려움은 말로는 설명할 수조차 없다.
 경험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원초적인 공포.
 축복과 죽음이 동시에 내려진 날.
 세상은 오늘을 기려 절망의 날이라 명명했다.
 
 세상이 평화로워졌다.
 여전히 일부는 저 소행성으로 인해 멸망하게 될 것이라 외쳐 댔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무시했다. 지금까지 범죄를 저질렀던 자들은 정확한 증거를 바탕으로 검거되기 시작했고 그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봤으며 전과는 달리 진한 행복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살아간다는 것, 그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하나 그것도 1주일이 흐르면서 희석되어 갔다. 잠깐 바닥을 쳤던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젠 하늘에 떠 있는 소행성을 보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살아감에 행복을 느끼던 마음도 겨우 1주일 만에 거짓말처럼 희미해졌다.
 모든 것이 본래대로 돌아갔다.
 소행성에 대해 알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평범한 일상.
 무료한 일상.
 지루한 일상.
 그리고 무언가 변화를 바라는 일상.
 그 순간 소행성이 처연하게 빛났다.
 오색찬란한 빛은 세상의 대지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 빛이 스며든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그곳에서 기이한 형상을 지닌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한순간에 말이다.
 몬스터 웨이브.
 그 첫 번째 시작이었다.
 
 일찍 눈을 뜬 정우는 침대 아래에 숨겨 뒀던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의 뚜껑을 열자 예리함을 숨기지 않고 있는 진검 한 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검도를 배우면서 도검 소지 허가증 발급을 신청했고 얼마 전 허가증이 날아왔다. 곧바로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80만 원짜리 진검을 구입했다. 옆에 함께 놓인 검집을 들어 그곳에 검을 꽂았다. 예리한 금속성이 울렸다.
 ‘나쁘지 않아.’
 균형감도 괜찮았고 무게도 적당했다.
 그것을 목검 가방에 넣은 후 한쪽에 뒀다. 이윽고 방을 나서 거실로 향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족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토요일임에도 아버지는 출근 준비로 바빴고 여동생은 외출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우가 부르니 뚱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 있어요.”
 “뭔데 아침부터 난리야.”
 정아현의 말을 무시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쳐다봤다.
 “제가 오늘 아침에 뉴스 속보를 봤거든요.”
 물론 거짓말이다.
 “속보?”
 “네. 이상한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장면이었어요. 그 몬스터에게 기자도 공격을 당한 것 같았고요. 그래서 화면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넘어가더라고요.”
 “······.”
 그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 그게 뭐냐?”
 “오빠, 꿈꿨어?”
 그들이 그렇게 반응할수록 정우의 태도는 더 진지해졌다.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오늘은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아버지도 회사에 출근하지 마시고요. 어머니도 장 보러 가면 안 돼요. 잘 들으세요. 몬스터, 괴물이라고요. 우리가 그 괴물들의 먹잇감이 될지도 몰라요. 밖으로 나가는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러니까 뉴스가 다시 나올 때까지만 다들 집에 있어 주세요.”
 정우가 걸음을 옮겨 현관문 앞에 섰다. 아무도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지금 나가면 가족 모두가 죽게 된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오빠······.”
 “정우야.”
 모두가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물론 억지라는 걸 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을 납득시킬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 계속 쳐다보고 있었지만 정우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아버지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일단 네 의견을 따르마.”
 “고맙습니다.”
 가족의 동의를 얻었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었다.
 정우는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될 때까지 현관문에서 벗어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언제 시작되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어머니가 장을 보다가 몬스터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정오 무렵일 가능성이 컸다.
 다섯 시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아아, 나 오늘 데이트라고!”
 정아현이 괴성을 지르며 정우를 밀치려고 했다. 정우는 무섭게 쳐다보면서 그녀의 손목을 강하게 쥐었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정아현이 울먹거렸다.
 “아, 아파!”
 “안 돼. 오늘은 못 나가.”
 서릿발 같은 분위기에 정아현이 움찔거렸다.
 “아, 알겠어······.”
 정아현도 굴복했는지 조용히 소파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점심 무렵,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속보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등장해 도심지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인천의 한 지역으로 수십이 넘는 몬스터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여 잡아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정부는 곧바로 군대를 파견했습니다만 이동하는 시간이 걸리는지 아직까지 군인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순찰을 하던 경찰들이 권총으로 대응해 봤지만 괴물의 가죽도 뚫지 못했다고······.
 
 거실에 앉아 정우의 눈치를 보고 있던 가족의 표정이 단 번에 굳어졌다. 설마 진짜로 괴물이라는 것들이 나타날 줄은 몰랐던 탓이다.
 “오, 오빠, 이거······.”
 “맞아. 내가 아침에 봤던 거.”
 대충 얼버무리며 시간이 되었음을 직감하는 순간.
 ‘아······!’
 몸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에 전율했다. 이질적인 기운이 몸속을 휘젓기 시작한 탓이다.
 알 수 없는 힘이 뇌리를 흔든다. 그 반작용으로 신체가 부들거리며 떨렸다. 고통은 없었지만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졌다. 세포 하나하나가 죽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그 세포에 맞춰 신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뼈가 조각처럼 부러지더니 재결합했다. 이후 근육의 형태가 그 신체에 가장 알맞게 변화했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플레이어가 되었다······.’
 스스로의 생각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주입일까?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스스로가 플레이어가 되었음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정우는 심호흡을 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만끽하며 주변을 훑었다. 보이는 것이 달랐고 느껴지는 것이 달랐다. 세상 자체가 변한 기분이었다. 마치 격이 높아진 듯한 착각마저 든다.
 “오빠, 괜찮아?”
 여동생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아, 그래. 그보다 뉴스는?”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어.”
 그제야 현관문에서 나와 소파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뉴스를 보는 척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상태 창.’
 그러자 홀로그램처럼 입체적인 무언가가 나타났다.
 
 메테오 : 비기너 9등급.
 몬스터 웨이브 비기너 1단계 발생.
 미션 : 몬스터 한 마리 이상을 죽일 것.
 보상 : 성과에 따른 비기너 경험치 획득.
 
 정우의 눈이 빛났다.
 현재 자신은 비기너 9등급이었다.
 아래에 적힌 미션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몬스터 한 마리라······.’
 예전에는 두려움에 떨면서 미션을 수행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랬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해선 안 된다.
 당장에라도 몬스터를 처치하고 싶었지만 가족을 두고 갈 순 없었다. 언제 이곳에 몬스터가 들이닥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정우는 결정을 내렸다. 멀리 갈 수는 없겠지만 집 근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미리 몬스터를 확인하고 처리한다면 가족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정우가 몸을 일으켰다.
 “저 머리가 아파서 방에서 좀 쉬고 있을게요.”
 “머리가?”
 “네. 좀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알겠다, 쉬어라.”
 방으로 들어간 정우가 목검 가방을 손에 쥔 채 창문을 열었다. 꽤 넓은 창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그곳을 통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바닥에 내려온 후 골목으로 들어가 근처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9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주변에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 저층이었기 때문에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아직인가?’
 괜스레 가슴이 떨려 왔다. 두려움과 흥분이 공존된 기이한 감정이었다.
 10년이 넘도록 몬스터들을 죽여 왔던 이유, 바로 가족의 복수를 행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그 이유가 살아 숨을 쉬고 있다.
 이젠 그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때다. 또다시 잃어버릴 순 없기에 보다 더 노력해야만 한다. 누구보다 더 강해져서 몬스터를 막아 내야만 한다. 어렵고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정우는 웃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난······ 결코 불행하지 않아.’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은 불행할 수 없다.
 잃었을 때의 고통과 좌절을 생각한다면 결코 그럴 수 없다.
 상념에 빠져 있는 그 순간 대지가 진동했다.
 쿠웅.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거대한 몸집을 지닌 몬스터 한 마리가 있었다.
 
 정우는 옥상에서 내려와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몬스터는 꽤 먼 거리에서 건물들을 무차별적으로 무너트리고 있었다. 그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죽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고막을 때렸다.
 건물에 깔린 채 버둥거리던 한 사내는 갑작스러운 자유에 표정을 환하게 밝혔다. 그러다 무언가가 떨어지는 기분에 고개를 드는 순간 세상에 다시없을 공포를 느꼈다. 몬스터가 그를 바라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던 탓이다. 몬스터는 손을 뻗더니 사내의 머리통을 쥐어 들어 올렸다. 바동거리는 사내를 올려다보며 몬스터가 입을 크게 벌렸다. 동시에 사내를 놓아 줬다. 사내가 허공에서 떨어지면서 몬스터의 입에 들어갔다. 가슴까지 들어왔을 때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었다. 듣고 싶지 않은 기이한 소리가 연이어 퍼지면서 사내는 극도의 공포 그리고 고통을 느끼며 괴성을 질렀다.
 “으, 으아아아아악!”
 그러나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내는 그저 몬스터의 주린 배를 채워 주며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5m에 이르는 거대한 몸집. 무기는 없었지만 파괴력이 엄청나서 한 대 맞으면 그대로 즉사였다. 한 마리일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재앙이었다. 건물에 숨어 몸을 떨고 있던 사람들은 제발 목숨만 살려 주기를 듣지도 않을 신에게 기도했다.
 크와아아아아악!
 몬스터의 괴성이 울렸다.
 이윽고 주변을 훑던 몬스터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골목의 끝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얀 살색을 지닌 그것은 꽤나 맛있을 것 같았다. 몬스터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것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상한 기척에 고개를 든 여인은 다가오는 손길에 놀라며 품에 안은 어린 딸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어, 엄마······.”
 “도망쳐.”
 “엄마······!”
 “어서!”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지만 그럼에도 단호함이 느껴졌다.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 딸.”
 죽음을 각오한 그 순간.
 저벅.
 어디선가 느껴지는 강력한 존재감에 세상이 굳어졌다.
 사람도 몬스터도 잠시였지만 한순간 움찔한 것이다. 이내 손을 회수하며 몬스터가 고개를 돌렸다. 약 10미터 전방, 예리함을 발산하고 있는 진검을 손에 쥔 채로 한 명의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정우는 5미터에 이르는 몬스터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몬스터 정보.’
 이윽고 홀로그램처럼 글귀가 떠올랐다.
 
 -비기너 1단계의 부대급 몬스터.
 -다섯 마리의 소형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다.
 
 정우의 시야에 들어오는 몬스터에 한해 정보가 나열된다. 그 정보를 보며 정우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다섯 마리의 소형 몬스터라······.’
 하나 조금 귀찮을 뿐 자신은 있었다. 비록 비기너 9등급이긴 하지만 10년을 넘게 갈고닦은 실전감각이 존재한다. 눈앞에 있는 몬스터 역시 결국은 정우와 같은 비기너 9등급일 뿐이었다. 어느새 거리는 5미터 남짓. 정우는 자연스레 검을 아래로 내리며 지면을 찼다. 무서운 속도로 몬스터와의 거리를 좁혔다. 몬스터가 사납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큰 만큼 동작이 미리 보였기에 어렵지 않게 피해 내며 몬스터의 발목을 그었다.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녹색의 진액이 뿜어졌다.
 크와아아악!
 고통에 울부짖던 몬스터의 입에서 거대한 알이 튀어나왔다. 다섯 개의 알이었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알이 깨지더니 1미터 정도의 크기를 지닌 소형 몬스터가 특유의 징그러운 모습을 선보였다.
 키릭, 키에에엑!
 정우를 적으로 인식했는지 듣기 싫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거리를 좁힌 다섯의 몬스터가 양손을 휘둘러 왔다. 발목과 허벅지, 허리와 가슴 그리고 머리를 노리는 그들의 연수 합격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몬스터 주제에······!’
 정우는 차갑게 눈을 가라앉히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먼저 정면에 있는 몬스터의 머리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나 소형 몬스터는 양손의 손톱을 교차시키며 정우의 검을 막아 냈다. 뒤로 밀려나는 정면의 몬스터를 보며 정우도 앞으로 몸을 날렸다. 사방에서 죄어오는 다른 소형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크윽!”
 조금 늦은 탓인지 몇 군데 상처를 입고 말았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고통이 밀려들었다. 바닥을 구르고 몸을 일으킨 정우는 또다시 달려드는 몬스터 다섯 마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몸이 예전처럼만 움직여 줬다면 이런 몬스터는 한 칼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지금 상황에서 과거를 떠올려 봐야 무의미할 뿐이었다. 정우는 몸을 틀면서 사방으로 검을 휘둘렀다. 다가오던 세 마리의 몬스터가 뒤로 물러난 사이 정면에 있는 몬스터에게 달려가 검을 내리그었다. 몬스터가 손톱을 교차시키며 막는 순간 반탄력으로 튕겨졌으나 그 반동을 이용해 등을 노리는 몬스터의 허리를 베었다. 분수처럼 피를 뿜어내는 한 마리의 소형몬스터를 처리했다.
 그 희열도 잠시.
 쿠웅.
 지켜만 보던 5m에 이르는 부대급 몬스터가 소형 몬스터들과 함께 정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더 안 좋게 변했다.
 정우는 분명 표정을 굳혔으나 기이하게도 그의 입가는 희미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방금 전 일격에서 느낀 짜릿한 전율이 아직도 몸에서 가시지 않았다. 상대의 몸을 파고드는 손맛, 10년의 전쟁을 경험하면서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아니 어쩌면 즐기기까지 했던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
 떨림이 멎질 않는다. 극심한 갈증이 정우를 재촉했다.
 ‘더, 조금 더······.’
 주변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소형 몬스터의 공격이 이어진 것이다. 다시 한 번 사방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같은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소형 몬스터는 가볍게 피하며 정우를 괴롭혔다. 그러는 사이 한 마리의 몬스터가 정우의 등에 붙었다. 이대로 두면 목이 물어뜯길 위험이 있었기에 정우는 한 손을 목 뒤로 뻗으며 소형 몬스터의 얼굴을 강하게 쥐었다. 곧바로 엎어치기를 하듯이 소형 몬스터를 바닥에 팽개치며 검으로 머리통을 쑤셨다. 그 짧은 순간, 남은 몬스터 한 마리가 정우의 발목을 그었다. 뼈가 보일 정도의 큰 상처였지만 무시하며 또 다른 한 마리의 소형 몬스터를 죽였다.
 키엑!
 단말마를 뱉으며 바닥에 늘어진 소형 몬스터.
 이걸로 세 마리를 처리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었다.
 “하아, 하아······.”
 지독한 흥분이 고통을 덜어 줌에도 곳곳에 난 상처가 욱신거렸다. 특히나 발목은 유독 심했는데 아무리 참을성이 좋은 정우라도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럴수록 정우는 더욱 강한 갈증을 느꼈다.
 ‘아직, 부족해.’
 전장을 경험한 그의 정신이 피를 갈구했다.
 조금 더 많은 피를.
 그때 측면에서 날아드는 소형 몬스터의 손톱을 피하며 앞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마침 주먹을 휘두르고 있던 부대급 몬스터의 발목을 다시 한 번 노렸다. 같은 곳을 베었기에 상처가 더욱 깊어졌다. 동시에 몸을 반대로 틀며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검이 다가오던 소형 몬스터의 가슴을 뚫고 나아갔다. 그대로 발을 뻗어 소형 몬스터를 차서 날려 보내고는 남은 한 마리의 소형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상처로 인해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처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허억, 허억······.”
 호흡이 거칠다.
 게다가 온몸이 녹색 진액으로 더럽혀진 상태였다.
 상처는 욱신거리고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입꼬리는 올라갔다.
 본능이 침식하기 시작한다. 피에 굶주린 야성이 눈을 뜨기 위해 발광했다. 이성이 잠식되면서 정우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죽기 위해서 검을 휘둘렀다.
 끝도 없이 몬스터를 죽이고 상처입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지내 왔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군. 나쁘지 않지.’
 하루가 멀다 하고 피를 보던 그때였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가족의 얼굴들······ 아직 살아 있는 그들이.
 ‘아······.’
 그랬다. 지금은 달랐다.
 복수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 검을 휘두른다.
 그 차이가 정우의 이성을 잡아끌었다.
 피를 갈구하던 본능이 서서히 가라앉고 현실이 보였다. 남은 부대급 몬스터 한 마리. 정신을 차린 정우는 다시 한 번 몬스터의 품으로 파고들며 몸을 숙인 채 검을 휘둘렀다. 또다시 같은 곳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그 탓에 힘줄까지 끊어졌는지 몬스터가 휘청하더니 한쪽으로 기울었다. 5m의 거구가 바닥과 충돌하면서 엄청난 소리를 남겼다.
 쿠웅.
 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정우는 손등으로 눈을 가린 채 몬스터의 머리로 달려들어 번뜩이고 있던 눈을 찔렀다. 손잡이만 보일 정도로 깊숙이 들어갔다.
 키에에에에엑!
 고통이 심했는지 몬스터가 크게 울부짖으며 발광했다.
 다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어느새 다가온 몬스터의 손에 왼팔이 잡히고 말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기분에 정우도 괴성을 내질렀다. 하나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우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을 끊임없이 휘둘렀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
 서서히 몬스터의 주먹이 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윽고 자유의 몸이 된 정우는 일단 뒤로 물러났다. 먼지가 모두 가라앉으면서 몬스터의 모습이 확실하게 두 눈에 들어왔다. 눈을 찌른 것이 주요했는지 부대급 몬스터는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이겼나······.’
 확인 사살을 위해 다시 한 번 다가가 남은 눈을 파 버렸다. 여전히 몬스터는 움직임이 없었다. 그제야 정우는 걸음을 옮겨 벽에 몸을 기대었다. 멍하니 있는데 갑작스레 실소가 터졌다.
 “큭, 크큭.”
 이겼다.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켜 냈다.
 그런 정우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부대급 몬스터 한 마리 처치
 -소형 몬스터 다섯 마리 처치
 -비기너 경험치 획득
 -비기너 등급 상승
 
 과거였다면 홀로그램은 거기서 끝났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홀로그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초의 비기너 8등급 달성
 -‘비기너를 이끄는 자’칭호 획득
 
 동시에 정우의 몸에서 빛이 뿜어졌다.
 그 빛은 빠르게 흡수되더니 정우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으스러졌던 왼쪽 팔과 발목 그리고 곳곳에 생긴 생채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윽고 정우의 신체가 조금 변화했다. 내부의 뼈들이 치유되면서 그 형태가 살짝 달라진 것이다. 자연스레 근육의 형태 역시 그 신체에 가장 알맞게 변화한다. 등급 업을 할 때마다 경험했던 현상이지만 무언가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정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자신의 신체를 느끼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더 단단해지고 강해졌다.
 겨우 1등급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 하나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직접적으로 경험했기에 감히 무시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빠른데.’
 아무래도 부대급 몬스터를 잡은 게 주효했던 모양이다.
 ‘그보다 칭호라······.’
 정우가 마음으로 속삭였다.
 ‘상태 창.’
 그러자 새로운 정보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메테오 : 비기너 8등급
 칭호 : 비기너를 이끄는 자
 효과 : 공격력 10퍼센트 상향 적용
 몬스터 웨이브 비기너 1단계 발생
 미션 : 몬스터 한 마리 이상을 죽일 것
 보상 : 성과에 따른 비기너 경험치 획득
 
 칭호가 눈길을 끌었다.
 ‘공격력 10퍼센트······!’
 어마어마한 수준의 효과였다.
 ‘이런 비밀이 숨어 있을 줄이야.’
 정우의 눈이 빛났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과거로 돌아오면서 최초의 비기너 8등급이 되었고 자연스레 이러한 비밀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랬군. 그래서 상위에 있던 플레이어들 중에서 그런 괴물이 많았던 건가?’
 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최초.’
 괜스레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강해지자, 누구보다도 더.’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달성해야 할 것이 있었다.
 ‘비기너의 다음 등급.’
 그때가 되면 보다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자, 그럼 다시 기다려 볼까?’
 정우는 가벼워진 몸을 이끌고 집 근처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아직 몬스터 웨이브가 끝나지 않았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건물 유리 너머로 바깥이 보였다.
 5m에 이르는 거대한 괴물이 건물을 무너트리고 사람을 잡아먹는 모습을 봤다. 비현실적인 모습이었지만 신체는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인지 온몸이 바들거리며 떨렸다. 맹수를 앞에 둔 토끼와 같았다.
 연약한 여인과 그 여인이 보호하는 한 아이. 그 두 사람도 괴물의 먹이가 되려는 순간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한 자루 검을 들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기만 하던 그가 갑자기 몬스터에게 돌진했다. 건물 안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많은 이들이 눈을 감았다.
 ‘미친 짓이야······. 죽었겠지?’
 그런 상념과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났으리라 여겼다.
 한데 사내는 살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괴물이 내뱉은 알에서 태어난 새끼 괴물 다섯 마리를 상대해 냈다.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는 결국 새끼 괴물 다섯 마리를 모두 처리하고 거대한 괴물에게 돌진했다. 발목을 공격해 쓰러트리더니 그의 눈을 찔러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아······.”
 지켜보던 모두가 경악했다.
 “이, 이겼어.”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거 아니지?”
 많은 이들이 그 장면을 봤다.
 이윽고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지옥에서 살아나온 기분이었다.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고 그 괴물을 잡아 버린 영웅. 문득 그의 정체가 궁금해진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다시 유리 쪽으로 향했다. 하나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을 위로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또다시 진동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다급히 고개를 틀어 저 먼 곳을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로 어둠이 흘러내린다.
 절망, 좌절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둔 이의 공포까지.
 “끄, 끝났어······.”
 그보다 더 명확한 말은 없었다.
 누구도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사내가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수십 마리의 괴물들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그렇게 확신했다.
 
 정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스물? 아니, 서른인가?’
 아마 그 사이일 것이다.
 다행히 부대급 몬스터는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이 2m나 3m 수준의 크기였다.
 평범한 비기너 1단계의 몬스터들인 것이다.
 능력으로만 본다면 비기너 9등급 플레이어 혼자서도 지금 나타난 몬스터들 몇 마리는 충분히 사냥할 수 있다. 다만 겁을 먹으면서 몸이 굳어진다는 사실과 경험이 부족해 치명적인 공격을 주저한다는 게 문제였다.
 어떤 생명을 쉽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현재 플레이어들의 문제점은 바로 그거다. 그 부분만 고칠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몬스터 웨이브를 모두 막아 낼 수 있을 터였다.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이미 미래를 알기에 단정할 수 있었다.
 정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옥상에서 내려왔다.
 ‘한 번에 상대하는 건 힘드니······.’
 아무래도 몬스터들이 소규모로 흩어졌을 때 각개격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사이 일반인들이 피해를 입겠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목검 가방을 어깨에 멘 채로 거리를 거닐었다.
 정면으로 나아간다면 다가오는 이삼십 마리의 몬스터와 마주칠 것이다. 해서 정우는 중간에서 샛길로 빠졌다. 조금 더 나아가다가 다시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보니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정확히 파악되었다. 몇 마리의 몬스터는 이미 건물을 부수며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나머지 몬스터는 적당한 먹잇감을 노리며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몇 마리가 오른쪽 길로 들어서는 모습을 확인했다. 정우는 눈을 빛내며 건물 옥상에서 내려와 달리기 시작했다.
 “후읍, 후우.”
 동시에 어깨에 메고 있던 목검 가방을 열어 검을 쥐었다.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자 예리한 금속성이 퍼지면서 정신을 차갑게 만들어 줬다. 검을 아래로 늘어트린 후 조금 빠른 속도로 달려가던 정우가 급하게 속도를 줄이더니 자리에 멈췄다. 멀지 않은 곳에서 몬스터의 괴성이 울렸기 때문이다. 목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벽을 따라 조심스레 움직였다.
 키에에엑!
 소리는 왼쪽에서 나고 있었다.
 ‘몇 마리지?’
 벽의 끝에서 멈춘 정우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내 고개를 살짝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의외의 장면이 시선을 자극했다.
 
 여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머니가 시킨 심부름 때문이었는데 가는 내내 여동생과 투덕거렸다. 마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싸우고 무시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다시 여동생의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화를 낼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그런데 갑작스레 신체에 변화가 일어났다. 마치 무협에서 보던 환골탈태처럼 몸의 뼈가 어긋나고 그 어긋난 뼈에 맞춰 근육이 변화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괴물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부모님이야 세대가 있어서 인터넷을 못 했고 여동생과 난 바쁜 탓에 인터넷이나 TV를 보지 못했다. 그 사소한 실수 하나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키아아아아악!
 괴성을 지른 몬스터가 여동생을 노렸다.
 본능적으로 여동생을 뒤로 밀치고 그 몬스터의 공격을 받았다.
 “크윽!”
 “오, 오빠······!”
 언제나 싸우기만 하던 여동생이 울먹거리며 날 걱정해 줬다.
 나 역시 이상할 정도로 여동생이 걱정되었다. 내 목숨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그래도 여동생부터 살리고 싶었다.
 “괜찮아. 내가 막을 테니까 일단 도망쳐.”
 “오빠만 두고 가라고······?”
 “그래. 나 혼자는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빨리!”
 “시, 싫어!”
 미련스럽다. 정말로 미련하다.
 평소에는 자기 편한 것만 골라서 하던 녀석이 왜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는 그러지 않는 것인지.
 “꺼지라고!”
 화가 났다. 아니, 일부러 화를 냈다.
 그때 또다시 몬스터가 팔을 휘둘렀다. 그 공격을 맞고 한참을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크, 으윽······.”
 이상한 것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타격을 받고서도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용기를 냈다.
 나도 살고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 무언가가 바로 주먹질이었다.
 후웅.
 또다시 날아오는 몬스터의 팔을 똑바로 쳐다봤다.
 궤적이 눈에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며 품으로 파고들어 주먹을 강하게 꽂았다.
 키에에에엑!
 충격이 있는지 몬스터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토, 통한다!’
 힘이 났다.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동생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지쳤음에도 다시 한 번 눈앞의 몬스터에게 달려가 공격을 퍼부었다.
 키엑! 키에에엑!
 하나 몬스터는 쉽사리 쓰러지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몬스터가 몸을 틀었다. 갑작스레 날아온 꼬리를 맞고 또다시 날아갔다. 다급히 몸을 추스르고 정면을 보는데 싸우는 소리를 듣고 다가왔는지 몬스터 두 마리가 새롭게 늘어 있었다.
 “젠장······!”
 이젠 방법이 없어 보였다.
 도망치기 위해 뒤를 바라봤다.
 그곳에도 한 마리의 몬스터가 길목을 차단한 상태였다.
 원망의 시선으로 여동생을 바라봤다.
 “내가 먼저 가라고 했잖아!”
 “시, 싫어! 오빠만 두고 어떻게 가냐고!”
 “빌어먹을!”
 절망적인 상황이었음에도 눈빛만은 죽지 않았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해······.’
 고민하고 있는데 측면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무심한 표정에 흥미롭다는 시선을 내뿜는, 그러면서 손에 쥐고 있는 검을 가볍게 들어 올린 채 몬스터를 향해 나아가는 한 명의 사내였다.
 
 낯이 익은 사내였다.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였는데 아무래도 확인이 필요했다. 스스로의 호기심을 위해 앞으로 나섰다.
 몬스터는 네 마리.
 현재 정우는 비기너 8등급에 칭호 효과로 공격력이 10퍼센트 상승한 상태였다. 일반적인 비기너 1단계의 몬스터는 이제 전혀 두렵지 않았다. 너무 수가 많으면 위험하겠지만 세 마리까진 안정적이라고 판단했다.
 몇 걸음을 옮기다 사내를 쳐다봤다.
 “거기.”
 “예?”
 “저쪽에 한 마리만 맡아. 할 수 있겠지?”
 “아, 네······.”
 사내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를 지나치며 더 이상 관심을 끊었다. 한 마리를 상대로 버틴다면 호기심을 이어 갈 것이고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면 자신의 생각이 착각이었다고 여기면 될 일이다.
 ‘일단은······.’
 정우는 왼쪽의 몬스터를 노리며 달려들었다.
 등급이 올라서인지 움직이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생각보다 빠른 몸놀림에 몬스터도 놀랐는지 반사적으로 앞발을 휘둘렀다. 가볍게 피해 내며 검을 몬스터의 무릎에 박아 넣었다.
 키에에에엑!
 비틀며 뽑아낸 후 몬스터가 없는 왼쪽으로 물러나며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검도를 배우면서 습득한 퇴격 동작이었다. 그 한 번의 움직임으로 몬스터가 일렬로 나란해졌다. 정우는 서슬 퍼런 미소를 지으며 정면에 있는 몬스터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검을 휘둘러 반대편 무릎을 그었다. 그사이 두 마리의 몬스터가 달려들었다. 좌우로 압박하는 모습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다시 검을 내리그었다. 곧바로 검도의 보법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몬스터와 일렬이 되도록 자리를 잡았다. 집중적으로 공격했던 몬스터는 이미 회생 불능이었다.
 ‘두 마리 남았다.’
 두 마리라면 더 수월했다.
 정우는 망설이지 않고 다시 지면을 찼다.
 검도의 이어걷기 보법을 이용해 먼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아래로 늘어트리고 있던 검을 살짝 비틀며 몬스터의 허벅지를 베었다. 녹색 진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모습에 정우는 뒤로 물러서며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후우······.”
 확실히 공격력이 증가한 덕분에 상처를 내기가 쉬워졌다. 허벅지를 베어 움직임이 불편해진 몬스터를 집중적으로 공략해서 쓰러트린 후 회생 불능의 몬스터를 처리했다. 남은 한 마리는 목을 베어 내면서 마무리를 지었다.
 이후 곧바로 사내를 확인했다. 사내는 몬스터 한 마리를 상대로 잘 버텨 내고 있었다.
 무기가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정우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도와 마지막 몬스터까지 처리했다.
 “하아, 하아······.”
 거친 호흡을 뿜어내던 사내가 정우를 쳐다봤다.
 “가, 감사합니다.”
 “······.”
 정우는 그를 말없이 바라봤다.
 ‘확실히 낯이 익은데······.’
 누군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기에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었다.
 “이름은?”
 “아, 강명후라고 합니다.”
 정우의 눈이 커졌다.
 
 강명후, 그 이름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었다.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상위권 실력자들이 존재했는데 그들 중 한 명의 이름이 분명 강명후였다.
 맨손 격투로 이름을 날린 그는 훗날 상당한 업적을 남기며 많은 이의 뇌리에 크게 박혀 버린 사람이다.
 ‘이자가······.’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동명이인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보는 순간 분위기랄까? 그런 부분에서는 매우 흡사함을 느꼈다. 낯이 익었던 이유도 그러한 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난 정우다.”
 자연스레 반말이 튀어나왔다.
 지금의 강명후는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30대 후반까지 거칠었던 전장에서 지낸 정우로서는 오히려 반말이 더 자연스러웠다. 물론 지금이야 정우도 스물네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억지로 지금 나이에 맞춰서 행동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해서 그런 부분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듣고 있는 강명후도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마우면 좀 돕지?”
 “예?”
 “아직 몬스터가 많거든.”
 “아······.”
 그 말에 강명후는 고개를 돌려 여동생을 바라봤다.
 “여동생은 집까지 바래다주고 와라, 어차피 몬스터를 처리 못하면 언젠가는 모두가 죽게 될 테니까.”
 잠시 고민하던 강명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대답에 정우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강명후는 자연스럽게 폰을 받아 번호를 찍었다.
 “오면 전화하고.”
 “예.”
 대답한 그가 여동생과 함께 거리를 벗어났다.
 정우는 기척을 숨긴 채 그를 뒤쫓았다. 번호를 받기는 했지만 확실한 것도 아니었고 온다고는 했지만 숨어 지낼지도 모른다. 해서 만약을 위해 그의 집을 알아 놓을 생각이었다. 구해 준 만큼의 보답은 확실하게 받아 내야 했으니 말이다.
 얼마나 그를 뒤쫓았을까, 한 허름한 건물로 들어서는 둘을 볼 수 있었다.
 ‘저긴가?’
 한눈에 보기에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형편이 좋지 않음을 깨달았지만 정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플레이어가 된 이상 살아만 남는다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일 테니까.
 ‘뭐, 집은 확인했고.’
 정우는 방향을 틀어 몬스터가 설치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플레이어가 되면서 전체적인 신체 능력이 향상된 터라 한참을 달려도 그리 지치지 않았다. 호흡이 거칠어지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체력은 여전히 충분했다. 그렇게 10분을 달린 끝에 저 멀리서 건물을 부수고 있는 몬스터를 발견했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사방으로 도망치는 중이었다.
 “꺄아아아악!”
 “사, 살려 줘!”
 그들도 정우가 있는 곳으로 왔고 정우도 그들을 향해 달리니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사람들은 다가오는 정우를 의아하게 보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정우도 그들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가까워질 무렵 달려오던 사람들이 주춤거렸다. 정우의 손에 들린 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우가 여전히 달려오자 정면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며 좌우로 길을 비켜 줬다. 앞에서 길을 비키니 자연스레 뒤에 있던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일단 물러났다. 덕분에 몬스터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한 마리군.’
 그럼 망설일 것도 없었다.
 정우는 속도를 더 높였다. 그런 정우를 바라보던 일부의 사람들은 도망치는 것도 잊고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와 몬스터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설마······ 저 괴물을 상대하려고?’
 호기심이 도망치는 것조차 막았다. 이윽고 정우와 몬스터가 가까워졌다. 몇 명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정우를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기감이 발달한 정우는 물론 그런 시선을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플레이어 각성자는 어차피 알려질 일이었다.
 파밧.
 몬스터의 지척에 도달한 정우는 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몬스터가 특유의 소리를 내뱉으며 그 공격에 적중당했다. 고통스러운지 뒤로 물러섰지만 이내 분노하며 정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키에에에엑!
 비기너 1단계 몬스터였기에 특별한 공격 수단이 없었다. 덕분에 정우는 쉽사리 몬스터를 처리했다. 3m에 이르는 거대한 몸집을 지녔지만 그래서 더 둔하고 느렸다. 죽은 몬스터 시체를 바라보다가 주변을 훑었다. 순식간에 몬스터를 죽여 버린 정우의 시선에 사람들은 흠칫거리며 놀랐다. 하나 이내 환호를 내뱉었다.
 “우, 우와아아아아!”
 “괴물이 죽었어!”
 의외의 상황에 오히려 정우가 당황했다.
 ‘뭐야, 이건······.’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도와줬지만 그들은 오히려 겁을 먹으며 정우를 경계했다.
 한데 지금은 아니다. 의외의 상황에 정우는 당황했다.
 ‘환호라니······.’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정우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선 순간 전화가 울렸다.
 강명후였다.
 
 약속한 장소에서 도착하니 강명후가 보였다.
 “아, 여깁니다.”
 “왔군.”
 “당연하죠. 목숨을 구해 줬으니까요.”
 “뭐, 좋아. 왔으니 나도 알려 줄 건 알려 줘야지. 속으로 상태 창이라고 외쳐 봐. 강하게 의지를 담아서.”
 “예?”
 강명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우는 두 번 말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묵직한 시선에 강명후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눈을 감았다. 아마도 집중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대략 1분을 기다린 끝에 그가 놀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이, 이게 뭐죠?”
 “플레이어 상태 창이다. 지금 네 상태를 대략적으로 알려 주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몬스터를 만나기 전에 몸에서 변화를 느꼈을 텐데?”
 강명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플레이어로 각성했다는 증거다. 네가 봤던 것은 지금의 상태를 대략적으로 알려 주는 지표 같은 거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RPG게임은 해 봤겠지?”
 “아, 네.”
 “게임의 캐릭터 창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아······.”
 강명후가 문득 궁금했는지 의문을 가득 담은 채 입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정우가 먼저 선수를 쳤다.
 “나도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라.”
 “그, 그렇겠죠.”
 “그래. 아무튼 몬스터를 잡으면 등급이 오른다. 등급이 오르면 더 강해지고.”
 강해진다는 소리에 강명후의 표정이 달라졌다.
 “강해지면 지킬 수 있다.”
 무엇을? 그런 질문 따위는 없었다.
 강명후는 그저 의지를 되새긴 시선으로 정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지.”
 “알겠습니다.”
 어디로 갈지도 묻지 않았다.
 앞서 몬스터를 잡으면 강해진다고 설명했고 이제 가자고 말을 했다. 가야 할 장소는 당연히 몬스터가 있는 곳. 해야 할 일은 그것들을 죽이는 것이다. 짧은 말이었지만 강명후는 모두 알아들은 것 같았다.
 ‘생각보다 똑똑한 녀석인데.’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중 저 멀리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의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소규모로 따로 돌아다니는 몬스터만 노리다 보니 어느새 모여든 이삼십여 마리의 몬스터를 모두 죽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몬스터를 정우가 죽였음에도 등급은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하고 있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문제는 반드시 가야 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몬스터가 언제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집을 비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강명후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이 문제로 상당한 시간을 소모해야 했을 터였다.
 “보답하겠다고 했지?”
 “물론이죠.”
 “좋아.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 줘야겠는데.”
 “예?”
 “지내면서 몬스터들이 오면 우리 가족을 좀 지켜 줘.”
 정우의 가족들을 지키면 강명후는 성장할 기회가 축소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정우는 그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내가 강해져서 키워주면 되니까.
 “어때?”
 “으음, 가족들이······.”
 “가족들도 데려와서 함께 지내.”
 “그래도 됩니까?”
 “물론.”
 그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은 정부도 잘 신경 쓰지 않는 법이다. 반면 도심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몬스터가 나타났으니 이곳으로도 군대를 보낼 터. 그들의 보호를 받는다면 조금이라도 더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가족과 지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강명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좋아, 바로 데리러 가자고.”
 “예.”
 곧바로 강명후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가족은 처음엔 당황한 표정이었다.
 “명후야, 이게 무슨 소리냐?”
 “엄마. 일단은 제 말을 들어주세요. 지금 괴물이 나타나고 난리가 아니에요.”
 “인아한테 듣기는 했다만 농담이 아니었어?”
 “아니에요. 그러니까 도심으로 가서 군인들의 보호를 받는 게 더 나아요. 여기 있다가 괴물들이 나타나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어머니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강명후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아들이기에 믿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러마.”
 “고마워요. 인아야, 너도 짐 챙겨.”
 “응!”
 강명후의 여동생인 강인아는 단숨에 대답하며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생활력이 강해 보였다. 정우는 피식 웃으며 그들의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약 30분이 흐르고서야 대략 정리가 끝났는지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한데 짐이 꽤나 많았다. 다행히 강명후가 사전에 친구에게 부탁을 한 모양이었다. 그 친구가 차량을 끌고 왔고 그 차량에 짐을 실어 정우의 집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오빠, 우리 괜찮을까?”
 “그럼.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치, 지켜 주기는······.”
 강명후는 희미하게 웃으며 강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전이었다면 치우라며 소리를 쳤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오늘 있었던 사건으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한 셈이다. 덕분에 조금은 부끄러워도 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정우가 입을 열었다.
 “여깁니다.”
 차량이 정지했다. 운전을 해 준 그에게 인사를 한 후 짐을 챙겨 정우의 집으로 향했다. 정우는 창문을 통해 몰래 방으로 들어간 후 거실로 나와 문을 열어 줬다. 갑자기 우르르 모여드는 낯선 사람들을 보며 가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우야, 이분들은······?”
 정우가 강명후를 쳐다봤다.
 “제가 아는 동생이에요. 이분들은 가족인데 괴물들에 의해 집이 무너졌다고 해서 제가 우리 집에서 잠깐 지내라고 했어요.”
 “그랬구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강명후의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고생 많으셨네요. 들어오세요.”
 “아, 너무 염치가 없어서······.”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결국 강명후와 그의 가족이 거실로 들어왔다.
 아직 쭈뼛한 분위기였지만 나쁘진 않았다.
 몬스터가 나오는 세상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아드님이 참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겼는데요.”
 “그쪽 아드님이 더 멋진걸요.”
 “어머.”
 두 사람은 마음이 맞는지 생각보다 빠르게 친해졌다.
 그런 둘을 바라보던 정우는 안도하며 강명후와 강인아가 지낼 방을 보여 줬다. 쓰지 않는 방 두 개가 있었기 때문에 강인아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쓰고 강명후가 혼자 써야 할 것 같았다. 전에 살던 곳은 거실 하나에 방 하나가 전부였기에 강명후와 강인아 모두 만족했다. 정우는 강명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늘 함께 다니면서 몬스터에게 익숙해진 강명후는 이제 두 마리 정도가 붙어도 충분히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내일까지는 상황을 더 지켜본 후 모레쯤 그에게 가족을 부탁한 후 집을 나서기로 결정했다, 하루 정도는 비워도 될 테니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군인들이 정우가 살고 있는 인천 연수동에 배치되었다. 이틀 동안 연수동에는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는 지금도 몬스터의 습격을 받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하나 그런 부분을 정우가 모두 신경 쓸 수는 없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해도 가족의 안위였다. 때문에 훗날을 위해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정우는 가족 몰래 집을 나섰다. 목적지가 멀지 않기 때문에 금방 갔다가 돌아온다면 들키지 않을 것이다.
 “후우, 불안하네.”
 “나도 그냥 집에 갈까?”
 “그러자.”
 이틀간 몬스터가 나오지 않은 덕분에 거리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무심히 그들을 지나쳐 아버지의 차가 주차된 곳으로 향했다. 이내 차량에 올라 시동을 건 후 목적지로 출발했다.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는 지역은 무작위다. 다만 첫 번째 웨이브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만큼 큰 이슈를 몰고 왔다. 덕분에 몇 군데는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대략적인 위치였기에 그곳에 직접 가서 뒤져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했다. 게다가 그 웨이브를 지키는 수호 몬스터도 처리해야 한다. 웨이브 근처이기 때문에 몬스터도 꽤 많을 터였다. 힘겨운 싸움이 되겠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가는 길에 DMB를 틀었다.
 딱히 볼 게 없었지만 그래도 틀어 놓은 채로 이동했다.
 약 30분이 지나고 뉴스가 나왔다.
 
 -현재 몬스터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나타나 엄청난 규모의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정부는 다급히 군대를 파견했지만 한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실정입니다. 그 와중에 미국이 발 빠른 대처로 몬스터 협회를 설립하면서 전 세계의 나라들이 그곳에 가입하기 위해 움직이는 중입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몬스터······.
 
 정우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직 플레이어는 밝혀지지 않은 건가?’
 과거에는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레이어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힘이 생기면 쓰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다. 힘을 사용하다 보면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면 플레이어라는 각성자가 생겼음이 드러날 터였다. 아마 이번 삶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흘러간 상황은 모두 같아.’
 앞으로도 크게 다를 게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움직이면서 변할지도 모르지.’
 스스로의 움직임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래의 흐름이 어긋나는 걸 두려워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알고 있는 미래의 지식을 모두 이용해 힘을 기를 생각이다. 그래서 미래가 달라지고 그로인해 위협이 생긴다면 쌓아 올린 힘으로 앞을 가로막는 그 모든 것을 무너트릴 것이다.
 주먹을 강하게 쥐며 다시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 와중에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사람이 있다는 기이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일부의 영상이 흐리게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가운데······.
 
 정우의 예상대로였다.
 ‘곧 밝혀지겠네.’
 이내 운전이 신경을 쏟았다.
 1시간 30분을 조금 넘게 이동해 경기도 가평에 도착했다. 불기산 산책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은 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세상이 흉흉하니 집을 잘 나서지 않은 탓이다. 덕분에 조용히 주변을 탐색할 수 있었다. 최대한 훑으면서 산을 오르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몬스터 몇 마리가 시야에 잡혔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살폈다.
 ‘세 마리라······.’
 산이라는 지형에서는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하나 그것은 몬스터도 마찬가지일 터.
 정우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면서 몬스터에게 접근했다.
 이후 돌멩이 하나를 쥐어 던졌다. 그 돌멩이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 몬스터의 뒤통수를 때렸다. 미약한 충격이겠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때렸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지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주변을 훑었다. 그러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정우를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나머지 두 마리도 정우를 보고는 먹잇감으로 여기고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정우는 희미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거리가 반으로 좁혀졌을 무렵 등을 돌려 전력을 다해 산을 내려갔다. 혹시나 주변에 다른 몬스터가 있어 소리를 듣고 달려오면 곤란하기 때문에 몬스터가 없는 아래쪽에서 세 마리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한참을 달리던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몬스터와의 거리가 좁혀진 상태였다. 더 도망쳤다가는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 몸을 돌린 정우는 뒤로 물러나면서 검을 앞으로 찔러 넣었다. 정우가 뒤로 물러나던 속도보다 다가오던 몬스터의 속도가 훨씬 빨랐기 때문에 몬스터가 검을 향해 돌진하는 형태가 되었다.
 몬스터는 그대로 목이 뚫리며 괴성을 질렀다.
 키에에에엑!
 물러서던 것을 멈추고 앞으로 나아가며 몬스터의 복부를 발로 차 검을 뽑아냈다. 그 순간 정면에 있던 몬스터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몬스터 한 마리가 옆으로 튀어나왔다. 그 몬스터가 주먹을 휘둘렀다. 정우는 다급히 몸을 숙이면서 한 바퀴 회전했다. 자연스레 손에 들고 있던 검이 휘둘러지면서 몬스터 두 마리의 허벅지를 베었다. 곧바로 뒤로 물러나 상황을 살폈다. 목이 꿰뚫린 몬스터는 비틀거리고 있었고 주먹을 휘두른 몬스터는 달려들고 있었다. 마지막 한 마리의 몬스터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오기 전에 처리한다.’
 정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동시에 지면을 빠르게 밀어내면서 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검도의 상단세와 흡사한 자세였다.
 일격필살의 기세를 담은 채 몬스터가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사정거리에 도착하는 순간 온 힘을 다해 들어 올리고 있던 검을 강하게 아래로 내리그었다.
 서걱.
 몬스터의 머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솟구치는 녹색의 피를 무시하며 앞으로 달려갔다. 목이 꿰뚫린 채 비틀거리는 몬스터를 마무리한 후 여전히 달려오고 있는 마지막 남은 몬스터에게 다가갔다.
 이동속도가 느렸지만 파괴력은 좋아 보였다.
 조금 긴장하면서 주변을 맴돌았다.
 크아아악!
 몬스터는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손에 잡히기만 하면 으깨어 먹어 버릴 것처럼 살벌했다. 물론 그런 휘두름에 잡힐 정우가 아니었다. 비기너 9등급도 혼자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를 8등급인 정우가 어려워 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거기에 칭호 효과로 공격력까지 10퍼센트 상승했으니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스윽.
 휘둘러지는 검날에 몬스터의 살가죽이 베어졌다.
 연이은 공격에 몬스터가 쓰러졌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일어났다. 그 먼지가 걷히길 기다린 후 사체를 바라봤다. 저것들을 판다면 상당한 돈을 벌 수 있다. 하나 지금의 정부는 몬스터 사체를 사지 않는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 할 터였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우는 다시 산을 오르며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주친 몬스터만 십여 마리였다.
 다행히 소규모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하나 다섯 시간이 넘도록 몬스터 웨이브 장소를 찾지 못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칠 무렵이었다.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어깨를 짓눌렀다. 동시에 공기가 떨려 왔다.
 쿠웅.
 정우의 눈이 빛났다.
 ‘수호 몬스터······?’
 저 멀리 한 마리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몬스터는 정우를 직시하며 들고 있던 몽둥이를 내리찍었다.
 쿠웅.
 또다시 공기가 울렸다.
 몬스터의 위압적인 행동을 무시하며 조금 더 다가가 자세하게 살폈다. 다른 몬스터와는 달리 온몸이 근육 덩어리였다. 크기도 최소 4m 이상이었다. 한 대 맞으면 상당한 중상을 입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처리해야만 했기에 눈앞에 있는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했다.
 
 -비기너 1단계 웨이브를 지키는 수호 몬스터.
 -반경 1㎞ 내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불러 모을 수 있다.
 
 정우의 예상이 맞았다. 찾고 있던 바로 그 몬스터였다. 한데 그 몬스터는 정우를 발견하고서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 말은 저 수호 몬스터 뒤쪽에 웨이브가 있다는 소리였다. 수호 몬스터는 본래 웨이브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없으니 말이다. 떨어진다고 해 봐야 100m 수준일 것이다. 그에 희열이 올라왔지만 무작정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수호몬스터의 능력이 꽤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예전이었다면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 10년이 넘도록 몬스터와 싸우면서 저런 유형의 수호몬스터를 수도 없이 만나 봤다. 처음에는 무식하게 돌진해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 방법이 나왔다.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이었다. 수호몬스터의 반경을 확인한 후 그 반경에 있는 몬스터를 사전에 처리하는 것이다. 현재 정우와 마주하고 있는 수호몬스터의 반경이 1㎞다. 즉, 저곳을 기준으로 해서 주변 1㎞를 살펴보고 몬스터가 있으면 처리하면 된다. 그렇게 모든 몬스터를 처리한 후 수호몬스터를 상대한다. 그럼 수호몬스터의 능력은 무용지물이 된다. 방법을 몰랐던 초기에는 정우도 무식하게 돌진했다. 그 전투에서 죽을 뻔 하기도 했고 말이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게 이런 건가.’
 정우는 희미하게 웃으며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대략 두 시간을 더 돌아다닌 끝에야 수호몬스터와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제 수호몬스터의 능력은 경계할 필요가 없어졌다. 몬스터의 앞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한 후 체력을 회복했다. 이후 검을 늘어트린 상태로 거리를 좁혀 나갔다. 수호몬스터는 다가오는 정우를 보며 몽둥이를 내리찍었다.
 쿠웅!
 기파가 퍼지면서 정우의 머릿결을 흩날렸다.
 거대한 압박감에 검을 쥔 손이 미약하게 떨려 왔다. 그 정도로 수호몬스터의 기세가 강했다. 현재의 능력으로는 마주하는 게 무모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수호몬스터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기 때문이었다.
 저벅, 저벅.
 거리를 더욱 좁혔다.
 수호몬스터의 지척에 도달하고서야 걸음을 멈췄다.
 수호몬스터는 그런 정우를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수호몬스터의 영역이다. 그 말은 그 영역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도 수호몬스터는 공격을 하지 못한다는 소리다. 이건 정우에게 엄청 유리한 조건이다. 정면으로 부딪히면 지겠지만 수호몬스터의 영역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오랜만에 놀아 보자!”
 정우는 검을 머리끝가지 들어 올린 채 앞으로 나아갔다. 지면을 밟는 것과 동시에 온 힘을 다해 검을 내리그었다. 그에 수호몬스터가 몽둥이를 들어 검을 막아 냈다.
 카강!
 거친 소리와 함께 팔이 저려 왔다.
 정우는 뒤로 물러나며 허리를 베었다. 얕은 상처를 입혔지만 수호몬스터가 휘두른 몽둥이가 정우의 머리로 떨어지고 있었다. 황급히 몸을 틀었다. 몽둥이가 아슬아슬하게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크아아아악!
 수호몬스터는 열이 받는지 괴성을 질렀지만 역시나 정우를 쫓아오지 못했다.
 “후우······.”
 식은땀이 흘렀다.
 수호몬스터는 정말로 강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위태로웠지만 그래서 전율이 일었다.
 오랜 싸움을 경험하며 깨달은 게 있다.
 싸울수록 그 긴장감에 취한다는 것.
 강해질수록 더 강한 힘을 원한다는 것.
 정우도 다르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죽음의 위기를 느끼며 극한의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시선에 수호몬스터를 담으며 다시 한 번 지면을 찼다.
 수호몬스터의 몽둥이가 지면을 때렸다.
 퍼억!
 엄청난 소리를 내며 지면이 깊게 파였다. 다행히 몸을 날려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곧바로 일어나며 수호몬스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몽둥이를 회수하고 있던 수호몬스터는 정우의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서걱.
 근육으로 뒤덮인 살이 배이며 녹색 피가 흘러나왔다. 공격을 이어 가려고 했지만 수호몬스터의 몽둥이가 다시 휘둘러지는 탓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나 체력이 떨어진 탓일까, 몸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면서 몽둥이가 어깨를 스쳤다.
 “크윽!”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수호몬스터의 영역에서 벗어난 덕분에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지만 정우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수호몬스터 역시 전신이 상처였다. 녹색 피로 범벅이 된 수호몬스터와 붉은 피로 뒤덮인 정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글거렸다. 거친 숨결을 뿜어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지쳤지만 수호몬스터도 상처를 입었을 때 더 몰아붙여야 한다. 시간을 주면 몬스터의 특성상 빠르게 상처가 아물기 때문이다. 검을 앞으로 내밀며 거리를 좁혀 나갔다.
 ‘무겁다······.’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럼에도 들어 올린 검을 휘둘렀다. 몬스터는 그 공격을 무시하며 정우를 죽이기 위해 몽둥이를 내리찍었다. 정우는 몸을 틀면서 다시 한 번 검을 찔렀다. 몬스터의 무릎에 꽤나 깊숙이 박혔다.
 후웅.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며 바닥을 굴렀다.
 “하아, 하아······.”
 수호몬스터는 지치지도 않는지 또다시 달려들었다.
 영역을 벗어날까 고민하던 정우는 이대로는 끝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정면으로 부딪치기로 작정했다. 날아드는 몽둥이를 정확하게 바라본다. 궤도를 읽어 낸 후 방향을 꺾으며 수호몬스터에게 다가갔다.
 “그만 죽어라!”
 수호몬스터의 허벅지를 차고 위로 뛰어올라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공격력이 증가하는 칭호 옵션 덕분에 생각보다 더 깊게 박혔다.
 크아아아아악!
 수호몬스터가 발광하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체력을 모두 사용한 정우는 그 무분별적인 공격에 얻어맞은 후 뒤로 날아갔다. 나무 기둥에 박히며 정신을 잃었다. 동시에 목이 꿰뚫린 수호몬스터가 쓰러졌다. 정우의 신체가 다시 한 번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둠이 몰려갔다.
 “으음······.”
 신음과 함께 눈을 뜬 정우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자신의 몸이 너무 멀쩡한 것을 발견했다. 뒤이어 쓰러진 수호몬스터의 사체가 눈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아······.”
 바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음으로 생각하니 자연스레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예상대로 비기너가 한 등급 상승해 있었다.
 일반 몬스터 수십 마리를 잡으면서 경험치가 많이 차오른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일반 몬스터보다 경험치가 많았다. 부대급 몬스터도 그러한 유형이었고 수호몬스터도 그와 비슷했다. 몬스터 웨이브야 대한민국 곳곳에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그곳에 존재하는 수호몬스터를 모두 사냥하면 상당히 높은 등급까지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일단은 웨이브부터.’
 홀로그램을 끈 후 천천히 나아갔다.
 한 등급이 오르면서 신체가 또다시 발전했기에 산을 오르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주변을 샅샅이 뒤진 끝에 결국 웨이브 지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우는 눈을 빛내며 검을 내리그었다.
 오직 플레이어만이 웨이브를 깨트릴 수 있다. 다만 능력이 미약한 탓에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었다. 검이 웨이브에 닿으면서 기이한 소리를 냈다. 그러나 정우는 신경 쓰지 않고 끊임없이 검을 휘둘렀다. 대략 스무 번을 내리쳤을 때 웨이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와라······!’
 기대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퍼엉!
 그 순간 웨이브가 터지면서 그 웨이브를 지탱하고 있던 물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자동적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최초의 웨이브 파괴자’ 칭호 획득
 
 정우의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웨이브를 파괴하면서 칭호를 얻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떨어진 물건은 분명히 반지였다.
 ‘허어.’
 그것을 바라보는 정우는 떨림을 주체하지 못했다. 웨이브를 유지하는 물건은 딱히 정해진 게 없다. 근처에 존재하는 물건에 힘이 깃들면서 웨이브를 유지하게 되는데 그 힘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냐에 따라 물건의 가치가 달라진다. 나뭇가지가 될 수도 있고 주변에 떨어진 라이터가 될 수도 있다.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특별한 힘을 선사하는 것들이기에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좋았다. 한데 이곳의 웨이브를 유지하고 있는 물건이 반지였다. 착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희소성은 어마어마하다. 왜 이런 곳에 반지가 있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물건에 웨이브의 힘이 깃들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정우는 곧바로 반지를 집어 들었다.
 ‘정보 확인.’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비기너 웨이브의 힘이 깃든 반지
 -힘 상승(5)
 -이동속도 상승(1퍼센트)
 -공격 속도 상승(1퍼센트)
 
 정우의 눈이 커졌다.
 ‘대박이다······!’
 엄청난 옵션이었다.
 힘 10이 일반 성인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힘 5는 그것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즉, 반지를 끼는 것만으로 일반 성인의 절반에 해당하는 힘이 더해진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이동속도와 공격 속도까지 붙었으니 몬스터에게 더 많은 타격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웨이브에서 이런 수확을 올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이템을 얻기 위해 웨이브를 파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 수확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겨우 1단계 웨이브 몬스터였기에 아주 자그마한 도움이 될 무엇이라도 나오면 만족이었으니까. 한데 이런 좋은 아이템뿐만이 아니라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최고의 기분이었다. 바로 칭호의 옵션까지 확인했다.
 
 -메테오 : 비기너 7등급
 -칭호(1) : 비기너를 이끄는 자
 -효과 : 공격력 10퍼센트 상향 적용
 -칭호(2) : 최초의 웨이브 파괴자
 -효과 : 체력 10퍼센트 상향 적용
 
 -몬스터 웨이브 비기너 1단계 발생
 -미션 : 몬스터 한 마리 이상을 죽일 것
 -보상 : 성과에 따른 비기너 경험치 획득
 
 칭호의 효과도 대단했다.
 체력이 무려 10퍼센트나 상승하는 옵션이었다.
 체력이 상승하면 신체가 더 단단해지고 근육이 오밀조밀해지는데 이것으로 인해 어떤 행동을 더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기도 하고 더 많이 맞아도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즉,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체력과 맷집이 증가하는 것이다.
 욕심이 생겼다.
 ‘더 많은 물건들과 칭호를 선점해야 해.’
 본래는 1단계 웨이브를 좀 더 끌고 갈 생각이었다. 너무 빨리 없애 버리면 다음 단계가 일찍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나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앞으로도 이 정도 수준의 물건이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나오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무조건 차지해야만 한다. 끝없이 강해질 몬스터들로부터 가족을 지켜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이다.
 순간 헛웃음이 났다.
 “큭······.”
 강해지기 위해 웨이브를 터트리면 2단계가 시작될 것이다. 더 강한 몬스터가 나타나고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또다시 강해져야만 한다. 그럼 더 강한 몬스터가 나타날 터. 반복되는 악순환이지만 언젠가는 끝나리라.
 그렇게 믿고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비극적인 모순이었다.

댓글(2)

홈즈홈    
설정을 거꾸로 했어야지 지키기 위한 전생 즉 호구의 삶이였다면 이젠 싸우기 위한 회귀 이케 가야지 작품소개만 읽어도 가슴이 답답하다 ㅋㅋㅋ
2017.07.23 10:18
악몽흉몽    
끝까지 어떻게든 읽었음. 앞으로 믿고 걸러낼 예정. 전체적으로 '설정'보다는 내용 늘리기식으로 진행됨. 주인공은 강하다. 위험이 없으니 악당이 더 강해진다, 과정은 주인공이 딴짓하거나 딴짓을 해야하게 만들거나.
2017.10.0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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