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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기사 1권 (1화)

2017.07.03 조회 4,088 추천 15


 왕의 기사 1권 (1화)
 프롤로그
 
 
 아우고스리력 3452년.
 프라마티뉴 대륙은 수십 개의 왕국을 비롯한 공국, 제국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러 국가들은 영토를 둔 분쟁과 종교 분쟁 등으로 치열한 격전지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제국들은 참여하지 않고, 느긋이 왕국과 공국들의 패권 다툼을 지켜보며 자신들에게 줄을 대는 왕, 공국들에게 식량과 전쟁 물자 등을 지원하며 이권을 챙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프라마티뉴 대륙의 5대 제국이라 불리는 모탄 제국의 어민이 신비의 섬이라고 불리는 섬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신비의 섬은 전설 속으로만 내려오던 곳으로 뱃길이 수십, 수백여 일에 해당하며, 가는 도중 각각의 어려움이 존재하여 전설, 즉 해괴망측한 ‘소문’으로만 여겨지던 것이 사실이었다.
 한데 이 신비의 섬, 즉 전설의 섬이라고 불리는 섬, 아니 대륙이 모탄 제국의 어민에 의해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 대륙은 그 크기가 프라마티뉴 대륙과 맞먹었고, 농사짓기에 알맞은 기후와 지형으로 인해 모탄 제국의 먹잇감으로 손꼽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대륙은 여러 부족들로 흩어져 있어 변변한 공국조차도 없는 미개한 족속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기에, 모탄 제국은 이들을 식민지로 삼아 이익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탄 제국의 꿈은, 제국의 정계에 깊숙이 박혀 있던 여러 제국들과 왕국의 간자들에 의해 대륙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서, 여러 국가들은 힘을 합쳐 전설의 대륙을 혼자 독식하려는 모탄 제국을 압박했고, 그들 모두 이 신대륙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전설의 대륙이라고 알려진, 마칸타스 대륙이 5제국을 비롯한 그들의 동맹왕국, 공국들에 의해 침략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부족으로 나뉘어진 그들에게 새로운 문명의 혜택과 종교의 혜택을 준다는 명목하에 침략을 했는데, 이 신대륙 원정대는 5제국을 비롯한 그들의 동맹국 약 20여 개 왕국과 13개 공국이 참여하기에 이른다.
 또한 그 병사들의 수만 보급병을 포함, 천만에 육박했는데 천만의 병사들로 손쉽게 신대륙을 점령해 나갈 수 있었다. 미개하게 부족 단위로 흩어져 사는 그들은 풍족한 식량과 군수물자로 무장한 원정군을 막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게 너무 쉽다 보면 다툼이 생기고 평화로운 시기가 지속된다면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원정대 또한 그러했다.
 그들은 5제국을 위시한 여러 파벌로 나뉘어 서로 영토를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서로의 이익을 좇아 허락되지 않은 영토까지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원정대는 여러 지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대륙의 식민들을 더욱더 차지하려 파벌로 나뉘었는데, 그들은 신대륙의 사람들을 무참히 도륙하고 강간하고, 노예로 부리기까지 이르렀다.
 한데, 또 사람 심리란 게 자신들을 괴롭힌다면 그 사람이 싫든 좋든 뭉치기 마련이었다. 신대륙민들도 그러했는데, 그들 중 마칸타스 대륙의 중부에 위치한 이름난 부족 중 하나인 사라하라는 부족의 칸인 사라하 칸이 중부를 통일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들을 필두로 대륙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점점 그들은 부족사회에서 공국 중심으로, 또 공국에서 왕국 중심으로 바뀌어 갔는데, 십수 년이 흐른 뒤 사라하 칸은 사라하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그들은 점조직된 게릴라군들로서 하여금 그동안 올라오는 프라마티뉴 대륙 원정군을 저지했는데, 마침 그들이 여러 파벌로 나뉘어 국지전 양상을 띠고 서로를 향해 이를 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자, 마칸타스 대륙에는 중부의 사라하 제국을 필두로 북부와 서부에도 여러 제국과 왕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프라마티뉴 대륙인들이 미개한 족속들이라 무시하고 노예로 부리던 마칸타스 대륙인들은 여러 왕국과 제국으로 바뀌어 갔고, 이에 프라마티뉴 대륙의 지도자들은 위협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해서 여러 파벌로 나뉘어 군권과 여러 이권을 두고 분쟁을 일삼던 프라마티뉴 연합군들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한 태양 아래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제국과 왕국으로 뒤바뀌어진 마칸타스 대륙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은 프라마티뉴 대륙의 체계적인 행정 체계와 군체계를 본받아 국가를 건설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전쟁은 계속되었고, 프라마티뉴 대륙군들은 서부와 남부를 점령하던 것에서 점점 밀려나와 남부만을 점령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은 계속해서 이권을 위해 마칸타스로 군대를 보냈는데, 그렇게 되자 어느 정도 당하기만 하던 마칸타스 대륙인들은 선박 기술을 스스로 익혀, 스스로 평화에 잠겨 있던 연합군들의 본 대륙인 프라마티뉴 대륙을 치기에 이른다.
 그 수가, 선박을 많이 만들 순 없었기에 50만 대군 정도를 이끌고 갔었는데, 그로인해 여러 왕국과 공국들이 혼란에 휩싸였고 더러 멸망하는 왕국과 공국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것일 뿐이었고, 그렇게 그들은 계속 공격과 방어를 일삼으면서 근 200여 년 동안 전쟁을 이끌었다.
 바로, 켄슬 전쟁이었다.
 
 아우고스리력 3634년.
 약 200여 년간 엄청난 물자, 인력을 투입하여 전쟁을 일삼던 프라마티뉴 대륙이었으나 마칸타스 대륙은 역시나 그렇듯 쉽사리 남부를 제외한 다른 곳을 내어 주지 않았다.
 그래도 마냥 실적이 없진 않았는지 수십 년 전에는 서부의 절반 정도 가량을 점령하여 서부에 존재하는 수개의 공국을 멸망시키기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지금은 남부 전체와 서부의 절반을 프라마티뉴 대륙이 점령하여 각 연합국의 군대가 지방마다 주둔하여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옆 지방에 있는 연합국의 군대와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혹여 연락이 끊긴다면 바로 대군을 이끌고 해당지방으로 모이게끔 정했다. 그렇게 그들은 그곳에서 나고 자라는 마칸타스 대륙인들을 무참히 노예로 부리거나 지배하고 있었다.
 두 대륙은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서로간의 뛰어난 문명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마칸타스 대륙은 프라마티뉴 대륙의 의식주 생활과 체계적인 행정과 군에 관련된 체계를 받을 수 있었고, 프라마티뉴 대륙은 마칸타스의 종이를 비롯한 도수 높은 술 등을 유입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높은 분들, 즉 귀족들에게만 돌아가는 혜택이었지 결단코 평민들에겐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로인해 그들 양 대륙민들은 잦은 민란과 폭동을 일으켰고 여러 왕조와 왕국들을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사태가 양 대륙, 전 지역으로 퍼져나가자 두 대륙은 대표 국가를 내세워 협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름 아닌 휴전협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바로 막 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직 검토 중에 있었고, 계획 중에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대륙인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제 지긋지긋한, 켄슬 전쟁이라 명명된 이 전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전장에서도 보이기 시작했는데, 대규모 전투만을 일삼던 양 대륙의 전선에서는 국지전 양상의 소규모 전투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전투가 필요할 경우에는 양 지휘관이나 그에 맞는 직책에 있는 이들과 협상을 하여 전면전 위주로 전투를 하게하여 게릴라 전투를 없애버렸다.
 이렇게 해서 평화라면 평화고 지속된 고통이라면 고통인, 켄슬 전쟁의 끝이 조금, 아주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1. 내 이름은 로터?
 
 
 양 대륙은 평화협정을 계획 중에 있었기에 앞서 말했듯 완전한 휴전이 맺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국지전 비슷한 전투와 양 지휘관들의 인정하에 대규모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프라마티뉴 연합군 소속 레노 왕국 진영.
 아무리 휴전이 윗대가리들에게서 계획과 검토 중에 있고 대규모 전투가 어느 정도 사라지긴 했지만 역시나 고통은 전장에서 적을 찢고 찌르는 병사들의 몫이었다.
 “사, 살려······ 줘! 주, 죽고 싶지 않아!”
 “어, 엄마아아!!”
 아무래도 대규모 전면전은 아니고 국지전 양상의 전투가 벌어진 모양인데, 곳곳에 아까 벌어진 전투의 흔적이 역력했다.
 여러 병사들이 팔다리가 베어진 자신의 동료를 보며 구토를 하고 있었고 그들의 구토를 유발하는 동료들은 자신의 팔다리를 보며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국지전이긴 하지만, 그 규모가 천 단위가 넘어가는지라 부상을 입지 않은 부대원들은 자리에 누워 잠시간의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제외한 국지전에 투입되지 않은 이들은, 전장의 한가운데 놓인 시체와 부상병들을 운송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여, 여······기!”
 한 병사가 죽음의 문턱에 놓임에 불안했는지, 자신의 위치를 손을 들어 알리자 수색 대원들이 눈길을 주고받고는 들것에 그를 들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적국의 병사들 또한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하고 있을 것이니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양 대륙군들은 이렇듯 서로 전투가 있은 뒤에는 암묵적인 합의하에 이런 수색을 허락하고 있었으나, 조금 전까지 개놈, 쌍놈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서로를 죽고 죽이던 이들이 쉽사리 화를 풀 수는 없을 것이기에 조심하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수색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이가 얕은 소리를 쳤다.
 “여기 부상병이다! 들것을 가져와!”
 전장의 습성상 부상병들은 많질 않았다.
 생각해 보라, 전투가 벌어지고 투입되어 바로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바닥에 누워 신음을 하고 있는 도중 후퇴 나팔이 불렸다.
 바닥에 누워 신음을 하고 있는 자들이 과연 후퇴를 하는 아군들에 의해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까? 그들은 대부분이 아군의 병사들에 의해 짓밟히며 죽어 간다.
 하지만 소수임에도 분명 부상병이 있긴 있었기에 이렇듯 수색대를 파견하여 부상병을 회수해 갔다. 그리고 방금 전처럼 들것을 든 병사들을 부른 것이고.
 “아오, 냄새. 내가 살긴 존나게 오래 살았나 봐, 이런 걸 보고 있다니.”
 한 병사가 코를 막고 동료와 들것을 들며 투덜거렸다.
 그의 앞에 있는 병사는 어깨가 짓이겨지고 복부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는데, 다행히도 삶에 지장은 없는 듯싶었다.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중요 장기들이 흐르지 않았고 상처가 벌어져 피가 철철 흐르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끝난 지 조금 된 시간이었기에 역한 피 냄새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 그러게······ 좀 심하긴 하다.”
 “아, 코가 썩어 간다 썩어 가.”
 계속해서 투덜거리는 병사 사이로 선임을 뜻하는 마크를 팔에 단 선임병이 외쳤다.
 “냄새난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어서 막사로 옮기지 못하냐?! 늦으면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어, 이놈들아!”
 선임병의 말에 그 둘은 투덜거리면서도 들것에 놓여 있는 병사를 막사로 옮기기 시작했다.
 선임병은 그들이 막사로 힘차게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누가 있나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제외한 병사들이 몇 없다는 걸 인지하고는 얼굴에 탐욕의 미소를 담고 시체들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선임은 한 기사의 시체를 뒤져 돈이 있나 살펴보고 냉큼 자신의 주머니로 그 돈을 옮기기 시작했다.
 반인륜적인 행위였으나, 할 수 없었다. 이곳은 전쟁터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다른 이들을 죽이는데 이런 것조차 회수하지 못한다면, 작은 이익이라도 얻지 못한다면 억울할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이런 전쟁의 뒷수습을 하기 위해 백인대장이나 천인대장 등의 중, 하급 지휘관들에게 돈을 찔러 넣어 준다.
 그에 따른 이익을 더 만들어 내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이기에 이리 악을 쓰고 기사들과 돈 좀 있어 보이는 병사들의 품을 뒤지는 것이다.
 아무튼 그 선임병은 계속해서 시체들을 뒤지고 다녔다. 그런데 그때 선임병의 눈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포착되었다.
 ‘보, 보석······?!’
 보석이라면 대박이었다. 누가 이런 전장에 보석을 품고 임하겠는가? 정말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려운 것이 보석 찾기인데······ 병사는 설마 하는 눈치로 반짝이는 것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크윽······.”
 고통이었다. 이십오 년을 살면서 단연코 이러한 고통은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군대에 있을 때 동료의 오발에 어깻죽지를 관통당했을 때도 겪지 못했던 고통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심해도 너무 심한 고통이었다. 총탄이 자신의 어깻죽지를 뚫었을 때보다도 더······.
 “제엔장······.”
 고통에 겨워 눈을 뜰 수조차 없었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인간의 적응력은 뛰어나다는 걸 보여 주듯, 어느 정도 고통이 몸에 적응되어 가자 조금이나마 실눈 비스무리하게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리고!
 “크헉!”
 그의 작디작은 눈에 비친 것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인세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까? 이곳은 인간세계의 지옥, 그 자체였던 것이다.
 옆에 보이는 주인 없는 손가락, 심지어 팔다리, 거기다가 상체를 잃은 하체들까지······.
 이건 양반이었다. 조금씩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다른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는데, 한 병사가 자신의 흘러나오는 장기들을 주워 담다가 삶을 마감했는지, 튀어 나온 내장을 잡고 있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거기다가 지시를 내릴 수 없는 머리에 무언가에 터져 버린 머리통들······.
 이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크윽······ 내, 내가 왜······?”
 의문이었다.
 온통 의문투성이었다.
 그는 그저 어제 불알친구 녀석과 거하게 술을 마신 뒤 집으로 귀가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집으로 잘 들어갔던 걸로 기억한다.
 한데······ 한데······ 이게 뭐란 말인가?
 그래, 이 고통은 그렇다고 치자, 정신을 잃은 사이 괴한에 의해 다쳤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참혹한 광경은 어찌 설명할 것이란 말인가?
 만약 자신이 다쳐 이곳이 병원이라면 이런 장면은 환자에게 보여 줄 수 없을 것이다. 어찌 이런 장면을 환자에게 떡하니 보여 준단 말인가?
 게다가 머리통이 터지고, 그 머리통에서 눈깔이 뒤집어 나온 모습을?
 도통 이해 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다.
 ‘그, 그래······ 꾸, 꿈일 거야. 꿈!’
 사내는 고통에 겨워 어찌할 줄 모르면서도 그저 이 모든 현상이 꿈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을 자서 일어나면 자신의 방일 거라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꿈이니까 깨고 일어나면 내 방일 거야. 잠이나 자자.’
 그리고 잠을 청하던 사내.
 하지만 그럼에도 쉽사리 잠은 오지 않았고 고통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거기다 이제는 역한 피 냄새까지도 술술 나고 있었다.
 사내가 어디서 다쳤는지 모를 배를 움켜잡고 얼굴을 찌푸렸다.
 “대체······ 대체 왜······?”
 역시 꿈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때, 자신에게로 누군가가 접근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반짝이는 것을 본 뒤, 그 선임 병사는 그 물체를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내딛는 발길이 쿵쾅쿵쾅 땅을 울릴 때마다, 그의 심장 또한 울리고 있었다. 보석이라면 정말 대박인 것이다.
 지금 휴전협정이 한창이라니, 빠르면 1∼2년 사이 종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고향에 돌아가서 한밑천 남겨 마을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으며 그 물체로 향하던 선임병은 돌연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뭐야, 칼날이었잖아. 젠장!”
 그랬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칼날이었는데, 날과 날이 겹쳐 보이며 멀리서 볼 때 달빛에 의해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응? 저건 또 뭐야.”
 그런데 그때, 칼날 옆에 한 사내가 배를 움켜쥐며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얼핏 본다면 쥐죽은 듯 잠잠하여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씩 몸을 움직이는 걸 보니 죽은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제, 젠장! 거기 사람 없나? 여기 부상병 하나가 더 있다. 어서 오란 말이다!”
 그래도 투철한 직업 정신(?)을 가진 놈인지 마냥 내팽겨 두지는 않고 부상병을 들것에 실을 동료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의 동료,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부하들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안심한 선임병은 부상병에게로 다가갔다.
 “눈을 뜬 걸 보니 죽지는 않겠군. 다행이다.”
 
 자신에게로 다가오던 사내는, 옆에 있는 칼날을 보더니 얼굴을 찌푸리고는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 천행인지 그 사내가 자신의 고통에 겨워하는 모습을 봤다.
 있는 힘, 없는 힘 짜내어 그를 부르고 싶었으나, 반가운 마음인지 뭔지는 몰라도 목소리가 새어 나오질 않았다. 다행히 그는 자신에게 다가왔고, 자신에게 말했다.
 “눈을 뜬 걸 보니 죽지는 않겠군.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의 머릿속에 불똥이 튀었다.
 ‘무, 무슨 말이지······?!’
 알 수 없는 언어였다. 자신이 살던, 아니 정확히는 지구의 어떤 언어와 견주어 보았을 때 단연코 저런 언어는 없다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언어였다.
 물론 그가 모르는 언어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는 얼핏 보기에도 서양인처럼 보이는 외모였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 한정된 유럽 쪽의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데 이 언어는 어떤 나라, 지방의 언어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충격이 가는 것은 사내의 복장이었다. 피철갑을 하고 있어서 잘은 모르지만, 얼핏 보기에 저것은 쇠로된 갑옷이었다.
 물론 그것은 그가 영화에서 보았던 풀 플레이트 아머라고, 일개 병사들이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입는 흉갑 따위 정도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무슨 갑옷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주변의 시체들 또한 그랬다. 조금 전 시체들을 보았을 때는 몸과 팔, 다리 등의 찢어진 부위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오진 않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들 또한 갑옷을 입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이는 풀 플레이트 아머까지 입고 있는 자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화살’을 머리에 관통당한 듯 보이는 시체도 보였었다.
 이 일련의 사태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지극히 정상인이란 뜻이다. 어떻게 집에서 자다 일어났는데,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한다면 그놈은 미친놈이지 당연히 정상인은 아닐 것이다.
 각설하고 앞에서 알 수 없는 언어를 지껄이는 사내였지만, 그가 또 뭐라고 지껄였다.
 알 수 없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해석이 가능했는데, 들것을 가져와 이자를 실으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일단 그 말을 듣고는 의식을 잃어 갔다.
 그래도 이 알 수 없는 곳에서 죽지는 않는다는 안도감에서이리라.
 
 ***
 
 보인다.
 조금씩 보였다. 그의 눈에서 여러 가지 사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흰 가운을 걸치며 자신에게 손가락을 이리저리 흔들며 외치는 사람도 보였다.
 “이봐, 이봐 병사! 들리나? 이게 몇 개로 보여. 응? 말해 봐. 어서!”
 그는 병석에 누워 있는 이 부상병이 다시금 쓰러질까 봐, 다급히 말하는 걸로 보였다.
 ‘두, 두 개······.’
 흰 가운을 입은 이의 손가락을 보고는 우물우물거렸는데, 입 밖으로 나오진 않고 말 그대로 우물우물 정도에서 그쳤다.
 “응? 뭐라고? 다시 말해 봐, 몇 개?!”
 흰 가운을 입은 이, 아니 정확히는 흰 가운은 입었지만 온몸에 피가 범벅이 된 이가 우물우물하는 걸 보고 묻는다.
 “두, 두······ 개.”
 머리가 아파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눈앞의 사내의 물음에 대답치 않으면 당장이라도 죽음의 사신이 그를 옥죌 것 같았기에 말을 하는 그, 아니 김현이었다.
 김현.
 그랬다. 그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사람이었다.
 그는 평범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를 갔다 온,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물론 그가 하는 짓이 평범함과는 좀 거리가 먼 것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현은 군대를 갔다 와 복학을 준비했고 친구는 축하한다며 술을 거하게 샀다. 그리고 집으로 귀가 했고······.
 한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다.
 현은 이게 도통!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현의 이런저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흰 가운을 입은 이는 무슨 장부에 자신의 상태를 적는 것인지 뭐라 뭐라 쓰더니 곧, 조금 있다가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급히 후송되어 오는 병자들을 보고는 다시 뛰어갔다.
 그를 보내고 나서 현은 이 뭣 같은 상황을 이해해 보자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머리만 더 아파올 뿐, 이렇다 할 결론은 나오질 않았다.
 한참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자신에게 손가락 개수를 물었던 흰 가운을 입은, 아니 군의관으로 보이는 이가 다시금 자신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장부를 펼쳐 보이더니 물었다.
 “정신을 차린 듯싶군. 그래, 이름이 무엇인가.”
 아무래도 차트에 이름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한편, 현은 군의관의 ‘이름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머릿속에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이름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 물음은 머리 전체로 퍼져 나갔고, 현은 머릿속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으아아악!”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도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더욱 심했다.
 군의관으로 보이는 이는 차트에 받아 쓸 준비를 하고 있다가 현의 행동에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이, 이봐, 왜 그래? 정신 차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바로······.
 ‘로, 로터? 누구야! 로터가 누구냐고!’
 로터.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온 이름 때문이었다.
 자신은 스물다섯의 ‘김현’이다. 한데 군의관의 말을 듣고 난 뒤로는 머리가 그걸 거부했다. 아니, 거부가 아니라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머리는 말했다. 자신은 김현이 아닌 로터라고 말이다. 거기다가 더해, ‘김현’의 기억이 아닌 ‘로터’의 기억이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깨질 것처럼 아팠다.
 “로, 로터가 누, 누구······ 끅!”
 현이 고갤 들어 로터에 대해 물으려 했지만, 군의관은 현의 목을 짚어 보고는 괜찮다 싶었는지 다시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알롱하게 의식을 잃어버리는 현, 아니 로터였다.
 “크으윽······.”
 의식을 잃고 쓰러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아무래도 배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많이 희석된 듯싶으니, 꽤 여러 날이 지난 듯싶었다.
 현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돌연 얼굴을 찌푸렸다. 기억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온 다른 이의 기억 때문이었다.
 ‘로······터? 평민? 레노 왕국?!’
 로터라는 이름과 평민이라는 신분은 그렇다고 쳤지만 왕국이라는, 머리가 말하는 단어에서는 그의 놀람이 컸다.
 당연했다. 기억상 입헌군주제의 국가도 아니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기억상 이곳은 기사가 존재하는 곳이란다. 또 대부분의 국가가 봉건제를 채택하고 있어, 흡사 유럽의 중세 시대와 비슷하다고 할 만했다.
 다만 다른 점은 지구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등으로 나뉜, 5대륙이었지만 이곳은 그 5대륙을 합한, 몇 배는 되는 크기의 2대륙이라는 것이었다.
 또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문명은 중세 유럽의 그것과 다르고 근대화 이전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렇다고 총포와 화포가 개발된 것은 아니었고 생활의 자체 정도만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지구의 중세 시대와 같이 전쟁을 자주하는 것은 맞지만, 어찌 된 일인지 화포와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기본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는 활, 창, 칼 등으로 전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의 머리가 멍청한 것인지, 무기를 발전시킬 생각이 없는 것인지, 무기 자체는 중세의 유럽과 매우 흡사했다. 아, 물론 말(馬)도.
 거기다가 수십 개의 국가들이 난립하고 있다고 머리가 말해 주고 있었다.
 자신의 나이는 스무 살이란다. 가족도 있다고 한다. 엄마, 아빠, 남동생, 누나.
 그게 지금 그의 머리가 말하는 단편적인 기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개새끼가 개뼈다귀 먹는 소리야······.’
 고통에 겨웠지만, 이 엿 같은 상황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스물다섯의 이제 군복무를 끝마치고 나온 대학생이다. 그런데 자신보고 로터라니?
 그런데 또 하나 기분 나쁜 것은, 이 모든 이질적인 기억들이 다른 이의 기억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나’ 자신의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그게 더 황당한 현이었다.
 그렇게 이 황당무계한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을 때였다.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자자, 이쪽으로! 어서어서 옮겨!”
 “으아아악!”
 “내 다리이!!”
 한 병사의 인도에 들것을 든 병사들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들것에 들린 병사들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형색을 보아하니, 고통에 고함을 내지를 만도 하였다. 그들은 팔, 다리 어느 한쪽은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은 계속하여 들어왔다.
 그런데 그때, 환자들의 행렬이 끝날 무렵 자신이 익히 아는 인물이 들어왔다. 다름 아닌 군의관이었다.
 그는 저번의 당황하는 모습은 어디 갔는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마냥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보이며 현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래, 일어났나 보군.”
 도착한 군의관이 묻자, 현이 한 손으로는 배를, 한 손으로는 머리를 움켜잡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어어! 괜찮은데······ 쓰르릅!”
 괜찮다며 말하며 군의관이 차를 마셨다.
 “그, 그나저나 얼마나 된 겁니까?”
 현의 물음에 군의관은 컵을 상에 올려놓더니 현의 머리를 집고는 말했다.
 “자네가 의식을 잃고 난 뒤로 정확히 오 일이 흘렀네.”
 군의관의 말을 듣고 난 뒤 로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날짜가 많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안도감이 들어서인지, 배에서 밥 달라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나저나 이곳은 어딥니까?”
 현의 물음에 군의관이 이곳 전체를 손으로 으쓱해 보이며 말한다.
 “그야 병원이지.”
 뭐······ 당연하다. 아픈 자들이 떼로 있는 곳이 병원이 아니면 어디겠는가? 그에 할 말을 잃은 현이었다.
 “아무튼 어서 빨리 몸을 추스르는 것이 좋을 게야. 아무래도 윗대가리들이 행하는 휴전협정인가 뭐신가가 조금 연장될 것 같아.”
 “예?”
 현은 그저, 휴전협정이 무슨 말이냐는 의미에서 물었던 것인데 군의관은 그게 아니라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되묻는 걸로 들렸나 보다.
 “연장될 것 같다고. 뭐 윗대가리 놈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지만······. 그래도 다행이란 점은 그 확률이 오십대 오십이란 거야. 최소한 1∼2년은 꼬박 전쟁터에서 더 살아야겠지만, 휴전협정을 파기한다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아?”
 “아무튼 자네도 몸조리 잘하게. 완쾌된 부상병을 바로 투입하는 전례는 없었지만, 그거야 서로가 비등한 전력을 가지고 있을 때나 그렇지, 안 그래도 약 5∼7만의 전력 차가 나는데 우리 연합군이 밀린다면 부상병, 정병, 따로 없이 모두 전투에 투입시킬 것이 분명하네. 부디 몸조리 잘하시게나. 크흠!”
 군의관은 제 할 말만 마치고는 뒷짐을 지고는 현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다음 날이 되었다.
 이곳의 고정된 병자들은 현을 비롯해서 몇 없었다.
 대부분이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대부분 죽어 나가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완쾌되어 나갔는데, 죽어 나가는 수가 더 많았다.
 현은 잠을 자기 전에 많은 생각을 했다. 이곳이 어디며, 자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그리고 답은, 이곳은 지구가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또한 자신은 로터가 아닌 현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현은 일단 여기서 살자고 마음먹었다. 돌아가지 못한다고 떼를 쓰며 가슴 아파하는 건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미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랄거리며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는 건 병신이나 하는 짓이다.
 엄연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관록도 이럴 때쯤은 필요한 법이었다. 비록 이곳이 창칼이 성성한 곳이지만, 자신이 있었다.
 현의 아비는 본국검법과 조선세법의 대가였고, 당연히 그는 여러 무인들을 비롯한 아버지에게 검법을 배웠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러 무인들에게서 무예를 사사받았는데, 그중 하나는 검술을 제외한 창술로 조선에 마지막 남은 창법인, 창무지였다.
 물론 본국검법과 마찬가지로 일제시대에 사장되어 그 대가 끊겨졌었으나, 여러 무인들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서인지 점점 그 사료가 밝혀졌고, 그로인해 무인들은 본국검법과 같이 창무지를 복원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본국검법이 복원되었다 하더라도, 일제 치하의 식민시절 때문에 우리 고유의 검법이 아닌, 우리 고유의 검법에 일본식의 검법이 가미되었는데, 창무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뒤로도 여러 사료가 대거 발견되었는데, 어느 한 무인이 이러한 일을 미리 예견하고 묻어 둔 것 같다고 사람들은 조심히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걸 지금에 와서야 발견한 것이고.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본국검법과 창무지에도 능했지만, 협도술에도 능했다. 협도란 우리 민족 고유의 대보병 무기 중 하나였다. 물론 쓰는 정도는 세 무기 모두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지만, 현은 협도를 더 선호했다. 아무튼 그는 죽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실전 경험이었다. 그는 실전 경험이 없었다. 여러 가지 대련 방식과 양아치 몇을 혼내 주는 실전 방식은 있었다. 그러나 사람을 진검으로 베거나, 찌르는 일, 사람의 살을 베는 일은 없었다.
 물론 아버지와 겨울 훈련을 나갔을 때, 더러 멧돼지 등을 보아 직접 베어 죽이는 일 따위는 있었어도, 사람의 살을 베는 일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행위를 한다면 바로 철창신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고 약자는 강자에게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실전을 겪음과 겪지 않음의 차이는 실로 크다 할 수 있는. 그게 조금 걱정이 되는 현이었다.
 그는 검법보다도 창법(협도술)에 능했는데, 다름 아닌 그가 창술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뭐, 창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멋있기 때문이었다.
 검술도 멋이긴 하지만, 창은 그 특유의 길이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들었고, 그것이 현이 아버지에게 배운 본국검법이나 다른 검법보다 창법을 높이 치는(?) 이유였다.
 아무튼 그렇게 현은 이곳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돌아가지 못한다. 자신이 이곳에 왔던 것처럼 자고 일어나니 자신의 방이라면 몰라도 돌아갈 방법이 없는데, 생각만 하는 건 머리 아픈 일이다.
 자신의 나이 스물다섯이며 자신의 이름 김현이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제 자신은 스무 살의 로터이며 일개 평민 병사였다. 앞으로 자신의 신분이 어찌 변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러했다.
 
 며칠가량이 또 지나갔다.
 그동안 이곳에서 살아가자고 마음먹긴 하였지만, 뜻대로 실행이 되지 않았기에 여러 가지 사념에 잠겼었다. 어느 날은 이런 자신이 미치진 않았나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역시 그건 아니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는데, 그날 그는 깨달았다. 그는 정녕 이곳에서 김현이라는 이름이 아닌, 로터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다름 아닌 그의 얼굴과 체격 때문이었다. 사실 김현은 무예를 익혀서인지 기골이 장대하였는데, 어느 날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의 얼굴이 김현의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이 들어왔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긴 있었지만, 자신의 얼굴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거기에 더해 혹시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혹시가 역시나. 로터의 얼굴이었다.
 준수하지도 그렇다고 못생기지도 않은 평범함에서 약간 더나간 얼굴이었다. 그리고 체격은 이십 세의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약 170cm의 키에 몸무게 60kg도 안 되어 보였다. 물론 이건 추측이다. 자신의 몸을 보며 한 추측.
 아무튼 이곳에서 살아가기로 마음먹기로 한 이상 살아가야만 했다. 비록 이 모든 사태가 처음엔 충격으로 다가왔고 자신이 미친놈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었으나, 이것은 현실이며, 진실이었다.
 받아들여야만 했기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격언처럼 그는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자 모든 것이 편하게만 느껴졌다. 모든 것을 떨쳐 낼 수 있었고, 이제 자신은 김현이 아니라 로터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로터라고 인식하면서 언제부터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곳의 특성이 그런 것인지, 그의 회복 상태는 날의 날을 거듭할수록 더해져, 지금은 어느 정도 움직일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 그는 더욱더 몸을 빨리 회복시키기 위해, 몸을 깨끗이 닦았고 병상에만 있지 않고 밖으로 나아가 햇빛에 몸을 노출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놀라기 일쑤였다. 비록 이곳에서 살아남자는 생각을 하긴 했으나, 여러 병사들이 입은 갑옷과 그들이 들고 있는 붉은색 피가 묻은 병장기들은 이곳에서 살자라는 생각과는 별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계속 보자 그것은 군 시절 총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자신은 어깻죽지에 총탄을 관통당해서인지 시간이 지나니,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되자 이제는 자신이 현인지 로터인지 구분도 안 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김현이란 기억과 함께, 로터의 기억도 존재하니 더욱 그런 걸 수도 있었다.
 로터는 겁이 많은 아이라고 머리가 말해 주었다.
 겁이 많은 아이가 왜 전쟁터에 왔냐고? 돈 때문이었다. 돈 때문······.
 앞서 말했지만 그는 부모님과 남동생, 누나가 있다. 한데 그의 집은 뭔 구녕 찢어지게 가난했는데, 누나는 시집을 갔고 남동생은 아직 어려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들었다. 부모님이 돈을 벌긴 하지만 자신과 동생을 가르치기엔 무리였다. 그래서 원정군을 구한다는 말에 냅다 달려 나왔다.
 당시 원정군은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었기에, 별 어려움 없이 올 수 있었다. 원정군은 비록 대륙 간 대륙을 이동한다는 어려움이 도사렸지만 월급이 있었다.
 물론 영지전과 영지전에 참여하는 용병을 비롯한 영지군들이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조금이었지만, 원정군들은 한 달에 약 1골드를 받았다.
 1골드는 일개 4인 평민 가정의 두 달 생활비였다.
 그걸 한 달에 한 번씩 번다?
 평민에게는 큰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참고로 대륙의 화폐 단위는 쿠퍼, 실버, 골드라고 불렸다. 이외에도 브론즈라는 쿠퍼 아래의 화폐가 있었지만, 잘 사용되지 않는 화폐였다. 설명하자면 쿠퍼는 브론즈의 100개가 모인 것, 실버는 쿠퍼의 100개가 모인 것, 마찬가지로 골드는 실버의 100개가 모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각설하고, 로터는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다.
 그의 성격은 온화했다고 머리가 또 말해 주었다. 마을에서도 착실하고, 예의 바른 아이로 통했다고도 말해 준다. 그런 아이가 전쟁터에 참여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불쌍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드는 현이었다.
 ‘휴우······.’
 이 막막한 세계에 대한 한숨을 다시 한 번 내쉬는 현, 아니 로터였다.
 
 또다시 두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이곳에 온 지 거의 세 달이란 시간이 지난 셈이다.
 아무래도 이곳은 지구와는 다른 것 같았다. 공기 중에 무슨 성분이 포함되어서 인지는 모르지만 전문 의료기가 없는 이곳에서 완쾌가 되려면 족히 반 년 이상은 걸릴 걸 3개월 만에 완쾌가 되었으니 말이다.
 본래 현은 십오 일 전에 완쾌가 되었지만 마침 그때 또 다른 전면전 양상의 전투들이 있었고, 혹시나 완쾌된 자신이 그 전투에 참전하게 될까, 엄살을 부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날 전투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여 병실을 꿰찼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교적 많이 나은 현은 나올 수밖에 없었고, 예의 그때 그 군의관은 행정실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이미 이곳, 아니 로터에 대한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도망치자고 잠깐, 아주 잠깐 생각해 보기도 했으나 현실성이 없었다. 이곳에서 도망친다 한들,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곳은 전쟁터다. 그것은 이 대륙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똑같은 것, 무인으로서 도망치지나 않고 죽고 싶었다. 그래서 현은 군의관이 일러 준 행정실로 발길을 향했다.
 끼이익.
 현이 행정실 문을 열어젖혔다.
 행정실 안은 조용했는데, 아마도 저번의 전투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을 뿐, 완쾌자는 별로 없어서인 것 같았다.
 현의 눈앞에 책상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가 보였다. 현, 로터가 앞으로 다가가 책상을 두들겼다.
 탁탁!
 “저기요······? 행정관님?”
 일단 행정관도 대부분이 준귀족이 맡는다. 물론 평민도 맡긴 하지만 그건 소수였다.
 이곳의 계급 체계는 농노(노예)>평민>방백>기사=준남작>남작>자작>백작>후작>공작=왕세자>대공=황태자>국왕>황제 순으로 나뉘어진다고 할 수 있었다.
 또 세습 작위와 단승 작위로 나뉘어졌는데, 세습 단위란 말 그대로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작위이다. 단승 작위는 말 그대로 자신의 대에서만 끝나는 작위로 여러 상인들이 상업에 필요한 귀족위를 구매할 때 구매하는 작위였다.
 또, 구매뿐 아니라 공을 세워도 작위를 내리기도 했지만, 평민이 이걸 받기란 매우 힘들었다. 그리고 백작 이상은 세습 작위만 있을 뿐, 단승 작위란 있을 수 없었다.
 아무튼 현의 물음에 행정관이 눈살을 찌푸리며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눈앞에 사람이 있는 걸 발견하곤 다시 한 번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단잠을 방해해서일 것이다.
 “뭐냐?”
 공손한 현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 행정관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걸 좀······.”
 현이 품에서 군의관이 주고 간 종이를 건넸다. 다름 아닌 퇴원을 한 인증서나 마찬가지인, 어느 부대로 편입시키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축하하네. 몸이 완쾌했나 보군.”
 “감사합니다요.”
 현이 입가에 웃음을 달며 말했다.
 이미 이곳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선 먼저, 자존심을 버려야 했다. 귀족들 앞에서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다간 딱 죽기 십상이었다.
 자존심이란 것도 어느 정도 지위가 높아지거나, 강해야만 내세울 수 있는 것이었다. 일례로, 그의 기억 상 마을 청년 하나가 귀족 나리에게 객기를 부리다가 기사들에게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목이 잘려 나간 경우도 있었다.
 물론 무예에 능한 현이 일격에 목을 내주진 않겠지만, 이곳엔 십만이 넘는 대군이 주둔 중이었다. 자신 하나를 수색하는 건 금방이었다.
 아무튼 현의 태도에 행정관의 태도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가만 보자······ 어디가 좋을까나.”
 그리고 그는 서류를 뒤적뒤적거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서랍에서도 서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 여기가 좋겠군. 자, 여기 있네. 자네가 이제부터 몸담게 될 부대일세.”
 행정관은 종이 하나를 현에게 건넸는데, 다름 아닌 부대의 명칭과 부대원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었다. 그와 더불어 행정관은 현에게 약도도 건네주었다.
 부대의 명칭은 다름 아닌, 프라마티뉴 연합군 소속, 레노 왕국 2군단(3∼5만 명) ― 5사단(1만 명) ― 45천인대(천 명) ― 102백인대소속(백 명), 21십인대(열 명)가었다.
 명칭이 조금 길다는 흠이 있지만, 현이 얼핏 보기에 군 체계가 확실히 잡혀 있었다.
 로터는 행정관에게 밉보이지 않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선 약도를 보며 자신의 근무지(?)가 될 21십인대로 걸음했다.
 
 일개 병사 따위를 안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현은 당연이라면 당연히, 행정관이 준 약도를 집어 가며 21십인대의 막사를 찾아다녔다.
 그나마 프라마티뉴 대륙 연합군들은 점령한 남부와 서부 지방에 군대를 나누어 주둔시켰기에, 나라 별로 진영을 펼쳤는데 그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만약 한 지방에 여러 나라의 군대가 얽혀 있었다면 행정 체계와 명령 체계가 복잡해 일대의 혼란이 빚어졌을 것이리라.
 ‘후우!’
 막사 앞에 도착한 현이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이곳에서 군의관을 제외한 이들과 친분을 맺는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망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현은 남자답게 눈을 질끈 감고 막사의 막을 펼쳤다.
 촤락!
 현이 막사의 막을 걷고 나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그랬다. 아무도 없었다.
 현이 이게 뭐지? 하며 안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생각해 보니, 점심을 먹으러 간 것 같았다.
 ‘젠장!’
 혼자 쌩쇼를 떨어서 자기 자신에게 뻘쭘해지는 현이었다.
 
 21세기에서는 아버지를 따라 무를 숭상했기에, 당연히 먹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유치원생 때쯤에는 모두 한다는 반찬투정도 결코 하지 않았던 현이었다.
 만약 21세기의 자기 또래 아이들이 이 상황을 겪었다면 욕거거리를 내뱉으며 절망에 빠졌을 법도 했지만, 그는 아버지를 따라 음식보단 무예를 중요시 여겼기에, 음식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정도, 혹은 배가 고플 때나 먹던 것이었다.
 또, 아버지를 따라 산에서 한겨울에 무예를 익히는 날도 다반사였으니, 그에 따라 요깃거리를 찾지 못한다면 굶는 적도 많았다. 아무래도 겨울인 이상 잡아먹을 동물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멀건 죽 같은 걸 스프라고 내어 놓고, 딱딱한 검은색 돌덩어리를 흑빵이라고 내어 놓았다.
 뭐, 그래도 스프에 흑색 빵을 찢어서 찍어 먹으니까 그런대로 씹혀지기는 했다.
 ‘젠장할······.’
 쩝쩝!
 흑색 빵을 스프에 찍어 먹으니 그래도 어느 정도 중독성이 있었기에, 현은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먹었다.
 그렇게 현이 멀건 스프와 딱딱한 돌빵(?)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의 옆자리로 누군가 다가왔다.
 “21십인대 소속 로터인가?”
 현이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말한 자를 보았다. 묵직한 인상에 터질 듯한 근육을 가진, 한마디로 우람한 허우대를 가진 사내가 서 있었다.
 “예, 맞습니다. 21십인대 로터입니다.”
 현이 맞다고 수긍하자, 우람한 근육을 가진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판을 식탁에 내린 뒤 자리에 앉았다.
 “난 아스니아일세. 21십인대의 대장이지.”
 푸훅!
 현의 입가에 들어가 있는 흑색 빵과 스프가 마주앉은 21십인대장에게로 흩뿌려졌다. 당황해서였다. 어떻게 자신을 찾았단 말인가?
 “죄, 죄송합니다.”
 아무튼 현은 최대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십인대장에게 사죄의 말을 했다. 그에, 십인대장은 수건으로 현의 입에서 나온 건더기들을 닦고는 최대한 웃어 보였다.
 “괜찮네. 뭐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거나······.”
 “아, 아닙니다!”
 “뭐, 됐네.”
 말을 마친 십인대장은 흑색 빵을 스프에 찍어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니, 십인대장의 옆에 몇몇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십인대원들인가 보군.’
 십인대의 대장 옆에 붙어 있는 이들이 같은 십인대원들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당연히 십인대원이라는 추측은 가능한 일이었다.
 “로터입니다. 반갑습니다.”
 미리 예측을 하고는 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자신을 아스니아라고 밝힌 십인대장의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우람한 근육을 가진 사나이가 말했다.
 “요놈 참 눈치는 100단일세.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고? 반갑다. 난 아크니아다.”
 “그러게 말이다. 와, 눈치 하나는 빠르구먼? 난 필스다.”
 “아, 예. 전 로터입니다. 헤헤.”
 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어리숙한 표정으로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현이 이러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이곳은 앞서 말했듯 약육강식의 세계다. 언제 아군이 적이 될지 모르고 적이 아군이 될지 모른다.
 이곳은 법도가 없다. 강함이 곧 법이다. 현은 최대한 어리숙한 표정으로 하여금 얼마나 오래갈진 모르지만 최대한 저들을 속일 생각이었다.
 자존심? 이미 로터가 되기로 한 이상 버린 지 오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인의 자존심까지 버린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최대한 저들에게 자신이 강하지 않다는 인식을 시켜야만 했다. 그래야 저들은 ‘아, 이놈 그냥 평범한 놈이구나.’라고 생각하여 아무런 경계와 견제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뭐, 반갑다. 난 스물여덟 살이고, 이 친구도 스물여덟 살이야. 그리고 이 친구는 스물네 살이지. 그리고 우리 둘은 쌍둥이다.”
 아스니아가 흑색 빵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아크니아와 필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과 아크니아가 쌍둥이란 사실도 밝혔다.
 “그렇군요. 쌍둥이끼리 전쟁터에 나오다니······ 흔치 않은 일이군요.”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 집안은 우리 말고도 남자가 많아서 괜찮아. 우리가 죽는다면 다른 형제들이 있으니까.”
 잠시 회상에 잠긴 표정을 하는 듯한 아스니아였지만 다시 빵을 우물우물거리기 시작했다.
 “행정관께 듣기로 네놈은 저번 샨트 평원의 국지전에서 살아남았다고 들었는데 정말이냐?”
 아스니아의 물음이었다. 이는 이미 현의 기억 속에 있는 내용인지라 거짓말을 할 것도 없었다. 머릿속에 기억된 내용을 말하면 되니 말이다.
 “예,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창과 칼, 그리고 화살이 난무하는데······. 어유,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립니다.”
 “처녀 전투였냐?”
 아스니아 대신 아크니아가 물었다. 아무래도 어려 보이는 로터의 외모에 신병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아······ 예,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현을 보고는 이번엔 필스가 말했다.
 “그럼 그때 겪은 일 좀 말해 줘라. 어떻게 살아남았냐? 그런 정보는 모두 공유해야 하는 거다.”
 필스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던 로터가 입을 연 것은 긴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총 2천여 명이 벌이는 전투였습니다. 제가 있던 부대는 평소와 다름없이 경계를 철저히 하며 성책 위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죠. 한데 웬걸? 갑자기 저 앞에서 불빛이 일렁이더라는 겁니다. 당시 경비를 서던 저와 동료들은 창을 곤두세우고 암호를 대라고 했지만, 그들은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말하더군요. ‘우리 공자님께서 매우 심심하시단다! 레노 왕국 놈들아 어디 용기라는 것이 있다면 샨트 평원으로 나와 보거라!’라고 말이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말을 우리 천인대의 대장님이 들으셨는데, 대장님은 바로 천인대를 꾸려서 샨트 평원으로 향했습죠. 그리고 벌어진 결과는······ 뭐, 아시다시피 대패죠.”
 당시 샨트 전투는 현의 말대로 대패했다.
 레노 왕국의 천인대의 병사들 중 총 구백칠십의 사상자가 나왔고, 멀쩡한 이들은 겨우 삼십에 불과할 뿐이었다.
 반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기억하는 바로는 적국의 천인대들은 얼마간의 피해를 입지 않은 걸로 기억했다. 하니 대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구나······ 그래도 거기서 살아남다니,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모양인데?”
 필스가 팔짱을 끼고 묻자, 현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실력을 알려 봐야 좋을 게 없다.
 자고로 무인은 하수와 고수 말고 다른 두 종류로 나뉜다. 자신의 실력을 모두 드러내는 자, 드러내지 않는 자.
 현은 후자에 속했다.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는 것은 위급한 상황이 올 때나, 전우가 위험에 처했을 때 드러내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무위가 뛰어나다고 떠벌렸는데, 알고 보니 이곳에서 자신의 실력은 알량한 정도로 취급받는다면 그만큼 쪽팔린 것도 없다.
 그리고 사람 일이란 게 혹시 모르는 것이기에 자신의 실력을 아군에게 조차 숨기는 것이다.
 실력의 드러남은, 후일 있을 전투에서 드러나도 좋다.
 “실력은요······ 그저 운 좋게 살아남았죠. 뭐.”
 현이 자신이 직접 그 상황을 겪었다는 듯 어리숙하게 머리까지 긁적이며 말했다.
 “에이, 운도 실력이다? 녀석 대단한데. 살아남은 자들도 별로 없다고 들었는데.”
 필스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말하자, 또다시 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저는 잘 모르겠네요. 헤헤.”
 바보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아스니아 십인대장과 필스, 아크니아와 함께 십인대의 막사로 돌아온 현이었다.
 다른 여섯 명들도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는지 모두 저마다의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신병이다. 이름은 로터고 나이는 스무 살. 고향은······ 고향은 어디랬지?”
 현, 아니 정확히는 그의 육체인 로터를 소개하던 아스니아가 고향을 말하려다 그 점을 말하지 않았음을 그제야 깨닫고 조용히 현에게 물었다.
 그리고 질문을 받은 현은 기억을 조금 되살려 고향을 끄집어내었다.
 “으음······ 카르시스 영지예요.”
 생각을 하며 말하는 현을 잠시 흘겨본 아스니아가 말했다.
 “뭘 고향을 생각씩이나 하고 있냐, 들었지? 카르시스 영지란다. 아는 사람 있나?”
 아스니아가 현의 고향인 카르시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묻자, 저 구석에 처박혀 있는 중년인이 손을 들었다.
 “내가 알고 있네.”
 아스니아가 부대원들 중에 어렵게 대하는 이가 유일하게 있는데, 바로 탄테였다. 그는 매사가 조심성이 많은 건지, 신비주의 컨셉인지는 몰라도 다른 이들과 말하는 것을 꺼려했고, 그만큼 베일에 가려진 게 많은 인물이었다.
 “아······ 타, 탄테 형님. 말해 보시지요.”
 아스니아가 그를 형님이라 칭하며 말했다.
 탄테가 유일하게 말을 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여자 이야기를 할 때와 자신이 싫어하는 아저씨라는 호칭을 사용할 때인데 그걸 아는 부대원들은 탄테를 형님이라 지칭했다.
 “내가 살던 영지의 이웃 영지였지. 영주가 악랄하기가 왕국에서 내로라 한다던데······. 그래 로터라고 했지? 로터, 사실인가?”
 카르시스 영지는 일개 남작이 다스리지만 남작령 치고는 약간 큰 동네(?)였다.
 이 시기의 레노 왕국은 긴 시간에 의해 축적이 되어서 인지 남작은 대략 5만에서 많으면 10만의 인구를, 자작은 10만에서 20만의 인구를, 백작은 20만에서 50만의 인구를, 후작은 50만에서 100만의 인구를, 공작은 100만에서 그 이상의 인구를 영지 안에 두었다.
 한데 앞서 말했듯 카르시스 영지는 좀 별나서(?) 그 인구수가 약 15만 이상이 되었다.
 본래 영지 인구가 높다면 작위도 올라가기 마련이었다.
 만약 인구 5만의 남작이 어느 새 11만의 인구를 가진 영지의 영주가 되었다면 그는 한 단계 올려 자작위로 승작되는 것이다. 물론 백작 영지의 인구를 갖는다면 백작위를 하사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대부분 쓰이지 않는 법이나 다름없었다.
 각 왕국들은 이에 대해 제약을 하나 걸었는데, 타 영지민을 포섭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포섭한 내용이 밝혀지거나 많은 수의 타 영지민이 해당 영지로 이주할 경우, 이주한 영지민의 영주는 해당 영주에게 영지전을 선포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유민의 수는 포함시키지 않는다거나, 법적제재가 있다거나 등등 합법적이지만 실상은 불법인 제약이 따랐다. 해서 카르시스의 영주 또한 인구 15만의 자작령에 준하는 영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의 작위는 남작인 것이다.
 또한 그는 별나기로 소문이 났었다. 온갖 골동품을 모으는 것이 그의 취미였는데, 그로 인해 세금을 골동품에 처바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영지민들을 착취하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쥐어짜기 시작했다.
 탄테는 그 점을 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 카르시스의 영주가 악랄하긴 했지만 저희 일가는 산간 마을에 살았기에 비교적 피해를 덜 받았습니다.”
 “으음······ 그랬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탄테였다.
 “자자, 그만하고 부대원들과 인사나 하지. 뭐 탄테 형님과는 인사를 했을 테고······ 어, 그래. 저기 보이는 저 뚱땡이는 케일 저 안경잡이는 록슨이야. 그리고······.”
 그 뒤로도 부대원을 소개하는 아스니아였다.
 
 21십인대는 대장인 아스니아와 부대장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아크니아, 그리고 마흔두 살의 중년인 탄테, 서른두 살 케일, 스물다섯 록슨, 스무 살 게르비안, 열여덟살 람스, 스물네 살 필스, 마지막으로 스물한 살의 베단으로 이루어졌다.
 중년인 탄테는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 말해 주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 십인 대의 막내라고 할 수 있는 람스는 매우 활달적이 었고 분위기를 이끄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또한 베단과 게르비안은 탄테와 같이 비교적 말수는 적었지만, 아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나이에 맞지 않게 조금 묵묵한 성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케일은 람스와 더불어 십인 대의 분위기 메이커였는데, 덩치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작은 산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아, 분위기 메이커가 한 명 또 있다. 바로 필스였다.
 “야, 로터. 고향 이야기나 좀 해 볼래?”
 필스가 로터의 고향에 대해 물었다. 다른 이들도 궁금한 사항이었는지 귀를 쫑긋 세운다.
 “고, 고양이요?”
 “짜식이 미쳤나, 되도 않는 농담을 하고 있어!”
 로터의 썰렁한 농담에 필스가 받지도 않았다.
 “빨리 고향 이야기나 좀 해 봐라, 이 형님들 궁금해하는 거 보이지 않냐?”
 묵묵한 성격의 베단과 게르비안 또한 귀를 쫑긋 세운 것이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닌가 보다.
 “하지만 그건 전에 다 말씀드렸잖아요.”
 현이 약간은 겁에 질린 듯한 말투로 말하자 머쓱해진 필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그거야 그냥 간단한 네 소개고. 이번엔 네 고. 향. 마. 을. 을 소개해 보라니까?”
 “고향 마을이요?”
 되묻는 현을 필스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내치며 말했다.
 “아오, 답답해! 그래. 니가 나고 자란 고향!”
 그에 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물론 현의 한숨 쉬는 모습을 보고 필스는 ‘이걸 쥐어박아, 말아?’라는 모션을 취했다.
 “제 고향은 카르시스 영지에 속한 마르텐이라는 마을이에요. 약 50여 호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사는데, 야생 짐승들이 많은 곳이라서 다른 마을들과는 다르게 목책 안에서 살아요. 또 산간 마을이라 그런지 주민들은 대부분이 사냥꾼이시죠.”
 다른 대목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귓 구녕을 후벼 파며 듣고 있던 필스가 ‘사냥꾼’이라는 단어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사냥꾼?”
 필스의 물음에 뭔가 좀 부족한 사람처럼 현이 몸을 움찔했다.
 “네 사냥꾸운······.”
 “오! 그럼 너도 활 좀 쏠 줄 아냐?”
 절레절레.
 “아오, 이 쓸모도 없는 답답아! 사냥도 못하냐? 아, 이럴게 아니다. 넌 이제부터 답답이다, 답답이!”
 “다, 답답이요?”
 “아, 속 터져! 그래, 니 별명이니까 대갈통에 각인시켜.”
 “아, 알았어요.”
 필스가 한심하다는 듯 현을 흘겨보고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때, 탄테가 말을 걸어왔다.
 “마르텐 마을 출신이라고?”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 필스에게 나중에 보자는 식으로 쳐다본 뒤, 현이 탄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물론! 어리숙한 표정으로.
 “예.”
 “우연이군······. 난 가르 마을 출신인데······.”
 뭔가 반갑다는 듯이 말하는 탄테였기에 현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가르 마을······ 가르 마을······ 가르 마을······ 아!’
 생각을 하던 현의 머리에 노랑 빛 전구가 켜진다. 기억이 난 것이다.
 “우와! 반갑네요. 옆 마을 사람을 여기서 보다니.”
 아닌 게 아니라 가르 마을과 마르텐 마을은 옆 마을이었다. 한마디로 영지의 구분 선에 존재하는 마을들이었는데, 뭐 이웃이라곤 하지만 그 거리가 상당히 있긴 하다.
 아무튼 그 두 마을은 이웃 마을인지라 자주 오고갔고, 산간 마을인 이상 사냥을 잘하는 마르텐 마을 사람들에게서 가르 마을 사람들은 가죽이며 고기 등을 돈으로 사 가거나 그들이 주로 하는 치즈를 만들거나, 우유를 만들어 교환하곤 했다.
 참고로, 가르 마을은 넓은 초지가 있어, 젖소들을 키우기에 알맞았기에 단연, 치즈와 우유가 특산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후후, 그건 나도야. 사실 이 마칸타스 대륙에 오면서 나와 이웃인 영지의 사람을 본 적은 없거든······.”
 “그건 저도예요!”
 현이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하자, 탄테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군······. 그나저나 걱정인 걸? 이번에 전면전을 벌인다는 소문이 무성하던데······.”
 이렇게 긴 문장을 구사하는 탄테를 대원들도 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무심코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다. 그러다가 전면전을 벌인다는 말에는 놀람에 또 두 눈을 뜨기에까지 이르렀다.
 “정말입니까, 형님?”
 아스니아의 쌍둥이 동생 아크니아가 묻는다.
 “뭐, 거짓일 수도 있을게야.”
 “하지만 사실이면요?”
 “사실이면 나가 싸워야겠지. 빌어먹을 마칸타스 놈들······.”
 탄테가 돌연 눈가에 불꽃을 피우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 점이 여간 이상한 것이 아니긴 했으나 그러려니 했다. 이곳은 전쟁터기 때문이다.
 
 다음 날.
 이제 이곳의 십인대원들과도 어느 정도 친해진 현이었다. 대한민국에선 묵묵한 성격이었는데, 분위기 메이커인 람스와 케일, 필스 등에 의해 그도 활달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그는 지금의 생활이 어느 정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뭐, 여전히 필스는 자신을 답답이라고 부르지만, 그건 전투에 나간 뒤에는 확연히 바뀔 것이다.
 지금은 새벽이었는데, 본래 무술을 해서 그런지 새벽잠이 없던 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몰래 숨어든 쥐새끼마냥 슬금슬금 바깥으로 향했다.
 “으아아!”
 나오자마자 팔을 한껏 좌우로 벌리고는 기지개를 펴는데, 공기가 대한민국의 탁한 그것과는 달라서 그런지 매우 상쾌하고 좋았다. 시원한 것이, 흡사 탄산음료를 코로 흡입하는 느낌이었다.
 21십인대의 옆에는 숲이 있었는데, 거길 지나가면 작은 공터가 나왔다.
 참고로 현의 십인대, 아니 비단 21십인대만이 아니라 이곳에 주둔 중인 십수만의 부대가 요새 안에 주둔 중이었다. 다름 아닌 크라망 요새. 하지만 요새는 정말로 컸다. 그래서 그런지 공터도 있었고 숲도 있었다.
 아무튼 현은 숲을 지나 작은 공터로 향했다. 현이 아무리 창법과 검법에 능하다지만, 연습을 게을리하면 퇴보하는 것이 바로 무술이라는 것이다. 해서, 현은 몇 달간 몸 상태를 핑계로 미뤄 두었던 무예를 오늘부터 연마하기로 마음먹었다. 거기다 탄테가 말하길 전면전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숲을 지나 작은 공터 안으로 들어온 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익히 말했다시피 창법인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봉술을 쓸 만한 긴 막대는 보이지가 않았다.
 한숨을 내쉰 현은 일단 검법부터 익히고 차례차례 돈을 모아 창을 사자고 마음먹었다. 이곳 병사들에겐 한 달에 1골드씩 돈이 나오는데, 그걸 모아서 창을 사려는 것이다. 이곳은 본토보다 가격이 비싼데, 그 이유는 당연히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해서 한 3달은 모아야 어느 정도 괜찮은 창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현은 허리를 구부려 나무막대를 주웠다.
 휘, 휘이.
 현이 나무막대를 휘두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괜찮군.”
 손에 어느 정도 잡힌다 싶은 현은 자세를 가다듬었다.
 먼저 살며시 검을 잡고······.
 샥!
 현의 왼발이 빠르게 나아간다 싶더니, 좌에서 우로 베기를 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왼발은 도로 본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샤샤샥!
 이번엔 연속기였다.
 찌르기를 시전하고 그대로 위로 올려쳐, 우에서 좌로 베기를 시전했다.
 “휴, 다행이네 그래도 녹슬진 않았어.”
 세 달간 쉬어서 어느 정도 실력이 많이 녹슬진 않았을까, 걱정하던 찰나였는데 이정도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빠르기도 괜찮고 손의 떨림도 없었다. 이정도면 능히 전쟁터에서 제 한 목숨은 지킬 수 있으리라.
 그때였다.
 꾸꿀!
 어디선가 돼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냉큼 고개를 돌린 현의 눈앞에는 거대한(?) 멧돼지 하나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검법을 훔쳐본 거냐?”
 아무리 크다곤 하나 일개 요새에 멧돼지가 있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검법을 훔쳐봤다는 게 더 짜증났다.
 이렇듯 미물에게 말을 거는 현을 보고 있노라니, 답답이가 맞는 것 같다.
 아무튼 그 말뜻을 이해하는지 모르는지, 멧돼지는 앞발로 땅을 파며 현에게 돌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꿀!
 돌진해 오는 멧돼지!
 하지만 현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살며시 나무막대를 움켜쥐고는 멧돼지가 사정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멧돼지는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라는 식으로 돌진을 해 왔는데, 그 속도가 역시 멧돼지라 그런지 꽤나 빨라 곧 현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현은 왼발을 축으로 해서 오른발을 반원을 그리듯 살며시 몸을 돌리며 빠져나가 그대로 지나가는 멧돼지를 향해 나무막대를 내려찍었다.
 파악!
 끊어 치듯 쳐서 그런지 효과가 배가 된 것 같았지만, 멧돼지는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저 머리에 맞은 충격을 가시게 하려는 듯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독한 놈일세.”
 현이 독하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멧돼지란 잡기가 힘든 동물임은 맞다. 하지만 현처럼 본국검법과 창무지 등으로 무장한 무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은 겨울수련을 할 때, 먹을 게 없어 멧돼지도 잡아먹은 적이 있었기에 손쉽게 멧돼지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세를 다시 다잡은 현이 이번엔 선공을 취했다.
 파악!
 또다시 내려찍기를 시전하는 현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좌에서 우로 베기를 시전했다.
 그러자······.
 철푸덕!
 그간 어찌어찌 버티고 있던 멧돼지의 다리가 어느샌가 후들후들 떨리더니 몸을 좌로 뉘이며 쓰러졌다.
 “한낱 미물 따위가······.”
 말을 마친 현이 다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야아, 이게 무슨 냄새야?”
 누군가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 운운하며 다가온다. 그를 필두로 그 뒤에서도 몇몇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십인대원들이었다.
 “헤헤, 오셨어요? 아니, 이 멧돼지가 죽어 있길래요.”
 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필스에게 말했다.
 검수를 마치고 돌아오려던 중 아까 멧돼지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거기다 배도 고프고······. 해서 멀건 죽 같은 스프 아닌 스프에, 딱딱한 돌빵(?)을 먹는데, 이번 차에 고기다운 고기를 좀 먹어 보자라는 생각에서 멧돼지를 손질하여 고기를 구운 것이다.
 그리고 미리 십인대원들에게 일러 그들도 오게 만들었다. 그들은 일단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게 숲 안쪽으로 들어갔고, 울창한 숲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정말 웬 고기냐? 진짜로 이곳에 온 뒤로 고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아스니아가 침을 질질 흘리며 말하자, 현이 머리를 매만지면서 말했다.
 “아니, 그냥 죽어 있었다니까요. 헤헤.”
 “야, 그건 그렇고 손질은 어떻게 한 거냐? 설마 답답이 니가 했냐?”
 필스의 예리한 질문에 잠시 흠칫한 현이었지만, 빠져나갈 방도는 무궁무진했다.
 “아, 제가 말 안 했어요? 저희 마을은 사냥꾼 마을이었다니까요?”
 필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현이 저번에 사냥꾼 마을 출신이었다고 말한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여어, 답답이에게도 이런 면모가 있었다니······ 대단한 걸? 아무튼 고맙다. 오랜만에 고기다운 고기를 먹어보겠네. 흐흐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현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필스였다. 그건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는데, 탄테 마저 그랬다. 아마도 여기 오고 나서 사 먹는 것 빼고는 고기를 먹어 본 게 오랜만이라 그럴 것이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기 시작하자, 너나 할 것 없이 그들은 마구마구 고기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냠냠, 쩝쩝.
 누가 보면 걸신이라도 들린 것 같았는데, 열 명이다 보니 멧돼지 한 마리가 동이 나는 것은 금세였다.
 필스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쩝, 더 없냐?”
 “보시다시피요. 다음에 또 발견하면 해 드릴게요.”
 필스가 현의 말을 듣고는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들어가자 만약 우리 빈 막사를 보면 우리 모두를 싸잡아서 탈영병으로 생각할지도 몰라.”
 필스의 말에 다른 이들도 전적으로 동감하는지, 엉덩이를 탁탁 털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시기가 약 한 달간 지속되었다. 국지전 양상의 전투 또한 없었다.
 하지만 이건, 진정한 전투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었다.
 “휴우······.”
 아스니아가 한숨을 내쉬며 막사 밖에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듯 보인다.
 “말을 해야 되냐 말아야 되나······.”
 그가 고민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전투 때문이었다.
 그래, 전투. 자신을 어느 병사가 불러 백인대장에게 찾아가 보니, 백인대장이 전면전이 머지않았단다. 다행이란 점은 그의 부대들이 요인을 호위하듯 감싸, 선봉에는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 마칸타스 대륙의 여러 국가들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기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제아무리 요인, 즉 지휘관들을 호위하는 곳에 선다곤 하지만 막상 전투가 벌어진다면 진영은 호위, 선봉, 후방 따로 없이 난전으로 들어설 것이 분명했다.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건 군율이었다. 하루 전에 병사들에게 마음을 다잡고 장비를 정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피곤에 쌓인 정신을 맑게 하여 다음 날 전투에 임할 때 되도록 바른 정신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게 만들려는, 군율이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면 군율을 어기는 것이기에 아스니아는 눈을 질끈 감고 막사의 천막을 걷었다.
 살며시 눈을 떠 보니 모든 대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거기엔 오랜만에 고기를 먹게 해 준,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신병도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였지만, 심호흡을 한 뒤 전대원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전투가 있을 것 같다.”
 그에 필스가 투덜거린다.
 “아, 씨팔. 평화롭다더니 이런 것 때문이었어?아, 썅!”
 본래는 상관의 앞에서 욕을 하면 안 되지만, 이럴 때에는 예외였다. 울고 싶은 것은 아스니아도 마찬가지니 말이다. 뭐, 그렇다고 백인대장 앞에서 욕하면 처형당할 수도 있지만······.
 “네 맘 이해한다, 필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동안 많이 쉬었잖냐.”
 아스니아의 설득하는 듯한 말에 욕을 하며 투덜거리던 필스 또한 잠잠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비교적 묵묵하고 신중한 성격을 가지고 있던 탄테가 물었다.
 “그래, 전면전이라든가 국지전이라던가?”
 “전면전이 될 것 같답니다.”
 아스니아의 말에 탄테가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 그럼 그 수가 얼마나 될 것 같수?”
 케일이 물었다. 아마, 양쪽의 전면전을 치르는 수를 말하는 것 같았다.
 “얼핏 듣기로 1만씩 2만이 될 것 같더군······.”
 아스니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른 이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양반인 것이다. 심할 경우는 5만 대 5만, 총 10만이 한꺼번에 전투를 치른 적도 있었다. 뭐, 전투의 정도는 10만이 더 쉽긴 할 것이다. 그 수가 매우 많아 선봉에만 서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으니······.
 “선봉에 선다고 했수, 중군에 선다고 했수?”
 “다행인 점은 중군에 선다고 했다.”
 아스니아의 말에 모두가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이 웅집한 중앙이라면 비교적 안전할 것이다.
 “전투는 역시나 내일이겠지?”
 탄테의 물음에 아스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푹 쉬고, 장비를 점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모두 오늘은 푹 쉬고 내일 힘내서 전투에 임하자.”
 
 
 
 2. 싱거운 첫 전투, 그리고 검투장 (1)
 
 
 한편, 현은 긴장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은 대부분이 코를 곯고 자는 것 같았지만, 자신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저들은 모두 전쟁을 겪은 이들이다. 하지만 자신은? 자신은 아니다. 자신이 아버지를 따라 검을 연마하긴 했지만, 단연코 진검 승부 같은 것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위험하다는 아버지의 반대 때문이었다.
 한데 내일 전투에 나가면 어떻게 되든 사람을 베게 될 것이다. 사람인 이상 여간 마음 쓰이지 않는 일이라 할 수 없었다.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현이 막사 밖에 있는 작은 바위 덩어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여러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죽음, 배신, 살인······.
 자신이 눈먼 화살이나, 창칼에 죽는다면? 아군이 적인 줄 알고 창칼을 찔러 넣는다면? 자신이 적을 베어 넘긴다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젠장할······.’
 사실 전에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니 말이다. 지구가 아니고, 약육강식의 세계라 생각하니 그때는 마음이 편했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라면 당당하게 그의 가슴에 칼을 꽂아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전투가 코앞에 다가오자 떨리는 가슴과 오만가지 잡생각이 드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검이나 쓰기로 마음먹었다.
 십인대로 들어오며 아스니아가 창과 칼, 방패를 주었는데 칼과 방패는 마지막 무기이고 일단은 창을 들고 싸운단다. 그리고 투창을 하거나 그걸로 일단 첫 단추를 매긴다고 했다. 그 다음은 방패와 칼을 들고 전투에 임한다나 뭐라나······.
 아무튼 멧돼지 고기를 선물한 이후, 아스니아가 아니 정확히는 아스니아가 동료들에게 물어 돈을 조금씩 모아 현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현재 현은 그들을 매우 감사히, 소중한 존재들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 달이라는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꽤나 많은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리에서 일어난 현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창과 칼을 생각하자 다시 전투가 임박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인지, 다리가 후들거린 것 같았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죽인 뒤에, 현이 막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창과 칼, 방패는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막사 안으로 들어간 현이 자신의 장비를 들고 밖의 작은 공터로 향했다.
 “일단 창던지기부터 해 보자.”
 창던지기는 자신이 없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전장에 나선 이상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했다.
 아니, 그래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자신의 동료들이 위급한 상황에 빠졌을 때 다가갈 수 없다면 투창을 해서라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창대의 중앙에서 조금 뒤로 쏠린 부분을 현이 움켜잡았다. 그리고 왼발을 앞으로 가져가 대며 있는 힘껏 창을 내던졌다.
 목표는 나무였다.
 파악!
 운이 좋았음인지, 본래 실력이 있는 것인지 창이 작은 떨림과 함께 나무에 박혔다.
 그 뒤로도 현은 꽤나 긴 시간을 투창 연습을 했고, 투창 연습을 한 뒤에는 칼과 방패를 이용한 공격과 방어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방패를 들고 하는 대전은 처음이니 말이다.
 
 다음 날.
 역시 꿈이 아니었다. 내심 이 모든 일이 다시금 꿈이길, 하는 바람으로 잠들었던 현이었지만 꿈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생생한, 모든 것이 느껴지는 현실 그 자체였다.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일어난 현에게 아스니아가 말을 걸어왔다.
 “어제 바깥에서 기합 소리가 들리던데, 답답이 너였냐?”
 “아, 아니요. 기합 소리라뇨? 전 여기서 대장님과 같이 잤잖아요.”
 현이 손사래까지 치면서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아스니아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 우리 사이에 뭘 그래, 그냥 전투를 앞두고 겁나서 좀 휘둘렀다고 하면 돼. 크크큭.”
 “조금 휘둘렀어요······ 마음을 잡을 수가 없어서······.”
 “하하핫! 그래, 그래. 우리 모두 처음엔 그랬다 욘석아! 걱정 마라, 이번 전투는 우리 모두 살아남을 거야. 중군에 편입되었으니······.”
 “그럴까요?”
 “그러엄! 너는 이 대장님 옆에 바싹 붙어 있어라. 이 대장님이 널 지켜 주마, 크하핫!”
 그때, 아크니아가 검대로 아스니아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지랄하고 있네. 네놈 옆에 있다간 죽기 십상이지. 막내들은 이 형님에게 붙어 있어라.”
 아크니아가 허리에 손을 떡 하니 올려놓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막내란 로터와 동갑인 게르비안과 람스였다.
 “형 옆에 붙어 있으면 더 위험할 것 같은데······.”
 아크니아의 말에 십인대의 진짜 막내인 람스가 훼를 쳤다. 그에, 아크니아가 람스에게 다가가 헤드록을 걸기 시작한다.
 “이놈이, 뭐라고? 다시 말해 봐라.”
 “켁켁! 아, 아니 형 옆에 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구요. 켁켁! 좀 놔요!”
 우람한 아크니아의 근육에 둘러싸인 가냘픈 람스가 소리치자, 그제야 목에 건 팔을 풀어내는 아크니아였다.
 “까불고 있어. 그건 그렇고 답답아, 이 형 옆에만 있어라. 형이 전투의 화신이 무엇인지 보여 줄 테니. 하하하하!”
 현의 입가에 왠지 모르지만 미소가 걸렸다. 모두들 전쟁을 앞두고 있지만, 자신을 달래 주고 있었다.
 팀의 막내인 람스조차도······.
 ‘고맙습니다.’
 
 본래 1만 대 1만의 전투라던 전면전은 어찌 된 일인지 그 수가 불어나 2만 대 2만, 총 4만이 맞붙는 전투로 변했다.
 그에 여러 병사들이 투덜거렸지만, 눈을 부릅뜬 기사들 때문에 그들 앞에선 내색할 수 없었다.
 “젠장, 그나저나 좆 됐군. 사람이 많다면 후퇴하다가 아군에 짓밟혀 뒈질 수도 있는데 말이야. 퉤!”
 진군을 하는 도중 현의 옆 부대에 있는 얼굴에 길게 검상이 아로 새겨진 사내가 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제발 후퇴 명령만 안 떨어졌으면, 아니 신병 놈들이 후퇴 명령에 냅다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가지만 않았으면 좋겠구먼.”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내의 말에 옆에서 같이 행군하던 이가 말을 되받았다. 잠시 그들을 쳐다보던 현이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힘든 싸움이 될 것 같네······.’
 전투장은 다름 아닌 샨트 평원이었다. 지형을 말하자면 멀리는 절벽이 나 있어 양쪽 최고 지휘관들이 올라가 바라볼 수 있게끔 나 있었고, 무성한 잡초들과 넓은 땅 떵어리로 인해서 다른 전술은 불가하고, 오로지 정석된 전술만 사용할 수 있어, 힘 대 힘을 겨루기엔 이곳이 제격인 것 같았다.
 뿌우우―
 그때 뿔고둥 소리가 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보아하니 적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나 보다.
 “적군이 눈앞에 있다! 모두 침착하라!”
 병사들을 독려하는 기사들의 고함 소리가 진군하는 행렬 사이사이로 울려 퍼졌다.
 이들의 병과를 소개하자면, 친위대, 기사, 기병, 중보병, 보병, 경보병, 중궁병, 경궁병, 징집병 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친위대는 다름 아닌 주요 요인들을 호위하는 것으로, 사령관이나 높은 직위의 사람들은 적군의 지휘관들과 함께 절벽 위에서 사태를 관망한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낮은 직급의, 병사들을 지휘하는 지휘관들은 전장에서 직접 병사들을 지휘해야 했기에, 따로 사령관이 친위대를 붙여 주었다. 친위대라고 별게 아니라 실력 있는 병사나 기사들 중 차출되는 것이었다. 뭐, 병사들이 차출되는 경우는 거의, 아니 아예 없지만······.
 각설하고, 기사는 알다시피 기사 작위를 받은 이들을 일컫는다. 중보병은 말 그대로 중장비를 모두 착용한 보병, 보병은 저번에 현을 구해 주었던(?) 흉갑정도에 투구만 착용한 이들을 일컫고 경보병은 가죽 갑옷을 입은 이들을 일컫는다.
 중궁병과 경궁병은 거의 똑같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경궁병은 활과 화살, 그리고 짧은 70cm 정도의 작은 단검밖에 없는데 비해, 중궁병은 어느 정도 장비를 착용하기도 했고, 등 뒤에 화살뿐만이 아닌, 방패와 숏소드가 배치되어 있었다.
 징집병은 말 그대로 징집되어서 온 자들인데, 포로들 중에서 뽑거나, 본국에서 농노들을 데려다가 화살받이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 행렬을 보자면 1열이 징집병, 2열이 궁병, 3열이 기사들, 4열이 보병들인데 징집병들을 화살받이로 내세운 뒤, 그들을 인간 방패로 삼아 아군의 궁병들이 공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사정거리가 다다랐을 때 궁병들은 좌우로 빠르게 흩어져 기사들과 기병들이 달려 나갈 틈을 내어 주고, 기사들이 돌격한다. 그 뒤를 보병을 비롯한 창병 등, 보병들이 뒤따라 전투를 마감 짓는다.
 따지고 보면 궁병들이 제일 편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편제된 군제에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지휘했고, 사이사이 꽤 많은 기사들이 포진하여 명령 없이 후퇴하지 못하게 사기를 돋우었다.
 지금 현은 4열, 마지막 열이라고 볼 순 있었지만, 중앙에 있는 지휘관들을 호위하기 위해 그들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아스니아 말로는 잘된 일이라고 한다. 지휘관들 옆에 있으면 죽을 일이 거의 없으니까.
 현이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나 친위대들이 예의, 매서운 눈빛을 하고는 말을 몰고 있었다.
 ‘죽진 않겠구나.’
 그들을 보니 그나마 떨리는 마음이 조금씩 주체가 되는 현이었다.
 그렇게 현이 이곳의 편제와 지구의 중세군편제를 비교해 가며 전진하고 있을 때였다. 또다시 거대한 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우. 뿌우우.
 둥! 둥! 둥!
 이번엔 고동 소리뿐만이 아니라, 북소리까지 울려 퍼졌는데 징집병들에 대한 돌격 명령이었다.
 징집병들은 고작 죽창 하나 들고 전장에 나서는데, 역시 그대로 화살받이었다. 아무튼 이들을 인간 방패막으로 삼고 궁병들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쉬시쉭!
 수천의 궁병들이 쏘는 것이라 그런지, 일순간에 하늘이 잿빛 어둠에 휩싸이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쏴라! 저들은 고작 방패일 뿐이다. 상관치 말고 쏘아라!”
 기사들은 말을 타고 궁병들을 독려했는데, 아군의 징집병들이 아직 있기에 망설이는 이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같은 아군을 죽이긴 뭣할 테니까.
 적군들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었는데, 역시 처음에 희생되는 것은 징집병들이었다.
 “궁병들은 좌우로 흩어지라!”
 그리고 잠시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화살을 쏴 대던 궁병들 사이로 한 노장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궁병들이 좌우로 촤라락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기사와 기병들이 들이닥쳤다.
 “히야!”
 상대편도 다르진 않았는데, 그들 또한 아군과 같이 군을 배치하고 지금은 기사들이 돌격해 나오는 중이었다.
 “보병들은 무엇하는가! 어서 달려 나아가라!”
 예의 그 노장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고, 보병들이 함성 소리와 함께 적진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젠장! 이봐, 로터. 잘 따라오라고. 이제부터 진짜라고. 이제 곧 난전이 벌어질 텐데 거기선 실수로 자빠지기라도 하는 날엔 바로 짓눌려져서 황천길이니까, 알간?”
 필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말하자 현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필스가 현의 앞에 있었고, 그 뒤를 람스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람스의 뒤에는 다른 부대원들이었고, 옆으로 줄줄이 부대원들이 같이 진격하고 있었다.
 콰앙!
 이곳에 화약이 있는 것도 아닐진대,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현이 달리는 도중 살펴보니, 기사들이 충돌한 것 같았다.
 히히힝.
 “죽어랏!”
 채앵!
 주인 잃은 말들이 구슬프게 우는 소리, 고통에 몸부림치는 말들이 현의 눈에 포착되었다. 그리고 말에서 낙마한 이들이 검 대 검으로 적을 베어 나가는 게 보이기도 했다.
 치열한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한창 기사들이 싸우고 있는 곳에 현이 도착할 수 있었다. 상대팀도 다르진 않았는데, 이미 아비규환의 상태가 되어 난전을 방불케 했다.
 기사 대 기사의 대결인 걸로 보였던 전투는, 이제는 그 저의에 알맞게 2만 대 2만의 대결로 바뀌어 갔다. 뒤에서 대기 중이던 궁병들 또한 가만 볼 순 없었기에 칼을 빼어 들고 달려들었고, 보병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거기엔 현과 21십인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로터 따라와!”
 아스니아가 현에게 외치자, 현이 막내 람스의 손을 이끌고는
 아스니아를 따라 나아갔다.
 “이야얍!”
 그때, 적군 하나가 눈깔이 뒤집혀서 아스니아에게로 돌진해 왔다.
 “젠장!”
 아스니아가 욕지거리를 내뱉은 뒤, 들고 있는 창을 한 손으로 들더니 빠른 속도로 내던졌다.
 쉬이이익!
 푸욱!
 빠른 속도로 내던져진 창은 어느샌가, 그 병사의 가슴어림에 명중해 병사의 목숨을 앗아갔다.
 “어서 따라와, 뭉쳐야 돼!”
 아스니아는 흩어진 부대원들을 찾기에 열중이었다.
 방금 벌어진 기사들의 돌격과 여러 돌격 명령에 다른 부대원들이 눈을 뒤집고 돌격해서, 놓쳐 버린 것이다.
 싸움?
 그건 멍청한 자들한테 하는 소리다. 어째서 자신들과 같은 말단 병졸들이 윗대가리들을 위해서 싸워야 한단 말인가? 그저 저 앞에서 희생되고 있는 이들만 불쌍하지만, 자신들은 뭉쳐서 살아남아야 했다.
 치잉!
 채엥
 쇠와 쇠가 맞붙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질 때마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비명 소리가 전장을 가득 채웠다.
 “으아악!”
 “내, 내 다리, 으으으아아아악!”
 검과 검이 맞부딪치며 불똥이 튀고, 창과 창이 사람의 내장을 헤집는다.
 ‘으아아!’
 현이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살려 달라는 듯 자신의 배에 박힌 창을 잡으며 구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저 아군 병사······. 그 모든게 현에겐 충격이었다.
 그때였다.
 푸삭!
 뒤쪽에서 살 갈리는 소리가 나며, 붉은 피가 현의 얼굴을 덮쳤다.
 “으아아악!”
 악다구니를 쓰는 현을 보고 아스니아가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젠장, 로터!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이곳은 전장이야!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하단 말이야! 너 저번 샨트 대회전에서 살아남았다면서?
 사내새끼가 어린 람스보다도 마음이 여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파악!
 정신을 차리지 않고 고개를 빠른 속도로 내저으며 떨고 있던 현을 향해 아스니아가 주먹을 내질렀다.
 “악!”
 현이 비명 소리와 함께 나자빠졌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흔들어 고통을 잠재웠다.
 “정신 차렸냐? 새꺄! 이곳은 전쟁터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우리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죽는 사람도 있는 법이란 말이야! 어서 움직여!”
 나자빠져 있던 현이 정신을 차리고 아스니아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젠장 이성을 잃고 있었다니.’
 두려움에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현은 언제 자신이 두려움에 떨었냐는 듯, 다시금 람스의 손을 잡고 아스니아를 따라 발길을 재촉했다.
 
 푸싹!
 현이 자신에게에게 달려든 적 병사를 베어 넘겼다.
 현재 현의 몰골을 보자면, 갑옷에는 온갖 붉은 피가 묻어 있었고, 그의 검에서도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첫 살인을 했을 때. 람스가 위급한 상황이었을 때 검을 다루는 자답지 않게 눈을 질끈 감고 적병에게 검을 쑤셔 넣었다.
 한데 웬걸?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심장이 크게 반응을 할 줄 알았는데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아니, 되려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이 사람의 살결을 파고들어가 당한 자가 내지르는 비명이 모든 게 이질적인 쾌감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사이코패스인가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은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다. 절대······.
 각설하고, 현의 검에 적이 무릎을 꿇고 차디찬 전장의 평원에 몸을 뉘었다. 잠시 그를 안타깝게 쳐다본 현이 람스의 손을 이끌고 발길을 재촉했다. 그들 주변으로는 이미 넓은 샨트 평원이 난전이 되어 죽어라, 살려라 하며 아군과 적군이 한데 뒤엉켜 칼부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로터와 람스는 부대원들을 찾고 있었다. 난전이 시작되었을 때 사라져 버렸는데, 그 뒤로 찾지를 못했던 것이다. 아스니아도 마찬가지로 어느샌가 손을 놓아 모습을 감추어 버렸기에 그들을 찾아 나서는 중이었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전투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최소 백인대장 이상이 된다면 전투가 매우 중요하게 느껴지겠지만, 현재 21십인대원들과 현은 일개 병사에 지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자신의 동료였지 윗대가리들만 좋은 이 전쟁은 아니었다.
 다만 그걸 깨닫지 못하는 아군들이 안타까울 뿐······.
 
 뿌우우!
 뿌우우우우!
 전투 종료를 알리는 고동 소리가 양 진영에 고스란히 울려 퍼졌다.
 양측은 전면전을 벌일 때 시간을 정해 놓고 싸움에 임했는데, 이러한 것도 서로의 전력이 비등할 때 가능했다. 물론 지금 현재는 베니티아 측이 우세했고, 레노 왕국 측이 매우 열세였다. 알려진 바로 레노 왕국은 약 15만 정도의 군세가 있을 뿐이고, 베니티아는 20만의 군세가 대기 중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레노 왕국 측은 요새, 크라망을 등지고 싸웠고, 베니티아 측은 그들이 머무는 요새에서 수일을 달려와 마주한 것이기에 유리하고 불리한 것도 없는 싸움이었다.
 아무튼 양측은 더 이상 진척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뿔고둥 소리로 하여금 전투를 중지시켰다.
 “힘든 하루였다.”
 현이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아군의 것인지 적군의 것인지 모를 피가 묻은 죽음의 평원에 주저앉았다. 그의 곁으로 람스 또한 뒤따라 앉았다.
 “형, 대단해요! 어디서 그런 검술을 익혔어요?”
 그동안 말을 못하고 있었지만, 람스의 놀람은 당연했다. 몇 달간 같이 생활하면서 현의 이러한 모습은 발견하지 못했기에, 또 부대원들이 그를 답답이라 놀리기만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 주자 실로 놀랍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현이 그의 물음에 미소를 짓고는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었다.
 “너와 나만 아는 비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람스였으나, 그의 머릿속은 이 일을 꼭 부대원들에게 알릴 것이라는 각오가 새겨졌다. 그리고 그렇게 그 둘은 힘든 전투를 끝마치고 대(大)자로 평원에 몸을 뉘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아군 적군 따로 없이 모두가 평원에 등을 맡긴 오늘은, 제2차 샨트 대회전이었다.
 
 막사로 돌아온 람스와 현은 바로 침대에 누웠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람스는 이미 눕자마자 곯아 떨어졌는지 코를 골고 있었다.
 드르렁.
 그 모습을 귀여운 듯, 힐끗 바라본 현이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자책감에 시달리지 않았지?’
 이것이 문제였다. 자신은 분명 현대인이다. 현대적 교육을 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이들은 사람을 죽고 죽임에 있어 약간의 자책은 느낄지언정 오래 가진 않을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뚜렷화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나라의 돈을 받는 경찰과 일정 시기가 되면 군대를 가는 군인아저씨(?)들이 나라의 치안과 자신의 안전을 지켜 주었기에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한데······ 한데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그가 죽인 이는 얼핏 십여 명은 넘어갔다. 모두 자신과 람스를 지키기 위해서이긴 했지만, 자책감을 느낄 법도 한데 왠지 모를 쾌감에 온몸이 부르짖는 것 같았다.
 ‘그래도 뭐, 살았으니 된 거겠지.’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현이다. 자신은 방금 그 대전투에서 살아남지 않았던가? 물론 다른 이들에 비하면 싸우진 않고 도망만 다녔지만······. 아무튼 이 알 수 없는 첫 살인에 대한 쾌감은 묻어 버리기로 한 현이었다. 앞으로 이런 충격은 더욱더 많이 겪게 될 테니까.
 잠시간이 지나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부대원들이 막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을 걸고 싶었던 현이었지만, 심한 격전을 치렀는지 얼굴에 묻은 피조차 닦지 않은 그들을 보고는 묵묵히 있었다.
 다행이란 점은, 모두 살아 돌아왔기에 그 또한 기뻤다. 안전하게 모두가 무사 귀환한 것이다.
 
 다음 날.
 부대원들은 언제 자신들이 우중충하게 있었냐는 듯, 먼저 일어나 현을 깨웠다.
 “야야, 로터. 일어나라 짜샤. 좋은데 가야지.”
 필스가 냄새나는 그의 발로 현의 몸을 건들었다. 그에, 기지개를 피며 일어나는 현이 물었다.
 “하아암, 어디로 가는데요? 설마 또 전투예요?”
 현의 또 전투냐는 말에 필스가 고개를 저었다.
 “좋은 데다, 짜샤. 답답한 네놈은 겪을 수 없을 만한. 큭큭큭.”
 음흉한 미소를 짓는 필스를 고개를 흔들며 바라보던 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모두가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레노 왕국 진영의 부대 막사 뒤에는 번화가(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약 십오만이 넘어가는 병사들과 이곳 지방의 사람들이 존재하다 보니 그곳은 여관, 식당, 대장간, 옷 가게 등등 본토와 다를 바 없이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비록 지방마다 군대가 집결하여, 다른 왕국과 차별을 두긴 하지만, 이곳만큼은 예외였다. 이곳은 제국 소속 군인이건, 왕국 소속 군인이건, 공국 소속 군인이건 모두 다 오는 곳이었다. 그리고 현이 아스니아 일당(?)에 이끌려 온 곳도 다름 아닌 이 번화가였다.
 요새와 도시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현의 부대가 맞닿은 성문은 북문이었는데 요새의 북문에서 도시까지는 길어 봤자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 이곳에 왜 왔냐니까요?!”
 현이 화를 내며 묻자, 필스가 딱밤을 딱! 때리며 말했다.
 “이놈이? 답답이 주제 너무 나서는 것 아니더냐? 잠자코 따라와라 황홀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줄 터이니.”
 말을 하면서도 음흉한 미소를 감추지 않는 필스였다.
 ‘도대체 어디를 데려가겠다는 건지······.’
 별일이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 세계에 와서 도시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정말 신기한 것이 많았다. 온갖 식당과, 상점들······. 그리고 길거리에서 노점상들이 파는 간식들 또한 빠질 수 없는 볼거리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부대에서 검문에 통과하고 나온 지 삼십여 분쯤 되었을 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현에게 아스니아가 말했다.
 “다 왔다. 이곳이다.”
 아스니아의 말에, 오른쪽 닭꼬치를 보며 침을 흘리고 있던 현이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곳엔······!
 “사, 사, 사······창가?”
 그랬다. 이곳은 다름 아닌 사창가였던 것이다.
 ‘젠장······!’
 이제야 필스가 말한 황홀한 기분이라든지, 음흉한 웃음을 짓는 것도 퍼즐 맞추듯 맞춰지는 현이었다.
 ‘무슨 사창가가 있냔 말이야!’
 현이 속으로 울분을 삭이며 사창가에 대한 원망(?)을 했지만, 사창가는 필요불가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혈기왕성한 군인들이 욕구를 풀 수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막말로 미쳐 가지고 날뛴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해서 이러한 점을 겨냥해 연합국들은 직접 이런 사창가를 장려(?)하기까지 했다. 뭐, 본국에서는 불법이긴 하다. 문제는 불법이지만 대부분이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뿐.
 각설하고, 그쪽에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창녀들이 호호거리며 21십인대원들에게로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오. 빠?”
 한 창녀가 아스니아에게 달라붙자, 아스니아의 얼굴에 함박웃음 꽃이 피어났다.
 “그렇지? 자, 봐라 이 오빠가 우리 부대에 들어온 신병을 데려왔느니라! 캬하핫!”
 아스니아가 창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로터를 소개했다.
 “어머, 정말이네. 이리 와 봐.”
 창녀는 아스니아의 팔을 뿌리치고는 로터에게로 걸어갔다.
 ‘제, 젠장!’
 한편, 이런 상황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극히 정상적인 남자였다. 성 관계는 여자 친구와 했고, 다른 여자와는 하지 않았던 남자란 말이다. 다른 여자와 초면에 그것을 한다는 것은 상상해 보지도 못한 것이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는 것도 귀엽네?”
 창녀가 집게손가락을 하며 로터의 볼을 꼬집었다.
 “야야, 이리 와, 넌 나랑 해야 되니까. 그리고 로터 저 녀석에게 참한 애 한 명 붙여 줘라. 쟤 처음인 것 같으니까.”
 아스니아가 현에게 다가온 창녀를 다시 데려가고는 다른 이를 소개해 달라고 말하자, 창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들어와서 골라 봐. 새로 온 애들이 많아서 골라 보면 될 거야.”
 창녀를 따라 21십인대원들이 자리를 옮겼다.
 “애는?”
 절레절레.
 방금 그 창녀가 손짓을 하며 짧은 치마 차림의 여인들을 가리키자, 현은 고개를 젓기만 했다.
 ‘젠장! 말해, 현아! 그냥 다 싫다고 말하란 말이야!’
 입안에서는 ‘다 싫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밖으로 우러나오지가 않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을 불쾌하게 느낀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 대부분은 가정환경이나, 생활고 때문에 나온 이들이지, 좋아서 나오는 이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유기도 했고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여자와 그것을 한다는 게 영 찝찝해서였다. 모르는 여자와 하는 게 얼마나 어색하고 창피하겠는가?

댓글(6)

홈즈홈    
첫 설정부분 부터 맘에 안드네 판타지가 아니라 걍 근현대사 복붙해서 ㅋㅋㅋ 전혀 판타지스럽지 않고 확 깬다 모방이 아니라 복붙 수준임 ㅋㅋㅋ
2017.09.04 13:35
k3***********    
천인대중에 백인대로 나뉘는대 특수병과나 다른 특이사항으로 100 백인대가 없을수도있는데 102 백인대가 있네요? 444 백인대나 666백인대같은걸 건너뛰어서 그런가?
2021.08.05 19:52
야옹고    
아니 군대에서 오발로 어깨 맞았는데 의가사 제대도 아니고 군생활을 다했다고요? 입막아도 모자랄판에?
2021.08.21 18:36
야옹고    
글 소개는 전승무예 어쩌고 더만 완전 말더듬 호구아냐 이런것도 돈내고 봐야되나 전권 공짜라도 안볼듯한대....
2021.08.21 18:43
너솔    
한심하다 한심해
2021.08.22 18:43
나이트워크    
10명이서 돼지 한마리? ㅋ 장난치냐? 못해도 100kg는 될텐데?
2021.09.0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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