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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제1거래일 : 포커꾼, 주식을 하다

2017.07.11 조회 3,668 추천 72


 멋진 선물-
 미묘하고도 아름다운 포장지에 싸여
 자신을 풀어 달라 애원한다
 
 두근
 두근
 두근
 
 흥분이 충동이 되어 그것을
 나도 모르게 연 순간
 갇혀 버렸다
 그것이 중독인 줄도 모른 채
 
 멋진 중독-
 그것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
 
 * * *
 
 직장 생활과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염증이 서서히 악화되던 서른 살 초여름 날······. 나는 무심코 주식 계좌를 만들었다.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고 무엇인가 날 뜨겁게 만들어 줄 오아시스를 은근히 찾고 있었다.
 사실 처음엔 재테크 수단이라기 보단 취미나 여가 생활로 가볍게 1백만 원 정도 넣고 게임하듯이 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6개월 뒤······.
 나는 자신감에 차서 나름 간판이 좋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업자’가 되었다.
 겁 없는 ‘트레이더’가 된 것이다.
 나에게 말해 본다.
 이건 포커 같은 도박하곤 차원이 다른 ‘투자 과학’이라는 걸.
 포커.
 처음 포커라는 것을 접했을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다. 우연히 놀러 간 친구네 집에서 한 아이가 신기한 카드를 보여 주면서 게임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포커를 처음 만났다.
 하지만 어릴 적 누구나 그렇듯 그건 잠깐 즐기고 이내 싫증이 났기에 스쳐 가는 게임 중 하나였다.
 그런 포커 게임에 중독이 된 것은 군대를 제대한 2002년도의 일이다.
 한창 월드컵 열기가 한창인 그때, 나는 매일 골방에 틀어박혀 ‘피멍포커게임’에 날밤을 새웠다.
 군 제대 후 놀러 간 PC방에서 친구 한 놈이 말했다.
 
 -나 어제 50만 원 한 타임에 벌었어!
 
 녀석은 째지는 웃음으로 자랑했다.
 피멍포커에서 얼마를 따서 직거래로 얼마에 팔았다는 거다.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의심을 잠깐 품었지만, 이내 그것은 환희로 바뀌고야 말았다.
 도박판의 대부분이 그렇듯 처음은 기분 좋은 승리가 찾아온다.
 나의 첫 승리는 너무나 달콤했다.
 5박 6일 동안 모은 가상의 포커 머니 5천억으로 소위 말해 ‘큰방’에 들어갔고, 거기서 포카드로 A풀하우스를 잡았다.
 오지게 큰 판이었다. 그 판에서 딴 가상 머니를 ‘아이템모니아(당시 거의 최초 이용자)’에서 팔아 수수료 빼고도 현금 2백만 원 이상을 남겼다.
 그 느낌은 마치 꿈속을 걸어 다니는 것처럼 심장을 붕 띄워 놓았다.
 20일 알바로 뼈 빠지게 막노동판에서 번 돈 80만 원(당시 일당 4만 원)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떼돈을 벌겠구나. 그런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지만 역시나 도박 중독자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 또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게임이 점점 과감해지고 충동적으로 변해 간 것이다.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서 큰 방에 들어갈까. 역시나 나도 다른 폐인들처럼 현금으로 포커 머니를 사서 바로 큰 방에 입장했다.
 나는 판매자에서 구매자로 바뀌더니 점점 더 심한 구매자로 전락했고, 그 결과 2백만 원의 수익이 마이너스 150만 원이 되어 나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게 쓰리고 너무 아팠다.
 키보드를 부수고 마우스를 던지고 욕지거리를 해 봤지만, 남는 건 황폐화되는 정신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머리를 쓰고 집중해서 하는 게임이었는데 왜 끝에는 항상 지는 걸까?
 처음 출발은 결코 나쁘지 않은데······.
 그래, 항상 처음 시작은 괜찮다. 그런데 3시간, 5시간이 지나면 차근히 지켜 가던 멘털이 임계점(충동 조절이 안 되는 과부하 상태)에서 폭발해 무서운 베팅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폭주하면 결국 깡통을 차게 된다.
 폭발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것은 바로 ‘섞이는 패’다. 오랜 시간 동안 포커를 치면 상대와 판의 분위기를 몸으로 느끼고 심리가 안정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내가 안다고 확신할 때가 오는데, 그때 어설픈 패로 섣부른 베팅을 치고 그것이 섞여 ‘올인’이 되는 것이다.
 ‘섞인다’는 것은 레어 패가 같이 뜬 것을 말한다. 심할 때는 내가 포커라도 상대가 더 높은 패가 뜨는 로또(?) 같은 망할 꼴을 보기도 했다.
 일단 패가 섞이면 판돈이 순식간에 어마어마하게 불어났고 승리를 확신하며 탐욕의 웃음을 짓는 얼간이는 곧 패가 까이고 울분을 토해 내고 말았다.
 “아······ 씨팔! 이 패로 내가 지다니!”
 열을 받아 주먹으로 벽을 치며 분노했지만, 결국 나의 돈을 베팅한 건 주먹 쥔 이 손가락이 아니었던가.
 포커는 N분의 승리가 아닌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가진 돈을 모두 베팅했다면 크게 먹거나 또는 모두 털리거나 둘 중 하나다.
 ‘그때 그렇게 베팅하지 않았다면······. 아니, 아주 조금만 베팅했더라면······.’
 속으로 되뇌면서도 본전 심리로 다시 머니를 충전해서 게임방을 클릭하는 나였다.
 하지만 결과는 또다시 패배.
 악순환이다.
 그런 악순환은 그 당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의 마이너스 통장이란 결과가 나오고서야 결국 끊기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포커 게임은 쓰라린 패배로 끝이 났다.
 하지만 주식은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주식은 그런 허접하고 사기 치는 도박과는 엄연히 다르지 않던가?
 
 * * *
 
 내가 개설한 계좌는 ‘키운증권’이었는데, 아직도 개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증권회사다.
 그냥 ‘와오티비’ 같은 주식 방송 몇 번 보고 서점에서 꽤 인기 있다는 ‘기술적 강론’이라는 책을 샀다.
 그 책을 대충이라도 보니 주식은 뭔가 엄청나게 복잡하고 수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짜여 있는 학문 같았다. 정말로 도박하곤 차원이 다른, 말 그대로 투자 역학 같아 보였다.
 나도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 뭔가 가치 투자자가 될 것 같았고, 적은 돈이나마 소소한 용돈벌이가 될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처음 시작은 1백만 원 넣은 걸로 방송에서 똑똑한 애널리스트들이 추천하는 종목으로 매수를 했고, 매일 일이 끝나면 시세 확인을 했다.
 처음엔 신기하더라.
 내가 가진 종목 계좌에 빨간색의 숫자들이 플러스 몇 프로 수익금으로 변하는 게 말이다.
 마이너스조차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마치 가상의 공간에서 돈이 위아래로 나를 보며 춤추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플러스 2%, 내일은 –3%, 다음 날은 보합, 다음 날은 –1%······.
 지지부진하지만 조금씩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오르락내리락하다 어느새 보면 -10%가 되어 버렸다. 그럼 어김없이 방송에선 손절매를 하라 그랬고, 더 이상 그 종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정보를 구할 길이 없던 나는 그래도 방송이 가장 정확하다 믿고 -10% 손절매를 치고 다시 추천해 주는 다른 종목으로 착실하게 갈아탔다.
 -10% 매도였지만 세 종목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한 종목에 30만 원 정도 비중이기에 실제론 3만 원 정도 잃은 것이다.
 그게 크게 아프게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충실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직장 다니면서 3개월간 주식시장에서 투자한 결과는 총 -25%······. 돈으로 따지자면 25만원을 날렸다.
 돈의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열을 받았다. 방송에서 해 주는 대로 매매를 했더니 결과가 –25%였다.
 이게 백만 원이 아니라 천만 원이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썩을 놈들!’
 욕이 절로 나왔다.
 나중에 금방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방송은 ‘개미 무덤’이다. 말 그대로 총알받이 실탄을 꽉 채우고 탑승하는 자살 열차와 같다.
 이미 핸들링을 하는 세력은 오래전에 낮은 평단가로 물량을 매입했고, 재료를 만들었으며 뉴스를 터뜨리고 시세 차익을 한참 우려먹는 그 찰나에 방송이 나가는 것이다.
 일명 손털이 작업이다. 특히나 대형주, 우량주가 아닌 소형주나 테마주는 100이면 거의 80%가 그런 형태다.
 쉽게 말해 ‘개잡주’에 물리는 것이다.
 어쨌든 석 달간 ‘방송 매매’를 한 결론은 ‘이건 왠지 아닌 것 같다’였다.
 그래서 방송 말고 뭔가 사제 느낌이 나는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이리저리 찾아다녔고, 결국 ‘네이바증권’ 게시판과 ‘팍소넷’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곳은 방송보다 더 무서운 개미 무덤이었는데 처음엔 너무나 열심이었다.
 거기엔 대부분 똥으로 싸지른 글이나 ‘가짜 찌라시’들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정말 배울 만한 양지의 글과 정보도 있었다.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나중에는 주식 매매보다 팍소넷 소설들을 탐독하는 데 더 열중할 정도였다.
 매일매일 인기 게시판이 있었고 주로 시세가 크게 나거나 뉴스가 뜬 테마 종목들이 많았다.
 게시판 글들은 크게 ‘안티’와 ‘찬티’로 나뉘는데, 안티들은 주로 이유 없는 디스를 해 댔고 찬티들은 그럴듯한 근거를 들며 달콤한 속삭임을 했다.
 찬티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새 든다. 이런저런 회사 찌라시들이 들어오고 더 이상은 떨어지지 않을 것 같고 현재가 가장 싼 시점이며 곧 시세 폭발해서 상한가에 골인할 것만 같다.
 귀가 얇은 게 죄일까, 게시판 매매도 마찬가지로 오르락내리락하다 이내 지하실을 구경했다.
 잃은 종목 게시판에서 욕으로 도배하면서 안티를 해 봤지만, 남는 건 글쓰기 정지밖에 없었다.
 게시판 ‘뇌동매매’ 결과는 –30%였다.
 열이 받아서 왜 이럴까 생각하며 HTS(주식 프로그램)의 차트라는 걸 계속 훑어보았다.
 그러다 작은 깨달음이 왔다.
 ‘맞아······.’
 나는 잃은 게 아니라 잃을 타임에 돈을 뺏을 뿐이다. 차트는 출렁이고 나도 분명 높은 곳으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 다만 수수방관할 때 대세는 지하 폭포수를 따라 아래로 흐르고 있었던 거다.
 죽기 전에 싼다고 분명 모든 종목들이 한 번씩은 시세 분출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다만 내가 매도한 타이밍이 지하 폭포수로 떨어지는 그때였던 거다.
 ‘그래! 타이밍이야, 타이밍!’
 조금씩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뭔가 잘될 것 같은 촉이 왔다.
 이전의 종목을 매수하고 매도하던 평균 날짜가 일주일 내지는 보름이라면 매매일자를 평균 1~2일로 짧게 잡았다.
 게시판에서 오를 만한 종목들 정보를 캐치해서 사 놓고 하루 이틀 있다가 파는 것이다.
 올라도 팔고 떨어져도 팔았는데, 효과가 좋은 것이 떨어질 때는 추가 피해 없이 금방 빼니까 마이너스가 적었다.
 그렇게 한 달을 매매한 결과 +5%라는 수익을 올렸다.
 큰 수익은 아니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안정적인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투자금을 3백만 원으로 올리고 다시 그 방법으로 매매를 했다.
 결과는 +7%.
 이전 달과 크게 차이는 없었지만 흥분이 되었다. 이유는 내가 빼고 싶은 타이밍이 많이 있었는데, 직장 일 때문에 못 뺏기 때문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못 뺐다.
 
 그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흥분이 됐다.
 ‘그렇담 내가 조율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그 정답 없는 망상이 직장 생활의 염증을 더욱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고 일이 힘들 때마다······.
 
 -이까짓 직장 때려치워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 아니, 훨씬 더 잘 먹고 살 거야!’
 
 이런 근거 없는 배짱이 불쑥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사소한 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됐는데, 사실 그 이면에는 주식이 있었다.
 어렵게 들어간 간판 좋은 직장이었는데, 그곳이 어느덧 감옥처럼 느껴진 것이다.
 
 -아무리 좋은 걸 줘 봐라, 질린다. 그런데 그것에 질린 게 아니야. 너는 이미 다른 것을 원하고 있는 거야.
 
 사수의 말이 가슴 심부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 앞에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태연한 척 웃었지만 어쩌면 이것이 잘못된 길일지 모른다는 걸 내 또 다른 자아가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욕망은 더욱더 자극적인 것에 쏠린다. 단순하고 생존적인 것에서 점점 쾌락적이고 짜릿한 걸로 옮겨진다.
 손에 쥐인 이 작은 횃불이 이 세상 모든 걸 태워 버릴 것처럼 현재 나에게는 너무나 강렬하게만 다가왔다.
 “제겐 꿈이 있습니다. 그건 시시하지 않아요.”
 사수에게 건방진 대답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곤 짐을 꾸려 회사 건물을 나섰다.
 3년간의 직장 생활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여기서 탈출이다.’
 출입문을 열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
 새 출발을 하기에 좋은 날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가슴이 한껏 벅차올랐다.
 이제 나는 또 다른 직장으로 향한다.
 보증금 5백에 월세 15만 원의 허름하지만 안락한 옥탑방.
 바로 거기서 나는 당당하게 다시 태어날 것이다.
 성공한 트레이더로!
 주식 전문가로!
 
 이것이 내 ‘주식 인생’의 시작이었다.

댓글(2)

인증요원    
역시 이 느낌이었습니다. 작가님 돌아오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잘보겠습니다^^
2017.07.13 11:24
푸르샤    
ㅎㅎㅎ! 쥔공이 저와 같은 패턴을 밟아 왔군요. 썼다 포카 즐기면서 주식....! 명퇴하기 전에 명퇴금으로 베팅하고 도미를 했는데... 미국에 도착해 보니 연하탄을 맞았더라고요. 남은 돈을 과감히 빼서 집을 샀죠! 그냥 주식을 했더라며는 어찌됐을까요? 님의 글 보면서 죈공과 저 자신을 비겨해볼랍니다.
2017.07.1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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