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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지션즈 1

2017.07.21 조회 1,408 추천 10


 메지션즈 1권
 
 
 서장
 
 
 칼리아나 대륙의 8클래스 대마법사 키르야노 스윈은 60세의 나이에 대륙 최연소 7클래스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의 빼어난 재능은 오히려 독이었다.
 7클래스의 대마법사는 실력만 놓고 본다면 어느 왕국, 아니, 대제국을 가더라도 황실 대마법사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허나 칼리아나 대륙은 철저한 혈통 중심에 신분제란 족쇄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평민 출신이었던 스윈이 최연소 7클래스의 경지를 이룬 것은 경외나 존경의 대상이 아닌, 귀족마법사들의 질시와 환멸의 대상에 불과했다.
 결국 스윈은 자신의 재능을 시기한 귀족 마법사들의 모함을 받았다.
 스윈이 이룬 7클래스의 경지가 흑마법에 의한 것이라고 말이다.
 현재 칼리아나 대륙에서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존재는 마족의 힘을 빌려 마법사가 된 흑마법사였다. 스윈은 흑마법에 손조차 대지 않았건만 마족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7클래스를 이뤘단 소문이 대륙에 일파만파로 퍼져 버린 것이다.
 저주받은 흑마법사라는 치욕스러운 불명예를 뒤집어쓴 것도 모자라 스윈에게는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린 척살령까지 떨어져 버렸다.
 제아무리 7클래스의 대마법사라 할지라도 자신의 목을 노리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이들을 다 상대하기는 무리.
 더욱이 혹여나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 버린다면 자신이 흑마법사란 것이 소문이 아닌 확신이 되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스윈은 속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심산유곡 깊숙한 곳에 던전을 만들어 홀로 마법을 연구하며 남은 생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고독과 싸우며 홀로 마법을 연구한 지 20년이 지나자, 스윈은 마침내 대륙 그 누구도 밟지 못한 8클래스라는 전대미문의 영역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세상에 나간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테지만, 그러기엔 이미 혼자라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다. 속세에 관심이 사라진 스윈은 홀로 소소하게 마법만을 연구하며 살다 자연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계속 마법 탐구에 매진했다.
 그중 스윈의 마음을 가장 이끈 것은 가장 난해하기로 손꼽히며 아직까지 미완성인 텔레포트의 마법진을 완벽하게 구성하는 것이었다.
 비록 미완성일지라도 텔레포트 마법진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7클래스에 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륙에 몇 없는 7클래스의 대마법사들이 할 일이 많은데 난해한 텔레포트 마법진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기에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또한 공간 이동이라고 해 봐야 짧은 거리밖에 이동할 수 없었기에 연구할 가치를 못 느끼는 이유도 한몫했다.
 거리가 늘면 늘수록 위험성이 압도적으로 커지기에 안정적인 이동 거리는 마차로 하루 정도에 불과한 게 바로 텔레포트 마법진이었으니 말이다.
 또한 그것도 7클래스의 대마법사가 시전했을 때의 경우였다.
 이러한 짧은 거리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스윈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완벽히 구성하는 것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
 그렇게 또 십여 년이 흐른 뒤, 스윈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실험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이론상으론 완벽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첫 시전하는 날 스윈은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그답지 않게 소모되는 마나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 생각했던 마나보다 수백, 아니 수천 배 이상으로 마나가 소모되어 버린 탓이다.
 대자연이라 일컬어질 만큼의 많은 양의 마나를 보유했던 스윈조차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법진을 통해 빠져나가는 마나를 제어해 보려고도 했지만 헛수고에 불과했다.
 8클래스의 방대한 마나를 집어삼켰음에도 부족하다는 듯, 마법진은 마나를 대신해 그가 살아가는 원동력인 생기마저 빼앗아 갔다.
 번쩍!
 생기를 빼앗긴 스윈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마법진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정신을 잃었다.
 
 ***
 
 “크윽······ 여긴······?”
 전신을 도륙하는 고통 속에서 눈을 뜬 스윈은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았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과 낯선 흙 내음이 풍겨지는 게, 자신의 안식처였던 던전은 아닌 듯했다. 마나량에 대한 계산은 실패했지만 텔레포트 자체는 성공해 어딘가로 이동된 것이 분명했다.
 “이, 일어나야 하는데······.”
 마나에 더해 생기마저 뺏긴 몸으로는 제대로 가누지 못하기에 혹여나 몬스터를 만난다면 그 위장으로 직행하는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나 무거웠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하······ 이렇게 죽는 건가?’
 스윈은 죽음을 직감하고 가슴속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스윈은 누군가 자신의 등을 떠받쳐 주는 손길을 느꼈다.
 흉악한 몬스터가 아닌 따뜻한 사람의 손길이었다.
 스윈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려 보았다.
 밝은 빛에 잠시 눈앞이 흐렸지만 곧 그의 시야에 생소한 생김새의 사내아이와 처음 보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이 비춰졌다.
 대마법사란 모든 자연과 세상의 이치에 능한 자, 즉 현자다.
 아무리 처음 보는 나무라 해도 어느 지역에서 자라고 있을 만한 나무인지는 알 수 있을 만한 경험과 지식이 있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나무들은 칼리아나 대륙에 존재할 만한 형태의 나무가 아니었다.
 ‘대륙에 이런 나무들이 자랄 만한 지역이 있었던가? 대체 어디에 떨어진 거지?’
 칼리아나 대륙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풍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 @$% $!@#^.”
 그 순간 소년의 입에서 그가 들어 본 적 없는 생소한 언어가 흘러나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언어였다.
 전 대륙을 돌아다녀 봤던 스윈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는 있을지언정 들어 보지 못한 언어는 없었으니 당연했다.
 ‘독자적인 언어를 쓰고 있다는 건 주변에 무리 지은 사람들이 있고 외부와 교류하지 않은 채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의미다. 아무리 오지에 떨어졌다고 해도 칼리아나 대륙에 그런 장소가 있을 리가······.’
 그 순간 스윈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정이 번뜩 떠올랐다.
 ‘설마 차원 이동!’
 무수히 많은 마법사들이 도전하고 또 도전해 보았지만 실패만을 거듭하던 차원 이동 마법.
 혹여나 자신이 차원 이동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쿨럭.”
 기침과 함께 검붉은 죽은피가 쏟아진 것이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마나뿐만 아니라 생기마저 빨아들였기에 그의 육체 자체가 오랜 가뭄에 말라 버린 풀처럼 죽어 가고 있는 탓이었다.
 ‘안 돼.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
 스윈은 홀로 남은 생에는 그다지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룩한 8클래스의 마법이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자신과 함께 사장되는 것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뭐라도······ 남겨야 해.’
 스윈은 소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소년이 누구인지, 여기가 정말 다른 차원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몸을 일으켜서 직접 가르쳐 줄 수 없는 이상, 자신의 모든 지식과 마법을 남기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8클래스 마법을 사장시키지 않으려면 이 방법뿐이다.’
 스윈은 마지막 남은 마나와 생명력을 불태우며 천천히 주문을 외웠다.
 
 
 1장
 
 
 총기 가득한 눈. 오뚝한 콧날. 작지만 앙다문 입술은 남다른 고집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소년의 이름은 주소민(周昭珉)이었다.
 주소민은 자신이 사는 곳이 아마도 무당산 부근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자세하게 생각나지도 않았다. 온전히 기억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산에서 장난을 치거나 나무를 꺾으면 돌아오는 것은 어른들의 따끔한 잔소리뿐이었다.
 영산을 향해 불경을 저지르면 안 된다고 했던가?
 그런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주소민은 점점 무당산이 싫어졌다.
 더군다나 소민은 자신의 부모를 해친 자들이 무림인이라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도를 닦는다지만 무당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무방파도 무림의 한 문파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주소민이 무당산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부모 없이 홀로 자란 주소민은 어릴 때부터 마을의 소문난 악동이었다.
 그의 이름을 듣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동네 왈패들 뒤를 쫓아다니며 욕과 싸움질을 배웠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주소민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악동처럼 행동하는 것은 부모가 없는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주소민에게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찾아왔다.
 하나같이 허리춤에 고색창연한 검이나 도를 한 자루씩 달고 있는 노인들이었다.
 딱 봐도 ‘나 무림인이요.’ 하는 게 눈에 보이도록 말이다.
 무림인이라면 치를 떨던 주소민은 그런 노인들이 찾아오는 게 정말 싫었다.
 하지만 노인들은 매번 무시하고 또 무시해도 하루가 멀다고 찾아왔다.
 오늘도 주소민의 앞에는 반백의 머리에 더러운 땟국이 줄줄 흘러내리는 노인이 서 있었다.
 세 가닥 수염을 기르고 차림새 또한 땟국에 찌든 도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등 뒤에는 고색창연한 검의 손잡이가 삐죽 솟아 있었다.
 역시나 무림인이었다.
 그 노인은 주소민을 살피듯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다짜고짜 앞을 가로막는 노인 때문에 주소민은 내심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아무리 장난이 심하고 왈가닥이었지만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었던지라 나이 지긋한 노인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누구세요?”
 “허어, 선재로다. 아이야, 나를 따라가겠느냐?”
 노인은 주소민의 물음에 대답보단 자신의 말을 먼저 꺼냈다.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듣던 말이기에 ‘또?’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 끌려가기까지 했으나 이제는 이골이 난 상태.
 주소민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유괴범이죠?”
 “헛?”
 노인은 자신을 유괴범이라 칭하는 주소민을 황당한 얼굴빛으로 쳐다봤다.
 “할아버지, 유괴범 아니냐구요. 저번에 관아에서 붙인 유괴범 지명 수배 명단에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요?”
 노인은 황당해했다.
 “유괴범이라니? 내가 그렇게 보이느냐? 나는 무림에서 그 유명한 무당······.”
 “유괴범이면 잡혀가 줄까 했더니 아니에요? 그럼 됐어요. 안녕히 가세요.”
 주소민이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러자 노인은 주소민의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그 두 눈에는 정말 무공에 관심 없고 싫다는 게 역력히 묻어나 있었다.
 “······인연이 안 되는 것을 아쉬워해서 무엇하랴. 무량수불.”
 인연이 안 됨을 탓하며 떠나가는 노인의 등 뒤를 바라보던 주소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은 그래도 빨리 포기해서 다행이네.”
 싫다는데도 막무가내로 끌고 가던 노인들도 많았었으니 말이다.
 “에휴. 또 마주치기 싫으니 나무나 하러 가야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주소민은 마당 한편에 놓여 있던 도끼를 들었다.
 꽤나 큼지막한 것이 아이가 쓰기엔 상당히 무거워 보였지만 주소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 어깨에 걸쳤다.
 
 주소민은 큰 도끼가 무겁지도 않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을 올랐다.
 땔감으로 쓸 만한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당산 꽤 깊은 곳에 들어가야만 했다.
 한 시진 정도 무당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죽은 지 제법 오래된 바싹 말라 있는 고목이 보였다.
 주소민은 도끼를 내려놓고 고목 앞에 섰다.
 멀리서 보던 것보다 꽤나 굵고 높은 고목이었다.
 “퉤퉤.”
 주소민은 양손에 침을 뱉으며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쿵!
 도끼는 커다란 고목의 배를 가르고 은빛 날을 번뜩였다.
 그 자세가 웬만한 나무꾼들보다 익숙해 보였다.
 매일 나무를 베어다 장에 내다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지이이익!
 몇십 번 반복된 도끼질에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만 같던 고목이 큰 소리를 내며 기울기 시작했다.
 주소민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훔쳤다.
 “후우.”
 쿠웅!
 고목이 쓰러지면서 낸 굉음에 온 무당산이 울리는 듯했다.
 그런데 쓰러진 고목을 잘게 자르려던 순간, 난데없이 강풍이 불어왔다.
 흙먼지가 다소 포함되어 있는 바람이라 주소민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그때, 태양이 중천에 뜬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태양보다 더 강렬한 빛이 머리 위에서 번쩍였다.
 번쩍!
 “뭐, 뭐야?”
 그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허공에 웬 시커먼 물체가 떠 있는 게 보였다.
 허공에 떠 있던 그 정체불명의 물체는 곧 주소민의 코앞에 떨어졌다.
 털썩.
 주소민은 천천히 코앞에 떨어진 물체에게 다가섰다.
 “헛?”
 주소민은 헛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코앞에 떨어진 물체가 다름 아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온몸을 휘감는 탐스러운 긴 흰 수염과 비록 주름져 있지만 백옥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피부······ 영락없이 주소민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신선의 풍모였다.
 “헉! 말로만 듣던 신선인가?”
 영산이라 불리는 무당산의 깊은 산중에서 난데없이 허공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면······ 귀신이 아니라면 신선일 것이다.
 그리고 해가 쨍쨍한 대낮에 귀신이 나타났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으니 분명 신선일 터였다.
 “크윽······.”
 노인이 신음성을 흘리며 몸을 움직였다.
 주소민은 재빨리 노인에게 다가가 상체를 일으켜 주었다. 신선을 도와주면 무언가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대낮에 신선을 돕는 기회를 갖게 된 주소민은 횡재한 기분마저 느끼고 있었다.
 ‘뭘 주시려나?’
 그때 노인이 감고 있던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러자 눈꺼풀에 가려져 있던 푸른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노인의 청안을 본 주소민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태껏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은 들어 보지도, 만나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숨을 고르고 차분해질 수 있었다.
 ‘역시 신선은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그저 신선이니까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게 당연한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저기, 괜찮으세요?”
 주소민이 물었지만 노인은 입술만 꿈틀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스르륵.
 어느 순간부터 노인의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한 줌의 빛나는 가루가 되어 주소민의 손 위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주소민은 정신을 잃었다.
 
 ***
 
 해가 뉘엿뉘엿 서산 너머로 고개를 숙이는 초저녁.
 정신을 잃었던 주소민이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는 주소민은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냐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여기서 왜 자고 있지?”
 주소민은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러가다가 이상하게 생긴 검은 옷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 신선!”
 주소민은 신선의 몸이 자신의 손 위에서 빛나는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걸 본 부분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로 왜 정신을 잃었는지는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골똘히 생각하던 주소민은 신선이 아마 신통력으로 자신을 잠재운 뒤 모습을 감추었으리라 여겼다.
 주소민은 자신의 눈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신선복을 집어 들었다.
 우수수.
 칠흑처럼 새까만 신선복을 주워 들자 옷 속에 있던 수많은 물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소민은 떨어져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물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금반지부터 반짝이는 붉은 적옥석(赤玉石)이 박힌 나무 막대까지, 짧은 인생에 처음 보는 것투성이다.
 게다가 금반지며 보석이며 전부 값나가는 물건들.
 신선이 자신에게 남겨 준 선물이라 생각한 주소민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와! 횡재했네?”
 주소민이 환호성을 질렀다.
 조그마한 금반지를 비롯한 장신구들은 주머니에 쑤셔 넣고 적옥석이 박힌 나무 막대와 신선복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주소민은 풍족해진 마음으로 산을 내려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였다.
 [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주소민의 머릿속에 난데없는 노성이 울려 퍼졌다.
 “뭐, 뭐야?”
 머릿속에서 울리는 굵은 목소리에 주소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아직 죽지 않은 건가?]
 “으윽!”
 주소민은 노성이 울릴 때마다 머리가 깨어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더불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울리는 노성이 자신이 지금 환청을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귀, 귀신! 내 몸에 귀신이 들어오다니!”
 [······.]
 
 허겁지겁 산을 내려온 주소민은 불이 나게 뛰어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창백해진 얼굴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주소민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불경을 외기 시작했다.
 불경을 외면 사람에게 붙은 귀신이 떨어져 나간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귀신은 물렀거라!”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주소민의 몸에 빙의 비슷하게 기생하게 되어 버린 스윈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곰곰이 고민을 해 봤다.
 생기가 다해 죽을 운명이었던 자신이 어째서 주소민의 몸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그저 내 지식과 마법을 남겨 주려고 했을 뿐인데······.’
 아무래도 생기가 다한 몸이었기에 주문이 온전히 발현되지 못하고 뭔가 틀어진 채로 발현된 듯했다.
 ‘아이가 이렇게 겁먹고 있는 것을 보니 마법과 지식이 전수되지는 않은 듯하군. 만약 내 본능이 이렇게 되리란 걸 예측했다면······.’
 어쩌면 지식과 마법을 전수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자신의 본능이 다른 길을 찾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식과 마법을 풀어서 가르쳐 주는 대신 영혼, 혹은 정신 자체를 빠르게 넘겨 버리는 것으로.
 ‘급박한 상황에 몰린 절박함이 더 어려운 마법을 발현시켰는가 보군. 나야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스윈 입장에선 별 상관 없었다.
 원하던 바는 아니었지만 육신을 잃었어도 정신만은 또렷이 남아 있기에 훌륭한 마법 스승이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윈은 주소민에게 마법을 가르쳐 8클래스 대마법사의 유지를 잇게 할 생각이었다. 비록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리겠지만······.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오들오들 떠는 주소민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얘야, 나는 귀신이 아니란다.]
 스윈이 말을 걸었다.
 “시, 시끄러! 물렀거라!”
 주소민이 총명하고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고 다녀도 아이는 아이일 뿐.
 귀신이 무서울 수밖에 없는 주소민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계속해서 불경만 외웠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 일을 어쩐다?’
 
 ***
 
 퀭.
 소민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해 두 눈이 퀭해지고, 피곤하면 나타나는 눈 밑 검은자국이 턱 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좀 안정이 되느냐?]
 “······.”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주소민은 이제 불경을 욀 기력도 없었다.
 “······대체 어떤 귀신이세요?”
 대신 떨리는 목소리로나마 귀신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 보았다.
 [허허, 이제야 나와 말할 마음이 생긴 것이냐?]
 “저한테 뭔가 바라는 게 있으세요?”
 예로부터 귀신은 이승에 한이 있을 때 나타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마냥 떨고 있기보다는 한을 풀어 주고 어서 사라지게 하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도,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얘기나 한번 해 보세요.”
 [크흠. 얘야, 나는 우선 귀신이 아니란다. 이 몸은 칼리아나 대륙의 8클래스 마법사인 키르야노 스윈이라고 한단다. 아이야,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을 묻는 스윈의 말에 주소민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주소민······인데요. 칼리아나 대륙은 뭐고 8클래스는 뭐죠?”
 한을 풀어 줘야겠다고 하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단 방구석에 있는 내 옷을 보거라.]
 소민은 산에서 가져왔던 새까만 신선복을 보았다.
 “어? 저게 당신 옷이라고요? 그럼 귀신이 아니라 그때 그 신선?”
 [그래, 신선이라면 신선이지.]
 귀신이 아니라 신선이라는 말에 주소민은 왠지 마음이 놓였다. 귀신은 무섭지만 신선은 아니었으니까.
 “휴우······.”
 [그 옷, 순백의 로브는 나 키르야노 스윈의 전유물이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것들은 내가 마법으로 만든 아티팩트지.]
 “순백······?”
 주소민은 새까만 옷을 가리키며 순백이라는 의미 모를 말을 하는 스윈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순백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소민은 방구석에 놓여 있는 스윈의 옷을 집어 들었다.
 “어디를 봐서 이게 순백이라는 거예요?”
 순백의(?) 옷을 살피던 주소민은 어젠 몰랐지만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에 얼굴을 찡그렸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주소민은 손톱으로 순백의 옷을 긁어 보았다.
 그러자 옷을 긁은 손톱에 시커먼 때가 묻어나왔다.
 주소민은 설마 하는 생각에 옷의 이곳저곳을 손으로 긁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수히 떨어지는 때가 눈을 어지럽혔다.
 이어 검은 때 속에 가려져 있던 순백의 로브 본연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분명 흰빛이 감돌았다.
 “웬만하면 좀 빨아 입으시지······.”
 소민의 투덜거림에 스윈이 겸연쩍은 듯 말했다.
 [미안하구나. 혼자 살다 보니 빨래하기가 귀찮았구나······.]
 때 묻은 순백의 옷은 나중에 빨기로 하고 소민은 다른 물건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티팩트인가 하는 것이 이것들이에요?”
 [그래, 그것들이 아티팩트란다.]
 “아티팩트가 뭐죠? 신선이 쓰는 물건인가요?”
 처음 듣는 발음도 어려운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하게 해 주는 물품?”
 주소민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었다.
 ‘······!’
 소민의 혼잣말에 스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이 마법이 잘못되어 자신의 정신만 깃들었을 뿐 마법과 지식은 각인되지 않았을 것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더 알아봐야겠지만 주소민이 인지하고 있지 못할 뿐 어느 정도의 마법과 지식은 전수된 듯했다.
 그게 정말이라면 8클래스의 엄청난 마법 지식이 소민의 머릿속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면 소민에게 마법을 가르치기가 훨씬 더 수월해질 테고 기간도 짧아질 수 있었다.
 [소민아, 혹시 내게 마법이라는 것을 배우지 않겠느냐?]
 아티팩트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던 소민은 스윈의 물음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법? 그게 뭐죠?”
 [아티팩트는 아는데 마법은 모르는 것이냐?]
 “네.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스윈은 주소민의 머릿속에 마법과 지식이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 쓰기에는 아직 완전치 못하다 생각했다.
 [마법이란 말이다. 네가 말하는 신선이 쓰는 힘과 비슷한 것이란다.]
 “그, 그럼 도술이란 말이에요?”
 주소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신선은 막 눈과 비, 바람을 부리고 구름을 타고 천릿길도 한순간에 이동한다.
 세간 사람들은 그런 것을 도술이라고 부르며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도술?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마법을 거창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일단 둘러대었다.
 “정말 내가 도술을 배울 수 있단 말이에요?”
 [그렇단다. 내 옷에서 나온 아티팩트 중 잘 살펴보면 금반지가 하나 있을 게다. 그것을 한번 껴보렴.]
 주소민은 스윈의 옷 속을 뒤적거리며 금반지를 찾았다.
 주소민은 금반지를 찾아 시키는 대로 손가락에 꼈다.
 그러자 처음엔 약간 큰 듯 헐렁거렸지만 금반지가 줄어들며 손가락에 알맞은 크기로 변했다.
 “와, 신기하다. 이게 도술이에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주소민은 줄어든 반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신기해했다.
 [자, 이제 손을 내밀면서 파이어볼, 하고 외쳐 보거라.]
 “빠이아보?”
 [빠이아보가 아니라 파이어볼.]
 “파이어볼?”
 소민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화르르르!
 그러자 소민의 손 위에 활활 타오르는 화염구가 솟아났다.
 “어, 어억!”
 [후후, 고 녀석 놀라기는. 그럼 이제 캔슬이라고 외쳐 보거라.]
 “캔슬!”
 주소민이 입을 염과 동시에 활활 타오르던 파이어볼은 검게 그을린 천장만을 남겨둔 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자, 어떠냐, 소민아. 내게 도술을 배우지 않겠느냐? 이것보다 더 대단한 것들도 많이 있단다.]
 “도술을 배우면 저도 신선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주소민이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물었다.
 [나처럼 말이냐? 당연히 될 수 있단다, 허허.]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었다.
 “가르쳐 주세요!”
 소민의 승낙에 스윈은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
 
 밝고 환한 햇빛이 창을 비추는 밝은 방 안.
 환한 방과는 대조적으로 소민의 얼굴에는 어두움의 그림자만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주소민은 죄 없는 뒷머리만 박박 긁어 대었다.
 여태 인연이 없던 책상 앞에서 책과 씨름을 하자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신선이 되기가 그리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어려울 줄은 몰랐다.
 지금 주소민이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는 책은 마법 언어라 불리는 룬어가 적힌 책이었다.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마법 언어인 룬어부터 배워야만 했다.
 “으······ 머리에 쥐날 것 같아.”
 주소민이 투덜투덜 대는 것과 다르게 스윈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대단하구나. 이틀 만에 룬어를 벌써 절반 넘게 외워 버리다니.’
 천재라 불리던 자신조차 룬어를 읽고 쓰는 데만 반년가까이 걸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소민은 어설프게나마 룬어의 반 이상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마법과 지식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전수가 된 덕분일까?’
 스윈은 아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신선님.”
 [왜 그러느냐?]
 “신선 말이 너무 어려워요. 좀 쉬운 거 없어요?”
 [어려워도 어쩔 수 없단다. 도술을 쓰려면 전부 외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니 참고 공부하거라. 그리고 아직 첫술도 뜨지 않았단다.]
 “첫술이라고요? 이것만 하면 막 불도 쏘고 구름도 타고 다니는 거 아니었어요?”
 [참고 하다 보면 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말거라.]
 이제 시작이라는 말에 소민의 얼굴을 더욱 어두워졌다.
 
 그리고 룬어만 파기를 한 달. 소민은 결국 룬어를 모두 암기할 수 있었다.
 “끝났다! 신선님, 이제 바로 도술 배우는 거예요?”
 소민이 기대감에 부풀어 스윈에게 말을 건네었다.
 [허허, 대견하게도 이렇게 빨리 룬어를 뗐구나. 하지만 도술을 배우기 전에 배워야 할 게 몇 가지 더 있는데, 그중 쉬운 것부터 먼저 하자꾸나.]
 “······.”
 소민은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룬어를 익힐 때도 제일 쉽다고 했었는데 머리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몇 가지나 더 있다니······.
 “그 쉬운 게 뭔데요?”
 소민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수학이라고, 참으로 유익한 학문이 있지. 내 옷 안쪽 주머니에 보면 수학 관련 서적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익혀야 마법, 아니 도술을 배울 수 있단다.]
 소민은 안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안주머니를 휘젓던 소민의 손에 한 권의 책이 잡혔다.
 손에 잡힌 책을 꺼낸 소민은 책장을 휘리릭 넘겨 보았다.
 “······.”
 한참을 살펴보던 소민은 말문이 막혔는지 도통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선님.”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소민이 스윈에게 말을 건넸다.
 [왜 그러느냐?]
 “이 수학인가 뭐시기랑 도술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예요?”
 아직은 수학과 마법 간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없는 소민이었다.
 [도술이란 것을 쓰기 위해서는 대자연의 기운, 즉 마나라는 것을 이용해야 한단다. 마나라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물체를 이루는 근원이 되는 것이지. 그 마나를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 마나가 가지는 성질이 차이가 나게 된단다. 마나를 배열하여 그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 마법, 즉 도술이란다.]
 “그러니까, 마나의 배열에 따라 성질이 차이가 나고 그 배열이란 걸 하기 위해서 수학이란 게 쓰인단 말이에요?”
 설명의 핵심을 꿰뚫는 듯한 소민의 질문이었다.
 소민의 질문에 스윈이 기쁜 듯이 답해 주었다.
 [그렇지. 그 마나를 배열하는 것에 쓰이는 것이 수학이란다. 클래스를 거듭할수록 배열 방법이 복잡해지니 그 클래스에 걸맞은 수학을 배워야 하지. 차근차근 진도를 밟아 가도록 하자꾸나.]
 “알았어요. 그럼 이것만 배우면 도술 수업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지. 일단 상대적으로 쉽다고 여겨지는 5클래스까지의 수학을 먼저 공부하도록 하자꾸나.]
 “뭐, 그러도록 할게요.”
 소민은 뭔가 속는 기분이 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5클래스의 수학을 쉽다고 말하는 스윈이었지만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3클래스의 수학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칼리아나 대륙에서 개인 수학 아카데미를 차리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물론 스윈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소민이 그러한 사실을 알 리는 만무했다.
 
 스윈과 같이 수학을 공부한 지 석 달째 되는 날, 소민은 5클래스의 마법에 필요한 수학 이론을 모두 배울 수 있었다.
 스윈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소민의 학습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민의 빠른 습득력에 대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입맛이 씁쓸했다.
 ‘아무리 수학의 이론만이라지만 대단하군. 나는 반년씩이나 걸렸는데.’
 스윈의 말을 칼리아나 대륙의 마법사들이 듣는다면 울분에 피가 거꾸로 솟을 것이다.
 보통 마법사들은 5클래스의 수학을 몇십 년간 공부해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룬어와 수학 등 마법에 필요한 기초를 갈고닦은 소민은 드디어 스윈에게서 마법을 배울 수가 있게 있었다.
 “신선님, 이제 도술 가르쳐 주세요!”
 [일단 마나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클래스를 구분하는 방식을 알려 준 후에 몸속에 마나를 쌓는 법을 가르쳐 주도록 하마. 마나는 항상 우리의 주변에 있단다. 다만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지. 인간이 마나를 몸속에 쌓는 방법은 심장에 마나를 고리의 형태로 바꾸어 저장하는 것이다. 고리의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이 많아지는 형식이지.]
 “그렇구나.”
 소민은 스윈의 말을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마법의 등급은 각 클래스로 지정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1클래스는 1서클의 마나를 저장한 사람, 2클래스는 2서클의 마나를 저장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기 쉽지. 하지만 마나량으로 클래스를 나누지는 않는단다.]
 “서클이 아니라면 클래스를 정하는 기준이 뭐예요?”
 [일단 1서클의 마나로 1클래스의 마법을 사용하고 2서클의 마나로 2클래스의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클래스를 인정받으려면 그 서클에 맞는 마법들을 정확하게 익혀야만 하지.]
 “그럼 만약 4서클의 마나를 쌓았다고 할지라도 그 지식이 3클래스에서 머문다면 3클래스인 거예요?”
 소민이 궁금한 듯 스윈에게 질문했다.
 [그렇지. 몸속에 쌓은 서클의 개수보다 클래스의 지식이 낮다면 그것은 완전한 클래스라 할 수 없지. 그리고 제아무리 높은 클래스의 지식을 많이 알고 있더라고 그 클래스에 맞는 마나 서클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 또한 제대로 된 클래스가 아니란다.]
 “그렇군요.”
 [자, 그럼 이제 마나를 쌓는 법을 가르쳐 주도록 하마. 여긴 자연의 기운이 내가 살던 곳보다 적으니 조금 어려울 게다.]
 중원은 스윈이 살았던 칼리아나의 대륙보다 마나양이 극악이라 표현될 정도로 적었다.
 굳이 수치로 따지자면 칼리아나 대륙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소민이라 할지라도 마나를 느끼는 것만 해도 몇 년은 걸릴 듯했다.
 스윈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한 가지 묘책을 꺼내 놓았다.
 
 
 2장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를 저녁 무렵 소민은 때 아닌 등산을 하고 있었다.
 찬 저녁바람을 맞으며 오르는 무당산은 평소와 색달랐다.
 “왜 저녁에 산에 오르는 거예요?”
 소민이 궁금한 듯 스윈에게 말했다.
 [만물이 잠든 밤과 새벽은 낮 시간 동안 사용되었던 마나가 보충되는 시간이기 때문이지.]
 ‘신선이 되려면 산에서 수련을 해야지.’ 하는 생각에 소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이 근처였던 것 같은데······ 그래, 저쪽으로 좀 더 올라가 보자꾸나.]
 소민은 스윈의 말에 따라 충실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를 헤매었을까?
 흔하디흔한 새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유곡에 다다랐다.
 [저곳이다. 바로 저곳이야!]
 원하던 장소를 찾은 스윈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져 있었다.
 “저기요?”
 스윈이 가리킨 곳은 며칠 전 자신이 나무를 베러 왔었던 그곳이었다.
 [그래, 저쪽에 푸르스름한 바위가 보이지?]
 “보여요.”
 [저 바위는 마나의 분포도가 다른 곳에 비해 상당히 높단다. 저기서 수련을 하자꾸나.]
 “저기가 말로만 듣던 신선놀음을 하는 곳?”
 [······그런 건 아니고. 우선 바위에 내가 시키는 대로 그림을 그리거라. 어서.]
 “네.”
 스윈이 생각해 낸 묘책은 바로 마나 집약 마법진이다.
 마나 집약 마법진이란 주변의 마나를 쓸어 모아 집약해 월등히 많은 양의 마나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마법진을 뜻했다.
 그러나 그 지속 시간이 길지 못하다는 단점 때문에 입문 마법사들이 마나를 처음 접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리 널리 쓰이지 못했다.
 가성비가 너무 나빴던 것이다.
 하지만 대기 중의 마나 분포량이 칼리아나 대륙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이곳이기에 마법을 익히기 위해서 소민에게는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이 바로 마나 집약 마법진이었다.
 [가지고 온 목탄으로 그림을 그리면 된단다. 대신 조금이라도 어긋나서는 안 되니 조심하거라.]
 스윈의 언질에 소민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목탄을 품속에서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위 위에 올라서서 스윈이 일러 주는 대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민은 구슬땀을 흘리며 한 땀 한 땀 마법진을 그려 냈다.
 [잘했구나. 그럼 그림의 가운데 올라서거라.]
 소민은 완성된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소민이 올라서자 마법진이 희미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림만 그렸을 뿐인데 바위가 야광주라도 된 것처럼 밝은 빛을 내자 소민은 신기한 듯 쳐다봤다.
 [어허!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주문을 외거라.]
 스윈의 따끔한 호통에 소민은 두 눈을 찔끔 감고서 일러 준 대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민의 주변에서는 마나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주문을 외웠으니 눈을 감고 너의 주변을 감도는 마나를 느끼도록 해라. 너의 몸 주변을 돌아다니는 포근한 기운이 마나이니 그것을 느끼면 될 것이다.]
 “······.”
 [그리고 마나를 느끼면 온몸의 감각을 집중시켜 느껴진 마나를 심장으로 보내도록 해라. 처음은 어려울 것이다. 허나 자꾸 하다보면 될 것이니 너무 상심하지는 말거라. 마나는 원래 한데 뭉치지 않으나 인간의 심장에 흘러간 마나는 서클을 이루며 스스로 뭉쳐진······.]
 스윈은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
 “드르렁······ 푸우!”
 [······.]
 스윈은 어느새 깊은 잠이 들어 버린 소민을 보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동안 잠조차 제대로 자지 않고 룬어와 수학, 그리고 마법의 입문 기초에 대해 공부한 여파가 이 중요한 순간에 몰아쳐 온 것이다.
 [욘석······ 여기서 자면 감기 걸리거늘.]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
 
 칼리아나 대륙의 일반적인 마법사들이 5클래스인 것을 감안하면 5서클, 즉 심장에 마나 고리를 다섯 개까지는 기본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서클 고리가 여섯 개일 때부터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어 자신만의 방법으로 추가 서클을 만드는 법을 고안해야 했다.
 제아무리 높은 경지를 이룬 마법사라 할지라도 자신의 방법을 남에게 전해 줄 수는 없었다.
 세상의 만물이 모두 다르듯 사람의 몸 또한 천차만별이다. 다른 사람의 방법으로는 절대 자신의 마나 고리를 추가적으로 만들 수 없었다.
 묘두응(猫頭鷹)이 처량하게 울고 있는 무당산 한 자락.
 소민이 기이한 문형이 새겨진 푸른 바위 위에 서 있었다.
 “으으윽!”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듯 어금니를 악문 채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래, 조금 더 마나를 느끼고 심장으로 흘려 보내면 된다.]
 소민은 정신을 집중하고 온몸에서 느껴지는 마나를 심장으로 보냈다. 소민의 심장으로 보내진 마나들이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고리를 이루며 그 회전을 멈추었다.
 고리가 이루어지자 소민은 감았던 눈을 떴다.
 “후아! 고리 여섯 개가 만들어졌어요.”
 [축하한다. 6서클을 만들다니 장하구나.]
 방금 전 소민의 심장에는 여섯 개의 마나 고리가 이루어졌다.
 소민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었다. 소민처럼 어린 나이에 깨달음을 얻었다면 아마 인간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소민의 심장에 6서클이 생성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민은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바로 스윈의 정신과 몸을 공유한다는 점이었다.
 스윈은 이미 여덟 개의 마나 고리를 심장에 만든 적이 있는 8클래스의 대마법사이다. 소민이 마나 고리를 여섯 개까지 만들 수 있었던 것도 한 몸을 공유한 스윈이 대신해서 몸에 알맞은 마나 고리 생성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스윈은 물론 소민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소민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닦았다.
 “근데 서클이라고 하는 고리는 몇 개까지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하지만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만들어 가야 한단다. 걷지도 못하는데 뛸 수는 없지 않느냐?]
 “그런데 왜 저에겐 6서클까지 만들게 한 거예요?”
 소민은 의문점을 스윈에게 물어 보았다.
 [내가 너에게 일단 6서클까지 심장에 만들도록 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일단 서클을 심장에 만들고 마법을 사용하면 그 서클에서 마나를 가져와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요?”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단 한 번이라도 사용한 서클은 그 순수함을 잃는다. 물건을 산 다음 아무리 깨끗하게 사용하여도 사용한 물건은 중고품이듯이 한번 사용했던 서클은 순수함을 잃게 되고, 다음 서클을 쌓을 때 고생을 하게 되지.]
 소민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난 너와 같은 경우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불가능하겠지만 6서클까지의 마나 고리를 먼저 심장에 만든 후에 마법을 배우는 것이 최고라 생각한단다. 그 이상의 서클을 만들 때는 사용했든지 안 했든지 별 차이가 없으니 상관이 없고.]
 “그렇군요. 그럼 7서클도 조만간 이룰 수 있을까요?”
 [물론 내가 도와주면 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단다.]
 “안 된다니요?”
 [이 이상 내가 도와준다면 너는 반쪽짜리 마법사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니 이해를 해 주려구나. 언젠가 내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소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힘으로 신선이 쉽게 된다면 그것은 참된 신선이 아닐 것이다.
 아직 어렸지만 그 정도 이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이제 정말 도술 배우는 거예요?”
 [그래. 일단 ‘라이트’라는 기본 마법을 익히도록 하자꾸나.]
 라이트는 마법을 익히는 사람들이 제일 처음 시도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법이었다.
 심장의 서클의 마나를 체외로 배출시켜 빛의 성질로 바꾸기만 하는 간단한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러 주는 대로 심장의 서클을 회전시키며 마나를 운용하도록 하거라.]
 스윈의 가르침대로 소민은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심장의 서클을 하나 회전시키며 손바닥 위로 마나를 배출시켰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구체를 그리며 빛의 속성으로 마나를 재구성하는 수식을 외웠다.
 “라이트!”
 소민의 손 위로 어두운 무당산을 밝히는 빛나는 구체가 생성되었다.
 “우와!”
 처음으로 시전해 본 마법이 너무 신기한 소민은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서클을 회전시키며 마나를 유동시켜 보았다.
 왠지 그래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라이트!”
 그러자 더욱더 밝게 빛나는 구체가 소민의 목전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단한데! 이번엔 여섯 개다!”
 재미를 붙였는지 소민은 여섯 개의 서클을 모두 회전시키며 라이트 마법을 시전하려 했다. 그 순간 스윈이 화들짝 놀라며 소민을 막으려 했다.
 [너무 급하다!]
 하지만 스윈의 대응은 한발 늦었다.
 이미 소민은 수식의 배열을 끝내고 시동어를 입으로 외우고 있었다.
 “라이트!”
 번쩍!
 한순간 초신성이 폭발한 것 같은 거대한 빛이 생성되었다.
 거대한 빛은 그대로 소민을 집어삼켰다.
 “으아아악! 내 눈! 내 누운!”
 강렬한 빛을 예감한 소민이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었지만 눈꺼풀 위로 비친 빛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잠시 시력을 잃어버렸다.
 만약 눈을 감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오싹했다.
 빛이 얼마나 강했는지 화력이 없는 라이트임에도 얼굴이 후끈거리고 옷에는 증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5서클 이상의 라이트는 살상용이 될 수도 있다.]
 “아이고, 눈이야······.”
 처음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일각 정도 얌전히 기다리자 어느 정도 사물이 시야에 비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반각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시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으······ 이제 어렴풋이나마 보이네.”
 소민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클래스의 마법은 라이트 말고는 그리 필요 없으니 나중에 배우도록 하고, 일단 2클래스의 파이어볼이라는 기초 공격 마법을 해 보도록 하자꾸나. 전에 금반지를 끼고서 한 번 펼쳐 본 것이니 좀 나을 것이다.]
 스윈의 말에 따라 소민은 파이어볼의 수식을 외며 두 개의 서클을 회전시킨 뒤 마나를 끌어모았다.
 “파이어볼!”
 ······.
 하지만 화염구가 생성되기는커녕 조그만 불빛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왜······ 왜 안 되는 거지?”
 [2클래스의 마법부터는 수식과 시동어를 따로 해서는 안 된단다. 수식을 배열함과 동시에 시동어를 입으로 외쳐야 하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어디 한번 다시 해 보거라.]
 “어렵네요. 그런데 그 빠이아보인가 파이어볼인가 하는 신선 말을 꼭 해야 해요?”
 [꼭 그런 건 아니다. 시동어라는 건 자신의 머릿속에 파이어볼의 형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거지, 꼭 하나로 단정 지어 할 필요는 없거든. 그리고 머릿속에서 형상화를 잘하는 사람 같으면 꼭 주문을 욀 필요도 없지. 하지만 마법에 처음 입문할 때는 외워주는 것이 좋단다. 한번 네 머릿속에서 파이어볼의 형태에 가장 알맞은 단어를 외워서 펼쳐 보거라.]
 “알았어요.”
 소민은 심장에 있는 두 개의 서클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스윈의 말대로 파이어볼의 마나 수식에 걸맞게 마나를 배열함과 동시에, 전에 봤던 화염구의 형태에 어울리는 시동어를 외쳤다.
 “불똥!”
 소민은 시동어를 외움과 동시에 전방의 나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구가 생성되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펑!
 파이어볼은 정확히 눈앞에 있는 나무를 강타했고 그 열기로 이글이글 불태우기 시작했다.
 “됐다! 됐어!”
 소민은 자신의 힘으로 파이어볼을 시전했다는 기쁨에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욘석아, 산불 날라.]
 “어라?”
 소민은 자신이 맞혔던 나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파이어볼에 직격당한 나무는 강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대로 놔둔다면 내일 아침엔 벌거벗은 무당산을 볼 수도 있을 정도로.
 “무, 물!”
 다급하게 물을 찾았지만 주변에 물이 있을 리 만무했다.
 [에휴······ 2클래스의 아쿠아 볼 마나 수식을 일러 줄 테니 어서 끄도록 해라. 파이어볼과 비슷하게 물로 이루어진 구체를 쏘아 내는 마법이다.]
 스윈이 2클래스 아쿠아 볼에 관한 마나 수식 배열을 일러 주었다.
 소민은 스윈이 가르쳐 주는 아쿠아 볼의 수식을 따라 재빨리 마나를 배열했다.
 시동어를 바꾸는 것은 이미 한 번 경험해 봤기에 알아서 적당히 교체할 수 있었다.
 “냉각수!”
 소민의 손에서 생성된 아쿠아 볼이 타오르던 나무를 향하여 날아갔다.
 촤악!
 타오르던 불길은 아쿠아 볼에 의하여 점점 그 힘을 잃어 갔다.
 점점 불길이 잦아들자 소민은 안도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 산불을 진압하다니 나도 참 대견하구나.”
 [······.]
 스윈은 말문을 잃고 말았다.
 
 ***
 
 쿵!
 소민의 도끼가 나무의 배를 갈랐다.
 신선이 되기 위해 도술을 배우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신선이 아니기에 밥은 먹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소민은 틈틈이 땔나무를 베어 생계를 이어 나갔다.
 [소민아, 잠시만 도끼질을 멈추거라.]
 도끼질에 열중하던 소민은 다급한 스윈의 말에 잠시 도끼질을 멈추었다.
 “왜 그래요?”
 [누군가 이쪽으로 온단다.]
 스윈은 누군가 소민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용오름!”
 소민은 플라이 마법을 펼치며 나무 위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나 잡으러 온 건가?”
 무당산에서는 함부로 나무를 베어서는 안 된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무당파에서 그리 엄포해놓았기 때문이다.
 이곳 무당에서 무당파의 말은 곧 법과 같았기에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소민은 무당파가 나무를 베는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인가 싶어 급히 몸을 숨긴 것이다.
 곧 소민의 시야에 흑의를 입은 이들 여럿이 들어왔다.
 그중 한 사내의 손에는 전신이 포박당한 채 눈과 입이 가려져 있는 어린 여아가 보였다.
 ‘뭐야? 납치?’
 사내들을 지켜보던 소민이 치를 떨었다.
 소민이 이 세상에서 제일 증오하는 것이 바로 유괴였다.
 자신 또한 얼마나 숱한 유괴를 당할 뻔했던가.
 ‘저렇게 어린 여자애를 납치하다니······.’
 흑의의 사내들은 소민이 베어 놓은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한 사내가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후······ 이제 떨거지들을 따돌렸나 보군. 그 녀석들 정말 지독하군. 설마 이곳까지 쫓아오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어.”
 한 사내가 투덜거리자 맞장구를 쳐주는 다른 사내였다.
 “맞습니다, 사형. 하지만 이 꼬맹이가 직계 자손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윗전의 명이라지만 한 명의 무인으로서 어린아이 유괴 따위를 하다니······ 빌어먹을.”
 흑의인들의 대화를 듣던 소민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무림인들에 의해 부모님을 잃었기에 그들에 대한 증오가 가슴 한편에 언제나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림인들이 어린 아이까지 납치한 것을 보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물론 무림인이 무섭기는 하지만, 지금 자신은 신선이 되기 위해 도술을 배우고 있으니 어린아이를 구해 줄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민은 마음이 정해지자 망설일 것 없이 몸을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스르르!
 소민의 움직임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작은 소리를 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옅은 바람조차 불지 않은 상황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는 흑의인들의 경계심을 사기 충분.
 흑의인들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그리고 고개를 돌린 흑의인들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한 소년이 마치 지면을 걷는 듯 허공을 밟으며 내려오고 있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허, 허공답보?”
 “처, 처, 천상제?”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흑의인들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틀림없었다.
 분명 눈앞의 소년이 펼치는 보법은 허공답보 또는 천상제라 불리는 극상의 경공술이라는 것을.
 제아무리 절세고수라 할지라도 경공의 경지가 극에 다다르지 않는 한은 펼칠 수 없는 것이 허공답보와 천상제이다.
 꿀꺽.
 흑의인 중 하나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누, 누구십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진득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소민은 순간적으로 저들의 공포를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의 기준에서라면······ 신선이라는 표현이 가장 근접하겠지.”
 듣는 흑의인 입장에서는 그저 코웃음 쳐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최소한 한밤중 무당산의 심산유곡에서 어린 소년이 허공답보를 펼치며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아무리 천하제일의 기재라 해도 인간의 몸으로 그런 무공을 익힌 어린아이는 무림 역사상 등장한 적이 없었다.
 “시, 신선께서 미천한 저희 앞에 어찌 행차하셨습니까? 이, 이유를 알려 주십시오.”
 흑의인의 목소리에는 경외감과 함께 두려움이 묻어나 있었다.
 ‘먹히네?’
 생각보다 잘 먹힌 모습을 본 소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연기를 계속해 갔다.
 “크흠. 나는 지금 네놈들의 피비린내 나는 검 때문에 크게 노했다. 그러니 제물을 바치고 이곳을 떠나도록 하거라.”
 소민의 으름장에 흑의인들이 되물었다.
 “제, 제물이라 하심은?”
 소민이 손가락으로 어린 여아를 가리켰다.
 “저 아이를 내놓아라.”
 사내들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어렸다. 자신들과 함께 투입된 몇십 명의 무인들 중 몇만이 살아남고서 겨우 납치한 아이이다.
 제아무리 신선이라 할지라도 그냥 내줄 수는 없었다. 아니, 달란다고 곧바로 넙죽 엎드리며 내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소민은 사내들이 망설이자 좀 더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 죽고 싶다면 내 죽여 주지. 지옥불!”
 소민의 외침과 함께 그들의 코앞에 활활 타오르는 파이어볼이 생성되었다.
 “제물을 바치지 않는다면 네놈들의 구족을 멸할 것이다!”
 “허, 허억!”
 한밤중에 허공답보를 하며 나타나 화염을 수족처럼 다루는 자.
 겉모습은 영락없는 어린 소년이지만 신선이 틀림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흑의인들은 마음속에 남아 있던 작은 의심마저 지워 버렸다.
 사문의 명으로 아이를 납치하기는 했지만 노한 신선 때문에 그 사문이 멸문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흑의인들은 곧바로 머리를 조아렸다.
 “아, 알겠습니다. 너무 노여워하지 마옵소서.”
 “그곳에 아이를 내려놓고 썩 꺼져라!”
 흑의인들은 재빨리 아이를 내려놓고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소민은 평소 등에 한가득 지고 오던 땔감 대신 어린아이를 안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선 이부자리부터 깐 뒤 아이를 눕혔다.
 잠이 든 아이는 감기라도 들었는지 연신 기침을 해 대는 데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치료.”
 조금이나마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서 2클래스 회복 마법인 힐링을 시전했다.
 하지만 힐링을 사용해도 아이의 열이 내리지 않자 소민은 밖으로 나가 차가운 물을 떠 왔다.
 물을 떠 온 소민은 수건을 적셔 아이의 이마에 올려 주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이의 전신을 주무르며 피가 잘 순환되게 도와줬다.
 그렇게 새벽 꼬박 돌보자 드디어 아이의 열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으응······.”
 깨어나려는 듯 아이가 목소리를 내자 소민은 이마에 올려 두었던 물수건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실눈을 뜬 아이가 낯선 풍경에 눈동자를 굴리며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벙긋벙긋.
 조그마한 입으로 무언가를 말하는 아이였다.
 소민은 아이의 말을 듣기 위하여 아이의 입에 귀를 가져갔다.
 “사탕.”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탕이었다.
 순간 소민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납치까지 당한 후 기절했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 아이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 사탕이라는 게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아······ 잠시만 기다려 봐.”
 그래도 소민은 사탕을 사 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민이 집을 나서자 아이는 다시 잠이 든 듯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
 
 “가주님, 아가씨를 납치했던 자들의 시체가 그들이 숨었을 거라 보였던 무당산과는 꽤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검을 찬 한 무인의 말에 가주라 불린 자가 급히 되물었다.
 “은령이는? 내 딸은 어디 있느냐 말이다!”
 “아가씨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시체에 남겨진 검상의 흔적은 자결과 흡사했습니다. 하지만 제삼자의 개입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찾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야 하느니라. 혹 그들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겠느냐?”
 “송구스럽습니다만,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으득! 쉽사리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겠지. 일단 은령이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전력을 다하라!”
 “존명!”
 가주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의 뒤에 있던 수십 명의 무인들이 제각기 흩어졌다.
 ‘감히 대모용세가의 자손을 납치하려 하다니! 이 모용천(慕容天)이 절대 가만두지 않으리라!’
 무림천하구성 중 검성으로 널리 알려진 모용세가의 현 가주 모용천.
 무림에서 추앙받는 그는 지금 자신의 하나뿐인 외동딸 모용은령(慕容恩鈴)을 납치해 간 자들을 쫓아 본가가 있는 호남성에서부터 이곳 무당산이 있는 호북까지 왔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이 다 그렇듯 지금 모용천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혹여 그들이 은령에게 작은 생채기라도 낸다면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피의 복수를 하고 말리라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3장
 
 
 오물오물.
 여섯 살 남짓해 보이는 소녀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무언가 맛난 것이라도 먹는지 소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소녀가 오물거리는 장면을 지켜보는 소민의 입가에서 침 한 줄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침 좀 닦거라. 그렇게 먹고 싶으면 너도 하나 사 먹으면 되지 않느냐?]
 스윽.
 소민이 자신의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 내었다.
 “제가 돈이 어딨어요? 주머니 안에 있는 거라고는 고작 사탕 하나 살 정도밖에 안 되는데.”
 소민은 고분고분하던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가 다소 높아져 있었다. 소민이 소리치자 아이가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다.
 “흑흑······ 우엥······!”
 자신의 소리에 아이가 놀란 듯하자 오히려 소민이 더욱 놀라며 아이를 달랬다.
 “아, 아냐······ 너한테 화내는 거 아냐.”
 “흑······ 그럼 아저씨는 누구랑 이야기해?”
 이제 겨우 열두 살인 소민을 아저씨라 칭하는 어린 여아였다.
 “으응, 못된 귀신이랑 이야기해.”
 그러자 아이는 화들짝 놀라 이불을 뒤집어썼다.
 소민은 아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유를 몰랐다.
 “왜 그러니?”
 아이가 잠시 이불을 내리며 고개를 빠끔 내밀었다.
 “아저씨, 은령이는 귀신 싫어요.”
 “네 이름이 은령이야?”
 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이구,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그러는 너는? 너는 애 아니냐?]
 소민은 스윈의 말에 버럭 화를 냈다.
 “나는 다 컸다고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은령이가 다시 고개를 빠끔 내밀었다.
 “아저씨, 나 배고파. 밥 줘요.”
 “밥?”
 꼬르륵.
 때마침 소민의 뱃속에서도 밥을 달라는 듯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 아저씨가······ 아니, 오빠가 밥해 줄게.”
 “응, 아저씨.”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소민이 방을 빠져나갔다.
 소민이 나가자 혼자 남은 은령은 심심한지 이불 위를 뒹굴었다.
 한참을 뒹굴던 은령은 문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열린 문으로 소민이 간단한 수수밥과 간장, 그리고 약간의 나물 반찬을 상에 얹어 들어왔다. 소민의 생활 상태를 말해 주는 듯한 간소한 저녁상이었다.
 “자, 밥이다.”
 “와! 밥이다!”
 은령은 소민이 가져온 상 곁에 냅다 앉았다.
 “많이 먹으렴.”
 은령을 보살피기 위해 점심식사를 걸렀던 소민도 걸신들린 듯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민은 은령이 수저조차 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곧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안 먹어? 배고프다며?”
 “먹여 줘요.”
 “······.”
 소민은 잠시 침묵했다.
 “은령이······ 혹시 혼자서 밥 못 먹는 거야?”
 “응. 은령이는 언제나 유모가 먹여 줬어요.”
 “······.”
 소민은 잠시 얼이 빠진 사람처럼 은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체 어떤 집안에서 자랐기에 유모가 밥을 떠 먹여 준단 말인가.
 ‘아주 잘사는 집안에서 태어난 건가?’
 은령은 소민이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뭐 묻었어요?”
 “아, 아니. 은령아, 그 수저로 떠먹으면 돼. 먹여 달라고 하지 말고 직접 먹어 봐. 이제 다 컸으니깐 할 수 있지?”
 “······으응.”
 하지만 대답만 하고 풀 죽은 얼굴로 밥그릇을 바라보고만 있자, 소민이 직접 은령의 손에 수저를 쥐어 주었다.
 “이렇게 쥐면 돼.”
 그제야 은령은 미숙한 손놀림으로 수저를 이용해 밥을 떠먹기 시작했다.
 물론 반찬은 소민이 직접 수저 위에 얹어 줘야 했지만······.
 그렇게 소민은 은령이 흘리는 음식들을 닦아 주며 같이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잘 먹었어요, 아저씨.”
 저녁을 먹은 후 반각 정도를 이불 위에서 뒹굴던 은령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소민은 잠이 든 은령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에휴, 애 보기 힘들다. 그나저나 얘는 처음 보는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네.”
 보통의 어린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피하고 무서워한다. 하지만 은령은 소민에게 전혀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너무 곱게 자라서 세상의 쓴맛을 모르나?”
 어린 나이에 얼마나 세상의 풍파를 겪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 산 노인처럼 말하는 소민이었다.
 “쯧쯧. 애를 너무 곱게 키우면 안 되는데······.”
 [그래도 너처럼 자라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쳇.”
 어떠한 이유로 유괴를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은령을 걱정하고 있을 부모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사는지조차 모르는 은령의 부모를 찾기가 그리 쉬울 리는 없을 것이다.
 소민은 잠이 든 은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세상을 참 편하게 사는 소민이었다.
 
 ***
 
 무당산은 무림인이나 재력가들이 많이 찾기로 유명한 산 중 하나다.
 바로 무당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무당파 때문이다.
 재력가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도모하거나 재산을 더욱 불리기 위하여 영험하다고 소문난 무당산에서 제를 올리기 위해 항상 부지런한 발걸음을 했다.
 그리고 찾는 사람이 많으니 자연스레 무당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들은 근처 여타 마을보다 번화할 수밖에 없었다.
 해를 보아 정오를 약간 넘긴 시각이 되었을 무렵.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장터에 남매처럼 보이는 두 아이가 들어섰다.
 남아는 땔나무가 가득 실린 지게를 짊어지고 있었고 남아의 손을 잡고 있는 여아는 장터가 신기한 듯 이곳저곳 고개를 돌리며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털썩.
 장터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남아는 지게에 짊어지고 있던 땔나무들을 자신의 앞에 펼쳐 놓고 소리를 질렀다.
 “자! 땔나무 한 다발에 단돈 은자 한 냥!”
 남아가 크게 소리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남아에게 집중되었다.
 은자 한 냥이라면 땔나무를 열 다발도 넘게 살 수 있는 큰돈. 터무니없이 가격을 높게 부른 것이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던 사람들은 남아와 여아에게서 한번 주었던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남아의 옷차림은 비록 허름하지만 그 외모는 옥석을 조각해 놓은 듯한 미소년이었고, 동생으로 보이는 여아도 시간이 지난다면 경국지색을 논할 수 있을 정도로 귀엽고 아름다웠다.
 어찌 보면 이런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몰랐다.
 “와아······ 오빠, 은령이가 처음 보는 게 많아요.”
 소민은 은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새 호칭이 아저씨에서 오빠로 바뀐 은령이었다.
 “은령아, 오빠가 이거 다 팔고 맛있는 것 사 줄게.”
 “은령이는 맛있는 거 좋아요.”
 다정스레 이야기를 나누는 소민과 은령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비쳤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소민과 은령의 모습은 생계를 이어 나가기 위하여 동생과 함께 땔나무를 팔러 나온 어린 가장의 모습이었다.
 “자! 땔나무 한 다발에 단돈 은자 한 냥!”
 크게 외치는 소민의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그러한 소민의 눈동자를 보던 사람들은 가슴 한쪽이 미어지는 듯했다.
 “아이야, 내가 한 다발 사마. 옜다, 은자 한 냥.”
 구경꾼들 중 한 사람이 나서서 소민에게 은자를 건네주고 땔나무 한 다발을 사 갔다.
 그것이 효시가 된 듯 주변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소민에게 은자를 건네주며 땔나무를 사 갔다.
 그리고 판을 벌인 지 반각도 채 되지 않아서 지게 한가득 있던 땔나무가 동이 나 버렸다.
 소민은 땔나무가 다 팔리자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소민의 입가에는 사악한 미소가 어렸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소민이 땔나무를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부른 것도, 사람들의 반응도, 모두 소민의 머릿속에서 계산된 것이었다.
 자신 혼자라면 별 반응이 없을지 모르나 어린 은령을 데리고 장터에서 땔나무를 팔면, 사람들이 자신을 홀로 어린 동생을 보살피는 소년가장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여 바가지 씌워진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땔나무를 사 가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오늘 소민이 계획한 일이었다.
 무거워진 주머니의 감촉을 느끼며 소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마 그 머리로 수학을 좀 더 공부했더라면 벌써 5클래스는 마스터하고도 남았겠구나.]
 “난 수학하는 머리랑 잔머리랑은 별개인 거 같아요. 자, 은령아, 오빠가 맛있는 것 사 줄게. 어서 가자.”
 “와아.”
 소민은 기뻐하는 은령의 손을 잡으며 장터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국밥집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장터의 국밥집으로 향하는 소민과 은령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
 그 시선은 두 사람의 모습이 국밥집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이라도 하는 듯이.
 
 ***
 
 인가와는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그마한 초가는 소민의 단 하나밖에 없는 보금자리였다.
 자신의 보금자리로 향하는 소민의 한 손엔 고기 꾸러미가, 또 다른 손에는 은령의 조그마한 손이 쥐여 있었다.
 “은령아, 오늘 저녁에도 고기 먹자, 고기. 고기 좋아하지?”
 “와, 또 고기 먹어요?”
 소민은 기뻐하는 은령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다 잠시 후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근데 은령이는 엄마랑 아빠 보고 싶지는 않아?”
 어린아이는 항상 부모를 찾는다.
 하지만 소민은 은령이 자신의 부모를 찾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 점이 못내 궁금했던 것이다.
 “웅, 아빠랑 엄마랑은 못 봐요.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항상 유모가 대신 은령이랑 놀아 줬어요.”
 “그랬구나.”
 소민의 얼굴은 평소 악동 같은 표정과는 다르게 사뭇 다정스러워져 있었다.
 부모가 있음에도 잘 만나지 못하는 은령, 그리고 어렸을 적 부모를 여윈 소민.
 둘 모두 외로움이라는 어둠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은령은 소민을 처음 봄에도 불구하고 낯설게 생각지 않고 진짜 오빠처럼 달라붙었고, 소민 역시 진짜 여동생을 대하듯 돌봐 주고 있었다.
 비록 며칠이지만 은령과 함께 지냈던 나날들이 소민에게는 행복했다.
 가족의 품이라는 따스한 그늘 밑에서 사랑받지 못한 소민은 마주 잡은 손에서 따스한 은령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소민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은령을 동생으로 여기며 같이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가족을 잃는 고통이 어떠한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소민이기 때문이다.
 은령을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을 부모들을 생각해야 했다.
 대신 은령과 함께 지내는 동안만은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다.
 “은령아, 내일은 은령이 좋아하는 사탕 많이 사 줄게.”
 소민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는 은령이었다.
 “응응.”
 은령을 보던 소민은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에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자신과 은령이 지나온 길만이 펼쳐져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내가 잘못 느꼈나?’
 소민은 자신이 착각을 했다고 여기고 다시 등을 돌리려 할 때였다.
 섬뜩.
 모골이 송연해지는 듯한 느낌.
 분명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치와 감각 하나만은 자부하는 소민은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자신이 두 번씩이나 잘못 느낄 리가 없었다.
 ‘누군가 나를 미행하고 있다. 누구지?’
 [아무래도 은령을 유괴했던 자들이 지금 너를 미행하는 듯하구나.]
 스윈 또한 소민을 미행하는 자의 기척을 느낀 듯했다.
 소민은 그제야 자신의 커다란 실수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생각이 짧았던 건가······.”
 유동 인구가 많은 장터에 은령을 데리고 갔는데 장터에 있던 수많은 눈 중에 은령을 유괴했던 자들의 일당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금 네 실력으로 미행하는 자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상대방의 실력을 간파한 것인지 스윈이 소민에게 경고해 줬다.
 소민은 기필코 은령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만난 지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 자신에게 은령은 그 누구보다도 소중했다.
 
 어느덧 해가 졌는지 밖은 짙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해가 지자 소민은 호롱불에 불을 댕겼다.
 소민이 호롱불을 켜자 어두웠던 방 안이 빛을 되찾았다.
 아직 초저녁이지만 은령은 졸린 듯 두 눈을 비볐다.
 그런 은령을 보던 소민은 은령에게 다가갔다.
 “은령아, 졸리니?”
 “응, 조금.”
 은령이 졸려하자 소민은 이부자리를 깐 뒤 은령을 눕혔다.
 “졸리면 먼저 자렴. 오빠는 볼 책이 있어서 조금 있다가 자야 하거든.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거 알지?”
 은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오빠, 잘 자.”
 “그래, 은령이도 잘 자.”
 은령이 꿈나라로 빠져들자 소민은 책상으로 몸을 옮겼다.
 아직은 상대가 잠잠하다. 하지만 언제 자신과 은령을 위협할지 모른다.
 비록 6서클의 고리가 심장에 존재했지만 이제 겨우 스윈에게 4클래스의 마법을 배우는 소민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않으려면 상대가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때 조금이나마 쓸 만한 마법을 더 익혀야 했다.
 “신선님, 4클래스의 도술 중에 가장 쓸 만한 것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러도록 하마.]
 소민은 책상 한편에 놓여 있던 백지와 붓을 들었다.
 소민이 모든 준비를 마치자 스윈은 가장 배우기 쉬우면서도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효율적인 마법들을 골라 가르쳤다.
 붓을 놀리는 소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
 
 이제 겨우 해가 떠오르는 이른 새벽.
 소민은 방문을 살짝 열어 주변을 살폈다.
 아직 푸르스름한 기운이 걷히지 않은 주변 풍경이 소민의 시야에 비쳤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간간이 들려오는 처량한 새들의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신선님, 주변에 누가 있는 것 같아요?”
 소민은 나지막하게 스윈에게 물었다.
 [크흠. 나도 모르겠구나.]
 “알았어요.”
 소민은 긴장을 풀지 않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들이 언제 자신과 은령을 덮칠지 몰랐다. 소민의 머릿속에 기억된 무림인이란 족속들은 다 그랬다.
 비열하고 야비하기 그지없는 자들.
 부모님의 목숨을 앗아 갈 때부터 말이다.
 소민은 하루 종일 은령과 놀아주거나 스윈에게 마법을 전수받으며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은령을 데리고 도주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 은령을 데리고 도망쳐 봤자 잡힐 것이 분명했다.
 책상에 앉아 마법을 공부하고 있던 소민에게 은령이 말을 걸었다.
 “오빠, 은령이 심심해.”
 “그래? 그럼 뭐 하고 놀까?”
 잠시 생각하던 은령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오빠, 밖에 나가서 술래잡기하자.”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었던지라 은령이 심심했는지, 자꾸 소민과 밖으로 나가자고 떼를 썼다.
 소민은 밖으로 나가자는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은령아. 나가서 술래잡기하자.”
 하지만 은령을 데리고 문을 나선 순간, 소민은 무언가 섬뜩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소민이 얕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은령을 유괴했던 자들의 일당이라면 목표는 필히 은령일 것이다.
 “은령아, 잠시 눈 감아 볼래?”
 “응? 술래잡기 안 해, 오빠?”
 “술래잡기보다 더 재미있는 거야.”
 “응.”
 소민의 부탁에 은령이 초롱초롱하던 두 눈을 꼬옥 감았다. 소민은 그리 넓지 않은 품으로 은령을 안아 들었다.
 소민이 자신을 안자 잠시 움찔한 은령이지만 감았던 눈은 뜨지 않았다.
 “플라이!”
 은령을 품에 안은 소민은 플라이 마법을 시전하며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소민이 하늘 날아오르자 소민을 미행하던 복면 사내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들이 마을 사람들에게서 알아낸 바로는 소민이란 아이는 그저 평범한 마을 악동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아이가 지금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소민은 새가 아닐 뿐더러 무공 또한 익히지 않았다고 들었다.
 감춰 놓은 무엇이 있다는 의미이다.
 “소가주님, 어떻게 할까요?”
 “쫓는다. 무언가 우리의 눈을 속이는 속임수가 있을 것이야. 그렇지 않고서는 어찌 저 어린 나이에 허공답보나 천상제를 펼친단 말이냐?”
 사내들은 소가주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재빨리 소민을 뒤쫓았다.
 
 무당산의 울창한 산림으로 들어선 소민은 자신을 잡으려는 말코도사들을 피하기 위해 애용하던 동굴로 몸을 숨겼다.
 “라이트!”
 소민의 외침과 조그마한 빛나는 구체가 생성되었다. 어두웠던 동굴 안이 라이트로 인해 환하게 밝아졌다.
 은령은 아직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은령아, 이제 눈을 뜨렴.”
 소민의 말에 은령이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오빠, 여기가 어디야?”
 “응, 여기는 오빠의 놀이터. 은령이는 여기에 잠시 앉아 있으렴.”
 소민은 은령을 자리에 앉히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소민의 주머니에서 꺼낸 손에는 푸른 수정이 박힌 목걸이가 쥐여 있었다.
 “은령아, 이거 예쁘지?”
 “응, 이뻐. 이거 나 주는 거야?”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은령도 여자인 듯 소민이 꺼낸 아름다운 수정 목걸이를 가지고 싶어 했다.
 “오빠가 은령이 주는 선물이야. 자, 오빠가 목에 걸어 줄게.”
 소민은 은령의 가냘픈 목에 수정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목걸이가 약간 큰 듯했지만 은령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와! 오빠, 고마워!”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바라보며 은령이 기뻐했다. 소민은 그런 은령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은령아, 오빠 손을 잘 봐.”
 소민이 자신의 손가락을 흔들었다. 은령의 눈동자가 소민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슬립.”
 소민이 시전한 슬립 마법에 은령은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고이 잠이 든 은령을 눕힌 소민은 동굴 밖으로 나섰다.
 [괜찮은 것이냐?]
 “보시다시피요. 저곳은 독충이나 독물들이 없어요. 제가 평소 해로운 것들을 내쫓는 약초를 넣어 두었잖아요. 그리고 은령에게 건네준 목걸이가 어떤 것인지는 신선님이 가장 잘 알고요.”
 [그렇지.]
 소민이 은령에게 걸어 주었던 목걸이는 여신의 목걸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스윈이 대륙을 돌아다니던 방랑 마법사 시절 우연히 얻은 목걸이로, 드래곤이라는 전설의 생명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고 전해 내려오는 전설적인 목걸이였다.
 한때 여신의 목걸이의 소유권을 두고 칼리아나 대륙의 강대 제국들이 전쟁을 벌였을 정도였다.
 여신의 목걸이는 착용자의 생명이 위험할 때 7클래스 최강의 방어 마법인 앱솔루트 배리어를 펼친다.
 마나의 보충을 위해 필요한 한 달이라는 공백기가 단점이기는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착용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정도 단점도 없다면 말도 안 될 일이다.
 “저는 절대 은령이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예요.”
 [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단다. 너도 무림인이란 족속을 잘 알지 않느냐?]
 “비록 며칠이지만 나에게 가족의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은령이에요. 전 기필코 은령이를 지킬 거예요.”
 소민은 작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소민과 은령을 쫓아 무당산에 발을 들여놓는 한 무리가 있었다.
 바로 은령을 납치했던 자들이었다.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해야 한다.”
 “존명.”
 쓰고 있던 복면을 고쳐 쓰는 그들의 눈빛엔 수많은 갈등이 교차했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힌 듯 갈등을 지워 나갔다.
 비록 무인의 명예와 자존심에 누가 되는 짓이긴 하지만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무림의 오대세가 중 일가인 남궁세가였다.
 남궁세가는 지속적인 자금난으로 멸문 직전의 상황에 직면했다.
 이 모든 것이 모용세가 때문이라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무림 오대세가인 남궁세가와 모용세가.
 서로의 무력에서는 그 힘이 비등한 두 세가였다.
 하지만 재력에서는 모용세가가 남궁세가를 압도했다.
 모용세가의 현 가주인 모용천은 검성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무공 실력이 뛰어났지만, 돈을 버는 수완도 그 어떤 장사치 못지않게 뛰어났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모용세가는 남궁세가의 밥줄이 되는 사업들을 하나씩 뺏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모용세가는 엄청난 부를 축적한 반면, 남궁세가는 당장 길거리에 나 앉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궁핍해지게 된 것이다.
 때문에 남궁세가는 세가의 존속을 위해서 치졸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천의 무남독녀인 모용은령을 납치하여 모용천을 협박할 요량이었다.
 무론 이를 대놓고 할 수는 없었다.
 명색이 정파의 기둥 중에 하나인 오대세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남궁세가다.
 만일 이번 일이 외부로 드러나게 될 경우 남궁세가는 무림인들의 비난 속에 봉문이 아닌 멸문을 당할 수도 있음이다.
 하지만 모용세가의 재산 불리기로 인하여 남궁세가는 물론이거니와 많은 자들이 피해를 보았다. 피해를 보았던 자들 중 사파의 무리도 끼어 있다는 점을 이용하면 배후를 숨긴 채 진행 중인 모든 사업에 손을 떼도록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사파 무리라면 충분히 의심할 만한 일이었으므로 조심만 한다면 남궁세가가 들통 날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모용천, 네가 벌여놓은 일이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모용천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모두 흩어져서 찾도록.”
 “존명.”
 소가주의 명에 무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소민과 은령을 찾아 나섰다.
 각개격파당할 위험이 있었지만 수색하는 데에는 흩어져서 찾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들이 망설임 없이 흩어진 것은 무당파의 도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찾아야 한다는 다급함과 상대가 어린아이라는 점 때문이다.
 제아무리 숨겨 놓은 한 수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일 뿐.
 아무리 날카로운 가시를 숨긴 꽃이라 해도 아직은 개화하지 못한 상태였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저마다 조심스레 무당산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한 무사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며 아이들이 숨을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부스럭.
 그때 자신의 왼쪽 귓전에서 울리는 소리에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뭐지?”
 뭔가 꿈틀대는 것을 발견한 무인은 조심스레 미확인 물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불쑥.
 자신이 확인하려던 물체가 갑자기 뛰어오르자 순간 놀라 검을 겨누었다.
 “구속!”
 무인은 순간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압박당하는 듯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퍽.
 동시에 소민의 오른손 주먹이 정확히 무인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그동안 나무를 베어 넘기며 키워 온 힘이었다.
 어린 소년이지만 웬만한 장정의 힘 못지않았다.
 거기다 4클래스의 초급 마법 중 순간 근력을 상승시켜 주는 스트렝스까지 자신에게 시전한 상태.
 강한 내력이 실린 주먹 못지않은 소민의 일격에 무인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무인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소민은 미리 구해 두었던 나무덩굴을 이용하여 무인을 묶었다. 그리고 재빨리 나뭇잎 등을 이용하여 무인을 숨겼다.
 전면적으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소민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그런 불리함을 타파하기 위해 각개격파를 선택했다.
 물론 이는 스윈의 충고가 반영된 결정이기는 했다.
 한 무사를 처리한 소민은 다시 어둠과 동화되어 갔다.
 
 ***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은령을 찾아 무당산을 이 잡듯 뒤졌다.
 현 남궁세가는 자금 부족으로 인하여 멸문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 놓여 있다. 남궁세가를, 자신의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기필코 은령을 찾아야 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주먹을 으스러지도록 쥐었다.
 뚝, 뚝.
 어찌나 주먹을 세게 쥐었는지 소가주의 주먹에서 흐른 피가 땅으로 흘러내렸다.
 “기필코 찾고 말 테다.”
 피가 흥건한 손으로 검을 뽑아 드는 소가주였다. 그의 눈에는 무엇이라도 베어 넘길 듯한 살기가 일렁거렸다.
 소민은 멀리서 그런 소가주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모든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마법을 이용한 각개격파로 처리한 뒤였다.
 소민은 행어나 들킬까 조심스레 소가주를 따라 이동했다.
 “어떻게 하죠?”
 [저자는 이때까지 상대했던 자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네.”
 [4클래스의 마법인 홀드. 구속은 시전자의 정신력이나 마나양이 상대보다 부족할 때는 잘 먹혀들지 않는다. 저자의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으로 봤을 때 적어도 5서클급의 마나를 체내에 소유한 듯하다. 당연히 너의 구속 마법은 무용지물이지. 이때까지 사용했던 방법들을 사용할 수 없단다. 유념하거라.]
 소민이 상대했던 자들도 검을 쓰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최소 3서클에 해당하는 마나를 보유했었다.
 칼리아나 대륙에서도 그 수가 극히 드문 소드 익스퍼트라 불리는 자들 중 중상급에 해당하는 마나 보유량이었다.
 다만 칼리아나 대륙의 무인들과 다른 점이라면 심장이 아닌 아랫배 쪽에 마나가 뭉쳐 있다는 것이었다.
 대기 중 마나 분포량이 극히 적은 중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마나를 몸에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이 스윈은 마냥 신기했다.
 스윈도 호기심이 많은 전형적인 마법사다.
 시간이 된다면 이런 그들의 비밀을 꼭 파헤치고 싶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소드 익스퍼트의 최상급을 넘어 소드 마스터에 범접한 마나를 몸에 지니고 있었기에 소민에게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칼리아나 대륙에서 소드 마스터는 단 한 명의 존재만으로도 기울어져 가는 전세를 뒤집어 버린다는 검신으로 추앙을 받으니 말이다.
 스윈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소민은 소가주의 뒤를 잡았다.
 한때 어울려 다녔던 놈팡이들에게서 주워들은 말이 생각났다.
 기습을 하면 5할은 이기고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뒤를 잡은 소민은 먼저 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구속!”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던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무언가 자신의 발을 옭아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지?”
 그는 반사적으로 발을 움직여 보려 했으나 마치 지면에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야얍!”
 소가주는 내공을 끌어올리며 외마디 기합성을 질렀다.
 그리고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쨍그랑.
 무언가의 파괴음이 조용한 산중에 울려 퍼졌다.
 소가주는 자신을 옭아매던 기운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자연 현상은 아니었다.
 누군가 내공과 같은 힘으로 자신을 옭았던 것이 분명했다.
 소가주는 전신의 감각을 극대화시키며 주변을 살폈지만, 그의 감각에 걸려드는 것은 자그마한 산짐승의 기운같이 미약한 기운들뿐.
 하지만 소가주는 어둠 속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분명 누군가 어둠 속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소가주의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너라. 제아무리 무림삼천이나 무림구성이라 할지라도 본가를 위해서 이 한 목숨 버릴 수 있다.’
 
 소민은 간단하게 구속 마법이 파괴되어 버리자 멈칫했다.
 그 순간 마나의 역류가 일어나며 소민의 속을 헤집어 놓았다. 잠깐이었다고는 하지만 마나의 역류는 어린 소민이 느끼기에는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크으으윽! 헉헉.”
 소민은 지끈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마법사에게 마법 실패는 곧 죽음과 직결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괜찮으냐?]
 “전 괜찮아요.”
 스윽.
 소민은 입술 사이로 흐르는 피를 훔치며 소가주를 노려봤다. 자신의 마법으로 인해 상대가 더욱더 날카로워진 듯했다.

댓글(5)

n9************    
갑자기 짱깨 가 왜나와 대한민국 작가가 아니고 짱깨 니?
2022.12.25 10:15
n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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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5 10:18
n9************    
여기서 똑똑 한 작가가 재밌게 쓰려면 주인공이 서울 에 살던 한국인으로 2030년까지 팔십년 살다가 환생한 걸로 기억을 가지고 그럼 판타지 매니아 였던걸로 하면 더 좋은 효과적인 흐름
2022.12.25 10:23
n9************    
이거봐 환생 기억자고 한국에서 대학 나온 설정 이면 수학 껌인데
2022.12.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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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공간은 언제나오나 죽이고 가진걸 챙기려면 필요한 데 반지는 쓸데없는 거나 인젠트 해놓고 ㅆ
2022.12.2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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