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지하실 깊숙이 숨겨진 비밀
“혀엉······ 흑흑······ 크흑!”
둘의 부모님은 김재용의 나이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이라고는 둘 뿐이었기에 김재용은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오열했다.
15년이라는 나이 차이와 이복형임에도 불구하고 둘의 형제애는 더할 수 없이 좋았었다.
형은 한국에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일찍 마치고,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에 진학했었다. 그리고 석사와 박사 과정을 스물 한 살에 모두 마쳤다.
또한, 스탠퍼드에서 1년간 최연소로 교수 생활도 했었던 수재 중의 수재였다.
그렇게 누구나 부러워하며 잘났던 형.
어제까지만 해도 여느때처럼 함께 밥을 먹었던 형.
그런 형이 지금은 창백한 얼굴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으으······ 크흑······ 엉엉······ 혀엉······.”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보냈었고 재용에게 형은 부모님을 대신하는 존재였다.
김재용은 혼기를 훌쩍 넘겼음에도 미혼으로 오직 연구에만 매달리는 형을 볼 때마다 없는 부모님을 대신해 아줌마 같은 잔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형은 언제나 넉살좋게 ‘하하!’, ‘허허!’였다.
며칠 전엔 자신은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빨리 결혼해서 조카를 안겨 달라는 말로 무안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형. 이렇게 허무하게 갈 것을 뭐에 그렇게 대단한 연구라고 죽자 살자 매달렸어?'
자신 혼자만 내버려 두고 떠나 버린 형이 한편으로는 야속하기까지 했다.
무거운 분위기에 적막감이 감도는 응급실.
저벅 저벅.
오열하던 재용의 뒤로 경찰과 의사가 다가왔다.
“1시간 전쯤에 운명하신 거로 보입니다. 응급 센터에 전화가 와서 출동해 보니 이미 숨져 있었습니다. 더 정확하고 세부적인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됩니다.”
두 사람은 재용을 잠시 봐라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의사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부정하고자 의사가 하는 말이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라고 스스로 그렇게 믿었다.
* * *
며칠간 경찰들의 사고 조사와 병원에서의 세부적인 검사가 마무리되자 정확한 결과가 나왔다.
급성 심부전증.
앰뷸런스가 도착했을 땐 이미 거실에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형에게 그런 병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던 재용으로선 형을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의 상처가 깊이 남게 되었다.
부모님에 이어 유일한 가족이었던 형마저 지켜 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이 모든 게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되었다.
10년이 넘게 지하실에 틀어박혀 건강을 도외시한 결과인지 형은 갑작스럽게 곁을 떠났다.
오래전 자신의 곁을 떠난 부모님처럼.
재용은 그렇게 스물다섯 살에 혼자가 되었다.
* * *
형이 세상을 떠난 지도 한 달.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떻게 알고들 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중엔 형이 미국에 있을 때 알고 지냈던 외국인들이 많았다.
친척들도 많이 찾아와 위로를 건넸지만 재용의 마음은 공허할 뿐이었다.
오래전부터 형만을 핏줄로 인정했던 친척들.
그들은 오늘 이후론 더는 자신을 찾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어려움이 생겨 도움을 청하더라도 자신을 외면할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김재용은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형과 함께 지냈던 일들이 자주 생각났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재용 혼자 남게 된 것이 형이 한국에 들어온 계기가 된 듯했다.
형은 한국에 들어온 이후로는 마흔 살이나 먹도록 장가도 미룬 채였다.
그런데 뭘 그렇게 열심히 만드는지 지하실에 틀어박혀 잠을 자면서 보낸 지 10년이 넘었었다.
형의 방은 1층에 따로 있었지만 거의 지하 연구실에서 잠을 잤었다.
그렇게 연구에 매달리면서도 1년에 몇 번씩은 꼭 미국에 다녀왔었다.
올 때마다 뭔지 모를 것들을 한가득 가지고 왔었던 기억이 있었다.
볼 때마다 밖에서 운동 좀 하고 햇볕도 쬐라고 했었다.
또, 장가는 안 갈 거냐고 다그쳤지만 밖으로 나오더라도 햇볕만 한 30분 정도 쬐다가 들어가 버렸다.
얼마 전엔 미친 사람처럼 실실 쪼개는 형에게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묻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곧 억만장자가 부럽지 않을 거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혼자서 킥킥대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렸다.
우리가 백만장자냐고 물었더니 이미 다섯 달 전에 백만장자가 됐다는 말을 했었다.
돈 좀 보여 달라고 하자 조금만 기다리라며 큰소리 뻥뻥 쳤던 형이었다.
그런 실없는 형의 모습에 함께 키득대며 웃던 게 얼마 전이었다.
새하얀 서리가 내린 머리와 잔주름 가득한 눈가가 겹쳐지며 형의 과거가 떠올랐다.
형은 미국에 있을 때 세계적인 기업에 스카우트되어 거기서 8년간 일했었다.
벌어 놓은 돈이 상당했었다.
그 회사에 있을 때 뭔가 대단한 걸 만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돈을 엄청 많이 벌었단다.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했었지?'
형제는 부모님의 사망보험금 5천만 원을 받았었다.
거기에 다른 돈까지 보태 옛날부터 살고 있던 해운대의 단독 주택을 허물고 지하(30평), 지상 1층(30평)으로 총 60평 규모의 단독 주택을 짓고 둘만 살았었다.
둘이 살기엔 제법 크고 멋진 집이었다.
대지 면적만 해도 1,000평이 넘었고 컨테이너를 몇 개 붙인 듯한 모양이라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스타일이었기에.
재용이 태어난 곳이 여기여서 그도 여길 두고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원치 않았더 터라 마냥 좋았었다.
형과는 다르게 김재용은 평범했기에 일찍 군대에 지원했다.
그런 후 전역하고 지금은 쉬는 중이었다.
형이 세상을 떠나고 정리하다 보니 형도 보험을 들었는지 사망 보험금이 3천만 원이나 나왔다.
돈을 받을 때 알게 된 거였지만 둘째 이모님과 가까운 분이 보험 일을 하셔서 재용의 식구들도 모두 사망보험에 들게 되었다고 한다.
재용도 이미 들어 논 상태여서 자신이 죽으면 3천만 원이 나온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땐 실없는 웃음도 났었지만 조금은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부모님에 이어서 형까지. 다음은 내가 아닐까?’ 하는 뭔가 지랄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부모님과 형의 사망보험금으로 자신이 먹고 살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라렸다.
그런데 형의 통장에 찍혀 있는 숫자가 예상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3,500만 원.
형은 오래전에 미국에서 번 돈이 원화로 10억 원이 넘는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동안 쓴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숫자는 차이가 너무 크다.
'최소한 몇 억은 있어야 말이 되는데.'
집이 있으니 현금과 보험금 만으로도 앞으로 살아가는 데는 문제 없을 테지만 그 돈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잘만 관리하면 고생하지 않고 살 수 있잖아.'
형에 비한다면 특별히 뛰어날 게 없는 그로서는 물려받은 돈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개고생하며 공돌이 생활을 했을 게 뻔했기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대학을 못 간 고졸들의 직장이라고 해 봐야 대부분 열악한 환경의 공장이 대부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거기서 하루 12시간도 넘게 일을 한다고들 했다.
그렇게 받는 월급이라고 해 봐야 70만 원 정도.
'열심히 살자.'
* * *
다시 며칠이 지나며 한동안 못한 집안 청소를 하면서 오전 내내 바쁘게 움직였다.
점심때 자장면과 탕수육과 군만두를 시켜 먹었더니 배가 빵빵해져 버렸다.
1층에 있는 형의 방도 정리를 하면서 영문으로 작성된 계약서 같은 것을 찾아냈다.
'이게 뭐지?'
재용의 이름과 주민 번호가 적혀 있는 계약서.
그것만 빼곤 옷들과 필요 없는 것들은 모두 태워 버렸다.
김재용은 지금까지 한 번도 지하 연구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형이 항상 문을 잠가 뒀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 지하 연구실에 오후 3시가 넘어갈 즈음 내려갔다.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왜 이런 게 여기에 있어?”
재용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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