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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1-

2017.07.24 조회 94,800 추천 1,477


 강호에 나온 뒤, 팔성 이상 끌어 올린 적 없던 천마신공을 극성까지 끌어 올린다. 가벼울 경輕과 무거울 중重의 묘리를 담아 조화를 이루니,
 
 고오오오오오!
 기경팔맥奇經八脈 곳곳으로 내공이 퍼짐과 동시에, 내 몸 주변으로 대기가 요동친다.
 
 “......!”
 
 겉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지만, 속과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뛰고 있었다.
 
 -여기다! 놈이 여기 있다!
 
 인생 한번 멋들어지게 살아보고 싶었다.
 
 -대협! 놈의 퇴로를 차단했습니다!
 -소협!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고, 뒤로 물러서시오! 이제부턴 우리 무혈대가 맡겠소!
 
 일천 명의 흑의를 걸친 패거리들이 주변을 개미떼처럼 둘러싸기 시작했다.
 
 대협이니, 소협. 대공이며 협객....
 나도 저리 불리고 싶었단 말이다!
 
 “혹, 놈이 탈출을 시도할 수 있으니 주변 백 리에 천라지망을 펼쳐라!”
 “예! 대공大公!”
 “인원이 부족할 것이다! 근처의 협객들에게도 속히 지원을 요청하라!”
 “알겠습니다!”
 
 누가 들어도 의협심이란 게 꽉꽉 들어찬 목소리. 하나가 아니었다. 목소리의 주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칼을 들어 나를 가리킨다. 두렵진 않다. 이미 삶에 대한 미련 따윈 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
 
 “여기까지다. 이놈!”
 
 저들의 눈을 보라.
 대의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순수함. 협을 위해 모두 하나 되었다는 자랑스러움. 참 보기 좋다. 솔직히 말해 더럽게 멋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나로 인해 생긴다는 것. 참으로 엿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저놈들처럼 되고 싶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이냐!
 
 “천마! 더 이상의 살행은 말고 조용히 가거라.”
 “이제 끝이다! 악적!”
 
 빌어먹을. 눈 뒤집힌 것들 좀 보라지.
 
 “오랜만이오. 천마.”
 
 뒤집힌 눈깔들 사이로 유일하게 맑은 눈동자가 걸어 나온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
 무림맹주 독고윤.
 
 “그리 반갑진 않군. 독고윤.”
 
 강호무림을 통틀어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놈. 고지식하고 꽉 막힌 놈이지만, 그 재능만큼은 천하에 적수가 없었다. 심지어 나조차 세간의 평가에선 놈의 한 수 아래로 꼽힐 지경이니까.
 게다가 이 자리엔 놈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깔이 좀 뒤집히긴 해도 나를 둘러싼 전원이 ‘무혈대’다. 독고윤이 이끄는 최강의 대對 사도 무력집단. 열이 모여 마인 하나를 잡고, 백이 모이면 마신을 잠재울 수 있다던가? 일천 무혈대 전원이 오직 나 하나를 잡기 위해 모였다.
 아주 지독한 함정. 빠져나갈 길은 없다.
 
 “제갈만. 그놈의 개수작인가? 머리 좀 썼군.”
 “협이 있음에 행한 것뿐. 모두가 노력했으니 좋은 결과가 난 것 아니겠소? 제갈 군사만의 공덕이 아니라오.”
 “하하하!”
 
 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내가 천하의 대역죄인이라도 되는 마냥 씨불이는군?”
 “그리 악행을 저지르고도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 것이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냐?”
 
 짜증이 치밀어오른다.
 
 “아직도 모르겠소?”
 “뭘?”
 “무림의 대들보라 할 수 있는 명사들을 도륙한 죄!”
 
 거야, 그놈들이 천마다! 죽여라! 우르르 몰려와서 덤비기에 나름 살아보겠다고 맞선 것 아닌가? 정당방위다. 정도건 사도건 애초에 칼밥 먹고 사는 놈들이 남에게 칼을 휘둘렀으면 당연히 죽을 각오도 했다는 거, 아니던가?
 
 “그리고 부녀자를 희롱한 죄!”
 “하..!”
 
 아아, 황보세가 둘째 딸 얘긴가? 그거야 저 혼자 좋다고 펄떡대다, 선물이랍시고 가전 무공 하나 들고 와 들이민 거다. 그나마도 털끝 하나 안 건드리고 잘 달래 돌려보냈다. 내가 그 황보가의 무공을 익혀 어디에 쓰겠나? 고작 그따위 것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천마가 아니오?”
 
 천마天魔. 한백린.
 37세의 나이로 마교 최고수 천마의 이름을 거머쥐었지만, 금기된 마공을 익혀 무림의 공적이 된 사악하고 잔인한 자. 그가 사천에서 금혼대협 제갈진수를 단 일수로 머리통을 날려버린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였다. 순수한 무력으론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그 제갈진수를 말이다.
 
 그래. 이게 나다. 무림이 평가한 공식적인 나. 하지만 나는 그리 살지 않았다. 애초에 마교와 나를 엮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내가 어디 날 때부터 광신도 나부랭이였나? 일곱 살짜리 고아가 따라가면 하루 두 끼 챙겨준다는데, 그 외에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었겠나?
 들어가서도 죽어라 일만 했다. 스승도, 어떤 가르침도 없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나는 홀로 성장했다. 싸움이 곧 나의 배움터였고, 스승이었다. 그렇게 삼십 년. 교주란 놈은 내 발아래 쓰러졌고, 그렇게 나는 자유를 얻었다. 천마天魔라는 것은 자유와 함께 주어진 칭호.
 
 “천마라....”
 
 이제 인생 한번 제대로 살아보나 싶었다. 맛있는 것도 마음껏 먹고, 아리따운 계집도 주무르며 사내답게 살아보고 싶었단 말이다.
 
 “천마란 이름 하나 가졌다고 무조건 죽어야 하나?”
 “당연! 사마의 정점에 선 자를 어찌 협객으로서 못 본 척하겠소이까!”
 “나는 무림에, 너희들의 세상에 해를 입힐 의도가 없었다. 마교란 놈들을 다시 부흥시키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되지 말란 법 없지 않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니.”
 
 말을 하면 할수록 내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나와는 극성인 부류. 햇빛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내내 그랬던.
 
 “하..”
 
 마교를 나온 이후 나는 세상을 떠돌았다. 삼십 년 동안 지옥에서 보냈으니 사람들과 어울려도 보고 싶었고, 풍경 좋은 곳도 유람하고 싶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어린 시절 들었었던 협객에 대한 무용담을 동경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중간중간 좀 재수 없게 설쳐대는 잡것들 손 좀 봐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왜 그런 놈들 있잖은가? 문파나 배경 믿고 짖어대는 개 같은 것들 말이다. 한 놈을 패니 다섯이 오고, 다섯을 눕히니 열로 불어났다. 열은 다시 한 문파 단위가 되더니 머잖아 무림이라는 전체가 나를 대적하고 있었다.
 어느 사이 천마라는 칭호의 의미도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웠던, 내 손으로 일군 자유의 증거는, 단지 마교의 교주가 그리 불렀다는 것만으로 곡해되었다. 내가 뭔 잘못을 그리했다고.
 
 가문도 없고, 출신도 미천하지만 극복했다. 오직 내 피와 땀과 고통만으로 이루어낸 성과. 이것이 너희들이 칭송하는 무武가 아니더냐. 일평생 나보다 약자를 핍박한 적은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내게 먼저 덤비거나 약자를 겁박하는 놈들에 한해서만. 이것이 너희들이 숭상하는 협俠이 아니더냐.
 
 “하.. 하하....”
 으하하하하!
 
 “크흡!”
 “무혈대! 거리를 벌려라!”
 “대협들! 내기를 끌어 올리시오! 천마가 내력을 쓰고 있소이다! 호신이 부족한 자는 뒤로 물러서시오!”
 
 쩌렁쩌렁 울리는 광소!
 
 「천마후!」
 
 시원하게 웃고 있지만, 마음속의 응어리는 서슬처럼 벼려져 더욱 날카롭게 내 심장을 쿡쿡 쑤셔댄다.
 개 같은 정파 놈들!
 
 “애꿎은 사람들 잡지 말고, 나와 상대하시오. 그리 피를 보고 싶소? 천마! 격을 맞추란 말이오!”
 
 그중에서도 이놈이 제일 짜증 난다.
 
 “이런 씨발....”
 네놈과 나의 위치가 바뀌었다면.
 너처럼 중원제일가中原第一家의 자제는 바라지도 않았다. 밥을 굶지 않고, 잘 곳을 주고, 삽과 곡괭이 대신 책과 검을 쥐여 주는 곳에만 태어났더라면. 아마도 저 자리엔 내가 서 있었을 거다. 중원 역사상 다시 없을 최연소 고수가 탄생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고.
 오직 그것 하나가,
 세상 그 어떤 죄보다 더 크게 나를 찍어눌렀다.
 
 ‘그게 그리 큰 죄였소?’
 
 절로 하늘을 보게 된다.
 나도 대협이 되고 싶었다. 피에 미친 마귀가 아니라 네놈들처럼 멋진 협객이 말이다!
 
 피식. 무림 맹주의 뒤틀린 입꼬리.
 
 “비웃어?”
 “쌍소릴 하는 걸 보니 내 예측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생각하여 절로 웃음이 났소이다. 당신은, 세상에 없는 것이 만인을 이롭게 하는 길이오.”
 “.......”
 
 빠득.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끝까지 품위를 지킨다. 그것이 나를 지탱해온 원천. 자신을 떳떳하게 하는 힘이다. 비록 지금은 모두가 반기지 않는 객일지라도 마지막까지 굽혀 살고 싶진 않다.
 
 “그래, 놀아보자.”
 
 나는 검을 든다.
 달빛에 비친 검날은 내 마음을 대변하듯 번뜩인다. 일천의 적. 고수 아닌 자 없고, 내게 아군은 없다. 응원해주는 이 하나 없이 홀로 섰지만, 외롭진 않다.
 내 인생, 언제나 그래 왔으니.
 
 “그냥 투항하는 편이 좋을 거외다.”
 
 아 그래. 너는 반드시 데려간다.
 
 “꼭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소?”
 
 이 새낄 죽이지 못하면 귀신이 되어서도 억울해 승천하지 못할 거다.
 
 “그 관은 너를 위해 짜주지.”
 그게 내 구차했던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 비록 천마로 불리다 간 짧은 생이겠지만, 확실히 남기리. 나 한백린이 오늘을 여기에서 살다 갔노라고.
 
 “오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
 
 .
 
 처음엔 무간지옥에 빠졌다 생각했다.
 중독된 듯 사리판단이 힘들 만큼 정신이 몽롱했고, 사지도 뭔가에 구속당한 듯 쓸 수 없었다. 하염없는 답답함만 가득한 공간. 시간도, 존재도, 과거의 기억조차 희미해져 가는 공간에서 오직 자각自覺만이 있을 뿐이다.
 
 지나온 삶을 반추해 본다.
 나는 왜 죽었나? 그렇게 큰 잘못을 했던가? 물론 내 성정이 무림맹주 놈처럼 모두가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란 건 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자랐다. 살아남기 위해, 내 목숨과 함께 붙들어온 나만의 가치관이었다. 뭐, 이제 와 생각해 봐야 무어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최소한 혼자 가지는 않았으니 위로는 되었다.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칼자국 한 가닥. 그것을 바로 독고윤의 심장에 남긴 것이었다.
 
 놈은 강했지만, 틈이 있었다. 멍청하도록 한결같은 올곧음이 낳은 빈틈. 마지막 순간, 내 검이 비집고 들어가 놈의 심장을 뚫었을 때, 놈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표정을 못 본 게 아쉽다. 최소한 일 대 일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니 왈칵, 짜증이 느껴진다. 그런데,
 
 ‘음?’
 팔이 움직인다.
 
 ‘어엇?’
 꼼지락거리는 발가락도 느껴진다. 그제야 내게 육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자그마한, 그 어떤 무언가.. 놀라운 일은 계속 벌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수중水中에서 수면 위의 소리를 듣는 것만 같은 먹먹함. 확실한 건 사람의 말소리란 거다.
 
 -선생님, 꼭 제왕절개를 해야 하나요?
 -그편이 산모와 아기. 양쪽에 모두 안전합니다.
 
 뭔가가 옆에서 나를 밀어내는 느낌도 들었다. 그게 뭣인지는 모르게 아주 기분이 나빴다.
 
 -수술에 거부감이 있으시겠지만, 요즘 쌍둥이는 다 제왕절개로 합니다. 너무 걱정마세요. 아이들은 특별한 이상이 없으니..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기준이 없어 제대로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몇 달? 혹은 수십 일?
 
 ‘크흡!’
 나는 돌연 강렬한 빛을 느꼈다. 그러나 눈은 뜰 수 없었다. 그 자연스러운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눈 하나 깜빡할 수 없는 상태란 지금의 나를 두고 하는 말일 거다. 그동안 계속 들어왔었던 말소리가 사방에서 어느 때보다 선명히 들려온다.
 
 “건강합니다! 왕자님이네요!”
 
 중원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괴이한 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때,
 
 ‘우웁!’
 웬 손가락 같은 게 꾹 다 물린 내 입을 비집고 들어왔다. 입안 가득 이물질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 때쯤,
 
 “파아-”
 나도 모르게 터지는 숨.
 
 후우우웁-
 몸속 폐가 첫 개시를 했다.
 가슴 깊이 뚫리는 청량감 그리고 이어지는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느낌!
 누가 나를 잡고 흔들고 있었다.
 
 “첫째 탯줄 자릅니다! 눈, 코, 입, 손가락, 발가락 다 정상이에요!”
 
 쩌렁쩌렁한 여자의 목소리. 그리고 바로 들려오는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자극한다.
 
 “김 간호사. 바로 둘째 들어갑니다.”
 “네!”
 
 대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 거지? 아직도 눈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기척과 함께 ‘소리’는 잡을 수 있었다.
 
 생각하자. 생각!
 여긴 어디고, 나는 어떤 처지에 놓인 것이냐? 언제까지 이리 영문도 모른 채 휘말리기만 할 순 없다.
 
 “건강해요! 이번에도 왕자님입니다!”
 “휴우-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알아들을 순 없지만, 안도의 한숨과 함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들이다.
 
 “첫째 2.91킬로! 둘째 2.83킬로에요! 정상체중 범위입니다!”
 “녀석들 상태면 인큐베이터는 필요 없겠어요. 신생아실로 옮겨주세요. 며칠은 잘 지켜보시고요.”
 “네!”
 “산모가 유달리 걱정이 많았는데, 참 다행입니다.”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이어 내 몸은 또 다른 손길에 맡겨졌다. 이리저리 굴리고 흔드는. 하지만 어째서인지 온기와 다정함이 느껴지는 누군가의 손길. 손길만큼이나 다정한 목소리가 나를 자극했다.
 
 “어머나, 요 녀석들은 둘 다 울질 않네?”
 “그러게요. 호호!”
 “이란성이라고 했었나요?”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이렇게 다르게 생겼는데.”
 “호호! 어쩜 한배에서 나왔는데,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을까요? 그래도 이목구비는....”
 
 어떤 이야기인 걸까? 도대체 무슨 소리지? 귀 기울여 주변을 파악하려 했지만, 이내 아주 강력한 수마가 나를 덮쳤다. 마치 점혈을 당한 듯한 불가항력.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인지..
 
 나는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
 
 .
 
 .
 
 3개월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애깃보‘라는 구속구에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묶여 지냈다. 똥을 싸거나 씻을 때를 제외하면 어김없이 누에고치처럼 칭칭 감겨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코가 가려워도 긁을 수조차 없게 장갑 같은 것으로 손까지 봉인 당했다.
 보통 애를 키울 때 이런 짓까지 하던가? 갓난아이일 적부터 이런 식으로 근골筋骨을 다지기 위한 장치인 건가?
 
 버둥버둥-
 
 “여보. 범이가 답답한가 봐. 잠깐 풀까?”
 “음? 그래도 아직 이른데. 이맘때 애들은 자기 몸을 통제하지 못해서 그냥 놔두면 얼굴 같은 거 꼬집고 긁어서 상처 생길 수도 있대.”
 
 지난 세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먹고 싸고 자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천마라 불린 사내. 눈이 뜨이기 시작하자 주변을 파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나는 천하의 기재란 소릴 듣던 남자다. 텅 비어버린 단전과 낯선 세상에서 다시 눈을 떴다는 황당함은 잠시 묻어두고, 이곳의 말과 법칙들을 익히려 애썼다. 그리고 착실히 성과를 거두었다.
 
 여긴 거실이란 공간이다.
 아직 언어는 몰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익혀 두었다.
 마침내! 지금이 기회였다.
 
 버둥버둥버둥-
 미친 듯이 팔다리를 놀려본다.
 
 “이거 봐. 얼마나 힘들면 이래.”
 “벌써 뒤집으려고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으니까 괜찮잖아. 풀자. 응?”
 “그래.”
 
 몸을 조이던 구속구가 풀려난다!
 아! 이 해방감이란!
 
 “어우! 어우우! 어우!”
 절로 탄성이 터지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곤 이따위다. 아직 신체구조가 완벽하게 인간이라 부를 수준이 아니라 그렇다. 시력도 노인의 그것이나 다름없고,
 
 “으으으..”
 걷긴커녕 몸을 혼자 뒤집기도 힘겹다. 그러나 나는 사력을 다한다. 필사적으로 팔과 허리에 힘을 준다. 내겐 미약하지만 3개월의 내공이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몸에 반동을 준다.
 
 “어? 어머 어머! 어머나!”
 옆에서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 범이가!”
 “허! 벌써 기는 거야? 이게 말이 돼?”
 
 고작 기어가는 것.
 무림고수 1천을 앞에 두고 칼질할 때보다 더 힘겹다. 천마군림보를 시전하며 허공을 걷던 나는 없지만,
 
 뒤뚱뒤뚱-
 혼신을 다해 허리를 움직이고,
 
 씰룩씰룩-
 쓸데없이 무거운 엉덩이의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놈’에게 접근한다.
 
 부르르....
 놈의 눈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마찬가지로 구속구에 묶여 내 옆에 누워있던 놈.
 
 “하? 하하! 범이가 동생을 벌써 챙기네?”
 “우와! 여보! 이거 찍어놔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 잠깐만! 금방 카메라 가져올게!”
 
 거의 다 왔다. 엉금! 어엉금! 비록 이따위 몸뚱이로 기어서 접근할 수밖에 없었지만, 놈 또한 나와 같은 상태! 아니, 놈은 아직 결박을 풀지 못했다!
 지난 시간. 새로운 삶을 얻고, 갓난아이의 육신을 얻어 생김새는 달라졌지만, 나는 안다. 저 눈빛. 놈이 가진 분위기와 침착함에서 풍기는 재수 없음.
 
 “끄응, 끄으으응..”
 녀석도 느낀 거다. 내 접근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 현이도 풀어줄까? 답답하니?”
 
 안돼! 놈의 구속구가 풀리려 한다! 좀 더 속도를 높이자! 비록 거북이처럼 답답하더라도 나는 안다. 내 이 미약한 몸뚱이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헉, 허억, 헉!”
 거친 숨이 터지고, 자빠지면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지쳤다. 온몸의 근육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지만, 내 가슴속 응어리! 원한! 오직 처절함이 나를 지탱할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우우!”
 놈과 내가 뒤엉킨다. 이미 놈의 구속구는 풀린 상황이었지만, 이제 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무르다 못해 말랑말랑할 정도의 주먹이었지만, 있는 힘껏 버둥거린다.
 
 “여보야! 빨리! 꺄악- 얘네들 너무 예뻐!”
 
 주변은 무시하자.
 나는 내 일을 한다.
 버둥거리며 몸을 뒤트는 놈!
 
 ‘무림맹주!’
 죽여버리겠다!

작가의 말

시작합니다!

댓글(74)

Klous    
둘다 환생 했나?
2017.07.24 14:55
SEOLEE    
건승을 기원합니다! 최고로 재밌는 글^^
2017.07.24 15:00
일호흑마    
화이팅 힘내세요...
2017.07.24 15:01
qk********    
아상상햇다♥♥
2017.07.24 15:22
성냥깨비    
잘 봤습니다.
2017.07.24 16:06
심통    
천라지망 한자가 틀렸네요 ㅎㅎ
2017.07.24 16:22
신곰    
놈은 아직 놈은 아직 결박을 풀지 못했다! -] 앞에 '놈은' 이건 빼야 할 것 같네요.
2017.07.24 16:57
g9***************    
화이팅
2017.07.24 20:39
양아앙아앙    
초반스토리 어디서 본듯한데..협객이 되고싶었다?
2017.07.24 21:54
몬플랑    
저거 '협객이 되고싶었다'는 문피아 타 소설에서 쓰면 쓸수록 늙는 마공 읽힌 애가 협객이 되고 싶었는데 마공 익혔다는 이유로 정파 애들이 무림공적으로 몰아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주인공이 깨달음으로 마공의 한계를 벗어 던지고 협객이 되기 위해 여행한다는거 하나 있고 천마가 원수 끼리 서로 현대에 이란성 쌍둥이로 다시 태어난다는 스토리는 데블 and 아이스 라는 소설 도입부를 닮았네요....
2017.07.2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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