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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귀환무존(歸還武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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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8 조회 8,790 추천 63


 지독한 황권 다툼이 끝이 났다.
 황자의 난에서 승리한 건 황자가 아닌 황녀 소연후였다. 그녀는 모든 오라버니를 죽이고 황권을 장악했다.
 여제(女帝)는 의자에 앉았다. 계단 아래에는 만 명의 병사가 시립하고 있었다. 은홍빛 면사를 쓴 그녀는 깊은 심연에 잠긴 눈망울로 가장 앞에 선 한 명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약관 정도의 나이에 외모가 상당히 유순하게 보였다.
 소연후는 한참 동안 그를 쳐다보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진정 가야 하겠습니까?”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군주의 말씀은 무엇보다 무거워야 하는 법입니다.”
 사내는 공손히 포권을 취한 후, 신형을 돌렸다. 여제는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어조는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만일 앞길을 막는다면요?”
 “베고서라도 돌아가야겠습니다.”
 사내는 한 발자국씩 발걸음을 옮겼다.
 여제가 손을 들어 사내를 막으라는 지시를 하자 만 명의 금의위가 사내의 주변을 감쌌다. 하지만 그뿐, 병사들은 부복한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금의위장으로 보이는 적갑을 입은 노부가 머리를 조아렸다.
 “군주시여. 수하들이 이곳을 피로 물들여도 대장군의 앞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전부 대장군의 의사에 목숨을 맡긴 듯 칼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만 명이 무릎을 꿇고 부복하였다.
 진홍색의 봉황이 수놓아진 비단의자에 앉아 있던 여제는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정녕, 소녀의 청을 뿌리치고 그리 가셔야겠습니까? 그대에게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단 말이오.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겠단 말입니다.”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을 위해 살다가 죽는 게 제 오랜 꿈입니다.”
 소연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은포가 깔려 있는 곳을 걸어갔다. 굉장한 고수인 듯 어떠한 흐트러짐도 없었다.
 “피붙이 같은 수하들을 베고 가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제여, 왜 이토록 저를 붙잡으십니까?”
 소연후는 손으로 사내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사내는 가슴이 답답한지 황궁을 넘어 고향이 있을 법한 남쪽을 바라보았다.
 만 명의 고수들이 숨을 죽이는 가운데 그녀의 울먹거리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제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약조하셨지 않았습니까? 여제의 자리에 오르도록 도와주면 저의 모든 기록을 지워 버리고 고향으로 보내 준다고요.”
 여제는 꾹 참았던 구슬 같은 눈물을 쏟았다. 왜 이토록 많은 것을 버리고 돌아가려 하는가. 그에게 고향이 대체 무엇이기에?
 여제는 이제 대장군의 결심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당신이 오라버니가 아닌 저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군요. 좋아요, 이제 당신을 잡지 않겠어요. 다만 당신은 선택해야만 해요. 관과 척을 진 채 이대로 떠나던지, 아니면 소박하지만 저의 청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사내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좋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들어드리지요”
 그녀는 사내의 귓속에 무어라고 말을 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가세요. 이제 뒤돌아보지 말고 가세요······.”
 소연후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한 듯 말끝을 흐렸다.
 사내는 옷깃을 붙잡은 여제의 손길을 서서히 뿌리쳤다. 그러곤 이내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무정하게 귀향하는 사내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소연후는 상심이 컸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1장 귀환
 
 
 
 이십 년 전, 모친은 당시에 치유하지 못할 몹쓸 병에 걸렸고 시름시름 앓았다.
 부친은 병환으로 몸져누운 모친을 구하려고 막대한 돈을 썼다. 양가장도 팔아 버렸다. 식솔들은 양가장이 있는 곳에서 칠십 리가 떨어진 작은 마을 부령촌으로 이사 갔다.
 부령촌에서 무영의 성장 과정은 보통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촌동네라서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가족들과 어울려 놀 수 있어서 행복했다.
 넉넉지 못했지만 행복했던 무영에게 불운이 찾아온 것은 양가장에서 부령촌으로 이사를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세 살 더 먹은 형 양유민과 두 살 어린 여동생 양서련 그리고 양무영은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졸졸졸 물이 흐르는 개천에서 멱을 감고 놀았다.
 그때, 개울물에서 물장구치고 있던 무영을 관찰하던 낯선 사내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영의 집에까지 따라왔다. 아버지는 그 사내들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는 흉년이 계속되었던 시기였다. 그들은 무려 쌀 다섯 가마나 되는 은전을 내밀고 무영을 요구했다. 한참 동안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부친은 끝내 사내들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결국 열 살 먹은 무영은 사내들에게 어딘가로 끌려갔다.
 “아버지.”
 “아들아, 미안하다. 나쁜 사람들처럼은 안 보이더구나. 그 사람들을 따라가서 살면 될 것이다.”
 무영은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따스했던 날들이 이어졌는데 중천의 해가 서서히 기울자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하루가 시작되었다.
 가족들은 무어라 말을 했다. 전부 슬픔이 묻어 나오는 말이었던 것 같았다.
 형 유민과 동생 서련은 무영을 붙잡았지만 사내들이 형과 동생을 막았다. 그것은 일개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무영아.”
 “오빠! 가지 마. 흑흑.”
 마지막으로 여동생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은 낯선 사내들에게 어딘가 아주 먼 곳으로 끌려갔다.
 수십 일이 넘도록 안대에 가려진 채 끌려가 도착한 곳에는 비슷한 처지의 사내아이들이 있었다. 그가 간 곳은 침침한 동굴 안이었다.
 종유석에 낙수가 피 눈물처럼 떨어지는 곳. 아이들은 교관들에게 강압적으로 무공이라는 걸 배워야 했다.
 무영은 수백의 아이들과 수년간 동굴 속에 틀어박힌 채 무공이란 걸 익히기 위해 끔찍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무공을 익히지 않거나 성취가 미약하면 피할 수 없는 체벌이 도사린다.
 무영은 오로지 고향에 돌아갈 생각만 하며 죽기 살기로 무공을 익혔다. 그러자 교관들에게 제법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가 성장하자 황명을 받고 북쪽 전란에 투입되었다. 그렇게 전쟁터에서 십여 년을 살았다.
 그곳에서 동고동락한 벗들은 죽거나 크게 다쳤다. 무영은 살아남기 위해 개떼 같은 적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렇게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피를 흘리고서야 북방정벌이 끝이 났다.
 병환에 누운 황제가 붕어하자 황실은 몸살을 앓았고 우려했던 황자의 난이 벌어질 기미가 보였다.
 가장 먼저 무영에게 접근해 온 건 놀랍게도 황녀 소연후였다.
 그녀는 야심 찬 여인이었다. 무영은 군노로서 황실에 얽매어 있는 신분과 자신의 정체를 알 수 있을 만한 자료를 모조리 지워 달라는 요구를 했다.
 소연후는 흔쾌히 수락을 했다. 황녀가 왕권을 잡는다면 무영은 자유인이 되어서 귀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력을 나눈 황자들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죽음의 권력 다툼을 시작했다.
 피에 물든 황궁. 아수라장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소연후와 무영은 황자들이 서로 상잔할 때까지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누구도 소연후가 황권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후에 축배를 든 건 소연후였다.
 황녀를 옥좌에 올리려고 무영의 손에 묻은 무수한 피와 죄 없는 목숨들은 하나같이 가볍지 않았다.
 황자의 난을 평정할 때, 양무영의 천지벽력같은 무공을 보고서 사람들은 그를 무신이라고 불렀다.
 이제 그 무신 양무영은 죽었다.
 무영은 고향을 떠나온 이후, 이십여 년을 황실을 위해 싸워 왔다.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위해 살아갈 때였다.
 가족을 떠올리는 무영의 입꼬리가 기묘하게 올라간다.
 “이제 자유인가?”
 황실에서 받은 재물은 진즉 목숨을 잃은 수하들의 가족에게 나눠 줬다. 그래야만 전쟁터에서 원혼이 되어 간 부하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고 있는 무명옷이 전 재산이었다.
 무영은 큰 길에서 신법을 쓰기도 했으며 때로는 산을 넘었다. 그는 야전에서 모든 걸 해결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험난한 산봉우리를 넘었는지 사내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가득하다. 무려 이십 일이 넘게 움직였다.
 어느덧 무영은 고향에 첫발을 디뎠다. 한줄기 바람이 불어오고 미소가 감돈다.
 “이곳에 양가장이 있었지.”
 산모퉁이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과거보다 더욱 눈이 부셨다. 연분홍색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노란 개나리가 일대를 뒤덮었다.
 봄의 산천은 무영을 축복해 주는지 눈이 부셨다.
 예전에 있던 양가장은 완전히 허물어졌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 터에는 양화루라는 기루가 들어서 있었다. 땅도 많이 개간되었고, 그 주변에는 시장도 생겼다.
 이십 년 동안 족히 두 배 이상 규모가 커진 것이다.
 이곳은 열 살 이전에 살았던 곳이다.
 무영은 가족들과 이사를 간 부령촌으로 향했다. 마차 두 대 이상 통행할 수 있게 길이 좀 더 확장된 것 같았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잘 쌓아 놓은 돌탑이 보였다. 수백 년 먹은 은행나무가 여전히 마을의 신단수(神檀樹)로 그대로 있었다.
 과거에는 가옥이 삼백 채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규모가 두 배는 커졌다.
 무영의 눈에 실개천이 들어왔다.
 아직 완전히 개화하지 못한 새하얀 벚꽃이 자신을 반기는 듯 얼굴을 내밀었다.
 “하아.”
 벚꽃을 바라보니 마음이 설레었다. 이 졸졸졸 흐르는 개천을 따라 상류로 일다경 정도 걸으면 그립던 고향집이 나올 것이다.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한참을 걷자 어느새 과거의 집터가 보였다. 다행히 집은 그대로 있었다. 오히려 조금 더 가세가 안정이 되었는지 단칸이었던 집을 두 채나 증축해서 규모가 커진 것 같다.
 수염이 그득한 시커먼 사내가 장작을 패고 있었다. 그 사내는 자신과 닮았지만 햇볕에 그을려서 까맣게 탔다.
 마지막으로 멱을 감고 더 이상 못 볼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무영은 그가 세른 세 살이 된 형, 유민이라고 생각했다.
 “유민이 형이지?”
 장작을 패던 양유민은 뒤를 돌아보았다. 웬 청년이 집 앞에서 형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누구세요?”
 “형, 나야. 무영이. 집에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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