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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7.08.09 조회 2,275 추천 17


 序 章
 
 
 강호 무림(江湖武林)!
 태초로부터 시작된 정(正)과 사(邪), 백과 흑의 대립은 작금에 이르러 무림맹과 마교, 양대 세력 간의 대결로 이어졌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주축으로 한 무림맹과 사중천(邪中天)이라는 마교의 대결. 세인들은 두 세력 간의 대결을 정사 대전이라 불렀다.
 백여 년이나 지속된 정사 대전은 끝내 장강혈사(長江血史)란 참변을 낳았고, 수많은 인명 피해로 인해 명분을 잃은 양측의 수뇌부들은 군산회합(群山會合)을 통해 휴전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어느덧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第 一 章 흑응조
 
 
 광동성의 십만대산(十萬大山),
 오랜 세월 동안 사중천으로 군림해 온 마교의 총단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사방이 험준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분지.
 분지의 정중앙엔 웅장한 규모의 칠 층 석탑이 세워져 있었다.
 천마탑(天魔塔)!
 마교의 개교 조사인 천마지존(天魔至尊)을 기리기 위해서 만든 천마탑의 꼭대기에서는 개교 이래로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는 성화가 불타오르고 있었고, 그 천마탑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일천여 채의 건물들이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들어차 있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라전(修羅展).
 분지의 위쪽에 보이는 수라전은 마교의 부교주인 수라마존(修羅魔尊) 담작(談鵲)의 처소였다. 최근 담작은 폐관에 든 교주를 대신해 교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었다.
 대전 안.
 백발, 백염인데다 선풍도골의 풍채를 지닌 담작이, 기대에 찬 시선으로 앞에 시립한 다부진 체격의 중년인에게 물었다.
 “그래, 몇이나 나왔던가?”
 중년인은 담작의 친위 부대인 수라파천단(修羅破天團)의 단주인 대력마도(大力魔刀) 엽천(葉闡)이었다.
 엽천이 황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그게······ 하나입니다.”
 담작의 얼굴에 실망감이 묻어났다.
 “겨우?”
 “그렇습니다.”
 “허어, 그간 혈무도(血霧島)에 보낸 아이가 몇인데 달랑 하나만 나왔단 말인가! 쯧, 한심한 친구들!”
 혀를 차던 담작이 이내 말을 꺼냈다.
 “그 아이를 데려오게.”
 “알겠습니다.”
 대전을 나간 엽천은 잠시 뒤 건장한 청년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엽천이 청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부교주님이시다. 예를 올려라.”
 청년이 담작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적풍(寂風)입니다.”
 “으음.”
 담작은 미간을 좁힌 채 청년, 적풍을 유심히 살폈다.
 육 척의 큰 키에 단단해 보이는 체구, 치렁치렁한 흑발 사이로 드러난 깊게 가라앉은 두 눈, 그리고 그 아래로 곧게 뻗은 콧날과 꽉 다문 입술까지. 제법 사내다운 멋스러움이 엿보이는 용모였다.
 담작이 물었다.
 “노괴(老怪)들은 잘 있느냐?”
 “예.”
 “너 홀로 섬을 나온 것이냐?”
 “예.”
 “나머지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지?”
 “섬에 남았습니다.”
 “이유는?”
 “섬을 벗어날 실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담작이 실소를 흘렸다.
 “너는 그만한 실력을 갖췄다는 말이냐?”
 “······그것은 세 분 사부님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적풍의 대답에 담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섬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지?”
 “십이 년입니다.”
 “하면, 나이가?”
 “열아홉입니다.”
 “열아홉이라······.”
 담작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적풍을 바라보다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나가 보거라.”
 “예.”
 적풍은 정중히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고는 성큼성큼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잠시 후, 담작이 엽천을 돌아보았다.
 “저 아이······.”
 “하명하시지요.”
 “단(團)에 편입시키고 이번 출정에 데려가게.”
 엽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단에 편입시키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이제 막 강호에 첫발을 내디딘 애송이를 실전에 투입한다는 것은······.”
 담작이 단호한 어조로 엽천의 말을 끊었다.
 “허, 시키는 대로 하게.”
 ***
 마교에는 내삼단(內三團)과 외사대(外四隊)로 구성된 총 일곱 개의 친위 부대가 있었다.
 내삼단이라 함은 다음을 말한다.
 교주를 암중에 호위하는 십전수호단(十全守護團).
 소교주를 호위하는 광풍무적단(狂風無敵團).
 부교주의 친위 부대인 수라파천단(修羅破天團).
 한편 외사대는 교내에서의 지위가 부교주와 십전수호단주 다음으로 높은 사대마왕(四大魔王)의 각 친위 부대를 말함인데―
 적룡대(赤龍隊), 자묘대(紫猫隊), 흑표대(黑豹隊), 청랑대(靑狼隊)라 일컫는다.
 각 친위 부대에 속한 무사들은 일반 무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시 말해 친위 부대의 무사가 된다는 것 자체가 고수라는 의미였다.
 마교는 철저히 능력을 중시하는 단체였다. 무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아니 꼭 무공이 아니더라도 교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지닌 자는 그만큼의 지위와 대우를 보장해 주었다.
 이런 인사 방식이야말로 마교가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
 저녁 무렵.
 엽천은 적풍을 데리고 나란히 늘어서 있는 십여 채의 전각 중 가장 왼편에 보이는 전각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전각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홉 명의 무사가 대청의 중앙에 보이는 기다란 탁자에 앉아 있다가 일제히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단주님을 뵙습니다.”
 엽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걸음을 옮겨 상석에 앉자 무사들도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엽천이 적풍을 손짓해 불렀다.
 “가까이 오너라.”
 적풍이 뒤에 시립하자, 엽천이 무사들을 둘러보며 말을 꺼냈다.
 “오늘 갑자기 모이라고 한 것은 신입 조원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
 무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적풍에게 향했다. 그가 바로 신입 조원이라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름은 적풍, 나이는 열아홉. 부교주님께서 친히 추천하셨다. 더 궁금한 것이 있는가?”
 엽천의 물음에 무사들 중 하나가 벌떡 일어섰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칠 척 거한이었다. 거한은 키도 그렇지만 체격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다. 마치 산 중의 산이라는 태산(泰山)을 보는 듯했다.
 “장기가 무엇입니까?”
 “쯧쯧, 멍청하긴······.”
 거한의 맞은편에 앉은 얼굴에 기다란 검상이 있는 무사가 혀를 찬 뒤에 말을 이었다.
 “척 보면 모르겠냐? 검을 지니고 있으니 당연히 검법이 장기겠지. 눈썰미가 그리 아둔해서야.”
 거한은 그제야 적풍의 어깨에 검이 메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실소를 흘렸다.
 “푸훗, 그런가? 설마 나만 몰랐던 것은 아니겠죠?”
 거한이 주위를 둘러보다 무사들의 표정이 곱지 않은 것을 보고 얼른 자리에 앉았다.
 ‘쳇, 나만 몰랐군.’
 엽천이 거한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이내 시선을 왼쪽 첫째 자리에 앉은 무사에게 돌렸다. 다부진 체격에 눈빛이 유난히 매서운 삼십 대 초반의 사내였다.
 “구 조장.”
 무사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하명하시지요.”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을 테지만 부교주님께서 특별히 부탁한 아이이니 잘 보살펴 주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 임무에 이 아이를 데려가도록 하게.”
 무사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실전 투입은 아직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고려해 보심이······.”
 엽천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부교주님의 특명이니 그리 하도록 하게.”
 부교주의 명이라는 말에 무사도 더 이상은 반박할 수 없는 듯 즉시 대답했다.
 “그리 하겠습니다.”
 “이번 임무는 아주 중요하니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고.”
 “명심하겠습니다.”
 “자네만 믿겠네.”
 엽천이 무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적풍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적응하기 쉽지 않겠지만 세상일이 원래 모두 자기하기 나름인 것이니라.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적풍이 힘주어 대답했다.
 “예.”
 무사들과 적풍은 엽천을 문밖까지 배웅한 뒤 다시 대청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론 적풍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탁자의 끝에 시립한 채이다.
 엽천과 얘기를 나누던 무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묘궁(妙弓), 먼저 소개를 해라.”
 “소개 좋죠. 흐흐.”
 무사의 옆에 앉은 매부리코의 무사가 일어서 웃는 얼굴로 적풍을 바라보았다.
 “적풍이라 했지. 먼저 본교 제일의 호위조인 흑응조(黑鷹組)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그럼 지금부터 서열에 따라 조장과 부조장, 그리고 조원들을 차례로 소개할 테니 귓구멍 크게 열어 두도록.”
 매부리코의 무사는 먼저 자신에게 소개를 명한 왼쪽 첫 번째 자리에 앉은 다부진 체격의 무사를 가리켰다.
 “여기 이분은 흑응조의 조장이자 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쾌도(快刀) 구황(驅愰) 님이시다. 그리고 이분은······.”
 무사는 계속해 구황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비쩍 마른 무사를 가리켰다.
 “부조장인 광검(狂劒) 장천(張天) 님이시고, 그 다음이 바로 나, 묘궁(妙弓) 한확(韓確) 님이시다. 흐흐흐.”
 한확은 넉살 좋은 웃음을 흘리며 자신을 소개한 다음, 계속해 맞은편의 무사를 소개했다.
 “여기 땅딸보는 환편(幻鞭) 무진(繆振)이고.”
 소개를 받은 환편 무진이 눈을 부라렸다.
 “거기서 땅딸보가 왜 나오냐, 냄새나는 매부리코 놈아.”
 욕설에도 불구하고 한확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다.
 “원래부터 성질이 지랄 맞은 놈이니 크게 상관할 것은 없고.”
 “뭐야? 이런 개자식이!”
 급기야 무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당장이라도 한판 벌일 듯 씩씩거리자, 조장인 구황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싸우고 싶다면 소개가 끝난 뒤 밖에 나가서 하도록!”
 구황의 호통에 무진은 한확을 한차례 길게 쏘아본 다음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한마디 내뱉었다.
 “쓰펄 놈.”
 한확은 개의치 않고 옆에 앉은 준수한 용모의 무사를 가리켰다.
 “여기 잘생긴 녀석은 옥창(鈺槍) 호연박(呼延博)이고.”
 호연박은 다른 무사들과는 달리 자리에서 일어나 적풍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다, 앞으로 잘해 보자.”
 한확이 적풍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흑응조에 빨리 적응하고 싶으면 옥창과 철각, 두 사람과 친해져야 해. 후후후. 철각(鐵脚) 도명(到明)은 바로 이 녀석이다.”
 한확이 가리킨 도명은 친근감이 느껴지는 용모의 사내였다.
 “저기 얼굴에 줄 간 녀석은 귀살(鬼殺) 초정(焦釘). 투정을 입에 달고 사는 게 흠이긴 하지만 실력만큼은 끝내 주는 놈이지.”
 귀살 초정은 앞서 칠 척 거한에게 면박을 줬던 무사였다. 초정은 자신에 대한 소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얼굴에 난 검상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언제 투정 부렸다고 그래요?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 얼굴에 줄 간 게 어디 나 때문이오? 흥! 인피면구라도 하나 구해서 쓰든지 해야지 원, 더러워서.”
 “그래 주면 고맙고,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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