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대천마(大天魔)

1화

2017.08.09 조회 3,951 추천 34


 프롤로그
 
 
 
 태초에 신이란 존재가 있었다.
 신은 우주를 만들었으며, 생명을 창조하였다.
 음양의 조화를 생각하여 모든 존재를 만들었고, 그의 의지를 심어 생명을 불어 넣었다. 그러므로 신은 자신이 만든 모든 생명들의 위대한 존재가 되었고, 위대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신은 고독한 존재이기도 했다.
 세상을 굽어보되, 굽어보지 않기를 원하였고, 인간을 보살피되, 보살피기 싫어했다. 그는 모순적인 가치관을 내세워 스스로 자신에게 족쇄를 채웠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의 자유롭고 싶은 마음 하나가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그 마음은 한 여인의 몸 안으로 들어가 잉태되었고, 신은 그것을 충분히 말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완벽했지만, 스스로 그 완벽을 거부한 존재이기도 했다.
 
 
 
 
 
 
 시공을 넘어, 한계를 넘어
 
 
 
 적막함만이 흐르는 어두운 하늘 속에 어쩌다 별똥별만이 그 적막함을 깨는 어느 날 밤. 한 여인이 산고를 겪고 있었다.
 “아아악~!”
 애석하게도 여인의 괴로운 비명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넓지 않은 방안에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여인 혼자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사방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여인의 눈앞에는 지난날 여인이 살아왔던 삶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기구했다. 여인은 하루하루 힘들게 땅을 갈구며 곡식을 재배하여야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소작농의 딸로 태어났다. 하루 세 끼를 다 먹고 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여인은 함께할 가족이 있어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러나 그녀에겐 그런 삶조차도 과분했음인가. 하루아침에 교활한 인근 부호의 계략으로 인하여 부쳐먹던 토지와 재산을 몽땅 빼앗기게 되었고, 그때까지 살아왔던 고향에서 도망치다시피 야반도주를 하여 간신히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도망치는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하늘에 감사했었다. 같이 의지하며 살아갈 가족이 있었기에 그 어떤 곳으로 간다 하더라도 행복하게 만족하며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슬픈 운명은 거기서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안착할 곳을 찾아 헤매었으나 각박한 세상인심에 정처 없는 떠돌이 신세인 그녀의 가족이 살 곳은 아무 데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어머닌 돌림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아버진 도피 도중 산적에게 맞은 칼침이 파상풍으로 번져 생명을 잃었다.
 “미안하구나··· 이 험한 세상에 너 혼자 어찌 살아갈꼬······ .”
 마지막으로 세상에 대한 모든 욕심을 버려야 하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걱정하며 끝내 눈을 감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를 바라보던 두 눈에서는 흘리다 만 눈물이 고여 있어, 아버지의 눈을 감기던 그녀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질 대로 찢어졌었다. 너무나도 슬펐다. 그래도 끝이 아니었다. 잔인한 운명은 그녀를 그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들었으면서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버지를 묻고 폐허가 된 사찰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그녀의 배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불러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처녀가 애를 가졌으니 무슨 변명이라도 할 만하건만, 기구한 운명에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열 달을 그야말로 악착같이 버텨 살아냈다.
 그야말로 신이 조장한 장난 같은 운명이었다.
 “아아악!”
 마침내 여인의 비명소리가 차츰 잦아들었다.
 피가 엉겨 붙은 아랫도리. 그 아래로 보이는 아이 하나.
 이 아이가 지금까지 그 불행했던 삶을 살아온 그녀의 아이가 정녕 맞을까?
 방금 씻은 듯이 깨끗하고 고운 피부는 둘째 치고라도 아기의 몸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눈부신 황금빛은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하고 있었고, 끝없이 빨려들 것만 같은 두 눈동자는 마치 세상 모두를 담고 있는 듯했다.
 또한 그런 아이의 곁에는 신의 선물인 것만 같은 수많은 반딧불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인은 망연스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자신이 낳은 아이가 맞을까 생각을 하다가 결국 아이에게 젖도 물리지 못하고 기구하고 슬픈 운명의 끈을 놓았다. 난산(難産)의 고통을 끝내 이기지 못한 것이다.
 “아가야··· 부디··· 부디······ .”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생각했다.
 “여기가 어딜까.”
 “아가야··· 부디··· 부디······ .”
 자신을 보는 슬픈 영혼의 눈동자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세상을 떠나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슬프다.”
 태어나서도 울지 않았던 아이의 작은 두 눈동자에서 작은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떨어져 내렸다.
 툭.
 아이가 눈물을 흘리자 주변에 있던 반딧불들의 움직임이 더욱더 빨라졌다. 그리고 그 빛들은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야 왜 울어!”
 “왜 우셔요.”
 “울지 마세요. 저희도 슬퍼요.”
 울다가 문득 고개를 든 아이는 자신의 주위를 도는 무수한 불빛들이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빛들의 노력이 가상해서였을까? 아이는 눈물을 그쳤다. 그리고 다시는 울지 않았다. 앞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갈 아이는 그렇게 슬픈 세상의 첫 날을 보내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이 너무나도 어두워서 별도, 달도 더욱 밝았던 어느 날 밤이었다.
 
 
 하얀 하늘 속에 길을 잃은 파란 구름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무더운 햇볕은 어디서 맞기라도 했는지 심통이 나 무섭게 세상을 내리쬐는 어는 날이었다.
 
 
 아이는 오늘도 가만히 앉아있었다.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이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인지, 세상이 아이를 키우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세월이란 것이 그렇게나 빠른 것인지 슬픈 첫날밤을 보냈던 갓난아기가 벌써 다섯 살이 되어 있었다.
 “세상이란 어떤 곳일까?”
 아련히 보이는 달을 바라보며 아이가 말을 했다. 그러나 아이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떠도는 빛 무리들뿐이다.
 “세상은 무지무지 넓고요~ 또 신기한 곳이에요.”
 웅크려 구석에 앉아있는 아이의 앞에서 허공을 자유롭게 맴돌던 물방울이 대답했다.
 “아아··· 넓고, 신기한 곳이구나.”
 세상에 태어나 웅크려 끊임없이 숨을 쉬는 동안 아이는 바람과 물, 흙 그리고 불을 닮은 빛들과 이야기하며 무수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바람은 아이의 감정을 살 찌웠고 물방울은 부드럽게 했으며, 흙은 단단하게 했고, 불은 뜨겁게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매우 자연을 많이 닮아 있었다.
 “으으··· 야밤에 웬 비가 억수같이 오고 난리야?”
 한 중년인이 비가 세차게 내리는 거리를 쉴새없이 투덜거리며 뛰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비를 피할 곳을 찾아 헤매던 중년인은 그 후로도 한참을 걸어서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서찰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옳지! 저기서라도 비를 피해야겠군.”
 오래된 사찰인지 거의 허물어져가고 있었지만, 비를 피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어느새 사찰을 향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몸을 날리는 중년인의 움직임을 보아 그가 지닌 무공이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끼아악!
 “으으~ 불이라도 일단··· 응?”
 낡아빠질 대로 낡아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는 문을 단숨에 열어 젖히고 어두운 사찰의 안으로 들어선 중년인은 몇 년이나 개방되지 않아 습하고 케케묵은 건물 안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습관처럼 주변을 세밀히 살피다 구석에 있는 발가벗은 아이 하나를 발견했다.
 “누구야?”
 뜻밖에도 누구냐고 먼저 물어오는 아이의 말에 잠시 넋을 놓았던 중년인은 천둥이 주변을 쩌렁쩌렁 한번 울리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 물음에 대답했다.
 “나 말이냐? 미안하구나, 아이야. 겉모습만 보고 아무도 살지 않는 사찰인 줄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사는 곳이었나 보구나. 이 아저씨는 사마검이라고 한단다. 강호에서는 천하제일검··· 흠, 흠, 어쨌든 여기서 잠시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해주겠느냐?”
 사마검!
 검왕이라 불리는 절대고수의 이름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그의 애병 검왕(劍王)의 칼끝에 목숨을 잃은 무림인의 수가 셀 수조차 없이 많았지만 아무도 그를 욕하지 않았다. 그가 당당한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막는 자만 베었을 뿐이며, 그 외의 사람들은 털끝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정파가 세상을 휘어잡고 있는 하늘 아래 몇 되지 않는 절대사마의 지존 중 하나며 사마를 떠나 검을 잡은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무인이 바로 검왕 사마검이었다.
 “응.”
 아무 생각도 없는 듯 짧게 대답하는 아이를 보며 사마검은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정(情). 그것이었다.
 평생 검만을 사랑한 그가 처음 만나는 발가벗은 아이에게서 처음으로 정이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낳아 길러주시던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도, 한겨울 넓고도 넓은 거리에 홀로 버려진 자신을 거두고 무공을 가르쳐 천하제일 검이라는 칭호를 얻게 해주었던 스승과 강호를 독보하고 거닐며 보았던 수많은 여인네들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그는 난생 처음으로 만난 아이에게서 느끼게 된 것이다.
 첫눈이 내린 세상처럼 하얀 피부에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물씬 묻어나는 두 눈과 약간은 붉은 입술, 또한 전체적으로 동그란 아이의 얼굴.
 “아이야,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
 “네 이름 말이다.”
 “몰라.”
 사마검의 물음에 아니는 모른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그는 아이의 앞으로 조금 더 다가서서 관심을 보였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느냐?”
 “부모님?”
 “너를 세상에 있게 해주신, 너를 낳아주신 분들 말이다.”
 “어느 날 친구가 감싸안고 사라져버렸어.”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말일 게다. 사마검은 눈앞에 그저 변화가 없는 멀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 아이를 데려가고 싶어지는 마음을 느꼈다. 또한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것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운명이라면, 운명이지 않을까?
 “이 아저씨를 따라가지 않겠느냐?”
 조심스럽게 아이의 의향을 물어보았다.
 “함께?”
 “이 아저씨와 세상으로 가지 않겠느냐?”
 “넓고, 신기한 세상?”
 아이에게서 반응이 나왔다. 아이의 대답이 약간 상식을 벗어나곤 하였으나, 사마검은 오히려 그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래. 넓고 신기한 세상 말이다.”
 “정말?”
 자신을 향하여 정말이냐고 묻는 아이를 보며, 그는 언제나 늘 삭막했던 자신의 얼굴이 헤픈 웃음을 흘리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필살의 전투라도 하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아저씨와 함께 넓고 신기한 세상으로 가자.”
 “좋아.”
 거침없는 아이의 대답. 기뻐서 웃음을 짓는 사마검.
 천마의 당시 나이 5세. 운명은 천마를 그렇게 거친 세상 속으로 보냈다.
 
 
 “아이야.”
 “응?”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아이를 보며 사마검은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들어 안았다. 아이는 새털처럼 가벼웠다.
 “계속 아이라고 부르기에는 앞으로 같이 지낼 시간이 많구나. 정말 이름이 없느냐?”
 “응.”
 “그럼 이 아저씨가 이름을 지어줘도 될까?”
 “응.”
 아이의 빛나는 눈을 보며 사마검은 문득 하늘을 올려 보았다. 하늘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하는 것인지 그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했다.
 “그래. 이 빌어먹을 하늘 아래 너는 홀로 우뚝 선 지존이 되어라. 너는 그리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내 생각을 마친 사마검은 자신을 끝없이 빠져들게 할 것만 같은 아이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단 하루 같이 지냈을 뿐이지만 보면 볼수록 참 맑고 깊은 눈이었다.
 “천마.”
 “천마······?”
 “그래. 너의 이름을 천마라 하자꾸나. 하늘 아래 진정한 남자가 되어라. 순수한 악이 오히려 거짓된 정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 법. 위선과 자만에 빠지지 말 것이며 남자답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전진하여, 세상에 우뚝 서라. 영웅이 되려 하지 말고 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거라.”
 “응.”
 “그래. 천마야.”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천마의 짧은 대답만으로 사마검은 스스로 만족하며 천마를 더욱 세차게 끌어안았다.
 이때까지도 사마검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한 말이 앞으로 무림의 역사 속에서 천마를 따라다니게 될 것이며, 천마의 삶이 진실로 그와 같았다는 것을.
 
 
 길을 걸어가던 사마검이 천마에게 물었다.
 “무공이라는 것을 아느냐?”
 “무공?”
 눈을 깜빡이며 물어보는 천마를 바라보며 사마검은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내 근처 바위 위에 앉아 무릎 위에 천마를 앉히고 정돈은 안 되었지만 윤기가 흐르는 천마의 긴 머리를 투박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있음이 없음이요, 없음이 있음이라 (色卽是空 空卽是色). 태초에 기가 있었으니,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세상을 이해한다. 무공의 기원은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함에 있다. 살아가며 인간에게 닥치는 주변의 위험으로부터 자기방어를 하려는 것은 물론 자신의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들을 조절하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본능에 가깝다. 결국 무공은 이제까지 사람이 살아온 본능의 역사와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난 이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나에게 있어 무공이라는 것은 그저 힘이다.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고,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게 하는 자신감이며, 세상을 이해하는 학문이며, 자연과의 공생이다. 무식한 나로서는 그것밖에 모른다.”
 지금 사마검이 한 말은 무학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할 만한 무공에 대한 설명이며, 심득이라 할 수 있었다.
 당대의 절대고수인 그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하나에는 무학의 심오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그가 천마라는 다섯 살 꼬마에게 무공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한 것이다.
 “응. 그런 거구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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