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선계에서 온 아이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싸리 울타리 앞에 무명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선 노인이 신선의 도복 같은 것을 걸치고 있는 갓난아기를 보고 황망히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아이를 버리고 간 사람이 있나 하는 거였는데 이른 새벽, 첫닭이 운 지 얼마 안 되는 때라 오가는 사람도 없이 주변은 적막한 채 새소리만 들려왔다.
노인, 주양은 끙차 소리를 내며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를 두고 갈 거면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에게나 갈 것이지, 다 늙어 빠진 나 같은 인사에게, 쯧쯧······.”
주양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엄마를 향해 혀를 찼다. 그는 왕의 스승인 왕사로 평생을 홀로 학문만 닦아 온 이였다. 당연히 젖먹이를 돌봐 본 적도 없었다.
“딱한 것, 내 널 거둬 줄 적당한 집을 알아봐 주마.”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주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향기로운 복숭아 향기가 났다.
“젖먹이한테서 어찌 젖비린내 대신에 이리 향긋한 복숭아 향기가 나는 거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주양이 설마 하는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때였다. 자욱한 새벽안개 사이로 구름이 내려오더니 곧 안개와 구름이 서로 경계 없이 뒤섞이며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욱한 안개가 주양의 집 주변을 완전히 감쌌다.
이 무슨 조화 속인가.
주양이 다급히 눈을 끔뻑이며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는 사이 뽀얀 안개 사이에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양은 즉시 알아보았다.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노인이 신선이란 것을. 그 역시 어느 때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신선이 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평생을 검소하게 살며 학문에 정진하고 왕을 성군으로 키워 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 아무래도 내 그 아이를 데려가면 아니 될 것 같군.”
주양은 신선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눈만 끔뻑였다.
“아이를 데려가신다고요?”
아이가 아픈 건가? 주양이 아이의 붉은 뺨과 붉은 입술을 내려다보며 의아해했다. 아이는 건강해 보였다.
“그 아이는 본래 선계의 아이로 실수로 인세에 오게 된 것이네.”
“아아.”
주양이 크게 감탄했다. 그러다 곧 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좀 전에 데려가면 안 될 것 같다고 한 말을 기억한 것이었다.
“헌데 어찌 데려가지 않으려 하십니까?”
“아이가 인생사 희로애락을 다 배우고 난 후에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네. 아이를 내 대신에 돌봐 주겠는가. 내 그 보답은 꼭 하겠네.”
“보답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소생 갓난아이는 돌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는 병치레도 없이 잘 자랄 테니 걱정할 것 없네.”
신선의 말에 주양이 크게 안도했다. 병치레가 없을 거라는 것만으로도 크게 안심이 되었다.
“유모를 구하면 더 좋겠지.”
마침 주양의 옆집에 아기를 낳은 지 달포가 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젖을 얻어 먹이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주양의 시선을 따라 옆집을 본 신선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아이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 잠깐 무언으로 기도를 한 후 돌아섰다. 구름에 올라 멀어지던 신선이 잠시 멈추더니 맘에 걸리는 표정으로 한 가지 당부를 남겼다.
“가능하면 아이에게 겸손과 도리를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데······.”
“예, 염려 마십시오. 꼭 그리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럼, 훗날 때가 되면 보세.”
신선이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구름과 함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곧 안개가 걷히고 태양이 솟아 세상을 환히 비추기 시작했다.
아이의 잠든 얼굴에도 환한 태양 빛이 비추었다. 주양이 아이를 향해 미소 지었다.
“너의 이름은 도리다.”
1장. 총명한 아이, 주도리
“도리야, 좀만 더 놀다 가자. 좀만, 어?”
뒷짐을 지고 느릿하니 걷는 아이 옆에서 또래의 사내아이가 칭얼거리며 따랐다. 도리는 걸음을 조금 늦춘 채 발을 질질 끌다시피 따라오는 사내아이를 돌아보고 서쪽 하늘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놀이 지고 있잖아. 지금 가지 않으면 청솔이 네 밥은 없을 걸.”
밥이란 말에 사내아이, 청솔이 언제 발을 끌었나 싶게 재빨리 뛰어 도리를 따라잡았다.
“노는 건 내일 해도 되지만 끼니는 한 번 놓치면 돌아오지 않아.”
어른의 말투를 구사하는 도리의 말에 청솔이 지당한 말씀을 들었다는 얼굴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 말이 맞아.”
청솔은 도리의 할아버지이자 스승인 왕사 주양 어르신을 무척 존경했다. 무엇 때문인지, 솔직히 존경이 뭔지도 모르는 채 무조건 우러러봤다. 그리고 거의 동급으로 도리를 바라봤다. 왕사와 같은 말투를 쓰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도리가 하는 말은 절반도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그걸 아는지 도리는 청솔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되풀이해 줄 때가 많았다. 다른 어려운 얘기는 못 알아들어도 밥과 관련된 얘기는 청솔에겐 아주 알아듣기 쉬운 진리였다.
사람들은 말했다. 세상 만물의 진리를 꿰고 있는 왕사 주양 어르신께서 일찌감치 천재적인 머리를 알아보시고 거둔 아이가 바로 도리라고. 도리가 업둥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지만 감히 도리를 깔보는 이는 없었다. 다름 아닌 주양 어르신께서 인정한 천재라는데 누가 감히 그럴 수 있나. 그건 왕사이신 주양 어르신께 덤비는 꼴이고 그것은 곧 주양 어르신을 스승으로 모신 왕께 대적하는 것과 같았다.
사실 청솔은 솔직히 천재적인 게 뭔지 아직 잘 모른다. 그저 막연히 생각이 많은 것쯤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 언젠가 엄마는 도리의 작은 머릿속에 노인네가 들어앉았다고 했다. 왕사 어르신만큼은 아니어도 모르는 게 거의 없는 엄마의 말이니 맞을 거다. 청솔은 도리의 야무진 말총머리며 오밀조밀한 얼굴을 빤히 봤다. 천재라서 그런가 야물게 익은 도토리 같고 밤톨같이 생겨서 보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고 안심이 됐다. 그 야무지고 도토리 같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할까 무척 궁금하기도 했고.
“도리야, 근데 생각을 많이 하면 배가 더 빨리 고프지 않아?”
자신의 경험으로 깨달은 진리라 청솔은 도리가 자신의 말을 맞다고 해 주길 잔뜩 기대하고, 믿고 있었다. 도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도리가 맞다고 하면 맞는 거다.
도리가 설핏 미간을 접었다. 그런다고 고작 일곱 살짜리의 미간에 주름이 생기진 않았지만 제법 그럴싸하니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좀 그렇긴 해.”
청솔이 헤헤 웃었다.
“나도 그래.”
도리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또다시 뒷짐을 지고 걸음을 떼었다. 그 옆을 놓칠세라 청솔이 얼른 발을 맞추어 걸으며 오늘 저녁 반찬이 뭘까 군침까지 흘리며 떠들어 댔지만 도리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도리는 오늘 저녁 뭘 먹을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싸리 울타리, 싸리문으로 둘러싸인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에, 대장장이 모루의 집과 왕사 주양 어르신의 집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동네에 처음 오는 이들이 왕사 어르신의 집을 찾으라면 어려운 수수께끼를 앞둔 것처럼 답답한 노릇이겠으나 동네 사람들에겐 왕사 주양 어르신의 집은 누구나 아는 유명한 집이었고 대장장이 모루와 이웃이란 것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끔 왕사의 고견을 듣고자 찾아오는 귀족들이나 선비들, 태학생들에겐 이처럼 이상한 일도 없었다.
어찌해서 왕사께선 지식과 인재들의 보고라는 태학 근처가 아닌 이런 서민촌에서 그것도 대장장이와 이웃으로 살고 계실까.
누군가 물었을 때 주양은 별 이상한 질문을 다 한다는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게가 내 집이니 게서 살지요.
따지고 들자면 주양이 먼저 집을 짓고 살았고 그 후에 대장장이 모루가 집을 지었으니 주양이 굳이 대장장이 집 옆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무언가 심오한 뜻이 있어 왕사께서 대장장이를 이웃으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멋대로들 추측하고는 했다.
왕사인 까닭에 칠 일에 사흘쯤은 입궁하는 그에게 왕께서도 왕궁 밖, 권문세가와 재산깨나 축적했다는 상인들이 모여 사는 왕성대로변에 새로 집을 마련하시면 어떠냐 권하기도 했지만 주양은 그 싸리 울타리 집을 고집했다.
멀쩡한 집을 두고 옮길 이유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고집스러운 왕사 주양이 또 한 가지 고집스럽게 동경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신선이었다. 소박하고 선한 삶 끝에 신선이 될 수 있다면 그 무엇을 바랄까. 그는 실로 언행으로써 소박하고 선한 삶을 실천해 왔다. 학식이 높은 것과 더불어 흠잡을 데 없는 언행일치의 삶으로 왕사로 오래도록 왕실은 물론 백성들의 존경을 받아 왔다.
문제는 그가 아이를 키우기엔 정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란 것이었다. 아마도 유일하게 부족한 점일 것이다. 정작 그런 그의 손에 자란 아이, 도리는 평범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아이의 평범한 삶이란 걸 알지 못했기에 별 불만은 없었다. 다만, 식사의 질에 있어서만큼은 매일 붙어 다니는 청솔의 엄마이자 자신의 유모요 보모였던 다정 부인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주양의 솜씨 때문에 가끔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눈 딱 감고 청솔이를 따라갈까 하는······.
청솔이네 싸리 울타리가 가까워 오자 구수한 냄새가 풍겨 왔다.
“고깃국이다!”
신나서 소리치는 청솔의 목소리가 아니었더라도 도리도 대번에 알아챘다. 다정 부인이 오늘도 맛깔나는 고깃국을 끓였다는 걸. 도리는 꿀꺽 몰래 군침을 삼키며 걷는 속도를 늦췄다. 그 옆으로 쌩하니 달려가는 청솔 덕분에 도리의 귀밑머리가 휘날리다 내려앉았다.
마침 주양의 집 싸리 울타리 앞에서 청솔의 아비 모루가 주양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솔이 두 어른들께 꾸벅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는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원 녀석도. 아주 씩씩하구먼.”
주양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저, 저 천둥벌거숭이!”
그 앞에서 모루가 쯧 짧게 혀를 차며 무안해했다. 왕사이신 주양 선생님 이웃으로 자신이 너무 격이 떨어진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청솔이 도리와 어울리면서 반이 아니라 십분의 일이라도 좀 닮아 의젓해지길 바랐지만 아무리 해도 도리 옆에서 청솔의 철없고 부산스러운 행동이 더 부각될 뿐,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저 정도면 훌륭하지.”
“물정 모르는 놈이 대장장이는 싫고 장수가 되겠다지 뭡니까.”
혀를 연거푸 차는 모루의 눈엔 근심이 어려 있었다. 전쟁은 10년 전에 멈췄다지만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로서 그가 피부로 느끼는 현 상황이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해가 바뀌면서 부쩍 무기를 사러 오는 이들이 늘었다. 주로 국경 지역에서 사는 이들이었다. 그런 모루의 걱정도 모른 채 청솔이 목청껏 외쳐 댔다.
“배고파요!”
청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곧 다정 부인의 다정하면서도 걸걸한 목소리가 싸리 울타리를 넘어 들려왔다.
“다녀왔습니다, 라고 해야지! 아이구, 손 씻고! 아버지도 아직 안 들어오셨는데!”
몇 걸음 뒤처져 걸어온 도리가 멈춰서 울타리 너머로 다정 부인에게 소리 없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다정 부인이 특유의 푸근한 미소로 도리에게 들어오라 권했다.
“도리야, 와서 너도 같이 먹자.”
도리는 이쪽을 보는 두 어른을 돌아보았다. 주양은 도리가 뭐라 답하나 잠자코 지켜보는 듯했고 모루는 그저 흐뭇하니 웃고 있었다. 도리는 곧 아이답지 않은 침착한 목소리로 사양했다.
“아닙니다. 스승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스승님을 혼자 둘 수 없다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의젓한 대답에 다정 부인이 흐뭇하면서도 안쓰럽게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점심은 예 와서 먹어야 한다.”
“네.”
약속을 받고서야 어서 가라 손짓하는 다정 부인에게 도리는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바로 몇 걸음 옆으로 걸어갔다.
“어찌 저리 의젓하누. 청솔이 넌······! 이놈아! 뭐 하는 짓이야! 아이구, 손부터 씻고 오라니까!”
다정 부인의 목청에 도리가 미소를 지었다. 저리 소리를 질러 대고 때때로 자신과 비교하며 청솔을 구박하는 것 같아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얼마나 애지중지인지 도리는 잘 알고 있었다. 청솔이네 부모는 둘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청솔이 7살이 되도록 둘째가 들어서질 않았다. 유일한 자식인 청솔이 그만큼 귀한 것이다. 생기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이젠 욕심 없다 하면서도 다정 부인은 새벽마다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청솔이와 더불어 대장간을 이어받을 떡두꺼비 같은 아들도 좋고 엄마를 닮아 목청 좋고 아빠를 닮아 어깨가 떡 벌어진 딸이라 해도 좋으니 그저 한 명만 더 낳게 해 주십시오.
빌고 빌었다.
그 모습을 몇 번이나 봐 온 도리도 어느새 같이 기다릴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다.
“다 인연이 닿아야 하는 것이지.”
세상 만물은 보이지 않아도 나름의 인과로 서로 연을 맺고 있다. 부모 자식의 연이야 말해 무엇할까. 도리는 걸음을 걷다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자기가 무슨 말을 한 건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말과 생각을 더듬던 도리가 입 앞을 손으로 휙휙 저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 나간 말이 허공에 흩어져 사라지길 바라는 행동이었다.
가끔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말이 입 밖으로 불쑥 나가는 걸 알고 있었다. 어른들이 그 말에 놀라는 것도. 그래서 되도록 말을 아끼려고 하는데 이런 말일수록 깨닫기도 전에 입 밖으로 튀어 나가고야 말았다. 귀가 닳도록 예의와 도리를 지키란 가르침을 받고 사는 마당에 이런 말들을 툭툭 내뱉으면 어른들이 보기에 버릇없어 보인다. 그걸 알기에 조심하려고 하는데 도통 뜻대로 되질 않았다.
혹시 들었나 싶어서 어른들의 눈치를 보던 도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심각한 얘기를 나누고 있느라 마주 서서 도리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리는 가만히 그 옆으로 가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러다 또 그 월본놈들이 쳐들어오는 건 아닐까요?”
모루의 근심 어린 물음에 주양이 수염을 쓸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10년이면 그놈들도 많이 참은 게지.”
“무슨 대비책은 있으시겠지요?”
왕께서 그러시냐는 물음엔 반쯤 의구심이 차 있었다. 아무 대책 없을지도 모른다는 체념과 실망감으로 무기를 구하러 오는 이들에게 전염된 듯 모루도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주양은 모루를 나무랐다.
“말을 함부로 하다 경을 치게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지.”
“송구합니다. 헌데 안사람이 아무래도 송림 사람이라 신경이 쓰이는 눈치입니다. 대장간 돌아가는 꼴을 보더니 대번에 월본놈들이 또 쳐들어오는 거 아니냐고 하지 뭡니까.”
주양이 청솔의 손을 억지로 씻기는 다정 부인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다정 부인은 고향인 송림에서 온 가족을 잃고 왕성으로 왔다가 모루와 혼인하여 정착한 이였다. 죽은 가족들을 뒤로한 채 간신히 빠져나온 다정 부인은 언제고 고향으로 돌아가 제대로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올리는 것을 소원하고 있었다. 지난 10년, 전쟁 없이 조용한 가운데 다정 부인도 과거의 아픈 기억은 잊고 잘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니 애써 묻어 둔 아픈 기억이 떠오르고 가슴에 맺힌 한 때문에 힘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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