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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모탈(The Immortal) 1

2017.08.25 조회 980 추천 8


 임모탈(The Immortal) 1권 - 깊은 잠에서 깨어나다
 
 
 프롤로그(prologue)
 
 
 다크 헤임.
 마법 문명을 활짝 꽃피운 마도시대의 말기에 만들어진 고대 흑마법서이다.
 이름조차 쓰여 지지 않아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검은 뱀가죽으로 표지를 만든 거 같은데 자세히 보면 은은하게 붉은빛이 도는 게 고급스럽다.
 특수 마법약물 처리가 되어 있고 여기에다가 보존마법도 걸려 있다.
 표지를 넘기면 종이로 만든 페이지가 나오는데 2만년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조금 전에 만든 거 같이 상태가 좋다.
 첫 페이지에는 마나에 관한 정의가 되어 있으며 책의 중간 부분에 이르기까지 마법에 관한 기초적인 설명이 자세히 기록 되어 있다.
 책의 중간에서야 처음으로 흑마법에 관한 것들이 나온다.
 놀라운 것은 첫 번째 흑마법이 대량살상이 가능한 광역마법이다.
 마도시대에는 서클 마법 개념이 아니라 드래곤들처럼 용언마법과 비슷하다.
 어쨌든 깨달음을 얻어 6서클에 올라선 마법사가 아니고선 펼치는 것도 어렵다.
 뒤로 갈수록 마법의 위력이 강하였으며 22번째 마법부터는 마법의 종족이라는 드래곤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펼치는 게 가능하다는 절대마법이었다.
 이런 절대마법이 무려 12가지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후반부에 있는 두 가지 창조마법이었다.
 신이나 그에 버금가야 펼칠 수 있는 창조마법에는 죽지 않는 인간이 되는 임모탈 대법과 임모탈의 피와 흑마법으로 만드는 불사의 군대가 그것이었다.
 전부 35가지의 마법 중에 21가지 흑마법은 광역마법이고 12가지는 절대마법, 마지막 두 가지는 창조마법이라니 놀라웠다.
 인간의 경지를 넘어 신의 경지에 들어선 자가 만든 게 분명했다.
 다크 헤임이라는 흑마법서로 인하여 배신과 복수의 시작이 되었다.
 
 
 chapter 01 제자들에게 배신당하다
 
 
 “우욱!”
 붉은색 로브를 입은 노인이 입에서 피를 내뿜으면서 비틀거렸다.
 얼굴에 주름이 얼마나 많은지 나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
 노인이 붉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아서는 전투마법사였다.
 어쨌든 그가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으면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를 포위한 자들은 모두 9명이었다.
 “으··너희들이 날 배신하다니···.”
 그는 지금의 일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를 포위한 9명은 자신의 제자들이었다.
 6명은 3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들이었고, 나머지 3명은 아름다운 미녀들이었다.
 그에게는 10명의 제자들이 있었다.
 현재 자신의 오른쪽에는 기습공격을 받고 쓰러진 막내 제자 아슬란이 있었다.
 그를 배신한 9명의 제자들이 막내 제자 아슬란을 설득했지만 끝까지 거부하다가 이렇게 먼저 기습 공격을 받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배신한 제자들에게 기습공격을 받아 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온몸에는 상처가 심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한 출혈 때문에 이젠 정신까지 아찔했지만 자존심 때문에라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었다.
 “으···도대체 무엇 때문에 날 배신한 것이냐?”
 그의 말에 우측에 서 있던 중년인이 대답했다.
 “그건 마스터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 그만 그걸 내어 놓으시오.”
 “크크크···역시 다크 헤임 때문이냐?”
 “그렇소. 이제 그만 그걸 우리에게 넘기시오.”
 중년인들이 한마디씩 하였다.
 설마 했었던 일이 일어나자 그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공간 확장마법이 걸려 있는 로브의 안주머니에서 검은 가죽으로 된 책을 꺼내어 들었다.
 모두들 그걸 보고는 눈을 번뜩였다.
 제자들이 스승을 배신하면서까지 입수하려고 하는 게 바로 저 책이었다.
 그는 8서클 초급 전투마법사 베네딕트 폰 아론이었다.
 그리고 스승을 배신한 9명의 제자들은 깨달음을 얻어 올라선 6서클 초급의 전투마법사였다.
 아론은 약 3년 전에 우연히 입수한 마도시대의 흑마법서 다크 헤임을 읽어 보고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에 빠졌었다.
 흑마법은 백마법에 비해 사악하고 정도를 벗어난 아류에 불과한 마법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수준 높은 흑마법이 어떻게 마도시대에 존재하고 있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아론은 다크 헤임에 정신없이 빠져 들었었다.
 그걸 수제자 허스트가 우연히 보고는 탐욕에 빠졌다.
 그는 사제들과 비밀리에 모여 아론을 죽이고 흑마법서 다크 헤임을 나누기로 협의했다.
 그렇게 아론의 제자들은 기회를 엿보다가 약 2년 만에 오늘 기습 공격하였고 성공 직전에 와 있었다.
 아론은 다크 헤임을 입수할 때만 하더라도 제자들과 서로 같이 익히고 연구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우연히 마법을 연구하다가 제자들이 모여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언제나 자신 앞에서는 굽실 거리던 제자들이 뒤에서는 이렇게 배신을 모의 하고 있었다.
 비록 사랑하는 자신의 제자들이었지만 속마음은 이렇게 욕심이 많고 사악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절대 그들에게 다크 헤임을 보여주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비밀리에 배신에 대한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에서 깨어난 아론은 배신한 제자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오늘 치명적인 기습 공격을 받고 보니 그때 대비를 해두길 정말 잘 했어.’
 그때 수제자 허스트가 아론에게 말했다.
 “마스터, 이제 그만 그걸 넘겨주시오. 그것만 우리에게 넘겨주면 옛정을 생각해서 죽이지는 않겠소.”
 뻔뻔한 허스트의 말에 아론은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투투툭!
 아론이 다크 헤임을 엮은 검은 가죽 끈을 잡아 뜯었다.
 제자들은 아론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설마 다크 헤임을 훼손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허엇, 막아.”
 “빼앗아!”
 제자들이 일제히 마력을 끌어올려 아론이 손에 들고 있는 다크 헤임을 빼앗으려고 했다.
 아론이 한발 먼저 다크 헤임을 공중으로 던졌다.
 2천 페이지에 달하는 것이 사방으로 흩어져 휘날렸다.
 순간 분노한 제자들이 아론을 향해 공격하려던 것을 휘날리는 페이지를 보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어차피 아론은 치명적인 부상에 내상까지 입어 서 있기도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론을 공격하기 보다는 휘날리는 페이지를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는 욕심이 컸다.
 “어리석은 나의 제자들이여, 이 원한은 절대 잊지 않겠다. 워프!”
 스스슷!
 아론의 모습이 기이한 빛에 휩싸이더니 순간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그제야 제자들은 휘날리는 페이지를 잡으려던 것을 잠시 멈추었지만 이미 아론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이럴 수가?”
 “어떻게 워프 마법을?”
 “이런 젠장!”
 제자들은 믿어지지 않았다.
 아론에게는 남아 있는 마력이 거의 없었기에 3서클의 하위 마법조차 펼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아론이 워프 마법을 펼쳐 도망쳤기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득 아티팩트가 떠올랐다.
 이들의 생각대로 아론은 비밀리에 워프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를 준비해 두었는데 그걸 사용하여 도망쳤다.
 아무리 다크 헤임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아론이 내상을 회복하고 나타나면 자신들은 죽은 목숨이었다.
 잠시 그것을 망각한 치명적인 실수에 모두들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휘날리던 페이지를 전부 회수한 제자들이 서로 모였다.
 뒤죽박죽된 페이지를 가지고 있어봐야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허스트가 제안을 했다.
 “너희들도 잘 알겠지만 욕심에 페이지를 좀 더 가지고 있어봐야 뒤섞여 엉망이 되었기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럴 바에야 페이지를 다시 정리하여 마법으로 복사 하여 한권씩 나누어 가지는 건 어때?”
 “대사형, 그건 맞지만 진본은 어떻게 할 거요?”
 아론의 둘째 제자 아베크의 말에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면서 허스트를 쳐다보았다.
 “으음, 쪽지를 뽑는 방법으로 하자. 그리고 어차피 우리들은 다크 헤임에 어떤 마법이 쓰여 져 있는지는 모르기에 굳이 진본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어.”
 “대사형, 페이지를 정리한다고 하면서 수작을 부린다면 어떻게 할 것이오?”
 “모두들 지켜보고 있는데 그럴 수 있을까?”
 허스트의 말에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으음···생각해보니 그게 가장 공정한 거 같으니 난 찬성이오.”
 “나도 찬성입니다.”
 “나도 찬성.”
 이렇게 하여 모두들 뒤섞인 페이지를 한곳에 모았다.
 쪽지를 뽑은 아베크가 진본을 가지게 되었다.
 그 대신에 대표로 나서서 마법을 펼쳐 다크 헤임을 순식간에 정리하더니 8권의 책을 복사하여 만들었다.
 “이제 각자 한권씩 집어 들어 살펴봐라. 대사형이 먼저 아무것이나 선택하시오.”
 머리를 끄덕인 허스트가 먼저 나서서 마법으로 복사하여 만들어진 다크 헤임을 집어 들었다.
 아베크는 다크 헤임 진본을 손짓만으로 끌어 당겼다.
 그제야 나머지 사제들도 다크 헤임 한권씩 집어 들더니 살펴보았다.
 엄청나게 수준이 높은 흑마법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제자 허스트가 사제들에게 말했다.
 “모두들 이렇게 기뻐할 일만 아니다. 마스터가 워프 마법으로 도망쳤기에 언제 다시 나타나서 우릴 죽이려고 할지 모른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9번째 제자 얀센의 말에 허스트가 얼굴을 찌푸렸다.
 “모르는 소리.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8서클 유저 전투마법사다. 언제 부상을 치료하고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허엇, 그렇군요.”
 “그럼 큰일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대사형,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법서를 나누어 가졌다고 좋아했지만 모두들 도망친 마스터를 생각하자 공포에 몸이 떨렸다.
 수제자 허스트도 겁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일단 각자 활동하던 것을 바로 정리하고 잠적해라. 각자 숨어서 입수한 마법을 익힌다.”
 “예? 그럼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개별적으로는 절대 마스터의 상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신변을 정리하여 각자 숨어서 마법을 익히라고 하는 거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마법을 익히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아무리 마스터라고 하더라도 우리들이 활동을 중지하고 숨어 있는 이상에는 찾아내지 못한다.”
 하긴 각자 마음먹고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숨어서 마법만 익힌다면 절대 마스터라고 하더라도 찾아내긴 불가능해 보였다.
 둘째 제자 아베크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대사형, 그럼 우리끼리도 서로 연락할 수 없습니까?”
 “그건 가능하다. 오늘 이후 우리들은 서로 만나지 않고 연락만 할 수 있도록 수정구에 각자의 고유 통신좌표를 입력하자. 그리고 마법을 익히려고 정신없을 것이기에 한동안은 만나고 싶어도 그럴 시간도 없을 것이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럴 거 같았다.
 설사 수정구에 통신좌표를 입력한다고 하더라도 위치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각자 수정구에 사형제들의 고유 통신좌표를 마력으로 입력했다.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들은 각자 워프 마법을 펼쳐 사라졌다.
 
 “끄으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론의 막내 제자 아슬란이 죽지 않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아론을 배신한 제자들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미처 죽은 줄로 착각한 아슬란을 그대로 방치하고 사라졌었다.
 만약 아슬란에게 화염 계열의 마법을 펼쳐 불태웠다면 꼼짝없이 타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아슬란이 살아남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제 사형제들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기에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몸속에 남아 있는 마력이 미미했기에 품속에서 상급의 마나스톤을 꺼내었다.
 아론이 예전에 선물로 준 것이었는데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츠츠츠츠!
 농축된 마나가 몸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하자 기운이 났다.
 더 이상의 내상이 악화되지 않도록 치료마법을 펼쳤다.
 워프 마법을 펼쳐도 될 정도가 되자 즉시 외쳤다.
 “워프!”
 츠파파팟!
 워프 마법을 펼쳐 아슬란이 사라지고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공간이 이지러지더니 대제자 허스트가 나타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눈을 번뜩였다.
 “으음···혹시나 했었는데 아슬란이 사라졌구나. 이렇게 되면 마스터뿐만 아니라 아슬란도 경계를 해야 하는 건가?”
 턱을 만지면서 잠시 생각하던 허스트는 씨익 웃었다.
 어차피 마스터인 아론을 배신했기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다크 헤임의 엄청난 흑마법을 손에 넣었다.
 시일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 제대로 익힌다면 마스터인 아론이 다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아론은 다크 헤임을 입수했지만 흑마법을 한 가지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라는 걸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은밀히 마법을 펼쳐 감시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기습 작전은 사실 자신이 주도하여 비밀리에 사제들을 설득하여 시도한 일이었다.
 다만 아론과 아슬란이 죽지 않고 도망쳤기에 내상을 치료하면 자신과 사제들을 찾아 나설 것이니 다크 헤임을 익힐 때까지만 잘 숨어 있으면 될 거 같았다.
 “흐흐흐···철저히 준비하여 잠적해야겠어.”
 스스슷!
 허스트가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허스트가 사라진 후 5분도 지나지 않아 아베크가 나타났다.
 그는 허스트와 마찬가지로 아슬란이 쓰러져 있던 곳을 살펴보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슬란이 죽지 않았단 말인가? 제법 잔머리를 굴렸군?”
 아베크는 죽은 줄 알았던 아슬란이 못마땅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사형제지간 이었기에 시신이나마 자신의 손으로 땅에 묻어 주려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아슬란이 죽지 않고 도망쳤다는 것을 알고는 분노가 일었다.
 아슬란은 사형제들 중에 막내이지만 마법 실력은 자신이나 수제자 허스트와 비슷한 수준으로 무척 높았다.
 공식적으로는 아론의 모든 제자들은 6서클 초급 전투마법사였다.
 하지만 아슬란과 자신, 수제자 허스트는 6서클 마스터로 보였고, 나머지는 한 단계 정도 아래의 상급이었다.
 그렇기에 허스트까지 아슬란을 질투하여 좋게 보지 않았다.
 어쨌든 아론뿐만 아니라 아슬란까지 적으로 두었기에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만 했다.
 만약 이런 사실을 몰랐으면 큰일 날 뻔하였다.
 “흐흐흐···정말 이곳에 오길 잘했어. 이제 적이 둘로 늘어났으니 모든 걸 정리하여 잠적해야겠군.”
 아베크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론의 제자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나타났다.
 그들도 아슬란이 죽지 않고 도망쳤다는 걸 알고는 아베크나 허스트처럼 모든 걸 정리하여 잠적하기로 마음먹고 돌아갔다.
 
 스스슷!
 공간이 이지러지며 붉은 로브를 입은 아론이 나타났다.
 바닥과 천장까지 온통 돌로 이루어진 석실이었다.
 이곳은 혹시라도 제자들에게 기습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마련해 놓은 아론의 비밀의 던전이었다.
 약 3년 전에 다크 헤임이라는 마도시대 흑마법서를 입수한 아론은 혼자서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여 제자들도 모르게 마련해 놓은 비밀의 던전이었다.
 “우욱!”
 입에서 피를 내뿜은 아론이 크게 휘청거리다가 벽을 짚었다.
 소매로 피를 닦은 아론이 석실의 중앙에 놓여 져 있는 금관을 쳐다보았다.
 전체가 번쩍거리는 금을 녹여서 만든 금관이었다.
 금관의 뚜껑과 표면에는 마법의 룬문자를 빼곡하게 새겨 놓은 특이한 금관이었다.
 5톤의 금을 녹여 만든 금관만 하더라도 보물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룬문자는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귀중한 수준 높은 마법 진이었다.
 다크 헤임에 있는 임모탈 대법의 일부라 할 수 있는 마법 진을 새겨 놓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크크크···내가 저걸 만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구나. 과연 죽지 않는다는 불사신이 될 수 있을까?”
 원래 임모탈이라는 고대어는 불사신이나 죽지 않는 불사의 군대를 이르는 단어였다.
 그런 임모탈이 다크 헤임의 후반부에 쓰여 져 있었으니 아론이 놀랄 만도 했다.
 임모탈 대법이 쓰여 져 있었지만 다크 헤임을 저술한 흑마법사도 펼쳐보지 못하였기에 결과는 알 수 없었다.
 마법의 종족이라는 드래곤들 조차 이런 마법은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니, 드래곤들은 수명이 만년이나 되기에 굳이 이런 마법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년도 채 살지 못하는 보통의 인간에게는 꿈의 마법이었다.
 임모탈 대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고가의 각종 마법재료도 준비해야 하기에 아무나 펼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아론은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비밀리에 각종 마법재료를 사들여 이곳에 준비를 해놓았다.
 다만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는 대법이기에 선뜻 나서서 펼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믿었던 제자들에게 배신당하였다.
 또한 기습공격을 받기 전만하더라도 확신이 들지 않아서 머뭇거렸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오너라, 나의 가디언이여.”
 아론의 말에 석실 바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근육질의 오크로 변하였다.
 푸르스름한 피부에 두 눈이 충혈 되어 있는 게 몬스터인 오크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아론을 공격하지 않고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걸 보니 특이했지만 가디언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나의 가디언이여, 지금 당장 준비해 놓은 것을 금관에 부어라.”
 “·····!···”
 가디언 오크는 말을 하지 못하는지 아론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뒤돌아 금관 밑을 열더니 그곳에서 잘 밀봉된 금속 통을 12개나 차례대로 꺼내었다.
 가디언 오크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더니 금관에 액체를 부었다.
 그동안 아론은 입고 있는 붉은색 로브와 속옷까지 전부 벗어 나체가 되었다.
 “우웩!”
 아론은 몸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걸 참지 못하고 피를 내뱉었다.
 “크크크···지금쯤 제자들이 웃고 있겠군. 하지만 내가 뿌린 다크 헤임이 진본이 아니라는 걸 안다면 미치고 팔짝 뛰겠지?”
 아론은 제자들이 배신 모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나름대로 대비를 해두었다.
 진본 다크 헤임은 이곳에 숨겨 두었고 품속에는 가짜를 가지고 다녔었다.
 약 3년 전에 아론은 제자도 없이 혼자서 야영을 하게 되었다.
 그냥 숲에서 자면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기에 위험했다.
 그래서 인근을 수색하다가 그레이 베어가 살다가 떠난 작은 동굴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동굴 끝에 마법의 기운을 감지했다.
 마법 진을 해제하였더니 작은 석실이 있었고 보석함 하나만 바닥에 놓여 있었다.
 보석함의 뚜껑을 열어보니 다크 헤임이라는 마도시대 흑마법서가 들어 있었다.
 아론은 호기심에 다크 헤임을 펼쳐 보았고 정신적인 큰 충격에 빠졌었다.
 이제껏 이런 엄청난 흑마법은 단연 처음이었다.
 불현듯이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보유하고 있던 제법 오래된 7서클 흑마법서 중에 한권을 꺼내었다.
 다크 헤임과 표지가 똑같도록 마법을 펼쳤다.
 표지가 똑같은 다크 헤임이 두 권이나 되었지만 진본과 가짜는 내용이 전혀 달랐다.
 그냥 표지만 본다면 그럴듯해 보였다.
 아론은 마법을 펼쳐 다크 헤임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가짜 다크 헤임을 공간 확장마법이 걸려 있는 로브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아론은 6살에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17살에 2서클 초급이 되어 졸업했다.
 하지만 고아였기에 자신을 지원해주는 부모나 후원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18살에 성인식을 치루고 혼자서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실전 감각을 익혔었다.
 실력 좋은 용병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몬스터 사냥을 하여 돈을 벌었었다.
 그렇게 30년 동안 혼자 마법을 수련하여 5서클 마스터의 마법사가 되었다.
 오랜 몬스터 사냥으로 실전과 경험이 높았지만 마법수련은 한계에 부딪쳤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전투마법사 길드에 가입하여 전투마법사가 되었다.
 그 이후 지난 56년 동안 각종 영지전과 전쟁에 참전하여 전투마법사로 맹활약했다.
 전리품으로 입수한 각종 마법서가 5백 권이 넘었다.
 그 마법서를 토대로 독학하면서 익혀 마법 경지를 끌어 올렸었다.
 아론이 보유한 마법서 중에는 깨달음을 얻어야 올라 설 수 있다는 6서클 이상의 마법서가 22권이나 되었다.
 스승 없이 혼자 독학으로 마법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지만 아론은 결국 깨달음을 얻어 6서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에 참전하여 7서클의 마법서가 3권, 8서클의 마법서도 한권을 입수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런 노력 덕분에 아론은 8서클 초급의 전투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
 제자도 어느새 열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배신과 기습 공격에 이런 치욕적인 위기 상태가 되었다.
 아론은 다크 헤임이 가짜라는 사실을 제자들이 모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배신에 대한 분노가 조금은 위로 되었다.
 생각에서 깨어난 아론이 금관을 바라보니 가디언 오크가 어느새 12개의 금속 통에 들어 있는 액체를 금관에 다 부어 놓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
 아론이 금관으로 다가가보니 12가지의 액체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고 고여 있었다.
 12가지 색의 액체를 잠시 내려다보던 아론이 금관으로 들어가 누우면서 가디언 오크에게 말했다.
 “나의 가디언이여, 내가 누우면 관 뚜껑을 닫고 내가 다시 부를 때 까지 마법 공간으로 돌아가 있어라.”
 가디언 오크는 대답 없이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아론이 금관 속에 누워 임모탈 대법에 필요한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그그긍!
 금관 뚜껑을 닫은 가디언 오크는 검은 연기로 변하여 석실 바닥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관에서 기이한 빛이 번쩍이더니 순간 사라졌다.
 아론은 임모탈 대법을 펼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석실은 그렇게 긴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chapter 02 깊은 잠에서 깨어나다
 
 
 대륙력 1826년 바루지아 호수.
 플로리안 대륙의 중부에서 남부까지 이어진 거대한 호수로 13개 국가의 국경이 걸쳐 있었다.
 호수가 아주 넓어서 중간 규모의 왕국 3배 이상 크기였다.
 또한 크고 작은 섬들이 5백 개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렇게 많은 섬들 중에 벨렘 제국의 남부 국경에 위치한 호반에는 9개의 무인도가 무리를 이루고 있는 나인 군도가 있었다.
 나인 군도는 호반에서 약 5백 미터 이내에 위치해 있어 가까우며,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콰쾅!
 느닷없이 나인 군도 중에 가장 호반에서 가까운 약 2백 미터 지점에 있는 무인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무인도는 지름이 약 백여 미터에 이르고 대부분이 바위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그런데 이 폭발이 끝이 아니었다.
 공중을 가로 질러 또 다시 포탄이 날아와 바위에 부딪쳐 폭발했다.
 푸드득!
 무인도의 바위에 앉아 쉬고 있던 새들이 폭발에 깜짝 놀라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호반에는 열문의 대포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무인도를 향해 한창 포격을 하고 있었다.
 콰콰쾅!
 폭발에 바위가 박살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였기에 피해가 없었지 만약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였을 것이었다.
 호반에 서서 망원경으로 무인도를 살펴보던 포병대장 존슨은 옆에 있는 부관에게 말했다.
 “부관, 이번에도 명중이다.”
 “대장님, 정말 대단한 병기입니다.”
 “나도 설명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캐논 포가 위력적인 줄은 몰랐었다.”
 “저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정도 위력이라면 아무리 견고한 성벽이라도 충분히 박살내 버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당연하지. 폐하께서 연구하여 개발한 캐논 포이니 말이다.”
 “이 캐논 포가 실전 배치가 되면 르완 제국이 침공하더라도 걱정 없을 거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부관, 이번에는 열문을 전부 발사하라.”
 “예, 알겠습니다.”
 부관이 손에 들고 있던 깃발을 흔들자 발사준비를 끝마치고 대기해 있던 포병들이 캐논 포의 포탄을 일제히 발사했다.
 파파파파팡!
 열문의 캐논 포에서 발사음이 나더니 포탄이 공중을 가로질러 무인도의 바위에 떨어져 폭발했다.
 거대한 바위가 포격에 견디지 못하고 금이 쩍 가더니 파편이 되어 후두둑 떨어졌다.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는 벨렘 제국의 고위 귀족인 백작 3명과 하위 귀족인 자작 16명, 남작 37명이나 관람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작들 사이에 위축되지 않고 도도하게 앉아 있는 금발의 20대 초반의 미남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3황자 마르시아였다.
 귀족들은 캐논 포의 위력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5서클의 전투마법사가 펼치는 파이어 볼과 비교해 보아도 캐논 포가 더 위력적이었다.
 짝짝짝짝!
 3황자 마르시아가 먼저 박수를 치자 귀족들도 캐논 포의 화력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3황자와 귀족들의 이런 반응에 흥분한 포병대장 존슨이 무인도를 향해 포격을 계속 퍼부었다.
 캐논 포의 첫 포격시험이었기에 포병들의 미숙한 점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3백 발의 캐논 포 포격실험이 끝이 났다.
 포병대장 존슨은 부관을 데리고 귀족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끄덕이던 3황자 마르시아가 포병대장 존슨에게 말했다.
 “존슨 포병대장, 오늘 캐논 포의 첫 포격실험은 정말 만족스러웠소.”
 “감사합니다. 황자 전하.”
 “앞으로 포병들의 훈련이 차질 없도록 해주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황자 마르시아가 미소를 보이면서 백작들과 함께 먼저 대기해 있는 마차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자작과 남작들도 일어나더니 포병대장 존슨과 악수를 하고 각자 마차로 향하였다.
 “부관, 캐논 포의 철수를 시작하라.”
 “예, 알겠습니다.”
 부관이 포병들에게 뛰어가 지시를 하자 말을 끌고 와 캐논 포를 연결하더니 신속하게 철수를 시작하였다.
 캐논 포에는 두 개의 바퀴가 설치되어 있었기에 말에 연결하면 신속하게 이동이 가능했다.
 
 푸스스스!
 석실의 천장에서 먼지가 후두둑 떨어지더니 금이 쩍 갔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결국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문제는 석실 가운데 있던 금관이 충격을 받아 관 뚜껑이 열렸다.
 금관 속에는 아론이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런데 해골에 가죽옷을 입혀 놓은 듯이 깡말라 있었기에 썩지 않고 건조된 미라 같아 보였다.
 번쩍!
 금관 속에 누워 있던 아론이 눈을 뜨자 푸르스름한 강렬한 안광이 내뻗어졌다.
 “으으···영원히 잠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운이 좋아 깨어나게 되었군.”
 바루지아 호수의 나인군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바위 속에 비밀의 던전을 마련했었다.
 아론은 다크 헤임에 나와 있는 임모탈 대법대로 시행했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그건 바로 깊은 잠에 빠진 아론을 누군가 깨워줘야 했다.
 금관에 채워져 있던 12가지의 액체가 몸속으로 전부 흡수가 된 이후에 임모탈 대법을 끝마치고 깨어나야 하는데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론이 그걸 직접 할 수는 없었다.
 임모탈 대법이 끝나면서 아론은 의식은 있었지만 금관에 펼쳐 놓았던 마법을 해제할 수 없어서 날이 갈수록 살이 빠지더니 결국 썩지 않고 건조된 미라처럼 되었다.
 이런 현상은 펼쳐 놓았던 임모탈 대법을 제때 거두지 못하여 일어난 일종의 부작용이었다.
 어쨌든 캐논 포의 포격실험에 석실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금관 뚜껑이 열려 임모탈 대법이 강제 해제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론은 몸에 전혀 수분이 남지 않았고, 기운도 없어서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가디언 오크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말을 해야 했다.
 “으으··나오너라, 나의 충성스러운 가디언이여.”
 뭉게뭉게.
 석실 바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근육질의 오크로 변하였다.
 푸르스름한 피부에 두 눈이 충혈 되어 있는 가디언 오크가 금관 속에 누워 있는 아론을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의 가디언이여, 금관 밑에 준비해 놓은 금속 통을 꺼내어라.”
 가디언 오크는 아론의 명령에 금관 밑에서 잘 밀봉된 금속 통을 하나 꺼내었다.
 금속 통속에는 아론이 준비해 놓은 영양제가 들어 있었다.
 각종 영양 성분을 배합하여 액체로 만들었으며, 여기에다가 상급의 포션까지 섞여 있었다.
 가디언 오크가 뚜껑을 열더니 영양제를 금관에 부었다.
 츠츠츠츠!
 영양제가 누워 있는 아론의 몸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하였다.
 잘 건조된 미라 같아 보였던 아론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일백 리터 정도 되던 영양제가 모두 아론의 몸속으로 흡수가 되었지만 변화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해골에서 아사 직전에 있는 난민처럼 변하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몸을 움직일 힘은 충분했다.
 이제야 좀 살 거 같았는지 아론이 힘겹게 말했다.
 “나의 가디언이여, 나를 부축해라.”
 가디언 오크가 금관으로 다가와 상체를 제대로 일으키지 못하는 아론을 부축해 주었다.
 금관에서 상체를 일으킨 아론이 석실을 두리번거렸다.
 벽과 바닥은 이상 없어 보였지만 천장이 무너져 내린 게 보였다.
 초감각으로 이미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더 실감이 났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나인 군도의 무인도에 마련한 비밀의 던전 석실의 천장이 무너질 정도로 충격을 받은 일이었다.
 마법사가 마법 수련을 한다고 무인도에서 수십 발의 파이어 볼 같은 공격마법을 난사하지 않고서는 석실의 천장이 무너지는 일은 불가능했다.
 어찌된 일인지 궁금했지만 체력을 회복하는 게 먼저였기에 확인은 나중으로 미루어야만 했다.
 아론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깨어났기에 천천히 걸으면서 석실을 빙빙 돌았다.
 처음에는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젖먹이처럼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조금씩 좋아졌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면서 몸이 풀린 아론은 금관 밑에 놓아두었던 마법주머니를 꺼내었다.
 마법주머니에는 공간 확장마법이 걸려 있었기에 짐마차 한 대 분량의 각종 물건을 넣을 수 있었다.
 공기가 없고 음식물을 넣어 두어도 변하지 않아서 유용하게 쓰이는 마법물품이었다.
 아론은 마법주머니에서 야영에 필요한 각종 식기류와 빵과 부식재료를 꺼내어 스튜를 끓였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기에 아직은 위의 소화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스프 종류를 먹고 기운을 회복하는 게 좋았는데 스튜가 영양이 많아서 적격이었다.
 아론은 스튜를 끓여 먹고 석실을 걸었으며, 조금씩 체력을 회복하였다.
 그렇게 아론은 열흘 정도 체력을 회복하더니 석실을 나섰다.
 
 스스슷!
 아론이 블링크 마법을 펼쳐 석실 밖으로 나왔다.
 가디언 오크는 땅속에서 불쑥 솟아났다.
 외부인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바위에 손가락 굵기 정도의 작은 공기구멍 몇 개만 뚫어 놓았었다.
 아론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섬의 대부분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던 무인도였지만 나름대로 풍경이 아름다웠었다.
 그런데 지금은 심한 공격을 받았는지 바위가 깨어지고 무너져 내려 있어서 엉망이었다.
 몇 명의 마법사들이 파이어 볼을 생성하여 무인도를 향해 던지는 연습을 한 것인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으음···누가 이런 짓을 하였지? 그건 그렇고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론은 임모탈 대법을 펼쳐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깨어났기에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몰랐다.
 20년 정도 지났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면 좀 더 긴 50년 일 수도 있었다.
 맑은 호수를 바라보던 아론이 느닷없이 양팔을 앞으로 내뻗었다가 천천히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하더니 가슴 위로 들어 올렸다.
 츠츠츠츠.
 황당하게 무인도에서 체조를 하는 거 같았는데 놀랍게도 지름이 2백 미터에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호수의 물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마치 초능력자가 염력을 펼친 거 같은 모습이었다.
 촤아악!
 공중에 두둥실 떠 있던 물이 비처럼 호수로 떨어지는데 물속에 헤엄치고 있던 물고기만 남았다.
 500여 마리의 물고기를 한 번에 사로잡았다.
 “으하하하···혹시나 하는 생각에 펼쳐 보았는데 정말 이런 게 가능하구나.”
 아론의 심장을 휘돌던 서클 8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서클 8개가 의지로 휘돌아야 마법을 펼칠 수 있는데 서클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서 마법을 펼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염력을 펼치는 건 가능하기에 다행이었다.
 지금은 서클이 움직이지 않아서 마법을 펼치지 못하지만 조금 시일이 지나면 다시 마법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물고기 한 마리를 손짓만으로 움직여 가디언 오크에게 주었다.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잡은 가디언 오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맛있게 뜯어 먹었다.
 아론은 피식거리더니 허리에 차고 있는 단검을 뽑아 그것으로 물고기의 비늘과 내장을 제거했다.
 잘 손질된 물고기를 팬에 넣고 소금을 살짝 뿌려서 구워 먹었다.
 아론은 나뭇가지처럼 빼빼 말랐지만 매일 스트레칭을 하여 굳어진 몸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운동하면서 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다보니 조금씩 몸에 살이 붙고 있었다.
 
 우우웅.
 공명음이 일어나면서 석실의 공간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진동파에 먼지가 튕겨졌지만 주변에 있는 물건에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다.
 츠츠츠.
 나체로 가부좌를 틀고 있던 아론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두 달 동안 나인 군도의 무인도에 머물면서 잘 먹고 체력을 회복하면서 수련한 결과 8개의 서클 중에 5개를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다.
 그런데 오늘도 어김없이 마나심법을 운용하여 수련하던 중에 몸에 각질이 떨어져 내리는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임모탈 대법에 들어가기 전에 아론은 130살이 넘었었다.
 8서클 초급의 전투마법사였기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노화가 느리게 진행되어 70대 노인처럼 보였었다.
 임모탈 대법에서 깨어나자 미라처럼 변해 있었다.
 늙고 나뭇가지처럼 말랐지만 활력으로 충만했었다.
 그런데 오늘 몸에 변화가 일어나자 흥분되었다.
 깨달음을 얻어 6서클과 7서클, 8서클에 각각 오를 때에도 바디 체인지를 겪었던 아론은 이번에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땀구멍으로 불순물이 배출되고 뼈대가 바뀌고 있었다.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변비 환자가 쾌변을 한 거 같은 그런 상쾌함도 같이 느껴졌다.
 이것뿐만 아니라 전혀 움직이지 않던 8개의 서클 중에 2개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새로운 서클이 형성되려고 하고 있었다.
 아론은 8서클 초급의 전투마법사였지만 그동안 다크 헤임을 연구하느라 제대로 마법 수련이나 명상을 하지 못하였다.
 사실상 8서클 초급에서 멈춘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9서클에 오르려고 하였기에 흥분되었다.
 ‘정말 내가 9서클에 오르는 건가?’
 바디 체인지를 겪게 되면 보통 30년 정도 젊어진다.
 70대 노인의 모습이라면 40대의 중년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론의 지금 경우에는 그것을 뛰어 넘어 백 살이 넘는 노인이 다시 20대 초반의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이가 다 빠지고 새로 나고 있었다.
 또한 늙은 피부도 각질이 되어 떨어져 나가더니 부드럽고 탄력적인 새 피부가 돋아났다.
 지난 세 번의 바디 체인지를 겪었지만 이런 놀라운 몸의 변화는 처음 겪는 것이었기에 흥분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파파팟!
 심장을 휘도는 2개의 서클뿐만 아니라 새로운 서클도 선명하게 생성되더니 함께 빛이 일어났다가 순간 사라졌다.
 “으하하하···내가 9서클에 올랐구나.”
 세상을 다 가진 거 같은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몸이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변하였고, 거기에다가 서클도 형성되어 그토록 고대하던 9서클에 올랐다.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명상에 들었다.
 임모탈 대법을 펼치기 전에 외워두었던 다크 헤임의 마법들이 머릿속에 한꺼번에 떠올랐다.
 임모탈 대법과 각 마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마치 퍼즐처럼 그동안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주문과 마법공식들이 다 이해가 되었다.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단한 바디 체인지를 겪게 되면서 뇌세포도 활성화가 되어 머리가 좋아진 거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되는 그런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아론이 뇌세포가 엄청나게 활성화 된 지금 머릿속이 전기 모터처럼 핑핑 너무 잘 돌아갔다.
 이렇게 뇌세포가 엄청나게 활성화가 유지되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을 거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그동안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들을 전부 떠올려 보았다.
 가장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임모탈 대법에 관한 주문과 마법공식을 살펴보니 검증되지 않은 불확실한 곳이 여러 개였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결과를 보여 아론은 임모탈 대법의 90% 정도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임모탈 대법이 완전했다면 죽지 않는 불사신을 넘어 초급의 신이 되었을 것이었다.
 그만큼 임모탈 대법은 대단했지만 아직은 약간 불완전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다시 젊어졌어.”
 다크 헤임의 공격 마법을 펼칠 수 있을 거 같았지만 제대로 몸으로 익힌 것이 아니라 이해만 한 상태였다.
 석실에서 자칫 시전을 해보기엔 너무 위력적인 마법이었다.
 적당한 장소에서 다음 기회에 펼쳐 보기로 마음먹었다.
 뇌세포가 엄청나게 활성화 된 것이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머리가 좋아졌다는 걸 느꼈다.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이 석실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어졌기에 이곳을 정리하고 나갈 생각이었다.
 
 스스슷!
 바위를 투과하여 밖으로 나온 아론은 갈색 여행자용 로브를 입고 있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여행자의 복장이지만 금발에 잘생긴 미남자라는 게 여자들의 관심을 끌 거 같았다.
 호반까지는 약 2백 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파악!
 바닥을 박차고 도약한 아론이 공중에 긴 포물선을 그리면서 가로질러 호반에 내려섰다.
 고개를 돌려 나인 군도의 무인도 즉, 비밀의 던전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내륙으로 들어갔다.
 아론이 기억하기로는 내륙으로 약 5백 미터 들어가면 구릉지가 펼쳐져 있고, 거기에 약 2백여 가구가 살고 있는 발머 마을이 있었다.
 발머 마을의 사람들은 밭을 일구기고 하지만 바루지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아간다.
 바루지아 호수는 바다처럼 거대하고 물고기가 풍부하여 풍요로운 곳이기에 발머 마을 사람들은 축복받은 땅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잘 말린 물고기는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상인에게 팔아 돈을 마련하여 생활하기도 한다.
 국경 도시 말란은 발머 마을에서 약 10킬로미터 정도 더 내륙으로 들어가야 나온다.
 어쨌든 구릉지에 도착한 아론이 전방을 바라보고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예전에는 발머 마을이 이렇게 크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커지다니 놀랍군?”
 아론이 기억하고 있는 예전의 발머 마을보다 약 20배 정도로 큰 마을로 변해 있었다.
 목책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사방에 감시탑도 세워져 있었다.
 이정도 크기라면 국경 도시 말란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였다.
 아론이 목책으로 다가가면서 후드를 벗었다.
 목책 위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자경대원 폴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행자요?”
 “그렇소.”
 “바루지아 호수를 구경하고 오는 거요?”
 아론이 고개를 끄덕이자 자경대원이 동료에게 손짓했다.
 목책이 열리자 아론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후드를 썼다.
 무리를 이루었다면 폴이 조사를 하였겠지만 여행자 혼자였고, 미남자에 고생하지 않은 깨끗하고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에 귀족이나 준 귀족의 자제 같아 보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별다른 검문 없이 안으로 들여보내었다.
 아론이 걸어가고 있는 길의 좌, 우로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용병으로 보이는 자들이 길을 걸어가다가 힐끔거리며 지나쳤다.
 상점들 중에 보석상점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발머 보석상점?”
 그곳으로 걸어간 아론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배가 툭 나온 중년의 남자가 하던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고개를 들어 후드를 벗고 있는 아론을 쳐다보았다.
 진열장의 먼지를 닦던 호리한 남자가 아론에게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골드바를 골드화로 바꾸고 싶어서 왔소.”
 아론이 바지의 주머니 속에서 손바닥 만 한 검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었다.
 이 가죽 주머니는 공간 확장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주머니였다.
 마법주머니 속에서 1킬로그램의 골드바를 3개나 꺼내어 올려놓았다.
 호리한 남자가 눈을 번뜩이더니 골드바를 집어 들어 마법저울에 올려놓았다.
 마법저울은 무게뿐만 아니라 물건을 올려놓으면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구별이 가능한 마법물품이었다.
 이런 마법저울은 도시에 있는 보석상점에나 있는 것이었는데 발머 마을에도 있는 게 신기했다.
 세월이 흘러 발머 마을이 커졌다고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 없는 골드바로군요. 손님, 6백 골드를 어떻게 드릴까요?”
 예전에는 골드바 한 개에 백 골드였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골드바의 가치가 두 배였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가치가 두 배나 올라 살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6백 골드 중에 550골드는 1골드짜리 골드로 나머지 50골드는 실버로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호리한 남자가 진열장 위에 돈주머니 7개를 올리더니 아론에게 내밀었다.
 아론이 확인해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맞소.”
 돈주머니의 입구를 다시 묶은 아론이 마법주머니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여행자의 집을 발견한 아론이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데 이상하게 생긴 것을 타고 소년이 휙 지나갔다.
 ‘저건 뭐지?’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에 호기심을 느낀 아론이 따라가 보니 똑같은 게 상점 앞에 30여 개나 진열되어 있는 걸 보았다.
 상점으로 다가간 아론이 자세히 살펴보니 조금씩 달랐지만 기능은 거의 같아 보였다.
 상점의 문을 열고 주인이 나오더니 아론에게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으음, 이런 물건은 처음 보는데 뭐라고 하는 거요?”
 “이건 자전거라는 겁니다.”
 “자전거?”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팔기 시작한지는 일 년이 안 됩니다만 인기가 좋습니다.”
 주인의 설명으로는 자전거라는 것은 사람이 타고 앉아 두 다리의 힘으로 바퀴를 돌려서 가게 되는 탈 것이라 했다.
 안장에 올라앉아 두 손으로 핸들이라는 것을 잡고 두 발로 페달을 교대로 밟아 체인으로 바퀴를 돌리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주인이 직접 자전거에 타서 시범을 보여 주었기에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자전거는 크게 3가지로 나누는데 세 개짜리 바퀴는 크기가 작아서 어린아이들이 타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개짜리 바퀴는 어른들이 타는 것인데 짐을 실을 수 있는 자전거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자전거는 운동도 되고 가까운 곳까지 물건을 실어 나르기에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이었다.
 “이 자전거는 얼마나 합니까?”
 “한대에 10골드입니다.”
 보통의 말이 30골드였기에 그것과 비교하면 제법 비싼 물건이었다.
 하지만 아론은 호기심에 20골드를 주고 2대의 자전거를 구입했다.
 주인의 말로는 중심을 잡고 타야하는 것이기에 잠시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쪽에 연습용 자전거가 있었기에 그걸 아론이 타고 점원이 뒤에서 잡으면서 도와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거라서 그런지 자꾸만 넘어지려고 했다.
 그때마다 점원이 잘 잡아 주었기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약 한 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니 혼자서도 탈 수 있게 되었다.
 보통의 사람보다 조금 빨리 배운 거라고 점원이 칭찬의 말을 했다.
 아론은 자전거를 타보니 제법 재미가 있었다.
 “이런 물건이 있다니 정말 놀라워.”
 마법주머니에 구입한 2대의 자전거를 넣고 여행자의 집으로 향하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론은 자신이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세상이 많이 변하였다는 걸 몰랐다.
 
 
 chapter 03 달라진 세상
 
 
 여행자의 집 프랭크.
 십여 곳의 여행자의 집이 밀집되어 있었는데 그중에 건물의 외관이 흰색이라 마음에 들어 들어왔다.
 20여 개의 테이블이 있고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대부분의 옷차림이 용병으로 보였으며, 일을 마치고 맥주 한잔을 하려고 온 평민들도 있었다.
 후드를 쓴 아론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가 곧 흥미를 잃고 고개를 돌렸다.
 은색의 주석맥주잔을 닦고 있던 배 나온 주인이 다가오는 아론을 쳐다보았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 이곳에서 묵을 생각인데 룸이 있소?”
 “예, 있습니다. 2등급 룸과 1등급 룸, 특급 룸이 있는데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특급 룸으로 주시오.”
 “알겠습니다. 특급 룸은 스테이크 식사에 맥주가 아침과 저녁에 기본적으로 제공되고 세면장도 붙어 있습니다. 하루에 일 골드입니다.”
 “그럼 3일로 하고 저녁 식사 때 마다 고급 와인도 한통씩 같이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전부 3골드6실버입니다.”
 머리를 끄덕이면서 아론이 4골드를 내밀었다.
 주인이 4골드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잔돈을 주면서 말했다.
 “아더, 이 손님을 특급 룸으로 모셔라. 저녁식사는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아더라는 소년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복도 끝에 있는 문을 열었다.
 “손님, 이곳이 특급 룸입니다. 저녁식사는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앞으로 3일 동안 머물 것이니 그렇게 알아라.”
 “예, 손님.”
 아론이 일 실버를 아더에게 내밀었다.
 보통 1코인이나 2코인 정도를 팁으로 주는데 아론은 백 코인이나 되는 일 실버를 주었기에 머리를 팍 숙여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잘 모시겠습니다. 언제든 제가 필요하시면 침대 옆에 매달려 있는 줄을 당겨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다.”
 아더가 물러가자 아론이 특급 룸을 살펴보고는 마음에 들었다.
 도시의 어느 여행자의 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깨끗한 수준이었다.
 문을 열어보니 세면장이 있었다.
 주인의 설명으로는 세면장이 특급 룸에 붙어 있다고 하더니 혼자서 씻기 편하게 보였다.
 세면장의 벽에는 거울이 붙어 있고, 물을 받을 수 있는 세면대에는 처음 보는 특이한 것이 놓여 져 있었다.
 향긋한 꽃냄새가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손으로 집어 들어 살펴보았다.
 “흐음···꽃냄새가 나는 게 좋은데? 이게 뭐지?”
 머리를 갸웃거린 아론은 그걸 다시 내려놓고는 침대로 걸어와 앉았다.
 똑똑!
 노크소리가 나면서 아더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 저 아더입니다.”
 “들어와라.”
 문을 열고 아더가 들어왔는데 그의 손에는 저녁식사가 들려 있었다.
 침대 옆의 작은 테이블에 저녁식사를 내려놓았다.
 김이 모락 나는 스테이크와 샐러드, 과일과 와인 통이 있었다.
 “아더, 세면장에 꽃냄새가 나는데 그게 뭐냐?”
 “손님, 그걸 모르십니까?”
 “처음 보는 것이더구나.”
 “그건 얼굴이나 손을 씻을 때 사용하는 비누라는 겁니다.”
 “비누?”
 “예, 그냥 물에 손을 씻으면 깨끗해지지 않는데 비누를 쓰면 묻은 것이 깨끗하게 씻어 집니다.”
 “호오? 그런 물건이 있었다니 놀랍구나. 어디 시범을 한번 보여주겠느냐?”
 “어려울 게 없으니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론이 아더를 따라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아더는 세면대에 물을 받아 손에 비누를 비벼 거품을 내더니 손을 씻었다.
 아더는 벽에 걸려 있는 수건에 물기를 닦았다.
 “손님, 이 비누는 얼굴이나 손을 씻을 때만 사용하는 것이니 절대 먹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눈에 거품이 들어가면 따가우니 조심하세요. 설사 눈에 거품이 들어가더라도 물로 잘 씻으면 괜찮습니다.”
 “비누의 사용법이 어렵지는 않구나.”
 아론은 세면대에 물을 받아 비누로 손을 씻어 보았다.
 금방 손이 깨끗해지고 꽃냄새가 나서 비누가 마음에 들었다.
 생각했던 거 보다 사소한 것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아론이 나오자 아더가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아더야, 올해가 대륙력으로 몇 년도냐?”
 “예? 1826년 5월 22일 이잖아요.”
 “뭐라고? 1826년?”
 “예, 왜 그러세요?”
 “아··아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그랬다. 그만 나가봐라.”
 “예, 그럼 식사를 하시고 문밖에 그릇을 꺼내 놓으면 치우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아더가 밖으로 나가 문을 닫자 아론이 심각해진 얼굴로 테이블에 앉았다.
 “으음···생각했던 거 보다 어쩌면 세월이 많이 흘렀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였어.”
 아론은 제자들에게 기습공격을 받았을 때가 대륙력으로 1704년 3월 19일이었다.
 아더의 말로는 지금이 대륙력으로 1826년 5월 22일이라고 했으니 무려 122년이나 시간이 흘렀다.
 임모탈 대법을 펼쳐 깊은 잠에 빠졌었기에 20년에서 길게는 50년 정도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
 무려 122년 동안이나 잠들어 있었다.
 허탈함까지 느껴졌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배신한 제자들이 아직 살아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였다.
 다만 살아 있다면 170살 전후가 되었을 것이었다.
 평민이었다면 80살 이상 살기가 어려웠지만 마나를 사용하고 수련하는 마법사들은 보통사람보다는 훨씬 오래 살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5서클 이하의 마법사라면 120살 정도가 한계였다.
 깨달음을 얻어 6서클에 올라 바디체인지를 이루었다면 30년에서 50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었다.
 아론의 제자들은 전부 122년 전 자신을 배신했을 당시에 이미 깨달음을 얻어 최소 6서클 초급 전투마법사였었다.
 그렇기에 사고사가 아니라면 170살 전후의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도 있었다.
 만약 가짜 다크 헤임에 있는 흑마법을 하나라도 익혀 7서클에 올랐다면 2백 살 넘게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예전에 7서클의 백마법사가 3백 살 가까이 산 적이 있다는 기록을 아론이 읽은 기억이 있었다.
 설사 가짜 다크 헤임을 익혔지만 7서클에는 오르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 것들을 종합해보면 얼마든지 아론이 제자들을 찾아내어 죽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였다.
 “122년이나 흘렀으니 세상이 생각했던 거 보다는 많이 바뀐 거 같아. 발전한 세상에 대하여 좀 알아봐야겠어.”
 이제야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더욱 신기해 보이던 자전거라는 게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세면장의 비누와 골드바가 두 배나 오른 시세, 발머 마을이 이전보다 약 20배 정도로 큰 마을로 변해 있었던 거까지 전부 이해가 되었다.
 주우욱!
 아론은 주석 잔에 와인을 부어 향기를 맡아보고 마셔보았다.
 생각했던 거 보다 한 단계 위의 맛이 있는 고급 와인이었다.
 스테이크는 제법 맛있었기에 다 먹었다.
 빈 그릇을 문밖에 내려놓고 침대에 누운 아론은 내일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짹짹!
 산새 소리가 창밖에서 나자 침대에 누워 있던 아론이 눈을 뜨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벌써 아침인가?”
 모처럼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서인지 개운했다.
 창문을 열어보니 나뭇가지에 산새 두 마리가 앉아 지저귀고 있었다.
 푸드득!
 산새들이 깜짝 놀랐는지 공중으로 날아올라 사라졌다.
 창문을 닫고 세면장에 들어가 씻고 나왔더니 노크소리가 났다.
 문을 열었더니 아더가 아침식사를 가지고 왔다.
 테이블에 아침식사를 내려놓는 걸 바라보던 아론이 말했다.
 “아더야, 북 스토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북 스토어라면 제가 알아요.”
 아더는 아론에게 위치를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아론은 여행자의 집 프랭크를 나와 북 스토어로 향하였다.
 아직 이른 오전이었지만 북 스토어의 문은 열려 있었다.
 금발의 아름다운 여자가 책의 먼지를 털어 진열장에 정리하고 있었다.
 아론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세요.”
 “진열된 책이 생각보다 많군요?”
 “그렇죠? 어떤 책을 찾아요?”
 “역사서와 대륙 전도를 볼 수 있을 까요?”
 “물론이죠.”
 금발 미녀가 역사서 6권과 대륙 전도를 꺼내어 보여 주었다.
 아론은 대륙 전도부터 살펴보았다.
 역시나 122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플로리안 대륙의 가장 세력이 크고 땅이 넓었던 르완 제국은 벨렘 왕국이라는 곳과 2차례에 걸쳐 전쟁을 하면서 연패를 하여 땅의 절반 정도를 빼앗겨 버렸다.
 두 번의 전쟁 승리로 인하여 벨렘 왕국은 제국이 되었으며, 플로리안 대륙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왕국들은 큰 변화는 없었는데 르완 제국과 벨렘 제국 사이에 신생 3국이 건국되었다.
 30년 전 르완 제국의 황태자가 2차 제국 전쟁의 패배를 책임지고 권력에서 밀려나 분리 독립한 샤린 공국과 55년 전 벨렘 제국의 2황자가 황제의 윤허를 얻어 역시 분리 독립한 그라드 공국이었다.
 그리고 30년 전 2차 제국 전쟁의 혼란한 시기에 기회를 엿보다가 신속하게 개국한 바리제르 왕국이 신생 3국이었다.
 바리제르 왕국은 샤린 공국과 그라드 공국보다는 두 배나 컸지만 지리적인 영향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르완 제국과 벨렘 제국은 국경을 직접 마주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바리제르 왕국이 중간에 존재하면서 완충적인 역할을 하는 게 서로 마음이 편하였다.
 ‘흐음···벨렘 왕국이 제국이 될 정도로 호전적인 왕국이었나?’
 122년 전 제자들에게 기습공격을 받기 전에 아론은 전투마법사로 맹활약을 하던 시기이기에 대륙의 정세에 관하여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벨렘 왕국은 호전적이지 않고 안정을 생각하는 중도파가 권력을 잡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벨렘 왕국이 어느새 초강대국이었던 르완 제국과 전쟁을 하면서 두 번이나 승리하면서 제국이 되었다.
 아론이 생각하기에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벨렘 제국의 전도도 있습니까?”
 “예, 그럼요.”
 금발 미녀가 벨렘 제국 전도를 꺼내어 보여 주었다.
 벨렘 제국은 옛 왕국 시절의 땅과 비교하면 무려 약 3배 정도 더 넓어졌다.
 그렇기에 왕국이 벨렘 제국이 될 수 있었다.
 “대륙전도와 벨렘 제국 전도를 사겠습니다. 그리고 역사서도 좀 살펴봐도 되지요?”
 “예, 그렇게 하세요.”
 아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갔다.
 대륙력으로 1704년 이후에서 지금의 1826년인 122년간의 역사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40년간은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1744년이 되면서 역사적으로 큰 인물이 태어난 해였다.
 지금의 벨렘 제국 황제인 이안 폰 알렉산더 왕자가 1744년에 태어난 것이었다.
 1759년 알렉산더 왕자가 15살이 되면서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알렉산더 왕자는 이전까지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획기적인 것을 개발하여 왕실이 운영하는 벨렘상단에서 판매를 하도록 하였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소금은 암염광산에서 채광하여 상단에서 판매를 하는 게 상식이었다.
 그런 소금을 알렉산더 왕자가 플로리안 만이라는 바다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 대량으로 소금을 생산하였다.
 처음에는 하루의 생산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대대적으로 염전을 만들어 막대한 소금을 생산하였다.
 소금으로 인하여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군비에 투입하여 국왕과 왕실은 대규모 병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획기적인 개발뿐만 아니라 몇 가지 더 있었다.
 어쨌든 알렉산더 왕자의 이런 개발능력으로 인하여 왕실은 큰돈을 벌었고 그걸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실상 알렉산더 왕자가 정치적인 실세가 되어 왕과 함께 국정을 운영하였다.
 “흐음, 알렉산더 왕자에게 이런 개발능력이 있었다니 놀랍구나.”
 턱을 만지작거리던 아론은 계속 역사서를 읽었다.
 1770년이 되자 왕이 죽고, 알렉산더 왕자가 왕으로 등극하였다.
 이 시기에는 사실상 알렉산더 왕자가 귀족들을 압도하는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귀족들은 다른 왕자를 국왕으로 추대하고 싶었지만 그건 생각에 그쳤다.
 알렉산더 왕자가 왕으로 등극하는데 반대할 명분이 없고 다른 왕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르완 제국은 알렉산더 왕이 등극하자 불안해졌다.
 알렉산더 왕은 탁월한 정치와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인하여 하루가 다르게 벨렘 왕국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외교적인 충돌이 일어나 9년 전쟁이 발발하였다.
 후일 제1차 제국전쟁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이때 까지만 하더라도 벨렘 왕국은 제국이 아니었다.
 르완 제국에 일방적으로 당할 줄 알았던 벨렘 왕국이 각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르완 제국군이 밀렸다.
 알렉산더 왕이 개발한 신무기 화승총 때문이었다.
 1780년이 되면서 르완 제국이 결국 항복하였다.
 9년 전쟁으로 인하여 결국 벨렘 왕국이 승리하여 당당하게 제국이 되었다.
 르완 제국은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벨렘 왕국에 지불하고 넓은 땅까지 빼앗겼다.
 벨렘 왕국이 제국이 되면서 이안 폰 알렉산더 왕이 황제로 추대되어 등극하였다.
 알렉산더 황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제국의 모든 길을 넓히고 새로 길을 닦는 대공사를 시행하였다.
 엄청난 국가의 대공사였지만 제국 민들은 환호했다.
 그냥 일방적으로 강제노역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을 주면서 공사에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대규모 공사였지만 알렉산더 황제에게는 넘칠 정도로 많은 돈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문제없었다.
 수년간에 걸쳐 넓은 길이 하나둘씩 완성되자 마차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건 각 상단의 발전을 가져왔다.
 어쨌든 이런 것들로 인하여 벨렘 제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정말 능력이 대단한 황제구나. 놀라워.”
 역사서를 읽던 아론은 진정 알렉산더 황제의 능력에 감탄했다.
 벨렘 제국 민들의 충성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흘러 1796년이 되자 르완 제국과 또 외교적으로 충돌이 일어나 결국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제2차 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황제와 제국 민들은 르완 제국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예상한대로 1799년이 되자 르완 제국이 항복했다.
 3년 전쟁이 끝이 났으며, 벨렘 제국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이런 제2차 제국전쟁이 30년 전에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또 전쟁이 일어날 거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역사서를 다 읽은 아론이 머리를 끄덕였다.
 현 알렉산더 황제는 82살의 고령인데 50대의 중년인처럼 젊게 보였다.
 약 15년 전부터 윌리엄 황태자가 국정회의에 참석하여 정치를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황자들도 중책을 맡아 윌리엄 황태자와 알렉산더 황제를 측면에서 지원해오고 있었다.
 어쨌든 플로리안 대륙에서 가장 초강대국은 벨렘 제국이었다.
 벨렘 제국의 역사서 한권으로 아론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론은 북 스토어에서 122년 전인 1704년 이후에 출판된 책을 전부 살펴보고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되는 책은 다 구입했다.
 무려 45권이나 되었기에 제법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래도 아끼지 않고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였다.
 “이렇게 책을 한꺼번에 많이 구입하시는 분은 처음이세요.”
 “그렇습니까?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
 “예, 이것들만 구입하면 될 거 같습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발머 마을은 처음 와보는 곳이라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여긴 어떤 특산품이 좋습니까?”
 “카세리아 말린 것을 구입하세요. 그게 맛도 좋고, 살이 부드러워서 어떤 요리를 해먹어도 맛있어요.”
 카세리아라는 물고기는 길이가 일 미터가 넘고 살이 부드러워서 요리를 하거나 구워 먹어도 맛있었다.
 예전에 아론도 카세리아를 여러 번 먹어 보았기에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 카세리아가 여기 특산품이었습니까?”
 “그래요. 먹어는 보셨죠?”
 “그럼요. 가끔 먹었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아론은 굳이 금발 미녀에게 이런 특산품을 물어 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많은 책을 구입하고 낯선 사람이기에 자칫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럼 정보길드에서 아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옛 제자들을 찾아내어 복수를 하여야 하는데 시작도 해보기 전에 추적을 받으면 정신적으로 피곤해질 수도 있었다.
 아직 세상에 관하여 모르는 게 많았기에 아론은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걸 원치 않았다.
 앞으로 활동하는 것에도 막대한 지장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로 보이도록 특산품 운운한 것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조금이라도 의심을 덜 받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여행자로 보이도록 하였지만 어쩌면 어디에선가 정보길드의 길드 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머리를 옆으로 흔들고는 북 스토어를 나온 아론은 용병길드로 향하였다.
 용병길드에는 볼일이 없었지만 정보길드는 보통 용병길드에서 운영하기에 건물 내부에 있었다.
 그렇기에 용병길드로 가는 것이었다.
 
 발머 마을의 용병길드.
 2층짜리 통나무 건물이었지만 제법 크고 넓었다.
 용병길드 건물 앞에는 용병들이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갈색 여행자용 로브를 입고 후드를 쓴 아론이 다가오자 눈을 번뜩이며 쳐다보았다.
 아론은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지나쳤다.
 용병들은 아론이 용병길드에 볼일이 있어서 찾아온 손님이라 판단했는지 시선을 거두었다.
 용병길드의 문을 열고 아론이 안으로 들어갔다.
 서류를 뒤적이던 여자가 고개를 들어 아론에게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정보가 필요해서 왔습니다.”
 “그건 2층으로 가야 하니 옆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시면 되요.”
 머리를 끄덕인 아론은 계단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건장한 근육질의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아론을 힐끔거리고는 문을 열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오른뺨에 칼자국이 있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론이 후드를 벗으면서 맞은편에 앉았다.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사람을 좀 찾으려고 합니다. 이름은 반스 데 허스트, 전투마법사이니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남자는 책상 밑에서 검은 가죽으로 된 책 한권을 꺼내더니 왼손으로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츠츠츠.
 책에서 기이한 빛이 일어나더니 순간 사라졌다.
 남자가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원하시는 분의 정보를 찾았습니다. 20골드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좋소. 알려주시오.”
 책상에 아론이 20골드를 올려놓았다.
 남자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왼손은 그대로 책을 잡고 있었고, 책상에 오른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는 깃털이 달린 은으로 된 펜을 꺼내었다.
 ‘마법 펜?’
 아론의 예상대로 그건 단순한 펜이 아니라 마법이 걸린 마법 펜이었다.
 깃털 펜이 종이에 순식간에 글을 썼다.
 아론이 원하는 정보를 종이에 옮겨 적는 것이었다.
 남자가 내민 종이를 아론이 받아 읽어보았다.
 [반스 데 허스트, 대륙력 1652년 6월생으로 옛 벨렘 왕국의 남부 유닉스 백작령의 제니 마을에서 7살까지 살다가 전투마법사 유진 폰 아론의 제자가 됨. 마법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스승인 아론에게 집중적인 수련을 받고 전투마법사가 되었음. 그리고 허스트는····]
 허스트에 관하여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1704년 3월에 갑자기 은둔함. 추정하기로는 마법을 익히기 위하여 모든 활동을 접고 은둔한 것으로 판단됨. 그 이후 일체 활동을 하지 않고 나타났다는 정보도 없음. 1752년으로 백 살이 되었으니 수명이 다하여 죽었을 것으로 판단됨.]
 ‘으음···날 기습공격하고는 은둔했었군? 그 이후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아론을 기습공격하고 비록 가짜이지만 다크 헤임을 입수하여 마법을 익혔을 텐데 그 이후 일체 활동이 없었다고 하니 이상했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마법을 익히고 다시 등장해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면 신분을 바꾸어 활동하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턱을 만지면서 잠시 생각하던 아론이 말했다.
 “그럼 전투마법사 조니 데 아베크에 관하여 알려주시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남자는 같은 방법으로 아베크에 관한 정보를 찾았고, 마법 펜이 종이에 옮겨 적었다.
 역시 이번에도 아론이 20골드를 주고 정보를 읽어보았다.
 둘째 제자 아베크도 역시나 허스트처럼 1704년 3월에 은둔하였다고 나왔다.
 이렇다면 나머지 제자들도 같은 상황일 것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지금은 신분을 바꾸고 활동하고 있을 거야. 찾아내기 쉽지 않겠어.’
 “더 필요하신 정보가 있으십니까?”
 “이젠 없소.”
 자리에서 일어난 아론이 밖으로 나갔다.
 남자는 눈을 번뜩이고는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었다.
 츠츠츠.
 수정구에 마력을 불어넣었더니 낯선 남자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피터, 무슨 일로 날 찾았느냐?
 “오웬님, 긴급하게 보고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마법통신을 하였습니다.”
 -긴급 보고? 뭔지 말해봐.
 “조금 전에 정보길드를 찾은 사람이 예전에 말씀하셨던 전투마법사 반스 데 허스트와 조니 데 아베크에 관하여 정보를 사갔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으음···너는 당장 길드 원들을 풀어서 그자에 관하여 조사해라. 사소한 거 하나라도 놓치지 마라.
 “예? 아··알겠습니다.”
 오웬의 모습이 수정구에서 사라지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품속에 수정구를 넣고는 말했다.
 “레슬리, 밖에 있느냐?”
 “예, 길드장님.”
 문을 열고 건장한 근육질의 남자가 들어왔다.
 “방금 나간 그자를 감시해 보고해라. 길드원 열 명을 데려가도록.”
 “예? 열 명이나 말입니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레슬리가 대답하고는 문을 닫고 사라지자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마틴, 있느냐?”
 스스슷!
 벽에서 남자 하나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대답했다.
 “예, 찾으셨습니까?”
 “레슬리와 열 명의 길드원만으로는 어쩐지 불안하다는 느낌이 든다. 너도 방금 나간 그자를 멀리에서 감시해 보고해라.”
 “예, 알겠습니다.”
 마틴은 다시 벽속으로 스며들면서 사라졌다.
 피터 길드 장은 턱을 만지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갈색 여행자용 로브를 입은 아론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저벅저벅.
 아론은 용병길드의 건물에서 나와 여행자의 집 프랭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 있는 발머 마법 상점의 간판을 보고는 방향을 바꾸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백색의 로브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진열장을 닦다가 아론에게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진열된 마법물품을 살펴봐도 되지요?”
 “예, 그럼요. 헌데 찾으시는 게 있으십니까?”
 “여행을 다니다보니 간편하면서도 효과적인 무구가 필요해서 말입니다.”
 “그러시다면 공격마법이 새겨져 있는 무구가 좋습니다. 이쪽 진열장에 있으니 한번 살펴보십시오.”
 아론은 주인인 라이언이 안내하는 진열장으로 움직이다가 벽에 걸려 있는 방패와 십여 가지의 각종 칼과 창을 보았다.
 하지만 칼과 창에는 3서클 정도의 마법사가 만들 수 있는 것으로 강화마법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방패에는 실드마법이 하나 새겨져 있는 하급의 마법물품이었다.
 이번에는 진열장을 살펴보니 지팡이부터 반지와 팔찌, 목걸이, 귀걸이, 브로치 등 각종 장신구 등이 있었다.
 하지만 화려하기만 할 뿐 겨우 일 서클의 마법이 두 가지 새겨져 있었다.
 ‘매직 미사일과 실드마법이 새겨져 있지만 역시 일 서클 마법이야.’
 그나마 벽에 걸려 있는 칼이나 방패보다는 공격과 방어 마법이 새겨져 있어서 약간 수준이 높다는 거였다.
 뭔가 이상해서 아론은 진열되어 있는 각종 물건들을 살펴보니 역시나 모든 물품이 3서클 정도의 마법사가 만든 것이었다.
 “으음, 물건들이 전부 3서클 마법사가 만든 거 같은데 더 고급은 없습니까?”
 “역시 물건을 보실 줄 아시는군요. 비싼 만큼 효과를 보실 수 있는 것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라이언이 진열장 밑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더니 물건을 보여주었다.
 크기가 작은 장신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진열된 것과 다른 것은 5서클 급의 마법사가 만든 물품으로 2서클이나 3서클의 마법이 두 가지에서 세 가지 정도 새겨져 있었다.
 “어떻습니까? 이쪽은 2서클이고, 이것들은 3서클 마법이 새겨져 있는 귀한 물건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얼마나 합니까?”
 “2서클은 50골드, 3서클은 백 골드입니다.”
 122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당시에는 2서클은 5골드, 3서클은 10골드 정도에 거래가 되었다.
 눈치를 보니 라이언이 속이는 거 같지는 않았다.
 “이것들 보다 더 고급은 없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손님, 이것들이 가장 고급입니다.”
 아론이 품속에서 금반지를 하나 꺼내었다.
 “이런 건 없습니까?”
 “허엇, 이런 귀한 물건을 가지고 계시다니 놀랍습니다. 어디에서 구하신 겁니까?”
 “집안의 물건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이런 귀한 물건은 20년 동안 처음입니다.”
 ‘으음··역시 뭔가 있어.’
 아론이 내민 반지에는 여러 가지 마법이 걸려 있었다.
 외상을 입었을 때 치료할 수 있는 힐 치료마법과 위기에 처하였을 때 백 미터 이내를 순간이동으로 피할 수 있는 블링크 마법, 마차 한 대 정도는 한 방에 박살 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진 파이어 볼, 다수의 적을 동시에 공격하기 좋은 열 발의 매직 미사일, 적의 공격을 막아 낼 더블 실드 마법까지 새겨져 있었다.
 아론이 예전 6서클의 전투마법사 일 때 영지 전에 참전하여 가끔 사용하는 아티팩트로 자신이 직접 만들었던 것이었다.
 “이 금반지 아티팩트는 얼마나 하겠습니까?”
 “이런 귀한 물건은 경매를 통해야 하는데 2천 골드 이상은 될 것입니다. 워낙 귀한 물건이라서 대도시나 수도에 가야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렇군요. 할아버지께서 옛날에는 이런 고급 아티팩트가 많았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제1차 제국전쟁과 제2차 제국전쟁에 마법사들이 대거 참전하여 죽는 바람에 5서클 이상의 마법사를 보기 어려워졌다고 하더군요.”
 “5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사들이 많이 죽었다면 5서클 이하의 마법사는 어떻습니까?”
 “그런 거 상관없이 제국전쟁에 참전한 마법사들은 대부분 죽었다고 하더군요. 대륙에 남아 있던 마법사들이 97% 정도 죽었다니 그만큼 전투가 치열했던 모양입니다.”
 “예? 대륙의 마법사 97%가 말입니까?”
 “예, 처음에는 벨렘 제국이 왕국이던 시절에 왕실에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서 전투마법사들을 모집해 전투에 참전했었다고 하더군요. 사실 마법사들은 마법연구에 들어가는 자금이 많아서 나중에는 백마법사와 흑마법사들까지 참전했다고 합니다.”
 “그럼 제1차 제국전쟁에서 많은 마법사들이 죽었군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9년 전쟁의 초기에는 르완 제국의 진군으로 벨렘 왕국이 위기에 몰렸는데 대규모의 마법사들이 활약하면서 힘겹게 버티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아론도 머리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초강대국 르완 제국의 대군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그런 상황이었다.
 ‘눈에 가시 같았을 테니 르완 제국에서 마법사들을 최우선 적으로 죽였을 거야.’
 “전쟁이 후반으로 갈수록 벨렘 왕국이 화승총이라는 신무기로 밀어 붙였다고 합니다.”
 “화승총?”
 “예, 알렉산더 왕자님께서 개발하신 신무기라 합니다. 어쨌든 그 신무기로 인하여 벨렘 왕국의 사기가 높아졌고, 반대로 르완 제국은 뒤로 밀렸는데 마법사들을 동원하여 전투에 투입했다 합니다. 그러니 양측에 모집된 마법사들이 대거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으음···그렇겠군요. 그럼 제2차 제국 전쟁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까?”
 “제1차 제국 전쟁 때 보다는 심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때에도 3년간 치열한 전투로 인하여 마법사들이 대거 죽은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러니 전투마법사와 백마법사, 흑마법사 할 거 없이 대거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아론에게 신나게 설명을 하면서도 금반지 아티팩트에 시선을 주었다.
 ‘이 금반지 아티팩트는 제자들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니 어쩌면 단서가 될 수도 있겠는데? 건드려볼까?’
 아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라이언이 말했다.
 “혹시 그걸 파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얼마나 주실 수 있습니까?”
 “2천5백 골드, 어떻습니까?”
 ‘흐흐···이런 귀한 물건은 국경 도시 말란에 가면 4천 골드는 무난하게 받을 수 있고, 경매를 통한다면 5천 골드 이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어.’
 이런 상황이니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2천5백 골드나 한다니 욕심이 나지만···.”
 “그럼 3천 골드를 드리겠습니다. 이건 제가 드릴 수 있는 최고 금액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아티팩트는 천 골드 정도에 거래가 되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오히려 귀해서 그런지 가치는 더 높아졌다.
 아론은 팔려고 마음먹었지만 약간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보여주다가 말했다.
 “으음, 좋습니다. 팔겠습니다.”
 “하하하···잘 하셨습니다.”
 라이언은 기분이 좋은지 웃으면서 허리에 차고 있는 공간 확장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주머니를 열었다.
 그 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더니 입구를 풀어 마법저울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그는 30개의 돈주머니를 아론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아론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금반지 아티팩트를 라이언에게 주면서 돈주머니를 다시 묶었다.
 바지의 주머니 속에서 손바닥 만 한 검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어 돈주머니를 집어넣었다.
 라이언은 보석함에 금반지 아티팩트를 넣다가 아론의 검은 가죽 주머니를 보고는 눈을 번뜩였다.
 “호오? 그것은 6서클 급의 마법사가 만든 고급의 마법주머니로군요.”
 “그렇습니다. 이것도 물려받은 겁니다.”
 “부럽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것은 5서클의 마법사가 만든 마법주머니로 짐마차 2대 분량의 물건을 넣을 수 있습니다. 그건 얼마나 넣을 수 있습니까?”
 “이건 짐마차 열 대 분량의 물건을 넣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역시 그렇군요. 6서클 급의 마법사가 만든 마법주머니는 제가 5년 전에 국경 도시 말란에서 보고 처음입니다.”
 머리를 끄덕인 아론은 마법주머니에 돈주머니를 다 집어넣고 말했다.
 “저기 진열장에 있는 마법지팡이 두 개를 주십시오.”
 3서클 마법사가 만든 마법지팡이로 매직 미사일과 실드마법이 새겨져 있으며, 백 골드짜리였다.
 아론은 굳이 하급의 마법지팡이는 필요가 없었지만 그냥 나가기보다는 적당한 것으로 구입하여 나가는 게 보기에 좋을 거 같아서였다.
 그리고 아론이 조금만 손을 보면 훨씬 쓸모가 있는 마법지팡이로 변할 것이었다.
 라이언이 진열장 위에 마법지팡이 두 개를 올려놓자 그걸 집어 들면서 돈주머니 두 개를 내밀었다.
 그냥 아론이 나가도 되는데 이렇게 마법지팡이를 두 개 구입해준 마음을 잘 알고는 라이언도 기분이 좋았다.
 “마법지팡이를 두 개나 구입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입니다.”
 아론이 마법지팡이 두 개를 마법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덜컹!
 발머 마법 상점의 문을 열고 정보길드의 레슬리가 들어왔다.
 “레슬리, 여긴 무슨 일이야?”
 “라이언, 방금 나간 그자가 여기에서 뭘 구입했어?”
 “마법지팡이 두 개를 구입했어.”
 “매직 미사일과 실드마법이 새겨져 있는 거 말이지?”
 “그래. 그건 그렇고 손님에 관하여 왜 물어보는 거야?”
 “길드장님이 감시하라고 해서 말이야.”
 “뭐? 여행자를 왜?”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지. 다음에 같이 맥주 한잔 하자고.”
 “네가 사는 거지?”
 “물론이지. 그럼 나는 간다.”
 레슬리가 문을 열고 나가자 길드원 3명이 서 있었다.
 나머지 7명의 길드원들은 은밀히 아론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아론의 뒤를 미행하였다.
 스스슷.
 발머 마법 상점의 벽에 숨어서 지켜보던 마틴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진열장을 닦던 라이언이 고개를 들며 눈을 번뜩였다.
 “으음, 마틴까지 그를 왜 감시하는 걸까? 분명 뭔가 있어.”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더니 마력을 불어넣었다.
 츠츠츠츠.
 수정구에 검은 로브를 입고 후드를 눌러쓴 자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라이언, 무슨 일이냐?
 “호프만님, 보고 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마법통신을 한 것입니다.”
 -무슨 일인지 말해봐라.
 라이언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보고했다.
 -호오? 6서클 급의 금반지 아티팩트가 나타나다니 놀랍군. 그걸 한 번 보여 다오.
 “이것이 그 금반지 아티팩트입니다.”
 라이언이 어느새 보석함에서 꺼낸 금반지 아티팩트를 수정구 가까이 가져가 보여주었다.
 -허엇, 이··이건?
 “호프만님, 왜 그러십니까?”
 -라이언, 그 금반지 아티팩트를 팔았던 자가 노인이었느냐?
 “아닙니다. 20대 초반의 미남자였습니다.”
 -그래? 그게 누구 것이었는지 아느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게 누구 것인지 아시는 것입니까?”
 -물론이다. 금반지 아티팩트 안쪽에 보면 작지만 분명하게 표시가 되어 있으니 보거라.
 라이언이 금반지 아티팩트 안쪽을 살펴보니 정말 특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반달 안에 별이 하나 새겨져 있었지만 이게 누구의 문장인지는 알지 못하였다.
 -라이언, 그 금반지 아티팩트는 122년 전까지 맹활약 했었던 8서클 전투마법사 유진 폰 아론의 것이다.
 “예? 이게 말입니까?”
 -그렇다. 그는 특이하게도 반달 안에 별이 하나 새겨져 있는 문장을 사용했었다 한다.
 “으음, 이 물건이 전설적인 전투마법사의 것이었다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물건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다. 라이언, 물건을 판 그자를 감시해라.
 “호프만님, 발머 정보길드에서도 그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들은 왜?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피터 길드 장의 심복인 마틴까지 감시하는 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호프만이라는 자가 턱을 만지더니 말했다.
 -으음, 길드에서 요원 5명을 보내어 주겠다. 오늘 오후까지만 그를 잘 감시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그를 감시하겠습니다.”
 수정구에 호프만의 모습이 사라지자 라이언이 품속에 다시 집어넣으면서 중얼거렸다.
 “사비나, 사비나!”
 “부르셨습니까?”
 금발의 여자가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라이언이 사비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비나, 내가 오늘 오후까지 외출을 해야 하니 네가 이곳을 맡아라. 아참, 오후에 날 찾아오는 5명의 손님이 있을 것이니 차를 대접하면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면 된다.”
 “예, 알겠습니다.”
 라이언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chapter 04 단서
 
 
 여행자의 집 프랭크 특급 룸.
 아론은 발머 마법 상점에서 구입한 두 개의 마법지팡이에 5가지의 마법을 추가로 새겼다.
 그리고는 자신의 문장인 반달 안에 별을 하나 새겼다.
 문장을 굳이 새기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작은 유리병을 하나 꺼내었다.
 투명한 유리병 속에는 황금색 액체가 절반 정도 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 마력을 불어넣었다.
 츠츠츠츠.
 그랬더니 황금색 액체가 방울지더니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황금색 액체가 아주 민감한 것이기에 특정한 물건이 아니면 절대 손으로 만져서도 안 되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아론은 자신의 마력으로 이렇게 황금색 액체를 방울지게 만들어 공중으로 떠올렸던 것이다.
 손짓만으로 마법지팡이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황금색 액체를 고르게 칠하였다.
 신기한 것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순식간에 황금색 액체를 마법지팡이가 흡수했다.
 금도금 한 거처럼 고급스럽게 변하였다.
 마력으로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마법지팡이를 내려놓고는 이번에는 손바닥 절반 정도 크기의 보석함을 꺼내었다.
 보석함을 열었더니 반짝거리는 마나스톤 가루가 들어있었다.
 이번에도 직접 손으로 만지는 거 보다는 마법지팡이와 마나스톤 가루를 한꺼번에 공중으로 들어 올려 칠하였다.
 마나스톤 가루가 마법지팡이 표면으로 스며들면서 반짝였다.
 마법지팡이에 원래 매직 미사일과 실드마법이 새겨져 있었는데 아론이 추가로 5가지의 마법을 새겼다.
 거기에다가 각종 마법재료를 넣어서 만든 황금색 액체에 마나스톤 가루까지 흡수하도록 하였기에 이제 활성화만 시키면 모든 작업이 끝이었다.
 아론이 마법주문을 중얼거리면서 동시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마법지팡이 두 개에서 공명음이 일어났다.
 마법주문이 거의 끝나가자 마법지팡이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이제 활성화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아론은 마력을 더욱 불어넣었다.
 번쩍!
 눈부신 빛이 마법지팡이 두 개에서 일어나더니 순간 사라졌다.
 아론은 씨익 웃으면서 마력을 거두었다.
 모든 작업이 끝이 났다.
 손짓하자 공중에 두둥실 떠 있던 마법지팡이 두 개가 아론 곁으로 날아왔다.
 이제 마법지팡이로 마법을 펼쳐보면 성공했는지 아님 실패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주석 잔이 놓여 져 있었기에 뒤로 물러난 아론이 마법지팡이를 앞으로 내뻗으며 외쳤다.
 “콜드 빔!”
 번쩍!
 푸르스름한 빛이 마법지팡이 끝에서 쏘아졌다.
 주석 잔에 그 빛이 명중되었다.
 쩌쩡!
 주석 잔이 순식간에 얼어버렸다.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닿으면 순식간에 얼어버리는 얼음 계열의 공격마법이었다.
 파이어 볼 마법도 있었지만 특급 룸 안에서 펼치기엔 여의치 않아 선택한 것이 바로 콜드 빔 공격마법이었다.
 주석 잔이 얼어 버렸기에 충격을 주면 박살나 버린다.
 유효시간이 10분이기에 잠시 기다렸더니 원래의 주석 잔으로 되돌아왔다.
 만약 살아 있는 동물이나 몬스터였다면 유효시간이 끝나더라도 살아나지는 못한다.
 다만 팔이나 다리 같은 몸의 일부가 얼었다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그렇다고 유효시간이 지나도 그 부분이 되살아나지는 못한다.
 세포가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지팡이 하나는 원하는 대로 마법이 펼쳐졌기에 성공이었다.
 나머지 마법지팡이도 성공할 것이지만 실험을 해보아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아론은 주석 잔에 콜드 빔을 쏘았고, 역시나 그것도 얼면서 성공이었다.
 “마법사의 수가 적은 지금의 시대에는 이런 마법지팡이를 본다면 난리가 나겠는데?”
 마법지팡이에 새겨진 마법만 하더라도 대단한데 아론 자신의 문장까지 새겨 놓았기에 경매에 내어 놓는다면 분명 난리가 날 것이었다.
 하지만 마법지팡이를 팔 생각이 없었다.
 아론은 마법지팡이와 널어놓았던 것들을 전부 치웠다.
 그리고는 북 스토어에서 구입한 책을 마법주머니에서 꺼내어 펼쳤다.
 
 여행자의 집 프랭크 맞은편 골목 입구에는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살짝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 곁으로 레슬리가 다가가 말했다.
 “상황은 어떠냐?”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그래? 언제 놈이 안에서 나올지 모르니까 잘 감시해.”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머리를 끄덕인 레슬리가 여행자의 집 프랭크로 들어갔다.
 이미 안에도 길드원들이 손님인 거처럼 맥주 한통을 시켜 놓고 앉아 있었다.
 그들과 레슬리가 서로 눈빛을 마주치더니 머리를 살짝 끄덕였다.
 별다른 일이 없다는 신호였다.
 이미 길드원들이 특급 룸이 있는 2층 복도에도 배치되어 있었다.
 레슬리는 주인인 프랭크에게 다가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봐 프랭크, 어제 특급 룸에 묵고 있는 남자 있지?”
 “그건 왜 물어?”
 “좀 수상해서 길드 장이 감시하라고 해서 말이야.”
 “내가 보기엔 수상한 건 없는 거 같던데?”
 “수상한 게 없다고?”
 “그래. 호기심에 집을 나선 여행자 같았어. 얼굴을 보니 귀족의 자제 같아 보이던데?”
 프랭크의 말에 레슬리도 머리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런 거 같아 보였다.
 하지만 길드장이 열 명의 길드원을 붙여 주면서 감시하라고 할 정도이니 뭔가 있는 거 같았다.
 “그자가 얼마나 묵는 다고 했어?”
 “어제 오후에 들어 왔는데 3일간 묵는다고 했으니 내일까지는 여기 있을 거야.”
 “그래? 혹시 일행은 없었어?”
 “일행? 혼자였어.”
 “영업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 길드원들이 배치되어 있더라도 이해를 좀 해줘.”
 “알았어. 하지만 레슬리, 사고는 치지 않도록 해줘.”
 “물론이지.”
 레슬리가 2층으로 올라가 복도에 배치되어 있는 길드원들을 살펴보았다.
 복도에 서 있던 두 명의 길드원들이 레슬리를 보고는 살짝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직도 특급 룸에서 나오지 않았나?”
 “예, 아더가 식사를 가져다 줄때 보니 북 스토어에서 구입한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 길드장이 관심을 가지는 일이니 실수 없어야 돼.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밖에 있는 동료에게 연락하고.”
 “잘 알고 있습니다.”
 레슬리가 뒤돌아 여행자의 집 프랭크를 나와 길드원이 대기해 있는 골목 입구로 걸어왔다.
 발머 마법 상점의 주인 라이언은 정보길드의 길드원들이 배치되어 있는 골목에 있었다.
 길드원들에게 그가 들키지 않은 건 투명화 마법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보길드의 길드원들은 라이언이 주위에 있는 것도 모르고 잡담을 나누었다.
 러처드가 여행자의 집 프랭크 특급 룸에서 책을 읽고 있다는 걸 알아내었기에 뒤로 소리 없이 물러났다.
 눈치가 빠른 레슬리의 곁에 있다가는 들킬 수도 있었기에 물러난 라이언은 여행자의 집 프랭크의 뒷문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복도에는 정보길드의 길드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호오? 제법 많은 길드원들이 동원 되었군?’
 정보길드의 길드원들은 투명화 마법을 펼쳐 접근하고 있는 라이언을 감지하지 못하였다.
 특급 룸에 있는 아론을 살펴보려고 접근하던 라이언이 갑자기 멈추었다.
 특급 룸 앞의 벽에 마틴이 은신 마법을 펼치고 있는 걸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라이언이 조심스럽게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한편, 특급 룸 안의 침대에 등을 기대어 책을 읽고 있던 아론이 고개를 들며 중얼거렸다.
 “발머 마법 상점의 주인이 여긴 무슨 일로 온 것이지?”
 정보길드의 길드원들이 복도에 배치되어 있다는 걸 아론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초감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또한 은신 마법을 펼쳐 벽에 마틴이 숨어 있었지만 그것도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투명화 마법을 펼치고 접근하는 발머 마법 상점의 주인까지 나타나자 아론이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발머 마법 상점에 아론이 들어갔었을 때 라이언이 3서클 마법사인 것을 바로 알아보았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고, 마법사마다 미세하지만 기운이 다르기에 그의 기운을 인지해 놓았었다.
 접근하던 라이언이 갑자기 뒤로 물러나자 아론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으음, 벽에 은신해 있는 자를 감지했나?”
 그것 말고는 갑자기 접근하다가 물러날 이유가 없었다.
 정보길드에서는 아론이 수상하여 이렇게 감시를 한다고 하지만 발머 마법 상점의 주인까지 자신을 감시하는 건 이상했다.
 물론 아론이 귀한 금반지 아티팩트를 팔고 수중에 3천 골드를 가지고 있고, 귀한 마법주머니까지 있어서 관심을 가질 수는 있었다.
 어쩌면 욕심이 생겨 은밀히 잠입하여 훔쳐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론이 생각하기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아 보였다.
 어쨌든 발머 마법 상점의 주인이 일단 물러난 걸 보니 밤에 다시 찾아올 거 같았다.
 “나 모르게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인데?”
 아무리 이들이 수작을 부려봐야 아론의 상대는 아니었다.
 50년 넘게 전투마법사로 활약하면서 겪은 경험으로 속임수에 잘 넘어가지 않을 것이고, 마법 실력도 비교조차 되지 않는 풋내기들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보이면서 아론이 책을 다시 들었다.
 아론이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벨렘 제국의 건국황제 이안 폰 알렉산더에 관한 일대기였다.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엄청난 업적을 남기고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으음, 이런 뛰어난 인물은 처음이야.”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술과 마법을 익히고 있다고 알려졌다.
 또한 새로운 걸 개발하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귀족들의 세력을 뛰어 넘는 압도적인 정치력과 추진력 등 모든 면에서 천재라 할 수 있었다.
 예전의 영지전이나 왕국간의 전쟁이라면 중장 기병들이나 기병, 기사들의 활약이 승패를 좌우했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황제는 소모품에 불과한 보병들이나 농노 병, 노예 병들에게 화승총이라는 신무기를 보급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아론이 직접 화승총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달려오는 기병들을 쓰러뜨릴 정도의 무기라는 것에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물론 기사들이 착용하고 있는 풀 플레이트 아머는 방어력이 우수하여 뚫기는 어려웠을 테지만 그렇다고 기사들이 전혀 약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튼튼한 갑옷으로 무장하더라도 노출된 위험은 있었다.
 어쨌든 화승총은 화살보다 사정거리가 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파괴력이 높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수백이나 수천의 보병들이 일제히 무장하여 화승총을 발사하면 아무리 기병들이라고 하더라도 우수수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소모품에 불과하던 보병들이 이렇게 맹활약을 하게 되었으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당연했다.
 전쟁뿐만 아니라 알렉산더 황제는 무역이나 상업의 중요성을 알고는 길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마차가 잘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거기에다가 신제품을 개발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비누만 하더라도 개인위생에 좋기에 한번 사용해본 자들은 비싸지 않는 물건이기에 구입해 썼다.
 여기에다가 자전거는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기 좋았고, 상인에게는 간단한 물건들을 운반하기도 좋았다.
 아이들은 장난감으로 많이 탈 거 같았다.
 이것뿐만 아니라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든 소금으로 각 왕국에 팔아 막대한 부를 이루었다.
 암염은 생산량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늘 수요보다는 공급이 부족했었고 그만큼 비쌌다.
 그런데 소금이 대량으로 유통이 되면서 싸게 먹을 수 있어서 평민들이 좋아했다.
 이렇듯이 알렉산더 황제는 각종 신제품으로 막대한 부를 이루었다.
 그 풍부한 자금으로 군대를 양성하고 무기의 보급도 신경 썼다.
 이러니 귀족들의 세력이 약해졌고 알렉산더 황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벨렘 제국에서는 알렉산더 황제와 황족들의 세력이 강하였다.
 반대로 귀족들의 힘은 아주 약해졌다.
 중앙집권체제에 황제의 황권이 강력했다.
 지방까지 황권의 영향력이 미쳤다.
 알렉산더 황제는 제국 민들의 절대적인 추종을 받았다.
 다른 왕국은 벨렘 제국과는 반대로 귀족의 힘이 강하였다.
 “언제 한 번 수도 벨렘에 가봐야겠군.”
 아론은 알렉산더 황제가 살고 있는 수도 벨렘에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알렉산더 황제의 일대기를 내려놓고 이번에는 다른 책을 집어 들어 펼쳤다.
 북 스토어에서 구입한 책들을 읽으면서 아론은 그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었기에 미처 몰랐었던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똑똑!
 노크소리가 나자 침대에 등을 기대고 책을 읽고 있던 아론이 고개를 들었다.
 “손님, 저 아더입니다. 저녁식사를 가져 왔습니다.”
 “열고 들어와라.”
 문을 잠그지 않고 닫아만 놓았기에 아더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테이블에 저녁식사를 내려놓자 아론이 말했다.
 “아더, 어디 아프냐?”
 “예? 아프지 않습니다.”
 “그래? 얼굴에 땀을 많이 흘려서 말이다.”
 “일이 바빠서 그런 것입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그래. 알았다.”
 아더가 나가더니 문을 닫았다.
 아론은 읽던 책을 내려놓고는 테이블에 놓여 진 저녁식사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저녁식사에 장난을 쳐 놓았군?”
 9서클인 아론은 예전보다 초감각이 더 발달해 저녁식사를 한 번 보는 거만으로도 수면 효과가 있는 약물이 들어 있다는 걸 감지했다.
 약물을 섞은 자가 아론을 죽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여행자의 집 프랭크의 주방장 요리솜씨가 훌륭하여 아론은 식사 때가 기다려졌었다.
 그런데 저녁식사에 장난을 친 것을 보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물론 식사를 하더라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지만 이건 기분 문제였다.
 아론은 짜증이 났지만 꾹 참고 오른손을 내뻗었다.
 츠츠츠츠.
 스테이크 소스에 수면 효과가 있는 약물이 섞여 있었는데 그 약물만 분리되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약물을 섞은 자가 이걸 보았다면 경악하였을 일이었다.
 주석 잔에 약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아론이 주석 잔을 들고 세면장으로 들어가 세면대에 부어 버렸다.
 빈 그릇을 문밖에 내려놓고 문을 닫았다.
 복도에 배치되어 있던 정보길드의 길드원들은 깨끗하게 비워진 빈 그릇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아론이 곧 약효를 받아 잠들어 버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침대에 앉아 있던 아론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마법으로 분신을 생성하였다.
 외모가 완벽하게 똑같은 분신이 생성되자 아론은 씨익 웃으면서 침대에 눕혔다.
 아론의 분신은 진짜와 똑같은 능력은 없었지만 외모가 똑같아서 적을 속이기엔 좋은 수법이었다.
 아론이 투명화 마법을 펼쳐 모습을 감추었다.
 덜컹!
 갑자기 특급 룸의 문이 열리더니 정보길드의 길드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아론이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걸 보고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길드원 하나가 잠들어 있는 아론의 분신을 업고 밖으로 나가자 동료들이 뒤따랐다.
 벽에 은신해 있던 마틴도 그들을 따라 이동하자 그제야 아론이 따라갔다.
 아론이 예상한 대로 그들은 곧장 용병길드 건물로 향하지 않고 그 주변에 있는 허름한 창고로 들어갔다.
 그 창고가 정보길드의 비밀 사무실인 모양이었다.
 창고 문 앞에는 길드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들이 창고 문을 열어주었다.
 창고 안에는 밀이 수십 자루 쌓여 있었다.
 그런데 길드원 하나가 바닥을 잡아들어 올리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호오? 지하에 정보길드의 비밀 사무실이 있었군?’
 길드원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려던 아론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라이언이 투명화 마법을 펼쳐 창고까지 들어와 있는 걸 감지했다.
 ‘발머 마법 상점의 주인이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놀랍군?’
 아론이 지하로 내려가 보니 창고의 절반 정도 되는 공간이었다.
 이미 그곳에는 피터 정보길드장이 책상에 앉아 있었으며, 길드원들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아론이 고개를 돌려보니 라이언은 혹시라도 들킬 것을 염려하여 구석진 곳에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길드원들이 아론의 분신을 의자에 묶었다.
 피터가 레슬리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가 품속에서 약병을 하나 꺼내더니 아론의 분신의 코에 가져다 대었다.
 분신은 아론과 정신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론은 분신이 깨어나도록 의지를 일으켰다.
 분신이 눈을 뜨고 깨어나자 피터가 쳐다보며 말했다.
 “넌 누구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분신이 두리번거렸다.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순순히 대답해라. 넌 누구냐?”
 “날 왜 납치한 것이오?”
 “흐흐흐·····넌 질문할 자격이 없다. 나의 질문에나 대답해라. 어서!”
 이 정도의 공포분위기라면 바보가 아닌 바에야 피터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론은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겁을 먹을 자들은 피터와 길드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아론의 정체를 모르기에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는다면 때리겠다. 넌 누구냐?”
 “하하하···글쎄, 내가 누굴까?”
 “뭐라고? 아직 상황판단이 되지 않느냐?”
 “상황판단은 네가 못하고 있는 거 같은데?”
 “이이, 이놈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라.”
 손에 몽둥이를 든 길드원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푸스스스!
 길드원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은 분신이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허엇, 이게?”
 “뭐야?”
 모두들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의자에 묶여 있던 자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투명화 마법을 펼쳐 숨어 있던 라이언과 은신해 있는 마틴도 갑자기 아론이 사라져 버려 당황했다.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피터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스슷!
 투명화 마법을 해제하여 아론이 나타났다.
 이들은 아론의 분신이 소멸된 것을 모르고 사라졌던 아론이 다시 나타난 것인 줄 착각했다.
 피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잔재주가 있었구나. 그렇다고 여길 벗어날 수는 없다.”
 “날 왜 납치한 것인지 말해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으하하하···그건 내가 할 말이다. 너의 정체가 뭐냐?”
 아론은 이들이 순순히 대답할 거 같지 않아서 실력행사를 해야 할 거 같았다.
 그전에 숨어 있는 라이언과 마틴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아론이 마법주머니에서 마법지팡이를 꺼내었다.
 “발머 마법 상점에서 구입했다던 그 마법지팡이로 우릴 공격하겠다고?”
 “그렇다. 순순히 나의 질문에 어서 대답해라.”
 “으하하하···정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자였군? 매직 미사일과 실드마법이 새겨진 그 마법지팡이로 우릴 어찌할 수 있을 거 같으냐?”
 “흥, 이거면 충분하다.”
 “미친놈!”
 “화끈한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에너지 볼트!”
 파지직!
 마법지팡이 끝에서 노란 빛의 전기가 내뻗어졌다.
 느닷없이 날아온 노란 빛의 전기에 깜짝 놀란 길드원들이 몸을 피하려고 하였지만 늦었다.
 “으아악!”
 “커억!”
 “허엇, 블링크!”
 마법지팡이에서 예상하지 못한 마법이 펼쳐지자 깜짝 놀란 피터가 블링크 마법을 펼쳐 피하였다.
 피터 정보길드 장은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블링크 마법이 새겨진 반지 아티팩트를 끼고 있었기에 위기 상황에서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길드원들은 이런 운이 없었다.
 날아온 노란 빛의 전기에 감전되어 우수수 쓰러져 기절했다.
 마법지팡이를 아론에게 판 라이언은 눈이 두 배로 커졌다.
 매직미사일과 실드마법이 새겨져 있던 마법지팡이에서 어떻게 5서클의 전격 계열의 에너지 볼트 마법이 펼쳐진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만 모습을 보이는 게 어때?”
 아론이 투명화 마법을 펼쳐 구석에 있는 라이언을 향해 마법지팡이를 가리켰다.
 즉시 나타나지 않으면 에너지 볼트 마법을 펼칠 거 같아 라이언은 어쩔 수 없이 투명화 마법을 해제하고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론은 얼굴을 찌푸렸다.
 마틴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순순히 나타날 거 같지 않아서 아론은 은신해 있는 마틴을 향해 마법지팡이를 내뻗었다.
 아론이 마법지팡이를 가리킬 때 긴장하고 있던 마틴은 노란 빛의 전기가 쏘아지기 전에 몸을 날려 피하였다.
 아론은 이미 초감각으로 마틴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가 공격을 피하려는 모습이 가소로웠다.
 “흥, 그렇다고 피할 수 있을 거 같으냐?”
 파지직!
 노란 빛의 전기가 마틴을 향해 날아갔다.
 “으아악!”
 등에 노란 빛의 전기를 맞은 마틴이 비명을 지르면서 고꾸라졌다.
 얼마나 지독한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잠잠해졌다.
 이미 쓰러져 있는 길드 원들처럼 마틴도 기절했다.
 라이언과 피터는 이마에서 땀을 주루룩 흘렸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여유도 없었다.
 갑자기 상황이 역전되었다.
 아론이 씨익 웃자 라이언과 피터는 뒤로 한걸음씩 물러났다.
 “자, 다시 물어보겠다. 날 왜 납치한 거지?”
 “으, 그건···.”
 피터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아론이 고개를 돌려 라이언에게 말했다.
 “발머 마법 상점의 주인은 여긴 무슨 일로 온 것이지?”
 “으, 당신의 정체가 뭐요?”
 “쯔쯔쯔,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군? 나에게 질문을 하기 보다는 나의 질문에 대답이나 잘하도록 해.”
 라이언이 식은땀을 주루룩 흘렸다.
 피터는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궁리하느라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아론은 더 이상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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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홈    
2만년이면 인류 역사를 두번은 더 할 수 있는 기간인데 그동안 인류는 뭘 했기에 마법을 떠나서 그리 발전이 없었나요 원숭이였나요 아니면 작가님이? ㅋㅋㅋ
2017.09.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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