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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과학자 1

2017.08.30 조회 1,664 추천 2


 이계의 과학자 1
 
 
 프롤로그
 
 
 한때 흑마법의 씨가 마른 대륙, 이실리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다시 대륙엔 흑마법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은밀하게 대륙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전쟁. 수많은 생명이 전쟁에 의해 목숨을 빼앗기고 대륙은 황폐해져 갔지만, 인간은 그래도 살아가기를 원했다.
 대륙의 모든 국가가 전쟁을 하는 와중에 알게 모르게 그들의 뒤를 지켜 준 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세이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은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죽이며, 대륙의 평화를 지켜 내었다.
 청공에 떠 있는 작은 섬. 그 섬은 인간으로써 신의 경지에 오른 자가 만든 하늘의 낙원이다. 섬의 인구는 300명이 조금 넘는다. 작고 아담한 그 섬에는 인간, 드워프, 엘프, 하프엘프들이 모두 평등하게 살아가고 있다. 청공의 낙원에 갈 수 있는 자들은 선택받은 자들밖에 없다. 그들은 가끔 대륙으로 내려와 지식을 전하고 물자를 구한다. 그때마다 대륙에 전설을 남기고 떠난다.
 그 전설이란······ 드래곤도 사용하지 못하는 위대한 마법, 그랜드 마스터를 능가하는 체술 같은 것이다. 그에게 도움 받은 자들은 대대로 ‘마진사 세이지’라는 이름을 가슴에 새기게 된다.
 
 어느 한적한 마을 중앙에 위치한 작은 분수대에 한 명의 어린 소년과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그 말 진짜예요?”
 “누가 할아버지냐? 아직 50도 되지 않았거늘.”
 “에잇! 다들 그러는데요. 늙은이들처럼 말씀하신다고.”
 “허허. 이럴 수가······ 아직 장가도 못 갔거늘······.”
 “그러지 말고 말씀해 보세요. 진짜예요?”
 “흠흠. 그래, 진짜지.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그의 등뒤로 생기는 무수히 많은 마법진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움직임을 말이야.”
 “정말 그분은 신, 아니, 드래곤인가요?”
 “하하하, 녀석. 그분은 신도 아니며, 드래곤은 더더욱 아니란다. 그분은 그저 인간이셨지.”
 “에잇. 어떻게 사람이 드래곤도 못 이긴다는 마황을 잡아요. 마황이란 자는 마왕을 넘어서는 마계의 최고 이거잖아요.”
 꼬마는 엄지 손가락을 세워 마황이 마계를 주름 잡은 자라는 것을 어필했다. 그러자 나이 든 사내의 주먹이 빠르게 소년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빠각.
 “에끼. 이 녀석아.”
 “으아아앙. 왜 때려요.”
 “잘 들어라. 그분은 이 대륙의 사람이 아니란다. 그분은 머나먼 이계에서 오신 분이지. 그분이 있었기에 이처럼 대륙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란다.”
 “훌쩍. 그럼 이 섬도 그분이 하늘에 띄운 거예요?”
 “그렇지. 이 섬도 그분의 업적이지. 보아라.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이 살아 가고 있지 않는냐? 너도 성인이 되면 대륙으로 나갈 수 있으니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그분이 남긴 체술을 익혀야 할 것이야.”
 “네.”
 나이 든 사내는 그렇게 어린 소년과의 대화가 끝나고 분수대 앞에 있는 2미터 크기의 동상을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동상은 무슨 금속으로 만들었는지 하얀색을 띄고 있었으며, 드워프들이 만들었는지 세세한 묘사까지 되어 있었다. 더욱이 그의 전신은 특이한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오른팔에는 팔찌라고 보기에는 다소 커 보이는 것이 채워져 있었다.
 “레일 님, 식사하세요.”
 “어이쿠. 벌써 식사시간인가? 그럼 다음에는 그분의 연애에 대한 얘기를 해주마.”
 씨이익.
 어린 소년은 레일이라는 사내의 말에 입 꼬리가 올라갔다. 언제나 들어도 그분의 연애에 관한 얘기는 재미가 있었다. 아니 질리지가 않는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리라.
 “엘리스 님, 매번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어이 꼬봉. 너 또 그 얘기 했냐?
 “하하하. 진 님. 뭘 그렇게 열을 내십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여간 오지랖 하고는.
 “다른 분도 오실 시간이 되셨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놈들이 언제 식사시간 어긴 적이 있습니까? 자, 들어가시지요. 오늘 따라 바람이 찹니다.”
 
 끼이익.
 2층으로 지어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벽돌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확 트인 공간에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고, 20명은 거뜬히 먹을 수 있는 많은 양의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더욱이 테이블에는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10명의 꼬마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다란 테이블 옆에는 다소 낮아 보이지만, 처음 본 테이블과 비슷한 테이블이 있었다. 물론 거기에도 상당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낮은 테이블엔 의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애들아. 너희들 자리는 저기잖니.”
 “에잇. 넷째 엄마. 우리도 여기서 같이 먹고 싶어요.”
 “그래. 나도 여기서 식사 한 번 해보고 싶어. 저기 너무 좁단 말이야.”
 붉은 머리카락의 꼬마 하나가 어른들이 앉는 식탁에서 자신들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말을 꺼내었다. 그러자 검은 머리카락의 꼬마도 투덜거렸고, 이윽고 남은 8명의 꼬마들도 호응을 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예끼 요 녀석들. 세이. 너 당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레일은 세이라는 꼬마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당장 일어나라는 엄포를 내렸다.
 “그래. 그 자리는 너의 아버지 자리야. 그러니 거기는 앉지 말거라.”
 부엌에서 나오는 붉은 머리카락의 풍만한 여성이 양쪽에 접시를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 녀석들. 감히 아버지의 자리에 앉다니. 오늘 혼나 볼래? 응? 당장 안 내려와?”
 그녀를 따라 줄줄이 나타나는 여성들. 모두 아름다운 외모를 간직한 채 테이블에 앉아 있는 꼬마들을 나무라고 있었다.
 어른들의 꾸중을 들은 꼬마들이 저마다 풀이 죽어 의자에서 내려와 자신들의 식탁 테이블로 움직였다.
 “야. 너 때문에 우리까지 혼나잖아.”
 “내가 뭐. 그런 너도 저기 앉아 보고 싶다고 했잖아.”
 바닥에 주저앉은 꼬마들은 음식을 앞에 놓아두고, 쓸데없는 입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레일을 포함한 10명이 여성들은 그런 꼬마들을 보고 그저 미소만 지어 보이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검은 머리카락을 한 꼬마에게 시선이 모으고 있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여어··· 형수님들. 늦었습니다.”
 온몸이 땀에 찌든 사내 3명과 다소 멀쩡해 보이는 1명의 여성이 땀내를 풀풀 풍기며 거실로 들어섰다.
 “웃. 냄새. 이놈들아. 좀 씻고 다녀라. 물이 없냐, 뭐가 없냐?”
 “형님, 너무 그러지 마쇼. 이게 다 우리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럼 그럼. 그러는 형님이야말로 요즘 너무 한가하게 지내시는 거 아닙니까? 언제 한 번 사냥이나 같이 가시죠. 오늘도 먹음직스러운 놈 하나 잡아 왔습니다.”
 막 들어온 산적 같은 사내들은 땀내를 풍기며 밖이 보이는 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밖에 황소만 한 짐승이 양다리가 꽁꽁 묶인 채 발버둥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고작 저거 잡는다고 땀을 그렇게 흘리셨어? 대단하군, 대단해. 아직도 실력이 부족하니 그 모양 그 꼴이지. 당장 씻고 오지 못해? 밥맛 떨어지게 말이야.”
 “맨날 우리만 뭐라 하지 마쇼. 씻고 오면 되지 않소. 야! 음식 식는다, 빨리 씻고 오자.”
 그렇게 땀내를 풍기는 사내들과 한 명의 여성이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그들을 불러세운 목소리가 있었다.
 “그냥 앉으세요. 그전에 제가 씻어 드릴게요.”
 “하하. 형수님. 이거 번번이 죄송합니다.”
 엘리스라 불린 여성이 미소를 짓자 그녀의 앞에는 4개의 푸른색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마법진이 번쩍이는 동시에 땀 냄새를 풍기는 자들의 몸이 물 속에 갇힌 듯한 모습이 잠깐 보였고, 이내 그들을 감싸던 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도 아쿠아 계열을 익히는 건데. 그럼 나중에 그분이 돌아오면 매번 내가 씻겨 드리면··· 아잉.”
 엘리스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모두의 귀를 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까지 붉히는 그녀.
 “자자, 그럼 식사를 합시다.”
 중앙의 상석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모두 각자 의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자리를 잡았다. 레일이 입을 열었다.
 “그럼 식사를 합시다. 형수님들, 잘 먹겠습니다.”
 레일의 인사에 이어 모두의 입에서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꼬마들은 저마다 밖으로 나가 놀기 시작했고, 여성들을 제외한 모두가 식사 전에 잡아 온 짐승을 손질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지 식사를 했던 테이블은 빠르게 치워졌고, 엘리스라는 여성은 홀로 2층으로 올라와 어느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 서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잘 지내시나요? 이렇게 우리들만 남겨 두고 가시면 어떻게 하나요? 반드시 돌아오실 거라 믿어요. 반드시······.”
 
 
 1장 원자 가속 엔진
 
 
 어두침침한 방 안. 어두운 방 한편에 있는 작은 책상. 희미한 스탠드의 조명이 약한 빛을 흘리며, 책상 주변만을 밝히고 있었다.
 조명의 약한 빛을 뒤로 하고 책상 위 벽에는 아담한 작은 액자 하나가 어렴풋이 보이고 있었다. 보통 액자에는 그림이나 사진이 들어 있을 법하건만, 빛이 약해 잘 보이지도 않는 액자에는 그런 것 대신에 몇 자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하얀색 바탕에 검정색의 글자. 비록 어두운 방의 약한 빛이지만, 액자는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상하라. 생각하라. 고민하라.>
 
 힘이 실려 있는 글씨는 그렇게 액자에 담겨 있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 한 소년. 그는 고개를 들어 액자에 담긴 글을 보고 있었다.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심도 깊은 눈으로 액자를 보던 소년은 다시 책상으로 시선을 돌리며 자기가 하던 일에 다시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이건 아니야. 이건 여기서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음··· 이쪽도 요렇게 하면 될 것 같은 데···.”
 소년은 책상에 앉아서 영문 모를 말을 하며 혼자만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앳돼 보이는 소년의 나이는 14세. 130Cm를 겨우 넘길 작은 키에 뼈밖에 없을 듯한 비실한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양인 특유의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특징이었다. 짧은 스포츠형의 머리카락과 빛을 보지 못해서 그런지 창백한 피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과 아담한 주먹코, 얼굴 크기에 비해 다소 커 보이는 입술까지, 전반적인 모습은 그저 비실비실한 어린애로만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의 또래들은 모두 중등교육을 받고 있는 나이었다. 지금은 밤으로 여겨지는 시간으로 평범하게 중등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은 당연히 잠을 청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책상에 앉은 소년은 잠을 뒷전으로 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태양계는 수많은 은하계 중 하나에 속하며 태양계 중에서는 지구라는 행성에만 생물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지난 과거의 이야기··· 더 이상 지구에서는 생물이 살 수가 없을 정도로 환경은 망가져 버렸다.
 조금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서기 2032년 북한은 중국의 물자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중국에 흡수되기를 원하였지만, 주변 강대국들의 반대와 한국이 한민족 통합을 주장함으로 결국 북한은 한국에 흡수통일이 된다.
 그 후, 대한민국은 북한의 막대한 자원으로 경제 개발에 힘을 쓰게 되었고 국방력 또한 높아지게 되지만, 통일 8년이 지난 후 일본 남쪽 3Km에서 진도 9.3의 강진으로 일본 열도 1/3가 바다에 가라앉게 된다. 30미터가 넘는 쓰나미는 그렇게 일본 열도를 덮치게 되고 일본은 엄청난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통일된 대한민국 또한 일본의 경제 붕괴에 상당한 피해를 보게 된다.
 지진과 쓰나미로 일본의 인구 2/5이 사망 혹은 실종되고 국가의 경제력은 곤두박질을 치게 된다. 강진이 있은 후, 간간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지진은 일본인들에게 자국의 땅을 버리게끔 만들었고, 더 이상 일본 열도에서 삶을 포기한 일본인들은 타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특히 가까운 대한민국으로 피신하는 일본인들이 많았으며 그 외, 중국은 물론 동남아, 미국, 유럽 등으로 남은 인구들의 80%이상이 빠져나가게 된다. 이처럼 더 이상 자국의 운영이 되지 않던 일본은 결국 가까운 나라 대한민국과 합병을 하기에 이른다. 결국 일본이라는 나라는 세계의 지도에서 사라지고 대한민국만이 남게 되었다.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 서기 2116년. 지구는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르게 된다.
 이유인 즉, 통일된 대한민국은 국민의 방탕한 생활에 의해 국가의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엄청난 부채를 안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세계 강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가 서로 대한민국의 부채를 해결해줌으로써 영유권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처음 3국 회담으로 진행되던 협상은 사소한 심리전에서 시작하여 무력다툼이 되고 결국 협상은 결렬되기에 이른다. 3개의 강대국을 시작으로 한 무력 시위는 3차 세계 대전을 번지게 되었다. 전쟁에서 3국은 막강한 무기들을 서슴없이 사용하게 되었고 이윽고 지구의 대륙은 절반 이상이 황폐해지거나 바다에 가라앉게 되었다. 그 뒤로도 크고 작은 전쟁은 계속 이어졌는데, 대부분이 식량과 물자에 의한 전쟁이었다.
 과거 수많은 전쟁과 생태계파괴를 당한 지구는 이제 사람들은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되어버려 많은 사람들이 병과 배고픔에 죽어가던 시기에 남은 사람들은 지구를 버리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 때를 기점으로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기술개발을 시작하게 되는데···.
 전쟁이 끝난 100년 후.
 서기 2236년 한민족 태생으로 박황현이란 사람이 분자가속엔진을 발명함으로 우주개발의 빠른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분자가속엔진이란 일정분자를 원심력으로 가속시켜 빛보다 10배나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준다. 이 가속력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것이 바로 분자가속엔진이다. 우주선의 기본 엔진은 모두 분자가속엔진을 사용할 정도로 상용화 되고 있었다.
 
 서기 2360년 현재. 24세기 우주시대의 최고전성기를 이루고 있는 시대.
 삐삐삐빅. 삐삐삐빅. 삐삐삐빅.
 06:30분 아침을 알리는 알람과 함께 빛이 들어오지는 않는 방 안에 태양이 떠오를 때 생기는 빛처럼 약하지만 붉은 빛이 들어왔다.
 “어라? 벌써 아침인가? 오늘도 결국은 밤을 세고야 말았네.”
 소년은 책상에서 일어나 방 한쪽 편에 있는 문으로 걸어갔다. 작은 4평 남짓의 방 안에는 1인용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그리고 7단 높이의 책장 하나가 있었다.
 “진. 샤워하게 온도 38도로 맞춰 줘. 그리고 아침식사는 토스트와 우유 한 잔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식사 먼저 하시겠습니까? 아님 샤워부터 하시겠습니까?
 진, 일반적인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였던 컴퓨터를 세현이 몇몇 프로그램을 엉뚱하게 바꿔 버리자 기존의 다른 AI에 비해서 학습능력과 이해능력 면에서 월등히 높은 AI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탄생한 인공지능을 세현이 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응. 밥 먼저 먹을 거야. 준비되면 얘기해.”
 밤새 책상에 머리를 박고 무언가 열중하던 소년의 이름은 박세현, 세현의 족보를 올라가면 23세기 분자가속기를 발명한 박황현이 나온다. 세현은 그의 증손자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현은 교육기관에 다니지 않고 우주기지 싱크로라는 우주선에서 연구라는 것을 하고 있는데, 그 연구는 분자가속기보다 10배나 빠른 원자가속엔진을 개발하는 것이다.
 
 원자가속엔진(가설) - 분자보다 작은 원자를 가속시킴으로 분자가속엔진보다 10배의 높은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다. 원자가속엔진이 개발되면 워프라는 것이 가능해진다.
 
 워프(가설) - 우주의 크기를 측정할 수 없지만, 엄연히 좌표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워프라는 기술을 사용하면 다른 별까지 불과 몇 초 만에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워프는 목적지와 출발지의 거리를 반으로 접어 겹친 것을 무려 수십 번을 반복하여 위치의 오차를 0에 한없이 가깝게 하는 이론이다.
 
 워프에 필요한 에너지는 막대한 양이 들어가기에 기존의 분자가속엔진 중 출력이 최대로 높은 엔진이라고 해도 5번의 계산이 한계였다. 분자가속엔진으로 워프실험을 수십 번 테스트 하였지만, 오차로 인하여 시도는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이 원자가속엔진은 세현의 아버지 박현민이 설계한 이론이었다. 하지만 주변 과학자의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등등의 이유로 과학계에서 비난을 받아 퇴출되기에 이르렀고, 세현의 어머니 리시아 밀리엔과 함께 둘이서 따로 연구를 하기에 이른다. 지원도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의 실험을 진행하던 그들은 실험 중 그만 불완전한 가속엔진의 균열로 폭발사고를 당하게 된다. 폭발의 위력이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하여, 그들은 중형 우주선과 함께 우주의 먼지로 변해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일부 과학자들이 폭발 당시의 터무니없는 에너지 방출량에 조사를 진행 하였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반 소형우주선에 들어가는 엔진 크기의 원자가속엔진이 크기와 규모에 비해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계로써는 더없이 큰 발견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연구진들은 투자금을 모으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정식으로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우주선 1만 톤급 우주선에서 과학자 200명과 조수 외 인원을 포함한 1500명이 이번 개발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세현도 같이 연구를 하게 되었다.
 세현은 어려서부터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서로 다른 이론을 결합하여 엉뚱한 결과를 만드는 특이한 재능이 있어서 그런지 응용기술이 엄청나게 좋았다. 남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응용력과 원자가속엔진의 이론과 설계를 한 박현민의 아들이라는 점이 연구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현의 지능 테스트인 IQ는 평균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지만, 잔머리 쪽인 즉 EQ가 무려 200이 넘어서는 반쪽자리 천재였다.
 이번 연구개발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물론 그의 잔머리에서 나오는 공식과 원리 덕분이었다. 그 점을 높이 산 권력가들이 세현을 우주연합방위군 특명으로 특별히 연구원으로 등용시켜주게 된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나 연구원들의 반발이 거세어 결국 세현은 테스트 단계를 거치게 됐고, 그 테스트에서 세현은 기존의 이론들을 병합하여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을 한다. 테스트는 성공적으로 끝나고 모두의 시샘 어린 시선 속에서 이번 개발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옛날에도 그랬듯이 이곳에서도 그의 편은 없었다. 일부 과학자나 사람들에게 사생아라고 놀림까지 받을 정도로 따돌림을 받는 그였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다 보니 소외되는 것은 당연지사. 친구라고는 하나 없는 외톨이로 지내게 된다. 가족까지 없는 천애고아가 그였다. 그의 유일한 벗이 있다면 자신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AI-진이 그가 가진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 것이다.
 -세현 님, 식사 준비가 다되었습니다. 3분 후면 샤워 준비도 끝납니다.
 “진. 고마워. 잘 먹을게.”
 식사와 샤워를 마친 세현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하얀 가운을 걸치고 개인실로 지정된 방을 나가면서 책상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엄마, 오늘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책상 위에는 하나의 액자가 있었는데 거기엔 세현의 부모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세현은 자신의 방문을 벗어나 복도를 걸었다. 키가 작은 것 때문인지 세현의 가운 끝자락이 바닥에 끌렸지만, 세현은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회의실로 보이는 곳. 백의를 입은 두 명의 중년인이 기다란 둥근 탁자에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세현과 같은 동양인으로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인자해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나이에 비해 상당히 늙어 보였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금발의 백인답게 늘씬한 키를 가졌으며, 멋들어지게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날카롭고 오뚝한 코와 날렵한 눈매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런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보게, 김 박사, 여기에 분자가속엔진에 쓰이는 분속기의 출력을 높여 사용하면 충분하다니깐.”
 “닥터 제임스, 그렇게 사용하면 지난번처럼 용량 미달로 가동 후 트러블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걸 자네도 알지 않나? 절대 안 되네. 절대 허락할 수 없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탁상공론에 열을 올리고 있는 두 명은 이번 연구의 책임자와 부책임자로 원자가속엔진 개발을 총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원자가속엔진의 핵심인 원자생성기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 분자가속엔진에 들어가는 분속기는 지구에도 거의 남아 있지 않는 티타늄과 백금이라는 걸 자네도 알지 않나. 지금 지원금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추가적으로 가속엔진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네. 그리고 초고가의 자재를 조달할 만한 자본은 더더욱 없어. 지금 상황에서 무엇인가 적절한 결과를 보여 줘야만 추가지원을 해주겠다고 연락이 왔단 말이네.”
 “자본이야 좀 다른 방법으로 모색해도 될 것 아닌가? 김 박사. 자네는 너무 정직해서 탈이네.”
 -박세현 님이 오셨습니다.
 회의실에 울리는 딱딱한 음성.
 연구소로 운영하고 있는 우주선의 모든 시스템을 담당하는 인공지능 컴퓨터인 AI-Q가 세현이 왔다고 알리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지시가 떨어지자 회의실의 문이 자동을 열리며 세현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김 박사님, 닥터 제임스.”
 “어서 오너라, 세현아. 그래, 어제 생각은 해 보았느냐?”
 김 박사의 질문에 세현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그게··· 생각해봤는데 마땅히 쓸 만한 금속을 정하지 못했고··· 그나마 가능성 있는 금속은 티타늄 합금뿐인 것 같아요.”
 어젯밤, 그가 밤을 세워가며 생각한 것은 원자가속엔진의 주요 금속을 다른 금속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금속을 비교해 봐도 언제나 같은 결론은 같았다. 에너지 전도성이나 자력의 성질로 볼 때, 이것보다 좋은 금속은 없다라고 결론이 나 버렸다.
 “내가 말한 대로 한 번 딱 눈감고 실행해보자니깐.”
 “절대 안 되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 절대 안 되네.”
 “저, 말씀 중에 죄송해요. 닥터 제임스. 이게 필요할 것 같은데요.”
 세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건네어 주었다. 제임스는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세현의 표정을 보고 단번에 짐작을 했고, 주머니를 받은 제임스는 그대로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을 김 박사에게 뿌렸다.
 “윽··· 이게 무슨 짓인가?”
 “어라? 눈에 흙이 들어갔군. 역시 세현은 내 마음을 잘 안단 말이지. 하하하.”
 정직하기로 손에 꼽을 정도의 바른 생활 사나이가 김 박사다. 그는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라, 혹시나 해서 주머니에 흙을 조금 담아서 들고 다녔는데 이번에 기회가 오자 재빨리 끼어들어 흙주머니를 제임스에게 건네준 것이다.
 “그럼 실행하도록 하겠네. 자네는 얼른 얼굴이나 씻고 오게. 뒷책임은 내가 지도록 하지. 그럼 난 바빠서 이만. 하하하하.”
 제임스가 나가고 세현이 손수건을 김 박사에게 건네주었다. 눈에 흙이 들어가 시야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세현이 건네준 손수건은 어렴풋이 보였다. 손수건을 건네받은 김 박사는 우선 눈과 얼굴을 닦고 세면실로 들어가 눈 속에 들어간 흙을 씻어 내고 나왔다.
 “죄송해요. 제임스 박사님이 이렇게 손속에 사정을 안 두실 줄은 몰랐네요.”
 “어쨌든 제임스가 한 짓이니 너는 마음 쓰지 말아라. 그나저나 이제 진행단계가 막바지라고 하지만 원천적인 분속기 주 자원이 없으니 개발에 차질이 많이 생기게 되었구나.”
 “돈이 좀 들더라도 소형 분자가속엔진에 들어 있는 티타늄 함급을 구매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지금 개발하는 원자가속엔진은 1000만 톤급 우주도시에 사용할 엔진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러니 들어가는 자원, 인력, 자본은 그것만 완성된다면 아까운 것도 아니지 않을까요?”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세현아, 원리는 같다고 할 수 있으나 소형 분자가속기처럼 작아지면 정밀도가 더욱 올라가야 할 것인데, 지금 기술로 부족한 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에너지양의 차이 때문에 제어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김 박사는 말을 하다 잠시 끊은 뒤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만약에 실패할 경우 여기 있는 사람과 우주선은 너의 부모님처럼 한낱 우주의 먼지로 화해버릴 수가 있기 때문에 서투른 판단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필수자원이 부족한 실정에 그동안 투자된 자본도 천문학적인 금액이라서 거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연구는 추가지원 없이 계속 제자리만 걷고 있었다. 하지만 급하다고 대충대충 해서는 안 되었기에 김 박사는 세현에게 미안한 감정을 담아서 부모님까지 거론하였다.
 부모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세현. 김 박사는 자신의 친구이자 경쟁 상대였던 박현민의 하나뿐인 아들을 거두었다.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세현에게 가족을 소개시켜 줬지만, 김 박사의 가족들은 냉대를 했다. 그 결과 세현은 마음은 더욱 굳게 닫혀 버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지만 좋아진 것은 없었고, 오히려 가족들이 세현에게 암묵적으로 가해를 가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김 박사는 세현을 데리고 집을 나와 연구소 근처에서 살기로 했다.
 그러던 중 박현민이 하던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되었고, 마음은 벌써 그곳에 가 있었지만 세현을 혼자 놔둘 수 없어 연구개발의 참여인원으로 세현을 추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무나 참여할 수 없는 프로젝트. 결국 테스트가 진행되고 거기서 세현은 어린 아이답지 않은 잔머리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이번 개발이 성공적으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만약을 대비해야 하는 게 우리 과학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란다.”
 “네,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성공할 경우 소형 분자가속기엔진의 크기로 1만톤급 우주선을 가동시킬 에너지가 생기잖아요. 현재 타행성에서 지구에 있는 금속처럼 광물을 채집하고 있지만 실용성과 채집과정이 매우 힘들어 추가적인 우주선을 생산 못하잖아요.”
 “세현아, 너의 생각은 알겠다. 하지만 조금 더 신중을 기해서 진행하도록 하자꾸나.”
 그렇게 회의실에서 세현과 김 박사는 분속기의 부가적인 내용을 해결 후 진행하기로 하고는 앞으로 진행 과정에 대해서 토론을 하였다.
 
 그 후, 8개월이 흐른 뒤 우주선 내 광장.
 “결국은 이렇게 할 것을 뭘 그리 머리를 싸매고 고생을 했을꼬. 하하하하”
 어김없이 낙천적인 말투를 뱉으면서 웃고 있는 제임스는 오른팔을 세현의 어깨에 걸쳐 놓고 소형 분자가속엔진보다 조금 큰 원자가속엔진을 보고 있었다.
 원자가속엔진 뒤쪽으로 굵직한 케이블과 컨테이너 같은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원자가속엔진 중앙 철판에는 작은 몇 자의 글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 명칭 : D급 소형 원자가속엔진 실험기-01
 - 크기 : 1000mm X 1500mm X 800mm
 - 무게 : 150 Kg
 - 출력 : 80T J
 
 이번 시운전이 성공하게 된다면, 초대형 우주선과 중형 우주도시에 보급하겠다고 제임스가 우주연맹 쪽과 합의를 보고 소형엔진에 들어가는 금속을 구해온 것이었다.
 
 80테라 줄. 소형엔진 하나의 출력이 초대형 분자가속엔진의 출력을 낸다고 적혀 있었다. 소형 원자가속엔진 하나의 출력치고는 터무니없는 수치지만 개발에 참여한 일반진과 연구진은 과연 이번 연구가 성공적으로 끝날지에 대해 서로 수군거린다고 정신이 없었다.
 “이번 개발에 참여한 신사 숙녀 여러분. 그 동안의 노력이 이번에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시운전에 앞서 지금까지 노력해주신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 바로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엔진 앞 작은 단상에서 김 박사는 개발한 엔진을 선보였고 짧은 연설을 마치고는 단상에서 내려와 엔진점화를 준비하는 제임스와 세현의 옆으로 다가섰다.
 “김 박사. 그렇게 걱정하지 말게나. 하하하하. 반드시 성공할 테니. 그렇지 않느냐?”
 “그럼요. 만약에 대비해서 안전장치도 준비했고 출력저하 쪽에도 손을 좀 보았어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동준비를 마친 제임스와 세현은 김 박사가 옆으로 오자 이번 개발의 성공을 점찍었다. 그렇게 제임스와 세현의 긍정적인 반응에 김 박사는 미소를 지으며 가동키를 꽂았다.
 
 일반 중요 시설에서는 2개의 키락이 걸려 있는 반면 원자가속엔진의 시동키는 3개의 키락이 걸려 있었다. 이 락을 해제하려면 3명이 동시에 키를 돌려야만 엔진이 가동되는 것이고, 동시에 키를 빼면 엔진은 멈추면서 급속도로 냉각을 시도하게 된다. 더불어 회전하는 자력도 사라져 자연스럽게 출력이 떨어지게 설계되어 있었다.
 3명은 서로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 후 숫자를 세었다.
 “3. 2. 1.”
 찰칵.
 우~~~웅~~~
 3개의 키가 동시에 락을 해제하자 조용하면서 묵직한 소리가 광장을 메우기 시작했다.
 “현재 3K.J, 9, 20, 91, 210, 600.. 1G.J돌파! 계속 상승 중 300, 900, 1T.J돌파!”
 소리가 들리고 수초 뒤에 모니터를 보는 연구원은 안정적인 출력상승을 알렸다.
 “와~~~~~~~.”
 점점 높아지는 출력에 연구진과 기술진에서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20T, 45T, 60T, 72T, 76T, 78T에서 멈췄습니다. 최대 출력 78T.J 현재 출력 고정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와~~ 성공이다!”
 “성공이야!”
 “우리가 해냈어!”
 모두가 정상적인 엔진가동에 기뻐하고 환호하였다.
 “김 박사, 성공이네. 축하하네.”
 “제임스, 자네도 고생 많이 했네. 세현아, 너도 수고 많았다. 우리가 해낸 것이야.”
 “제가 뭐 한 게 있다고요. 저보다 김 박사님과 제임스 박사님이 더 많이 하셨죠.”
 김 박사와 제임스 또한 성공적인 시운전에 서로의 고생을 축하해주었고, 쑥스러운 듯 세현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머리는 긁적였다.
 
 그렇게 안정세를 유지하면서 수분이 흘러갔다.
 삐.삐.삐.삐~~.
 “출력 상승 81T.J 84, 90, 계속 상승 중!”
 경보등이 울리기 시작한 지도 잠시. 모니터를 담당하던 연구원이 갑작스런 엔진출력 상승을 알렸다.
 “뭔가? 어서 출력을 다운시키게.”
 김 박사는 연구원에게 출력을 낮추라고 하였고, 연구원은 진땀을 흘리면서 할 수 있는 시도는 다해보았다.
 “박사님, 출력다운 시스템에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다운되지 않습니다.”
 연구원은 가능한 시도는 모두 해 보았지만,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엔진은 계속해서 높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이윽고 냉각기에도 부화가 걸리기 시작하면서 엔진 주변에는 수증기가 발생했다.
 “뭐라고? 김 박사, 어서 엔진을 강제 다운시켜야 하네. 세현아, 키를 빼자꾸나.”
 “네? 네.”
 “3.2.1.”
 찰칵.
 -키락이 걸립니다. 긴급다운 냉각을 시작합니다.
 3명은 호흡을 맞추어 동시에 다시 키를 OFF로 하면서 키를 뽑아내었다.
 삐.삐.삐~~.
 -냉각 시스템 다운. 냉각 시스템 다운.
 삐.삐.삐~~.
 엔진을 강제로 중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은 정상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것을 확인한 책임자인 김 박사의 얼굴에는 좌절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정령 실패란 말인가···.”
 “김 박사,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네.”
 좌절하는 김 박사를 뒤로 하고 제임스는 상황판단을 빠르게 내려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가 바로 마이크를 쥐었다.
 “긴급 상황 발생. 모두 탈출용 우주선으로 여기를 벗어난다. 질서 정연하게 신속히 탈출하라. 어서.”
 제임스의 빠른 판단에 연구진과 작업자들은 썰물 빠지듯이 이동을 시작하였다. 과거 세현의 부모님들이 행하던 실험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알고 있는 탓에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김 박사. 세현아. 빨리 이곳을 벗어나세. 짐을 챙길 시간이 없으니 일단 목숨이나 먼저 건지고 보세.”
 탈출을 하자고 하는 제임스. 그러나 김 박사는 세현을 제임스에게 밀어 주고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임스, 세현아, 그 동안 고생 많았다. 이번에 생긴 사고는 나의 불찰이다. 내가 남아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마. 제임스 박사는 세현을 데리고 빨리 피신하도록 하게.”
 그에 놀란 제임스와 세현. 특히 제임스는 그런 김 박사의 태도에 길길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무슨 소린가? 자네가 남아 있는다고 해서 저게 정상적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그러지 말고 같이 빠져나가세나. 지금 이렇게 떠들 시간도 없어.”
 “그래요. 같이 탈출해요.”
 연구진과 기술진은 대광장을 거의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지금 급한 대로 예전에 만들어 놓은 냉각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겠네. 오랜 시간은 못 버텨도 급한 대로 5~6분은 더 버틸 거네. 지금도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저 엔진이 난 더 시급하네.”
 “이런 젠장할. 김 박사, 아니 김주용. 이 새끼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자네가 가지 않는다면 나도 남겠어.”
 김 박사. 아니 김주용은 옛날부터 자기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하는 리안트 제임스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역시 이번에도 어김없이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 제임스의 대답에 김주용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임스. 자네 때문에 옛날부터 내가 엄청난 고생을 한 것을 알지 않나. 이번 한 번만이라도 내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게나.”
 제임스는 진지하게 부탁하는 김주용의 얼굴을 보면서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멱살을 잡았다.
 “야! 임마. 혼자 희생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알아주겠어. 살아서 이번 연구를 완성할 생각은 없는 거냐?”
 제임스의 손에 멱살을 잡힌 김주용은 천천히 손을 올려 멱살을 잡은 손을 빼면서 말하였다.
 “미안하네, 친구. 자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것 같군.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번 사고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또한 적지 않은 피해가 생길 것인데 만약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는 이가 생긴다면 계속해서 연구할 자신이 없을 것 같군. 미안하네.”
 사과 아닌 사과를 건넨 김주용은 세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부모 역할을 대신 해줄 순 없었지만 그의 친구인 박현민의 뒤를 이을 수 있도록 많은 지식을 나누어 주었다. 아직도 못해준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파왔다.
 “세현아, 꼭 살아서 너의 꿈을 펼쳐 보거라.”
 제임스는 김주용의 얼굴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르륵~.
 이윽고 한 방울의 눈물이 흐름과 동시에 제임스는 뒤를 돌아서 세현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세현도 제임스 못지않았다.
 ‘박사님. 부디 살아서 다시 뵐 수 있겠죠.’
 뛰어가며 뒤를 계속 돌아보는 둘을 보면서 김주용은 주머니에 있는 작은 외장형 디스크를 꺼내어 컨트롤 시스템 앞에 않았다.
 “Q. 광장에 있는 모든 문을 폐쇄, 그리고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해라. 지금부터 긴급복구 시스템가동과 동시에 우주선의 모든 시스템 제어를 이쪽으로 돌려라.”
 -알겠습니다.
 치이잉. 텅.텅.텅.텅. 우~~ 웅~~
 -모든 문 폐쇄완료. 시스템제어 클리어. 모든 명령체계를 이동시켰습니다.
 “수고했다. 자,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해야겠지.”
 그렇게 김주용은 다운되어 있는 냉각 시스템을 임시로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김주용이 가동시킨 시스템은 고작 임시방편으로 산불에 수화기를 들고 달려든 격지만, 그래도 지금에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헉. 헉. 헉.
 복도를 전력으로 뛰는 두 남자. 제임스와 세현은 뒤도 보지 않고 뛰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뛰었을까? 세현의 손을 잡고 앞을 달리던 제임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세현아, 저기 보이는 게이트로 가면 소형 우주선이 있다. 휴가나 놀러가기 위해서 내가 직접 개발한 우주선인데 이렇게 사용할 줄은 몰랐구나. 여기서 해어져야 할 것 같다. 김주용 그 녀석 혼자 멋지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을 두 눈 뜨고 도저히 못 볼 것 같다. 미안하다.”
 제임스는 세현을 떠밀다시피 밀고 뒤를 돌아 돌아온 길을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
 그의 모습에 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세현. 과거 자신의 부모님을 잃은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외톨이가 되었다는 생각에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제임스가 달려간 방향을 보고 있었다.
 뚝. 뚝. 뚝.
 이윽고 세현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더니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현은 그 동안 부모님처럼 대해주시는 두 박사님들 덕분에 쓸쓸함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도와 드리기 위해서 밤을 새면서까지 연구에 박차를 가해왔었다. 그런데 부모님처럼 이번에도 가족 같은 박사님들을 이렇게 보내야 한다면 과연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일까?
 “아니야. 그럴 순 없어. 그렇게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일까? 세현은 눈앞에 보이는 게이트로 가지 않고 방향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달렸다. 그의 눈에는 아직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눈물을 소매로 닦으면서 전력으로 뛰었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무엇이든 처음 겪는 슬픔이 힘든 법. 아직 두 번째는 일어나지 않았기에 이처럼 결단을 내렸을지도 몰랐다.
 “두 번 다시는 잃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헉.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에 도착한 세현은 문이 열리자마자 진을 불렀다.
 “진. 지금부터 우주선에서 탈출할 거야. 그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게 도와줘야겠어.”
 -세현 님,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넌 휴대용 마로로 옮겨가. 빨리! 시간이 없어.”
 
 마로 - 흔히 노트북 같은 크기에 에너지는 태양열 그리고 3차원 입체영상으로 영상을 보여 주는 최첨단 기기로 외부의 어느 정도 충격에도 내부를 보호할 수 있는 기능과 방수는 기본으로 한 초소형 슈퍼 컴퓨터다.
 
 -세현 님, 준비가 다되었습니다.
 방대한 데이터와 함께 진이 마로에 옮겨 가고는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그래? 그러면 무선으로 우주선 중앙시스템을 해킹해서 현 상황과 광장의 온도변화, 외부로 빠져나가는 인원을 모두 파악해줘.”
 -알겠습니다.
 세현은 한 손에 마로를 들고 서둘러 자기 방을 나와 제임스가 알려 준 우주선으로 다시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지금은 편히 몸을 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여가용 우주선이라도 방어용 시스템 한두 개는 있을 거야.”
 세현은 지금 제임스의 우주선으로 광장에 도착 후 김 박사와 제임스를 데리고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방어용 베리어가 제대로 작동이 된다면, 가능성은 있으니 말이다.
 헉헉헉헉.
 이내 게이트 앞에서 멈춘 세현.
 지잉~.
 “빨리. 빨리. 제발···.”
 천금 같은 시간이 지나고 게이트가 모두 열리자 소형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2인승의 작은 우주선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소형 우주선이야, 장난감이지. 하여간···.”
 우주선의 오픈 스위치를 눌러 빠르게 탑승한 세현은 마로를 우주선에 연결시켰다.
 “진. 우주선을 장악해. 시간이 없어.”
 -시스템 로딩 중.
 안절부절못하는 세현은 헤치를 닫고 우주선 전면의 화면을 보았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작은 명찰. 음각으로 파인 글씨는 페가수스라고 적혀 있었다.
 “우주선의 이름인가?”
 -시스템 로딩 완료. 명령을 기다립니다.
 진이 우주선의 모든 기능을 장악하고 세현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현재 상황은?”
 -현재 모든 인원이 탈출용 우주선을 탑승. 출발 못한 탈출용선은 4척입니다.
 “혹시 그럼 광장에 있는 엔진이 폭발하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도 알 수 있어?
 -예상 폭발 범위는 반경 40Km입니다. 페가수스로 우주선을 탈출 후 안전지대까지 피하는 시간은 9분입니다. 그리고 김 박사님이 계시는 광장 현재온도는 57도. 닥터 제임스는 김 박사님과 다른 중앙통제실에서 모든 탈출용선이 빠르게 나갈 수 있도록 게이트를 조정하시고 계십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은 우주선 내부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뒤 세현에게 알려 주었다.
 “우주선의 방어용 시스템은 뭐가 있지?”
 -현재 장착되어 있는 방어용 시스템은 레이저 건 1개와 10메가 줄 출력의 방어용 베리어가 전부입니다.
 “없는 것보다 낫지. 어서 광장으로 가.”
 -알겠습니다.
 페가수스는 진이 조종하며 광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게이트를 모두 오픈 후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세현은 옛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아무것도 못했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막막하게 아무것도 못하고 가족을 잃을 때보다 상황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두 박사님을 데리고 탈출해야 했다.
 
 빠르게 게이트를 열면서 앞으로 나가는 페가수스. 좁은 복도는 2인승 우주선인 페가수스가 지나가기에 별다른 무리가 없었다.
 -30초 후면 광장에 도착합니다.
 30초.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에 30초란 시간은 너무 긴 것만 같았다. 원자가속엔진에 이상이 생긴 지도 벌써 1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만큼 김 박사가 노력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10초 후면 광장으로 통하는 게이트에 도달합니다.
 이내 광장으로 들어가는 게이트 앞에 도달한 페가수스.
 “그럼 빨리 진입해서 박사님을 태워. 어서.”
 세현은 진에게 게이트를 열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게이트는 열리지 않았고, 진은 다급히 페가수스를 뒤로 후진을 시키기 시작했다.
 -광장 내부의 온도 급상승 현재 189도를 넘어서 빠르게 상승 중. 열로 인한 게이트 오픈 실패. 내부 온도 250도. 이곳을 벗어납니다.
 그 잠깐 사이에 온도가 급속도로 올랐다. 이는 아마도 광장에 화제가 난 것이리라. 그래서 그럴까? 진은 후진시키는 우주선의 속도를 높였다. 아니 최대 속도로 올렸다.
 “야! 진. 설명을 하라고!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변해버린 진의 태도에 세현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몰랐다. 거기다가 벌써 페가수스는 열리지 않는 게이트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진. 뭐하는 거야. 빨리 광장으로 들어가.”
 -긴급상황. 모든 명령을 거부합니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진을 만든 주인이 버젓이 눈앞에 있는데 명령을 거부한다니.
 “뭐야? 뭐가 긴급이야. 빨리 광장으로 가지 못해?”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이 예상됨. 여기를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위급 상황이므로 세현 님의 안전을 지키겠습니다.
 진이 모든 것을 장악한 우주선. 그러니 세현으로써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진의 말에 따르면 광장은 이미 초고온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란 소리였다. 결국은 구하지 못한 것이다.
 -20초 후 외부와 연결되는 게이트에 도달합니다. 세현 님 안전을 위해 밸트를 착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진, 이게 무슨 짓이야? 다시 돌아가지 못해?”
 빠르게 우주선 밖으로 향해가는 페가수스. 세현은 진에게 다시금 명령을 내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펑. 쿠아아아아아앙.
 막 우주선을 벗어난 페가수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들림과 동시에 세현의 앞으로 엄청난 불빛이 쏘아지고 있었다.
 -에너지 베리어 가동. 에너지 베리어 전방 최대 출력.
 그렇게 페가수스는 빛에 의해 완전히 뒤덮이고, 세현은 충격파에 의해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박사니···임···.”
 
 
 2장 이계
 
 
 이실리스 대륙. 2개의 제국과 8개의 왕국으로 이루어진 이곳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다. 대표적인 생명체로는 이실리스를 조율하는 드래곤을 비롯해, 엘프, 드워프, 휴먼(인간)이 있지만, 그 외 수많은 몬스터와 동물들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실리스에는 가끔 특별한 종족이 나타나곤 하는데 흔히 지옥이라는 마계의 마족과 천국이라는 천계의 천사들이 그들이었다. 천족은 마족이 발호할 때마다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신전에 신탁을 내려 신녀를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는 이실리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인간들의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중 최고의 국력을 자랑하는 아스페로 제국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는 로스판데 제국은 대륙의 1/3를 영토로 운영하고 있다. 그 외, 요이란체 왕국과 샤스로제 왕국 두 나라는 두 제국 사이에 끼여 제국의 눈치만 보면서 매년 막대한 공물을 바치고 있는 상황이고, 자스벨로 연합국가(자스벨로, 이르샤뷰, 카이루, 프란체르)는 중립을 유지하며, 남은 두 왕국, 쥬디스 왕국과 브히제르 왕국을 방패삼아 두 제국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많은 나라 중 요이란체 왕국의 영토에 있는 로이칸 산맥. 이실리스 대륙에서 2번째로 험하다는 이 산맥에는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수의 드래곤들이 생활하는 곳이기도 했다. 또한 드래곤의 영토이기에 일국의 영토로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땅이 바로 로이칸 산맥이다. 그런 쓸모없는 땅을 요이란체에서는 자국의 영토에 포함을 시켜 산맥 서쪽의 아스페로 제국의 간섭을 막고 있는 중이다.
 
 그런 험난한 로이칸 산맥에 어느 날 정체불명의 물체가 떨어졌다.
 쿵.
 소형 운석이 떨어진 것과 같은 분화구가 당시의 충격을 말해주며, 물체 주변으로 반경 20여 미터는 될 듯한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엔진 출력 90%다운. 운행 불가능. 방어용 베리어 사용 불가. 생명유지장치 앞으로 2시간.
 삐-삐-삐-
 지지직~~.
 경고음을 알리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리고 동체 주변으로 전기 스파크 같은 것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생명유지장치 앞으로 1시간. 외부스캔을 시작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는 소형 우주선으로 세현이 타고 있던 우주선이었다. 하지만, 탑승자인 세현은 충격으로 기절했는지 의식이 없고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진의 경고음밖에 없었다. 인공지능인 진은 주인의 명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환경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공기농도 산소 23%, 질소 50%, 이산화탄소 3%, 오존 2%, 알 수 없는 기체 15%, 기타 7%, 생활환경 양호. 생명유지장치 중단. 현재 위치를 스캔합니다.
 진은 대기의 환경을 조사하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확인되자 생명유지장치를 중단하고 외부의 공기를 순환할 수 있도록 우주선의 통풍구를 개방하였다.
 -스캔 완료. 주변 100미터의 데이터를 저장합니다.
 “으···윽.”
 진이 외부지형을 스캔하여 3차원으로 지도를 형성하여 저장하고 있는데 우주선 안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잠깐의 신음만 들릴 뿐, 당사자는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은 에너지 1%미만. 대기모드로 전환합니다. 에너지 충전 중.
 진의 충전이라는 음성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윽···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어떻게 된 거지? 아··· 아, 머리야··· 그 때··· 분명 빛이··· 맞아··· 내가 정신을 잃었나? 여긴 어디지, 박사님들은···.”
 세현이 깨어난 것은 이곳에 도착하고 23시간이 경과한 후였다. 뇌를 뒤흔드는 듯한 두통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아마도 후유증인 듯싶었다.
 세현이 타고 있던 페가수스라는 소형우주선은 하루 전 연구를 하는 우주선의 폭발에 휘말려 튕겨났다. 튕겨 나가는 도중 엄청난 에너지로 일순간에 발생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게 되었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폭발의 영향으로 이미 페가수스라는 소형 우주선은 상당부분 망가진 상태. 방금 정신을 차린 세현은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두통과 수십 분 동안 씨름을 하던 세현은 조금씩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통이 가라앉자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절하기 직전 상황을 더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박사님들을 도와주고 탈출할 생각을 했고, 빠르게 광장에 도착했지만 갑자기 진이 명령거부를 하면서 탈출을 시도했던 것이 떠올랐다.
 “진. 진. 진.”
 진의 명령거부를 떠올린 세현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진을 불렀다. 그렇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인공지능 진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우주선 내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이라 보이는 것 하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어디야?”
 현 상황을 전혀 모르는 세현. 우주선은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고 있었지만, 중력이 있는 것을 보아 우주는 아닌 듯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어둠을 더듬어 문을 여는 오픈버튼을 눌렀지만 에너지가 거의 없는 우주선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작동이 안 돼··· 충격으로 고장났나 봐. 어떻게 하지···.”
 세현은 손이 닿는 곳의 다른 버튼을 눌러 보았지만 페가수스라는 우주선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여긴 어디지. 밖의 상황은··· 박사님들이 무사한지도 알고 싶어.”
 세현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실내에서 운전석 앞쪽의 버튼들을 손으로 더듬으며 하나하나씩 다시 눌러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작동되는 것은 하나도 없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여기도 아닌가. 비상. 비상 전원··· 젠장. 비상 버튼도 안 만들어 놓은 거야? 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김 박사와 제임스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럴까? 세현의 눈에는 어느덧 물기가 고이기 시작했다.
 “박사님, 제임스. 흑흑흑···.”
 어렴풋이 그도 우주선이 폭발한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괜찮아’라고 스스로 다독여 보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죽음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얼마나 울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울다 결국 지쳐 버린 세현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에너지 충전율 7% 비상모드에서 기동합니다.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에 세현의 눈이 번쩍 떠졌다.
 “진. 진. 진이야?”
 -그렇습니다. 세현 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진. 어떻게 된 거야? 설명 좀 해줘.”
 울다가 잠이 들었던 세현은 진의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56시간 전에 우주선의 폭발로 인한 영향으로 일시적인 블랙홀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베리어를 최대출력으로 사용하여 에너지의 대부분이 소실되었기에 블랙홀의 흡입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여 밖으로 다시는 나올 수 없다는 미지의 현상이다. 24세기에 들어서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로 수많은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블랙홀에 관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곳 지상 5000피트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운행이 불가능하여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가능한 한 지면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남은 모든 에너지를 지면에 닿을 때 방출하였고, 비록 기체의 손상은 심하지만 주인님의 안전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세현의 반응을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그 후, 이곳의 환경을 스캔해 본 결과, 과거 지구와 흡사한 행성으로 판단, 대기와 일부 주변 지형을 스캔하였습니다. 하지만, 남은 에너지가 얼마 없어 일시적인 다운현상이 발생. 20시간 동안 대기모드로 전환하였습니다.
 폭발 때 정신을 잃은 세현이 다시 정신을 차린 뒤 울다 지쳐 잠이 든 뒤로 20시간이 지났으며, 그 동안에도 진은 나름대로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그럼··· 그럼 지금은 어떻게 가동을 하고 있어? 에너지··· 에너지가 바닥났다고 했잖아.”
 진은 컴퓨터로써 전기가 계속적으로 공급이 되어야만 유지가 되었다. 하지만, 전기 공급이 중단이 된다면 이 낯선 땅에서 세현은 또다시 외톨이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진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다급하게 물어본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태양계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태양열처럼 사용할 수 있는 빛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시간으로 20시간. 이곳의 하루는 20시간으로 그중 11시간이 낮으로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고, 나머지 시간은 밤으로 변하는 곳입니다. 태양계의 태양처럼 빛을 내는 행성이 이곳에는 2개가 있습니다.
 태양계는 말 그대로 태양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8개의 행성이 공전을 하고 있는 곳이지만, 이곳은 태양이 두 개로 태양계의 태양보다 작은 두 개의 태양이 행성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적다는 것은 태양처럼 생긴 행성의 자전이 지구보다 빠르거나 행성 자체가 지구보다 작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 그럼 그 태양처럼 생긴 행성에서 에너지를 모을 수 있다는 소리야?”
 -태양계의 태양처럼 에너지를 생성할 수는 없지만, 1/10 정도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습니다. 같은 에너지임에도 이곳의 대기에는 분석이 되지 않는 물질이 방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11시간 동안 모은 에너지가 약 5%밖에 되지 않습니다.
 세현은 진의 설명을 들으며, 어느 정도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앞으로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할지, 또 어떻게 고향에 돌아갈 것인지가 그의 머릿속을 온통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간다고 해도 이미 죽어버린 박사들을 다시 볼 수 없는 없었다. 그들은 이미 우주선의 폭발로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세현은 그리움을 넘은 허탈함에 삶의 의욕을 상실했다.
 
 멍하게 앉아 있은 지도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대체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하루는 꼬박 지났을 것이다.
 꼬르륵~~~.
 인간의 신체는 참 특이한 기능이 많았다. 일명 생리적 현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생명은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당연히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 무기력한 세현의 정신을 현실로 끌어 올렸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세현은 당연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배고프다는 신호는 진에게도 들렸다. 진은 이대로 자신의 주인이 말라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세현에게 말을 걸었다.
 -단식은 몸에 좋지 않습니다. 뭐라도 드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진은 주인의 몸을 걱정해서 한 말이지만, 당사자는 전혀 반응은 없었다. 대답조차 없으니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은 진이지만,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세현의 입이 작게 열리기 시작했다.
 “박사님··· 박사님 같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김 박사님 성격상 충격은 있었더라도 지금 상황을 충분히 분석하여 살아남는 방법을 생각했을 것이고, 닥터 제임스 님 성격으로는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앞을 헤쳐 나갈 것입니다.
 그랬다. 그 두 명의 박사라면 진의 말대로 무엇이든 했을 것이다. 책임감이 강한 김 박사와 생각 없어 보이는 제임스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진의 말을 들은 세현은 다리를 몸으로 바짝 당기며 머리를 다리 사이에 파묻었다.
 “···그렇겠지··· 그분들은 강하신 분들이니깐.”
 -주인님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습니다.
 두 박사는 무인도에 떨어져도 지금까지 배운 지식으로 무엇이든 했을 것이고, 또한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하고 죽는다면 슬퍼하실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사후에 관한 데이터가 없습니다.
 “···싫어하셨겠지? 박사님이 지금 나였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 앞으로 나아가셨겠지···.”
 
 낯선 행성에 불시착하고 약 70시간이 흘렀다. 사람이 아무 것도 안 먹고 70시간을 버틴다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세현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꾸르륵~.
 또다시 세현의 배에서 번개가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은 세현의 눈이 다시 천천히 떠지며 말라 버린 입술과 꺼져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안 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없겠지··· 그래··· 일단 살고 나서 앞으로··· 진, 마실 게 있을까?”
 독백 같던 중얼거림이 드디어 진의 이름까지 부르게 되었고, 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세현의 말에 대답을 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뒷좌석 밑에 간의 식품저장고가 있습니다. 가동이 안 되었던 시간 동안 식품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수 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확인해보십시오.
 “그래···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진, 어두워서 앞이 잘 안 보여.”
 티티틱~.
 세현이 손으로 뒷좌석을 더듬자 우주선 내에서 둔탁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이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긴 하지만, 한 점 빛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당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도 그것은 알고 있었기에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하여 실내를 조금 밝혀 주었다. 아주 약한 빛이었지만, 완벽한 어둠 속에 있던 세현은 실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에너지 절약으로 인한 비상등 가동시간은 20분으로 한정합니다.
 “고마워··· 그래도 20분은 너무 짧잖아.”
 -가용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진의 투덜거리는 말투에 세현은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했다. 20분. 짧아도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뒷좌석 의자 밑을 찾아보니 우주방위군에서 사용되는 식량이 있었다. 그와 더불어 1리터짜리 생수가 담긴 2개 물통과 알약이 들어 있는 작은 통을 발견했다. 알약은 아마도 영양제일 것이다.
 “이게 전부인 것 같아. 당연한 건가? 장거리 여행을 목적으로 가진 우주선도 아니니··· 식량이 이 정도면 많은 거겠지.”
 
 쩝쩝쩝.
 처음엔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하지만 약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세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씩 먹기 시작하던 그의 손과 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20여 분 동안 세현은 걸신이 들린 것처럼 3개의 식량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러는 도중에 울기도 했지만, 하나의 전투식량을 비운 뒤로는 그런 모습도 지워졌다.
 꿀꺽. 꿀꺽.
 “···잘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세현은 잠시 남은 식량을 확인해 보았다. 얼마나 이곳에 있어야 할지 모르는데 가진 것이 너무나 부족했다.
 “진. 혹시 이것 말고 더 없을까? 이걸로 며칠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세현의 걱정은 당연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슬픔도 좌절도 맛보면서 정신을 차린 세현이다. 마음을 다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세현은 이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식이 부족하니 어떻게든 마련을 해야만 했다.
 -현재 위치는 거대한 산맥을 이루고 있는 산의 중턱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도 산짐승들과 일부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이 서식할 것입니다.
 세현이 먹는 것을 걱정하자 진이 빠르게 대답을 해주었다. 인공지능이라서 그런지 현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럼 그 짐승이란 것을 잡아먹어야 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인간의 몸에 필요한 영양분은 식물로만 해결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랬다. 식물도 식물 나름이지만, 대부분의 식물만으로는 사람은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진 지금은 낮이야, 밤이야?”
 -지금 시각은 이곳 시간으로 밤이고 밤이 된 지도 7시간이 넘었습니다. 앞으로 해가 떠오르기까지 약 1시간 50분 남았습니다.
 우주선은 유리로 되어 있는 부분이 있지만, 일반 유리처럼 빛이 투과가 되지 않았다. 지구에 있을 때는 대기가 태양빛을 대부분 막아주기에 그냥 햇볕을 쐬어도 되지만, 우주에서는 태양 빛을 직사로 맞을 경우 생명에 치명적이었다. 때문에 우주선에서는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특수한 유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밖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세현이 몰랐던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낮에 사냥과 채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난 아직 그런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세현의 나이는 14살로 태양계에서 2달이 지나면 15살이 된다. 그리고 우주생활을 하는 거의 모든 인간들은 사냥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고, 살아 있는 생명 또한 죽여본 적이 없었다. 그 점은 세현도 마찬가지였다.
 -지구의 역사를 보면 지구인은 사냥 시에 도구 즉, 돌이나 나무 등으로 사냥을 시작하여 차후에는 금속을 활용해 검, 활, 창을 사용하였고, 화약이 개발되면서 화포, 조총에서 미사일, 총으로, 그 후 고농축 에너지를 사용하는 레이저까지 진화하였습니다.
 “내가 하는 말은··· 그게 아니고···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사냥을 해? 사냥을 하면 다른 생명을 빼앗아야 하잖아. 그걸 어떻게 해.”
 -세현 님이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습니다. 우선 작은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주변의 돌이나 나무들을 이용해 사냥을 해보십시오. 페가수스에 레이저포가 하나 달려 있지만, 에너지 소모가 많아 만약의 위험에 대비해야 하기에 사용을 못합니다. 참고로 페가수스가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약 3일 동안 주변에 생물로 판단되는 그 어떤 물체도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우주선이 불시착한 후 주변 20여 미터가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주변의 동물들이 겁을 먹어서 근처에도 오지 않고 있었다.
 “그럼 밖에 나가서 동물들을 찾아야 해? 다른 방법은 없어?”
 -지금 외부 기후로 볼 때 몇 시간 후에 비가 내릴 것입니다. 이곳의 비가 식수로 사용 가능한 경우, 현재 남아 있는 식량과 같이 조절을 한다면 15일은 버틸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우주선의 에너지가 충전된다면, 약 80% 정도는 복구가 될 것입니다. 그 후에 운행이 가능합니다만··· 현재 우주선의 몇 곳이 파손되어 수리를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곳으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소형 우주선인 페가수스는 폭발과 불시착의 영향으로 엔진케이블이 끊어졌고 양쪽에 추진 장치 4개 중 2개가 트러블이 발생하여 사용이 불가능했다. 크게 보면 손을 볼 곳은 3군데지만, 외장에 상처가 여기저기 나 있어서 빗물이 스며들면 제2, 제3의 트러블이 발생할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세현 님이 배우신 기술이면 여기에 실려 있는 기본 공구만으로 충분히 수리가 가능합니다. 다만, 기체에 비가 스며들 경우 저에게까지 영향이 올 수도 있으니 가급적이면 비를 먼저 막아 주셨으면 합니다.
 “해가 뜨면 주변에 비를 막을 수 있는 게 있는지 한 번 찾아볼게. 공구는 어디 있어?”
 -기본 공구는 운전석 왼쪽 발 옆. 비상공구함이라고 있을 겁니다. 찾아보십시오.
 딸깍.
 “이건가?”
 운전석 왼쪽 하단의 버튼을 누르자 딸깍 소리와 함께 기본공구가 들어 있는 함이 보였다. 공구함을 열어 안의 내용물을 꺼내어 확인하였는데, 있는 것은 각각의 크기의 스패너 5개와 니퍼, 펜치, 망치, 드라이버, 휴대용 용접기가 전부였다.
 “공구가 너무 부족한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아직 해가 뜰 시간이 남았으니깐 잠깐 눈 좀 붙여야겠어. 진, 날이 밝으면 깨워 줘.”
 아직 해가 뜨려면 1시간이 넘게 남았기 때문에 진에게 알람을 부탁한 뒤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눈을 감았다. 세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그의 눈에서 한줄기 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옷깃을 적셨다.
 
 시간은 흘러 날이 밝기 시작하였다.
 -세현 님 일어나십시오.
 날이 밝아 오자 진은 세현을 깨우기 위해 그를 불렀다.
 “으음···.”
 -날이 밝았습니다.
 “···어? 어. 맞아. 우주선을··· 우주선을 정비해야하지.”
 두두둑. 뚝. 딱. 까딱.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세현은 진의 말을 듣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몸을 조금 움직이자 굳어 있던 뼈들이 비명을 지르며 마찰음을 내고 있었다.
 “진. 밖으로 나가야 하니 문 좀 열어 줘.”
 뼈의 마찰음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세현은 앉은 상태에서 간단하게 몸을 더 풀었다. 그리곤 수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뒤 진에게 우주선의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진에게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 나왔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수동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직접 여시길 바랍니다.
 팅!
 “···응? 내가 잘못 들었나? 진, 뭐라고 했어 방금?”
 -직접 여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참 어이없게도 진은 에너지 절약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주인인 세현이에게 ‘나 힘없다, 니가 열어라’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인공지능은 주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에게 절대 복종을 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진이 아무리 진화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까지 변경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뭐? 이거 하나 여는데 에너지가 얼마나 든다고 못 열어 준다는 거야?”
 자신의 연약한 팔로 우주선의 뚜껑을 어찌 열란 말인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라고 세현은 생각했다. 그리고는 진에게 따지듯 다시 물었다.
 “낮이니깐 에너지 충전은 될 거 아냐? 그런데도 안 된다니. 무슨 소리야?”
 -말씀 드렸다시피 오늘 비가 내릴 확률이 있으므로 구름에 가려지면 에너지 충전은 불가능합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은 11시간. 뜨고 지고 시간 1시간씩 총 2시간을 뺀다면 9시간 동안 충전이 가능합니다. 9시간을 충전해야 고작 5%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꾸준히 에너지를 축적시켜야 합니다. 지금 에너지량은 7.4%입니다.
 진의 대답에 벙찐 세현은 어쩔 수 없이 손으로 머리 쪽에 있는 강화유리를 밀었다. 진의 말이 충분히 논리적이었기보다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진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이익. 익. 이얌!”
 텅. 끼리릭.
 문이 열리면서 밖의 맑은 공기가 세현을 맞이하였다. 해가 뜨는 하루의 기온 중 제일 상쾌한 공기가 만들어지는 때는 밤에서 낮으로 바뀌는 아침이기 때문이다. 음의 기운과 양의 기운이 만나면서 맑고 차갑지만 산뜻한 공기가 생성이 된다.
 부르르르.
 “으으으. 이곳의 기온은 상당히 쌀쌀하네. 혹시 우주선에 천이나 여벌의 옷이 있을까?”
 진에게 물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어 세현은 고개를 돌려 우주선 내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진. 혹시 입을 만한 옷이나 천 같은 거 없을까?”
 -전 시스템을 운용할 뿐 그건 것까지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곳에 오고부터 진의 말투가 점점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증상이 자주 보이고 있었다. 한편으로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하였다.
 “···설마··· 기분 탓이겠지? 제법 쌀쌀하니 일단 내부를 좀 찾아봐야겠어.”
 우주선 앞좌석에는 자신이 앉아 있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인했기에 뒷좌석을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하는 와중에 뒷좌석 뒤편에 작은 공간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쪽으로 고개를 밀어 넣어 내부를 확인한 세현. 무언가 담요 같은 천이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그 담요를 잡아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담요네. 두께도 적당하고 이것만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어.”
 담요를 망토 걸치듯이 자신의 몸에 두른 뒤 일어나려고 하는데 담요 아래에 작은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상자? 보통 상자는 아닌 것 같고···.”
 A4용지 박스의 반 정도 되는 크기의 상자는 언뜻 보아도 평범한 상자가 아니었다. 세현은 양손을 밀어 넣어 상자를 빼내었다. 상자를 꺼내고 세현은 뭐가 들어 있을까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이내 상자를 열었다.
 “······!”
 상자의 뚜껑을 연 세현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상자 속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세현이 보고 있는 물건들은 과거 지구에서 쓰였던 권총 한 자루와 총알이 들어 있는 조그만 박스 그리고 정밀한 장비를 손볼 때 쓰는 공구였다.
 “어라? 이건··· 22세기 초반까지 쓰였던 권총인 것 같은데··· 이런 게 왜 여기 있지? 그리고···.”
 권총 밑에 있던 공구 상자의 표면에는 내용물을 알리는 글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 스라이드 연장세트? 어떻게··· 어떻게 돈으로는 구하기 힘들다는 공구가 여기에 있는 거지?”
 상자의 내용을 확인한 세현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상자에는 제임스가 남한테 보여 주기조차 싫어할 정도로 보물같이 여기던 물건인 지구에서 쓰였던 권총과 공구상자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권총의 정식명칭은 데저트 이글이라고 불렸고, 공구상자의 내용물은 티타늄합금으로 22세기 초반에 만들어졌다. 단 10상자만이 제작이 되었다는 스라이드 연장은 강도와 정밀함이 다른 연장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완벽하다고 하며 부르는 게 값인 공구세트였다. 또한 근래에 들어 얼마 남지 않은 티타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추가로 한몫 거들어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말 그대로 득템이 아닐 수가 없었다. 우주선을 수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연장이 좀 부족하였는데 이게 있으므로 어느 정도 수리할 수 있는 공구는 모두 갖추어졌다.
 “일단 이건··· 잘 보관해두고 우선 주변에서 덮을 만한 것들을 찾아봐야겠어.”
 세현은 상자를 뒷좌석에 놔둔 채 우주선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주선 주변으로 약 20여 미터의 땅이 나무는 물론 풀도 한 점 없는 황무지로 변해 있었지만, 세현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연이라는 것을 느껴 보지 못한 탓이다. 그렇게 우주선에서 내린 세현은 앞에 보이는 숲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주변이 꼭 분화구처럼 생겼네. 일반 지형보다 땅도 많이 꺼져 있고 이대로는 많은 비가 오면 물이 고이겠어.”
 비가 많이 내린다면, 우주선이 있는 가운데는 반드시 물이 고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선을 수리한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작동이 될지 미지수였다. 세현은 다시 발걸음을 페가수스로 돌려 우주선으로 다가갔다.
 “진, 나는 비를 가릴 수 있는 것 좀 찾아올게. 넌 여기 물이 안 고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
 -저도 그 부분이 걱정스럽습니다. 일단 물이 고여 버리면 떨어지는 빗물을 막는다고 하여도 고인 물까지는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러니 방법 좀 찾아봐. 난 덮을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볼게.”
 세현은 진과 대화 후 다시 숲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크레이터로 인하여 약간 경사가 생겨버린 땅. 육체노동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세현은 우주에서의 낮은 중력에 몸이 적응되어 있었다. 그런 탓인지 평소에 느꼈던 중력보다 다소 높은 중력이 몸을 누르자 세현의 체력은 빠르게 떨어져 갔다.
 “헉··· 헉··· 이곳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겠어. 조금만 움직였는데··· 힘들다. 죽을 것 같아.”
 얼마 움직이지 않았는데 체력이 거의 바닥까지 떨어졌다. 세현은 크레이터를 벗어나 나무 밑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몸을 이끌어 숲속에서 쓸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그러는 도중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고 자신이 알고 있던 나무나 풀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들이 신기하네. 풀도 처음 보는 것들도 많고.”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옛날 지구상의 식물과 일부 우주선에서 재배하던 식물들과는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이자 이곳의 식물들이 신기하게 보였다.
 “와! 이건 잎이 왜 이리 커? 꼭 우산 같잖아.”
 넓고 커다란 잎을 가진 식물은 자이언트 쉘이라는 식물이었다. 이실리스 대륙에서도 흔하지 않은 풀과에 속하는 식물이었지만 쓰임새가 다양하다 보니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만 자연 상태로 자생을 하고 있었다.
 “이거 몇 개만 있어도 충분히 기체를 덮을 수 있겠는데.”
 세현은 첫눈에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자이언트 쉘의 잎을 따기 시작하였다.
 “이이익···으···라···라라라···차.”
 뚝.
 줄기가 다소 굵어 세현은 온 힘을 다 써서야 간신히 하나를 꺾을 수 있었다.
 줄기를 꺾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하자 적당한 양의 잎이 모였다. 세현은 자신이 따놓은 잎을 보고는 두 개의 줄기를 각각 하나씩 한 손에 쥐고는 자신과 우주선의 거리를 확인해 보았다. 세현이 꺾어 놓은 8개의 잎을 두 개씩 들고 움직인다면 총 4번을 왕복해야 한다. 또한 잎이 큰 만큼 무게도 적잖게 나갔다. 때문에 한 번을 옮기더라도 중간 중간에 몇 번을 쉬어 주어야 했다.
 “이 정도면 되려나? 부족하면 몇 개 더 꺾으면 되니깐. 으라라차차.”
 땅에 거의 끌다시피 세현은 양손에 하나씩의 잎을 끌고 우주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억.허억.허억. 아이고 나 죽네.”
 털썩.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힘들게 도착한 세현은 땅바닥에 자이언트 쉘의 잎을 내려놓고 땅에 주저앉아 버렸다.
 “헉, 헉, 헉. 일단 좀 쉬었다가 덮어야겠어. 뭐가 이렇게 무거워.”
 풀잎 2개 무게라고 해봐야 얼마나 할까 생각하겠지만 자이언트 쉘의 잎은 다 자란 잎이 개당 5킬로그램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세현이 끌고 온 2개의 잎은 다 자란 잎은 아니지만 개당 4킬로그램은 거뜬히 넘었기 때문에 대략 8킬로그램이 넘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크기가 작았더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잎의 크기가 크다보니 더욱 많은 힘이 들어가야 했다.
 우주선에 도착한 세현은 주저앉아서 대략 5분의 휴식을 가진 후 다시 몸을 일으킨 뒤, 잎 하나하나씩 우주선 뒤쪽 기체를 덮기 시작했다.
 “비가 오기 전에 빨리 덮어 놔야··· 으이차.”
 단 2장의 잎을 덮는 데 소요된 시간은 무려 10여 분.
 “하아. 힘들어 쓰러지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두 장으로 많이 가려지네. 앞으로 3번만 더 갔다 오면 되겠다. 에고···.”
 누가 들으면 인생 다 산 것 같은 말투를 뱉으며 세현은 다시 잎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주선과 꺾어 놓은 잎의 거리가 불과 4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해주었다.
 
 “헉, 헉, 헉.”
 같은 일을 한 번 더 반복하며 세현의 입에서는 단내까지 풀풀 풍겼다.
 “헉, 헉, 헉. 이제 두 번만. 두 번만 더···.”
 부들부들. 풀썩.
 엄청난 체력의 소모로 인하여 다리는 작은 경련까지 일 정도가 되어버려서 그런지 두 번이나 더 갔다 와야 한다는 생각에 안 그래도 후들거리는 다리의 힘은 더욱 빠져 자리에 주저앉게 되었다.
 “하아. 하아. 하.”
 세현이 땅바닥에 잠시 치진 몸과 다리를 쉬게 했다. 조금 쉬었던 것 같은데 이내 십여 분이 흘렀다. 하늘은 점점 짙은 구름의 양이 증가하고 있어 곧 비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 어두워지고 있네.”
 쉬고 있던 세현의 머리에서 밝은 빛이 점점 약해지고 어두운 그림자가 숲을 조금씩 메우기 시작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우주생활을 하던 세현은 이런 자연현상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앞으로 닥쳐올 비에 대한 생각은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저게 진이 말하던 비를 내리는 구름이라는 건가? 분위기를 봐서는 조만간 비라는 것이 내릴 것 같은데··· 빨리 움직여야겠어. 으차···.”
 하늘에는 떠 있는 구름들은 점점 먹구름으로 변하고 있었기에 세현은 마냥 자리에 앉아 쉬고 있을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기합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잎을 따놓은 곳으로 걷기 시작하는 세현.
 “이제 두 번··· 두 번만··· 하아. 하아···.”
 그렇게 다시 힘든 중노동이 시작되었다.
 
 지지직. 딱.
 “마지막이야. 이것만 하면 쉴 수 있어.”
 처음 꺾은 8개를 총 4번에 걸쳐 모두 옮겼기 때문에 처음과는 다르게 우주선의 기체를 모두 덮을 수 있었다.
 흠칫.
 그때, 우주선이 있는 크레이터에 도착한 세현은 갑자기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았다. 잎줄기를 끌며 크레이터로 몇 걸음을 옮길 때 잠깐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친 몸에 땀으로 샤워를 한 세현이지만 조금 전의 느낌으로 더욱 많은 땀이 그의 몸과 옷을 적시고 있었다. 세현은 제자리에 서서 잠깐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그곳을 주시했다.
 울창한 숲 때문일까? 시야가 가려져 멀리는 보이진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나무와 풀 정도밖에 보이는 것이 없자 애써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조금 전의 기분을 지우기 시작했다.
 “잘못 들었나? 뭐가 묵직한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라고 생각한 세현은 다시 줄기를 끌고 우주선 쪽으로 이동했다.
 쿵. 쿵.
 그때였다.
 쿵. 쿵. 쿵.
 조금 전에 들렸던 방향에서 이번에는 확실한 소리가 땅과 대기를 울리며 연속으로 들려왔다. 순간 세현은 손에 잡고 있던 잎을 자신도 모르게 떨어뜨리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푸드득··· 다다닥···
 쿵. 쿵. 쿵. 우지직.
 다소 멀리 있는 나무 위로 새들로 보이는 것이 날아오르고 무엇인가 꺾이는 소리와 함께 땅을 울리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것이 뭔지 몰라 섬뜩함까지 들었다. 그래서 그럴까? 세현은 자이언트 쉘의 잎을 땅에 내버려 두고 지친 몸을 이끌어 우주선이 있는 곳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쿵. 쿵. 우지직. 쿠어어.
 “헉, 헉, 헉···.”
 점점 더 가까워지는 소리와 누가 지르는지 모를 괴성. 그 소리는 세현에게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세현은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뒤를 돌아보면 그의 지친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다. 세현은 불과 10여 미터의 거리가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이를 악물고 달려 이내 우주선에 도착한 세현은 몸을 날려 우주선 안으로 들어갔다.
 쿵··· 쿵··· 쿵···
 쿠~~오~.
 쾅···!
 또다시 들려오는 괴성. 들리는 소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근처까지 와 있다고 알려 주고 있었다. 과연 그 소리의 주인공이 어떤 것인지 궁금함이 들었던 세현은 우주선에 몸을 숨긴 채 다소 안정된 마음으로 고개를 살짝 밖으로 내밀었다.
 “······!”
 쿠아아아.
 밖으로 고개를 조금 내밀어 목표지점을 확인한 세현. 무엇을 보았는지 세현의 몸이 일순간 경직되면서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대체 무엇을 보았을까?
 
 
 3장 생명체
 
 
 덜덜덜···.
 세현은 그저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이러는 것일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3미터 크기의 몸체를 가지고 아랫도리는 풀 같은 것인지 천인지 모를 것을 두른 괴생명체였다. 거의 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괴물의 오른손에는 나무인지 금속인지 모를 몽둥이가 들려 있고 연신 괴성을 지르며, 한 발 한 발 우주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 저, 저게···.”
 쿵. 쿵. 쿵.
 정체 모를 생명체는 크레이터 중앙에 있는 우주선을 발견하였고, 그 속에 있던 세현을 발견하였다.
 쿠어어. 쿵.쿵.쿵.쿵.
 세현을 발견한 괴물은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을 빠른 속도로 20여 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고 있었다.
 -긴급 시스템 가동. 에너지 8.2% 충전완료. 레이저 건 사용승인. 거리 7미터 방향 남동. 각도 28도. 목표물 조준완료. 레이저 출력5.0% 한정. 발사.
 피웅.
 펑.
 그 순간 진의 음성과 함께 우주선의 레이저 건이 빠르게 목표를 찾았다. 비록 낮은 출력의 화력이었지만, 고농축 에너지는 타겟을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레이저 건에 머리를 맞은 괴물은 그대로 머리를 잃어야 했다. 머리가 사라진 괴물은 신체를 담당하는 중층부를 잃어서 그런지 달려오는 속도와 함께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쿵.
 아직 비는 오지 않고 있었기에 마른 바닥에는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지만, 이내 사리지고 괴물의 시체만이 덩그러니 자리를 잡았다.
 -목표 침묵. 남은 에너지 잔량 3.1% 최소모드로 변경. 모든 시스템 정지. 대기모드로 전환.
 상황은 불과 몇 초 만에 종료되었다. 세현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3미터의 죽어 있는 괴물을 보았다. 큰 덩치에 머리를 잃은 괴물은 땅에 처박힘과 동시에 작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머리가 깨끗하게 날아가서 그런지 목 부위로 쉴 새 없이 회색 액체를 밖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덜덜덜···.
 그런 괴물의 시체를 세현은 한동안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세현은 쓰러진 괴물이 전혀 미동이 없자 그제야 마음이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를 작은 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뭐, 뭐야 저건? 이런 게··· 이런 게··· 여기에 있는 거야?”
 지금 눈앞에 쓰러져 있던 괴물. 낯선 곳이라 당연하겠지만, 생전 처음 보는 생물이었다. 태양계의 그 어떠한 생물도감에도 지금의 괴물, 그 비슷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곳의 동물? 아니야··· 동물처럼 보이지는 않았어··· 분명 두 발로 서서 움직였어··· 진.”
 아직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마음으로 괴물을 보면서 세현은 앞으로 저런 것과 자주 마주친다면 아마 이곳에서 자신은 살아남진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에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은 세현은 진을 불렀다. 지금은 누구라도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은 침묵만 유지하고 있었다.
 “···너, 너··· 젠장··· 대답 안 하면 부셔버릴 거야.”
 겁에 질려서 그럴까? 세현은 죄도 없는 진에게 화풀이 비슷한 성질을 부렸다. 지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려움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대기모드 해제. 에너지 잔량 3.1% 일부시스템 가동. 최적모드로 변경합니다. 부르셨습니까?
 세현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마침 진이 세현의 말에 대꾸를 해주었다.
 “왜 내 말을 씹고 그래? 너··· 너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일단 전 세현 님의 말을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 대기모드로 변경하여 바로 대답을 못 드린 것뿐입니다.
 세현은 어이가 없었다. 이제는 변명까지 하는 것이다. 물론 옛말에도 ‘핑계없는 무덤 없다’라고 했던가? 하지만 진은 인공지능.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변명을 하는 것이다. 세현은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너··· 혹시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이곳으로 떨어질 때 충격을 조금 받긴 했지만, 기체가 파손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문제는 없습니다.
 세현은 설마 하는 심정에 걱정이 들었다. 물론 진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대답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스템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진. 저기 쓰러져 있는 괴물의 정체가 뭘까?”
 -그건 저도 궁금합니다. 이곳의 정보가 너무 없기에 방금 전의 생명체가 무엇인지는 저도 알 수가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진이 아무리 인공지능이고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없는 데이터를 만들어 낼 수는 없기에 일단 궁금한 것을 뒤로 미루어야 했다.
 “···앞으로가 걱정돼. 진. 비가 곧 내릴 것 같아. 어떻게 하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가 대표적이지만 저런 괴물들 사이에서 의식주보다는 목숨이 더 중요하게 된다. 의식주도 살아 있을 때 충족해야지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그런 결론을 내린 세현은 일단 당장 비가 오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이곳의 상황은 저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지금 저기 쓰러져 있는 괴생명체는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환경 또한 제가 알고 있는 데이터와는 많이 다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태양계의 어느 행성에도 이곳의 환경을 설명할 수는 없으리라. 물론 과거 지구와 흡사한 면이 있지만, 식물과 대기를 이루는 특이한 기체들이 지구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저기 쓰러져 있는 생명체만 해도 일반적인 붉은 혈액이 흐르지 않고, 어두운 회색의 액체를 흘리는 것만 보아도 이곳의 생물은 태양계와 근본 자체가 다른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저의 판단이 100% 맞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진의 상황 분석은 정확하게 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그곳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 알아내던가 아니면 대화가 통화는 어떤 다른 생명체와의 만남으로 이곳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완전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할 수밖에 없었다.
 “휴우.”
 세현은 갑자기 없는 두통이 생기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어떻게든 될 것만 같은 생각에서 막막함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 마음을 뒤로 하고 우주선에서 내린 세현은 조금 전에 떨어뜨린 자이언트 쉘을 줍기 위해 움직였다. 지금은 당장 우주선의 기체를 가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 말이다.
 
 거구의 시체를 뒤로 하고 세현의 노력으로 기체를 거대한 나뭇잎으로 모두 덮어 놓았다. 그리고 잠시 뒤, 먹구름과 함께 드디어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뭔가 떨어졌어.”
 -그게 비라고 하는 겁니다.
 “신기하다.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다니.”
 세현은 비가 떨어지는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리고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조금 전의 기분을 전환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느다란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고 계속 비를 맞을 수 없는 세현은 우주선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쏴아아아아······.
 우주선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는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였다. 굵은 빗방울이 기체를 때리는 소리는 클래식 음악 못지않은 음률을 흘리며 하늘에 구멍이 뚫리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까지 들게 했다.
 “···비가 점점 많이 오고 있는데. 기체 내로 물이 안 들어가면 좋겠어··· 왠지 몸도 으스스한 것 같고.”
 비가 내림으로 해서 우주선의 주변에 고이는 물 처리를 하지 못했기에 비가 많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 탓에 비를 좀 맞은 세현은 약간의 오한이 느껴져 담요를 다시 걸치고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비가 그치면 앞으로 계획을 진과 다시 세워 봐야겠어. 이대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죽을지 몰라.”
 세현은 지금 무리한 움직임과 극도의 긴장감을 넘어서 상당한 피로가 쌓여 있었다. 그런 상태로 몸을 움츠리니 당연 잠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진의 경고성 음성이 들려왔다.
 -레이더에 움직이는 물체가 감지되었습니다. 거리 40미터.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진은 조금 전 괴생명체 때문에 에너지 소모라는 것을 알면서도 레이더를 사용하고 있었다. 에너지가 부족한 시점에서 무리하게 레이더를 사용해야 했기에 넓은 범위를 탐색하지는 못하고, 고작 반경 40미터 이내만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진의 짐작이 맞아떨어졌는지 레이더를 가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몇 개의 물체가 레이더망에 나타났다.
 낯선 곳에서 괴물과 조우해서 그럴까? 아니면, 중력이 다소 높은 곳에서 무리를 해서 그럴까? 잠시 눈을 감은 세현은 이내 잠이 든 것이다. 그의 수면은 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잠결이라서 그런지 진의 말을 제대로 듣지를 못했다.
 -세현 님, 이곳의 또 다른 생물로 보이는 물체가 현제 20미터까지 접근. 분화구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 뭐라고?”
 진은 세현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설명을 해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곳의 또 다른 생물체로 보이는 물체들이 지금 우주선으로 접근하였습니다. 육안으로 확인 가능하시니 외부의 영상을 모니터합니다.
 밖에는 아직 굵은 비가 내려서 시야가 좋지 않았다. 굵은 빗줄기 탓인지 운전석 앞 스크린에 비친 영상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상으로 보이는 화면이라서 그런지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자세하게 보였기에 화면에 비친 대상의 형태는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 마주친 괴물과는 다르게 생겼으며, 그 괴물에 비해 1/3정도밖에 되지 않은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3마리. 화면에 비친 생명체는 땅땅한 체격을 과시하며 흡사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슷한 유형을 찾자면, 지구상의 중세시대에나 나오는 듯한 갑옷과 자신들 크기만 한 무기인지 몽둥인지를 등에 짊어지고 이쪽을 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동화에 나오는 난쟁이 같은 모습과도 흡사했다.
 다른 모습을 찾는다면, 그들의 외모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인데, 중앙에 서 있는 자는 번개를 맞은 듯한 노란색 머리카락. 왼뺨은 광대뼈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흉터 나 있다는 점. 그 외, 나머지 둘은 투구 같은 것을 써서인지 생김새를 알 수 없었다.
 “저거 사람이 아닐까? 사람같이 생겼잖아. 혹시 말이 통하지 않을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확률이 극히 희박합니다. 시도는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저쪽은 지금 20미터의 거리에 서서 계속 이쪽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세현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체격이 비슷하였기에 여기 와서 두 번째로 마주친 인간 같은 모습의 생명체에게 진의 말대로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좋아. 위험하긴 하겠지만··· 시도를 한 번 해봐야겠어. 진. 외부 스피커를 연결해줘.”
 세현이 말이 떨어지자 몇 초 후, 진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연결되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세현은 밖에 비가 오고 있고 또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어 안에서 대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그 편이 안전하니 말이다.
 “저, 저기, 밖에 계시는 분은 누구신가요?”
 우주선 외부 스피커를 통하여 짧게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소리는 빗소리 때문만은 아닌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내부 스피커로 들려왔다.
 [저거 뭐라고 하는 거야?]
 [나도 처음 듣는 말이야. 알아들을 수가 없군.]
 [음··· 저기 이상한 금속에서 나는 소린데 신기하군. 좀 더 가까이 가서 확인을 해야겠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레이반 님, 조금 더 지켜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은가? 잠깐이면 되네. 가세나.]
 밖의 3마리의 생명체는 서로 대화를 하는 듯 마주보면서 대화를 하였고, 그 중 투구를 쓰지 않은 한 생명체가 이쪽을 향해 검지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이곳이 다른 행성계라서 그런가? 혹시 진, 저 음성 분석이 가능하겠어?”
 -저의 데이터에도 없는 언어라 분석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정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추리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진의 대답을 듣고는 이내 생각을 접어야 했다.
 “어··· 어. 저기 이쪽으로 오는데. 어쩌지?”
 알 수 없는 내용의 대화를 하던 3마리의 생명체. 그들은 세현이 있는 우주선으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오면서 등에 매고 있는 각자의 무기를 빼 들었다. 그들의 행동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를 하는 것 같았다.
 텅.
 양쪽 모두 바짝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우주선 바로 앞까지 다가온 생명체. 투구를 쓰지 않은 생명체는 자신의 무기를 이용하여 자이언트 쉘의 잎을 옆으로 살짝 치우며, 기체의 표면을 살짝 건드렸다.
 [허허허. 이거 강철하고 비슷한 것 같군.]
 통. 통.
 우주선 앞으로 성큼 다가온 생명체는 무기를 내리고 이번에는 손으로 기체를 두드렸다.
 [금속 표면에 뭐가 발라져 있고 강철의 이음새도 없이 매끄럽군. 통으로 만든 것 같은데 대단하군. 누가 만든 것일까?]
 기체를 두드렸던 생명체는 뒤를 돌아 같이 투구를 쓰고 있는 일행에게 뭐라 하고 있었다.
 텅. 찌이잉······.
 그때 우주선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갑작스럽게 열린 문에 의해 그들과 대면하게 된 세현은 당혹스러웠다. 이는 의문의 생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멀뚱하게 바라보면서 잠시 대치 상태가 이루어졌다. 그런 그들의 침묵을 깬 이가 있었다.
 -지금 상대는 무기를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쪽은 이미 레이저 건의 사용이 불가능하니 세현 님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주십시오.
 진의 말은 말 그대로 이쪽은 더 이상 방도가 없으니 그냥 항복의 의사를 표하라는 뜻이었다. 세현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서로 얼굴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뭐? 지금 나보고 죽으라고 하는 거야? 이게 주인한테 시킬 짓이냐고······.”
 세현은 진의 말에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진의 말대로 따르기도 어려운 상황. 불안한 마음이 그대로 대기를 채우고 주변을 메우기 시작했다. 비록 진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른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손을 들려고 하는 세현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렸다. 바로 무기로 쓸 만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일전에 담요를 찾을 때 보았던 상자. 그 속에 있던 한 자루의 권총이 떠오른 것이다.
 “그렇지. 나도 무기가 있어.”
 그렇게 혼자 말을 내뱉으며 재빨리 뒷좌석으로 몸을 날린 세현. 뒷좌석에 올려놓았던 상자를 열어 안에 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비록 사용을 한 번도 해보지는 않았지만, 권총의 묵직함이 온몸에 전율을 선사했다. 일전에 영화나 책에서 본 것처럼 권총을 잡음과 동시에 안전키를 풀고 총머리를 앞에서 뒤로 힘껏 제쳤다.
 철컥.
 탄환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세현. 비록 자신도 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총과 상대에게 해를 끼친다는 생각에 세현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덜덜덜.
 “······?”
 생존과 직결되는 대치상황.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이내 점점 가늘어지면서 그치기 시작하였고, 기체 앞쪽으로 다가왔던 생명체들은 어린 꼬마가 이상한 도구를 자신들에게 향하고 있는 모습에 의아해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고, 또 어떤 물건인지 모르는 그들로서는 권총의 위력을 알 리가 없었다. 다만 혹시 모를 일에 경계를 조금 강화한 것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루한 대치가 이어졌다. 세현의 떨림은 도통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상대측은 그런 소년의 모습에 경계수위를 낮추며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탕.
 일순간 정적을 깨는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이는 세현의 손이 떨려 의도하지 않게 방아쇠가 당겨진 것이다. 총구에서 굉음이 울리는 순간 데저트 이글의 총구는 작은 금속 탄환을 불꽃과 함께 뿜어내었다.
 “큭.”
 텅.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 딱히 정확하게 조준할 필요도 없었다. 굉음과 함께 쏘아 낸 탄환은 제일 앞쪽에 있던 투구를 쓰지 않은 생명체의 오른쪽 어깨를 관동하고 빠져나갔다. 그 충격 때문일까? 탄환에 어깨를 관통당한 생명체는 들고 있던 무기를 떨어뜨리면서 오른쪽 어깨를 왼손으로 감쌌다.
 “억. 으으윽.”
 세현은 너무 긴장한 탓인지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긴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약한 체력으로 권총의 반동을 이기지 못한 세현은 그만 권총을 떨어뜨리게 되었고, 연약한 손바닥 피부는 찢어져 이내 손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레이반 님 괜찮으십니까?”
 “레이반 님! 이 망할 자식 무슨 짓을 한 거야? 마법사다. 조심해.”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뒤편의 두 생명체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도끼를 고쳐 잡으며 경계를 더욱 강화하였다. 언제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 보였다. 만약 세현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달려들 것이 분명하리라. 그러나 그들은 바로 달려 들 수가 없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지만, 첫 번째로 세현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법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세현에게 적의나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가졌던 수상한 물건. 이러한 이유에서 뭔가 다른 무언가가 더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 그들의 움직임을 더욱 제어하고 있었다.
 뒤쪽에 있던 두 생명체는 특이한 모양의 금속에서 불꽃이 뿜어지는 것이 마법도구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위력은 똑똑히 보았다. 작은 불꽃. 그리고 이어진 신음소리. 위력만큼은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앞쪽에 있던 생명체는 탄환에 뚫린 어깨에서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출혈이 생각보다 심한 것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움직여서 도움을 줄 수도 없는 상황. 답답했다.
 -세현 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빨리 손을 머리 위로 올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진은 그들에게서 이상한 에너지를 감지해 내었다. 에너지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많았지만, 분명히 그들의 몸에는 응집된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빨리 세현을 설득해야 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사되었던 총알은 한 생명체의 어깨에 바람구멍을 내놓았고, 나머지 두 생명체는 세현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으면서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르르.
 몇 분의 대치상황이 이어졌지만 결국 세현은 여기에 혼자이고 또한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기에 천천히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진의 말이 맞는 것이다. 저들은 무기를 지니고 있고 자신은 이미 권총을 놓친 상황에 더욱이 손아귀까지 찢어져 있었다.
 손에서 피를 흘리며 느릿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세현. 생명체들이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현은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한참이 지나도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 세현을 노려보는 생명체들은 이내 조금씩 들고 있던 무기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세현이 계속 움직임이 없자 이내 뒤편에 있던 한 생명체는 조심스럽게 총알에 관통상을 당한 생명체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붕대를 감았다. 출혈은 심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경계를 풀도록 하게나.”
 “아직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릅니다. 레이반 님.”
 비록 피를 흘려 현기증이 일었지만, 총상을 당한 생명체는 자신에게 해를 입힌 어린 인간이 한참 동안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는지 일행들에게 경계를 풀 것을 지시했다.
 -세현 님, 사과를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쪽에서 공격의 의사가 없으니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한다면 저쪽에서도 어느 정도 수긍을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인 것은 똑같았지만, 진실한 마음은 통하기 마련이기에 세현은 진의 말을 듣고 이내 행동으로 옮겼다.
 “죄송합니다.”
 세현은 천천히 머리에 올린 손을 내리고 고개를 90도로 숙여 사과를 했다.
 “보게나. 저쪽 어린 인간이 먼저 사과를 하는 것 같지 않나?”
 뜻을 알 수 없는 세현의 말투. 비록 해석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가만히 서 있는 어린 인간일 뿐이었다. 남에게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에 3명의 생명체들은 세현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이곳에도 그러한 예는 있는지 세현의 입장에서는 천만 다행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다소 경계를 풀기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내 그들은 세현을 그대로 놔둔 채 우주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세현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한참을 우주선에 시선이 고정된 한 생명체는 우주선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나 육중한 무게의 우주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거 크기만큼 상당히 무거운데.”
 “그러게 말일세. 아무래도 마을에 가서 일족을 더 불러야겠군. 가지고 가서 조사를 해봐야겠어. 잘 지키고 있게나.”
 서로 대화를 하던 두 생명체 중 한 명이 왔던 길을 되돌아 뛰기 시작하였다. 그는 작은 키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던지 순식간에 나무가 무성한 숲으로 사라졌다.
 
 꿀꺽. 꿀꺽. 꿀꺽.
 세현은 우주선 안에서 남은 두 생명체들을 보고 있었다. 총상을 당한 노란 머리의 생명체는 이제 우주선 앞에 주저앉아 이상한 가죽주머니를 꺼내어 내용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꿀꺽.
 총상을 당한 생명체가 무언가를 마시자 남은 한 생명체도 그의 옆에 않아 가죽주머니를 건네받고는 그와 똑같이 주머니를 기울여 마셨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주머니에 든 내용물을 비우는 생명체. 그중 어깨에 총상을 입은 생명체가 부상을 당한 몸을 이끌고 우주선에 다가와 세현에게 주머니를 건넸다.
 “나보고 마시라는 것인가? 먹다가 죽는 거 아냐?”
 -위생상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해로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진이 한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까짓 것 먹어 설마 죽기야 하겠어?’였다. 세현은 불현듯 ‘참 인공지능답지 않게 능구렁이를 키우는 것 같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에휴··· 그래. 까짓것 죽기밖에 더 하겠어? 내가 마셔 준다. 마셔 줘.”
 꿀꺽. 꿀꺽.
 가죽주머니를 건네받은 세현은 상당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는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가죽주머니 속에 있는 내용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컥. 푸~~~.
 대체 몇 모금을 마셨을까? 갑자기 목구멍이 막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먹었던 내용물을 그대로 뿜어내는 세현.
 “콜록. 콜록. 이거 뭐야? 무슨 맛이···.”
 쿵.
 낯선 생명체가 건네준 것은 다름 아닌 술이었다. 지구상의 맥주에 탄산만 빠져 있는 듯한 음료를 마셨던 것이다. 맥주는 다름 아닌 곡물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 지금 대면하고 있는 생명체들이 매우 좋아하는 술인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나 축제 때 상대에게 건네는 습성이 있었다.
 “하하하하. 생각보다 화통하군 그래.”
 “레이반 님, 아직 어린애입니다.”
 “우리도 저 나이 때는 한 번 쯤 다 먹어 봤지 않나?”
 지금까지 입에 대어 본 적도 없는 술이라 그런지 세현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취기가 바로 올라왔다. 그리고 머리가 멍해짐과 동시에 앞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세현 님. 세현 님. 세현 님.
 진이 다급하게 세현이를 불렀지만, 세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어렴풋이 낯선 생명체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잠시 보였을 뿐.
 ‘내 인생도 여기까지인가? 박사님, 저도 이제 그쪽으로···.’
 자신은 조금 전만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힌 장본인이었다. 그런 그를 이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이렇게 호의를 베풀면서 뒤통수를 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희미하게 꺼지는 의식 속에서 세현은 곧 자신도 박사님 곁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저기 오우거는 이 꼬마 녀석이 쓰러뜨린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머리 가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상처 주위는 열에 의해 익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아마도 저 아이가 마법으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음··· 화염 마법인가? 어린 녀석이 마법 실력이 보통이 아니군. 일단 일족이 더 오면 꼬마와 저 물건을 마을로 옮기도록 하세나.”
 “네.”
 세현이 술에 의해 의식을 잃은 뒤, 이계의 생명체들은 세현과 우주선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결정지었다.
 캉. 깡. 깡.
 웅성. 웅성.
 아담하고 작은 집. 그런 집에 뚫려 있는 작은 창문은 얼마 되지 않은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찌 보면 동화 속에 나올 듯한 그런 집이었지만, 언밸런스 하게도 동화 속 집안에 있는 작은 침대에는 어린 한 소년이 누워 있었다. 그 소년 주변에는 작지만 건장한 남자들이 서로 소곤거리기도 하였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망치 소리도 들렸다.
 “으으으··· 머리야. 깨질 것 같아.”
 잠에서 막 깨어난 소년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아직 눈이 빛에 적응하지 못하여 사물이 보이진 않았지만, 자신이 어디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소 푹신한 곳이라서 그럴까? 소년은 빛에 적응되지 않은 눈을 다시 감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꿈이구나. 지독한 악몽이었어. 내가 다른 세상에 떨어지다니 있을 수없는 일이지. 김 박사님에게 꿈 이야기를 말해드리면 상당히 놀라실 거야.’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해서 그럴까? 아니면 술기운이 남아서 그럴까?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전부 꿈같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일어났는가?”
 꿈에서 들었던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소년의 귀에 다시금 들려왔다. 여전히 내용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소년의 정신이 번쩍 뜨인 것이다. 놀란 눈을 하고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는 소년. 그런 소년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신기한 물건을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을 건 것이다.
 “우앗~!”
 쾅.
 “아야야···.”
 두개골끼리 부딪혔다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을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소년은 눈앞에 수많은 별들이 은하수를 이루는 것만 같았다. 아픈 머리를 열심히 손으로 문지르는 소년. 그는 자신의 머리와 부딪힌 것을 찾았다. 그의 앞에는 턱수염을 길게 기른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생명체가 소년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한편, 그도 양손으로 소년의 두개골과 부딪힌 곳을 열심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외에도 뒤에는 다수의 생명체들이 함께 있었는데, 그들 또한 지금 눈앞에 있는 생명체에 못지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구구. 이거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다이판 님, 괜찮으십니까. 소리가 꽤 크게 들렸는데 말이죠.”
 “자네 눈에는 괜찮게 보이는가?”
 옆에 있던 다른 생명체가 수염이 긴 할아버지 같은 생명체에게 걱정 담긴 말을 하면서도 소년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일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말을 하는 생명체는 일전에도 보았던 인물이라 소년도 기억할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었으니 그만하게. 괜찮은가? 듣고 보니 몸이 많이 약하다고 하던데.”
 “······.”
 단발형의 회색 머리카락과 어울리는 한 뼘 길이의 긴 흰 수염.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표정을 가진 생명체는 손을 올려 뒤쪽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 후, 소년에게도 무슨 말을 건네었다. 그러나 소년은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었기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 내 정신 좀 보게나. 이곳의 언어를 모른다고 했지. 에··· 또··· 그 뭐라 했더라···.”
 소년이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생각난 생명체는 무언가를 열심히 생각하더니 손뼉을 한 번 치고는 밝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거였지. 흠흠. 나르 따아아 오게에나.”
 “······!”
 소년은 방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 어눌한 말이었지만,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는 말을 들은 것이다.
 “잘못 말했나? 어흠. 나아를 따아 오게나.”
 다시 비슷한 말투로 말을 하는 생명체. 더욱이 소년에게 손짓까지 하면서 유도를 하자 그제야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소년이 침대에서 일어나자 그 긴 수염을 기른 생명체는 밖으로 나갔고 소년도 그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
 “아!”
 밖으로 나온 소년은 아기자기한 풍경에 짧은 감탄사를 흘리며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둘러보니 집안에 있던 생명체와 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생명체들이 집 앞에 모여 소년을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쳐다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행동에 다소 불쾌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 할 때쯤 조금 전에 들었던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따아 오게나.”
 잠시 멈칫한 소년은 따라오라는 소리가 다시 들리자 목소리의 주인공을 따라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안내하는 생명체를 따라 얼마를 걸었을까? 눈앞에는 지금까지 본 생명체들 보다 더욱 많은 생명체들이 한 곳에 모여 무엇인가를 보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자자. 그만 구경하고 비켜 보게나.”
 소년을 데리고 온 생명체가 무어라 말을 하자 그 많은 생명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자리를 비켜 길을 터 주었다. 그들이 비켜선 곳 앞에는 소년이 이곳으로 올 때 타고 온 금속 물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주선?”
 소년은 그 금속 물체를 우주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타고 온 우주선을 이 낯선 생명체들이 이곳으로 옮겨 온 듯 보였다. 소년은 천천히 걸어 우주선 앞에 도착했을 때 그의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세현 님, 일어나셨습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소년은 반가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랬다. 낯선 곳에서 깨어난 소년의 이름은 세현. 그리고 지금 앞에 있는 우주선은 그가 타고 온 페가수스라는 우주선. 거기에 방금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인공지능 진인 것이다.
 “진. 무사한 거야? 여긴 또 어디야?”
 낯선 환경으로 인하여 불안감에 떨었던 세현은 진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다. 그렇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진 님, 말씀하신 소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조금 전 세현에게 따라오라고 말을 한 긴 수염 생명체는 진에게 존칭을 사용하며 말하고 있지만 세현은 둘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진은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다이판 족장님, 감사합니다. 이분이 저를 만들어 주신 세현 님입니다.
 진과 다이판이라는 족장은 서로 말이 통하는지 대화를 하다가 족장이라는 사람에게 세현의 소개를 해주자 족장은 세현을 보면서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를 제외한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도 진의 말을 들었는지 뜻 모를 시선을 세현에게 보내었고, 그런 당사자인 세현은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서서 따가운 시선을 몸소 느껴야 했다.
 “뭐지? 저 눈빛들은··· 왜들 그러는 거야?”
 덥석.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던 순간 족장이 세현의 손을 덥석 잡으며 초롱초롱한 눈을 더욱 빛내고 있었다.
 “어찌··· 이리 하얗고 고운 손으로 저런 엄청난 물건을 만들 수가 있단 말인가? 과연 마이시안 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어.”
 이들은 이실리스 대륙에 사는 땅의 일족인 드워프. 그들은 타고난 장인정신으로 물건을 만드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고 또한 병적으로 좋아했으며, 대륙의 모든 드워프들은 대지의 여신인 마이시안을 모시며 더욱 아름답고 멋진 물건을 만들기 위해 한평생을 바치는 종족이었다.
 “저··· 저··· 이 손 좀 놔주세요···.”
 세현은 너무 세게 쥐고 있는 저리기까지 한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상대의 힘이 워낙 강했기에 뿌리치지 못하고 아픈 손의 고통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의도적으로 힘을 주는 게 아니었기에 화를 내지 못하며 계속 손을 놔 달라고 부탁만 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진은 자신의 주인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자 직접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다이판 족장님, 손을 놔 달라고 하십니다.
 “아!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세이헨 님.”
 진의 말에 촌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세현의 손을 놔주었는데 다이판은 세현이를 세이헨이라고 불렀다. 이곳 사람들 언어 구조상 세현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여 생긴 현상이었다.
 “세이헨?”
 세현은 다른 것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세이헨이란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람의 본능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어나서 듣고 자란 이름이 머릿속 깊은 곳에 각인이 된다고 한다. 그 각인된 음성으로 인하여 말은 틀릴지언정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는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된다고 했다.
 -세현 님의 이름이 이곳 언어로는 세이헨라고 불리는 모양입니다. 언어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이름이 제대로 불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성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존재성은 그 사람이 태어나면서 지어진 이름과 같이 죽을 때까지 불려지는 것으로 살아생전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일종의 인간의 역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다르게 불린다는 것은 기존의 존재가 다른 존재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고 말도 통하지 않는데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문뜩 세현은 진이 대신 답변을 해주었다는 생각에 진이 이들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인식을 했다.
 “진. 저들과 대화가 가능해? 어떻게?”
 세현은 진에게 대화가 가능한가를 물어 보았고 진은 그 동안의 일들을 설명했다.
 -세현 님이 한동안 정신을 잃었을 때, 이분들이 저와 주인님을 이곳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동하는 와중에 드워프분에게 이계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진의 말은 ‘니가 맥주라는 술을 먹고 한동안 뻗어 있는 사이에 드워프에게 언어를 배웠다’는 말이었다. 드워프들은 우주선의 무게가 무거운 것을 알고는 마을사람들을 불러 모아 힘들게 자신들의 마을로 옮겼다고 했다.
 그렇게 이들과 이동하던 진은 인공지능답게 드워프들에게 3D 영상으로 물건을 지정하면서 언어를 하나하나씩 입력하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불과 얼마 전에 모든 언어를 해석하여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역시 인공지능이라고 해야 하나? 진은 고작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이계의 언어를 마스터해 버린 것이다.
 과연 그 누가 있어 이처럼 빠른 시일에 다른 언어를 마스터할 수 있겠는가? 만약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드워프··· 저 생명체들이 드워프라는 거야? 그럼 그들은 이곳의 주민들?”
 진의 말에 세현은 지금 이곳에 있는 이계의 생명체들이 자신들을 대지의 종족인 드워프라고 알려 주었다.
 -그렇습니다. 정확하게는 이들은 몇 안 되는 주민이고 태양계처럼, 아니 세현 님처럼 인간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혹시 우리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는지 물어 볼 수 있을까? 이곳으로 왔다고 하면 돌아가는 방법 또한 있을지도 모르잖아.”
 문득 세현은 진이 대화가 가능하기에 드워프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물어 보면 어떨까?’라며 물었다.
 -여기 계시는 드워프분들은 손재주가 대륙제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제가 알아보았지만 이분들은 대륙에 존재하는 마법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법?”
 진은 짧은 시간 동안 언어를 익히면서 세현이 말하는 것 또한 미리 알아보았다. 그러나 드워프들은 마법에 있어 무지에 가까웠기 때문에 원하는 정보를 많이 얻을 수는 없었다.
 -드워프들이 하는 말을 정리하자면 이곳에는 마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 불이나 물, 그리고 바람과 같은 자연의 힘을 일으킬 수 있고, 공격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종족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마법이라는 것 중에는 먼 곳까지 단숨에 이동하는 것도 있다고 하니 그쪽으로 알아보라고 합니다.
 “마법? 먼 곳까지 단숨에 이동한다? 워프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여기의 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보다 더욱 진화되었단 말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우리들은 걸음마 수준이고 아직 개발에 성공하지도 못했는데···.”
 세현은 진의 말을 듣고는 이곳의 과학력이 태양계를 능가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곳의 드워프들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진 또한 거짓말할 수 없으니 사실일 것이다.
 -아직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하나하나씩 알아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험. 흠. 저··· 진 님, 조금 전에 말씀하신 진 님의 몸을 저의가 조사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다이판은 진에게 세현이 깨어나면 데리고 오는 조건과 한동안 마을에 머무르는 것을 조건으로 우주선을 조사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다이판 님, 잠시간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엄연히 진과 우주선은 세현의 것이었다. 비록 우주선의 주인은 따로 있었지만, 제임스가 세현에게 주었으니 세현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진은 세현이 만들었으니 당연히 진의 주인도 세현이었다.
 -세현 님. 다이판 님과 드워프들이 우주선을 살펴보고 싶다고 하시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서로의 대화가 잠깐 오가고 난 뒤 진은 세현이에게 허락을 구해야 했다.
 “뭐··· 살펴보는 거야 상관없지. 시스템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진은 일단 마로 쪽으로 넘어가고 우주선은 정지시켜 줘.”
 -그럼 세현 님 말씀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진은 다시 마로 쪽으로 시스템 전부를 이동시킨 후 우주선의 기능은 모두 정지시켰다. 진이 마로에 옮겨가는 것을 확인한 세현은 우주선과 마로가 연결된 케이블을 뽑은 뒤 물러섰다.
 -다이판 족장님, 둘러보셔도 괜찮습니다.
 갑자기 다른 방향에서 진의 소리가 들리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마로 쪽으로 집중이 되었다. 작은 쇳덩어리 같은 곳에서 진의 목소리가 들려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진의 말에 수긍을 하며 모두의 시선이 우주선으로 향했다.

댓글(4)

홈즈홈    
읽으라고 쓴거임?
2017.08.31 14:10
[탈퇴계정]    
초반은 나름 과학자로서 과학적으로 이야기를 해처나가는 모습에 반해 완결까지 다 구매했는데, 정작 후반은 그냥 판타지를 가장한 드래곤볼... 과학의 비중은 거의 없다시피하고 마법으로 만능 해결. 뭐 마법을 구현하는데 과학을 썼다 그러면 할만없긴 한데, 솔직히 제가 원하는 이야기 전개는 아니였던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매우 돈이 아까운 작품 중 하나.
2018.02.04 21:57
re******    
대한민국 부채 해결해주고 영유권을 주장... 에 뒤로 갑니다. 이건 판타지가 아닌 상식부족이죠
2018.06.21 09:12
n2************    
주인공이 너무 ㅂㅅ임. 발암 요소가 너무 많은 소설이네.
2019.01.17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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