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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입맞춤은 왜 해?(1)

2017.09.06 조회 6,857 추천 50


 1. 더럽게 입맞춤은 왜 해?
 
 
 
 “에이, 왜 때려? 난 반드시 해내고야 말 테야!”
 “크크! 웃기는 놈! 네깟 놈이 해내긴 뭘 해? 꿈 깨라 꿈 깨!”
 남루한 의복을 걸친 팔구 세가량 된 소년 하나가 눈빛을 빛내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
 “꿈? 그게 과연 꿈일까?··· 아냐! 난 해낼 거야! 반드시 해 내고야 말겠어! 두고 봐! 내가 해내는지 못해 내는지!”
 “크크크! 웃기는 놈! 넌 정말 웃기는 놈이야!”
 대략 십 사세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별 우스갯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 소년의 머리를 또 쥐어박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얏! 왜 때려? 난 할 수 있단 말이야! 두고 봐. 반드시 해내고야 말 테니까. 그때 가서 나한테 돈 꿔 달라고 빌지나 마!”
 “뭐라고? 킬킬킬···! 정말 웃기는 놈이군! 세상이 반쪽 나기 전에는 네놈에게 그런 부탁 안 할 테니까 아예 걱정 붙들어 매!”
 홀로 남은 소년은 쥐어 박힌 자리를 쓰다듬으며 뭔가를 이루겠다는 의지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천년고도(千年古都)인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에 자리 잡은 천양원(千養院)에는 일천에 달하는 고아들이 있었다.
 소년은 이곳 천양원에 의탁하고 있는 고아인 고연악(高衍岳)이었고, 그의 머리를 쥐어박은 소년은 기원주(奇原周)였다.
 고연악이 최초로 이곳에 몸담은 것은 생후 백 일도 안 되었을 때였다. 추운 겨울 성명만 적혀 있는 종이와 허름한 강보에 쌓인 채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마치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지독한 악필로 쓰인 그것은 요리상 위를 덮는 종이인 듯 하여 아마도 그의 모친이 기녀가 아닌가 하는 추측만 할 수 있게 하였다. 천양원에 몸담은 후 고연악은 다른 고아들과 마찬가지로 하는 일 없이 지내면서도 안 쑤시고 다니는 데가 없을 정도여서 적어도 수십 년을 저잣거리에서 산 사람처럼 영악해졌다.
 천양원주인 전대 천자의 태태감(太太監)을 지냈던 원익서(元益瑞)는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고환을 잃은 후 황궁으로 들어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이었다.
 신체적 결함 때문에 자식을 볼 수 없던 그는 유난히도 아이들을 좋아하였다.
 선황이 붕어(崩御)하고 새로운 천자가 등극하자 미련 없이 황궁을 박차고 나온 그는 평생 모은 재물로 이곳에 천양원을 마련하고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을 보살피는 낙에 살고 있었다.
 올해 세수 팔십에 다다른 그는 너무도 늙어 혼자서 많은 아이들을 홀로 돌볼 수 없자 아이들로 하여금 서로를 보살피도록 하였다. 다시 말해 일천에 달하는 고아들을 효과적으로 보살피기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돌보게 하였다.
 고아들 중 스스로 자신을 돌볼 능력이 있다 판단되는 십육 세가 넘은 고아는 주루나 기원 등에 나가 동생들이 먹을 양식을 구해오도록 하였다. 이들은 사 년 간 천양원을 위해 봉사함으로서 그 동안 자신이 받은 은혜를 되 갚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이 이십이 넘으면 천양원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가도록 하였다.
 이들은 대형(大兄)이라 불렸으며 일백팔십 명이었고 현재 기루나 서원, 객잔, 전장 등에서 헤드레 일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아홉 명의 중형(中兄)과 팔십일 명의 소형(小兄)들이 맡아 동생들을 보살폈다. 중형은 아홉 명의 소형들을 보살폈고, 소형들은 각기 아홉 명의 동생들을 보살피도록 하는 것이 천양원의 조직이었다.
 이렇게 하여 현재 정확히 일천이라는 숫자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원주는 고연악을 비롯한 아홉 아이들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들 대형들과 형들은 동생들의 투정을 받아주면서도 성실하게 보살폈기에 천양원의 일천 식솔은 그야말로 친형제지간이나 다름없다 할 정도로 의가 좋았다.
 “치잇! 형은 맨날 저래··· 난 분명히 해낼 수 있단 말이야!”
 고연악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사라지는 기원주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조금 전 그는 기원주에게 자신은 장차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거부(巨富)가 되겠다고 말하였다. 그랬더니 이렇게 알밤만 맞은 것이다.
 천양원의 밤은 그야말로 이야기꽃이 만발하는 곳이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온 일백팔십일 명의 대형들이 세상에서 보고들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고연악이 어린 나이이면서도 세상사를 환히 꿰뚫는 것이다.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황궁 이야기와 유림의 이야기, 상인들의 기막힌 상행위에 대한 이야기와 무림에 대한 이야기, 도둑들의 이야기와 협잡꾼들의 이야기 등등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어린 고연악이 그 가운데 가장 재미있게 듣는 이야기는 바로 상인들의 이야기와 무림의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는 주로 기원이나 주청에서 일하는 대형들의 입을 통해서 듣기 마련이다.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무림인의 이야기는 어린 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몇 마디 말로 천금을 희롱한다는 상인들의 이야기 역시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 어디에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한낮보다는 밤이 월등히 많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눈과 귀를 잡아매기 위한 이러한 이야기는 사고예방에 너무도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이러는 것이었다. 아무튼 대형들의 이러한 이야기 덕분인지 적어도 천양원에서 밤에 일어난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아직 어린 고연악은 대형들이 이야기하는 가운데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하여 과장하고 있다는 것을 이때는 몰랐다.
 그렇기에 대형들은 어린 그의 뇌리에 무림인이라면 누구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물론, 장풍을 내뿜으면 집채만한 바위가 박살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
 
 도탄에 빠져 신음하던 천하는 건문제(建文帝)를 치고 등극한 연왕(燕王) 주체(朱逮)가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 베푸는 선정(善政)에 힘입어 급속도로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또한 국방에 힘을 쏟았기에 대명제국 건국 이후 어수선한 틈을 타 마음대로 침입하여 생활하던 변경의 이민족들이 국경 밖으로 쫓겨나갔고, 이로 인해 엄청난 넓이의 농토가 늘어났다. 당연히 소출이 늘어 벌써부터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양민들도 상당수 있었다. 간혹 부서진 성곽을 보수하기 위하여 노역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품삯이 한 푼도 떼이지 않고 나오기에 천자를 칭송하는 노래가 여기저기에서 불렸다.
 하지만 황궁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였다. 권력을 움켜쥐기 위하여 정쟁(政爭)을 일삼는 무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대 천자인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章)을 도와 대명제국을 건국하였던 늙은 개국공신들과 연왕을 도와 황위찬탈을 주도하였던 소장파 공신들 간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작용하면서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만 하였던 것이다.
 어제까지 화려한 관복을 걸치고 거드름까지 피우며 입궁하였던 고관대작들이 하루아침에 대역죄인이 되어 참수형을 당하거나, 황량한 유배지로 쫓겨갔고, 그들의 일족들은 관노(官奴)가 되거나 짐승만도 못한 삶을 영위하여야 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개국공신과 소장파 공신들 사이에서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양측에서는 어차피 자신들의 사람이 될 수 없다면 남의 사람이 될 것이 분명하다 생각하였기에 음모를 꾸며 이렇게 되도록 만든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천자는 황궁을 북평(北坪)으로 옮기고 그곳의 지명을 북경(北京)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화려무비한 황궁인 자금성(紫禁城)이 그곳에 지어졌다.
 이것은 늘 침탈을 일삼는 북방 이민족들을 보다 빠르게 견제하기 위함이기도 하였지만, 사실은 문무백관들로 하여금 새로운 체재를 정비하게 하여 잠시나마 정쟁(政爭)을 일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 다른 정쟁의 중심에는 구문제독(九門提督)과 승상(丞相)이 있었다.
 각기 문(文)과 무(武)를 대표하는 둘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대곤 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천자는 승상의 손녀를 구문제독의 손자와 혼례를 올리도록 명을 내렸다.
 그들은 죽기보다도 싫은 혼사였지만 감히 어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혼사를 치렀다.
 이로 인해 정쟁을 일삼던 상대의 수뇌와 졸지에 사돈지간이 되자 겉으로는 모든 알력이 사라진 듯 하였으나 실은 그게 아니었다. 겉만 아물어 보였을 뿐 실상 속은 곪을 대로 곪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황궁 안은 귀계(鬼計)와 음모가 횡행하는 복마전(伏魔殿)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승상 종관두(宗冠杜)와 구문제독 곽인부(郭仁釜)에게는 각기 혼사를 치르지 않은 손자가 하나씩 있었다.
 구문제독의 뒤를 이을 재목감으로 낙점 된 무심공자(無心公子) 곽호규(郭豪奎)와 유림의 대들보로 욱일승천 하듯 학문을 키우는 만박서생(萬博書生) 종두린(宗斗璘)이 바로 그들이었다.
 십이세 동갑인 이들 둘은 황궁에 머물면서 천자의 유일한 여식인 천혜공주(天慧公主) 주옥련(朱玉蓮)의 방심을 얻기 위하여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누구든 공주의 방심을 얻는 쪽이 승리자가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천자의 총애를 받는 그녀를 차지한다는 것은 천자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주의 나이 이제 겨우 십 세이기에 혼사가 이루어지려면 아직도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승상의 외손자이자 구문제독의 증손자인 곽연(郭然)이 태어났다.
 생후 삼십 일도 채 안 되었던 그와 그의 부모가 의문의 실종을 당하자 구문제독과 승상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을 찾았다.
 그 결과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손자와 손녀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서고 곽연의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감쌌던 포대만 놓여 있을 뿐 감쪽같이 사라졌던 것이다. 누가 흉수인지 전혀 짐작도 못하는 가운데 시간을 흘러갔고 황궁 안의 정쟁은 점점 더 도가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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