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절대마존(絶代魔尊)

1화

2017.09.15 조회 4,780 추천 36


 서장
 
 
 
 삭풍이 몰아치는 천산의 정상에는 흑색의 거대한 거성이 천하를 내려 보듯 오연히 자리 잡고 있었다.
 어둠 속에 오롯이 솟아 있는 그 거성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거성의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대전에는 사내 한 명이 고요한 어둠의 정적을 깨고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후우.”
 사내의 입에서 거친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힘에 부친 까닭이었다.
 잠시 숨을 돌린 사내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내가 걷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사내의 몸에서 짙은 선홍색의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내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던 것이다.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던 사내는 아수라가 양각된 거대한 의자에 걸터앉았다.
 아수라보좌(阿修羅寶座).
 그 자리는 본래 사내의 것이었으나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었고 치열한 싸움 끝에 이제 다시 사내의 자리가 된 것이었다.
 “드디어 다시 찾았군······.”
 사내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것도 힘에 부친 듯 이내 미소도 자취를 감추었다.
 아수라보좌에 앉은 사내의 눈이 힘겹게 걸어온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으며 비릿한 피가 강을 이루고 있었다.
 사내가 눈을 감았다.
 그러자 과거가 주마등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강호의 공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던 가족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자상했던 부모님과 형제들의 비참한 최후가.
 그리고 복수의 일념으로 견뎌 냈던 지독한 수련의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렇게 힘을 기른 사내는 절대 권력을 향해 나아갔다.
 먼저 자신의 가족들을 죽였던 이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뽑아 들었다.
 역사상 가장 처절한 전쟁이 십 년 동안 벌어졌다.
 정마대전이라 불린 이 전쟁에서 수많은 동료들을 가슴에 묻으며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전쟁이 끝난 후 남은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사내는 말했다.
 드디어 가족의 원수를 갚았다.
 그리고 우리들의 목표인 마도천하를 달성했다.
 그렇게 사내는 자신의 싸움은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세상은 사내의 강함을 두려워했고 그것은 배신이라는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찢어발겼다.
 사내는 모든 것을 잃고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이를 극복해 내었다.
 힘을 되찾은 사내는 이제 자신을 배신한 자들을 응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이 자신을 배신했던 자들을 모조리 응징한 날이었다.
 ‘지긋지긋한 녀석들.’
 배신자들 덕분에 지금까지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이가 절로 갈렸다.
 다시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지금은 너무나 피곤했다.
 ‘그래, 잠깐만 눈 좀 붙이자.’
 사내는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는 깨지 못할 깊은 잠에.
 마존(魔尊) 양소호(楊少昊).
 천마신교(天魔神敎)의 교주이며 마도천하를 이룩한 절대자.
 천마와 비견되었던 마도무학의 완성자.
 그리고 천하를 독보하던 그 오만함 때문에 그의 힘을 두려워했던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했던 남자.
 하지만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되돌아와 혈혈단신으로 십만 마도를 몰살시킨 희대의 강자.
 그 사내가 오늘 천마신교의 마인들을 몰살하고 본래 자신의 자리였던 아수라보좌에 다시 앉은 것이다.
 그렇게 마존의 전설이 저물고 있었다.
 
 
 
 
 
 제1장 환생마존
 
 
 
 눈을 떴다.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강렬한 붉은색 바탕에 금실로 여러 가지 문양이 수놓아진 화려한 휘장이었다.
 그 상태로 그는 잠시 멍하게 누워 있었다.
 ‘······.’
 얼마나 멍한 상태로 누워 있었을까.
 그제야 그의 사고(思考)란 녀석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생각이라는 기능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지?’
 겨우 정신을 수습한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이었다.
 그의 사고가 이제 그의 기억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 방이 어떤 방인지 그의 기억 속에서 찾아내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고는 기억의 어느 곳에서도 이 방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지 못했다.
 ‘모르는 방인데.’
 대신 그의 사고는 그의 기억 속에서 가장 최근에 그가 기억하고 있던 정보를 재생시키는 작업을 실행하였다.
 ‘······!’
 그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니까······.’
 그의 사고가 재생시킨 그의 마지막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는 지금 천마성(天魔城)의 아수라보좌에 앉아 있었어야만 했다.
 그를 배신한 천마신교의 부하들을 모조리 몰살시키는 위업을 달성하고 아주 힘겹게 아수라보좌에 앉았던 것이 사내가 가진 기억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누군가 나를 이 방으로 옮겨 놓았나?’
 자신이 이 낯선 방에 눕혀져 있는 이유를 그것밖에 떠올리지 못한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라.’
 그런데 그의 몸이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세워지지가 않았다.
 그는 적잖이 당황하며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이게 뭐야?’
 그는 누운 채로 자신의 양손을 눈앞으로 들어 올려 유심히 관찰했다.
 짧고 보드라우면서 하얀 손.
 당황한 그의 시선이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백옥처럼 하얀 피부.
 보기만 해도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통통한 팔과 다리.
 토실토실 부풀어 오른 살집까지.
 그의 몸은 완연한 아기의 그것이었다.
 ‘이게 뭐냐고!’
 “응애.”
 그의 외침은 영락없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되어 세상에 울려 퍼졌다.
 끼익.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청초한 아름다움이 가득 묻어나는 중년 여인 한 명이 그가 누워 있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 우리 소호 일어났네.”
 여인이 활짝 웃으며 그를 번쩍 들어 안았다.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그리운 사람이었다.
 ‘어, 어머니!’
 어머니인 악수란(岳水蘭)이었다.
 그는 악수란의 품에 꼭 안겼다.
 ‘어머니!’
 너무나 그리웠던 그의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꿈이라면 이 꿈이 깨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 소호, 아빠 보러 갈까?”
 악수란이 그의 등을 토닥거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를 안은 채 문을 열고 걷기 시작했다.
 악수란의 품에 안겨 있는 그의 눈에 거대한 장원이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야 그는 너무나 오래 되어서 기억해 내지 못했던 기억의 조각을 찾아냈다.
 이곳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의 생가인 양가장(楊家莊)이었다.
 악수란은 몇 개의 문과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들을 지나 웅장한 전각으로 들어섰다.
 양가장의 정중앙에 위치한 이 거대한 전각은 양가대전(楊家大殿)이라는 이름을 가진 양가장의 가장 중추적인 건물 중의 하나였다.
 “여보, 소호 왔어요.”
 양가대전의 한쪽에 마련된 집무실로 들어선 악수란이 그를 돌려 안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한 중년인이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그 중년인은 그의 아버지이자 당대 양가장의 장주인 양중원(楊中原)이었다.
 양중원과 악수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바람이 차지 않소?”
 양중원이 점잖은 생김새와는 달리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자식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아버지!’
 “응애.”
 “어이쿠. 우리 소호가 이 애비가 보고 싶었나 보구나.”
 양중원이 악수란에게서 그를 받아 안았다.
 그는 양중원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나 그리웠던 아버지의 체취였다.
 ‘아버지.’
 “응애.”
 “오냐, 오냐. 내 아들.”
 양중원과 악수란이 그를 가운데에 두고 푸근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장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탁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살펴보니 그 노인은 양가장의 총관인 우일환(宇一環)이었다.
 양중원은 다시 그를 악수란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발걸음을 옮겼다.
 “알았다.”
 어느새 양중원은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거대한 장원을 이끌어 가는 장주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작은 도련님이 무척이나 장주님을 잘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양중원은 우일환과 이야기를 나누며 집무실을 나섰다.
 “아버지는 언제나 바쁘시구나. 아버지의 일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우리 소호는 그만 방으로 돌아가야겠네.”
 악수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독이며 양가대전을 빠져나왔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처음에 그가 의식을 차렸던 그 방에 눕혀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따듯한 손길에 서서히 눈이 감겼다.
 “자장, 자장.”
 “쿨.”
 사내는 그렇게 다시 눈을 감았다.
 이 달콤한 꿈이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
 
 ‘헉.’
 사내가 눈을 떴다.
 그리운 어머니의 품에서 말이다.
 눈을 뜨면 꿈에서 깰 거라 여겼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감정의 울림을 가라앉히며 멈추었던 머리를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자신의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우윳빛처럼 보드라운 피부.
 유난히도 큰머리.
 짧고 통통한 팔과 다리.
 그는 영락없이 완벽한 아기가 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그는 손끝으로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손가락을 이빨로 살짝 깨물어도 보았다.
 하지만 아직 아기라서 이빨이 없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본다.
 꼼지락꼼지락.
 또렷한 감각이 이것이 꿈이 아니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꿈이 아니라면 설마 내가 과거로 되돌아온 건가?’
 괜히 눈물이 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과거로 되돌아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모든 감각이 그것을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잠깐?’
 그리고 그제야 그는 뒤늦게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하나 떠올리게 되었다.
 그는 무인이었다.
 역사상 가장 강한 무인 중의 하나였다.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은 드높았으며 무인 특유의 자존심도 강했다.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고 단전에서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나 단전에는 티끌만 한 내공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럴 수가!’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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