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태극마검

1화

2017.09.20 조회 2,370 추천 14


 서(序) 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무서운 날은 처음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자신의 뒤에서 마교인들을 베어 죽이던 친구. 화산파에서 왔다던 젊은 도사의 모가지가 댕강 잘려 공처럼 굴러갔다.
 사방은 마교인들로 뒤덮었고, 이제 정파인들은 대부분 죽어버렸다.
 ‘아! 오늘이 바로 정파가 무너지는 날인가?’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정사대전(政邪大戰).
 그 최후의 승자는 마교란 말인가?
 쉬익! 쉬익!
 뭔가가 번개처럼 휘둘러지는 소리.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위풍당당하게 달려왔다.
 ‘적인가? 아군인가?’
 공포에 질린 정파인들은 갑자기 나타난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의 손에 쥐어진 태극검!
 ‘그렇다면, 무당파의 고수다!’
 몸놀림이 신속한 것이 보통 고수가 아니었다.
 “무당파의 고수다! 우리를 구해주러 왔다.”
 “과연 그럴까?”
 차갑게 내뱉은 사내의 한 마디.
 정파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차가운 눈빛.
 순간 직감적으로 살아남은 정파인들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사내의 손에 들려진 태극검.
 무당파의 신성한 태극검.
 그 검.
 사내는 그 태극검을 휘둘러 정파인들을 마구 죽이기 시작한다.
 
 서(序) 二
 
 
 
 차가운 겨울바람이 칼날처럼 몰아쳐 오던 날.
 호수처럼 아름다운 소년의 눈! 그곳에서는 더 이상 흘러내릴 눈물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소년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앞에 위풍당당하고 균형 잡힌 체구를 지난 중년남자가 한없이 인자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년이 안쓰러웠을까?
 그 남자는 아이를 달래주듯 물었다.
 “아이야, 왜 그리 울고 있느냐?”
 소년은 눈물을 멈추고 중년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허리에는 기다란 검이 감겨 있었다. 게다가 척 보기에도 의롭고 정의로와 보이는 풍모(風貌)!
 소년은 부탁했다.
 “대협, 저의 누나를 구해주세요.”
 
 그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황금 색 지붕을 가진 8층 누각.
 소년을 등에 업은 중년인은 단 순간에 누각의 8층까지 올라갔다. 저지하려는 적들은 있었다.
 “무당······ 검?”
 그들은 하나같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중년인이 올라온 누각의 8층.
 “꺄!”
 어디선가 소녀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나! 누나의 목소리에요!”
 “알았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대협은 도포를 휘날리며 달려갔다. 이곳저곳에서 그를 저지하려는 밀교의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당검을 들고 있는 중년인을 막아내지 못했다.
 중년인은 한 순간에 방의 끝쪽에 있는 침대 위까지 달려왔다. 그곳에는 한 소녀가 묶여 있었고, 짐승같이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반라(半裸)의 괴수가 있었다.
 “누가 감히 나 수라마광 길극천(吉極天)의 침실에 침입하였는가?”
 수라마광(修羅魔狂) 길극천!
 밀교의 사대 호법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이가 바로 수라마광 길극천이었다.
 그 반대쪽에 태연한 모습으로 마주한 중년인이 말했다.
 “나는 무당의 정의검(正義劍) 황찬(黃餐)이란 사람이다. 소년의 누나를 풀어주시오.”
 정의검 황찬.
 이 말을 들은 길극천은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당의 황찬! 명성은 익히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밀교! 무당의 인물이 뭐라 할 곳이 아니다! 어서 물러나라!”
  길극천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애병(愛兵)인 철겸(鐵鎌)을 들더니 중년인, 아니 황찬을 향해 베어 갔다. 두 사람 간의 혈투.
 그 사이를 틈타 소년은 누나에게 달려갔다.
 밀교의 괴수에게 사로잡힌 누나를 소년은 얼른 껴안았다.
 “누나, 대협이 우리를 구해주실 거야.”
 “영아, 길극천은 무서운 사람이야. 왜 위험하게 여기까지 왔니?”
 “걱정하지 마. 저 대협은 무당에서 오셨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밀교의 무사들이 손도 쓰지 못했어!”
 길극천은 애가 탔다. 간만에 미녀를 찾아 겁탈을 하려던 참에 무당의 황찬이 쳐들어올 줄이야! 길극천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목숨을 잃을 판이다.
 소년과 누나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뒤틀렸다. 길극천은 괴성을 지르며 소녀에게 일 장을 날렸다. 황찬이 놀라 몸을 던졌지만 이미 늦었다.
 무공을 모르는 소녀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누나!”
 “이 나쁜 놈!”
 황찬은 크게 분노하여 길극천의 오른팔을 후려쳤다. 그답지 않게 잔인한 출수였다. 태극검에 팔을 잘린 길극천은 비명을 질렀다. 황찬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길극천의 두 다리가 잘려나갔다.
 “용서하지 않겠다.”
 길극천의 목을 칠 찰라!
 잠시 흩어졌던 밀교의 무사들이 꾸역꾸역 누각의 8층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협공! 이번에는 밀교의 일급 고수들도 왔는지 황찬 혼자서는 막아내기 벅찬 공격이었다.
 황찬은 다급하게 몸을 던져 침대 위에서 울고 있는 소년을 붙잡았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 가는 소년의 누나.
 황찬은 중얼거렸다.
 “아이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소년은 누나가 쥐고 있던 옥소를 품속에 넣었다.
 뒤쪽에서는 밀교의 고수들이 지옥의 야차들처럼 따라오고 있었다.
 울고 있는 소년을 등에 업은 황찬.
 그는 무당산이 있는 남동쪽을 바라보았다.
 
 
 
 
 
  第一章 무당내부암투
 
 
 
 십여 명의 소년소녀가 설레는 얼굴로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반들반들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으며 화려하고 값진 장신구들을 걸치고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지체 높은 집안의 자제들이 분명했다.
 모두 10세 미만의 아이들.
 이들은 모두 오늘 부로 무당파에 입문한 것이다.
 속가 제자가 한 달에 지불하는 금액은 대략 삼천 냥.
 일가족 네 명이 한 달에 넉 냥이면 남부러울 것 없이 넉넉하게 살 수 있는 금액임을 감안할 때, 삼천 냥은 보통 서민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거액이었다.
 “내 이름은 오진건(吳鎭乾)이야. 강남 오가의 셋째 아들이지. 우리 열심히 하자!”
 총기 있게 생겼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기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소공자였다.
 “강남 오가? 강남 최고의 부호가문이로군. 내 이름은 곽채령(廓債嶺)이야. 우리 아버지는 봉국중위(奉國中尉)를 맞고 계시지.”
 오만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소녀. 그녀는 관원집안의 딸로서 평소 사람들을 부리는데 익숙한 표정이었다.
 “그래, 곽채령이라······ 우리 친하게 지내자. 나는 부호가문 아들이고, 너는 명문 관원집안의 딸이니 썩 어울리는 상대 아니겠어? 무당의 수련은 매우 어렵다고 들었는데, 견뎌낼 자신은 있는 거야?”
 “여자라고 무시하는 거니? 강호에는 여협도 많다고 들었어. 더욱이 무당산에는 여 고수도 셀 수 없이 많아. 사내라고 해서 방심하다간 큰코다칠걸.”
 “그래? 하하, 열심히 해보자고! 누가 먼저 태극검수가 되나 내기할까?”
 오진건이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자 곽채령이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글쎄. 4,500명의 제자 중에 단 20명뿐인 태극권, 검사에 드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 아니겠어? 게다가 여기는 수재들만 모인 장소라던데······ 호호.”
 “하하! 두고 보자고! 난 반드시 태극검사가 될 테니까. 다른 아이들이 놀 때 수련하고, 잘 때도 수련할 거야. 나는 꼭 태극검사가 되어서 지금 너의 그 오만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게 할 거라고.”
 오진건은 아직 어리지만 야심이 대단한 소년이었다. 그는 주위를 한번 살피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얘들······ 정말 대단하지 않냐? 모두 이름 있는 가문의 자손들 같아. 패기가 넘쳐 보이고 말이야.”
 “그래, 정말 다들 대단한데······.”
 곽채령과 오진건은 약간 기죽은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금지옥엽처럼 애지중지 자라면서 자신들보다 나은 집안 아이를 만나보기도 힘들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모두 부잣집 자녀들이라니!
 게다가 한눈에 보기에도 총기가 넘치는 것이 다들 기재(奇才)들처럼 보였다.
 ‘저들을 이길 수 있을까?’
 무척 힘들 것 같았다.
 순간, 두 아이의 눈이 한 소년에게 꽂혔다.
 허름한 옷을 입고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지 않은 체 혼자 앉아 있는 소년. 오히려 너무 평범해 보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다른 아이들이 너무 뛰어나서 그런가?
 오진건이 말했다.
 “저기 저 녀석은 뭘까? 옷차림을 보아하니, 우리 집 하인만도 못 하군.”
 “정말, 제자가 아니라 우리들 시중들라고 보내진 하인이 아닐까?”
 곽채령도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
 “저런 녀석이랑 같이 공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수준이 있지 어떻게······.”
 오진건이 내뱉듯 말했다.
 두 아이가 이야기를 하는데, 근처에 있던 8살 정도 된 소년이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감색 비단옷을 입고 윤기나는 머리를 양쪽으로 풀어헤친 소년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성장한다면 상당한 미남자가 될 듯싶다.
 소년은 아까부터 귀엽게 생긴 곽채령을 훔쳐보고 있었는데, 오진건이랑만 이야기하고 있자 자신이 이쪽으로 온 것이었다.
 그 소년이 걸어오면서 말했다.
 “이봐,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평가해서 되겠어? 저 녀석이 거지꼴을 하고 있지만, 우리보다 나은 신세다 이 말이야.”
 “뭐야? 너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오진건은 왠지 경계심을 느끼며 이 소년을 바라보았다.
 편협스럽고 이기적으로 생긴 오진건과 다르게 수려한 외모를 갖춘 소년. 소년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산동 정가문(鄭家門)에서 온 정준(鄭俊)이라고 한다. 인사나 하고 지내자고.”
 오진건은 이 녀석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정가문이란 말에 이목이 끌렸다.
 정가문(鄭家門).
 비록 산동성에 있는 조그만 군소방파에 불과하지만, 정가십팔권법(鄭家十八拳法)은 어느 정도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정준은 정가문에서 나온 기재인데, 유난히 머리가 명석하고 재주가 뛰어나 무당파 속가제자로 큰돈을 내고 입문한 것이었다. 곽채령과 오진건과는 다르게 무가출신(武家出身)이란 점이 눈에 띄었다.
 곽채령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우리보다 나은 신세라니? 어떻게 저런 지저분한 아이가 우리보다 낫다는 거니?”
 “후후. 저래 봬도 저 녀석은 정의검 황찬 대협의 적전제자라 더구나. 니들 적전제자가 뭔지 알아? 따로 특별히 뽑혀서 장로급 도사님한테 지도받는 거야. 우리처럼 소룡관에서 단체로 지도받는 속가제자들보다는 훨씬 이로운 위치에 있는 거지. 우리가 소룡관 관주님께 하나 배우면 저 녀석은 저녁때 황 대협께 개인지도를 받는단 말야. 개인교습이랄까? 아무튼 운 하나는 죽여주는 녀석이야.”
 “뭐야! 저 딴 녀석이······?”
 오진건이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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