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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급의 제왕 1

2017.09.13 조회 1,313 추천 11


 무급의 제왕 1권
 
 
 -1화-
 
 
 2011년.
 지구에 운석 6개가 떨어졌다.
 처음 그 운석의 존재를 발견한 건 천문학자들과 과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발견과 동시에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그 일을 지웠다.
 운석의 크기가 겨우 지름 1미터에 길이 3미터 정도로, 성층권에서 불타 없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지구로 진입한다 해도 별똥별이나 볼 수 있겠구나 싶은 6개의 작디작은 돌덩이기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운석들은 아무런 손상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지구상에 떨어졌다.
 성층권에서 불타기는커녕 당연시되던 마찰열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운석이 온전히 떨어진다고 해도 얼마나 큰 타격을 입히겠는가. 땅의 지형이나 재질에 따라서 지름 10~30미터 정도의 크레이터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끝날 것이었기에 과학자들은 그저 이 운석의 재질을 연구하기 위해 몸이 달아오를 뿐이었다.
 운석이 떨어졌고, 예상대로 큰 충격은 없었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운석들이 공명하여 동시에 진동을 일으켰고 각 운석들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단 6개의 운석이 지표상에 떨어져 폭발한 것만으로 지구의 대지 전역에 지진과 해일, 화산 폭발 등이 일어나 인류는 자신들이 자랑하던 과학기술을 써 보지도 못하고 인구의 70퍼센트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인류 최후의 날인 심판의 예언 같았다.
 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엄청난 폭발과 재앙을 일으킨 운석이 떨어졌음에도 지구의 대기권은 멀쩡했다.
 인류는 이런 이상한 현상에 어리둥절했지만 다른 재앙이 없음을 감사했고 기뻐했다.
 강대국이라 이름 높던 나라들조차 더 이상 나라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 버렸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 유럽과 미국, 영국 등등 몇몇 나라가 그나마 피해가 적었다. 이후 미국을 주축으로 몇 나라가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으며 그 명칭을 메시아라고 불렀다.
 
 그러나 기뻐하는 것도 잠시였다. 새로운 재앙이 인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건 만고불변의 원칙.
 원인 제공자인 운석에서 또 다른 재앙이 시작됐다.
 운석은 6개가 떨어졌다.
 그것은 각각 다른 지점에 떨어졌는데 이걸 이으면 오각형의 모양이 된다. 형태가 정오망성의 모양이다. 마법을 익힌 이라면 당연히 떠오르는 문양. 그리고 1개의 운석은 오망성의 중앙에 떨어져 있었기에 인공위성으로 관찰한 학자들은 뭔가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망성 안의 지역에 생명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구상에 존재치 않던,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들이다. 놈들의 숫자도 엄청났고 번식도 곤충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나게 빨랐다. 아니 증식이란 표현이 맞으리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생명체들은 점차 오망성 영역 밖으로 세력을 확장하더니 지구상으로 퍼져 나갔다.
 인류는 운석으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기도 전에 몬스터라고 부르게 된 생물체들과 전쟁을 시작했다. 인간끼리의 욕망으로 인한 전쟁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건, 생존을 위한 처절한 전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운석은 재앙만을 가져온 건 아니었다.
 재해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은 신기하게도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수호신이라고 명하는 존재를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수호신이라는 것은 종류가 여러 가지였다. 무기나 방어구, 그리고 장신구 등 물질의 형태도 있었고 동물 등 생명체 형태로도 있었으며 그밖에 무수한 형태의 수호신이 있었다. 인류는 이 수호신들에 S급부터 D급까지의 등급을 매겼으며 전투 능력이 거의 없거나 미미할 때는 무급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국은 S급부터 D급까지의 능력자들을 군인처럼 모집을 해 몬스터들과 전쟁을 치렀으나 S급 능력자들의 숫자는 4개국 다 합쳐도 50명이 안 될 정도로 부족했다.
 그중 8명은 한국에서 보유하고 있었다. 그나마 한국은 해일이나 지진 등에 피해가 거의 없어 가장 온전히 남아 있는 나라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은 산사태 등의 피해가 큰데다 가장 넓게 몬스터들의 침공을 받고 있어서 계속해서 영토를 점령당하는 중이었다.
 A급 또한 4개국을 통틀어 모아도 간신히 300여 명이 될 정도였으니 주된 싸움을 하는 자들은 B급과 C급이었다.
 D급은 전투 능력이 낮아 보조업무를 주로 하였다.
 능력자 인력난에 시달리던 각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급의 능력자들 또한 헌터라는 직업으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헌터들은 몬스터들을 잡고 난 뒤 남겨진 생명석을 모아 정부나 혹은 헌터 중개소에 팔음으로써 상당한 돈을 모을 수 있는 직업이기에 많은 이들이 헌터로서 돈을 벌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죽는 이들이 더 많았기에 헌터 측에서도 무급의 능력자들은 웬만해서는 받지 않아 왔다.
 무급은 능력이 미미해 D급 몬스터 하나 잡기도 힘들 정도라 주로 현대식 무기로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해 주고 돈을 받는 용병과도 같았다.
 때문에 안 그래도 돈을 위해 움직이는 헌터들을 무시하던 군인들은 무급 능력의 헌터들을 더욱 천대했다.
 
 “헉헉, 알겠나?”
 현 인류의 역사를 단번에 몰아쳐 전하고는 숨이 찬 듯 헉헉거리면서 숨을 고르는 남자와 대단하다는 듯이 웃으며 박수치는 사내가 있었다.
 아니, 소년이라고 해야 할까?
 “예, 대단하시네요! 그 긴 걸 다 이야기하시다니. 뭐 그래도 전 헌터가 될 겁니다.”
 “······이 자식이! 내가 이때까지 이야기한 거 들었어, 못 들었어? 무급인 주제에 무슨 헌터를 한다는 거냐?”
 정말 화가 난 듯 얼굴이 붉어진 채로 소리 지르는 남자는 헌터 중개소의 직원이었다.
 키는 177센티미터 정도 돼 보이지만 상당히 근육질인데다 머리는 삭발에 얼굴에는 작은 흉터들이 여러 개 있어 겉모습만으로도 위압감이 상당한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얼굴을 터질 듯 붉히고 소리는 고래고래 지르는데다가 눈에서는 살기까지 내비칠 정도니 담이 약한 사람이라면 질려서 도망갈 판인데도 이 앞의 소년은 여전히 싱글거리면서 웃을 뿐이었다.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급도 헌터는 가능한 걸로 알고 있고, 게다가 제 앞의 몇 명도 무급이었음에도 그냥 헌터 시험증을 주시더니 저한테는 왜 이러세요.”
 그랬다.
 이 앞의 직원은 다른 무급에게는 묵묵히 헌터 시험증을 발급해 주더니 자신의 차례에는 이렇게 긴 설명과 더불어 화를 내면서 시험증을 발급해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너랑 앞의 그 사람들이랑 같냐? 그 사람들은 이미 성인인데다 나름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놈들이고 쉽게 나자빠질 놈들은 아닌데······ 너는······”
 소년의 위아래를 훑어보고 한숨을 쉬고서는 숨을 들이쉬고 말한다.
 “약해 보이잖아.”
 이 남자의 말을 들은 중개소 안의 헌터들과 시험증을 신청하러 온 사람들이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소년은 잠시 얼굴을 붉혔다.
 “에이······ 아저씨 눈이 안 좋으시군요. 저 나름 운동도 하고 기술도 있는 몸인데 어서 헌터 시험증이나 발급해 주세요.”
 자신의 모습이 약해 보인다는 것은 알고 있다.
 키도 175센티미터 정도에 비쩍 마른데다가 덥수룩한 머리에 타고난 흰 피부, 평범한 얼굴 때문에 더 약해 보였다. 그래서 헌터 중개소 직원의 반응이 이해는 되었지만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래 봬도 전쟁에는 잔뼈가 굵은 몸인데 말이다.
 “안 돼!”
 헌터 중개소 직원인 얀은 정말이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가끔씩 자신의 실력도 모른 채 혈기만으로 찾아오는 무급의 소년들이 있다.
 그렇다고 다른 중개소 직원처럼 무턱대고 시험증을 발급해 주자니 자신의 신념에 반대되는 행위였기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 중이었지만, 계속해서 졸라대자 어쩔 수 없이 시험증을 발급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걱정되기에 말해 주었다.
 “정말이지 죽고 싶어서 환장한 꼬맹이일세. 일단 시험에서 합격해야 헌터 자격증이 나온다는 것은 알지? 그리고 우리 헌터는 수호신의 등급과는 상관없이 일의 수행도에 따라서 등급이 상승되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일을 수행하면서 경험을 올리도록 하고, 무엇보다 목숨을 소중히 여겨야 돼. 위험하면 뒤도 안 보고 도망쳐 오겠다고 약속해라.”
 얀의 행동은 마치 자기 아들이 사지로 가는 걸 막아보려다 실패하고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소년은 기분 좋게 웃으며 안심하라는 의미로 자신의 무기를 보여주었다.
 “걱정 마세요. 저 이래 보여도 검 하나는 잘 쓰는 편인데다가 총도 조금 쏘는 편이에요.”
 권총과 함께 보여준, 주무기라 할 수 있는 소년의 검은 가장 보편화된 싸구려 한검이었다. 가냘픈 팔과 검을 번갈아 본 얀은 다시 한 번 성질을 냈다.
 “아악! 너 같은 녀석이 무슨 접근전이야, 당장 총으로 바꿔서 가!”
 “우아아······ 방금 그 말 뭔가 열 받는데. 너무하잖아요, 너 같은 게라니.”
 소년의 가냘픈 몸과 팔을 보고, 그리고 다시 한검을 본 다른 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고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우리들도 얀의 말에 동감이다.”
 중개소 안 헌터들의 속마음을 알게 된 것이 충격적인지 소년은 작게 쳇 하며 다시 얀에게 말했다.
 “이름은 이한이고, 남자, 그리고 나이는 24살입니다.”
 “아 그래, 이한이고······ 성별은 남자고, 나이는 24살······ 에에에엑?”
 끝의 괴성은 얀뿐만이 아니라 그곳 중개소의 사람들 대부분이 지른 것이었다. 그 소리에 자신의 농담이 먹혔다고 생각한 한이 웃음 짓다가 얀의 말에 곧 인상을 썼다.
 “네가 어딜 봐서 24살이라는 거야!”
 “······이봐요, 왜 나이에서 놀라는 겁니까!”
 “어딜 봐서 네가 24살이라는 거냐? 많이 봐줘도 19살인데.”
 얀의 말에 공감이라도 하는 듯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들끼리 구시렁거린다.
 “후······ 24살 맞아요!”
 “너 진짜 24살 맞아?”
 “아, 진짜라니까요. 어서 시험증 발급해 주세요.”
 “······잠시 기다려라.”
 얀은 잠시 컴퓨터로 작업을 해 시험증을 발급하고는 주머니 하나를 주었다.
 “여기 주머니에 D급 몬스터 생명석을 넣어 오면 된다. 개수는 10개. 꼭 혼자서 행동할 필요는 없으며, 동료들과 함께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헌터는 의뢰만 완수하면 되는 직업이니까 말이야.”
 “예. 걱정 마세요. 이래 보여도 자기 한 몸은 지킬 수 있어요. 하하.”
 한은 그렇게 헌터 중개소를 빠져나오고는 의뢰서를 확인했다.
 
 「D급 몬스터 생명석 10개. E지역에 뮤 종족이 5~6마리씩 무리 지어 다니므로 그곳을 토벌하라.」
 
 “흠······ E지역이라······ 출발하자!”
 
 ***
 
 “······그 녀석 멋도 모르고 혼자서 간 거 아니겠지?”
 얀으로서는 한이 히누조차 혼자 잡기 어려울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아예 뮤 무리를 사냥하는 헌터들과 함께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그런 의뢰를 맡겼지만 그 계획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가 혼자 떠난 한의 모습을 보았다면 당장에 데려다가 정신교육과 몬스터 교육을 시켰을지도 모른다.
 
 ***
 
 헌터 시험과제인 뮤를 잡기 위해 E구역의 남만평야에 들어서자마자 한층 무거워진 공기가 한을 반겼다.
 “여기서부터는 위험지대라는 느낌이 팍팍 느껴지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귀여운 편이지. 훗.”
 그는 그렇게 웃으며 거침없이 평야로 들어갔다.
 들판에는 알 수 없는 이름의 풀이 가득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숲이 펼쳐져 있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대지처럼 보이지만 인간과 몬스터들의 피와 살을 양분 삼아 이만큼 자랐다는 것을 알기에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흠······ 뮤라는 녀석은 사람만 한 개인데다가 무리지어서 공격하기 때문에 D급이니, 괜찮겠지.”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뮤라는 녀석의 위험도는 훨씬 높은 편이었다.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대장 뮤의 지휘에 따라 체계적으로 공격하는데다 이빨의 날카롭기는 강철과도 같아 어지간한 방어구는 구멍을 내서 아작거릴 정도로 단단한 놈들이었다.
 때문에 웬만한 헌터들도 이놈들을 퇴치할 때는 동료들과 무리를 지어서 퇴치하는 편이다. 그리고 보통 헌터 시험에는 이 녀석들이 아니라 히누라는 작은 요정을 처리하는 게 보통인데, 그는 어찌 된 일인지 홀로 뮤를 퇴치하러 나선 것이다.
 “음······ 벌써 포위되어 버린 건가. 빠르네. 뭐 어쩔 수 없지. 한번 놀아보자구. <장착>.”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뮤를 느꼈기에 그는 수호신을 소환했다.
 갑옷 형태의 수호신이 몸에 장착됐다. 알 수 없는 기이한 문양이 어지럽게 그려진 흉갑에, 팔과 발 정도에만 검은색의 갑옷이 장착되는 익숙한 느낌이 전해졌다. 하지만 무급이기에 방어력은 그저 강철의 수준에 머물러 뮤의 공격 몇 번에 너덜거릴 게 분명했다.
 자신의 애병기들인 한검과 월령을 집어 들자 어쩔 수 없이 미소가 지어졌다.
 “신나게 놀아보자고······ 강아지들아!”
 탕- 탕-
 한검은 그저 볼품없이 생긴 검이었지만 월령은 특이한 모양이었다.
 검은색의 권총이었는데 총신과 방아쇠까지 이어져 있는 칼날 때문에 더 특이해 보였다. 게다가 총신의 길이는 보통 권총보다 더 길어 마치 데저트 이글처럼 보였다.
 빠른 2연사로 수풀에 숨어 있던 뮤 무리 중에 한 마리를 즉사시키자 놀란 듯 뮤 5마리가 무리지어 달려왔다. 가장 앞선 놈의 다리를 쏘아 맞추자 뒹굴면서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다른 2마리와 부딪쳐 함께 나동그라졌다.
 남은 두 마리는 각각 찢어져 옆에서 공격해 왔다.
 오른쪽 놈은 점프해 어깨를 노렸고 왼쪽 놈은 허벅지를 노렸다.
 “이 녀석들······ 연계하는 게 제법이네.”
 하지만 뮤들의 움직임이 다 보이는 자신이 그 공격에 당해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점프해 공격해 오는 놈의 턱에 밑에서부터 위로 검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동시에 왼쪽 놈의 머리를 발을 들어 내려찍자 동시에 두 군데에서 깨갱 소리가 들린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른쪽 놈은 그대로 넘어져 있는 뮤들에게 던져 버렸다. 그리고 발아래에서 바둥거리며 물어오는 뮤에게는 총알 두 방을 선사해 줌과 동시에 앞으로 굴렀다.
 “흐아······ 악어보다 더 무섭게 무네.”
 사실 악어도 뮤의 먹이에 불과했다. 물론 물 밖에서 말이지만 말이다.
 빠른 발을 가진 뮤 두 마리가 각각 상하로 물고 빠지기 공격을 해 오자 그는 정신없이 피하면서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동료들이 칼과 총에 당하자 놈들은 총구가 향하는 그 순간에는 공격을 멈추고 피했다. 그리고 한 녀석을 쫓아서 총을 쏘려고 하면 남은 한 마리가 공격을 해 오는 통에 그는 이리저리 피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흐에······흐에······ D급인데 무지 힘드네······ 흐게겍.”
 이리저리 피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 다리 부상을 당한 녀석도 쩔뚝거리며 공격해 왔다. 몰려든 뮤들은 서로 다른 방위에서 점프하며 공격해 왔다. 모든 방위가 뮤에게 둘러싸인 절제절명의 위기였다.
 그러나 그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잘 가.”
 
 
 -2화-
 
 
 놈들은 회심의 일격이라 여겼겠지만 이것은 오히려 그가 노리던 상황이었다.
 그의 검과 총신의 나이프가 순간적으로 빠르게 원을 그렸다. 빛의 원이 나타났다 사라지자 뮤들의 몸이 각자 두 동강으로 잘려 버렸다.
 마지막으로 턱뼈가 잘린 데다가 던져질 때 다리가 부러진 것인지 절뚝거리면서 피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리는 뮤의 정수리를 총으로 쏘아서 5마리와의 결전을 끝냈다.
 “후우······ 일단 생명석이 빠져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주워볼······까? 제에기일!”
 크르르르릉······.
 앞의 뮤들과는 덩치부터 엄청 차이나는 뮤가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보통의 뮤가 갈색털인 데 반해 이놈들은 새까만 털을 가졌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녀석의 뒤로 20마리가 넘어 보이는 뮤 무리가 으르렁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좀 너무하잖아······! 아직 생명석도 못 주웠는데 이런 대치라니.”
 지금 한은 신을 찾고 싶은 심정이다. 20마리도 넘는 뮤 무리는 어슬렁거리면서 뮤들의 시체와 그를 번갈아 보더니 낮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한다.
 대장 뮤로 보이는 녀석이 무리를 쳐다보고 으르렁거리자 다른 뮤들 또한 화답이라도 하듯이 으르렁거리며 자신을 포위하는 게 보였다.
 “이런 제길, 이거 진짜 손해 보는 짓인데······ 생명석이라도 회수해야지.”
 몬스터들이 죽으면 머리나 심장 둘 중 한 곳에서 돌처럼 굳는 물질이 있는데 이것을 생명석이라 한다.
 웃긴 점은 이 생명석은 몬스터가 죽으면 스스로 몸 밖으로 나온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생명석이 빠져나온 몬스터들의 시체는 엄청난 속도로 부패되어 한 줌의 흙으로 되돌아간다.
 “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네······ 으으, 저 대장 녀석은 왜 만나 가지고 일이 이렇게 꼬이는 거야.”
 자신이 한 발자국 움직이면 정면의 뮤들은 뒤로 물러나고 양옆과 뒤에 있는 녀석들은 거리를 좁혀온다. 그렇게 물러가고 좁혀오는 와중에 생명석들은 다 빠져나왔다.
 그리고 뮤들의 시체는 빠르게 흙이 되어가고 있었다. 간신히 발로써 5개를 다 한곳에 모아서 한 번에 쥘 수 있게 만든 뒤에 눈치를 살폈다.
 “후아······ 줍자마자 공격 들어오겠는데. 그래도 목표의 반이니.”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생명석을 줍는데도 뮤들은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특별히 공격을 하지 않았다.
 “이제······ 빠져나가 볼까?”
 20여 마리의 뮤 무리와 그 녀석들의 대장 뮤라.
 예전의 나였다면 콧방귀나 뀔 상대였을까. 단칼에 다 도륙을 했을 건데. 그렇게 느끼자 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러고는 투기가 감돌았고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비록 지금은 무급의 주인이지만 한때 제왕이라는 칭호를 가졌던 그인데 모든 것을 잃고서는 그때의 패기와 용기까지 같이 잃었던 모양이다.
 “후후······ 도망갈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내 자신이 우습군. 놀아보자, 이 강아지 새끼들아!”
 강하게 외치고는 애병기인 한검과 월령을 꽉 쥐고 살기를 내뿜자 대장 뮤가 움찔했다.
 대장 뮤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순간 겁을 집어먹었던 자신이 화가 났는지 크게 으르렁댔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뮤들이 달려들어 왔다.
 탕-탕-탕-
 깨깽깨갱······ 크헝.
 이 녀석들의 주된 공격은 점프해서 무는 것이었기에 달려오는 녀석들 3마리를 뚫고 나간 탄환으로 나머지 2마리도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그러나 뮤들의 포위진은 그 정도 숫자로는 흐트러진 티도 안 났기에 한의 입에서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도망······갈까, 역시?”
 그래도 총 한 방에 한 마리가 죽고 운이 좋으면 관통한 총알에 다른 녀석들이 상처를 입어서인지 뮤들은 무턱대고 덤비지 않았다. 아까처럼 포위만 하고 으르렁거리면서 대장의 지시를 살피는 듯했다.
 “역시······ 동물은 대장부터 처리해야 되나. 흐응.”
 총구가 자신에게 향하자 대장 뮤는 거대한 몸을 움찔거리더니 언제든지 총구를 피할 수 있게 자세를 취하고서는 짧게 짖었다.
 컹-
 다시 뮤 서너 마리가 점프 공격을 해 들어왔다.
 이번에는 두 마리가 먼저 달려들어 왔다.
 총으로 3곳에서 점프해 공격하는 뮤들의 정수리에 탄환을 먹여주고는, 한검을 세워 다리를 못 물게 한 뒤에 총에 달려 있는 나이프로 들어오는 뮤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뮤는 동맥이라도 베인 건지 크게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검을 물고 있던 녀석은 금세 뒤로 물러섰다. 한도 이번 공격에서는 여기저기 공격당해서 검은색의 짝 달라붙은 갑옷 여기저기가 더럽혀지고 긁혔다.
 “······대충······ 10마리와 대장이 남은······ 건가?”
 대장 뮤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낮게 짖으면서 자신도 합류해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왔다.
 방어만으로도 급급해 이미 갑옷은 거덜 나기 직전이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몸을 보자 웃음밖에 안 나온다.
 “······너무 몰아세우는 거 아니냐. 너희들. 으챠챠.”
 말 한마디도 못하게 공격하는구먼.
 그래도 방어하면서도 차근차근히 부상을 입혀 놓은 게 덕이 되는지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녀석들은 대장 놈이랑 6마리 정도였다. 2마리는 죽었다. 나머지 2마리는 그저 포위만 하고 있었다.
 크르르르릉.
 여전히 자신이 살아 있는 게 마음에 안 드는지 낮게 으르렁거리면서 째려보는 저 대장 놈. 진짜 D급 몬스터인지 묻고 싶다. 정말이지 이번에 돌아가면 확실하게 준비해서 와야지. 으챠챠······ 생각할 시간도 안 주는구만.
 “어쩔 수 없지 뭐. 너희들이 이렇게 몰아세웠으니. 나도 그러면 죽기 살기로 해야······겠지?”
 뮤 무리가 사방을 포위하고 있지만 어차피 한이 뚫을 곳은 한 곳이면 되니 저기 상처 입은 놈을 타깃으로 잡고는 냅다 달렸다. 총으로 상처 입은 놈 옆에 있던 놈을 사격해 버리고는 절뚝거리며 공격해 오는 녀석의 머리를 검으로 자른 뒤 그대로 앞으로 굴렀다.
 턱- 턱-
 조금 전까지 한의 몸과 머리가 있던 자리를 공격하던 뮤 두 마리가 헛손질을 하고 앞으로 굴러 버린 탓에 나는 소리였다.
 재빨리 일어나 그대로 달리면서 따라오는 녀석들의 위치를 파악한 뒤 바로 몸을 뒤로 돌려 미끄러지면서 총을 쐈다.
 한이 갑자기 뒤돌아 공격할 줄 몰랐던 두 마리는 다 급히 멈추려고 했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쭈욱 미끄러지기만 하다 머리를 총알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쾅!
 “커억.”
 대장 뮤가 머리가 터진 뮤의 시체를 물어서 한에게 냅다 던졌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한은 정통으로 얻어맞고 뒤로 나뒹굴었으나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켜서는 바로 이어질 공격에 대비해 원을 그리며 검을 휘둘렀다. 역시나 틈을 노려 공격하려다 움찔하는 뮤들이었다. 그런 뮤들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대장 뮤가 바로 옆에 상처 입은 놈 한 마리의 목을 물더니 냅다 한에게 던졌다.
 “저런······ 빌어먹을 녀석 같······ 크윽.”
 다행히 이번에는 제대로 본 뒤라 몸을 굴려서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놈이 어깨를 물어왔다. 한은 황급히 팔을 들어 방어했다. 팔을 아주 뜯어낼 작정인지 콱 물고는 머리를 흔들어 대는 놈의 목에 한은 단번에 검을 꽂아 넣었다.
 크왕!
 “이 빌어먹을······ 개새끼들이!”
 팔을 문 채 죽어 버린 뮤로 인해 한 팔이 묶여 버린 신세로 전락하자, 다시 맹렬히 공격해 오는 뮤 무리의 모습에 한은 짜증이 치솟았다.
 억지로 팔을 빼 버린 탓에 상처가 더 벌어졌다. 이런 팔로는 반동 때문에 총을 한두 발이라도 쏠 수 있을지조차 몰랐다.
 그래도 물린 상태로 싸우는 것보다는 나았다.
 총은 집어넣고 다시 한 손에 검만 빼 들고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뒤를 내줄 수는 없었기에 나무에 기대선 채 다시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후······ 대장 1마리에 나머지 3마리라. 그래도 많이 줄었네.”
 도박을 해야겠네.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다 낫겠지 뭐.
 몸에 힘을 풀고는 검을 내렸다.
 편안히 선 상태에서 몸의 중심을 잡고 한 손으로 검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들어 올려 검을 머리 뒤로 넘긴 채 한쪽 발을 앞으로 내밀어 언제든지 뛰어나갈 수 있는 자세로 바꾸었다.
 “월령(月領)- 암회(暗廻)-”
 지금의 힘으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기술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방어구로 변해 있던 수호신이 이제는 검으로 몰려든다.
 검은 방어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뜻을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검은색의 날카로운 검으로 변했다.
 “······빨리 끝내자.”
 한의 달라진 모습에 조금 긴장하면서도 이내 한의 방어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대장 뮤는 다른 3마리 중 상처가 제일 심한 녀석 옆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놈의 목덜미를 물고는 냅다 한에게 던진 뒤 다른 두 마리와 함께 자신도 달려들었다.
 “······정말이지 싫은 놈이군.”
 공중을 날아오는 놈은 무시하고 뮤들의 포위진에 뛰어든 한은 그대로 검으로 원을 그렸다.
 사정거리 밖이라 안심했는지 그대로 공격을 멈추지 않던 놈들은 이내 무언가에 베인 듯 몸체가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그 와중에도 대장 녀석은 튕겨져 나가 비틀거린 뒤 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자식, 암회(暗廻)에도 베이지 않다니······ 어떻게 생겨먹은 자식이야.”
 지금 것은 암회를 발동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을 중심으로 약 2미터 지름의 보이지 않는 원형의 검기를 생성해 놓는 게 바로 암회라는 기술이었다.
 자신은 그 검기의 크기를 알 수 있지만 상대편은 모르기 때문에 공격해 들어오다가는 그저 두 동강 나기 십상이다.
 게다가 비록 자신이 펼친 암회의 예기가 떨어진다고 해도 D급의 몬스터가 견뎌낼 정도는 아니었기에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대장 녀석을 쳐다봤다.
 크르르릉! 크와아앙!
 녀석의 외침에 놈의 주위로 우윳빛 반원형의 보호막이 생성되었다가 사라졌다.
 “······저 자식······ 보호막까지 두르고 있······었어?”
 보호막을 사용할 수 있는 몬스터의 등급은 아무리 못해도 A급 중에서도 상급으로 분류될 정도로 강한 녀석이다.
 어지간한 능력자들이 떼거지로 덤벼도 콧방귀를 뀌면서 하나씩 도륙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놈에 속한다. A급 중에서도 보호막을 생성하지 못하는 녀석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D급인 이 녀석이 보호막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돌연변이가 아니라면 ‘주인’을 만난 녀석들 중에 하나라는 결론이 나온다.
 “······정말이지 쉬운 게 없군.”
 더 이상은 월령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힘에 겨운데다가 아까 물린 팔의 상처 때문에 흘린 피도 만만치 않아 점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입에서 절로 욕지거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르르릉!
 그래도 다행인 건 D등급이었기 때문에 보호막의 수준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것인지 미세하게나마 상처가 남기는 했다.
 아주 미세하게 말이다.
 마치 종이에 피부가 베인 듯한 상처라도 상처가 나긴 난······.
 회복돼 버렸다.
 “빌어처먹을······ 아주 그냥 죽어보자!”
 이미 암회로는 저 녀석을 어떻게 할 수 없는데다가 더 이상 검을 월령 상태로 유지하기도 힘들고 해서 힘을 풀어 버렸다.
 그러고는 검을 검집에 넣고 총으로 바꿔 들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와 온몸의 체중을 실어 들이받는 놈의 몸을 간신히 피하고는 총에 달린 칼날을 휘둘렀으나 역시나 텅 하는 소리와 함께 퉁겨져 나와 버린다.
 크르릉······킁.
 마치 비웃는 듯한 느낌의 울음소리에 다시 한 번 욕지거리를 하고는 마지막 남은 힘을 총에다 집중시켰다.
 녀석은 다시 한 번 한의 목덜미를 물려고 아가리를 벌리고 날아왔다. 피할 힘도 없는데다가 그로서는 꽤나 환영할 만한 상황이었기에 웃으면서 녀석의 아가리 속으로 총과 함께 팔을 깊숙이 집어넣고는 웃었다.
 “잘 가라······ 개새끼야.”
 타앙! 퍼어엉-
 다행히 늦지 않게 죽여서 깊게 물리지는 않았다. 조심조심해서 놈의 아가리에서 팔을 빼내고는 뒤로 넘어지다시피 누웠다.
 “후아후아······ 여기서 잠들면 죽을 텐데······. 미······쳐 버리겠군.”
 보호막 자체를 베어 버릴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안쪽을 공격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놈의 아가리 속에다가 팔을 넣고 총을 쏜 것이었다. 그것도 일반 탄으로 쏘았다면 그저 조금 켁켁거리고는 이내 한의 팔을 씹었을 놈이다.
 하지만 수호신으로 변형시킨 탄알이기에 이렇게 터져 버린 거다. 총을 총집에 넣고는 수호신을 다시 상처 부위가 심한 곳에 방어구 형태로 만들어 착용했다.
 기본적으로 수호신 착용 상태에서는 회복 능력이 몇 배나 높게 나타나기 때문에 특별한 의료기구가 없는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라도 응급처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그래도 살아남았으니 다행이지 뭐. 안 그래? 조금만 기다려. 어떻게든 그리로 갈 테니까.”
 그렇게 누워서 조금 기력을 회복한 뒤에 뮤들의 생명석을 수집하자, 역시나 예상대로 대장 뮤의 생명석의 등급은 A급에 가까울 정도였다.
 한은 그렇게 시험 조건을 달성한 뒤에 마을로 돌아갔다.
 간신히 수호신을 유지한 채 중개소 입구까지는 왔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쓰러져서는 헌터 중개소 직원인 얀의 고함 소리와 우당탕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를 끝으로 의식이 완전히 끊겼다.
 
 “일어났나?”
 그래도 다행히 마을 밖으로 버리지는 않고 치료를 해준 것인지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깨달은 한은 이내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답도 없구먼. 뭐 그래도 살아난 게 용하다고나 할까? 비록 수호신의 치유 능력 증폭으로 이겨낸 거겠지만······ 솔직히 죽을 줄 알았는데.”
 “······아직 죽고 싶은 맘 없습니다.”
 “말은 할 줄 아는구만.”
 “후우······ 어떻게 됐든 간에 치료해 주신 건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주위를 둘러본 결과 아마 헌터 중개소 안의 치유실인 듯하다.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머리를 하얗게 염색한 건지 아니면 원래 저런 머리색인지는 몰라도 하얀 머리를 올백한 남자가 그래도 의사라고 흰색 가운을 걸친 상태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아아······ 감사할 필요 없어. 수고비는 받았거든.”
 “예? 수고비요? 저 돈은 얼마 없었을 텐데요?”
 “시험에 필요한 D급 생명석 말고도 개수가 좀 되더구만. 그리고 A급에 가까울 정도의 생명석 하나까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뭐.”
 저 남자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그럼 시험에 필요한 생명석 말고는 모두 다 치료비로 꿀꺽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비록 자신의 상처가 심각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비싼 값에 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A급 생명석의 가격은 5천만 원에서 1억 가까이 한다. B급은 1천만에서 5천만까지, 그리고 C급은 5백만에서 천만, D급은 10만부터 500만까지 다양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3화-
 
 
 “······A급 생명석도 치료값에 포함됐다는 소리입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자네 죽을 뻔한 거 살아난 거야. 그 정도 값은 내야지.”
 “······제 검 어디 있습니까.”
 “자네 검? 그거 저기 소파 옆에 있지 않은가. 근데 벌써 검 들고 나가려고 그러는가? 조금 더 있어도 괜찮은데 말이야.”
 한은 아무 말 없이 소파 옆에 있는 한검을 들고는 스르렁 소리와 함께 검을 꺼낸 뒤 낮게 말했다.
 “······후후······ 사기꾼은 오랜만에 보는군. 후후.”
 낮은 목소리에 남자는 심할 정도로 움찔하더니 이내 휘파람을 불고서는 한을 쳐다보지도 않고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향했다. 한은 울컥 짜증이 나 한마디 해줬다.
 “베어버릴까나. 사기꾼 따위.”
 “흐억······ 하하, 미남 친구, 사실은 A급 생명석과 D급 생명석 10개는 여기 고스란히 있다네. 그냥 농담 한번 해 본 걸세. 으하하하핫.”
 “내가 그냥 넘어갔으면 꿀꺽하려고 하신 거 아닙니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계속해서 쳐다보자 남자는 한의 눈길을 피하며 헛기침한 뒤에 마이크에다 대고서는 큰 소리를 질렀다.
 “에이이이잇! 제길, 얀 어서 내려와 봐! 이 녀석 일어났다구!”
 “······역시나 헌터 중개소인가. 당신 치료사입니까?”
 “야아아안! 어엉? 아아······ 응, 치료사야. 제법 실력은 있는 편이지. 에헴.”
 헛기침과 함께 자신의 진가를 이제야 알아봤냐는 듯 으스댔으나 어째서인지 한은 멍한 표정일 따름이었다. 남자는 머쓱해서 다시 얀을 부르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벌렸다.
 “후으으으읍······ 야아아안! 쿨럭쿨럭······.”
 남자는 얀의 등장으로 사레가 들려 버렸다.
 “시끄러워어! 소리치지 마. 어? 꼬맹이 일어났냐.”
 “예. 생명석은······ 받으셨나요?”
 “응. 너 제법이더라? 엄청나게 많이 구했던데? 근데 A급 생명석은 어떻게 구하게 된 거냐?”
 닫은 문 앞에서 웃으며 말하는 얀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매나 풍기는 분위기로 봐서는 간단히 끝날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얀의 생각이야 뻔하다. 내가 해결한 일이 아니다. 우연히 고랭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생명석만 건졌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간단하게 말씀 드리자면······ 죽이고 얻은 겁니다.”
 한의 말에 얀은 씨익 웃더니 다시 말했다.
 “길게 말하면?”
 “힘들게 싸웠고, 대장 뮤가 보호막을 쓰는 정도였는데 죽이니 A급 생명석을 주더군요.”
 “······보호막······이라고?”
 “말도 안 돼! 뮤는 D급 몬스터인데 어떻게 보호막을!”
 경악이라도 한 듯이 둘이 똑같이 동요하는 모습에 순간 웃겨 한이 풋, 하고 웃자 얀과 치료사가 이상한 듯이 쳐다보았다. 한은 다시 웃음을 내뱉었다.
 “아마도 ‘주인’을 만난 거겠죠.”
 “‘주인’을 만난 몬스터였나 보군.”
 한과 얀이 같은 말을 해 버린 게 놀라운지 아니면 자기만 모르고 있었던 게 부끄러웠는지 치료사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얀이 ‘주인’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에 한이 놀라는 순간, 동시에 얀도 한이 ‘주인’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고위 랭커들이나 군대 고위 간부급들만 알고 있는 ‘주인’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는 얀이라는 존재도 보통은 넘는 듯하다.
 “어떻게 니가 그걸 알지?”
 “그러면 얀 씨는 어떻게 알죠?”
 둘 다 말없이 서로 쳐다보다 얀이 먼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좋아. 그건 넘어가지. 일단 시험은 완료했고 너······ A급에 가까운 몬스터를 잡을 능력이 있었던 거냐? 무급인데도?”
 마지막 말을 할 때 얀의 눈동자는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눈동자 안에는 호승심이 살짝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훗, 얀이라는 남자도 꽤나 전투를 좋아하는 타입인가 보다.
 “‘주인’을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보호막도 미숙했고 D급이라 그다지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외부공격에 강할 뿐이라고나······ 할까요?”
 “흠······ 그런가. 몸은 괜찮은가?”
 “예. 이분 실력도 괜찮은 듯하군요. 거의 다 회복된 듯한 느낌입니다.”
 “거의 회복이 아니라 다 회복된 거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치료했는데!”
 “저렇게 보여도 나름 실력 있는 치료사거든. 아마 몸 움직이는 데 불편함은 없을 거다. 그건 그렇고 너 등급은······ 어떻게 해 주길 원하냐.”
 “무슨 소리십니까?”
 아리송한 말에 요지를 알 수가 없어 멍하게 물어보자 얀은 피식하고 웃고는 말했다.
 “A급 생명석을 구해올 정도면 바로 B급까지는 발급해 줄 수 있다는 소리지.”
 아아······. 헌터는 실력제다.
 B급까지는 생명석을 구해 오는 정도에 따라서 진급을 할 수 있다. 물론 전쟁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생명석을 구해 진급한다. A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의뢰를 받아서 해결해야 하지만 이건 D급에서 올라갈 때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난이도가 심각할 정도로 차이 날 뿐이다.
 “아뇨. D급이면 충분합니다.”
 “······의외로군. 너 헌터 자격증이 왜 필요한 거냐.”
 “흐응······ 그건 비밀인데요? 그냥 신원 확보용이라고나 할까요?”
 “일단 올라가지. 인철아, 넌 어떻게 할 거냐?”
 “어? 난 좀 쉬련다. 저놈 치료한다고 나름 힘 좀 썼더니 힘들어.”
 “피식, 맨날 골방에 처박혀서 빌빌대니 그렇지. 나중에 음식 내려보내 주마.”
 “엉.”
 그렇게 치료사와 대화를 끝낸 얀을 따라 그의 방까지 올라온 한은 그러나 이번에도 헌터 자격증을 바로 건네받지 못했다.
 “조금 시간이 걸리니까 금빛 호수에라도 가 보지 그래?”
 “아······ 호수요?”
 “그래, 호수. 꽤 유명한데, 거기. 일출이나 일몰 때 금빛으로 변하는 거 때문에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고 신혼부부들도 많이 찾아오는 명소거든.”
 “······ 거길 남자 혼자 보내겠다는 겁니까.”
 “그럼 내가 여자까지 조달해 주랴? 중개소 뒤쪽 길 따라서 10분 정도 걸어가 봐. 우리들 전용로라서 사람들도 없고 조용할 거다.”
 “예예······ 다녀오죠 뭐.”
 어차피 검에 묻은 피도 좀 씻어내야 하니 마침 잘됐다는 생각으로 뒤쪽에 난 길을 따라 걷자 조금 뒤 넓은 호수가 보였다.
 반대편에는 예쁘게 포장된 길도 있고, 데이트 코스답게 아기자기하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기에 호수는 그 이름 그대로 금빛 호수에 걸맞게 변해 있었다.
 “흐응······ 이쁘기는 한데······ 눈이 너무 부시네.”
 말은 그리 해도, 아름다운 광경에 미소가 스며 나왔다.
 “얀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나. 일단 검부터 좀 손질해야겠군.”
 검을 꺼내자 굳어 버린 피로 인해 마치 녹슨 것처럼 검붉게 변한 모습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미안.”
 전혀 손질하지 못한 검에 대해 잠시 사과의 말을 하고는 물로 씻었다.
 그러자 금빛 호수가 마치 핏빛 호수로 바뀌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앞으로 이 호수의 물로도 다 씻지 못할 피를 묻힐 테니······ 미래를 보여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부스럭-
 “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로 돌아보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165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검은 생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채, 무표정한 얼굴로 선 여자가 한을 쳐다보며 짧게 말했다.
 “······호수오염범.”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앞에 쭈그려 앉아서 한과 얼굴을 마주 보고는 다시 말한다.
 “호수······ 오염시키지 마요.”
 “네?”
 순간 멍해지는 한의 얼굴을 본 그녀는 얼굴을 조금 찌푸리며 작게 한숨을 쉬고는 일어섰다. 얼굴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간 뒤였다.
 “검.”
 “아······ 검 씻은 걸 말하는 거였군요. 음······ 호수관리인이셨어요? 죄송해요.”
 ‘이 호수를 관리하는 공무원인가. 뜬금없이 나타나서 호수 오염시키지 말라니. 뭐 나도 잘 한 건 없지만 검에 묻은 피를 씻다가 걸리다니.’
 “······네.”
 한이 물속에서 검을 빼자 그녀는 뒤돌아서 걸어갔다. 문제는 그 걸어가는 방향이 한이 온 길과 동일하다는 게 문제였다.
 ‘헌······ 터였나?’
 그렇게 그녀를 뒤따라서 다시 헌터 중개소로 돌아오자 얀이 반겨준다.
 “현아, 어디 다친 데는 없나?”
 “네. 여기.”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에서 5개의 주머니를 꺼내 얀에게 건넸다. 얀은 그것의 입구만 풀어서 안을 대충 확인하더니 선반 밑으로 내려놓고는 웃으면서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현아가 가져온 건데 뭐 확실하겠지. 근데 이번에는 괜찮았어?”
 “······네.”
 “뭐 특별하게 변화된 움직임은 없나 보네.”
 “······네.”
 “그래, 그럼 언제 다시 의뢰 맡을 거야? 이번에도 3일 뒤로 해 줄까?”
 그들의 대화를 들어본 결과 아마도 저 현아라는 헌터는 이 중개소의 단골 헌터인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의뢰품을 대충 확인하는 것과 의뢰 날짜를 알아서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저 여자 되게 무뚝뚝하네. 얀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하는데 단답형 대답이라니. 왠지 모르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느낌이 확확 든다고나 할까. 게다가 호수오염범으로 찍힌 한으로서는 더더욱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근데······ 저 사람은······?”
 “응? 아아.······ 한이라고 이번에 헌터 시험을 가볍게 통과한 녀석이지. 마침 딱 맞게 왔군. 자, 여기 자격증 나왔다.”
 “음······ 참 빨리도 나오네요?”
 “후후. 부탁이니 잉크 마르기도 전에 삭제 안 되게 해 주길 빈다. 뭐······ 너도 꽤 실력이 있을 테니까 무리만 안 한다면 단명하지는 않겠지.”
 “저 오래오래 살 겁니다. 왜 이러십니까.”
 “그런 놈이 반죽음 상태로 걸어 들어와서 쓰러지냐?”
 “······반죽음?”
 “아······ 글쎄 이 녀석이 딱 봐도 약해 보이지 않냐. 그래서 D급 몬스터로 파티에 끼어서 생명석이나 구해 오라고 했는데 혼자 가서 구해 온 게 아니겠나. 그러다가 무리를 만나서 반죽음 상태로 헌터 중개소까지 온 녀석이지. 그래도 D급 생명석을 20개나 구해 온 거 보면······ 실력은 있으니까 뭐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겠지.”
 다행히 얀은 주인을 만난 몬스터 이야기는 빼고 그녀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었기에 딱히 말리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다. 다만 그의 구시렁거림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한은 말을 중간에 잘랐다.
 “······D급 생명석 10개 처리 좀 해 주시죠.”
 “그러니까 말······ 엥? 아아······ 그거 개당 30만 쳐줄게. 어떻게 할래?”
 “그 가격으로 하죠. 그리고 보호 장비랑 11밀리미터로 된 24발 탄창 10개 챙겨 주시고 치료비도 그 가격에서 제하고 남는 것만 주세요.”
 “흠······ 그 권총에 쓸 건가 보군. 근데 의외로 구경이 큰 편이군. 손목이 견디기나 하나?”
 “후후······ 무급이여도 수호신은 가능하거든요.”
 하긴 누가 봐도 손목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말랐으니······ 얀의 말도 이해가 되지만 이봐, 이봐······ 아가씨, 그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은 어떻게 좀 안 될까?
 수호신을 소환하지 않은 상태로 월령을 못 쏘는 건 아니지만 24발 연발은 인간적으로 무리지. 수호신 상태가 아니라면 10발이 한계다. 물론 5발 이상부터는 정확도가 반도 안 되겠지만 뭐, 수호신 상태라면 24발은 가뿐히 쏘고도 남으니까.
 “그런가? 어디 보자, 300에서 치료비 100 제외하고 탄창 값 20만 제외하고 보호 장비 50만 제외하고 그리고 헌터 자격증 값 10만 제외하면 120만이네. 맞지, 현아야?”
 “······예.”
 “그걸 왜 이 아가씨한테 물어보고 하는 겁니까······.”
 “하하하, 내가 숫자놀음에 좀 약해서 말이야. 자자, 일단 현금으로 줄까 아니면 헌터 카드로 넣어줄까?”
 “카드로 해 주세요.”
 얀에게 헌터 카드를 주고 다시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는 나른하게 비추는 햇빛에 취해 멍하니 있자 아까 그 현아라는 아가씨가 다가와서는 물었다.
 “호수오염범 씨······ 헌터였어요?”
 “아, 네. 현······아 씨죠? 근데 현아 씨도 헌터세요?”
 솔직히 그녀는 딱히 무기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한처럼 방어구 형태의 수호신을 지닌 것인지 그저 평상복이었다. 언뜻 봐도 뭐 무기를 들고 움직일 만한 손도 아니었으며 전체적으로 근육이 발달된 것도 아니었다. 뭐 어느 정도 훈련은 했는지 군살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인 전투로 인한 근육은 아니었기에 더욱더 이상했다.
 “네.”
 “실례가 안 된다면, 수호신의 형태가 어떻게 되시나요?”
 “······소환요.”
 아아, 소환이라면 그녀의 행색이 이해가 된다.
 소환 형태의 수호신일 경우 자신은 거의 전투를 벌일 일이 없는 편이다. 일단 안전한 지역에서 소환을 한 뒤에 수호신으로 직접적인 전투를 하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능력이기도 하며 몇 없는 능력 중에 하나다.
 “헤에······ 좋으시겠다.”
 “······뭐가요?”
 “별로 없는 능력이잖아요. 소환은.”
 “······그런가요. 그럼 한 씨는······ 어떻게 되세요?”
 “제 수호신은 갑옷 형태예요.”
 “······그렇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미인께서 물어보시는데 뭐든지 답해 드리지요. 하핫.”
 “······그럼······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시죠?”
 ······순간적으로 굳어 버렸다.
 왠지 모르게 이 아가씨와 함께 했다가는 발목 잡힐 듯한, 뭔가······ 아주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애매하게 웃고 있자 무표정 아가씨의 눈매가 점점 험악하게 변했다. 한은 자기도 모르게 그만 말해 버렸다.
 목적지가 어딘지 들은 그녀는 놀랐는지······.
 놀란 게 맞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무표정에서 눈만 부릅떴다가는 이내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 한숨을 쉬고는 알겠다고 말하고 뒤로 돌아서 얀에게 인사를 한 뒤 헌터 중개소를 나갔다.
 한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기다리자 얀이 보호 장비와 탄창, 헌터 카드를 들고 나타났다.
 “이봐, 한. 의뢰거리 줄까?”
 “아뇨. 가봐야 할 데가 있어서요.”
 “음? 어디로 갈려고 그러는가?”
 
 
 -4화-
 
 
 흐음, 내 행적지가 그렇게 궁금할 일인가? 보는 사람마다 물어보는군.
 이래서 인기인은 괴롭다니까. 훗. 뭐 특별히 비밀거리도 아니니 상관없겠지.
 “메시아로 갈 겁니다. 그래서 헌터 자격증이 필요한 거구요.”
 “아, 메시아 말인······ 뭐? 메시아? 야 이 녀석아! 내가 잉크 마르기도 전에 삭제하기 싫다고 했지. 뭐? 메시아? 이게 죽으려고 머나먼 이국땅까지 가냐? 내가 그냥 여기서 죽여주마! 이리 와!”
 “히에에엑.”
 정말 죽일 듯이 따라오는 얀의 모습에 한은 스스로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스피드로 달려 나갔다.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한은 정말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차라리 뮤들과의 전투가 더 낫다고 느낄 정도였다고 말할 정도로.
 “······후우······ 메시아라니. 정말이지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 저 녀석.”
 그렇게 한이 나가고 얼마 안 되어 현아가 다시 헌터 중개소에 나타나 얀에게 말했다.
 “이거 처리해 주세요.”
 “응? 생명석이냐. 어디 보자······ 오, 현아 너 알부자였네? B급이 34개에 A급이 9개나 있네. 으챠챠, 이거 바로 돈은 못 주겠는데? 이 정도 자금은 없어서 말이야. 일단 B급 10개 가격은 바로 카드에 넣어주겠는데······ 다른 거까지 팔 거야?”
 “네. 다른 건 본사에 올려서 카드로 넣어주세요.”
 “흠······ 뭐 그렇게 하지. 일단 카드 줘. 근데 어디로 갈려고 그러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생명석을 판매하나?”
 얀은 그녀가 건네준 카드와 생명석들을 정리하고, 카드에 B급 생명석 10개 가격인 4억을 입금시키고는 웃으면서 물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말 한마디에 굳어 버렸다.
 “메시아.”
 그러고는······ 현아도 빠른 걸음으로 카드를 챙긴 채 헌터 중개소를 나왔다.
 “크아아악! 현아 너까지 왜 그러는 거야! 아앙? 다들 죽고 싶은 거로구만. 좋아, 내가 다 죽여주지. 어딜 가! 정말로! 내가 미쳐 버리겠다! 아주 그냥!”
 ‘······얀 아저씨······ 미안. D급인데 메시아라니······ 너무 위험해.’
 두 번의 발악을 하는 얀에 의해 그날은 아무도 헌터 중개소를 찾지 않았다.
 
 “흐응······ 역시 항구는 활기차다니까?”
 중개소에서 나와 항구에 도착하자 조금은 축축한 바다공기가 한을 마중했다.
 여기저기 바쁘게 물품을 내리고 싣는 사람들과 기계들. 그리고 많은 수의 배들, 그야말로 활기찼다.
 근처를 둘러보다 매표소를 발견하고 들어가자 조금 서늘할 정도의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 현아 양?”
 “네.”
 “하하······ 어디 가시나······ 보죠?”
 “······네.”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이건 내 살아온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불안하다.
 한이 서서히 뒷걸음치자 그녀가 다가와서는 한의 팔목을 잡고는 웃었다.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정말 그 순간 한은 넋을 잃고 봤다고 해도 좋았다. 확실히 그녀는 미인이기는 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붉은 입술은 한눈에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무표정이 그녀의 미모를 깎아내리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도 나름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웃고 있는 그녀는 예뻤다.
 하지만 한이 넋을 잃은 건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스스로는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게······ 뭐죠?”
 “메시아 행 배표요.”
 그러고는 다시 살며시 웃는 그녀에게 한은······ 수긍했다.
 이길 수 없다고.
 ‘이거······ 행운인 건가. 미인이 대시해 주는 거겠지? 그런 거지?’
 한은 그렇게 반쯤 포기와 자기위로를 하며 그녀가 주는 표를 받고서는 그녀를 따라 메시아 행 배를 찾아 올라탔다.
 “······확실히 크긴 크네.”
 “50만 톤짜리 배니까요.”
 항구에서 출발을 해서 메시아까지는 3일하고도 12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 긴 시간 동안 배 안에서 지내야 했다.
 거의 모든 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고 자동 방어 시스템을 가진 데다가 방어 용병들 숫자만 300여 명을 넘고, 또 메시아로 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헌터가 아니면 나라에서 파견 보내는 구원병들이기에 치안은 확실했다.
 아니, 어떻게 말하면 헌터와 군인들끼리의 싸움이 번번이 일어나는 것 이외에는 전혀 다른 치안 문제가 없었다.
 물론 바다에도 몬스터가 있기는 하지만 배 외벽에 달려 있는 자동기관포만으로도 충분히 처리 가능할 정도로 위력적인 배였다.
 그리고 육지와는 달리 바다에는 일반적인 몬스터들밖에 없었기에 이 정도 대형 배가 나타나면 몬스터가 알아서 도망가 버리는 게 다반사라 그다지 위험은 없는 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동은 배로 하는 게 일반화될 정도였다.
 “후우······ 어디 보자, B-304실이라.”
 “······이쪽이에요.”
 “어? 몇 번 타보셨어요?”
 “······네.”
 그렇게 그녀를 따라 요리조리 내려가고 걸어가자 B-304실을 발견해 냈다. 이상하게 건물 안 지리는 헤매는 터라 걱정하고 있었는데, 빨리 찾자 싱글벙글하는 표정의 한을 쳐다보던 그녀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각방이에요.”
 “네?”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바로 옆방인 B-306실로 들어가면서 낮게 말했다.
 “······변태.”
 “······어째서?”
 순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멍해져 있다가 일단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해 본 결과······ 아마도 의미심장한 한의 웃음을 그녀 나름대로 해석한 결과가 이 상황인 듯싶다.
 아······ 정말이지 울고 싶은 마음뿐이다.
 “미치겠군. 그런데 그 아가씨 돈 많은가 보네. B급 객실 티켓 가격 꽤 되던데. 그걸 그냥 살 정도라니.”
 15평 정도 되는 객실에 화장실과 샤워 시설은 안에 구비되어 있고 텔레비전과 컴퓨터 등도 있는 데다가 침대 옆 벽면에는 창문도 있어 누우면 바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천장에 장치된 자동으로 온도를 맞춰주는 냉온방기를 올려다보자니 이 정도면 3일이 지겹지 않을 정도였다.
 “흐음······ 일단 A급 생명석부터 처리해 볼까나.”
 한은 가방에서 보호장비와 탄창들을 꺼내고 마지막으로 생명석을 꺼낸 뒤 생명석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침대 위에 던져두고는 침대에 기대앉았다.
 “<장착>.”
 익숙한 착용감······ 수호신을 착용한 상태가 착용하지 않은 상태보다 오히려 더 편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한은 그렇게 수호신을 착용한 상태로 생명석을 쥐었다.
 “<흡수>.”
 붉은빛이 감도는 생명석이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크기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30여 분이 지나자 생명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갑옷의 문양은 조금이지만 더 짙어지고 넓게 퍼졌다.
 “흠······ 이제 뮤들이 물어도 흠집 하나 안 나겠군. 훗······ 뭐 죽을 뻔했지만 이게 어디야. <해제>.”
 조용히 흡수를 완료하고 늘어난 힘을 확인하는데 작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자 그녀가 서 있었다. 청바지와 하얀 티를 입은 편안한 차림의 그녀를 보자 무표정도 의외로 귀여워 보였다.
 “······식사.”
 “밥 먹으러 가자구요?”
 “······네.”
 “하하······ 그러죠 뭐. 저도 배고팠던 참이니.”
 정말이지 무표정에 말도 단답이고······ 물음도 단답이고······ 자기는 편하겠지만 상대편은 아주 그냥 무섭고 답답하고 막······ 힘들다아!
 이번에도 지리도 모르고 해서 그녀 뒤를 졸졸 따라가기를 10분이 지나자 코로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5분이 더 지나자 뷔페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마치 돌격 직전의 적군처럼 패가 나뉘어서 서로를 쳐다보며 음식을 먹고 있는 헌터들과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
 “······분위기 되게 살벌하네.”
 “······식사.”
 “아······ 네네. 가요, 가요~”
 잠시 멈춘 게 마음에 안 든 듯 그녀가 얼굴을 찌푸린 채로 한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다시 금방 그녀에게 다가가자 무표정으로 돌아가 음식을 접시에 담더니 한에게 내밀고는 먼 곳을 쳐다보면서 말한다.
 “······여기.”
 “에? 아, 고마워요. 하하, 그런데 제가······ 퍼······담고 싶은 것만 퍼주셨네요. 하하핫.”
 “······.”
 대리만족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온통 고기류뿐이다.
 어떻게 채소 한 점을 안 올릴 수가 있냐고오······ 거기다 내가 무언가 변명을 하려고 하자 눈빛이 바로 험악하게 변해서 날 쳐다보는 이유는 뭔데! 진짜······ 내가 여자니까 한번 참고 먹는 거야.
 아오, 근데 이거 어떻게 다 먹냐. 한 접시 수북하게 3~4단은 쌓인 고기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자 그녀가 접시 두 개를 들고 오더니 식탁에 내려놓고는 한쪽으로 밀고서 말한다.
 “······드세요.”
 “하하······ 현아 씨는 안 드세요?”
 “······.”
 계속해서 쳐다보기만 하는 그녀로 인해 왠지 무안해지기도 해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문득······ 한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하니······ 퍼주기를 기다리는 건가?
 “······현아 씨가 제 꺼 담아주셨으니 제가 현아 씨 꺼 담아 올까요?”
 “······네.”
 아니······ 내가 퍼주는 게 마음에 안 들면 말을 하면 되지 왜 고개를 돌린 채 말하냐고. 쳇. 근데 뭐 좋아하려나. 으챠챠. 그렇게 접시를 들고 뷔페를 돌아다니다 몇 가지 음식들을 예쁘게 담아서 그녀에게로 돌아오는데······ 왜 그녀 주위에 남자들이 서 있으며 분위기가 험악한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봐, 아가씨. 배 잘못 탄 거 아냐?”
 “······아뇨.”
 “그럼 아가씨가 메시아로 가는 건가? 돈 벌러 가는 건가? 키킥.”
 “뭐 그런 거면 여기서도 벌게 해 줄 수 있는데 말야······ 흐흐.”
 “······전 헌터입니다.”
 “누가 뭐라나? 어차피 돈 벌려고 가는데 여기서도 버는 게 어때? 응? 여기서부터 버는 게 좋잖아, 안 그래? 3명이라고. 흐흐.”
 아아······ 정말, 꽃에는 나비가 꼬인다지만 왜 저런 똥파리 같은 것들이 꼬이는 걸까. 알게 모르게 불쾌해진 기분에 그녀의 뒤로 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앞으로 접시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현아 씨한테 볼일 있습니까?”
 “넌 또 뭐야.”
 갑자기 내가 뒤에서 껴안듯이 서서 말하자 그녀가 흠칫하면서 놀라더니 이내 아무 말 없이 그냥 포크로 접시에 있는 음식들을 뒤적거리는 데 열중했다. 귀가 빨간 게 많이 화난 듯하다.
 “사람을 그런 식으로 몰아가면 안 되죠, 아저씨들.”
 “이건 또 뭐야. 어디서 병신 같은 게, 너도 일행이냐?”
 “흐응······ 이왕이면 그냥 가시죠? 그쪽도 헌터인 것 같은데······ 문제 일으키지 말죠?”
 “그건 내 마음이지.”
 하아······ 정말이지 짜증이 솟구친다.
 3명 다 키는 고만고만한 게 177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데다가 몸 근육 상태로 보아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데도 3명이라는 것에 상당히 자신감을 보인다. 어쩌면 내 겉모습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리고 현아 씨의 미모도 한몫했겠군.
 “······적당히 말할 때 가시죠. 한군데 부러뜨리기 전에.”
 원래 남자는 여자와 함께 있을 때 불량배가 시비를 걸면 더 못 참는 법이다.
 수컷의 본능일지도 모르겠지만 시비를 당하는 남자가 힘이 있는 경우에는 대부분 더더욱 못 참는 게 맞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런 시비는 시비당한 쪽에서 피해 버리면 아무런 문제없이 지나가게 된다.
 시비 거는 쪽에서도 그렇게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제를 처음부터 크게 만들려고 작정하고 시비를 거는 놈들이었기에, 한은 스트레스나 좀 풀자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강하게 나갔다.
 “웃기는 꼬맹이군. 일단 너부터 손봐줘야겠군.”
 “후우.”
 한이 천천히 일어서서 옆으로 나가자 그들은 비웃으면서 그의 주위를 포위했다. 한은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 참에 그냥 그대로 달려들어 올려치기로 턱을 가격했다.
 그대로 팔을 잡아 엎어뜨린 뒤, 뒤로 빠져 남은 두 명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들도 순식간에 대장 녀석이 당하자 긴장했는지 서서히 자세를 잡는다. 그래도 기본기는 된 녀석들인지 자세를 잡자 빈틈이 많이 사라졌다.
 “제법이군, 꼬맹아.”
 “제대로 하자. 키르.”
 “미안하지만 이미 끝났어요.”
 “뭐라······ 컥.”
 어느샌가 뒤로 다가와 그들의 목덜미를 가격한 현아의 공격에 아무런 대꾸 없이 쓰러져 버린 두 명이었다.
 그녀는 기본 체술 실력도 상당한 듯하다. 그래도 나름 헌터인 녀석들이 쉽게 뒤를 내주고, 목덜미를 가격한 것으로 기절을 시킨 점을 보면 말이다. 솔직한 말로 사람을 기절시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숙달되지 않으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헤에······ 현아 씨 대단하다아~”
 “······식사해요.”
 “······네······.”
 아직 화가 덜 풀린 건가. 귀가 계속 빨갛네.
 그녀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기에 조용히 식사를 하고 올라가서 방 안에 들어갔다.
 그 3인조는 어떻게든 알아서 객실로 돌아가겠지. 왠지 모르게 귀찮아서 침대에 누워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그런데 내가 깬 건, 방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맞지?”
 “어. 객실 확인했어. 아까 그 여자 방이 여기야.”
 “그 여자 실력 있는 것 같으니 조심하자.”
 아까 그 3인조구만.
 정말이지 오랜만에 구타라는 걸 해보게 생겼네.
 그때 당연히 잠겨 있을 거라 여겼던 그녀의 방문을 열고 그들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느슨한 마음으로 아직 침대에 누워 있던 한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왔다.
 “아니 다 큰 처자가 문도 안 잠그고 뭐하는 거야······ 제길!”
 
 
 -5화-
 
 
 재빨리 방문을 열고 튀어나가자 튕겨져 나오는 3인조를 볼 수 있었다. 게다가 3인조는 각자 팔다리가 한 군데씩은 뒤틀려져 있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며 신음만 내고 있었다.
 “······죽고 싶습니까?”
 “끄어어······ 죄······죄송······.”
 3인조는 그렇게 몇 분을 사죄한 뒤에야 그녀가 부른 용병들로 인해 의료실로 옮겨졌다.
 그들이 들어가고 튕겨져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초가 안 됐는데 그 짧은 순간에 3명을 저 꼴로 만들어 버린 그녀의 실력에 한은 얼이 빠졌다.
 이를 본 그녀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말했다.
 “······다 들리게 방문 앞에서 걸어 다니고······ 대화하는데 모를 리가 없잖아요.”
 “······그렇군요. 근데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소환해 놓은 상태였어요.”
 “아하~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쉬세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도 혼자 멍하니 있기가 뻘쭘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간간이 식사 시간 때에 맞춰 그녀가 노크를 했고, 같이 식사를 마치고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서 지냈다.
 한은 나름 늘어난 힘을 알아본다고 바빴고 그녀도 나름 분주하게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배에서 내리자마자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울고 싶다······ 정말······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그 말은 내가 하고 싶다, 이놈아! 정말이지······ 누구 부탁만 아니었으면 나도 안 왔어!”
 한과······ 얀은 둘 다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 그녀는 웃는 얼굴로 말한 뒤 먼저 앞서 걸어갔다.
 “시끄럽군요.”
 ······난 아무래도 불행한 별을 타고난 것 같다. 그리고 얀 씨도.
 
 배에서 내린 한은 얀과 조금 투덜대면서 그녀를 뒤따라가 기차에 올랐다.
 한은 그녀에게 메시아로 간다는 말만 했을 뿐인데 그녀는 알아서 메시아의 최전선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이 그 점을 신기해하고 있자 옆에 앉아 있던 얀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뭘 그렇게 신기해하고 있는 건데. 이제 막 헌터 자격 딴 녀석이 메시아로 간다고 하면 열에 일곱은 최전선 전투에 참가하려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라, 현아도 그렇게 짐작하고 가는 거뿐이다.”
 “에? 그렇게 많아요, 메시아로 가는 사람들이? 목숨 아까운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의 말에 현아와 얀은 둘 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을 쳐다봤다. 한과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한숨을 쉬고는 창문 밖으로 눈을 돌렸다.
 이봐, 이봐······ 마치 내가 그런 사람들인 것 같잖아.
 “흐음······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13시간 조금 더 걸려요.”
 “헤에······ 현아 씨는 다 아네요? 몇 번 와보셨어요?”
 “······네.”
 “현아도 전에는 일곱에 속하는 아이였거든.”
 “······아저씨!”
 “흠, 흠······.”
 한과 현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아니면 지금 여기에 와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또 삐딱하게 말을 던지는 얀이었다.
 그 말은 헌터 시험에 합격하고 현아 씨도 메시아에 왔다는 소리였나 보다. 그래서 배편도 기차표도 딱딱 예매해 놓는 철저한 준비성을 보여주는 걸지도 몰랐다.
 “근데 넌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메시아로 가는 거냐?”
 “저요?”
 “그래. 너.”
 얀은 심심했는지 자려고 폼을 잡는 한에게 물어왔다.
 메시아로 가는 이유라······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어떤 걸 말해야 할지 몰라 한이 끙끙대고 있자 얀은 지레 짐작했는지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다.
 “뭐······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 메시아의 최전선은 정말 하루하루가 전투의 연속이니 생명석도 많이 구할 수 있고 헌터 등급도 올리기 쉬운 편인데다가 명성도 그만큼 빨리 올라가지. 그리고 군대와 함께 전투하기 때문에 군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들어오고 말이야. 돈, 명예, 권력, 이 3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이 메시아에서는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넘어오지. 하지만 그걸 아나?”
 갑자기 긴 이야기를 해서인지 숨을 고르고는 말하는 얀의 눈빛은 어리석은 자를 쳐다보는 자의 눈빛이었다.
 한심, 경멸, 동정.
 그의 눈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섞여 있었지만 그중 대부분은 안타까움이었다. 같은 민족이 전혀 상관없는 나라의 전투에 가서 속절없이 쓰러져 가는 것에 대한 분노 혹은 연민.
 그걸 느꼈기에 한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이 그저 그의 말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실상은 알지도 못하고 꿈만을 보고 메시아로 달려가지. 크큭······ 돈, 명예, 권력, 이 3가지를 가진 자가 얼마나 될까. 돈이라. 메시아에서 판매되는 생명석의 가격은 우리 한국에서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가격에 판매되고 명예라, 오늘의 작은 영광이 내일까지 지속되는 자는 몇이나 될까. 권력 또한 마찬가지지. 하루살이일 뿐이야.”
 “······그렇군요.”
 “이한. 다시 한 번 묻겠다. 너는 메시아에 무엇을 위해서 가는 거지? 돈? 명예? 권력?”
 얀의 말에 한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에는 한이 불을 향해 날아가는 그저 한낱 불나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을 알지 못했으며 한도 그에게 자신을 알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주어야겠다. 얀이라는 이 남자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한 스스로에게 자신을 속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주인’을 죽이러 갑니다.”
 한의 말에 얀과 현아는 굳어 버렸다. 그 정도로 놀란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의 말은 몬스터들 전체를 죽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후후후······ 으하하하하하핫!”
 한의 말이 농담이나 치기 어린 어린애의 투정으로 들렸을까? 얀은 정말 박장대소했다. 하지만 곧 웃음을 멈추고는 현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현아야, 고맙다.”
 “······네?”
 얀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얀을 쳐다보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잠시지만 즐겁게 웃었다. 하지만······”
 얀은 자상한 미소로 한을 쳐다보고는 이내 손을 들어 올려 한의 머리 위로 가져가더니 강하게 내려쳤다.
 “끄아아악······ 뭡니까, 갑자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놈아······ 헌터 시험 치르다가 반 죽어서 돌아온 놈이 잘도 주인을 잡겠다.”
 “아니 그건 나름 사정이 있으니 그런 거죠.”
 “개뿔. 말로만이면 난 이미 여러 번 주인 잡았다.”
 “아······ 이 아저씨 속고만 사셨나······.”
 쾅-
 “으어어어······ 또 왜 때리십니까!”
 “말버릇 하고는. 그래도 남자라면 그 정도 포부는 있어야지. 마음에 들었다. 네놈 실력 향상에 내가 조금 도움을 주도록 하마.”
 영광인 줄 알아라, 라는 표정으로 거만하게 폼을 잡는 얀의 모습에 괜스레 마음에 안 들어 고개를 획 돌리고 투덜거리자 다시 한 번 머리로 날아오는 손길을 느끼고는 재빠르게 일어나서는 강하게 말했다.
 “머리 때리지 말아요! 머리 나빠지면 어떻게 하려고······ 화장실 갔다 올게요.”
 절대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얀의 얼굴이 조금 험악하게 변해 가는 듯해서 내가 그냥 피해 주는 것이다.
 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는 모습을 보던 현아는 살짝 소리 내어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너 웃는 거.”
 “후훗······ 그런가요? 아저씨, 고마워요.”
 “뭐가 말이냐.”
 놀려먹는 재미가 있는 한이 사라지자 다시 불만 어린 표정으로 창문을 바라보는 얀의 모습에 그녀는 웃으며 손을 잡고서는 말했다.
 “······와주신 거요.”
 “킁······ 너도 너희 아버지를 쏙 빼닮았어. 그렇게 안 돌아올 것처럼 메시아로 떠나가는 친구의 딸을 보고 그냥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잖아. 게다가 너도 내가 올 거라고 예상했잖아?”
 “아뇨.”
 “정말?”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믿었을 뿐이에요.”
 “킁······ 그게 그거지. 그래도 재미는 있겠구나. 저 녀석 나름 실력 있는 놈이니 키워 볼 만할 것 같다. 근데 왜 저 녀석에게 갑자기 관심을 가진 거냐? 너 처음 보는 거잖아.”
 “······맞아요.”
 얀의 물음에 그녀는 그때 그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금빛 호수에서의 일을.
 “금빛 호수에서 그는 검을 씻고 있었어요. 하지만 노을 때문인지 그가 검을 담그자 호수가 핏빛으로 보였죠. 전 놀라서 그의 얼굴을 봤는데······ 그때 그가 절 돌아보는 순간 전 심장이 덜컥 멈추는 줄 알았어요. 호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너무······ 허무하고 슬퍼 보였죠. 물론 제 느낌이겠지만······ 눈물이 났어요.”
 “얼굴이 대체 어땠기에?”
 “그의 표정은 무표정했어요. 한데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나기 전의 얼굴 같았어요.”
 “······반한 거냐. 아니면······”
 얀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켜주고 싶어요. 그런 눈빛, 두 번 다시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래······ 알았다. 조금 쉬렴.”
 “네.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아저씨.”
 “뭐······ 오랜만에 늙은이 콧바람 쐬러 나온 셈 치지 뭐.”
 “헤헤······.”
 그녀는 짧게 웃고는 의자에 몸을 편안히 기대며 눈을 감고 잠을 취했다. 나름 배에서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피곤했던 그녀였다. 옆에는 얀이 있었기에 안심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한 녀석······ 복 받았군······. 벌써 눈물을 흘리게 했다니······ 지옥을 보여주지. 후후.”
 얀은 낮게 중얼거렸다.
 화장실로 도망 온 한은 알 수 없는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이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느낀 것은 피 냄새와 시끄러운 거리, 그리고 여기저기의 군인들과 헌터들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몬스터들의 공격을 알리는 울음소리와 군인들의 전투 준비 소리가 들렸다.
 크와아아아왕!
 “전원 전투 준비! 각 마법대 대원들은 캐스팅하고 보병들은 각기 성벽을 사수하며 백병대와 헌터들은 집결지로 모인다! 빨리 빨리 움직여라!”
 “······돌아왔군. 메시아로.”
 “······네.”
 얀과 현아의 자조적인 목소리 또한 한의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전투가 일어났음에도 희희낙락거리며 집결지로 달려가는 헌터들의 모습과 그다지 긴장감 없는 군인들의 모습이 여기가 메시아의 최전선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매일같이 몇 번씩 일어나는 전투로 인해 이곳의 군인들과 헌터들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 비해서 몇 배는 전투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말은 곧 그만큼 강하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는지 집결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한을 잡는 손길이 있었다.
 “어디 가요?”
 “네? 집결지로 가는 거 아닌가요?”
 한이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자 현아가 말했다.
 “헌터는 나라를 이동하면 이동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헌터 중개소에 위치 확인을 위해서 들러야 해요. 특히 메시아의 최전선인 이곳 같은 경우에는 신원 확인을 위해서, 처음 오는 사람들은 더더욱 헌터 중개소에 들러야 하구요.”
 “아······ 그렇군요.”
 “이래서 바보랑은 함께 다니기 힘들다니까.”
 “모를 수도 있는 거죠 뭐! 그거 가지고 투덜대시기는.”
 한과 얀이 다시 옥신각신하자 현아는 한의 손을 잡고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손이 잡힌 한은 그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한의 모습을 보던 얀의 표정 변화가 웃겼다. 낄낄대다가 다시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표정을 구기다가, 이내 웃고 다시 구기고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표정에 한은 반쯤 얼이 빠져서 현아의 손에 이끌려 헌터 중개소까지 도달했다.
 “어서 오세요. 어? 현아 씨? 얀 님? 언제 오신 거예요? 얼마나 머무실 겁니까! 의뢰는 당연히 하실 거죠? 으하하핫, 오랜만에 군부에다가 S급 의뢰 달라고 자신 있게 말해야겠네. 그건 그렇고······ 그 병아리는 뭡니까?”
 녹색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남자가 엄청난 속도로 말을 해 버리자 한은 뭐가 뭔지 몰라 또 멍하니 있었다. 나머지 둘은 그 남자와 아는 사인지 아니면 익숙한 건지 한을 데리고 의자에 앉은 후에 헌터 카드를 꺼내서는 그에게 내밀었다.
 “인증해 주고······ 오늘 왔어. 언제까지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게다가······ 병······ 풋······ 병아리라······ 어울리는구먼.”
 얀과 그의 말에 한은 병아리라는 존재가 자신이라는 걸 눈치채고는 왜 그런 말을 듣게 됐는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냈다. 현아 양의 손에 이끌려 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뭐라 변명할 수가 없었기에 조용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런 한의 모습은 상관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웃고 이야기하더니 이내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그건 그렇고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건 또 현아 씨와 함께······라니······.”
 “그만. 그건 됐고 요새는 어때?”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돌리는 얀의 모습에 한은 궁금증이 일었지만 곧 현아가 가지고 온 커피에 그들의 이야기에는 관심을 끄고는 현아에게 물어봤다.
 “근데 현아 씨 지금 전투 중인데 저희 여기서 이렇게 차 마시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도와주러 가야 하지 않아요?”
 “괜찮아요.”
 “······그렇군요.”
 한은 확실하게 말해 주는 그녀의 모습에 그런가 보다 하고는 그녀가 가지고 온 커피를 마시면서 그동안의 이동 때문에 피곤해진 몸을 의자에 푹 파묻고는 얀의 이야기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똑같죠 뭐. 달라진 게 있다면 가끔씩 나오던 A급 몬스터들이 조금 자주 출몰한다는 것과 ‘기사’의 출현빈도가 높아졌다는 점? 그리고 얀 님이 있을 때 3차 공격지대까지 확장됐던 영역이 지금은 성벽을 지키는 걸로 줄어들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요? 게다가 공격해 오는 몬스터들의 질도 제법 높아졌어요. 그래도 전에는 C급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웨어울프와 오크전사들로 B급으로 구성되어 온다는 점이라고나 할까요?”
 “······이봐, 카르밀. 그 정도면 꽤나 심각한 거 아닌가?”
 “전력상으로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에요. 예전에 C급이 하루에 몇 천 마리씩 공격해 오던 거에 비하면 지금은 숫자가 반의반도 안 되는 숫자거든요. 하루에 한 3천 마리 정도? 그에 비해 메시아 정부에서도 위험을 느낀 탓에 지원된 군인들의 숫자는 전에 비해 많아졌기 때문에 상황은 비슷하죠.”
 
 
 -6화-
 
 
 “그런가······ 수준은?”
 “군인들 수준은 B급 상급 정도 되고 헌터들은 A급입니다만 이곳 전쟁지역에 참여하는 헌터들은 B급이죠. 의뢰를 수행하는 쪽으로 A급들이 다 몰렸거든요.”
 “흠······ 현아야, 저 녀석 데리고 도와주고 오도록 해.”
 “······네. 가요, 한.”
 “아? 네.”
 그녀에게 다시 손을 잡혀 길을 나서는 모습에 얀과 카르밀이 다시 웃음을 터트려서 민망했지만, 한은 그렇다고 손을 쳐내기도 그래서 계속 손을 잡힌 채로 집결지로 향했다.
 한과 현아가 나가자 얀은 웃음을 거두고는 카르밀에게 물었다.
 “카르밀······ ‘기사’의 출현빈도는 어느 정도인가?”
 “······두 달에 한두 번 정도입니다.”
 “미치겠군. 메시아 정부에서는 대책을 마련했나?”
 얀의 말에 카르밀은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모습에 얀은 한숨을 쉬고는 인정했다.
 말이 대책이지 ‘기사’라는 존재의 출현은 정말 많은 이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이 ‘기사’는 5명이 존재하는데 ‘주인’을 지키는 자들이다.
 사람들은 이 5명을 5개의 운석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며 중간의 수정을 지키는 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운석에서 나온 것은 맞으나 수정을 지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주인’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기사들의 파괴력은 너무나 강했다. 4년 전, 인간 측은 대규모 공격으로 운석의 본거지까지 점령하는 데에 성공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각국의 S급 능력자들과 대규모 군인들이 함께 전쟁을 했었기에 몬스터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운석에 가까이 갈수록 A급 몬스터들의 출현이 잦아지고 숫자도 늘어났지만 인간 측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다.
 S급 능력자만 15명에 달했고 총 병력 숫자만 만여 명에 다다를 정도로 대규모였기에 20~30마리씩 나오는 A급 몬스터들은 그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운석과의 거리가 고작 10킬로미터 남았을 때 그들은 목격했다.
 한 명의 인간형 몬스터를. 그러나 그 한 명의 전투력은 막강했다.
 그는 스스로를 ‘기사’라 밝혔다. 많은 전투로 지쳤다고 하나 S급 능력자들의 숫자만 15명이었는데도 ‘기사’ 한 명과 막상막하를 이루었다.
 그런데 ‘주인’이라 불리는 빛의 인간의 출현으로 기사의 능력치는 3배 이상 향상되어 버렸고, 인간 측은 후퇴했다.
 하지만 이때 인간 측은 S급 능력자 2명을 잃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후퇴를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기에.
 정부 측에서는 너무 많은 전투로 인해 피로해진 탓에 그렇게 후퇴를 했다고 했지만 이미 ‘기사’의 능력은 공공연히 알려져 버렸다.
 “······전선에서 너무 오래 벗어난 건 아닌지 모르겠군. 기사라니······.”
 “2년······ 만이신가요?”
 “그렇지. 카르밀, 일단 헌터본부에도 연락해 놓게.”
 “예. 이미 해놓은 상태지만······”
 “내 이름을 팔게나.”
 “반수는 튀어오겠군요.”
 얀과 카르밀은 서로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이미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현아의 손에 이끌려 집결지까지 가는 동안, 한은 옆에서 뛰어가던 헌터들의 환호성과 휘파람 소리에 민망해져 멈추어 섰다. 현아가 왜 그러냐는 듯 쳐다보자 한이 말했다.
 “음······ 그게 현아 씨, 불편하지 않아요?”
 “네?”
 “손잡고 뛰어가는 거요.”
 “······싫어요?”
 “······아뇨! 싫다는 게 아니라······ 이제 전투도 할 건데······ 그게 음······.”
 “······가죠.”
 그는 다시 그녀의 손에 잡혀서 집결지까지 뛰어갔다. 도착해서는 헌터들 뒤로 줄을 선 뒤에야 손을 놓는 현아였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헌터들의 휘파람 소리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현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 있어 왠지 더 부끄러웠다.
 뭐, 물론 그것도 성벽 밖으로 들리는 몬스터들의 소리에 금방 사라졌지만 말이다.
 “마법대원 공격 준비! 성벽 소총 사격 준비! 성문 준비!”
 넓게 퍼지는 지휘관의 지시 소리가 한의 귓가에도 들렸다. 이내 다시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소총과 마법대원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콰와왕! 타앙! 쾅!
 “마법대원 중 보조마법이 가능한 자! 백병대에게 지원! 자동 방어 무기 준비!”
 지휘관의 지시가 다시 떨어지자 뒤쪽에서 대기하던 마법대원 중 일부가 백병대에게 보조마법을 걸어준 것을 확인한, 성문 앞에 서 있던 군복 입은 자가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한과 현아는 맨 뒤에 있던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 머리를 짧게 자른 자였다.
 “이미 전투에 익숙한 자들은 안 들어도 상관없다! 메시아에서의 전투가 처음인 자들만 들어라! 보조마법을 받으면 신체능력이 2~3배가량 증가될 거다. 물론 체질에 따라 4~5배까지 늘어나는 특이한 놈도 있을 테니 그놈은 지 복인 줄 알고 감사하도록. 보조마법을 받게 되면 성문이 열린다. 그러면 우리 백병대들은 공격해 나간다. 전체적인 지시는 내가 내린다. 하지만 헌터들 쪽은 한무일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도록. 아마 이번에 공격해 온 적은 웨어울프인 듯한데 숫자는 대충 천여 마리라고 한다. 가뿐하지 않나, 제군들?”
 “우오오!”
 “좋아. 이 정도에 죽어나자빠지지 마라. 아마 원거리 공격으로 인해 반수 이상 줄어들었을 웨어울프 따위에게 죽는다면······ 군인이라는 이름과 헌터라는 직업이 운다, 울어. 알겠나?”
 “우오오!”
 걸쭉한 입담으로 말하던 그의 말이 끝나자 백병대는 함성으로 답했으며 보조마법의 지원이 다 끝나자 다시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문 개방! 마법대원 공격 중지! 백병대 출진! 소총 사격 중지, 성벽 소총대원은 기관포로 사격 준비!”
 성문이 사람들이 나갈 정도로 충분해지자 다시 아까 그 군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병대 돌격!”
 “······한, 조심해요”
 “하핫······ 현아 씨도 조심해요.”
 “······네.”
 그녀는 살며시 웃은 듯했지만 다시 봤을 때는 무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백병대원들은 성문을 지나서부터 각각의 수호신들을 장착했으며 그건 한과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그녀는 수호신의 형태가 소환이었기에 안전할 거라고 생각돼 한은 전투에 집중했다. 웨어울프들은 붉은 눈빛을 빛내며 넓게 포진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대장은 명령을 내렸다.
 “무일! 오른쪽을! 난 왼쪽을 맡겠다. 우리들의 반도 안 되는 숫자다! 가볍게 정리한다!”
 그의 말에 은색 갑옷의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헌터들에게 말했다.
 “오른쪽이다. 군인한테 밀리지는 않겠지?”
 “우오오!”
 성문 앞쪽에서는 원거리 수호신을 가진 백병대원들의 지원사격이 시작되었다. 한은 헌터들을 따라 오른쪽의 웨어울프들로 향했다. 이미 배에서 A급 생명석을 흡수한 뒤라 웨어울프에게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당하지 않는 이상 크게 부상을 당하지 않기 때문에 안심하고 웨어울프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감각부터······ 살려볼까.”
 웨어울프들은 B급 중에서도 하급에 속하는 몬스터지만 본능적인 공격능력이 있었고,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B급의 상급까지도 능력이 올라가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름도 아니고 낮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다.
 한은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져 오는 손톱을 무릎을 굽혀 피한 뒤 검으로 목을 꿰뚫고 몸 안으로 파고들어 동시에 옆의 웨어울프의 허리를 베었다. 목을 노리고 찔러져 들어오는 웨어울프의 주먹을 손방패로 흘렸다. 그 탓에 자세가 무너진 웨어울프의 심장을 검으로 찌르고는 그대로 원을 그리며 주위를 베었다.
 A급 생명석을 흡수해 기본 갑옷 외에도 팔과 손에 끼워서 장착하는 손방패까지 추가로 만들 수 있게 되어 방어까지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후우.”
 1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미 6마리의 웨어울프를 베어 버린 한의 전투 능력에 헌터들의 사기는 더욱더 높아졌다.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 중에는 한무일도 있었다. 제법 실력 있는 헌터가 전력이 되자 나름 기분이 좋아진 그도 빠르게 웨어울프들을 죽여 나갔다.
 전형적인 기사 형태의 수호신을 가진 그는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방패와 길이 1미터 정도의 검으로 전투를 했는데, 괜히 대장을 맡고 있는 게 아닌 듯 방패술 또한 뛰어나 보이는 족족 웨어울프들을 죽이고 있었다.
 “헤에······ 역시 최전선이란 말이야. 다시 가볼까!”
 이제 암회는 5~6번은 무리 없이 사용 가능하지만, 여기서 암회는 오히려 아군까지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래서 검술로만 웨어울프들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한은 다시 한 번 웨어울프들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차피 그의 검술은 일대 다수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으챠챠······.”
 사방에서 찔러 들어오는 웨어울프의 공격을 검으로 원을 그려 흘려 막았다.
 몸 안쪽까지 들어온 팔은 손방패로 튕겨 냄과 동시에 정면으로 달려 나가 사선으로 웨어울프를 베었다.
 그리고 몸을 회전시키며 검의 사정거리에 들어온 웨어울프들의 허리를 베자 웨어울프들의 피가 튀어 올라온다. 이미 동족의 죽음과 혈향에 미쳐 날뛰는 웨어울프들은 마치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한에게 달려들었다.
 웨어울프들의 공격은 어차피 찌르거나, 휘두르거나, 무는 것, 이 세 가지가 다였다. 그랬기에 찔러 들어오면 튕겨내고, 휘두르면 피하고, 무는 것들에게는 갑옷으로 들이박아 이빨을 부숴 버렸다.
 “이 녀석들한테는······ 그 기술은 거의 못 쓰겠네. 그렇다면······ 지속시간이나 알아봐야겠군.”
 다시 한 번 한의 검이 검게 변했지만 이번에는 검날 부분만 변했다.
 하지만 그 예리함은 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 웨어울프를 거침없이 베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검을 변화시킨 그 시점부터 이미 웨어울프들은 도륙당하기 시작했다. 원을 그리며 시작된 그의 검무에 웨어울프들은 마치 물먹은 짚단마냥 베어졌다.
 어떻게 보면 천천히 그저 검무를 추는 것 같은데 급소를 노리는 공격은 손방패로 막아 낸다. 또 다른 곳에 대한 공격은 몸을 비틀고 갑옷의 강도를 이용해 튕겨내는 그의 전투는 이미 많은 이들의 시선을 빼앗기 시작했다.
 “전 백병대! 후퇴 준비!”
 갑자기 들리는 한무일의 목소리에 한은 낮게 쳇 하며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아마 마법사들의 공격 주문이 완성된 탓일 듯싶다. 그 생각이 맞았는지 군인들과 헌터들이 빠짐과 동시에 성벽 안에서 마법들이 다시 날아왔다. 확실히 처음과는 달리 오랜 시간 공들인 마법답게 위력은 엄청났다. 그리고 백병대의 능력자들도 능력을 보여주었다.
 땅에서는 거대한 창이 솟아올라 웨어울프를 꿰뚫었다. 여러 가지 원소로 된 물과 얼음 혹은 불의 마법들이 연달아 연쇄 폭발을 일으키자 그것은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물론 그 안에 있는 웨어울프들에게는 그랬겠지만······ 인간들에겐 승리를 축복하는 향연에 지나지 않았다.
 웨어울프 천여 마리는 그렇게 한 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아 전멸했다.
 그렇게 웨어울프들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한이 멍하니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치는 느낌이 들어 쳐다보니 아까 그 한무일이라는 자가 앞에 서 있었다.
 “뭐 하나? 후퇴 소리 못 들었나. 2차 공격이 온다. 후퇴해!”
 “······예!”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한 번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이번에는 전과 달랐다. 소리로 보아 그것은 오크들이었다. 문제는 그 소리가 공격을 알리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하늘을 보자 오크들이 쏜 화살로 인해 그늘이 져 있었다.
 “지휘관이 방어마법을 성벽 주위 50미터까지는 생성시켜 놨으니 죽도록 달려!”
 “······예!”
 하지만 한이나 옆의 한무일이나 별로 긴장감은 없었다.
 어차피 오크궁수들의 화살로는 지금의 갑옷을 뚫고 한에게 부상을 입히기는 어려웠다. 정말 눈을 제외하고는 다 갑옷으로 덮여 있기에 적을 등지고 달리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여유로웠다.
 그들이 제일 늦게 도착해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자 보호막을 때리는 화살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오크들이 쏜 화살은 거의 다 보호막을 때렸지만 보호막에는 금 하나 가지 않았다.
 “음······ 마법사들도 있는 건가.”
 “호오······ 알고 있나? 이제 마법 공격이 날아올 거다. 오크궁수들의 공격은 그냥 애교지. 진짜는 이제부터다.”
 한무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크 군대 쪽에서 수십 개의 마법들이 날아와 보호막에 부딪혔다. 그리고 화살과는 다르게 여기저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호막이 파괴되지는 않았기에 백병대원들은 다시 전투준비를 끝내고 돌격자세를 취했다.
 “마법부대 공격! 백병대 돌격!”
 이내 다시 총지휘관의 소리가 들리자 그들은 달려 나갔다.
 “전원 공격!”
 한도 그 소리에 달려 나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발을 잡는 흙으로 된 손 때문에 나갈 수 없게 되어 두리번거리자 현아가 고개를 젓는 것이 보였다.
 ‘얀 아저씨······ A급 의뢰 수락.’
 한은 그녀의 입모양을 읽고서는 수호신을 해제시켰다.
 수호신을 해제한 채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손짓으로 위를 가리켰다. 한이 고개를 들어 올려 그곳을 쳐다보자 성벽 위에 얀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보지 않고 오크 무리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음······ A급 의뢰라니······ 괜찮은 건가요?”
 “······괜찮아요. 얀 아저씨가 받아온 거니까요.”
 그녀의 말은 믿음이 가득했다. 얀과 현아는 서로를 믿어주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도 쉽게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한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저 웃어주고는 얀에게 소리 질렀다.
 “얀! 어떻게 할 겁니까?”
 한의 말에 얀이 밑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뭘 말이냐?”
 “······A급 의뢰 말입니다. 갑자기 무슨 뜬금없이 A급이냐고요! A급이!”
 “흠······ 괜찮아. 충분히 가능한 거거든.”
 그 말을 하고서는 얀은 성벽에서 뛰어내렸지만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았다. 높이는 15미터에 달했지만 자살하려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가뿐히 착지하는 얀이었다. 다들 전투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기에 성문 바로 앞에서 모여 있는 그들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더 편해서 좋았다.
 “얀 아저씨, 의뢰 내용은?”
 “음······ 몬스터 퇴치인데 오크로드를 죽이는 거야. 쉽지?”
 그의 말처럼 한 또한 그렇게 느꼈다. 오크로드는 강하기는 했지만 B급의 상급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주로 오크들의 보호 속에 있기 때문에 처리를 안 하려는 것뿐이지 단순히 오크로드 퇴치 정도라면 B급에 속하는 의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격용 총으로도 충분히 퇴치 가능한데다가, B급에 속하는 것도 오크로드가 죽으면 그 부족 오크들이 엄청날 정도로 추격해오기 때문이지 오크로드의 강함 때문이 아니었다.
 “좀······ 이상하네요?”
 현아도 마찬가지였는지 조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현아의 갸웃거림을 보고는 조금 어색하게 웃으면서 전투 중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이유를 말하는 얀이었다.
 “그게······ 오크로드가 한두 마리가 아니라서 그렇지.”
 그의 말에 한과 현아는 무표정에서 조용히 살기를 피워 올리면서 얀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얀은 조금 뒤로 물러나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하하······ 군부에서 위성으로 감시한 결과 H-41지역에서 오크들의 집결이 시작됐다고 그러더군. 근데 이상한 건 말이야, 그 숫자가 평소의 15배 이상이었어. 그보다 더 문제는 지금도 그 숫자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지. 지금 여기 전투에 참여된 오크들의 숫자만 해도 2천이 넘는데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아. 어떻게 생각해?”
 
 
 -7화-
 
 
 “······마을을 만든 건가요?”
 “단순히 마을 정도의 수준이 아닌 것 같아. 오크들의 번식력이 가공할 수준이지만 이건 정말이지 불가능할 정도로 불어나고 있어. 그래서 헌터들과 군대에서 원인을 알아본 결과 계속해서 오크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더 원인을 알아본 결과가······”
 “결······과가?”
 “뭔데요?”
 한과 현아가 관심을 가져주며 심각하게 이야기를 경청하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조금 뜸을 들이고서는 말하는 얀이었다.
 “100여 마리의 오크로드들이 집결해 있었어.”
 “······말도 안 돼······.”
 “가능한 겁니까? 그게?”
 보통 만 마리 정도의 오크들을 한 마리의 오크로드가 지배한다. 그런 오크로드가 100여 마리가 있다면 오크들의 숫자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의 숫자였다. 문제는 오크들의 번식력과 성장 능력이었다. 갓 태어난 오크가 무기를 잡고 전투가 가능할 때까지 걸리는 날은 고작 2달이 채 되지 않는다. 오크들의 수명이 10년이 채 되지 않는 것에 비해도 말도 안 되는 성장능력이었다.
 그런 오크들이기에 한 번의 전투에 2~3천 마리가 죽어나도 전혀 티가 안 난다. 게다가 오크들은 한번 임신을 할 때 많게는 10마리까지도 하기 때문에 이건 숫자적으로 차이가 너무 심했다.
 “더 큰 문제가 있어.”
 이번에는 얀도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한과 현아 또한 정말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정도였다.
 “오크로드들을 지배하는 진짜 오크로드가 존재한다는군. 그 오크로드의 능력은 A급의 중급 이상을 상회하는 것도 모자라서 ‘주인’까지 만났는지 보호막도 가능하단다.”
 “······현아 씨, 괜찮다면서요?”
 “······.”
 현아는 한의 말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며 회피하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얀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심각한데 자신만 전혀 심각하지 않은 듯한 모습에 한은 순간 열이 났지만 일단 속으로 부글부글 끓는 열을 참아야 했다.
 콰아아앙!
 순간적으로 뒤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폭발음이 시선을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경악을 했다.
 “······말이 되나, 저게······.”
 “A급 의뢰······ 그거 S급 이상 아니에요, 난이도?”
 얀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고 한도 고개를 돌려서 어이없다는 듯이 의뢰 난이도를 농담 식으로 물어봤다. 그 말에 얀은 움찔하더니 아무 말 없이 그냥 전투에 시선을 계속 고정시켰다. 그 모습을 보던 현아는 얀의 뒤로 가더니 옆구리를 콱 꼬집음과 동시에 한숨을 쉬면서 한쪽을 향해서 말했다.
 “······미안해요. 아마 SS급 의뢰인 것 같아요.”
 “으에에에······ 아냐, S급 의뢰였다고!”
 “이 사람이! 나보다 더 생각이 없잖아! 어떻게 S급 의뢰를 받아올 생각을 해요. 거기다가 의뢰 내용도 다 듣고 온 사람이, 그것도 헌터 중개소도 한 사람이 그걸 어떻게 덜컥 받아올 생각을 해요. 저거 안 보여요?”
 한이 손가락질을 하며 가리킨 것은 오크로드 한 마리와 평원을 다 뒤덮을 정도로 많은 숫자의 오크전사들이 돌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군인들과 헌터들이 자신들이 가진 공격 수단으로 원거리 공격을 하면서 뒤로 후퇴하는 모습이었다. 많은 숫자의 오크전사들이 쓰러지고 있었지만 너무 많은 오크전사의 숫자에 비하면 죽어가는 숫자는 티도 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하하······ 뭐 일단 후퇴하는 것부터 도와주자고. 현아야, 부탁해~”
 “후우······ 네.”
 “일단 나는 총지휘관한테 가볼게. 한, 적당히 도와주다 성문 안으로 들어와라.”
 “당연하죠······ 죽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크크······ 오랜만에 놀아보자고.”
 얀은 그 말을 하고서는 이내 다시 성벽 위로 올라가 지휘관을 찾아서 달려갔다.
 “후우······ <장착>. 현아 씨는 여기서 지원해 주세요. 전 일단 앞으로 가볼 테니까요.”
 “여기 있어요. 한이 간다고 해도 어차피 후퇴해야 하니까요.”
 “저들도 싸우면서 후퇴하고 있어요. 성에서 최대한 방비를 하기 위한 시간을 벌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부족하지만 저도 도와야죠.”
 “······다치지 말아요.”
 “네. 금방 돌아올게요.”
 한은 일부러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고 앞쪽을 향해 걸어 나가면서 말을 하고는 달려 나갔다. 그들과의 거리는 약 700미터이었다. 수호신을 장착한 지금의 한에게는 40초면 충분히 도달하고도 남을 거리였다. 다시 헌터들의 무리로 들어간 한을 몇 명은 기억했는지 욕으로 반겨주었다.
 “이······ 자식 뭐 하다 이제 온 거냐!”
 “뭐 하러 왔냐. 시불······ 어차피 후퇴할 건데.”
 “뭐 그래도 저놈 칼질 좀 하니까 편해지려나. 낄낄.”
 “그러다 오크전사 칼침 맞습니다.”
 한의 말에 조용히 다시 전투에 집중하는 그들이었다. 한 또한 전투로 빠져들었다. 헌터들의 전투는 군대 쪽에 비하면 거의 각개전투였다. 어느 정도 틀은 있었지만 군대처럼 서로 진을 맞추면서 공격하고 후퇴하고 방어하고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보면 위험도 또한 높았다. 하지만 오랜 실전경험으로 자기들만의 공격방식을 익힌 헌터들에게는 오히려 이렇게 싸우는 방식이 더 높은 살상력을 내기 때문에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마법사와 술사들은 최대한 빨리 안전지대까지 후퇴! 다른 이들은 지금 이 자리를 사수할 것!”
 헌터들의 대장인 한무일의 지시가 떨어지자 간간이 마법 공격을 해 오던 헌터들은 재빨리 뒤로 빠졌으며 그들이 빠진 자리는 다른 자들이 재빨리 채웠다. 다행히 오크로드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돌진하다 오크전사들을 앞세운 뒤 자신은 뒤편에서 지시만을 내리고 있었다.
 “이크크······.”
 몸을 양단할 것처럼 세로로 내려찍어지는 오크전사의 대검에 한은 순간 한눈판 것을 자책하면서 살짝 몸만 틀어 피한 뒤 목을 베고 발로 몸통을 차 눈앞에서 치웠다. 그리고 옆에서 찔러 들어오는 검은 몸을 회전시켜 갑옷을 스쳐 지나가게 함과 동시에 회전력을 실은 검으로 오크전사의 목을 날려 버렸다.
 앞과 옆에서 동시에 검을 찔러 왔다. 한은 앞의 공격은 손방패로 경로를 바꿔 버리고는 빠르게 상대의 품 안으로 뛰어들어서 옆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 오크전사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다시 한의 허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지만, 검으로 심장을 찔러 이미 죽어 버린 눈앞의 오크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뒤로 나동그라졌다. 한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머리를 발로 으깨 버렸다. 정신없이 오크들을 베어 넘기는 동안에도 어느새 더 많은 오크전사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크르르······ 죽여주마.”
 “크륵······ 크륵······.”
 이미 한 주위로 둘러싼 오크들의 숫자만 9마리였다. 어차피 그 이상은 이 녀석들 덩치 때문에 둘러싸기도 힘들어 보였다.
 피식. 이 녀석들은 한을 둘러싼 것만으로도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는지 별로 긴장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하고는 이내 동시에 찔러 들어왔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아는 정말 속이 바짝바짝 타는 듯했다. 처음부터 오크전사들 사이에서 무리하게 전투를 하는 한의 모습에 마법을 준비하다가도 틀릴 뻔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현아였는데 이번에는 한이 아주 둘러싸여 버리자 최대한 빨리 마법을 준비했지만, 범위공격을 위해서 준비하던 마법이라 아직 반도 준비되지 못했기에 현아는 그저 소리만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안 돼애!”
 하지만 현아의 마음과는 다르게 한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바보들······ 이런 상황은 오히려 날 도와주는 거라구. 월령(月靈)- 암회(暗廻).”
 저번과는 다르게 검날에만 검은색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대로 한의 주위로 순간적으로 검은 원이 생김과 동시에 피보라가 터졌다. 오크들 몸에서 녹색의 피가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저 검은 갑옷 입은 인간과 반대편의 은빛 갑옷 입은 인간을 공격해라.”
 멀리서 지켜보던 오크로드는 인간들 중 몇몇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자들을 꼽아 오크마법사들에게 지시했다. 오크마법사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마법 중 가장 강력한 마법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 완성되자 그들에게 마법을 날렸다.
 “흐아······ 마법도 날아오냐. 제에길!”
 이미 암회로 인해 한 번에 오크 9마리를 죽여 버리자 오크들도 긴장했는지 합공을 해왔다. 그 탓에 아까처럼 빈틈을 노려서 죽이기도 힘든 상황에 마법까지 날아오자 한은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또 느낄 수 있었다.
 “오냐! 같이 죽어보자!”
 어차피 이 상황에서 저 마법을 피하기는 늦었다. 한은 앞의 오크전사의 공격을 피하면서 주먹으로 오크전사의 턱을 가격해 기절을 시킨 뒤에 마법이 날아오는 곳으로 던져 공중에서 폭파시켰다. 다시 한 번 암회로 주변의 오크들과 마법들을 베기는 했으나 너무 많은 수의 마법이 날아왔기에 일부는 몸으로 방어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오크마법사들의 능력이 높지 않아서 그렇게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한의 위험에 더욱 속력을 높여 마법을 완성한 현아와 다른 마법사들의 마법 지원이 터져 나왔다.
 “좋아, 이제 100미터 뒤까지 조금씩 물러난다. 온 힘을 다해라!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회피한다! 본진에서도 지원을 요청했을 테니 힘내라! 살아남으면 술과 여자가 기다린다!”
 “우와와!”
 한무일의 은빛 갑옷은 이미 웨어울프와 오크전사의 피로 은빛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지만 부상은 없었는지 날렵하게 오크전사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헌터들은 힘을 얻어 다시 한 번 힘을 내 오크전사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후우······ 그럼 나도 조금 더 발휘해 볼까?”
 일단 뒤로 빠져 검을 손방패 위로 올린 뒤에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자세를 취한 한의 모습에, 다른 헌터들은 잠시 시선을 돌렸지만 금방 눈앞에 닥친 오크전사들과의 전투에 다시 온 신경을 모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의 검은 갑옷에서 검은 기류가 뿜어져 나오며 검에 응집되었다. 한은 강하게 그 검을 회전시키면서 내지르며 앞으로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감과 동시에 아까처럼 특유의 기술로 주위의 몬스터들을 베어 넘겼다. 아까는 자신의 반경 2미터 안의 몬스터들이 베였다면 지금은 10미터까지 넓게 베어져 그가 한순간에 벤 오크전사들의 숫자만 해도 60마리가 넘어섰다.
 “하아······ 2발까지는 가능하겠네.”
 “우와와아아앗!”
 한의 어떻게 보면 신기에 가까운 실력과 저돌적인 공격을 보자, 후퇴로 인해 사기가 떨어졌던 군인들과 헌터들도 알게 모르게 마음속 깊이 올라오는 호승심에 의해 조금씩 전진했다. 그 결과 몇 배의 인원수를 자랑하는 오크 군대가 조금씩 밀려나가고 있었다.
 
 “후후······.”
 그 모습을 본 얀은 씩 웃었고 지휘관에게 말했다.
 “이노.”
 “예, 얀 님.”
 “물 계열의 마법으로 공격해 주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명성······ 다시 볼 수 있겠군요.”
 “훗······ 늙은이의 명성은 봐서 뭐하게?”
 “하하하······.”
 얀은 그 말을 남기고는 다시 훌쩍 성벽을 뛰어내려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이노는 다시 허리를 세우고는 강하게 말했다.
 “전 마법대원 물 계열 마법으로 준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총지휘관의 말에 마법대원들은 바쁘게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번 흘깃 보고는 얀의 신호를 기다렸다. 피 냄새가 멀리서도 느낄 정도로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명성을 얻을 자들 또한 눈에 보이고 있었다. 이노는 얀의 신호를 발견하고는 명령을 내렸다.
 “마법대대 공격! 성문 오픈! 소총부대 지원 사격 준비!”
 성벽을 넘어 엄청난 숫자의 물 계열 마법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빛을 내거나 혹은 무지개를 만들어 내는 모습은 공격마법임에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결과는 냉혹했다.
 엄청난 숫자의 마법들이 오크전사들에게 명중되었다. 땅에는 물이 흥건했다. 곳곳에 부서진 얼음조각들이 땅에 즐비해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얼음조각에 발을 꿰뚫릴 정도였다. 뒤에서 달려오던 얀은 달려옴과 동시에 수호신을 장착하고는 크게 외쳤다.
 “백병대 전원은 뒤로 후퇴한다! 이번에는 범위마법이니 최대한 빨리 후퇴하라!”
 얀의 수호신 또한 장착형인 방어구였다. 색이 푸른색으로 대부분이 어두운 색인 것에 비해서 한눈에 띄는 색이었다. 그런 그를 아는 사람들이 몇 명 있는지 큰 소리로 외쳤다.
 “얀 님이다! 푸른 뇌신!”
 곳곳에서 뇌신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마치 구원자라도 본 것처럼 들떠서 서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한 또한 그런 그들의 모습에 조금 어리둥절하면서 뒤쪽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좀 전의 마법 공격은 최전선이 아닌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오크들 쪽으로 떨어져 그들에게는 피해가 없었다.
 “뭐 하냐, 꼬맹이.”
 어느새 옆에 와서 오크를 베어 버리면서 말하는 얀의 모습은 얼마 전까지 칠칠치 못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그의 무기는 쌍검이었는데 검 하나만을 손에 들고서는 오크전사를 살육하고 있었다. 그의 검은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빨랐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3마리째 되는 오크전사를 베고 나서야 처음 베인 오크전사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올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강하시네요?”
 한 또한 여기저기서 공격해 오는 오크전사들의 공격을 검으로 방향을 바꿔서 서로 부딪히게 만든 뒤에 한 마리씩 공격해 가며 숫자를 줄여가고는 있었다.
 “안 빠져나갈 거냐?”
 “혼자서 괜찮습니까?”
 “난 괜찮은데 넌 어째 힘들어 보인다?”
 이미 한과 얀은 등을 마주 댄 채 오크들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여유가 넘치는 데 반해 지켜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주 손에 땀이 나다 못해 흘러내릴 정도였다. 특히 현아가 참다못해 달려 나가려고 하자 한무일이 말렸다.
 “으으, 뭐 하는 거야, 저 사람들!”
 “현아 양! 참으세요. 한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얀 님의 저런 행동······ 근데 언제 돌아오신 겁니까?”
 “아? 무일 씨······ 저희 오늘 도착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왜 빨리 공격을 안 하는 건지······.”
 “아마도 최대한 시간을 끈 다음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생각이겠죠.”
 “왕자병 성격 아직 못 버렸네요.”
 “얀 님이 어디 가시겠습니까.”
 “후우······.”
 “후우······.”
 현아와 한무일은 둘 다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삼아 얀을 아는 몇몇 헌터와 군인들도 따라 한숨을 쉬었다.
 “마법대대 2진! 공격!”
 지휘관의 명령에 수십 가지의 물 계열 마법이 다시 한 번 오크부대로 날아가 명중해 엄청나게 넓게 물이 퍼졌다. 질척거리는 진흙으로 변해 버린 땅 때문에 오크들의 스피드가 떨어져 한과 얀은 더욱더 수월하게 오크들을 베어 버리고 있었다.
 “흠······ 전 백병대! 이곳까지는 물이 오지 않으니 여기서 다시 한 번 방어한다. 무일! 헌터들을! 3진 앞으로! 사격 준비!”
 
 
 -8화-
 
 
 메시아의 최전선에 있는 백병대의 구성은 1진은 방어구 형태의 능력자들이며, 2진은 무기형태의 능력자들이고 3진은 원거리 능력자들이었다. 그래서 3진은 제일 뒤쪽에서 지원사격이나 보조마법이나 치료를 맡은 능력자들이 다수 있었다.
 “헌터들 또한 준비한다. 얀 님과 저 헌터를 무시하며 달려오는 오크전사들은 우리가 도륙한다! 알겠나!”
 “우와아아!”
 그들과 오크 군대와의 거리는 불과 300미터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성벽까지의 거리는 2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기에 이곳이 거의 마지막 전진 방어진이라고 보면 되는 상황이었다. 다들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고 부상자들은 성안으로 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얀과 한의 존재로 오크 군대의 전열이 흐트러져서인지 아니면 이 둘을 죽이고서 가겠다는 생각인지 몰라도 오크들은 엄청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으챠······ 물이 대충 퍼졌구만······.”
 “뇌신이라던데······ 능력이 전기 계열이십······ 흡······ 니까?”
 “그······ 흡······ 렇지.”
 이미 그들 주위에는 오크전사들 시체가 질리도록 쓰러져 있어서 녹색 피로 인해 땅이 질척거리고 물 계열 마법으로 인해 발등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그럼······ 후우······ 전 도망가겠······ 흐아······ 습니다.”
 “왜? 전기안마 좀 받고······ 후우, 가지?”
 “사양하렵니다.”
 자신들의 포위공격에도 유유히 말을 하며 계속해서 동족을 죽이는 한과 얀의 모습에 두려울 만도 하건만 오크전사들은 거침없이 계속해서 공격을 해 들어오고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던 오크로드는 지시를 내렸다.
 “캬르.”
 “예······ 로드.”
 “너와 몇몇의 실력 있는 오크궁수가 저기 인간 두 명을 노리도록 해라.”
 “예······ 로드.”
 오크로드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장신의 오크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붉은색의 활을 들고는 오크궁수 부대로 걸어가 몇 명을 데리고서는 한과 얀을 노리고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다른 오크궁수들이 쏘아대는 화살과는 달리 캬르라 불린 오크의 화살은 심히 위력적이었다.
 “크으······ 화살까지 날리는 건가.”
 “흐우아······.”
 솔직히 여유 있게 말하고는 있지만 오크전사들의 공격도 나름 힘에 부쳐 가고 있는 과정에서 화살까지 날아오자 한과 얀은 더욱더 바삐 움직였다. 화살은 꽤나 강하게 날아오기는 했지만 갑옷을 뚫지는 못했다. 급소로 날아오지 않는 것들은 대부분 무시했다. 하지만 한 개의 화살은 지독하게도 급소로만 날아오며 파괴력도 만만치 않았다. 막기 귀찮아서 오크전사를 벤 뒤에 그 시체로 막았는데 몸을 뚫고 들어와 기겁을 하면서 피했다. 또 확실히 피하지 못해 갑옷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는데 갑옷이 뜯겨져 나갈 정도로 강한 공격력을 보고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쓸 겁니까!”
 “······너 좀 견뎌야겠다.”
 그 말을 남기고 얀은 빠르게 오크들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검을 휘둘렀다. 등 뒤를 지켜주던 얀이 사라지자 이제는 방어만 하기도 힘들어져 가는데 강하게 날아오는 화살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에 빠져들자 한은 저절로 입에서 욕이 나왔다.
 “시발······ 아주 그냥 날 잡아 잡수겠다 이거구만. 좋아, 해보자고!”
 몇 번의 암회와 한 번의 질주로 이미 힘도 딸려서 검술로만 베어 넘기고 있는데 오크궁수들의 공격에 점점 힘들어지자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기술로 퇴로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얀 쪽을 쳐다보니 푸른빛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의 주위에 있던 오크들이 부르르 떨면서 쓰러지는 것을 보아 하니 점점 그도 능력을 발휘하는 듯했다.
 “······진짜 잘못하면 나도 전기구이 되겠다······ 제길.”
 이미 발밑에는 오크의 시체와 검들이 즐비해 전도율을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동도 힘들어서, 한은 손방패의 크기를 팔목을 덮을 정도로 줄이고는 밑에 떨어져 있는 오크들이 쓰던 검을 들어서 던지고는 총을 빼 들었다.
 “다시 한 번 놀아보자고! 일단 너, 화살 날려대는 오크새끼!”
 이미 화살을 쏘아대는 녀석들의 위치는 알아두었기에 한은 검을 던져 앞에 오크전사를 놀래켰다. 그리고 다리를 베고 양옆에서 찔러 들어오는 검들이 갑옷에 닿기 직전 몸을 돌려 그대로 튕겨낸 뒤에 총으로 사격해 쓰러트렸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또다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대각선으로 휘둘러져 오는 검을 막으며 품 안으로 뛰어들어 턱을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총알을 변환시켜 오크궁수에게 쏘았다.
 “쿠르륵!”
 캬르는 화살을 재고 있다가 자신을 향해 총을 쏘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는 바로 옆의 오크궁수를 앞으로 밀쳐 방패막이로 삼고서는 화살을 날려 총알을 맞혔다. 하지만 총알은 그대로 화살을 터트려 버리며 앞의 오크궁수를 꿰뚫고는 자신의 어깨에 박혀 버렸다. 캬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서는 괴성을 질렀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잘 가라고.”
 콰아아앙!
 총알은 피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놈은 무식하게 자신의 화살로 맞혀서 방향을 틀려고 하더니 자신의 동족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덕분에 놈의 어깨에 총알이 박히고는 폭발했다. 그 탓에 주위에 있던 오크궁수들까지도 반수 이상이 파편에 죽어 버려서 화살에 대한 부담감은 없어졌다.
 “후아······ 후아······.”
 한은 이제 힘도 많이 떨어져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방어하면서 총으로 공격하는 형식으로 바꾸었다. 군인들과 헌터들의 원거리 공격에 오크들도 많이 분산되어 버린 데다가 이미 자신과 얀은 무시하고 성벽을 향해 공격했기 때문에 후퇴는 오히려 더 쉬운 상태였다. 그때 얀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꼬맹이! 최대한 멀리 떨어져라!”
 아까부터 번쩍번쩍 거리던 얀의 모습이 이제는 푸른빛에 거의 파묻혀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왜 푸른 뇌신이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얀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스파크가 남을 정도로 전격이 강했으며 그의 주변에는 계속해서 스파크가 일어나 빛을 내고 있었다.
 “으챠챠······ 일단 나도 후퇴······ 흐웁, 해 볼까.”
 한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검에 집중시켰다. 속도는 느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총으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시키며 검을 직접적으로 맞대지 않고 회피하면서 최대한 힘을 모았다.
 “······얀! 먼저 갑니다! 월령(月靈)- 질주!”
 전과 같이 검을 내지르면서 회전시킴과 동시에 총알처럼 성벽 쪽으로 달려갔다. 이 질주의 기술은 회전시킬 때 생기는 검풍에 힘을 담아 주변으로 날려 보내 공격하는 기술이었다.
 약 20미터까지 질주로 길을 낸 뒤 검을 땅에 꽂아 넣고서는 다시 한 번 외쳤다.
 “월령(月靈)- 대지의 칼!”
 한의 주위 반경 10미터의 땅 밑에서 무언가가 폭파되듯이 터져 나왔다. 오크전사들은 그 폭발에 몸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 폭발 뒤에는 땅에서 흙으로 된 검들이 솟아올라 오크전사들을 꿰뚫었다. 그리고 얀 또한 자신의 기술을 최대한으로 시전한 듯했다.
 “나왔다! 뇌신의 창이다!”
 그 기술을 익히 알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 기술의 파괴력과 아름다움에 눈길을 빼앗겼으며 오크들은 목숨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바닥은 물로 흥건했다. 그 탓에 오크들은 얀의 갑옷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압의 전기에 의해 쇼크사 하고 있었다. 그의 검이 가는 곳에는 벼락처럼 푸른빛의 창이 떨어져 내렸다. 그건 마치 벼락의 비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넓게 퍼져서 떨어지고 있었다.
 “후우······ 저 아저씨 대단하구만······.”
 질주와 대지의 칼로 인해 주위의 오크전사들은 이미 시체들뿐이었기에 한은 안심하고 얀의 기술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자 어느새 옆에 현아가 다가와서는 한의 이마를 콩 하고 친 뒤에 쀼루퉁하게 말했다.
 “다치지 말라고 했죠?”
 “에?”
 그녀의 쀼루퉁한 표정에 순간 멍하게 되묻자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손을 들어 아까 뜯겨져 나간 갑옷을 가리켰다.
 “아······ 화살이 생각 외로 강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하핫······.”
 갑옷만 뜯겨져 나간 줄 알았었다. 그런데 살점도 조금 베였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요란한 공격 속에서 이 정도 생채기면 괜찮은 편인데도 그녀의 인상은 펴질 줄 몰랐다.
 “잘못했으면 폐에 박혔을지도 모르잖아요. 정말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있는지······.”
 “으······ 미안해요.”
 왠지 모르게 사과해야 할 듯한 분위기다. 현아가 한의 상처에 손을 올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그대의 친우인 내가 원하니······ 상처여, 치유돼라.”
 “헤에······ 치료마법도 가능하세요?”
 “네.”
 “대단하시네요······.”
 솔직히 한은 아직 그녀의 능력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다. 소환능력에 치유까지라니. 게다가 그녀는 대범위마법까지 가능하다고 하니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인 듯싶다. 하긴 얀도 저 정도인데 그녀 또한 대단한 능력자라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다.
 “뭘요······. 그렇다고 또 다쳐오지 말아요.”
 “헤헤······.”
 한이 대답 없이 그냥 웃자 현아는 그를 흘깃 쳐다보고는 얀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낮게 말했다.
 “······골탕 좀 먹여볼까······.”
 “네?”
 “후훗······.”
 그녀는 작게 웃으면서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대와의 계약에 따라 나 그대의 권능을 여기서 발휘하니 모든 생명은 온기를 잃을 것이며 차가운 손길에 피를 흘릴 것이나 그 또한 얼음으로 바뀔 것이다. 얼음의 여왕과의 계약자인 내가 말한다. 모든 것을 얼려 버릴 것을.”
 그 주문을 들어 버린 한은 얀에게 소리쳤다.
 “얀! 후퇴해요, 후퇴!”
 “······얀 아저씨, 흥이에요. 블리자드(Blizzard).”
 그녀의 주문의 영창이 끝나자 정확히 얀의 머리 위에서부터, 얀을 공격하는 건지 오크전사들을 공격하는 건지 모를 얼음 창과 얼음 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얀의 비명 소리가 들린 듯했다.
 1분 동안 유지되던 마법이 사라지자 그곳에는 오크전사들의 얼음동상과 100미터 이상 넓게 얼어버린 빙판이 만들어져 있었고 얀의 고함 소리도 들렸다.
 “현아! 갑자기 뭐야! 에취.”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현아 씨한테는 무조건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한의 머릿속에 그대로 박혀 버리는 순간이었다.
 얀의 고함 소리에도 현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한에게 말했다.
 “제가 갑자기 마법을 사용한 것 때문에 놀랬어요?”
 그럼······ 안 놀라기를 바랐다는 건가······. 앞으로 무조건 복종이다, 라고 생각하는 걸 눈치라도 챈 건지 한숨을 또 쉬고는 다시 말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저기 얀 아저씨의 속성이 전기라서 물 계열 마법에는 거의 타격이 없어요. 그래서 저도 마음 놓고 마법을 사용하는 거구요. 알겠어요?”
 “네? 근데 왜 타격이 없다는 거죠? 블리자드라는 마법 꽤 고위마법 아닌가요?”
 방금 전에 현아가 사용한 블리자드 마법은 꽤 강한 축에 속하는 수계 마법이었다. 그런 수계 마법이 얀에게는 타격을 못 준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저 정도 마법을 얀처럼 직격으로 당하면 A급 몬스터라도 반수는 거의 죽었다 할 정도로 부상을 당하는데도 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움직이고 있으니 그 점에서 놀랄 뿐이었다.
 “······전기 계열 능력자들은 물 속성에는 타격을 거의 안 입어요.”
 “네?”
 “······물 계열 마법은 얀 아저씨의 속성 때문에 전기보호막이 어느 정도 물을 상쇄시켜 버려서 거의 타격을 안 입어요. 물론 내려가는 온도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정도는 수호신 상태면 아무런 문제도 없거든요.”
 “······그렇군요.”
 얀의 속성이 전격 계열이라서 물 계열 마법은 증발시켜 버린다는 소리였다. 자신의 몸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리니 타격을 입기 어려울 만도 했다. 한이 대충 이해하는 표정이 되자 그녀는 다시 이어서 말했다.
 “이제 폭발하겠네요.”
 “에?”
 한이 못 알아듣고 자신을 쳐다보자 현아는 아무 말 없이 얀 쪽으로 손을 가리키고는 말했다.
 “전기분해로 인해서 수소랑 산소가 충만하죠. 거기다가 저곳의 온도는 마이너스 10도 이하로 내려가 있는 상태인데다 바람도 없어서 꽤 많은 양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죠. 그런데 거기서 고온의 전기가 스파크를 일으키면······.”
 “······폭발하겠군요.”
 “네. 그렇게 후폭발도 일으키고 빠져나올 거예요.”
 “실례가 안 된다면······ 얀 씨랑 현아 씨의 랭크가 어떻게 되시나요.”
 아무리 봐도 A급 이상의 능력자들인 게 팍팍 느껴지지만 물어보기로 했다. 얀의 저 압도적인 전투 능력과 현아의 마법능력은 S급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난 능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얀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이 그 정도의 환호를 보낸 것도 이해가 되는 시점이었다.
 “전 A급 헌터. 그리고 얀 아저씨는······ S급 헌터예요.”
 “그렇군요.”
 왠지 모르게 입맛이 썼다.
 지금 한의 헌터로서의 등급은 D등급. 능력은 무급이었다. 비록 A급 생명석으로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겨우 암회를 몇 번 더 쓸 수 있는 정도의 힘을 회복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더욱더 한을 힘들게 했다. 그런데다 동료들의 랭크가 이 정도로 고위 랭크에 속할 줄은 몰랐기에 더욱더 그랬다.
 ‘결국······ 또 짐이 되는 건가······.’
 한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자 그녀가 다가와서는 걱정되는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왜······ 그래요? 저희들 랭크 때문에 그래요? 걱정 말아요. 한도 금방 A랭크까지 올라올 거잖아요?”
 이 아가씨는 얼굴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는데 눈빛만으로도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왜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지 모르겠지만 싫지는 않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마치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처럼······ 연인처럼, 혹은 누나처럼 그리움에 휩싸이게 한다.
 “하하······ 뭐 그건 그렇죠······.”
 콰아아앙!
 “터졌네요.”
 “흐음······ 화려하네요.”
 얀이 있던 자리에서 강하게 폭발이 일어나더니 엄청나게 넓은 범위에서 연속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에 오크들 또한 군대를 뒤로 물렸다. 현아의 마법과 얀의 기술로 인해 본진과 떨어져 있던 오크전사들도 거의 다 정리되었다. 그렇게 메시아의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첫날의 전투가 끝나고 일행은 헌터 중개소로 돌아왔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들을 알아보고는 헌터 중개소로 몰려왔지만 카르밀의 노래 부른다는 말 한마디에 다들 자기 일을 하러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흐응······ 다들 내 노래 듣고 싶어서 몰려든 거 아니었나?”
 “일부러 그러는 거죠. 카르밀 씨.”
 “하핫······ 현아 양도 있는데 오랜만에 한 곡······ 부르지 않겠습니다. 그럼요!”
 어느새 자신의 목덜미에 겨누어져 있는 얀의 칼에 급하게 말을 바꾸는 카르밀과, 현아의 안심했다는 눈빛에 한은 예상할 수 있었다. 저 인간의 노래는 공격무기라는 것을.
 
 
 -9화-
 
 
 “후우······ 너무하시는군요. 얀 님. 그렇게 다짜고짜 사람 목에다 칼을 겨누시면 놀라지 않습니까.”
 “넌 스스로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가 보군.”
 “뭐가요?”
 “하아······.”
 카르밀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고 그 모습에 나머지는 그저 한숨만 쉬었다. 그 모습에 더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버리는 카르밀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순진했으며 어떻게 보면 사악해 보였다.
 “그건 그렇고 이번 의뢰 받아들일 줄은 몰랐습니다만.”
 “내가 언제 카르밀 네가 주는 의뢰 거부한 적 있었나?”
 “그건 아니지만 이번 의뢰는 확실히 위험도가 있지 않습니까?”
 카르밀의 조금 심각한 표정에 얀은 피식 웃더니 손으로 목을 마사지하면서 말했다.
 “확실히 니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정도로 위험한 일이긴 하더군.”
 “······그럼 왜 의뢰를 받으셨습니까.”
 “네가 주는 일은 언제나 내가 가능한 것뿐이지. 그게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엄청날 정도로 위험하게 보여도 말이야. 그렇지 않나, 카르밀?”
 얀의 말에 카르밀은 씩 웃고는 건물의 출입문으로 가서 문을 열고 말했다.
 “들으셨습니까? 두 분.”
 “응.”
 “들었습니다.”
 “들어오시죠.”
 카르밀은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한 명은 180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균형 잡힌 몸을 가진 한국인이었다. 검은색의 더벅머리가 목덜미까지 내려와 있었는데 조금 날카로운 눈매 때문인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옅은 갈색 머리를 가진 사내였다. 이 남자 또한 178센티미터 정도 되는 키에 날렵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옆의 사람과는 비교될 정도로 순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 있어 더 그런 듯싶었다.
 “누구······ 시죠?”
 한의 물음에 카르밀이 웃으면서 말했다.
 “옆의 한국인은 한무일이며 현 메시아의 헌터 측 대장이고, 이 남자는 현 메시아 군대의 백병대 지휘관인 브라이언 밀턴이라고 하는 사내죠. 즉 실질적인 메시아의 실력자들이라고나······ 할까요?”
 “반갑습니다. 한무일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카르밀이 소개했던 브라이언 밀턴입니다. 그냥 브라이언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오랜만이군.”
 “오랜만이에요.”
 아마 소개를 한 이유는 처음 보는 한이 있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한은 이곳에는 처음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한은 몰랐지만 현아와 얀은 메시아에서 제법 오래 생활을 했고 명성도 있는 편이었다.
 한 또한 그들과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하고 나니 어느새 카르밀이 차를 준비해 내려놓고 있었다.
 “얀 님, 돌아오신 겁니까?”
 직접적으로 얀에게 물어보는 무일의 말에 얀은 별다른 표정 없이 말했다.
 “어떤 대답을 원하나?”
 “진실을 원합니다.”
 “진실이라. 돌아왔지만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이 정도면 됐나?”
 “······그렇군요.”
 “무일, 무엇을 실망하는 겁니까? 그가 돌아갈 것을? 무일의 나쁜 점은 너무 미래를 걱정한다는 것입니다. 얀 님이 메시아로 다시 돌아온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힘이 됩니다. 안 그런가요? 카르밀?”
 무일의 표정이 확연히 실망하는 표정으로 바뀌자, 옆에서 보고 있던 브라이언이 위로의 말을 함과 동시에 카르밀에게 질문을 던졌다. 멍하니 차를 먹고 있던 카르밀은 화들짝 놀라면서 대답했다.
 “에에? 아······그렇죠. 그동안 밀려 있던 S급 의뢰들도 처리할 기회고 다시 전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죠.”
 “후우······ 일시적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영토를 넓혀보죠.”
 “얀 님이 있을 때는 가능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과연 유지가 가능할까?”
 무일의 현실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의견에 브라이언과 카르밀은 도끼눈을 치켜뜨고서는 구박을 하기 시작했다.
 “무일,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니까 수영이랑 싸우는 겁니다.”
 “야, 넌 왜 맨날 그렇게 부정적이냐, 엉? 수영이가 화낼 만도 하다.”
 “이것들이 왜 갑자기 수영이 이야기는 끄집어내는 건데!”
 나머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끼리의 이야기를 하더니 서로 있는 약점 없는 약점 다 끄집어내면서 어린애들처럼 싸우고는, 이내 유치해서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는 지경까지 되자 현아가 중재의 한마디를 내뱉었다.
 “수영 언니에게 다 말할까요?”
 그들은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멈추더니 세 명 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앉아 차를 홀짝이면서 서로 현아의 눈치만 살폈다.
 “그만 놀고······ 일 이야기 좀 하자.”
 “하하, 저도 그걸 원했습니다. 얀 님.”
 다행히 얀이 먼저 화제를 돌리자 한무일이 제일 먼저 반색을 하며 대답했고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보니까 조금 지휘체계가 달라졌던데 어떻게 된 거냐. 브라이언 네가 왜 백병대 대장을 하고 있는 거지? 너 원래의 총지휘관 자리는 어떻게 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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