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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의 2세 1-1권

2017.09.18 조회 4,766 추천 41


 # 프롤로그
 
 아버지가 못마땅하냐고 물으면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누구보다 존경한다고 말할 것이다.
 아버지를 싫어하는 거냐고 물으면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좋아한다고, 조금 망설이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들이라서 행복하냐고 물으면 조금 망설일 것이다.
 그리고 아들로서는 행복하지만, 선수로서는 원망스럽다고 대답할 것 같다.
 
 ***
 
 [아버지··· 저 야구 그만두겠습니다.]
 2008년 겨울, 고등학교 1학년의 첫 시즌을 마친 연우는 아버지 이강진에게 야구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뒤를 따라 프로야구선수가 되겠다던, KBO의 별이 되겠다던 아들이지만, 프로 입성 직전 마지막 관문인 고등학교 시절을 넘기지 못하고 고교 야구 데뷔 1년 만에 야구를 그만둘 결심을 한 것이었다.
 [왜··· 왜 그런 결심을 한 거냐?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
 아버지 이강진은 당연히 믿을 수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아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뒤를 따르겠다며 야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귀엽고 대견한 아들이었다.
 선수 시절부터 쌓아 온 있는 노하우, 없는 노하우 전부 긁어모아 자신보다 더 나은 선수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의 충격 선언은 이강진의 정신을 잠시 멀리 날려 보내기에 충분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이 정도로 야구계에서 버티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버지······.]
 이제 겨우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17세에서 18세가 된 어린 소년은 아버지 앞에서 근 10년 만에 눈물을 보였다.
 어린 소년에게 아버지의 그늘은 너무나도 짙었고, 무거웠다.
 아버지 이강진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11시즌을 뛰면서 통산 132승을 기록한 투수였고, 메이저리그에서도 7년을 뛰면서 63승을 거둔 대한민국의 레전드였다.
 [아직 프로 데뷔를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더 우스워지기 전에 여기서··· 그만할게요······. 허락해주세요.]
 올―타임 레전드인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는 아들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엄청났다.
 아버지와 같은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연우에게 그러한 관심들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결국, 이를 버티지 못한 에이스의 2세는 18세가 된 겨울에 야구선수의 길을 포기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 유능한 백수
 
 연우는 컴퓨터 앞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가 심장만 부여잡고 차마 확인하지 못하는 건 얼마 전에 지원했던 구단 트레이너 채용이 발표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벌써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가량 미끄러진 상황이기 때문에 차마 과감하게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열어본 메일에는
 [유감이지만,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다.]
 는 뉘앙스가 적혀 있었다.
 혹시나 하고 지원해본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트리플A, 더블A까지의 구단들은 물론,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Hi A, A의 구단들까지도 전부 지원이 거절당했고, 점점 조급해져 허들을 낮춘 채 지원했던 SS A와 루키 리그의 구단들에서도 모두 거절 의사를 표시한 게 벌써 2년이었다.
 어느새 서른세 살의 나이, 연우는 여전히 백수였다.
 ‘제기랄! 메이저리그 구단도 아니고 고작 루키 리그 구단들이 뭐 이렇게 바라는 게 많아!!’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의 아들이 투수로서 같은 길을 걷는다.’
 그 무거운 기대감에 짓눌려 야구공을 놓은 지 어느새 15년.
 야구공을 놓지 않고 계속 선수의 길을 걸었다면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연우는 여전히 백수였다.
 ‘야구는 그만뒀지만, 야구계에서 당당히 자리 잡아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선수로서의 길은 포기하고 말았지만, 야구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가득하다 못해 넘쳤다.
 아마 이강진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야구선수가 아닌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면 분명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마운드 위에서 버텼을 것이었다.
 ‘내가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고 어떻게 살아왔는데···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래도 부족하다고?’
 마운드에서 내려온 연우가 야구계에 남기 위해 선택한 진로는 트레이너였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일찍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직업이었고, 처음 진로를 결정한 2000년대 후반에는 아니었지만, 2010년대부터는 한국에서도 점점 그 가치를 인정받는 직업이었다.
 프런트나 에이전트 등 외부에서 일하는 직업보다 현장직을 원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야구선수 경력이 끝났지만, 엘리트 운동선수임에도 성적이 전교권에서 놀 정도로 공부를 잘하고 좋아했던 연우에게 어울리는 직업이기는 했다.
 ‘그렇게 노력하면 뭐 하나······. 루키 리그 구단에서도 뽑아주질 않는데.’
 단순히 힘들어서 덮어놓고 은퇴한 건 아니었다.
 트레이너라는 꿈을 세운 뒤에 은퇴를 결정한 것이었다.
 트레이너의 꿈을 세운 이후, 연우는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스포츠 의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은퇴를 결정한 이후 한 달 만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어학연수로 1년 반, 고교 과정을 마치고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 졸업 후 편입으로 대학에 들어가 학사, 석사, 박사 과정까지 마친 게 3년 전이었다.
 10년이 넘도록 공부에 매진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연우는 여전히 백수였다.
 ‘후우······. 나 같은 선수들도 과학의 도움을 받으면 재능 충만한 괴물들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는데······.’
 엄밀히 따져서 투수로서 연우의 기량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던졌던 연우는 던지는 방법을 아는 지능적인 투수이자 강심장, 승부사라는 찬사 아래 1군 불펜까지는 성장할 수 있는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이강진의 아들답다.’라는 찬사도 당연히 뒤따랐다.
 하지만 ‘이강진의 아들다운’ 모습을 보여준 건 거기까지.
 연우는 기량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피지컬이 부족했다.
 80년대 중반부터 활약했음에도 150km를 훌쩍 넘긴 구속을 보유했던 이강진에 비해 연우의 구속은 고등학교 1학년임을 감안해도 120km 후반에 불과했고, 1966년생임에도 186cm, 98kg의 당당한 체구를 자랑했던 이강진에 비해 연우의 체격은 고작 159cm였다.
 아무리 고등학교 1학년이라 할지라도 구속과 피지컬 면에서 인상적인 수준까지 성장할 거라고 기대하기엔 문제가 있었고, 안정적인 1군감이라는 평가와 함께 잠재력이 낮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후반이면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미 스포츠 과학과 스포츠 의학이 주류로 자리 잡은 시대였지만, 한국 야구는 여전히 재능과 근성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였다.
 은퇴를 결정하면서도 아쉬움을 버리지 못했던 연우는 자신처럼 피지컬과 재능의 문제로 기회조차 잡을 수 없는 선수들을 위해 스포츠 과학과 의학 쪽으로 진로를 잡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여전히 연우는 백수였다.
 ‘어차피 재능 있는 선수는 이미 넘치는 능력 있는 코치진의 관리만 받으면 어떻게든 성공한다고. 트레이너로 지원하지만, 원래의 역할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경험을 살려 재능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선수를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내 포트폴리오가 도대체 뭐가 부족한 건데?’
 연우의 꿈은 메이저리그의 트레이너였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트레이너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게 최종 목표였다.
 전공의 스포츠 의학과 스포츠 과학을 활용해 선수 육성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코치들과 함께 머리를 모아 재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선수라 할지라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메이저리그에 어울리는 선수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자신처럼 부족한 재능 때문에 좌절한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선택한 트레이너의 길이었다.
 하지만 최종적인 목표는커녕 여전히 첫발도 내딛지 못한 연우는 여전히 백수였다.
 ‘후우······. 다음 기회를 노려봐야지. 어차피 쉬울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당장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야구선수 대부분이 대학을 나오고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학점을 따내야 하는 미국 야구의 시스템이기에 메이저리그를 밟지 못한 마이너리그 선수들도 코칭스태프는 물론 이런저런 스태프, 프런트, 에이전트 등으로 전업할 능력에 인맥까지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한 번도 야구를 해본 적이 없는, 사실상의 비야구인 출신인 연우는 인맥도 없었고, 한국인이라는 약점까지 존재했다.
 대한민국의 레전드인 아버지가 그만큼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구직에 실패한 5년이라는 시간은 조금씩 연우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다.
 
 ***
 
 “여어, 리! 오늘도 잘 부탁해! 오늘도 너만 믿는다고!”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도 어떻게든 야구계에 남으려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연우는 기본적으로 야구를 굉장히 사랑했다.
 그런 연우였기에 당연히 사회인 야구로나마 야구공을 놓지 않고 있었다.
 연우가 활약하는 팀은 ‘하이랜더스’라는 팀이었는데, 이는 연우의 모교인 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 약칭은 UCR인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NCAA팀의 애칭이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NCAA의 최상위 디비전에 속해 있는 UCR에서 야구선수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포진해 있는 팀이었기에 당연히 수준도 낮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이 정도 재능이 있었으면 하이랜더스에서 분명히 같이 뛰었을 것 같은데 선수 출신이 아니라고 하니······.”
 수많은 고등학교와 수많은 대학교에서 야구팀을 운영하고 마이너리그 구단들도 수없이 많은 데다가 독립리그까지 활성화된 미국이기에 기본적으로 사회인 야구의 수준마저도 굉장히 높았다.
 한국과는 달리 선수 출신의 제한은 없었고, 오직 나이만으로 따지기 때문에 수많은 선수 출신 선수들이 사회인 야구에서 활약 중이었다.
 “하하, 그래서 더 대단한 거지! 한국에서 선수로 활동했다고는 하지만, 그게 벌써 15년 전인데 말이야. 어깨도 싱싱하고······. 앞으로 2년은 우리도 걱정 없겠어!”
 2014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37라운드, 전체 1,108번째로 지명되어 마이너리그에서 5년간 활약했던 하이랜더스 공격의 중심, 유격수 겸 3번 타자를 맡은 동료도 연우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연우는 그런 수준 높은 리그, 수준 높은 팀에서 2선발로 활약 중인 것이었다.
 미국 사회인 야구에서 각 팀의 주축 투수들은 기본적으로 80마일, 130km 근처의 볼을 던졌고, 1, 2선발들은 그마저도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연우의 구속도 130km대 초중반을 마크했다.
 선수 생활을 할 때보다도 더 빠른 볼을 던진다는 이야기였다.
 “제이슨,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었나? 내 꿈은 메이저리그 트레이너라고. 그래도 야구를 해본 사람으로서 내 몸에 제일 먼저 시험해보는 게 당연하잖아?”
 연우가 그런 볼을 던질 수 있었던 건 메이저리그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 연구한 것들과 개발한 프로그램들을 자신의 몸에 가장 먼저 시험한 덕분이었다.
 계속된 구직 실패가 억울한 것도 프로그램의 효과를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러닝, 투구폼 등 연구의 결과를 총동원해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후 연우는 130km대 중반의 볼을 던지게 되었고,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크으······. 역시 스마트하다니까? 15년 전에 선수 생활을 끝냈는데 5년 전까지 선수 생활하던 친구보다 더 좋은 볼을 던지다니······. 나도 리한테 부탁해서 메이저리거로 만들어달라고 해볼까?”
 “넌 안 되니까 포기하는 걸 추천하지. 아직 20대라고는 하지만, 넌 너무 놀았어.”
 트레이너로서 연우의 능력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NCAA 최상위 디비전에서 야구하던 선수 출신들이 모인 팀이라고는 하지만, 오직 UC 리버사이드 출신들만 모아놓았기 때문에 실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한 팀들에 비해 전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인맥으로 선수를 선발하는 거라면 모를까, 미국의 사회인 야구는 매년 트라이아웃을 열어 이전 시즌 순위의 역순으로 지명하는 방식으로 드래프트와 비슷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었기에 한계가 있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팀의 전력 강화와 연구 샘플 획득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움직인 연우 덕분에 하이랜더스는 지난 시즌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엘리트 야구선수 출신인 이들이 트레이너로서 연우의 능력을 몰라볼 리 없었다.
 “아. 랩터스 채용은 떨어졌어. 신경 써서 안 물어보는 것 같길래 내가 먼저 말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연우의 말에 동료들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5년째 첫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는 연우의 사정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부담 없이 물어보고 실패를 놀리기도 했지만, 5년째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이제는 결과를 묻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아, 하여튼 보는 눈이 없다니까? 리는 분명히 능력 있는 트레이너가 될 텐데 왜 그걸 못 알아보는 거지?”
 “능력 있는 트레이너뿐이야? 솔직히 리처럼 여러 분야를 커버하는 트레이너는 본 적도 없다고. 이 정도면 트레이너가 아니라 코치라고 해도 메이저리그의 명 코치로 불릴 수 있을걸?”
 하이랜더스의 동료들은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그들은 연우가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트레이너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로도 NCAA 시절 동료들과 동문들을 통해 연우의 능력을 홍보하는 등 연우의 취직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나 참······. 이러니 내가 포기할 수가 있나.’
 연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마음이 꺾여가면서도 계속해서 노력을 이어갈 수 있는 건 이들처럼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좋아, 가자고! 내일의 명 트레이너, 오늘의 에이스가 당신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테니!”
 5년의 실패 때문에 풀이 죽은 감은 있지만, 연우에게 그런 건 어울리지 않았다.
 동료들이 오버하는 것도 연우에게는 조금 더 밝고 발랄한 분위기가 어울리기 때문이었다.
 5년째 구직 실패, 3년째 백수인 연우는 오늘도 활기차게 마운드에 올랐다.
 진부한 말이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 믿으면서.
 
 ***
 
 “키야! 승리투수! 우리 승리투수가 먼저 한 잔 받으라고!”
 피지컬과 구속만 아니면 더없이 완벽한 투수 자원이라고 평가받던 연우였고, 이 사회인 리그에서 연우의 구속과 피지컬은 정상급이었다.
 오늘도 든든하게 팀에 1승을 선물한 연우는 동료들과 함께 신나는 회식을 즐겼다.
 “하여튼 이 회식 문화는 누가 만든 건지 참 마음에 든다니까?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렇게 즐겁게 사는 나라란 말이지?”
 캘리포니아라는 지역은 미국 속의 아시아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시아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명 대학 UCLA는 물론이고 UCLA와 함께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을 이루는 UC 버클리 등의 나머지 여섯 개 대학들도 아시아인 학생이 무려 30% 이상의 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런 캘리포니아에서, UC 리버사이드에서 생활한 동료들이 회식 문화를 즐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말 하면서 날 쳐다봐도 난 모른다고.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회식을 할 수 없는 나이였으니까.”
 열여덟 살에 미국으로 건너왔기 때문에 회식 문화를 잘 모르는 연우지만, 일이 끝나고 함께 모여 두세 시간 정도 가볍게 한잔하면서 떠드는 게 회식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리! 리! 리의 아버지가 LA 다저스에서 뛰던 리라면서? 진짜야? 그 리가 이 리의 아버지라고?”
 이번 시즌부터 팀에 합류한 한 동료는 다른 사람들에게 연우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 달려왔다.
 메이저리그에서 7년 동안 63승을 기록한 연우의 아버지, 이강진은 LA 다저스에서만 7년을 뛴 선수였고, 전국적인 인지도까지는 얻지 못했지만, 캘리포니아에서만큼은 여전히 그 이름이 통하는 유명인이었다.
 ‘이, 이 자식이!’
 ‘누가 이 자식한테 알려준 거야?’
 ‘알려주는 건 상관없지만, 적어도 리의 앞에서 아버지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말했어야지!’
 연우보다 다른 동료들이 더욱 깜짝 놀라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연우는 완벽주의자이지만 낙천적이었고, 치열한 공부, 연습 벌레지만, 여유로운 성격이었다.
 거기에 넉살도 좋아서 대화할 때 딱히 조심해야 할 부분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버지 이야기만큼은, 적어도 오늘처럼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하지 말아야 했다.
 ‘자식들······. 나보다 먼저 저러니까 우울할 틈이 없네.’
 연우는 그냥 웃어버렸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구시대의 야구인이었다.
 당신께서는 나이에 비해 개방적이고 현대 야구의 추세를 빨리 따라가는 편이라고 생각하셨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과거의 방식으로 정상을 찍은 선수가 자신의 방식을 쉽게 버릴 수 있을 리 없었다.
 은퇴 후 아들인 연우에게 매진한 이강진은 롱 토스, 투수의 어깨는 던질수록 강해진다는 자신의 방식을 연우에게 주입했고, 아버지와 같은 피지컬을 타고나지 못한 연우는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상처를 입었다.
 연우가 현대 야구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스포츠 과학과 스포츠 의학으로 진로를 잡은 건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즉, 뭔가 성과를 내기 전에는 아버지 앞에 나서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LA 다저스의 리라고 하면 아직 인맥이 꽤 쌓였을 텐데? 세대도 딱 지금 전면에 서 있을 세대고······. 아버지께 부탁하면 트레이너 자리 하나쯤은 간단하지 않아?”
 ‘!!!!!’
 ‘기어코······.’
 연우가 무슨 열등감으로 가득 찬 찌질이도 아니고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서 기분이 상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놀라는 동료들의 모습에 감동해서 기분이 좋아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아버지의 방식은 현대 야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 내가 직접 공부해서 내 손으로 그걸 증명하겠다.’
 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한 연우에게 아버지의 인맥을 활용하라는 말은 역린을 건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싸해졌던 분위기는 순간 싸해지다 못해 추워졌다.
 ‘내가 그걸 몰라서 안 하겠니. 내가 그걸 안 하고 있다면 그럴 이유가 있는 건데, 남의 일을 그렇게 함부로 묻는 거냐고.’
 연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자신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버지도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50대 후반의 연세였다.
 다음 세대가 아닌 지금 세대의 야구를 최전방에서 이끌어가는 세대였고, 메이저리그는 물론 마이너리그 전반에 걸쳐 아버지의 인맥이 쌓여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부탁하면 루키 리그나 Short Season A, 싱글 A, Advanced A 정도에는 자리를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을 보여주겠다는 게 연우의 목표였기에 벌써부터 타협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이미 아버지의 돈으로 유학했고, 아버지의 돈으로 먹고살고 있지만, 쓸데없는 고집이라도, 아직 철이 덜 든 것이라도 그것만은 용납되지 않았다.
 ‘이런······. 내가 너무 심각했나?’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자리를 구하라는 말은 연우의 역린이었다.
 시대를 풍미한 에이스의 2세로서 지금까지 연우가 겪어온 마음고생들이 한 번에 폭발하는 트리거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평소와 달리 씁쓸한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고, 낯선 연우의 모습에 회식 자리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자, 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그냥 아버지의 힘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서고 싶은 아들의 철없는 고집일 뿐인데, 뭘. 다 잊어버리고 마셔! 승리한 날인데 분위기가 왜 이래?”
 연우는 애써 씁쓸함을 숨기며 평소와 같은 웃음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다.
 평소와 달리 속내를 숨기지 못했던 건 최근 들어 연우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자존심이 버텨줄지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에게 경제적인 지원은 받더라도 적어도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가는 것만큼은 자신의 힘으로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더 흐르고 지금보다 더 조급해지면 어떻게 될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
 
 다시 한 번 채용에 실패한 뒤에도 연우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검증하기 위해 아침부터 트레이닝 센터에 나가 몸을 만들었고, 운동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박사 학위까지 따내긴 했지만, 연우는 여전히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 있었다.
 ‘이 친구는······. 밸런스가 영 아니야. 보기 좋으라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체에 비해 하체의 발달이 지나치게 미흡해. 상체 발달은 지나치게 과하고······. 게다가 구속에 대한 욕심 때문인지 상체에 지나친 힘이 들어가 있어. 이런 선수에게 맞는 프로그램은······.’
 백수인 연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물론, 부자 아버지를 둔 덕분이었다.
 연우가 야구선수를 은퇴하고 미국 유학을 결정한 순간, 아버지 이강진은 보유하고 있던 시가 40억 대 건물의 월세 수익 절반을 연우에게 돌려주었다.
 그 건물 외에도 200억대 건물 하나, 100억대 건물 하나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수익이 무려 월 1,000만 원에 가까웠고, 연우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15년째 억대 연봉을 수령 중이었다.
 몇 년 전에는 아예 40억대 건물의 명의를 연우 쪽으로 돌려주었기에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못해 차고도 넘치는 상황이었다.
 ‘제길······. 언제까지나 아버지가 물려준 건물에서 나오는 수익만으로 살 수는 없다고······.’
 그 생각을 하면 또 답답해졌다.
 사실, 연우가 굳이 일자리를 구할 필요는 없었다.
 건물 한 채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연우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건물에서 나오는 수익 덕분에 돈을 벌 필요가 없었고, 남는 시간은 전부 공부에 투자했다.
 그렇게 쌓은 실력에 자신감은 충분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 한국인이라서? 그렇게 따지면 이미 메이저리그에 자리 잡은 일본인 트레이너들은 뭔데? 비야구인 출신이라서? 트레이너 중에는 나만큼이라도 야구를 경험한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구직 활동에서 실패할 때 가장 무서운 점은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취직 시험이라도 치는 거라면 시험 성적이 낮아서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유조차 모르고 떨어지게 된다면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다음에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조차 모르게 되는 것이었다.
 특히 연우처럼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어려워져서 자신감마저 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음? 모르는 번호인데······. 누구지?’
 그때, 연우의 핸드폰으로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딱히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 연우였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다.
 연우는 대부분의 귀찮음과 약간의 기대감으로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혹시 하이랜더스 소속으로 뛰고 있는 미스터 리가 맞습니까?]
 하이랜더스의 이름이 나온 순간, 연우는 기대를 접었다.
 하이랜더스의 동료들이 여기저기 어필해주고 있다는 건 알지만, 지원자 중에 뽑아도 충분한 상황에서 굳이 그런 식으로 직원을 채용할 가능성은 낮았다.
 “네. 제가 맞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만나서······. 아, 만난 건 아니군요. 하여튼 반갑습니다. 하이랜더스의 감독인 타이슨 퍼시벌입니다.]
 연우의 머릿속이 정리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이랜더스는 연우의 소속팀이었고, 연우가 알고 있는 한 하이랜더스의 감독은 타이슨 퍼시벌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린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다.
 “타, 타이슨 퍼시벌! 진짜 감독님이십니까?”
 하이랜더스라는 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타이슨 퍼시벌.
 그것도 이렇게만 소개해도 상대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할 정도의 유명세라면 한 명밖에 없었다.
 [그렇습니다. UCR의 감독이냐고 묻는 거라면 말이죠.]
 타이슨 퍼시벌.
 UC 리버사이드가 배출한 최고의 메이저리거.
 메이저리그에서 14년을 뛰면서 35승 43패, 358세이브를 기록한 뛰어난 클로저였다.
 그리고······.
 벌써 18년째 UC 리버사이드의 야구팀, 하이랜더스의 감독으로서 팀을 이끄는 사람이기도 했다.
 
 ***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건 제가 건드리기 전에 우리 팀 선수들의 기록이고 이쪽이 제가 건드린 이후 발전한 선수들의 기록입니다.”
 하이랜더스의 감독, 타이슨 퍼시벌에게 전화가 온 순간부터 예상한 대로였다.
 퍼시벌, 한국 한정으로 ‘시발이 형’, ‘금칙어 형’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연우에게 채용 면접을 준비해 오라고 했다.
 마침 트레이너진에 자리가 비어서 채용 공고를 내기도 했지만, 자신이 지도한 선수들을 포함해 하이랜더스 선수 출신들에게 추천이 들어오니 한번 만나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 선수는 구속이 3마일 올랐고, K/BB도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게다가 평균적으로 투수들의 구속은 2마일 가까이, 타자들의 장타율은 5푼 가까이 올랐습니다. 이 정도면 유의미한 수준을 넘어 놀라울 정도죠.”
 원래 연우는 NCAA에 취업할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아예 없었고, 나중에는 생각은 했지만, 실천은 하지 않았다.
 같은 야구지만 트레이너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마이너리그라 할지라도 그곳은 세계 야구의 중심이었다.
 NCAA가 아무리 높은 평가를 받고 많은 인기를 끌어도 18세부터 21세까지의 어린 선수들만 모여 있는 곳이었다.
 프로 진출을 노리는 소수의 선수와 대학에서 커리어가 끝나는 다수의 선수, 그리고 고작 4년에 걸쳐 있는 좁은 연령대.
 트레이너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30대 전후의 선수들입니다. 신체적인 성장은 이미 끝났고, 신체의 전성기도 이미 끝난 데다가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 기본적인 조건도 좋지 않다는 뜻이죠. 이들도 이 정도의 효과를 얻었으니 한창 성장할 시기인 대학 선수들이라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여유가 없었고, NCAA에서라도 최대한 빨리 자리를 잡아 이를 기반으로 메이저리그로 넘어가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연우는 오늘의 미팅에서 채용을 확정받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를 들고 나왔다.
 학위, 포트폴리오는 물론 사회인 야구에서 얻은 자료들까지도 가지고 나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흐음······. 분명 리의 프로그램을 따른 선수들의 성장 폭이 심상치 않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선수들의 자료가 가진 한계도 알고 있겠죠?”
 일단 프로도 아니고 엘리트 스포츠도 아닌 ‘사회인’ 야구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한창 성장하는 대학생들과 성장이 끝나고 오히려 노쇠하기 시작한 사회인들은 프로그램의 방향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자료의 한계는 또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동안 운동을 접어서 몸이 매우 둔해진 상황이었죠. 단순히 꾸준하게 운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연우의 동료들은 한동안 운동을 쉬어서 근육이 사라지고 몸이 둔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연우의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꾸준하게 운동을 했다는 것만으로 성적이 좋아졌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대학 선수들 모두가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건 아니고, 분명 게으른 선수들도 많고, 대학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치려는 선수들도 많았지만, 어쨌든 신체적인 개발이 상당히 이뤄진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예측일 뿐이고 이 자료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죠. 또한 저 정도 나이에 이 정도 자료를 제시할 수 있는 트레이너는 없을 거라 자신합니다. 결정적으로 이 자료들은 어디까지나 양념일 뿐입니다. 진짜는 제가 드린 포트폴리오죠.”
 당연히 연우도 자신의 자료들이 가진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사회인 야구선수들과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한계를 느낀 게 벌써 수년 전이었다.
 사회인 야구에서 뽑아낸 자료들을 메인으로 꺼내 들 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하긴······. 포트폴리오는 확실히 흥미로웠습니다. 우리 트레이너들도 저를 따라 점점 늙어가는 중이라 젊은 피가 필요할 때가 되었죠. 그 나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포트폴리오였고, 첨부 자료였습니다.”
 18년 동안 하이랜더스의 감독직을 지키는 타이슨 퍼시벌과 그의 사단이지만, 그 18년 동안 그는 물론 그의 사단도 많이 늙었다.
 트레이너는 물론 전체 스태프진에 젊은 피를 찾는 중이었고, 자의든 타의든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수년 동안이나 공부를 이어가며 상황에 맞는 현장 경험까지 쌓은 연우는 동년배에서 상당히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럼 결정이 나면 연락하겠습니다.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연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고, 혼신의 힘을 다해 어필했다.
 지난 5년 동안 얻은 게 있다면 자기 PR 능력이 하늘을 찔렀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하늘에, 아니, 퍼시벌과 하이랜더스의 스태프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
 
 “아버지. 드디어 취직했습니다.”
 며칠 뒤, 연우는 트레이너로서 하이랜더스의 일원이, ‘진짜’ 하이랜더스의 일원이 되었다.
 5년 만에 취직에 성공한 순간, 연우는 가장 먼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바빠서, 이후에는 아버지가 엄한 코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후에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야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어색하고 어려운 분이었지만, 이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아버지였다.
 [그러냐. 그거 잘되었구나.]
 역시 무뚝뚝한 아버지다운 반응이었다.
 그래도 함께한 시간 내내 아버지의 눈치를 봐왔던 연우이다 보니 그 무뚝뚝한 목소리에서도 기쁨과 안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저를 위해 많이 신경 써주신 것도 알고,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 하셨던 것도 압니다. 죄송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화낸 것도 죄송하고요.”
 연우가 야구를 그만두었을 때, 그것도 자신의 엄한 훈련과 채찍질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벽을 느끼고 그만두었을 때, 연우만큼이나 충격을 받은 게 아버지, 이강진이었다.
 어린 연우에게 건물의 명의를 넘겨준 것은 시작이었고, 어떻게든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자리를 만들어주려 하기도 했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관계자들을 만나 자리를 만들어보려 했고, 연우가 그런 자신의 행동에 짜증을 내고 화를 내도 나중에 좌절하고 포기할 때를 대비해 그때가 되면 자리를 만들어달라며 약속을 받아낼 정도였다.
 평생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할 위치가 아니었고, 그에 따라 자존심도 상당히 강한 아버지에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라. 나도 아버지로서 성장하는 중이다. 아버지라는 역할이 처음이라 실수도 했지만, 이제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아버지 33년 차인데 실수해서야 면이 안 서지.]
 아마 이강진은 아들 연우의 이른 은퇴에 평생 죄책감을 느낄 것이었다.
 야구를 그만두고도 야구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야구를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의 선수 경력을 자신의 손으로 끝낸 것이나 다름없으니 연우의 결정이 아무리 긴 고민 끝에 나온 냉정한 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죄책감을 씻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크흠······. 아, 아버지. 저 얼마 전에 84마일 찍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최고 구속이죠.”
 [하하, 그러냐? 넌 서른셋에 전성기를 맞았구나.]
 트레이너로서 메이저리그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 할지라도 아버지가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지우지 못할 거라는 건 연우도 알고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건 화제를 돌리는 것이었다.
 연우는 얼마 전 기록한 생애 최고의 구속, 84마일을 강조하며 의뭉을 떨었다.
 “어떻습니까? 제 공부도 쓸 만하지 않습니까? 현대 야구에서는 현대 과학과 의학이 중요하다는 걸 증명하겠습니다.”
 자신의 성과를 자랑할 타이밍을 놓칠 연우가 아니었다.
 한창 야구만 하던 시절에도 찍지 못한 구속을 서른셋에 찍었다는 건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사회인 야구를 하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 연우 역시 선수 못지않은 진지함으로 야구를 하고 있었기에 구속 상승에 대한 순수한 기쁨이기도 했다.
 [글쎄다. 아직 나는 잘 모르겠구나. 그때보다 키도 훨씬 컸고 운동도 꾸준히 했으니 그때보다는 당연히 구속이 잘 나와야지.]
 “···음······. 취직이 결정된 날인데 좀 봐주시지, 처음부터 핵심으로 들어오셨네요.”
 사실, 연우의 현재 신장은 182cm였다.
 야구를 그만둔 이후로도 천천히 자라던 신장은 은퇴한 지 1년 후에 급격히 자라기 시작해 1년 동안 무려 16cm가 자랐고, 최종적으로 23cm가 더 자란 것이었다.
 당시와는 다른 체격에 성장기라 하지 못했던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충실히 한 지금, 그때보다 빠른 볼을 던지는 건 굳이 과학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일일 수 있었다.
 [네가 그 정도까지 자랄 줄 알았다면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은퇴를 막았을 텐데······.]
 KBO 투수들의 평균 신장은 184cm였다.
 살짝 언더사이즈이기는 하지만, 일찌감치 인정받았던 연우의 능력이라면 그 정도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이강진이 연우의 은퇴에 죄책감을 지우지 못하는 건 이런 이유들 때문이기도 했다.
 “에이······. 산통도 다 깨졌고 이제 약속도 있어서 그만 끊겠습니다. 또 전화할게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애매해진 순간, 다행히 저 멀리서 하이랜더스 팀 동료가 연우를 불렀다.
 마운드에 올라갈 시간이 된 것이었다.
 연우는 속으로 나이스 타이밍을 외치며 전화를 끊었다.
 ‘후우··· 선수라······.’
 아버지와의 통화를 끝낸 연우는 쓰게 웃으며 마운드로 향했다.
 사회인 야구의 마운드로도 만족했던 연우지만, 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나도 웬만하면 이 마운드가 아니라 프로의 마운드에 올라가고 싶었는데······.’
 트레이너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더 이상 선수로서 그라운드에 서지는 못하지만, 야구계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야구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하지만 조금만 더 버텨볼걸, 하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는 건 역시 불가능했다.
 피지컬과 구속.
 두 가지만 해결되면 아버지의 훈련이 조금 괴롭더라도 버텨서 프로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두 가지가 해결된 지금 상황에서 보면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아쉬워는 할지언정 후회는 하지 말자.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니까.’
 연우는 마운드에 올라 호흡을 골랐다.
 수만 명의 관중이 환호하는 마운드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진지한 경기가 펼쳐지는 그라운드의 마운드였다.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
 
 ‘가끔 저런 선수들도 나타나는 마운드라고. 지금 나한테는 이 정도 마운드면 충분해.’
 연우는 마운드 위에서 상대 팀의 주축 타자를 노려보았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트리플 A까지 올라갔고, 트리플 A에서 한 시즌 18개의 홈런을 때려낸 적이 있는 선수였다.
 아무리 수준이 높고 선수 출신이 대부분인 미국 사회인 야구 풀이라지만, 이 정도 수준의 선수면 이곳에서도 베이브 루스나 다름없었다.
 ‘어이쿠······. 역시 걸리면 새까맣게 날아가는구나.’
 그래도 트리플 A에서 어느 정도의 활약상을 보여준 만큼 인터넷만 뒤져도 선수의 장점과 단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한 선수였지만, 단점을 알아도 그 약점을 제대로 공략할 수 없는 게 사회인 야구였다.
 그리고 상대는 조금만 의도와 다른 볼을 던지면 새까맣게 날아가는 타구를 때려낼 수 있는 선수였다.
 ‘크악, 몰렸다!’
 바로 다음 볼이 그랬다.
 연우는 상대의 단점을 공략하기 위한 볼을 던졌지만, 살짝 몰리고 말았다.
 밥만 먹고 야구만 하는 투수들도 심심찮게 던지는 게 실투였다.
 야구선수는 아니어도 야구선수 못지않은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소화하는 연우였기에 평소 실투가 많지 않았지만,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따―악!
 트리플 A까지 올라갔다는 건 연우의 볼보다 10마일 이상 빠른 볼들을 어렵지 않게 때려냈다는 이야기였다.
 은퇴한 지 꽤 시간이 지났어도 80마일 초중반의 볼 정도는 눈 감고도 때려낼 수 있는 선수였다.
 당연히 다음 순간 연우의 볼은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반대편을 향해 날았다.
 ‘아, 이제 시······.’
 아, 이제 시작인데.
 평소라면 0.5초 정도의 시간만 있다면 끝낼 수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연우에게는 그 짧은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지난 삶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거나 갑자기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거나 한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최소한 연우에게는 그랬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그것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강한 타구는 치명적인 급소인 연우의 관자놀이를 강타했고, 의식까지도 뺏어갔다.
 그라운드 안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이 깜짝 놀라 연우를 향해 달려왔지만, 연우는 이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영원히 알 수 없었다.
 
 
 # 또, 야구
 
 “리! 리! 오늘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 거야? 정신 차리고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아, 아······. 응, 그래. 먼저 가. 나는 나중에 따라갈 테니까.”
 LA의 한 어학연수원.
 본격적인 유학 생활에 앞서 언어를 배우기 위해 모여든 세계 각국의 학생들은 점심시간을 맞아 각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카페테리아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15년 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연우도 있었다.
 ‘휴우······. 이제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상대 타자가 때려낸 타구가 무지막지한 기세로 머리 쪽으로 날아오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순간 정신을 차린 연우는 미국 유학 첫날로 돌아와 있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친구들이 보던 소설을 빌려 읽었을 때 나온 야구의 신이라든가 악마라든가 하는 존재는 없었다.
 그저 눈을 떴는데 미국 유학 초창기로 돌아와 있었을 뿐이었다.
 ‘그게 벌써 한 달 전인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지자, 정신을 차린다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어쨌든 자신이 경험한 일이었고, 자신의 과거였기 때문에 몸에 배인 것처럼 움직이긴 했지만, 몸은 움직여도 정신은 여전히 반 정도 놓고 지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새 한 달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꿈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은 15년 전에 있었고, 여기서 살아가야 했다.
 ‘그래.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슬슬 움직여야지.’
 사실, 여기가 진짜 15년 전의 과거라고 한다면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게 없었다.
 이미 미국으로 건너왔기에 아버지의 엄한 훈련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미국 생활도 15년이나 했기 때문에 언어도, 문화적인 차이도 충분히 익숙해져서 감당할 수 있었다.
 유학 선물로 받았던 아버지의 건물 지분도 여전해서 경제적인 문제도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시 한 번 선수로서의 꿈을 펼쳐볼 수 있다는 거야.’
 야구선수 은퇴 의사를 밝힌 후, 연우의 유학은 빛의 속도로 이루어졌다.
 선수 은퇴에서 유학까지 걸린 기간은 한 달 정도였다.
 즉, 지금 연우의 몸은 운동을 쉰 지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몸이라는 것이었다.
 타격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그리고 일 년 뒤부터 키가 빠르게 큰다는 것도 알고 있고. 전처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면서 신경 써서 몸을 관리하면 몇 cm 정도는 더 클 수도 있어.’
 전생에서 연우가 야구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크지 않는 신장과 그로 인한 피지컬 및 구속, 구위의 부재였다.
 지금 연우의 신장은 고작 159cm.
 같은 나이 남학생들의 평균 신장이 173cm라는 걸 감안하면 턱없이 작은 키였다.
 하지만 대학 입학 전까지 180cm를 넘긴다는 걸 알고 있었고, 철저한 관리가 뒷받침되면 전생보다도 몇 cm는 더 클 수 있었다.
 게다가 각종 야구 이론 및 스포츠 과학, 의학 분야에 빠삭한 지식까지 갖춘 상황.
 눈물을 흘리며 접었던 야구선수의 꿈을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이 시간으로 돌려보내 준 주체가 있다면 진심을 다해 감사하다고 전해주지. 그리고 나는······. 진심을 다해 마운드에 올라간다.’
 아직도 혼란스럽고,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굳이 이해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자신은 15년 전 과거에 있었고, 전생과는 달리 야구선수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신연령이 어찌 되든 자신은 열여덟의 이연우였다.
 도전을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소설에서는 무슨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나 특별한 능력 같은 것도 가지고 있던데······. 일단 나한테는 없는 것 같네.’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회가 주어지긴 했지만, 15년 전으로 돌아왔어도 연우의 잠재력이 특별한 수준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야구를 할 거라면 전 세계의 야구 유망주들과 경쟁해야 했는데, 연우 자신도 자신의 재능에 확신은 없었다.
 ‘나도 무슨 이상한 매니저 시스템이나 보여선 안 되는 게 보이는 특별한 눈 같은 걸 가지게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내 힘으로 한번 해보자. 솔직히 야구만 해도 부족한 게 시간인데, 나처럼 스포츠 과학, 의학에 야구 이론에까지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고교 야구선수가 어디 있겠어. 이미 이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반칙이지.’
 지금까지의 일들만 놓고 본다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이 생기진 않은 것 같지만, 과거로 돌아온 것 자체부터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메이저리그 트레이너를 목표로 사력을 다해 공부한 사람이 그 지식을 가지고 야구선수의 길에 뛰어든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긴. 나야 뭐하면 한국으로 돌아가도 되니까.’
 다행이라면 연우는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이후 곧바로 유학을 결정했기 때문에 해외파 2년 유예 규정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난하게 야구를 하다가 메이저리그에서의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한국 야구에서는 충분히 활약할 자신이 있었기에 다른 인생을 산다는 것에 대한 공포는 없었다.
 그저 눈물을 머금은 채 포기했던 프로야구의 마운드에 다시 설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게 지금의 연우였다.
 그 마운드가 메이저리그인지, 한국 프로야구인지, 선발인지, 패전 처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프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그 희망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은.
 
 ***
 
 “음······. 보시면 어깨랑 팔꿈치 쪽에 염증이 있네요. 이게 염증이긴 한데, 그래도 푹 쉬셨나 봐요? 이제는 거의 여기 염증이 있었다는 흔적만 남았네요.”
 야구선수로서의 꿈을 다시 한 번 세운 연우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전문 클리닉에 방문해 몸 상태를 전체적으로 진단받은 것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잡은 커리큘럼에는 매일 75미터 거리에서 던지는 롱토스가 100개 이상을 비롯, 굉장히 하드한 프로그램이 짜여 있었기 때문에 빈말로라도 피지컬이 좋다고는 볼 수 없는 연우의 몸은 이곳저곳에서 부하가 걸려 있었다.
 다행히 미국으로 떠나오기 전까지 한 달 정도 푹 쉬었기 때문에 상당히 안정된 상태이긴 했다.
 “어느 정도면 완치될까요? 이왕 쉰 김에 완전히 깨끗해지기 전까지는 상체 쪽은 아예 쉬려고 하는데······.”
 어깨나 팔꿈치는 나중에 단련해도 늦지 않았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두 군데에 숨어 있는 폭탄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었다.
 한 달의 휴식은 분명 큰 효과를 끌어냈지만, 고작 그 정도로 폭탄을 완전히 제거하는 건 힘들었다.
 “글쎄요······. 짧게 잡아도 4주, 길게 잡으면 8주에서 10주 정도 푹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혹시 운동을 하셔서 그러기 힘들면 따로 처방을 해드리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푹 쉬는 게 좋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운동선수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부상의 형태는 아무리 봐도 운동선수의 직업병이지만, 연우의 피지컬은 아무리 봐도 운동선수라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유롭게 12주 정도 쉬면 되겠네요.”
 어차피 지금 당장 팔꿈치와 어깨를 써가면서 운동할 필요는 없었다.
 팔꿈치와 어깨를 쓴다면 역시 피칭 훈련이나 어깨 강화 훈련일 텐데, 당장은 그것보다 깨끗한 팔꿈치, 어깨를 만드는 게 훨씬 중요했다.
 ‘투수의 팔꿈치가 소모품이냐, 아니면 도검이냐. 이건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도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난제였지만······. 개인적으로 난 소모품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일본 야구의 투수론은 ‘투수의 어깨는 도검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단련된다.’는 것이었고, 메이저리그의 투수론은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망가진다.’는 것이었다.
 롱토스 프로그램으로 인한 선수들의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면서 마지막까지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였지만, 역시 소모품 쪽이 조금 더 일반적인 의견이었다.
 연우 역시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리고 연우는 자신의 어깨, 팔꿈치를 소모품처럼 써버릴 생각이 없었다.
 ‘일단 완벽하게 깨끗한 팔을 만드는 게 첫 번째. 어차피 당장 할 건 많으니까. 이론적인 훈련 계획만 세우려고 해도 3개월은 금방이야.’
 팔이 완전히 깨끗해질 때까지는 여유롭게 잡아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절대 긴 시간이 아니었다.
 단순히 연구와 실험을 위한 게 아니라 야구선수로서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야 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하루아침에 준비할 순 없었다.
 그리고 팔이 아니더라도 단련해야 할 부분은 많았고, 당장 식단을 짜는 것도 중요했다.
 ‘트레이너를 준비하던 상황에서 이 시점으로 돌아온 건 분명 하늘의 뜻일 테지. 하늘이 정해준 대로 야구선수로서 무조건 성공한다. 트레이너가 되어서 다른 선수를 통해 보여드리는 것보다 내가 내 몸으로 직접 보여드리는 게 아버지에게도 당당하겠지.’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다.
 15년 후의 최신 이론들을 가지고 15년 전으로 돌아와 18세 어린 유망주를 A부터 Z까지 키우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게 자신의 몸이었으니 트레이너가 말하고 선수가 대답하는 형태로 피드백이 전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행동하고 자신이 직접 느끼는 걸 자신이 직접 피드백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선수를 키우는 완벽한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음······. 아직 내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남아 있지만······. 메이저리그를 향한 욕심도 막 생기려고 하는데? 후후후··· 이거 생각보다 대단한 선수가 되는 건 아닐까?’
 ‘여유로운 공부벌레’, ‘낙천적인 완벽주의자’
 이제는 없었던 일이 된 15년 후의 미래에서 연우가 불리던 별명이었다.
 수식어와 명사의 관계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만큼 일반적인 성격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원래 세상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큰일을 저지르는 무대였고, 연우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
 
 ‘흐음······. 당장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사실, 엘리트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팔꿈치와 어깨를 제외하더라도 무릎, 허리 등도 좋지만은 않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다른 부위는 전부 깨끗하게 좋아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연우는 훈련 시작을 조금 늦추고 있었다.
 며칠 빨리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론으로 무장한 연우였기에, 단순히 빠른 시작과 많은 훈련량보다 빈틈없이 스케줄을 짜고 그를 철저하게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훈련은 많지 않아. 웨이트 트레이닝은 성장이 끝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할 게 아니고, 키가 크면 밸런스도 완전히 달라질 테니 야구공을 잡고 할 일도 없어.’
 무엇보다 훈련을 하려고 해도 당장 할 게 없었다.
 어깨와 팔꿈치를 아낄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당장 1년 뒤부터 폭풍 성장을 시작해 25cm 가까이 클 예정이었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할 수도 없었고, 밸런스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기에 투구 연습도 의미가 없었다.
 손가락의 길이도, 팔의 길이도, 스트라이드를 포함한 모든 것도 달라질 예정이라 구종 개발도 힘들었다.
 지금 당장 소화해도 효과를 볼 수 있는 훈련을 꼼꼼하게 골라서 철저하게 수행할 시기였다.
 ‘생각해라, 생각. 어떤 부위가, 어떤 훈련이 지금 당장 소화해도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일단 유연성도 좀 필요할 거고, 체력은 무조건이고······.’
 할 수 없는 훈련이 많은 만큼 오로지 지금만 할 수 있는 훈련도 있을 것이었다.
 성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다음에 본격적으로 투수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면 필수적인 훈련부터 소화해야 했고, 시간이라는 게 한계가 있기에 사소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즉, 앞으로 1년여가 어쩔 수 없이 소홀해질 부분을 중점적으로 키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일 테고, 손가락 감각 정도만 유지하면서 유연성 위주로 훈련을 가져가는 게 좋겠어. 키가 크면 어쩔 수 없이 유연성도 죽겠지만, 일단 키워놓으면 그 폭을 최소화할 수 있겠지.’
 오로지 선발투수만 노리겠다는 건 아니지만, 선발이 아니더라도 체력이라는 건 운동선수의 기본이었다.
 그리고 투수에게 유연한 몸은 핵심이었다.
 유연한 몸이 받쳐준다면 부상 위험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릴리스 포인트를 최대한 앞으로 끌고 나가는 등 여러 가지 이점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성장해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일단 훈련 스케줄은 크게 이 정도로 잡으면 되겠지.’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생각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였다.
 자신의 몸이긴 했지만, 이미 운동을 한 달이나 쉰 데다가 무엇보다 15년 전의 몸이었기 때문에 운동능력이 파악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건 운동을 시작한 뒤에 천천히 파악하면서 결정할 일이었다.
 ‘다음은 앞으로의 계획인데······.’
 훈련 노트를 한쪽으로 밀어낸 연우는 다른 노트를 꺼내 들었다.
 15년 전으로 돌아와 야구는 물론 인생 자체를 다시 시작한 이상, 이용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이용해야 했다.
 ‘솔직히 돈은 어찌 되든 상관이 없지. 아무것도 안 해도 억대 연봉이 들어오는데.’
 보통 과거로 돌아오면 미래의 지식을 활용한 투자부터 생각하겠지만, 연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경제력은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터였고, 대충 15년 뒤에 잘나갔던 기업의 주식만 기억해서 남는 돈으로만 투자해도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었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할 것인가였다.
 ‘어차피 고졸로 프로가 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야. 어찌 되었든 대학을 가야 한다는 건데······.’
 일단 유의미한 정도의 신장까지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학 입학 후 반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고, 그나마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180cm를 넘기기 위해서는 대학 1학년을 마칠 때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전보다 더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대학 입학 후 1년 정도는 지나야 투수로서 마운드에 설 수 있을 것이었다.
 ‘으으······. 빌어먹을 SAT, ACT를 다시 봐야 한다니.’
 고등학교 때 야구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일단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성적 등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 뒤에 일반부원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야구선수가 될 거라면 대충 2년제 대학인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해도 되겠지만, 그것도 또 문제가 있었다.
 ‘결국, NCAA 무대에서 투수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학 2학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고, 드래프트에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에 어필하기 위해서는 3학년은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니까······. 어쨌든 4년제 대학으로 가야겠네.’
 “아! NCAA는 경기에 나가려면 무조건 최소 학점도 채워야 하잖아! 아악!!”
 최소 학점이 필요하다는 건 최소한의 공부도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공부는 15년간 질릴 만큼 해왔고, 이제 묻어놓았던 꿈, 야구선수의 길을 걸으려는 연우였기에 그 시간도 아까웠다.
 ‘자, 자. 공부할 시간을 아끼려면 전에 전공했던 스포츠 메디컬 쪽으로 가야 한다는 거고, 스포츠 메디컬이 개설된 대학은 몇 없으니까······. University of California에 소속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해야겠어.’
 연우의 모교였던 리버사이드 캠퍼스를 포함해 LA에 있는 가장 유명한 UCLA, 그리고 버클리, 데이비스, 샌디에이고, 어바인, 산타 바바라, 산타 크루즈, 머세드를 포함한 아홉 개의 캠퍼스가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에 포함된 곳이었다.
 연우가 있는 LA에서 갈 만한 대학 중 스포츠 메디컬 학과가 개설되어 있으면서 NCAA 야구팀이 존재하는 곳은 아홉 개의 캠퍼스 중 UCLA를 포함해 일곱 곳이었다.
 ‘일단 NCAA Division.1에 있으면서 그렇다고 전력은 또 너무 강하지 않은 팀이 좋겠는데······.’
 팀이 Division.2에 위치한 샌디에이고 캠퍼스를 제외하면 LA, 버클리, 산타 바바라, 데이비스, 어바인, 리버사이드 캠퍼스가 있었다.
 이 중에 UCLA와 어바인, 버클리는 언제든 NCAA의 최상위 플레이오프인 칼리지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릴 만한 명문 팀이었기에 제외하면 세 개 캠퍼스가 남았다.
 ‘셋 다 지원하면 되지, 뭐.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되는 거니까.’
 UCLA와 UC 버클리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딱히 유명하다고 할 수 없는 대학들이지만,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을 함께 지탱하는 만큼 전부 다 상위권의 대학들이었다.
 미국 대학 순위를 내면 가장 유명한 두 개 캠퍼스가 20위권 초반에 있고, 샌디에이고, 데이비스, 어바인, 산타 바바라가 40위 근처에 있었다.
 ‘어차피 같은 학과에서 같은 공부를 한다면 조금 다른 커리큘럼으로 배워보고 싶긴 하네.’
 공부는 질렸다고 하더라도 다른 학교에서 다른 내용을 배우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고 해도 뭔가 또 다른 것들을 배울 수도 있었다.
 문제는 이미 다 잊어버린 SAT와 ACT 점수가 높게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후우······. 프로 입성 전까지의 계획은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세울 수 있는 계획은 이 정도일 것이었다.
 계획만 세웠는데도 이대로만 하면 메이저리그에 지명되어 입성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만족감이 밀려왔다.
 낙천적인 성격은 판타지 같은 상황을 맞이한 지금도 여전했다.
 ‘자, 이제 뛰러 가자.’
 오늘 계획을 마무리했으니 실천하는 것도 오늘부터였다.
 이미 복장을 비롯해 트레이닝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내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트레이닝 센터로 이동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미국은 이것도 좋다니까. 한국에 있었으면 이 나이에 차를 몰고 나갈 수도 없겠지.’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생각한 순간,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었다.
 당연히 가뿐하게 합격했고, 적당한 차량도 이미 계약해서 넘겨받아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연우의 미국 생활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
 
 “오, 제이슨! 일찍 왔네? 네가 어쩐 일이냐? 매일 아슬아슬하게 지각만 면하더니.”
 연우는 순식간에 학교 분위기에 적응했다.
 아주 옛날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지난 삶에서 한 번 만나서 인연을 만들었던 동급생들이기에 낯을 가릴 이유도 없었고, 애초에 연우의 사회성도 뛰어난 덕분이었다.
 “하하, 아침에 엄마랑 충돌이 좀 있어서 말이야. 뭐, 지각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매번 있는 일이지. 매일 아침 먹는 베이컨처럼. 그나저나 너는 또 그거야? 오늘은 악력 단련이네?”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연우의 손에는 악력기가 들려 있었다.
 벌써 일 년 가까이 한 주는 악력기, 한 주는 어깨 단련용 튜브를 들고 등교해 시간이 남을 때마다 단련을 멈추지 않는 연우는 이미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이번 주는 악력 단련할 차례니까. 이제는 너희도 알고 있잖아? 하하하.”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연우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튜브를 활용한 어깨 단련도, 악력기를 활용한 악력 단련도 전부 투수에게는 핵심적인 트레이닝이었다.
 특히 연우의 경우 모르긴 몰라도 패스트볼의 구속과 구위를 앞세운 투수보다는 변화구를 활용하는 투수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악력 단련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렇긴 한데······. 그래, 뭐······.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네 꿈은 아직도 진행 중인 거냐?”
 매일 치열하게 단련하는 모습은 다른 학생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연우는 그들에게 야구선수가 되기 위한 단련이라는 걸 숨기지 않았다.
 당장은 공도 던지지 않는 데다가 학교에 있는 야구부에도 합류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당당했다.
 당연히 야구의 본고장인 데다가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수많은 야구선수들을 본 동급생들은 그런 연우의 말을 가볍게 넘겼지만, 연우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다는 건 진지하다는 거라고.”
 벌써 돌아온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159cm였던 신장은 1년 만에 162cm가 되어 있었고, 이제부터 성장에 발동이 걸릴 타이밍이었다.
 여기서 빠르면 1년, 늦어도 1년 반이면 본격적인 몸만들기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까지 성장할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야구부도 아니고 야구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는데 야구선수가 되겠다니까 이상하잖아? 야구선수가 되겠다면서 야구부도 안 들어가는 친구인데 우리가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 건데?”
 “진지하게 대해달라고, 진지하게. 말했잖아? 아직 몸이 안 만들어져서 그렇지, 몸만 만들어지면 시작할 거라고. 그리고 1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꽤 유망한 야구선수였거든? 의심하지 말고, 나를 믿고! 응? 지금 사인이라도 받아놓는 걸 추천하지만, 매달리진 않아. 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나한테 사인받으러 올 테니까.”
 남들이 보기에 야구부도 가입하지 않고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말하는 연우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겠지만, 다른 포지션은 몰라도 투수는 그래도 되는 포지션이었다.
 필수적인 훈련만 쉬지 않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키가 한 번에 그렇게 크고 나면 투구폼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바꿔야 하기 때문에 야구부에 들어갈 필요도 없었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어깨와 팔꿈치를 아끼는 게 나았다.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드래프트에서 신인을 지명할 때 짧은 기간이라도 재능만 증명된 선수라면 팔이 더 싱싱한, 커리어가 짧은 선수들을 더 좋아했다.
 ‘지금 비웃는 건 너희 마음이겠지만······. 비웃은 놈들 나중에 사인 안 해준다. 나중에는 후회할걸? 아마도.’
 한창 사춘기인 십 대 소년이라면 이런 주변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꿈을 접을지도 모르겠지만, 연우는 30대 중반, 그것도 한 번 꿈을 포기하고 접었던 30대 중반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미국 유학 이후 낙천적인 성격이 된 연우였기에 애초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지금 연우는 오로지 자신의 목표만을 향해 빠르지만 철저하게 달려가는 중이었다.
 
 ***
 
 ‘흐음······. 일단 여기란 말이지.’
 다시 돌아온 연우는 시간이 빠르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고 있었다.
 직접 보거나 느낀 건 아니지만, 정황상 강한 타구에 머리를 강타당했을 것이 분명한 그 사건 이후 15년 전으로 돌아온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도 전이었는데 어느새 돌아온 지 2년이 지난 것이었다.
 지난 삶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편입을 미루거나 하지 않고 제 나이, 제 학년에 편입했고, 2년이 지난 시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대학에 입학해 1학년의 절반을 마칠 수 있었다.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할 타이밍이 되긴 된 것 같은데······.’
 2년 사이 연우의 신장은 극적으로 자랐다.
 159cm였던 신장이 2년 동안 무려 20cm가 자란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신장은 179cm.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 신장인 188cm는커녕 대학 투수들의 평균 신장과 비교해도 훨씬 작았지만, 아쉬운 대로 시작을 고민할 정도는 되었다.
 ‘확실한 건 예전과 비교하면 키가 빠르게 크고 있다는 거지. 원래 이 시기에 내 키는 175cm 정도였을 텐데.’
 자라지 않는 키가 주요 원인이 되어 꿈을 접어야 했던 만큼 연우는 전생에서 야구를 그만둔 이후로도 계속 신장에 민감했었다.
 항상 주의해서 신장을 체크했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신장이 어느 정도 되었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정도 시점에서 지난 삶에서는 170cm대 중반 정도였고, 180cm가 넘어간 건 2학년도 절반 정도가 지나간 이후였다.
 예상한 대로 야구선수의 꿈을 위해 쉬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큰 신장을 갖추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자 말 그대로 조금이나마 더 큰 것이었다.
 ‘180cm면 일단 경쟁력은 갖출 수 있어. 앞으로 얼마나 더 클지 모르겠지만, 190cm를 넘지는 않을 테니 그 뒤에는 투구폼을 살짝만 수정하면서 적응할 수 있을 거고.’
 조금 더 크긴 했지만, 이전과 비교해 5cm 이상의 차이가 나진 않을 것이었다.
 그 이상 크면 할 수 없지만, 왠지 그 이상은 아닐 것 같았다.
 그 정도라면 투구폼에 살짝 수정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신장 변화에 따른 이질감을 해소할 자신이 있었다.
 180cm를 넘는 순간, 연우는 시뮬레이션 피칭을 포함한 본격적인 투수의 훈련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자, 그럼 우리 학교 야구부의 수준을 좀 보러 가볼까?’
 반년 전, 연우는 처음 돌아왔을 때 생각했던 대로 UC 산타 바바라, UC 리버사이드, UC 데이비스 세 개 캠퍼스에 지원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지원한 곳은 꽤 되지만, 입학할 생각이 있는 건 세 곳이었다.
 의학적인 지식보다 스포츠 지식에 중점을 둔 스포츠 메디컬 학과가 있고, NCAA 최상위 디비전에 속한 야구팀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그 야구팀의 수준이 너무 높지 않은 캠퍼스는 이 정도였다.
 ‘웬만하면 산타 바바라로 가고 싶었는데 말이지. 앞으로 동문도 좀 많아질 거고.’
 연우가 가장 가고 싶었던 캠퍼스는 UC 산타 바바라였다.
 지금 당장은 소속된 Big West 컨퍼런스에서 중위권에 불과한 야구팀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연우가 졸업할 2010년 입학생부터 상당한 수준의 신입생들이 들어와서 강해지는 팀이기 때문이었다.
 ‘미국 최고의 파티 스쿨이 얼마나 즐거운지 보는 건 그냥 덤인 거지, 덤. 음음······.’
 그리고 UC 산타 바바라는 ‘파티 스쿨’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지만은 아니었다.
 약자인 UCSB가 University of California, Sex and Beer의 약자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으음······. 거기였으면 아주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를 보낼 수 있었을 텐데.’
 풋볼이나 농구의 인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일단 NCAA 자체의 인기가 만만치 않았고, 야구 역시 미국 내 4대 스포츠에 포함된 종목이었기에 야구선수의 인기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만약 산타 바바라로 갔다면 미국 최고의 파티 스쿨에서 아주 해피한 캠퍼스 라이프를······.
 “스읍!”
 ‘여기까지만 하자, 여기까지만. 이제야 겨우 본격적인 야구를 시작하려는데 정신이 팔리면 안 되지.’
 행복한 상상에서 겨우 빠져나온 연우는 고개를 흔들며 야구팀이 훈련하는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어쨌든 연우는 UC 산타 바바라에 합격하지 못했다.
 해피한 캠퍼스 라이프는 이미 물 건너간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 번 입학해서 졸업한 다음에 석사, 박사 학위까지 땄던 곳으로 돌아갈 순 없잖아.’
 UC 리버사이드에서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 내에서도 하위권에 속하는 캠퍼스였고, 편입이라도 한 번 다닌 적이 있는 학교였기에 어렵진 않았다.
 그리고 다시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 내 모교! UC 데이비스!’
 결국, 연우가 선택할 곳은 UC 데이비스밖에 없었다.
 사실, UC 어바인에서도 합격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고민하긴 했지만, UC 어바인은 연우가 들어가기엔 너무 강팀이었다.
 ‘어바인은 너무 강팀이고, 데이비스는 너무 약팀이긴 하지만.’
 반면, UC 데이비스는 전통적인 약체였다.
 정규시즌이라 할 수 있는 컨퍼런스별 50여 경기를 치르고 나면 승률 상위권에서 64개 팀을 걸러내 토너먼트를 벌이고, 다시 8개 팀이 남으면 칼리지 월드시리즈라는 플레이오프를 치렀는데, UC 데이비스는 첫 번째 토너먼트에 딱 한 번 진출한 게 전부였다.
 ‘그것 빼고는 전부 맘에 안 들지.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많이 보는 것 같은 시골구석도, 캠퍼스에서 키우는 소 때문에 나는 고향의 냄새도, 지나칠 정도로 학구적인 캠퍼스 분위기도······.’
 형제 캠퍼스라 할 수 있는 UC 리버사이드 출신이기에 UC 데이비스에 대한 소문은 적잖이 들어왔다.
 기본적으로 연우는 굉장히 성실한 성격이었다.
 고교 생활 내내 튜브와 악력기를 들고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단련한 것에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이면서 낙천적이고, 공부 혹은 연습벌레면서 여유로운 특이한 성격의 연우였기에 시골보다는 도시가, 조용함보다는 시끄러움이 어울렸다.
 그런 연우에게 UC 데이비스 생활이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전국에서 가장 긴 자전거 전용 도로를 보유한 도시 데이비스, 1년 3학기 커리큘럼이라 압도적으로 많은 시험 횟수, 지나치게 짠 학점 구조, 학점이 1.5 이하로 떨어지면 강제로 한 학기 이상 휴학을 시키는 학구적인 분위기.
 오죽하면 UC 데이비스 학생들은 졸업식에서도 책을 본다는 이야기가 있을까.
 직접 경험한 UC 데이비스는 소문보다 더한 곳이었다.
 ‘만약 내가 같은 전공에서 박사 학위를 딴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미 포기했을 수도······.’
 만약 연우에게 이미 스포츠 메디컬 분야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경험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포기했거나 야구선수로서의 성장을 어느 정도 늦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UC 데이비스는 그 정도로 학업이 빡센 곳이었다.
 NCAA에서 종목을 막론하고 성적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후후······. 저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버티기 더 힘들었겠지.’
 사실, UC 데이비스의 야구팀이 약팀이라고는 하지만, 딱 한 번 있는 토너먼트 진출이 바로 2년 전의 일이었다.
 수많은 NCAA 디비전 1 소속 팀 중 마지막 64개 팀에 들었고,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치러지는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야구 명문 스탠포드에 승리를 거두기까지 했다.
 성적이 나오고 리크루팅을 통해 재능 있는 고등학생들을 데려오고 성적이 더 잘 나오는 선순환에 접어들 첫 번째 조건이 갖춰진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제부터 기지개를 켜야겠지만, 작년에 주축으로 활약한 선수들 전부 지금 학교에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4, 5년 전의 리크루팅 성과는 나쁘지 않았어. 후속타가 없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지만.’
 지난 시즌 UC 데이비스의 토너먼트 진출을 이끈 에이스 저스틴 피네이로, 2선발 브라이언 스케일스, 마당쇠 에디 고든, 마무리 마르코 그리섬, 안방마님 제이크 조던.
 이들은 전부 3학년 혹은 4학년이었기에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했고, 지명을 받아 프로에 진출했다.
 이들이 학교에 남아 있는 동안, 2학년이나 3학년이었을 때 성적이 나왔으면 상황이 좀 달랐을 수 있겠지만, UC 데이비스는 그러지 못했다.
 이 세대와 이후 세대를 이어 강팀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어야 하는 선수들은 이들의 재능에 크게 미치지 못했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하하!!”
 연우는 UC 데이비스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면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2년 전의 토너먼트 진출이 마치 한여름 밤의 꿈인 것처럼 딱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야구 경력 없이 일반부원으로 입부해야 하는 연우에게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도 지난 시즌 성적이 좀 괜찮아서 2009년에 데려온 선수들은 꽤 괜찮네.’
 거의 대부분이 연우의 기준에 미달하는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몇 명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2008년의 좋은 성적 덕분에 데려온 2009년 신입생들이었다.
 연우보다 한 학년 선배인 이들은 나쁘지 않은 재능을 보였지만, 위에도 아래에도 이들을 받쳐줄 재능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래서 훈련장에 올 수밖에 없다니까.’
 지난 반년 동안 이들의 재능과 기량에 대한 파악은 끝난 상황이었다.
 이제는 그냥 습관적으로 들러서 이들의 성장 정도를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여전히 눈에 띄는 선수는 없었다.
 ‘2학년에 데인 퀸튼, 조 밴슨, 스캇 킨들러, 데이비드 퍼킨스, 1학년에 라이언 오덤. 이 정도가 그나마 같이 뭘 해볼 만한 선수인가.’
 재능 있는 선수라고 해봤자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20라운드 근처에서 겨우 지명될 수준에 불과했다.
 이게 UC 데이비스의 현실이었고, 연우가 UC 데이비스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다음 시즌에 만납시다, 우리. 모교에서 세 번째로 나올 메이저리거와 함께 뛸 영광을 드릴 테니. 하하······. 아냐, 속마음이라지만, 너무 건방졌어.’
 UC 데이비스는 1938년에 야구팀을 창단한 이후 고작 두 명의 메이저리거를 배출했을 뿐인 팀이었다.
 UCLA가 75명, UC 버클리가 61명, 심지어 디비전 2에 있는 샌디에이고마저 9명을 배출한 상황에서 UC 데이비스의 2명은 형편없는 숫자였다.
 딱히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하는 건 아니지만, 계획이 80% 정도만 이뤄져도 일단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을 자신은 있었다.
 UC 데이비스의 NCAA 팀, 애기스는 리크루팅과 관계없이 굴러 들어온 자신이라는 호박에 감사해야 할 것이었다.
 ‘음음, 아니지. 호박은 뭔가 어감이 좋지 않으니까 보석으로 할까? 굴러 들어온 보석.’
 매기스의 훈련을 지켜보고 나서 언제나처럼 기분이 좋아진 연우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트레이닝 센터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공을 만지고 던질 생각을 하니 안 그래도 좋았던 기분이 더 좋아졌다.
 NCAA 무대에서 존재감을 뽐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기분이 좋아진 이유 중 하나였다.
 “쟤는 오늘도 왔네? 도대체 뭐지?”
 “그러게······. 야구가 하고 싶은 건가? 우리 일반부원도 받잖아? 왜 안 들어오고 매일 저기서 구경만 하는 거지?”
 “몸 보니까 꾸준히 운동한 몸인데······. 만약 야구선수였으면 우리 팀 정도는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야! 우리가 아무리 약팀이어도 NCAA 디비전 1에 있는 팀이다. 우리끼리니까 약팀이라고 하는 거지, 고등학생 입장에서 보면 우리 학교 들어오는 것도 어려워.”
 반년 동안 하루가 멀다고 훈련장을 찾아와 거의 한 시간 정도 가만히 지켜보다 사라지는 이상한 신입생.
 애기스의 선수들도 이제 연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연우의 정체에 대한 추측들이 많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신이 아닌 이상 반년 뒤에 벌어질 일을 예상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 준비 완료
 
 ‘182cm. 돌아오기 전이랑 똑같아졌어.’
 반년 뒤, 1학년 학사 일정이 전부 끝났고, 2학년 학사 일정이 시작되기 전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연우의 신장은 182cm에 도달, 돌아오기 전의 신장을 따라잡은 상태였다.
 ‘아직 성장판이 열려 있어서 2cm에서 최대 5cm까지는 더 클 수 있다고 했으니까······. 185cm 근처까지는 갈 수 있겠네.’
 185cm까지 성장한다고 해도 여전히 메이저리그 투수 평균 신장과 비교하면 언더사이즈였지만, 은퇴를 결정했을 때와 비교하면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 수준이었다.
 사이즈로 인한 문제가 크게 줄어든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팔이 길다거나 하는 신체의 외형적인 장점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평균치에 근접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제는 슬슬 구속도 나오는 것 같고······. 그래도 이제 90마일은 나오니까.’
 키가 175cm를 넘어선 그 순간, 캐치볼부터 시작해 슬슬 투수로 활약하기 위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렇게 반년.
 모든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투구폼도 몸에 익기 시작했고, 구속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아담? 최고 구속이 94마일이었나?”
 “92마일. 정확히는 92.7마일. 반올림한 데다가 1마일을 더 붙였네? 다 기억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그러지 말아줄래?”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한 이상 혼자는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미국은 메이저리거들을 대상으로 하는 트레이닝 센터 외에도 사회인 야구를 하는 일반인들이나 아마추어 선수들을 위한 트레이닝 센터도 잘 갖춰진 나라였다.
 실내 연습장이 있는 트레이닝 센터는 많았고, 연우는 트레이닝 파트너까지 고용해 그곳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냥 기분이라도 좋으라고 94마일이라 해주면 좀 어때? 말 그대로 최고 구속일 뿐인데.”
 연우가 훈련에서 기록한 최고 구속은 92.7마일.
 km로 환산하면 149km였다.
 키도 182cm까지 자란 데다가 야구는 물론 스포츠 메디컬, 스포츠 사이언스 분야의 있는 지식, 없는 지식 다 동원한 트레이닝 커리큘럼, 투구폼까지 더했음에도 149km였다.
 어렸을 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빠른 볼에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최고 구속이 92.7마일, 평균 구속이 80마일 후반대, 140km 초반에서 형성된다는 건 역시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뭐가 그렇게 급해?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건 반년 좀 넘었다며? 반년 만에 그 정도면 더할 나위 없지. 안정적이면서 특이한 투구폼을 가지고 있으니까 구속 이상의 효과도 볼 수 있을 거야. 천천히 가라고, 천천히.”
 물론, 연우가 건드린 투구폼이 평범할 리 없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하체는 최대한 넓은 스트라이드로 다이내믹하게 움직이고, 부상 위험이 큰 상체는 최대한 간결하게 움직이면서 볼을 던지는 손을 최대한 감추는, 디셉션에 신경을 쏟는 투구폼이었다.
 독특하지만 자신의 신체를 정확히 파악한 뒤 이 투구폼 하나만을 위한 몸까지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연우에게는 최고의 폼이었다.
 타자의 눈에 볼을 던지는 오른손이 늦게 노출되고, 스트라이드와 릴리스 포인트를 최대한 앞으로 끌고 나오기 때문에 타자가 느끼는 체감 구속은 최소 1마일 이상 빠를 것이었다.
 “알아. 아는 데다가 급하지도 않아. 솔직히 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문제는 내 재능이 딱 예상한 그 정도라는 거지.”
 연우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자신이 가진 지식들을 최대한 활용해 몸과 투구폼 등 기반을 만들고 나중에 키까지 큰다면 강속구를 뿌릴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아직 성장이 끝난 것도 아니고, 피칭을 시작한 기간도 짧았기에 구속이 더 올라갈 여지는 있었지만, 기껏해야 2―3마일 정도일 것이었다.
 구속이 올라간다고 해도 최고 구속 90마일 중반, 평균 구속 90마일 근처라면 메이저리그에서는 정확히 평균 정도의 수준이었다.
 ‘KBO에서라면 강속구 투수로 군림할 수 있겠지만.’
 KBO는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40km대 초중반만 되어도 강속구 투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전히 메이저리그에만 집착하지 않는 연우였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1지망이 메이저리그인 건 당연한 일이라 아쉬워하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 구속에 그런 투구폼이면 1, 2마일 정도는 플러스해줘도 돼. 내가 비록 더블 A에서 한 시즌 뛰고 커리어가 끝난 무명 마이너리거 출신이지만, 이 정도 볼이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해. 중요한 건 세컨 피치, 써드 피치라고.”
 비록 무명이었고, 33라운드에 1,000번째가 훌쩍 넘은 순위로 지명되어 더블 A에서 한 시즌 뛴 게 전부인 마이너리거 출신이었지만, 훈련 파트너 아담 로트너도 어쨌든 프로 물을 먹었던 몸이었다.
 더블 A 정도 되면 패스트볼의 수준은 메이저리거와 비교해도 아주 큰 차이는 없었기 때문에 그가 인정할 정도면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래도······. 슬라이더는 괜찮지 않아?”
 투수라면 모두가 어깨, 팔꿈치에 민감하지만, 연우는 그중에서도 유별났다.
 일단 선수와 트레이너의 시선을 같이 가지고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부상 위험이 큰 슬라이더가 주 무기라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렇게까지 관리해가면서 던지는 슬라이더이기 때문에 연우 자신이 봐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맞아. 슬라이더 좋아. 지금 그대로라고 해도 이 정도 슬라이더면 Advanced A까지는 통할 거고, 더블 A에서는 조금 애매할 거야. 메이저리그 구단들에서 눈여겨보기엔 충분하지. 게다가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조금만 발전하면 슬라이더 정도는 바로 메이저리그에서 던져도 통할 것 같은데?”
 평균 정도까지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패스트볼과 평균보다 위를 기대할 수 있는 슬라이더.
 드래프트에서 구단으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무기들이었다.
 여기에 투구폼과 싱싱한 몸 상태를 더하면 순위가 문제일 뿐, 드래프트 지명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물론, NCAA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다는 게 전제인 건 당연했다.
 ‘써드 피치라······.’
 던질 수 있는 브레이킹볼은 슬라이더 외에도 있었다.
 슬라이더가 주 무기일 뿐, 한국에 있을 때도 커브와 체인지업을 던졌었다.
 슬라이더만큼 좋진 않았지만, 키가 크면서 손도 같이 큰 지금이라면 더 좋은 볼을 던질 가능성도 있었다.
 ‘커브는 슬라이더랑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느낌이니까 체인지업에 집중하는 쪽이 낫겠지.’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한다면 커브는 가끔 보여주는 용도로 던지는 게 나았다.
 슬라이더와 함께 결정구를 쓰기에는 체인지업 쪽이 더 어울렸다.
 “변형 패스트볼도 한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요즘에는 그게 대세니까. 사실, 그쪽은 나도 잘 몰라. 내가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는 마이너리그에서 변형 패스트볼을 던지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거든.”
 2010년대는 변형 패스트볼의 전성기라 불릴 정도로 커터와 투심으로 대표되는 변형 패스트볼이 득세한 시대였다.
 특히 연우처럼 포심 패스트볼의 구위가 특출 나지 못한 경우라면 더욱 중요했다.
 일찌감치 커리어를 끝냈던 연우는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는 볼이었다.
 “슬라이더에 집중하면서 체인지업도 가다듬고 커터까지 익혀야 한다니······. 구종 하나 익히는 것도 어려운데 투구폼에 습관까지 신경 쓰려면 또 얼마나 필요할까······.”
 포심 패스트볼과 같은 투구폼에서 나오는 브레이킹볼의 위력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구종을 배우면서 들키지 않기 위해 버릇까지 없애야 했기에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녔다.
 연우는 이제부터 그걸 해내야 했다.
 지금까지 야구선수로서 기본을 갖추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야구선수로서 경쟁력을 갖출 시간이었다.
 산 넘어 산이었다.
 “뭐, 그건 진짜 하늘에 맡겨야지. 수많은 특급 유망주들이 그게 안 돼서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했다는 거 알지? 뭐, 너야 지독한 연습벌레니까 알아서 잘하겠지만.”
 써드 피치만 갖춰지면 선발이 될 수 있는데,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있는데 그게 안 돼서 끝까지 마지막 한 발을 내딛지 못한 유망주들은 많았다.
 심지어 큰 기대를 받으며 프로에 진출한 특급 유망주들이 그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구종을 들키지 않기 위해 투구폼을 똑같게 하는 노력은 물론 자신에게 맞는 그립을 찾는 행운도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건 그렇고, 리. 너는 롱토스 트레이닝에 관심 없어?”
 은퇴한 아담은 전생의 연우와 마찬가지로 트레이너의 길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트레이닝 파트너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트레이닝 센터의 일도 배우는 중이었다.
 그런 아담은 최근, 그러니까 2000년대 후반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롱토스 트레이닝에 빠져 있었다.
 “나는 관심 없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모험적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연우는 롱토스 프로그램을 비롯한 하드한 트레이닝이 잘못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지금 연우가 있는 2000년대 후반은 작은 체구로 불꽃같은 볼을 던지며 사이영상을 휩쓴 팀 왓킨스를 시작으로 조금씩 롱토스 프로그램이 신뢰도를 얻어가던 시기였다.
 과거로 돌아오기 직전인 15년 후에도 롱토스 프로그램은 신봉자와 불신론자가 공존했다.
 ‘롱토스 트레이닝으로 크게 성공한 투수들이 많지만······. 대부분이 너무 불꽃같은 커리어를 보냈거든.’
 롱토스 트레이닝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선수는 메이저리그의 전설, 파이어볼러의 대명사와도 같은 네이슨 라이언이었다.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리그를 지배한 팀 왓킨스, 꾸준함의 대명사 돈 하랑, 폭포수 커브를 앞세워 센세이션을 일으킨 배리 자비어 등 롱토스 트레이닝으로 리그의 에이스가 된 투수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부흥했다.
 하지만 몇 년 뒤 미래에서 그 투수들 대다수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심각한 구속 저하에 이은 팔꿈치 및 어깨 부상으로 커리어를 접어야 했다.
 ‘롱토스 트레이닝에는 무지막지한 러닝과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포함되어 있지만······. 캐치볼은 재미있어도 다른 건 그렇지 않지.’
 그 선수들은 네이슨 라이언과 달리 재미없고 괴롭기만 한 러닝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소홀히 하고 롱 토스에만 의존했다는 특징이 있었지만, 네이슨 라이언과 똑같이 훈련한다고 해서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안 그래도 피지컬의 축복을 받지 못한 연우에게 그런 모험은 어울리지 않았다.
 “모험이라니······. 지금 롱토스 트레이닝으로 에이스가 된 투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일찌감치 준비하는 게 좋을걸? 지금 NCAA에서 가장 뜨거운 투수인 트로이 베다드나 데이브 바이슨도 롱토스로 성장한 선수들이라고.”
 연우보다 한 살 많은 대학 야구 최고의 에이스 중 한 명인 트로이 베다드, 연우와 동갑으로 NCAA에서 신입생 돌풍을 일으킨 데이브 바이슨은 롱토스로 성장했다고 주장하는 선수들이었다.
 이런 선수들이 끊임없이 나타났기 때문에 롱토스가 고민할 가치도 없는 야만스러운 훈련이라는 평가에서 토론할 만한 방식으로 입지가 좋아진 것이었다.
 ‘둘 다 부상으로 나가떨어지는 친구들이라고······. 뭐, 지금 말할 순 없는 내용이지만.’
 그리고 롱토스 트레이닝으로 전국구 특급 유망주로 성장했던 두 투수는 나란히 심각한 구속 저하로 마이너리그에서마저 부진했고, 나란히 손을 잡고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부활하긴 했지만, 아마추어 시절의 기대치에 비하면 아쉬운 감이 있었다.
 “뭐, 그건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고······. 어때? 2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팀에 들어가서 NCAA에 참가하려고 하는데.”
 90마일 가까이 나오는 평균 구속과 날카로운 슬라이더, 보여주는 수준이라도 던질 줄은 아는 커브에 체인지업.
 전력이 약한 UC 데이비스에서 등판 기회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게 연우의 판단이었다.
 드래프트 지명과 더 높은 성장을 위해서는 이제 슬슬 실전 등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내가 뛰던 시절보다 수준이 확 뛴 게 아니라면 네 볼이 통할 거야.”
 어쨌든 NCAA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메이저리그 구단에 드래프트 지명까지 받았던 전직 마이너리거에게 인정까지 받았다.
 연우의 NCAA 데뷔는 이제 정말로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좋아. 그러면 한 일주일만 쉴게. 며칠 전에 연락할 테니까 일주일 정도 어디 가서 푹 쉬다 와. 여행이라도 가던지, 아니면 날 잡고 공부라도 해.”
 이제 진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아 있었다.
 연우는 그 마지막 단계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었다.
 꼬였던 매듭을 풀기 위한 첫걸음을 떼기로 한 것이었다.
 
 ***
 
 ‘후우······. 한국인가······.’
 인천에 도착한 순간, 연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미국 유학 후 15년 동안 미국에서 살긴 했지만, 적어도 1년에 서너 차례 정도는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한국이 낯선 건 아니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이 목적인지라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 것뿐이었다.
 ‘화내시는 건 아니겠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할 마음이 생긴 이상, 아버지에게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고 말씀드리는 게 먼저였다.
 야구를 그만둘 때 아버지도 자신만큼이나 충격 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다시 야구선수로서 프로를 노리겠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팀에 합류해 NCAA 일정을 소화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말을 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냥 나 편하자고만 생각하면······. 누구보다 내가 야구선수가 되는 걸 바라셨던 분이니 오히려 좋아하실 수도 있어, 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겠지.’
 어찌 보면 연우보다 더 연우의 프로 진출을 바랐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수 복귀를 반겨줄 거라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야구선수가 되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성공하기를 바랄 아버지였고, 은퇴 후 2년 반이나 아무 말도 없다가 갑자기 선수로 복귀한다고 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진 못할 것이었다.
 ‘아버지 앞에서 시뮬레이션 피칭을 해서라도 걱정하지 않으시게 해드려야겠지.’
 일단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볼을 보여드릴 수만 있다면 인정받을 자신이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아버지의 훈련에 지쳐 꿈을 놓아버린 소년이 아니었다.
 꿈이 사라진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아는, 30대 중반의 정신연령을 보유한 스무 살의 청년이었다.
 은퇴를 번복한다는 게 쪽팔려서, 무서워서 망설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아무리 무서워도 다시 사는데도 또 한 번 꿈이 좌절되는 것보다 무섭지는 않겠지.’
 트레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서도 처절하게 노력했지만, 역시 가장 하고 싶었던 건 프로야구선수였다.
 기회가 없었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기적적인 기회가 다시 찾아왔는데 이 기회를 다시 한 번 놓친다면 평생 아쉬움 속에서 좌절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다.
 ‘자, 승부다. 어차피 야구를 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아버지와 함께 으쌰으쌰 하면서 가고 싶으니까.’
 아버지의 허락이 없다고 해도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목표가 바뀌진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충돌이 하나의 이유가 되어 은퇴를 결정한 만큼 이번만큼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마음만이라도 하나가 되어 함께 달리고 싶었다.
 ‘훈련 방식은 나랑 다르더라도 아버지의 브레이킹볼들은 진짜니까. 아버지가 알고 있는 그립 중에 한두 개만 나한테 맞는다고 해도 큰 도움이 되겠지.’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를 노릴 정도로 뛰어난 투수였던 이강진이 아버지라는 건 큰 장점이었다.
 마흔 가까이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구속이 줄고 자연스럽게 기교파 투수로 전환한 이강진이었기에 선수 생활 내내 수많은 구종의 그립을 실험하고 취사선택한 경험이 있었다.
 그 그립들을 전부 실험하다 보면 한두 개 정도의 그립은 건질 수 있을 터였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받쳐줄 세 번째 구종, 평범함 이상은 되지 못하는 패스트볼 때문에 사실상 제2의 주 무기가 되어줘야 할 구종이 필요한 연우에게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다.
 ‘성공하려면 하나의 목표로 두 개 정도는 얻어 가야 계산이 되지.’
 아버지와의 화해와 아버지로부터의 응원, 브레이킹볼의 그립까지.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어 갈 생각이었다.
 
 ***
 
 아버지를 만나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고 말하기까지 연우는 몇 번이나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숨을 골라야 했다.
 그만큼 긴장했고, 허락을 떠나서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야구선수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한 이유, 그동안의 생활, 현재 상태 등 아버지의 예상 질문과 그에 따른 대답을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했는지 셀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준비를 많이 했는데 말이지······.’
 그렇게나 시뮬레이션을 한 상황이지만, 아버지와 안방에 마주 앉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래도 30대 중반의 여유와 철저한 준비 덕분에 어느 정도 준비한 말들을 꺼내놓을 수 있었지만, 아직도 부분 부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연우는 그런 것들 상관없이 글러브를 끼고 실내 연습장 마운드 위에 서 있었다.
 ‘나, 참······. 역시 아버지라고 해야 하나. 나중에는 그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좀 부드러워지셨던 게 좀 안타까웠는데, 오랜만에 겪으니 이것도 피곤하네.’
 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입이 바싹 마를 정도로 긴장했던 연우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익숙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드러워져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무뚝뚝하면서도 거침없는 모습을 다시 마주하고 나니 긴장이 다 풀린 것은 물론 웃음마저 나오고 있었다.
 역시 아버지는 대하기 어려워도 지금의 이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글러브 가지고 왔지? 오늘이랑 내일은 푹 쉬고 모레 연습장으로 나와라.]
 연우가 야구선수로 복귀하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입을 꾹 다물고 듣고만 계시던 아버지는 한참 횡설수설 이야기한 연우에게 이 한마디만을 남기고 일어나셨다.
 연우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연우를 말리던 어머니의 말문이 먼저 막혔을 정도로 예상을 벗어난 반응이었다.
 ‘고작 일주일 들어온 건데 글러브랑 스파이크 안 가져왔으면 어떻게 하셨으려고······.’
 누가 뭐래도 아들이라 어느 정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예상 정도는 하고 온 연우였다.
 당연히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글러브와 스파이크 등 개인 장비들을 다 가지고 귀국했고, 오늘 최선의 상태에서 연습장 마운드에 설 수 있었다.
 “몸 다 풀었으면 던져봐라. 그래도 내 아들이라 보는 눈이 흐려질까 봐 스카우터 일하는 후배 한 명 데려왔으니 너무 신경은 쓰지 말고.”
 “안녕하세요? 선배님 아들이니까 말은 편하게 해도 되겠죠?”
 연우의 몸이 거의 다 풀릴 무렵 이강진이 들어왔다.
 이강진의 옆에는 카메라와 스피드건을 든 남자 한 명이 함께하고 있었다.
 프로 구단에서 스카우터로 일하고 있는 이강진의 후배였다.
 “어? 안승준 선배님 아니십니까?”
 “역시! 아는구나? 한국 야구판은 역시 좁단 말이야. 3년 전에 유학 간 후배님도 날 다 알아보고······.”
 “그게 어디 한국 야구판이 좁아서 그런 거겠습니까? 선배님께서 프로 무대에서 워낙 좋은 모습을 보여주셔서 그런 거지. 대한민국 야구선수 중에 선배님 얼굴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
 서울 로얄스 소속 스카우터인 안승준은 1군 무대에서 쏠쏠한 중견수 자원으로 10여 년을 활약한 선수 출신이었다.
 선수로서도 준수한 자원이었지만, 스카우터 전향 이후 관여한 드래프트마다 대박을 터뜨리며 로얄스 왕조 건설의 주역으로 활약 중인 뛰어난 스카우터였다.
 ‘녀석, 넉살이 꽤 좋아졌는데?’
 그리고 이강진은 그런 연우의 모습을 보면서 눈에 이채를 발했다.
 이강진이 기억하는 연우는 항상 어딘가 주눅이 들어 있고 투수로서 가진 많은 단점 때문에 자신감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대한민국 야구의 레전드이자 엄하게 지도하는 이강진과 연우 본인의 단점들 때문에라도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게 원래 연우의 성격이었다.
 야구를 그만두고 재능이 있는 공부를 시작하면서 원래 성격이 드러났고, 15년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것뿐이었다.
 ‘투수에게 저런 넉살은 필요하지. 여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그라운드 위에서 유일하게 혼자인 투수는 저런 무던함도 필요해.’
 승부욕과 전투 본능도 필요하지만, 넉살과 여유도 필요한 포지션이 투수였다.
 소심함보다는 대범함이, 열등감보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투수에게는 어울렸다.
 적어도 연우의 바뀐 성격은 이강진을 만족시켰다.
 “거기 둘. 수다는 나중에 떨고 일단 볼부터 던져봐. 승준이도 바쁜 친구니까 너무 잡아놓지 말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지금의 이 시뮬레이션 피칭을 가장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이강진이었다.
 오랜만에 마운드에서 볼을 던지는 아들의 모습을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이강진이었다.
 사실, 결과가 어떻든 이강진은 마운드 위에서 던지는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저 스피드건은 구속이 어떻게 나오려나······. 우리 트레이닝 센터에서 쓰는 것보다는 1마일 정도 후하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현재까지 연우가 기록한 최고 구속은 92.7마일, 정확히 149.3km 정도였다.
 트레이닝 센터에서 쓰는 스피드건보다 0.7km, 0.5마일만 더 나오면 최고 구속을 찍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150km를 넘길 수 있었다.
 전체적인 피지컬이 좋아지면서 예전과 비교하면 최고 구속 150km를 넘기는 유망주들이 꽤 늘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150km는 의미가 있는 숫자였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것 같고······. 기껏해야 패스트볼 20개, 브레이킹볼을 합쳐도 40개 이내에서 끊길 테니 전력투구도 가능해. 가능성은 있다.’
 아버지 앞에서 생애 첫 150km를 찍을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이었다.
 만약 여기서 150km를 찍는다면 하늘이 자신의 선수 생활을 축복해준다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열두 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도착한 한국이지만, 지난 이틀 동안 컨디션을 관리했기 때문에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자, 부탁한다.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 너도 뭔가를 좀 해봐.’
 심지어 연우는 야구공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자신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야구공도 나름대로 조금이나마 구속을 끌어올려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꼭 150km를 찍을 필요도 없었고, 야구선수를 목표로 내달릴 당위성만 보여주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아버지가 우상이었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2세 야구선수로서 꼭 아버지 앞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정도면 알아들었을 거라 믿는다!’
 지난 반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공들여 깎고 다듬은 투구폼이 연우의 몸으로 실현되었다.
 평균보다 훨씬 낮게 올라가지만, 훨씬 멀리 뻗어지는 다리, 그와 반대로 간결하게 돌아가는 어깨와 팔꿈치, 가릴 수 있을 때까지 오른손을 숨기는 디셉션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포인트를 앞으로 끌고 나오다가 잡아채듯 던지는 릴리스까지.
 전문가인 이강진과 안승준의 눈에도 심상치 않은 투구폼이었다.
 ―뻐―억!
 “백, 백오십!! 백오십 떴습니다!!”
 연우의 투구가 이루어진 순간, 이강진의 눈은 연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전설적인 투수답게 디셉션과 릴리스 포인트 등 투구폼에서부터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이어서 스피드건을 들고 있던 안승준의 입에서 150이라는 숫자가 나왔고, 이강진, 안승준의 시선은 연우에게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화끈한 쇼케이스였다.
 
 〈『에이스의 2세』 1-2권에 계속〉

댓글(2)

n4***************    
그래서 주인공이 하고싶은게 뭔데,. 뭐라는건지 대체
2019.01.17 17:52
바봉    
새로운 작품이 나올수록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게 보이는 이상한 작가.
2023.04.1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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