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모든 인류가 멸망하고 시작된 최후의 결전.
백건우는 전방에 자리 잡은 수많은 몬스터와 이 기나긴 악몽의 원흉, ‘절대자’를 바라보았다.
“제기랄!”
강하다. 너무도 강하다. 절대자는 상상 이상의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씁쓸하고 허무했다.
최강의 장비와 스킬, 그리고 드래곤에 버금가는 15서클 경지에 올랐는데!
할 수 있는 게 그저 바득바득 이를 가는 것뿐이라니!
“인간이여. 하등한 종족 주제에 제법 힘을 키웠구나. 15서클을 마스터하다니.”
“입 닥쳐!”
“그 노력을 높이 사 특별히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마.”
절대자가 조소와 함께 기다란 손가락을 펼치자 근방의 몬스터들이 백건우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앙! 퍼어엉!
백건우는 남은 마력을 짜내고 짜내 고위 마법을 미친 듯이 난사했다.
조잡한 마법으론 놈들을 잡을 수 없으니까. 지난 세월에서 똑똑히 깨달았으니까.
그렇게 한 놈 두 놈 쓰러뜨렸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잘 가라, 인간.”
어느 순간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인 백건우에게 절대자가 거대한 검을 쳐들었다.
차아악!
백건우는 실드를 최대로 발동했다. 화염 산맥에서 내내 두르고 다녔던 그것보다 열 배는 더 강하게.
하지만 허사였다.
“쿨럭!”
예리하고 강력한 마력이 섞인 마검에 이미 복부가 갈라져 피가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죽음이었다.
# 회귀
백건우는 눈을 떴다. 묵직한 추라도 달렸는지 눈꺼풀이 무거웠다.
죽음이란 이런 것일까?
씁쓸했다. 가뜩이나 분하고 허무한 죽음, 조금은 부드러웠으면 좋겠는데.
“꺄아아아악! 여기가 어디야?”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난 분명히 퇴근하고 있었는데!”
시끄러운 소음이었다. 하나같이 붕 뜨고 베일 듯 날카로웠다.
아마 한날한시에 같이 저승에 온 사람들이겠지.
갑작스러움이야 걷던 중에 교통사고 나서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백건우는 찬찬히 몸을 일으켰다. 눈꺼풀처럼 무겁기 짝이 없었다. 머리도 지끈거렸다. 가시가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여기가 저승이라고?’
사위로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위를 쳐다보니 저승과 전혀 안 어울리는 붉은 태양이 반짝였다.
이 상황,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꼭 어디서 본 것처럼. 아니, 직접 경험을 해본 것처럼.
의문이 물음표를 자아내는 순간, 눈앞에 너무나도 익숙한 알림이 떴다.
띠링!
[절대자의 세계, 라프테니아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백건우는 저도 모르게 뺨을 꼬집었다. 꿈을 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리어 또렷해질 뿐 알림은 계속됐다.
[라프테니아는 여러분에게 매우 익숙한 게임 시스템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부터 간단히 그 내용을 설명해드린 후······.]
진짜 라프테니아라면, 지난 20여 년 동안 살아온 라프테니아라면, 스킵 명령이 먹힐 것이다. 알림은 인터넷 창과 비슷해서 일종의 닫힘 버튼이 존재하니까.
백건우는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그 명령을 속삭였다.
‘스킵.’
[기본 설명은 초보자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도 스킵하시겠습니까?]
‘스킵해.’
[스킵합니다.]
대관절 무슨 일일까. 죽었는데. 분명 죽었는데 라프테니아 알림이 들리다니.
다시 뺨을 꼬집어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백건우는 여전히 못 미더운 얼굴로 상태창을 떠올렸다
그것마저 열린다면 정말······ ‘회귀’, 즉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칭호 : 첫발을 내딛은 자
이름 : 백건우
경력 : 1년 차
신장 : 184cm
체중 : 77kg
근력(51), 체력(47), 민첩(43)
‘이럴 수가.’
모든 스탯과 칭호, 그리고 20년이라 적혀 있었던 경력이 맨 처음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상태창이 켜진다는 것!
저승에서 라프테니아 시스템이 존재할 리 없으니 육신과 영혼이 저승이 아닌 과거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백건우는 냉철하게 현 상황을 직시했다.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다!’
어떻게 된 일이지? 하며 발을 동동 구를 필요가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면한 기회를 냅다 가져오면 그만이다.
좋은 일이니까. 절대자 놈에게 복수할 수 있게 됐으니까.
백건우의 손이 불끈 쥐어졌다.
‘빌어먹을 놈!’
정체불명의 존재, 절대자는 어느 날 게임 시스템이 접목된 이상 세계를 만든다.
라프테니아!
수많은 몬스터가 존재하는 그 땅에서 인간은 스탯과 스킬, 그리고 아이템으로 무장해 힘을 키워 나가야만 한다.
못 하면?
죽는다. 몬스터들에 의해 육신이 갈기갈기 찢긴다.
개죽음 당하기 싫으면 힘들고 역겨워도 참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아, 선택권은 물론 없다.
“라프테니아라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시발! 내일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고!”
“오빠랑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나 어떡해!”
보다시피 지구에 있는 인간들을 강제로 끌고 오는 거라서.
백건우는 가슴 속에 포효했다.
‘초절정의 마력을 소유했음에도 내 한계는 15서클이었다. 하지만 미리 다 알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마의 경지라는 16서클 이상도 가능하다.’
유일무이하게 드래곤을 도롱뇽이라 불렀던 백건우.
그의 손짓 한 번에 몬스터는 물론이요, 대형 길드 하나가 풍비박산 나기도 했다.
그 명성을 되찾을 때가 왔다.
아니, 그 명성보다 절대자와 다시 싸울 수 있음에 기뻤다.
백건우는 침착하게 기억을 더듬었다.
‘시작은 튜토리얼. 이곳은 초보자의 숲이다.’
2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사실 기억을 못 한다면 웃긴 일이다. 인생이 바뀌었는데 어찌 잊을까.
대한민국 서울.
고아로 태어나 줄곧 거기서 자란 백건우였다. 악덕 원장을 만나 가까스로 학교를 졸업하고 막일에 나갔다.
살아야 했으니까. 성공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21살이 되던 해 1월, 절대자로 인해 라프테니아에 넘어왔다.
백건우에게 라프테니아는 어쩌면 더 좋은 세상이었다. 돈, 빽, 명예 다 필요 없이 노력만 하면 무조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고아라는 신분도 전혀 방해가 안 됐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백건우는 고개를 흔들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의 시간은 떠올려 봤자 씁쓸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제 곧 미션이 나오겠지.’
초보자의 숲.
현 시점에서 길게는 10년도 먼저 라프테니아에 소환된 경력자들로부터 안전하게 초보자를 보호해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최대한 많은 스탯과 스킬, 그리고 아이템을 쌓아야만 바깥으로 나가기 편하다.
그냥 나가면?
나갈 순 있다. 대신 목적지가 저승이 되겠지.
어쨌든 초보자의 숲에선 여러 미션이 주어진다. 그걸 해결하면서 차근차근 채비를 갖춰야 한다.
‘차근차근할 필요까지는 없다.’
처음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뭐가 뭔지 몰라 허둥댈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20년간의 경험이 머릿속에 온전하다. 그걸 이용하면 미션 진행이 쉽다.
‘첫 미션이 뿔개 잡기였지.’
지구에서 급작스럽게 소환돼 잔뜩 혼란스러운 이곳. 곧 더 큰 혼란이 야기시킬 커다란 폭풍이 몰려온다.
백건우는 알림에 정신없을 사람들을 뒤로 하며 저만치 깃발 꽂힌 바위 쪽으로 걸어갔다.
알림이 설명을 끝내고 스타트! 를 외침과 동시에 저곳에 낡은 몽둥이가 생성된다. 막 라프테니아에 들어와 가진 장비라곤 오롯이 몸뚱이뿐인 초보자에게 그만한 무기도 없다.
“대체 절대자가 누구야! 왜 이 지랄 맞은 상황을 만든 거냐고!”
“지구에서 실종됐던 사람들······ 모두 여기 온 거였어?”
“난 못 해! 돌아가게 해줘!”
알림이 끝났는지 사람들이 저마다 울분을 쏟아놓는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뿔개와의 싸움을 준비하는 이는 채 열도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현재 이곳엔 몇 명이나 있는 걸까?
‘500이었지.’
딱 떨어지는 수라서 이 역시 기억이 난다. 점차 줄어 초보자의 숲을 나간 인원은 절반에 절반도 안 됐던 것 같은데.
백건우는 잠깐 생각했다.
‘이곳에서든 바깥에서든 사람들과 그다지 연을 쌓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쭉 혼자 나아갈 거니까.’
라프테니아는 일종의 서바이벌.
회귀 전, 그것에 몰린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친구였던 자를 죽이고 동료의 아이템을 빼앗으며 은인의 뒤통수를 치는 철저한 이기심!
안 그런 사람들도 많지만 대개가 그렇다.
직접 당하기도 한 터라 또 다시 그런 찝찝하고 짜증남을 겪기 싫은 백건우였다.
‘나왔군.’
그사이, 깃발 아래 낡은 몽둥이가 열다섯 개 만들어졌다.
사람이 500인데 겨우 열다섯 개?
어차피 뿔개는 서른 마리가량만 나타난다. 사냥하기엔 충분한 개수다.
백건우는 아이템을 들고 정보를 확인했다.
낡은 몽둥이
구분 : 무기구/둔기
등급 : F
제한 : 근력 30 이상
물리 공격력 : 10~15
마법 공격력 : -
효과 : 뿔개에 한해 크리티컬 확률 30% 증가
회귀 전에 썼던 장비를 생각하면 가히 쓰레기라 불러도 될 정도다.
하지만 만족해야 한다. 다시 시작하면서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바라는 건 욕심이다.
참고로 아이템은 최하 F급부터 E-, E, E+ 식으로 올라가 S급까지 이어진다.
S급은 인류 최강자 중 하나였던 백건우조차 착용한 적 없어 자세히 알지 못한다.
“크르릉!”
“크르르르릉!”
“크르르릉.”
몽둥이를 들기 무섭게 전방에서 뿔개 서른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가락만 까딱해도 죽였던 놈들이 지금은 조금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방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백건우는 마른 침 꼴깍 삼키며 찬찬히 발걸음을 뗐다.
“저게 뭐야!”
“개가 멧돼지만 해!”
“사람 살려!”
힘 약한 여자들과 왜소한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도망간다고 보는 게 옳겠지.
‘오히려 여기가 더 안전하다.’
초보자의 숲에서 알림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봉변하기 쉽다.
일례로 저기 저 나무 위로 올라간 사람은 곧 허리를 다칠 것이다.
왜냐하면 나무가 부러지거든.
우지끈!
“끄아아아악!”
“뭐야? 나무가 갑자기!”
“시발! 어쩌자는 거야!”
백건우는 그러거나 말거나 전방의 뿔개에게 집중했다.
크르릉거리는 아가리에서 질질 침을 흘리고 있었는데, 과연 식인 몬스터다웠다.
누구 하나 잡기라도 하면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겠지. 뼈만 앙상하게 남긴 채로 말이다.
퍼억!
백건우는 자신 있게 달려들어 가장 지척으로 다가온 뿔개를 후려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이 균형을 잃었다.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차 몽둥이를 휘둘러 빈사 상태를 만들어냈다.
[크리티컬이 터집니다!]
경쾌한 알림이 귓전에 축복을 가져다줬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공격해 놈을 쓰러뜨렸을 땐 연달아 세 개의 알림이 떴다.
[근력이 0.1 상승합니다!]
[체력이 0.1 상승합니다!]
[민첩이 0.1 상승합니다!]
라프테니아는 게임 시스템이 기반이지만, 레벨링의 개념보단 스탯 상승의 개념이다.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적게는 0.1에서 많게는 수십이 한 번에 오른다.
물론 아예 안 오르는 경우도 있고.
회귀 전에는 마력 스탯만 자그마치······ 구태여 생각할 필요 없겠지.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으니까.
백건우는 죽은 뿔개가 남긴 뿔 하나를 주워들었다.
뿔개의 뿔
구분 : 재료
등급 : F
효과 : 소지 시 뿔개에 한해 공격력+3%(중첩 불가)
가지고만 있어도 뿔개 상대하기가 용이해지는 아이템이다. 낡은 몽둥이와 합성도 가능하기에 용도도 다양하다.
미션 클리어가 우선이라 바로 사냥을 이어가려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잡으신 겁니까?”
“후려쳐서.”
“무서워서 다가가지도 못하겠습니다.”
“그럼 뒤져야지.”
백건우는 몽둥이 들고 벌벌 떠는 사내에게 일언반구 조언도 애처로운 눈빛도 던지지 않았다.
결국엔 넘어야 할 산이니까.
‘몽둥이를 들 판단력은 있지만, 정작 싸울 결단력은 없군.’
본인은 회귀 전에 안 그랬냐고? 사내와 똑같지 않았냐고?
달랐다.
대한민국에서 갖은 고생이란 고생은 다한 터라 시작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절대자를 쓰러뜨리면 라프테니아의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알림의 그 한마디가 결단력을 잡아당겼거든.
백건우는 사냥을 속개했다.
퍼억! 퍼억! 퍼억!
뿔개의 공격은 단순하다. 뿔만 믿고 무작정 들이대거나 물어뜯는 게 전부다. 그래서 요리조리 피하며 타이밍 맞춰 몽둥이만 휘두르면 치는 족족 한 놈씩 나가떨어진다.
“저사람 봐!”
“멧돼지 같은 놈들이 마구 쓰러지잖아?”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삽시간에 사체가 쌓였다. 의기양양하게 달려들던 놈들의 자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좋았어.’
물론 백건우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닥치는 대로 때려잡아 뿔도 세 개나 모았다.
[근력이 0.5 상승합니다!]
연속된 사냥 덕분에 스탯 상승량도 컸다. 활약에 비례하는지라 첫 놈을 잡았을 때보다 무려 다섯 배나 많이 올랐다.
백건우는 옅은 미소와 함께 주위를 둘러봤다.
퍼억! 퍼억!
자신의 사냥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정신 차린 몇몇이 뿔개를 상대하고 있었다. 어깻죽지에서 콸콸 피 흘리면서도 몽둥이를 놓치지 않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일 뿐.
대게는 먼발치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좀처럼 나설 기미가 안 보였다.
‘계속 그러고 있어라.’
격전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얻을 스탯이나 아이템이 적어지는 법이다. 라프테니아는 철저히 사냥꾼 위주로 돌아가니까.
그럴 바에야 아예 죄다 죽이고 나 홀로 다 삼키면 더 좋지 않겠느냐고?
무차별한 살인은 당장의 이득엔 좋아도 차후 억울한 영혼을 남기게 된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스킬 중에 ‘영혼암살자’라는 게 있다. 죽어도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희귀한 힘이다.
뭐, 이제 막 라프테니아에 들어온 이들이 어찌 그 스킬을 가지고 있겠느냐만 사실은 다른 이유도 있다.
혼자서는 이 많은 뿔개를 다 상대할 수 없다. 맞아주는 인간 방패가 있어야 마음 놓고 몽둥이를 휘두른다.
백건우는 눈을 부릅떴다.
‘매 미션 최고 활약자에게는 보상이 주어진다.’
빠르게 정진하기 위해선 더 많은 뿔개를 잡아야 한다.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이걸로 족했다.
# 경험의 가치
20분 후.
전장이 붉게 물들었다. 산을 이룬 죽은 뿔개의 사체가 혈해를 자아냈다.
‘후우.’
백건우는 내내 치켜들고 있던 몽둥이를 그제야 내려놨다.
숨이 턱 막혀 왔다. 온몸의 힘을 모두 소진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성취감이 워낙 커 이 정도 고됨이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빙그레 웃으며 상태창을 여는 백건우였다.
칭호 : 첫발을 내딛은 자
이름 : 백건우
경력 : 1년 차
신장 : 184cm
체중 : 77kg
근력(53.1), 체력(49), 민첩(43.9)
근력과 체력, 민첩을 모두 더해 도합 5!
홀로 스물한 마리나 잡은 덕분에 스탯 상승이 가팔랐다.
회귀 전과 비교하면 대박 그 자체의 결과지만 한 가지가 살짝 아쉬웠다.
다른 스탯을 아무 것도 개방하지 못했다. 맷집 같은 거라도 하나 나왔어야 됐는데.
아, 참고로 라프테니아에선 전투나 약초 등으로 스탯 개방이 가능하다.
많이 맞으면 맷집.
몬스터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면 살기.
점프력을 높이면 도약.
이런 식이다. 앞서 말했듯 약초 등을 흡입함으로써 만들어낼 수도 있고.
[첫 번째 미션이 종료되었습니다. 곧 활약상을 발표합니다.]
그사이 알림이 사냥 결과를 들고 나왔다. 최고 활약자가 기정사실화된 상태라 백건우는 한없이 여유로웠다.
“저 사람 혼자 대체 몇 마릴 잡은 거야?”
“열댓 마리가 넘는 거 같은데?”
“열댓 마리가 뭐야, 스무 마리도 넘어.”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모두 알림보다 백건우의 주변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혀 빼물고 죽어있는 뿔개들.
어떻게 그토록 침착하게 몽둥이질을 할 수 있었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간신히 한 마리를 잡은 한 남자가 조심스레 백건우에게 다가갔다.
“저기 저······.”
“예.”
“처음 들어오신 거 맞습니까? 듣자 하니 여기 라프테니아엔 최대 10년 차도 있다고 하던데.”
20년 차.
회귀 전, 절대자에게 목숨을 잃을 당시 상태창이 가리키던 경력의 숫자였다.
처음 들어왔단 말은 그래서 어불성설과 다름없다. 잔뼈 제대로 굵은 경력자면 경력자지.
하나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회귀하고 나서는 처음이지 않은가.
백건우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똑같은 입장입니다.”
“그러시군요. 워낙 노련미가 있어 보이셔서.”
“죽을 위기인데 노련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억지로라도 이 악물어야지요.”
남자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역시 초장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뒷걸음쳤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아예 내뺀 이들보다는 낫다. 어쨌든 전투를 했음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1위 백건우 : 21마리]
[2위 송광식 : 2마리]
[2위 문대호 : 2마리]
대화하는 사이 결과가 떴다.
압도적이었다. 1위와 공동 2등간의 차이에 무려 19마리의 뿔개가 있었다.
[1위에게는 낡은 가죽 갑옷과 밀빵 10개가 공동 2위에게는 밀빵 3개가 주어집니다.]
백건우는 살짝 놀랐다.
회귀 전에는 이 정도의 거한 보상이 아니었는데. 당시, 3마리로 공동 1위에 올라 밀빵 10개를 받은 게 전부였다.
차등 보상이야 이해가 가지만 낡은 가죽 갑옷은 왜?
‘혹시?’
1위와 2위라는 말을 쓰기 애매할 정도로 잡은 머릿수의 차이가 크다. 아마 라프테니아 시스템이 그 부분을 감안해 보상 수준을 높인 게 분명하다.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된다. 낡은 가죽 갑옷은 초보자의 숲에서 나갈 때나 얻을 수 있는 나름 고급 아이템이다.
백건우는 아무쪼록 좋았다. 귀중한 방어구를 얻었으니까.
낡은 가죽 갑옷
구분 : 방어구/갑옷
등급 : F
제한 : 근력 30 이상
물리 방어력 : 15
마법 방어력 : -
효과 : 체력+5%
만족스러웠다.
몬스터의 물리적인 타격을 15나 방어할 수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체력이 5퍼센트나 추가된다.
라프테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목숨!
늘어난 체력만큼 죽을 확률이 적어지고 사냥하기도 편해질 것이다.
밀빵은 달리 볼 게 없었다. 포만감을 채워주는 게 전부였다. 귀한 음식은 스탯 개방과 더불어 스킬이나 특수 효과를 터뜨려주기도 하는데, 여기서 그런 걸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아, 그렇지.’
낡은 가죽 갑옷을 착용하던 백건우는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손가락을 부딪쳤다.
곧 이어 나타날 두 번째 미션 몬스터, 흑광우.
놈이 떨어뜨리는 살가죽과 이 갑옷을 합성하면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가면서 물리 방어력과 효과과 높아진다.
물론 회귀 전에는 알지 못했다. 초보자가 정보를 알 수도 알려줄 사람도 없으니까.
백건우는 이참에 뿔개의 뿔과 낡은 몽둥이도 합성하기로 했다.
‘끈끈이 풀이 어디 있더라.’
재료를 찾아나서는 백건우의 뒤로 슬슬 진풍경이 벌어졌다. 여전히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사이로 목소리 높이는 이가 나왔다.
“알림에게 별 지랄을 다 떨어봤습니다! 하지만 돌아갈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여기서 살아가야 할 운명입니다! 함께합시다! 그리고 나아갑시다! 절대자라는 빌어먹을 놈에게!”
“우,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10년 전에 들어와 아직도 생존한 사람이 있다는데. 오히려 지구에서보다 떵떵거리며 살기도 한답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옳은 선택이다. 고개 수그린 채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볼 바에야 저렇게 결심하고 어깨 펴는 게 낫다.
절대자를 죽이겠다는 포부도 아주 좋고.
떵떵거리며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소리 역시 맞긴 맞는데, 다만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
절대자가 20년 후 인류를 몰살시킨다는 것.
이유는 단 하나였다.
‘유희’를 이 이상 지속하기엔 너무나도 따분하고 지루해서.
자기 재밌자고 시작한 일에 온갖 사람들 다 끌어들이고서 그 재미가 줄어들었다고 죽여 버리다니.
백건우는 거기에 분노가 치밀었다. 피땀 흘려 일군 1년 농사를 멧돼지 한 마리가 하루아침에 헤집어 놓은 격이랄까.
- 잘 가라, 인간.
결국엔 죽어버렸지만 회귀라는 천운 덕분에 다시 복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회가 헛되지 않게 잘 살려야 하리라.
‘회귀 전에도 저랬었지.’
어쨌든 백건우는 저 남자, 방금 전 첫 번째 미션에서 공동 2위에 오른 저 남자를 기억한다.
사람들을 끌어모아 무리를 형성하는 저 상황 역시도.
‘모두 다 뒤졌었지.’
인상 깊게 남아서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백건우는 신경 끄고 끈끈이 풀을 찾는 것에 열중했다. 저러거나 말거나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문대호가 그런 백건우에게도 손을 뻗었다.
“백건우 씨 되시죠?”
“예.”
“뿔개 잡으시는 거 잘 보았습니다. 실력이 상당하시던데······ 현실에서 검술이라도 익히신 겁니까?”
“아니요. 그냥 평범한 남자였습니다.”
“하하. 그럼 무사의 기질을 타고 나셨나 봅니다.”
무뚝뚝한 대답해도 문대호는 연신 꼬리를 살랑거렸다. 백건우에게 붙어야 차후가 편함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저기 저 뭐 하나 여쭤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열댓 명 정도로 무리를 만들까 하는데 백건우 씨도 들어올 의향 없으신지?”
“없습니다.”
역시나 짧게 대답하며 발을 떼려는 백건우를 문대호가 바로 말을 이으며 붙잡았다.
“혹 따로 만드시려는 겁니까?”
“예.”
“예? 아아, 그럼 이 리더의 자리를 지금 양도······.”
백건우는 뚝 말을 잘랐다.
“됐습니다. 아직은 혼자가 편해서.”
“아, 알겠습니다.”
문대호의 실체를 잘 안다. 겉으론 핥핥 갖은 아부란 아부를 다 떨지만, 속에는 시꺼먼 마수를 품고 있는 놈이다.
자기 목숨 살리겠다고 동료의 등을 떠미는 당시의 상황들!
아까도 말했듯 잊을 수 없는 백건우였다.
라프테니아에선 본인 목숨이 가장 소중한데?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그럼 애당초 동료를 사귀지 말았어야지.
게다가 리더로 있지 않았는가. 그 자리는 이끌고 보호하는 역할이지 절대 등한시하는 역할이 아니다.
‘여기 있군.’
문대호를 떠나 잡초 무성한 곳에 발을 디딘 백건우는 익숙한 풀을 발견했다.
보기만 해도 끈적끈적한 이것이 뿔개의 뿔과 결합돼 몽둥이를 변화시켜줄 것이다.
[합성 스킬이 개방됩니다.]
끈끈이 풀을 한 움큼 뽑아 뿔개의 뿔과 섞은 후, 낡은 몽둥이에 비비자 경쾌한 알림이 울렸다.
레벨링이 없는 터라 스킬도 스탯과 마찬가지로 행동이나 약초 등에 의해 개방되는 것이다.
[합성을 시작합니다.]
합성이라고 해서 대장장이가 대검을 만드는 것처럼 진짜 제조가 되는 건 아니다.
일종의 레시피.
서로 섞어주기만 하면 합성 스킬에 의해 알아서 완성품이 나온다.
2분쯤 손을 비비자 낡은 몽둥이 주위로 빛이 번쩍였다.
띠링!
[가시 몽둥이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가시 몽둥이
구분 : 무기구/둔기
등급 : E-
제한 : 근력 50 이상
물리 공격력 : 30~35
마법 공격력 : -
효과 : 초보자의 숲 내 공격력·크리티컬+10%
회귀 전에는 초보자의 숲을 나가서도 한참 후에나 착용했었는데. 어떻게든 합성법을 따내려 노력했었는데.
백건우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이거면 거기도 갈 수 있겠지.’
초보자의 숲에서 최종 미션을 끝내고 밖으로 나갈 때, 아슬아슬한 절벽 구름다리 하나를 지난다.
그곳 한쪽에 존재하는 E급 마력석과 정체불명의 약초!
백건우는 그걸 얻을 생각이었다.
마의 경지인 16서클에 도달, 나아가 그 이상을 바라보기 위해선 초장부터 빠른 성장이 필요하니까.
회귀 전에는?
어차피 몰랐지만 알았어도 못 갔다. 두 아이템을 지키는 몬스터가 너무 강력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초보자들이 절대 잡을 수 없는 수준!
‘박살내주마.’
백건우는 가시 몽둥이를 어깨에 들쳐 메고 소환 장소인 둥그런 공터로 걸어갔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모두 그에게 쏠렸다.
“저기 봐봐. 몽둥이가 바뀌었어.”
“아까 막 뭘 문지르던데?”
“조합? 합성? 장비 업그레이드라도 했다는 건가? 진짜 원래 있던 사람 아냐?”
“어떤 남자가 물어봤었잖아. 같은 입장이랬어.”
정보.
라프테니아에서 나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아는 게 많아야 그만큼 사냥이나 관계에서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태여 합성법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자칫 미션 순위가 떨어질 수도 있고.
사실 알려준들 딱히 걱정되진 않는다. 저들이 가시 몽둥이를 들어봤자 뒤꽁무니나 밟지 않겠는가.
백건우에게는 20년간의 경험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덧붙여.
‘합성에 필요한 뿔개의 뿔은 총 여덟 개. 애당초 합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백건우는 소란스러움과 고요함이 오고가는 사람들을 지나 널따란 바위 앞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초보자의 숲은 휴식 싸움이다. 몬스터가 불시에 들이닥치기 때문에 미리 체력을 보충해놔야 한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띠링!
[생존자 375명. 다음 미션을 진행하겠습니다.]
갑작스런 알림이었지만, 초장과 비교해 사람들의 반응이 사뭇 달랐다. 놀라되 낡은 몽둥이나 돌멩이를 꼬나 쥐었다.
적응했단 증거였다.
동시에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치겠단 뜻이기도 하고.
[두 번째 미션. 흑광우 50마리를 처치하십시오.]
백건우는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빙빙 어깨를 돌리고 낡은 가죽 갑옷을 챙겨 입으며 흑광우 맞을 준비에 임했다.
‘복부만 노리면 된다.’
직립 보행하는 시꺼먼 미친 소로 무식하게 들이받는 게 전부인 놈이다. 살살 피하면서 약점인 복부만 공략하면 쉽게 사냥된다.
“음머어어어!”
“음머어어!”
“음머어어어어어!”
생성됐는지 원래부터 있었는지 별안간 나타난 50마리의 흑광우가 투우의 그것처럼 눈을 불태우며 미친 듯이 몰려왔다.
쿠웅! 쿠웅! 쿠웅!
질질 침을 흘리는 게 뿔개와 마찬가지로 인육에 벌써부터 심취해 있었다.
‘몬스터 주제에 감히 인간을.’
백건우는 한껏 분노를 표하며 앞장서서 놈들과 맞섰다.
싸움은 선공이 반.
피를 깎아놓고 시작하면 그만큼 사냥이 쉬워지게 돼 있다. 물론 백건우이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퍼억! 퍼억!
“음머어어어!”
“어딜 도망가!”
가시 몽둥이의 위력은 실로 놀라웠다. 뿔개도 최소 네다섯 대는 때려야 했는데, 단 두 대로 아작을 냈다.
몬스터가 강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한 일이겠지.
띠링!
[근력이 0.2 상승합니다!]
[‘살기’ 스탯이 개방됩니다!]
다섯 마리쯤 때려눕혔을 때, 바라고 바라던 새로운 스탯이 열렸다.
살기!
시선과 몸에서 새어 나오는 무언의 기운으로 몬스터를 두려움에 빠뜨린다.
높으면 높을수록 잔챙이들 처리가 쉬워져 앞으로 두고두고 활용 가치가 높다.
백건우는 나직이 파이팅을 외치며 계속해서 사냥에 돌입했다.
아니, 사냥이라기보다 학살이었다.
# 중요하지 않은 관계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흑광우가 ‘두려움’ 상태에 빠집니다!]
[35킬째를 달성합니다!]
백건우는 숨 쉬는 것을 제외한 모든 힘을 흑광우 잡는 데 사용했다. 그 정도로 쉴 새 없이 가시 몽둥이를 휘둘렀다.
흘린 땀과 노력은 항상 빛을 발하는 법이라고, 알림이 연달아 뜨기 시작했다.
[모든 스탯이 0.7 상승합니다!]
초보자 시절엔 좀처럼 볼 수 없다는 올 스탯 플러스를 경험했고, 마지막 남은 흑광우를 죽이자 귀한 비보까지 얻었다.
[누구도 당신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현재까지 초보자의 숲 최고의 이용자입니다!]
[‘정신’ 스탯이 개방됩니다!]
[‘난타’ 스킬이 개방됩니다!]
[‘흑광우 척살자’ 칭호를 얻었습니다!]
백건우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스탯에 스킬로도 모자라 칭호까지 한 번에 얻다니!
흔치 않은 일이었다. 회귀 전에 몇 번 경험해보긴 했지만, 현재 초보자임을 감안하면 불가능이라고 해도 좋았다.
백건우는 온몸에 튀긴 흑광우의 피를 탈탈 털어내며 상태창부터 확인했다.
칭호 : 첫발을 내딛은 자
이름 : 백건우
경력 : 1년 차
신장 : 184cm
체중 : 77kg
근력(55.2), 체력(54), 민첩(47.3)
살기(42.8), 정신(45.7)
‘오케이. 필요 스탯들만 딱딱 나오고 있어.’
정신은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 주는 기본 스탯들과 달리 살기처럼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다.
요컨대 체력이나 스테미나가 극한까지 떨어져도 정신이 받쳐주면 전투력이 유지가 되는 식이다.
회귀 전에 팔이 잘리고 허벅다리가 으깨진 적이 있었는데, 정신 덕에 꿋꿋이 버텨냈다.
결과는?
그 몬스터를 묵사발 냈다. 당한 걸 배로 갚아주면서.
치료나 버프 마법도 써서 온전히 정신의 도움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근본적인 영향은 그쪽에 있었다.
그때 죽었으면 아마 회귀도 못 했을지 모른다.
‘얼른얼른 개방시켜야 돼.’
기본 스탯들이 무섭게 올라가고 있다. 체력의 경우, 무려 7이나 올랐다.
이런 상승세라면 각각의 스탯이 100을 넘기는 건 시간문제다.
추가 스탯이 그래서 시급하다. 막 개방된 것은 최초 수치, 즉 이용자의 맨 처음 힘에 비례한 ‘30~50’ 정도로 정해지기 때문에 초장에 많이 따놔야 한다.
괜찮다고 무시했다간 스탯 불균형이 일어나고 말겠지.
참고로 ‘이용자’는 라프테니아에 소환된 인간을 일컫는 일종의 지칭어다. RPG게임의 ‘유저’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백건우는 상태창을 닫고 스킬창으로 넘어갔다.
난타
구분 : 발동형
속성 : 무(無)
제한 : 체력 30% 이상
물리 공격력 : 20~25
물리 방어력 : -
효과 : -
체력을 일정량 떨어뜨리며 상대를 무차별적으로 난타한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상승한다.
알고 있는 스킬이었다.
무투가나 웨이브형 전사들이 주로 쓰는 것인데, 아쉽게도 백건우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마법사에게 필요한 건 물리 공격력보단 마법 공격력이니까.
‘초보자의 숲에선 유용하게 쓸 수 있다.’
20년간의 경험이든 뭐든 간에 그 절벽에서 E급 마력석과 약초를 얻기 전까지는 평범한 이용자에 불과하다.
마법에 마자도 쓰지 못하기에 오히려 난타라도 가지고 있는 편이 낫다.
백건우는 마지막으로 칭호를 살펴봤다.
흑광우 척살자
구분 : 칭호
등급 : E
제한 : 올 스탯 200 이상
효과 : 공격 속도+20%
초보자의 숲 두 번째 미션에서 흑광우를 30마리 이상 잡아낸 이용자에게 지급되는 칭호다.
E이라는 등급에 한 번 놀라고 20퍼센트라는 공격 속도 향상에 두 번 놀랐다.
세상에!
회귀 전, 초보자의 숲에선 흑광우 척살자만 한 칭호가 없다는 어느 이용자의 말이 과연 사실이었다.
백건우는 핸드폰 메모리 같이 생긴 그 번쩍거리는 것을 이마에 갖다 댔다.
쓰잘머리 없는 첫발을 내딛은 자 칭호가 빠지며 흑광우 척살자 칭호가 새롭게 드리웠다.
왠지 모르게 불끈불끈 힘이 솟았다. 기분 탓이겠지만 마냥 기뻤다.
그때.
[두 번째 미션이 종료되었습니다.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1위 백건우 : 36마리]
[2위 문대호 : 5마리]
[3위 박경식 : 4마리]
뿔개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나 압도적인 결과였다. 2위와 3위는 백건우의 발끝조차 밟지 못했다.
당연히 보상에도 차이가 있었다.
[1위 보상 : 침낭, 라이트, 보호 실드]
[2위 보상 : 침낭, 라이트]
[3위 보상 : 침낭]
언뜻 보면 이런 소리가 나올 것이다.
겨우?
하나 백건우의 얼굴은 방금 전 칭호와 스킬을 얻었을 때만큼 상기되어 있었다.
‘침낭과 라이트는 어쩌면 장비보다 더 귀중한 아이템이다. 편안한 잠자리만큼 체력이 비축되는 방법도 없거든.’
그리고 보호 실드.
야간에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져도 몬스터로부터 육신을 지켜준다. 강력한 마력으로 이뤄진 실드는 이쪽 몬스터들 따위에게 절대 깨지지 않으니까.
[남은 생존자 195명. 다음 미션은 내일 진행됩니다.]
초보자의 숲에서 치러야 할 미션은 총 열 개다. 개중 겨우 두 개가 끝났을 뿐인데 생존자가 벌써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백건우는 인벤토리에 들어온 보상품을 뒤로 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두 부류의 사체들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다.
하나는 그가 죽인 흑광우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발악하다 떠난 이용자들의 것이었다.
전투 내내 후자를 캐치하지 못했는데,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고 나름 이유가 있었다.
라프테니아에서 죽은 이용자는 사체를 남기지 않는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 연기처럼 화한다.
바로 지금처럼.
사라락!
모락모락 피비린내를 풍기던 이용자들의 사체가 먼저 간 이용자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끝없이.
차 한 잔 마실 시간쯤 지나자 공간엔 흑광우의 사체만 남았다.
백건우는 그래도 같은 인간이란 생각에 잠깐 명복을 빌어주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흑광우의 가죽이 15개 쌓여 있었다. 이것만 보면 잡템 중의 잡템이지만, 낡은 가죽 갑옷과 더해지면 엄청난 효과를 가져다주리라.
[합성을 시작합니다.]
재료는 가시 몽둥이와 같았다. 끈끈이 풀과 흑광우의 가죽을 섞은 후 낡은 가죽 갑옷에 비비면 오케이였다.
그렇게 2분여.
띠링!
[흑광우 갑옷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흑광우 갑옷
구분 : 방어구/갑옷
등급 : E-
제한 : 근력 50 이상
물리 방어력 : 30~35
마법 방어력 : -
효과 : 회피율+5%
회귀 전에 이 갑옷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땀 흘렸던가. 초보자의 숲을 나와 족히 사흘 밤낮을 고생했다.
그때는 가시 몽둥이가 없었고 전투 기술도 거의 전무해서 쉽게 잡기 힘들었거든.
백건우는 아기 달래듯 스윽 어루만지다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착용한 채 전장을 날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나 몬스터도 없는데 굳이 그러는 건 체력 낭비였다.
갑옷보다야 평상복이 가볍기도 하고.
장시간 전투하느라 뻐근해진 몸을 좀 풀며 밀빵 두어 개를 꺼내 씹는데, 묘령의 여자가 다가왔다.
‘숨어 있었군.’
몸이 깨끗하다. 상처 하나 없다. 두 번째 미션까지 끝났는데 이렇다는 건 무조건 어딘가에 빠져 있었단 뜻이다.
욕하고 싶진 않다. 도망도 기술이고 목숨을 연명했다는 자체에 의의가 있는 거니까.
“저, 백건우 씨?”
“예.”
딸기 박힌 백설기.
그 표현에 딱 어울렸다. 옅은 눈 화장에 촉촉한 입술, 그리고 짧은 바지와 민소매 사이로 드러나는 속살이 그러했다.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건 회귀 전에 언뜻 봤던 기억 때문이겠지.
“잠깐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예, 말씀하세요.”
용건이나 꺼낼 것이지 덥다면서 민소매를 펄럭거렸다.
마른 몸매와 달리 그쪽은 꽤나 컸다. 실한 열매 두 개 같았다.
하지만 백건우의 시선은 전혀 흔들림 없었다. 여자야 회귀 전에 얼마든지 품어봤다.
그리고 이 정도 교태에 넘어갈 정신력이었으면 15서클이라는 경지도 못 밟았다.
마법사에게 냉철함은 필수니까.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해서 마법을 발동할 수 있으니까.
‘바라는 게 있는 눈치인데.’
노골적인 자세를 일단은 지켜보는 백건우였다.
여자가 이번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너무 멋졌어요, 백건우 씨. 보는 내내 얼마나 감탄했던지. 아, 그 가시 박힌 몽둥이는 직접 만드신 거죠? 미션 보상은 그냥 몽둥이였던 것 같은데.”
“저기요.”
“네.”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여자에게 백건우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
“용건이나 말하세요.”
“예? 아, 하하. 그럴까요?”
하면서 다시 민소매를 만지작만지작, 숨소리는 하아악, 은근슬쩍 다리도 벌렸다.
노골적이란 표현도 모자랐다. 그 이상의 유혹이었다.
“저 문대호라는 남자는 너무 지시적이에요. 본인이 힘 좀 쓴다고 다른 사람들을 괄시하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같이 움직이시는 게 어때요?”
“파티가 되자?”
“네! 백건우 씨께서 전투를 맡아주시면 저는 이것저것 뒤치다꺼리를 할게요!”
라프테니아에서 생존이 어려운 이유.
허구한 날 목숨을 내놓고 몬스터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만 아니라면야 다른 일은 쉽다.
안마를 2시간 하든 벽돌을 2백 개 나르든 적어도 목숨은 안전하지 않은가.
백건우는 거북했다.
이 여자, 지금 순 날강도 짓거리를 하겠단 뜻이다. 가만히 앉아 떨어지는 떡고물만 주워 먹으려고.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보았는지 여자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풍만한 가슴이 위태롭게 시야에 들어왔고 허연 허벅다리가 더욱 더 입을 벌렸다.
“조건 하나 걸지.”
“네! 말만 하세요!”
“내가 싸울 때 앞에서 방패막이가 돼라.”
여자의 동공이 흔들렸다.
“뭐, 뭐라구요?”
“못 하면 사라져.”
“네, 네?”
“다들 싸우느라 정신없었을 때 혼자 숨었었잖아? 누가 더 매몰찬 거겠어?”
백건우는 은연중에 하대를 하고 있었다. 인간 같지 않은 인간에게 존칭할 필요를 못 느꼈으니깐.
“그, 그건!”
“나 혼자 살겠다······ 좋지, 그거. 여기선 그게 제일 올바른 판단이거든. 근데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파티 맺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자기 목숨 위험해지면 동료를 버리고 튈 게 뻔한데.”
“아, 아니에요! 전!”
“됐고, 가서 풀이라도 좀 뜯어. 제아무리 숨어봤자 허기까지 피할 순 없으니까.”
백건우는 딱딱하게 늘어놓고선 자리를 떴다.
뒤에서 뭐라 중얼거리는데 그냥 한 귀로 흘렸다. 들어봤자 개소리일 테니까.
“자는 사이 몬스터들이 오면 어쩌지?”
“그럼 가는 거지.”
“어딜 가?”
“저승.”
공터에선 이용자들이 한바탕 걱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떨어진 체력과 쌓인 피로를 위해선 잠을 자야 하긴 자야 하는데, 혹시 모를 기습에 몸을 떨었다.
“여러분!”
그런 이용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굵직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흑광우 미션에서 2위를 차지한 문대호였다.
“이대론 다 죽습니다! 10인 1개조로 보초를 섭시다!”
“돌아가면서 경계를 서자 이건가요?”
“예! 피곤해도 잠은 편하게 잘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다.
남은 생존자 약 200여 명. 최대 20개조가 나올 터, 밤사이 조금씩만 고생하면 나머지 시간은 달콤한 단잠이 될 테지.
그런데 백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보초는 개뿔이. 다들 도망치기 바빴지.’
익일 새벽, 붉은 하이에나 떼가 기습을 해온다. 열댓 마리뿐이지만 워낙 날쌔고 빨라 초보자들이 상대하기 버겁다.
각설하고, 지금 문대호가 내는 의견은 백건우가 회귀 전에 이미 냈던 것이다.
힘을 모아 몬스터로부터 육신을 보호하자고.
“버려! 필요 없어!”
“그래! 저 사람들을 내주면 우린 안전할 거야! 배부른 짐승은 아가릴 벌리지 않잖아!”
“그게 낫겠군!”
얼마나 기가 찼던지.
도원결의라도 한 것처럼 행동해 놓고서는 정작 붉은 하이에나가 나타나자 뒤통수를 쳤다.
백건우는 조를 짜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서 신경 끄고 한쪽에 침낭을 꺼냈다.
어느샌가 무겁게 내려앉은 달빛.
중요하지 않은 관계에 신경 쓰기보다 한숨이라도 더 눈을 붙이는 게 나았다.
‘그나저나 붉은 하이에나가 낡은 풀색 반지를 줬었지?’
낡은 풀색 반지!
지능 스탯 개방과 야간시를 일정량 올려준다. 전자는 차후 마법을 사용할 때 도움이 되고, 후자는 가뜩이나 어두운 숲 속에서 또 다른 눈이 된다.
‘그것도 가시 몽둥이와 흑광우 갑옷처럼 합성이 가능해.’
백건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착착 진행되는 일에 신체가 저절로 반응하는 것이다.
# 내가 남느냐, 네가 남느냐
어스름한 달빛이 순식간에 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가뜩이나 숲 속 한가운데라 그 변화가 더욱 빨랐다.
백건우는 눈을 감았다. 침낭과 보호 실드 덕분에 잠자리가 안락했다.
“예! 그쪽에 서요!”
“이거 덮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나무 위로 올라가자!”
하지만 시끄러운 게 문제였다.
보초 선다, 풀떼기를 덮는다, 나무 위에 올라간다, 가히 시장 한복판.
그래도 꾹꾹 눈꺼풀을 내렸다.
‘붉은 하이에나가 출몰하는 시간은 대략 새벽 서너 시. 선잠을 잘 순 없으니 얼른 눈을 붙여야 한다.’
부드러운 잎사귀를 귀에 말아 넣으니 그나마 좀 나았다.
백건우는 그렇게 회귀 후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아, 시간 파악?
그건 상태창에 연도부터 시간, 그리고 대륙까지 잘 나와 있다.
라프테니아 대륙력 516년 3월 1일 PM 9:00.
대략 여섯 시간 정도는 잘 수 있을 것이다.
“크르르르륵!”
“크르르륵!”
“크르르르르륵!”
간신히 잠에 들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붉은 하이에나의 특유의 으르렁거림에 백건우는 눈을 떴다.
푹 자는 타입이지만, 인기척이나 소리에 민감한 타입이기도 했다.
반응이 빠르단 소리다.
‘왔구나.’
보호 실드를 해제하고 즉각 장비를 갖췄다.
가시 몽둥이와 흑광우 갑옷.
보잘 것 없었던 초보 이용자가 대번에 늠름한 용사로 바뀌었다.
“두고 가?”
“그럼 싸우자고? 저런 놈들을 상대로?”
“그렇지? 그냥 우리만 조용히 빠지는 게 낫겠어.”
보초자들은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믿고 자는 이들을 버린 채 뒤로 빠지고 있었다.
의견을 낸 문대호와 그 무리도 같이 껴 있었는데, 참으로 역겹기 그지없었다.
“모두 일어나십시오! 몬스터 습격입니다!”
“뭐, 뭐야? 몬스터?”
“어, 어디?”
백건우가 거기에 초를 쳤다.
자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깨워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만든 후, 붉은 하이에나가 달려들도록 했다.
몬스터는 시끄러워지면 달려드는 게 특징이거든. 인간이 무기를 들고 있으면 더더욱.
본인에게도 피해가 올 텐데?
그거라면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다. 어차피 낡은 풀색 반지를 얻기 위해선 붉은 하이에나를 잡아야 한다.
백건우는 가시 몽둥이를 치켜들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제기랄! 무슨 짓을!”
어처구니없다는 문대호의 짜증이 들려왔으나 깨끗이 무시했다.
지금은 한가하게 잡담이나 나눌 때가 아니었다.
퍼억!
팔을 크게 휘둘러 면상에 정통으로 가시 몽둥이를 꽂았다. 놈이 뒤로 나자빠지며 깨갱거렸다.
놓치지 않고 바로 난타를 발동했다. 가시 몽둥이가 춤추듯 선회하며 대번에 숨통을 끊었다.
[근력이 0.2 상승합니다!]
[살기가 0.3 상승합니다!]
[뛰어난 전투 능력입니다! 모든 스탯이 추가적으로 0.1 상승합니다!]
백건우는 세 번째 알림에 크게 기뻐하며 계속 전투를 이어 갔다.
애당초 12마리뿐이었고, 다른 사람들도 차차 참여해준 터라 전장은 금방 정리됐다.
“크, 크르르륵!”
“뒤져.”
마지막 남은 놈의 머리통에 가시 몽둥이를 쑤셔 박은 백건우는 즉각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낡은 풀색 반지
구분 : 방어구/반지
등급 : F
제한 : 지능 35 이상(미착용 개방 가능)
효과 : 야간시+10%
보호 실드가 있음에도 굳이 새벽에 일어나면서까지 사냥을 한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먼저 야간시를 높여준다. 라이트가 있다지만 사냥 중에 들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니 제2의 눈으로 작용하리라.
‘이게 크지.’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능 스탯 개방이 가능한 점이다.
손에 쥐고 슥슥 문지르기만 하면,
[‘지능’ 스탯이 개방됩니다!]
자동으로 상태창에 새로운 칸이 생성된다. 몬스터나 약초로 얻는 것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다.
그래서 F급짜리지만 회귀 전 실질적인 가치는 꽤 높게 평가됐다. 스탯 하나 얻으려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이들도 있기에 절대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
‘이걸 뭐와 합치더라?’
백건우는 빙긋 웃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낡은 풀색 반지도 가시 몽둥이나 흑광우 갑옷처럼 합성이 가능한데 좀처럼 떠오르질 않았다.
아니, 당연한 것이겠지.
최대 20년까지의 기억이다. 아! 하고 꺼내기엔 먼지와 불순물이 너무 많이 섞여 있다.
잠자코 머리를 굴리니 다행히도 금방 답이 나왔다.
‘세 번째 미션과 네 번째 미션. 그 결과 보상품들이 합성의 재료가 된다.’
당시에는 이게 왜 보상품인지 이해가 안 됐던 두 아이템.
알고 보니 오히려 땡큐다. 낡은 풀색 반지의 등급을 올릴 수 있으니까.
백건우는 약지에 새로운 액세서리를 착용하며 장비의 내구를 점검했다. 몇몇 놈들이 발악하는 바람에 군데군데 파인 곳이 있었다.
수리를 하진 못한다. 관련 스킬이 없고 대장장이 같은 부류도 초보자의 숲을 나가야 볼 수 있거든.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목숨이 위험할 뻔했습니다.”
“이 새벽에! 대단하십니다, 백건우 씨!”
갑옷에 묻은 피라도 털어내는 백건우에게 사람들이 고마움의 인사를 했다.
백건우는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이들 역시 자기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테니까.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웬 남자가 목소릴 낮추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 사람들······ 혹시 도망가려고 했나요?”
“예.”
“저, 정말입니까?”
“붉은 하이에나도 몬스터이기 이전에 결국은 짐승. 배가 부르면 제 영역으로 돌아갑니다.”
“그, 그 말씀은 저흴 먹잇감으로 주려 했단 겁니까?”
“아마 그렇겠죠.”
백건우는 짧게 대답하며 침낭을 펼쳤다. 세 번째 미션이 아침 6시 시작이라 다시 눕기가 애매하지만, 어쩌랴.
멀뚱히 앉아서 동산만 바라보는 것보다야 잠깐이라도 등을 따뜻하게 하는 편이 낫다.
그렇게 잠을 청하려는데.
“제대로 보초 선 것 맞습니까?”
“그럼 우리가 놀았습니까?”
“아까 낌새로 보아 버리고 튀는 느낌이었는데?”
“뭐라고?”
“열 개 조고 스무 개 조고 나발이고 해산이야, 해산!”
주위가 시끌벅적했다. 서로 멱살만 안 잡았지 다들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슬슬 시작되는군.’
생존을 위한 열망과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본능의 늪 앞에서 드디어 라프테니아의 본격적인 서막이 오른다.
내가 남느냐, 네가 남느냐.
***
다음 날 이른 아침.
백건우는 사람들의 수가 새벽과 비교해 줄어들었음을 확인했다.
[현재 생존자 137명.]
알림이 알려줘서가 아니다. 눈대중으로도 확연히 차이가 났다.
‘뭉쳐야 그나마 살 수 있는 것을.’
혀를 찼다.
저들은 너무 미련하고 대책이 없었다. 팔 하나 다리 하나라도 더 있어야 휘두르고 뛰면서 몬스터를 잡을 텐데.
그렇지만 개의치는 않았다. 저들과 달리 혼자서도 사냥이 되니까.
[세 번째 미션을 시작합니다.]
회귀 전처럼 6시가 되자마자 칼같이 알림이 들려왔다.
백건우는 장비를 갖춰 입었고, 다른 이들 역시 분주히 몬스터 맞을 준비를 했다.
어제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왕좌왕은 여전하나 행동에 짜임새가 있었다.
퍼억! 퍼억! 퍼억!
세 번째 미션은 백곰 잡기였다. 머릿수가 많았지만, 워낙 움직임이 둔해 수월하게 사냥했다.
백건우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열 번 정도씩만 가시 몽둥이를 휘두르며 킬수를 쌓았다.
띠링!
[당신은 일격으로도 몬스터를 잡아내는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입니다!]
[원샷원킬 스킬이 개방됩니다!]
서른 마리쯤 잡았을 때, 크리티컬이 터지며 우연히 한 방에 한 놈을 처리했다.
잊지 않고 찾아 온 알림이 박투형 이용자에게 꼭 필요한 스킬을 선물해줬다.
원샷원킬
구분 : 발동형
속성 : 무(無)
제한 : 체력 20% 이상
마법 공격력 : 50~70
마법 방어력 : -
효과 : -
크리티컬과 중첩되는 일격필살 능력이다. 스탯에 비례해 데미지가 상승하며 차후 마법 공격력도 개방된다.
짭짤하다.
손이든 무기든 치고 후리고 베고 찌르는 등 어떤 식으로라도 일격만 잘 꽂아 넣으면 데미지가 대폭 점프한다.
체력이나 기력이 소모되지만 그만큼 빨리 잡을 수 있기에 활용성이 나쁘지 않다.
난타와 잘 버무려 발동한다면 적어도 이곳에선 못 잡을 몬스터가 없으리라.
‘오케이. 미션 클리어.’
원샷원킬의 도움이 더해지자 1시간쯤 지나니 공터엔 단 한 마리의 백곰도 남지 않았다.
사람들의 숫자도 그만큼 줄어들었지만, 백건우의 목숨은 지극히 평온했다.
[당신의 위세가 숲 안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백곰은 두 번 다시 이곳을 침입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태창에 업적과 명성이 개방됩니다! 전자는 스탯, 스킬, 아이템 보상으로 연결되고, 후자는 어떤 사람, 어떤 곳, 어떤 상황에서도 대우받게 해줍니다!]
[모든 스탯이 0.2씩 상승합니다!]
최종 킬수 47마리.
총 60마리가 나타난 것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결과라 해도 좋았다.
혼자서 한 거니까. 도움이나 꼼수 없이 오롯하게 제힘으로만 말이다.
괜히 알림이 두 개, 그것도 기다란 장문으로 뜬 게 아니란 소리지.
‘어차피 백곰은 미션 보상용이다. 더 안 나오더라도 상관없어.’
백건우는 알림을 하나씩 곱씹었다. 장비를 점검하듯 라프테니아 이용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의 눈이 이번엔 두 번째 알림에 집중했다.
‘높은 킬수가 이런 식으로도 성장을 이뤄내는구나. 업적과 명성이 벌써 개방되다니.’
업적과 명성!
설명은 앞서 알림 그대로니 각설하고, 초보자의 숲을 벗어나도 개방하기 힘든 것들이다.
특히 명성의 경우, 2~3년 차 이용자들도 허덕인다. 워낙 반응이 안 와서 말이지.
그걸 불과 이틀 만에 이뤘으니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을까.
‘회귀 전, 고속 성장을 했던 이들은 다 이런 루트를 밟았던 것인가?’
최강의 검사, 적발적염 짜오잉.
최강의 도적, 베니스 길드의 마스터 제임스.
최강의 궁사, 여제 한수정.
이 밖에도 괴수라 불린 이들이 많았지만, 딱! 하고 생각나는 건 이 세 사람이었다.
특히나 제임스의 경우, 민첩 스탯만 5천이 넘었다. 누군가 탐색 스킬로 확인해본 것이기에 신빙성이야 충분했다.
‘지금 볼 상대는 아니니 상태창을 확인하자.’
칭호 : 흑광우 척살자
업적 : 1
명성 : 100
이름 : 백건우
경력 : 1년 차
신장 : 184cm
체중 : 77kg
근력(56.1), 체력(54.5), 민첩(47.7)
살기(43.3), 정신(46.3), 지능(43.4)
‘흑광우 놈들 잡은 것도 업적에 포함됐으면 횟수가 2였을 텐데.’
아쉬워하던 백건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부릴 욕심이 따로 있지 흑광우는 경우가 다르다. 많이 잡긴 했지만, 그땐 업적 자체가 개방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칭호에 충분히 만족한다.’
대신 흑광우 척살자란 칭호를 얻었다. 공격 속도를 20퍼센트나 올려주는 고마운 수식어다.
‘명성은 무난하고.’
100이면 어디 가서 천민 취급은 안 받을 것이다. 이 사람이 어느 정도는 힘이 있다는 걸 증명해주는 수치거든.
뭐, 그래봤자 대도시에선 얄짤 없이 가로막히겠지만.
백건우는 고루 오른 스탯들을 보면서도 한 번 웃었다. 하룻밤 사이에 대관절 얼마만큼 올린 건지 가늠도 안 됐다.
[세 번째 미션이 종료되었습니다. 결과를 발표합니다.]
볼 것도 없이 1위였다.
2위는 문대호가 7마리로 좀 분발했고, 3위는 뿔개 미션에서 공동 2위였던 송광식이 차지했다.
[1위 보상 : 영양분 가득한 거름]
[2위 보상 : 보통 거름]
[3위 보상 : 없음]
회귀 전, 이 알림을 보았을 때 얼마나 경악했던가. 기껏 백곰 놈들을 때려잡았더니 줘도 안 가질 거름을 주었다.
게다가 거름이면 거름이지 영양분 가득한은 또 뭐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것은 낡은 풀색 반지의 합성 재료가 된다.
네 번째 미션에서 받게 될 것 역시 마찬가지고.
“시발! 거름? 거름이라고? 열 받게 보통은 또 뭐야? 지금 장난치는 거야?”
사정을 알 리 없는 문대호는 쾅쾅 바닥을 내려찍으며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어이없겠지. 팔 한쪽 피 철철 흘리면서 겨우 7킬을 쌓았는데 짐승의 똥을 얻었으니.
백건우는 그 난동을 그저 ‘재미난 구경’ 정도로만 봤다.
같은 이용자끼리 정보 공유?
저놈은 어차피 낡은 풀색 반지를 얻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그냥 거름을 얻은 것뿐이다.
덧붙여 구태여 알려줄 이유는 또 무엇인가.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다 불쾌한데.
‘네 번째 미션이 오후 늦게 있었지.’
인벤토리에 들어온 보상품, 영양분 가득한 거름을 확인하며 다음 미션을 준비하는 백건우였다.
# 명불허전
[네 번째 미션이 끝났습니다. 결과를 발표합니다.]
네 번째 미션, 적사자 잡기.
백건우는 여지없이 1위 자리를 거머쥐었다. 워낙 흉포한 놈들이라 제법 고생했지만, 단단한 장비와 풍부한 경험으로 별 탈 없이 잘 끝냈다.
[1위 보상 : 어느 봄날의 따뜻한 햇살]
대관절 뭐에 쓰라고 주는 물건인지. 언뜻 영양분 가득한 거름과 다를 게 없다.
문대호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아까 거름을 얻었을 때 마냥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었다.
“빌어먹을! 절대자인지 뭐지 그 개 같은 놈이 우릴 우롱하고 있다고!”
“어디 쓸 구석이 있지 않을까?”
“쓸 구석은 개뿔이! 이딴 햇빛 한 줌 쐬려고 그 지독한 적사자를 잡은 줄 알아?”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아니, 이미 터져버린 폭탄을 뒤로 하고 백건우는 공터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그쪽에서 까만빛을 띄는 동그란 돌을 찾아 앞서 얻은 재료와 섞기 위해서다.
이유?
그게 낡은 풀색 반지를 합성하는 방법이니까. F급짜리를 E-급짜리로 바꿀 수 있으니까.
‘야간시가 도움이 되는군.’
네 번째 미션까지 끝내느라 이미 어두워져버린 하늘.
하지만 돌을 찾는 건 쉬웠다. 낡은 풀색 반지의 효과로 인해 야간시가 올라 있기 때문이다.
[합성을 시작합니다.]
영양분 가득한 거름, 어느 봄날의 따뜻한 햇살, 그리고 흑색 돌을 한데 모으자 알림이 떠올랐다.
백건우는 낡은 풀색 반지까지 더해 레고 조립하듯 네 가지 아이템을 끼워 맞췄다.
띠링!
3분도 안 되어 합성이 끝났다. 이쪽으로는 회귀 전에 워낙 길을 터놓은 터라 제법 손재주가 있었다.
[꽃반지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꽃반지
구분 : 방어구/반지
등급 : E-
제한 : 지능 40 이상
효과 : 야간시+25%, 야간전투 능력+15%
불과 한 등급 올랐을 뿐임에도 효과 상승이 대단했다. 야간시가 기존에 비해 10퍼센트나 올랐으며 야간 전투 능력이란 새로운 것도 생겼다.
‘초보자의 숲에선 야간에 전투할 상황이 많다. 쓸 만한 요소야.’
당장 오늘 새벽만 보더라도 붉은 하이에나 떼가 나타나 제법 곤욕을 치렀다. 꽃반지의 야간전투 능력을 등에 업는다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놈들을 잡을 수 있으리라.
‘이제 남은 미션은 여섯 개. 지금처럼 딱딱 진행해 초보자의 숲을 나가기 전에 스탯을 많이 올려둬야 한다.’
이용자들을 배려해주는 건 딱 초보자의 숲까지다. 이후부터는 지옥의 연속이다.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최선책!
스탯이다.
어떤 몬스터를 만나도 도망가거나 무릎 꿇지 않으려면 강력한 신체로 무장해야 한다.
스킬? 아이템? 칭호? 업적? 명성?
그래, 좋다. 그것도 무장의 한 부분에 속한다.
하지만 근본은 스탯에 있다. 신체가 강건해야만 앞서 말한 것들도 효력을 띈다.
백건우는 꽃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공터로 돌아갔다. 다섯 번째 미션은 내일 시작되기에 이제부턴 휴식이었다.
“백건우 씨.”
“예.”
“혹시 아이템을 뭐 조합이라도 하는 겁니까? 지금 끼고 있는 반지도 그렇고 몽둥이나 갑옷이 처음 모습과 다른 것 같아서 말이지요.”
밀빵과 미션이 끝나며 주어진 생수로 끼니를 해결하던 백건우는 어슬렁어슬렁 다가온 문대호를 바라보았다.
물음표를 달고 있지만 분명히 확신한다는 얼굴.
눈썹조차 미동하지 않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맞다.”
“게임의 형식을 띠고 있다더니 정말 그런 게 가능한 것이었군요. 근데······ 왜 말을 놓으십니까?”
“나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에게 존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뭐, 뭐라?”
“용건 끝났으면 가보도록.”
문대호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후려칠 것처럼 주먹도 말아 쥐어졌다.
백건우는 그래도 침착하기만 했다.
“나는 살육을 선호하진 않으나 필요하다면 누구보다 냉정하게 칼을 빼든다. 지옥으로 가고 싶거든 그 주먹을 들어라.”
“아, 아닙니다.”
봤다.
문대호 역시 앞장서서 싸우는 이용자 중 하나였기에 백건우의 활약상을 똑똑히 봤다.
그래서 꼬랑지를 내빼는 것이다. 괜히 나대다가 골로 갈 수 있음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거든.
백건우는 저도 모르게 꾸벅 목례하며 사라지는 문대호를 보며 생각했다.
‘아직 필요한 놈이다.’
사실 마음 같아선 방금, 아니, 진즉에 요절냈다. 새벽의 일이나 행동거지도 그렇고 회귀 전의 기억 때문에 애초부터 제거 대상이었다.
하지만 참았다.
앞서 말했듯 문대호는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서는 이용자 중 하나.
없으면 사냥에 차질이 온다. 좋은 장비나 20년 경험으로 무장해도 혼자서 수십 마리를 상대하는 건 어려웠으니깐.
까딱 잘못 둘러싸이기라도 하면 흑광우 갑옷이든 꽃반지든 간에 얄짤없이 부서지겠지.
아, 다른 사람? 문대호 말고도 싸울 이들이 많은데?
네 번째 미션까지 끝난 현재, 500이란 명수가 줄고 줄어 불과 97명만 남았다.
다들 추가 보상으로 낡은 몽둥이나 낡은 가죽 갑옷을 얻긴 했지만 전투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아홉 번째까지만 이용해 먹으면 된다.’
초보자의 숲 최종 관문인 열 번째 미션은 개인전이다.
임의의 장소로 이동돼 보스와 일전을 벌이게 되는데, 그땐 동료의 존재가 무의미하다.
같이 싸울 수가 없으니까.
백건우는 문대호의 추종 세력까지 모조리 말살시키기로 결정하며 상태창을 열었다.
칭호 : 흑광우 척살자
업적 : 1
명성 : 100
이름 : 백건우
경력 : 1년 차
신장 : 184cm
체중 : 77kg
근력(60.6), 체력(58.4), 민첩(50.5)
살기(46.7), 정신(49.8), 지능(47.1)
업적과 명성 때문인지 스탯 상승이 어제보다 더 가팔랐다. 근력의 경우, 벌써 60을 달성했다.
‘회귀 전에는 근력만 간신히 70대 초반이었고 나머진 50대 후반이었다. 확실히 빨라. 매우 많이.’
불과 네 번째 미션을 끝냈을 뿐인데 회귀 전의 수치를 넘어서다니.
자만할 법도 하지만 백건우는 더 굳게 다짐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은 채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그렇게 맞이한 라프테니아 대륙에서의 두 번째 밤.
“이 제기랄 놈! 죽여 버리겠다!”
오늘처럼 새벽에 시작될 다섯 번째 미션을 위해 잠자리에 들려는데, 문대호가 대뜸 욕설을 내뱉으며 제 무리 열댓 명과 함께 주위를 둘러쌌다.
‘사냥은 혼자 해야겠군.’
까다로워질 뿐이지 문대호가 없다고 해서 아주 불가능한 사냥이 되는 건 아니다.
그걸 떠나서 이 지경으로 나오는데 어찌 타협이 있을 수 있을까.
백건우는 조용히 일어서 가시 몽둥이를 들었다.
“명불허전이로구나. 그래, 지옥문은 이쪽이다.”
“지옥문? 웃기는 소리하고 있군. 네가 강한 건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 전부를 상대할 수 있을까?”
문대호의 입꼬리에 조소가 말려 있었다. 열셋이나 되는 무리를 등에 업었단 자신감이었다.
백건우는 답하지 않고 돌연 앞으로 튀어나갔다. 곧 저승에 갈 놈과의 대화는 한마디로 족하니까.
“끄어어어억!”
“뭐, 뭐야! 그거 하나 못 피해?”
일단 무리를 처단하는 게 먼저였다. 문대호는 그래도 명색이 대장이니 제일 마지막에 끝내줘야겠지.
퍼억! 퍼억!
팔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정확히 한 명씩 나가떨어졌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극.
반격은커녕 피하지도 못했다. 각종 장비와 20년 전투 기술로 무장한 백건우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법사였는데 왜 근접전이 뛰어나냐고?
마법을 주로 썼지만 검도 같이 들었다. 마검사(魔劍士)로서 짜오잉, 제임스, 한수정과 마찬가지로 라프테니아 대륙을 호령했던 백건우였다.
퍼억!
마지막 놈까지 가뿐히 처리한 백건우는 가시 몽둥이를 어깨에 걸친 채 문대호를 쳐다보았다.
“이, 이럴 수가!”
“이제 네 놈 차례다.”
“자, 잠시만!”
문대호가 돌연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불쌍한 인생이로구나.”
“저, 저도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저, 저기 저놈이 시켰습니다!”
문대호의 손가락을 따라가자 연기로 화(化)하는 남자가 있었다. 방금 전 가시 몽둥이에 맞아 죽은 무리 중 하나였다.
백건우는 끌끌 혀를 찼다. 정말 답도 없는 놈이란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퍼억!
그대로 달려가 문대호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높은 공격력에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가 더해져 정수리를 그대로 쪼갰다.
“끄어어어어억!”
붉은 피가 파파팟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넘실거리는 그 찝찝한 것이 얼굴에 몇 방울 튀었다.
그렇지만 개의치 않고 연달아 찍고 또 찍었다.
퍼억! 퍼억!
엎어져 있어서 가뜩이나 무방비 상태였던 문대호가 결국 서너 번 공격에 골로 갔다.
붉은 선혈이 바닥을 적시고 그의 영혼이 스멀스멀 라프테니아 대륙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그렇게 얌전히 있었어야지.”
“저, 정체가 뭐지? 어, 어찌 이런 힘을?”
답할 의무가 없기에 백건우는 얼굴과 몸에 튄 핏방울을 닦는 데 열중했다.
“모, 모조리 당했어!”
“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지, 진짜 뭐야? 무, 무슨 힘을 가지고 있는 거야?”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다들 입 떡 벌린 채 이 어불성설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에 잔뜩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뜻 앞으로 나서진 못했다. 자신도 저렇게 될지 모른단 무언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백건우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잠자리를 만들었다.
‘내일부터는 약간 긴장할 필요가 있겠어. 초보자의 숲에서부터 위기를 맞을 수는 없으니.’
***
퍼억!
“까악! 까악! 까아아악!”
“들어오는 건 마음대로지만 나가는 건 아니다.”
다음 날.
백건우는 다섯 번째 미션 몬스터인 흡혈까마귀를 상대로 무한한 피를 터트리고 있었다.
비행 몬스터라 근접전이 어렵기 때문에 몇 대씩 맞아주다가 돌연 목덜미를 낚아 채 몽둥이찜질을 가했다.
언뜻 살을 주고 뼈를 치는 육참골단으로 보이지만, 사실 준 살도 이득이 됐다.
띠링!
[‘맷집’ 스킬이 개방됩니다!]
흑광우 갑옷을 비롯한 갖가지 장비로 인해 방어력이 높아졌고, 그것은 또 아무리 맞아도 끄떡없는 ‘맷집’으로 이어졌다.
마법사라 어차피 실드를 쓰게 될 텐데 맷집이 무슨 필요?
그럴 리가.
이번 생에도 마검사의 인생을 걷기로 마음먹은 백건우였다.
15서클 이상의 마법과 소드 마스터 이상의 검술!
두 가지가 더해진다면 라프테니아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당할 자가 없으리라.
물론 중점은 마법에 둔다. 마법이 있고 검술이 있는 것이지 검술이 있고 마법이 있는 게 아니니까.
요컨대 이런 것이다.
파이어볼을 날리는 자가 검을 들 순 있지만, 검을 든 자가 파이어볼을 날릴 순 없다.
[다섯 번째 미션이 끝났습니다. 결과를 발표합니다.]
한 시간 후.
백건우는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근처 바위에 걸터앉았다. 문대호의 부재가 역시 컸던 탓인지 다른 미션에 비해 체력 소모가 꽤나 많았다.
‘대신 거의 쓸어 왔다.’
출몰한 흡혈까마귀의 숫자는 80마리.
개중 69마리를 혼자 다 잡았다. 다른 이용자들이 쩔쩔 매는 틈을 타 미친 듯이 가시 몽둥이를 휘두른 결과였다.
[1위 보상 : 낡은 신발]
보상 알림이 뜨자 백건우는 피곤함도 잊고 얼른 인벤토리를 열었다.
낡은 신발
구분 : 방어구/신발
등급 : F
제한 : 민첩 30 이상
효과 : 이동 속도+5%
여기저기 헤진 구석이 많았다. 줘도 안 가질 정도로 모양새도 영 별로였다. 그렇지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하지 겉모습이 뭐 그리 중요한가.
이동 속도 5퍼센트를 더해주는 효과.
그거면 만족한다. 원래는 100보만 갈 수 있는데, 낡은 신발로 인해 5보 더 갈 수 있게 된 거니 말이다.
더군다나.
‘일곱 번째 미션까지 끝내면 낡은 풀색 반지처럼 합성이 가능하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미션 보상에서 다시 기상천외한 재료가 나온다. 따로 있으면 무 쓸모지만 낡은 신발과 합쳐지면 E-등급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절대 필요 없는 장비가 아니라는 것이지.
[현재 생존자 75명. 여섯 번째 미션은 오늘 저녁 중에 시작됩니다.]
역시나 1위를 차지해 보상을 받는 백건우와 달리 전체적인 결과는 참혹하기만 했다.
그사이 사람이 더 줄었다.
아까 살려줘! 살려줘! 하는 구슬픈 외침이 아마 이번에 줄어든 숫자의 원흉일 것이다.
‘그래도 슬슬 실력자가 될 사람들이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라프테니아로 건너와 다섯 번째 미션까지 견뎌냈다?
그건 그만큼 자질이 있음을 뜻한다. 매번 도망치고 숨고 남에게 의지하는 이들은 방금 전까지의 미션으로 모두 죽었으니까.
첫날, 미인계를 이용해 등쳐먹으려던 그 여자도.
‘회귀 전에 나와 함께 초보자의 숲을 나갔던 이용자는 총 여덟. 이번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백건우는 스윽 주위를 둘러보다가 가시 몽둥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음 미션까지 4시간.
어차피 관계를 쌓지 않을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느니 조금이라도 눈이나 붙이는 게 나았다.
# 난동꾼
[‘행운’ 스탯이 개방됩니다!]
[‘매력’ 스탯이 개방됩니다!]
[‘꿰뚫어보는 눈’ 스킬이 개방됩니다!]
[당신은 초보자의 숲의 지배자입니다! 어떤 몬스터도 당신을 해하지 못합니다!]
[흑광우 척살자 칭호를 초보자의 숲 난동꾼 칭호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쉴 틈 없는 사냥!
흡혈까마귀를 잡고 4시간 후에 있었던 여섯 번째 미션과 이튿날 오전에 있었던 일곱 번째 미션을 클리어한 백건우는 알림을 폭탄으로 받았다.
스탯, 스킬, 칭호.
입가 번지르르하게 올라온 미소가 그의 기분 상태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행운과 매력. 전자는 회피나 공격 성공률 등을 높여주고 후자는 동맹이나 거래 등을 할 때 내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준다.’
백건우는 꿰뚫어보는 눈이란 스킬에도 집중했다.
‘귀한 걸 얻었군.’
꿰뚫어 보는 눈
구분 : 발동형
속성 : 무(無)
제한 : 온전한 정신 상태
마법 공격력 : -
마법 방어력 : -
효과 : 약점 간파
몬스터나 타 이용자의 약점을 꿰뚫어본다. 정신 소모가 크므로 자주 발동하면 육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회귀 전의 기억을 이용해 몬스터들의 빈틈만 친 것이 이런 스킬 개방으로 이어졌다. 정신 소모가 크다는 단점이 있지만, 약점을 알 수 있다면야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스킬까지 확인한 백건우는 마지막 알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건 볼 것도 없지.’
칭호 변화!
난동꾼이란 말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고민은 되지 않았다. 바뀐다는 것 자체가 더 좋아짐을 의미하니까.
‘진행한다.’
[칭호가 변화됩니다. 약 10초 소요됩니다.]
잠자코 기다리자 띠링! 하는 알림과 함께 새로운 칭호의 정보가 떴다.
초보자의 숲의 난동꾼
구분 : 칭호
등급 : E
제한 : 올 스탯 200 이상
효과 : 공격 속도+20%, 공격력+15%
일곱 번째 미션까지 최상의 활약을 보여준 이용자에게 지급되는 칭호다.
등급은 그대로인데 공격력 15퍼센트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매 일격에 강한 힘을 담는 편이기에 두고두고 도움이 되리라.
[일곱 번째 미션이 끝났습니다. 결과를 발표합니다.]
알림을 확인하는 사이 미션 종료 알림이 떴다. 곧 인벤토리 안으로 보상품이 들어왔는데, 2위와 3위를 한 자가 씩씩거렸다.
“이게 뭐야?”
“환장하겠네, 진짜! 이걸 어디다 쓰라는 거야!”
문대호가 그랬듯 그들 역시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게 분노를 토했다.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 보상품을 땅에 내리꽂기에 이르렀다.
이유?
초원 위의 새싹
구분 : 재료
등급 : F
효과 : 없음
이런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을 줬으니 노발대발할 수밖에.
‘됐다.’
하지만 백건우는 달랐다. 여섯 번째 미션 보상으로 받은 ‘시원한 물줄기’를 꺼내 같이 손에 들고 숲 한쪽으로 들어갔다.
낡은 신발을 업그레이드 해줄 재료들!
끈끈이 풀을 이용해 슥슥 비벼대자 5분도 채 안 되어 경쾌한 알림이 귓전을 울렸다.
띠링!
[꽃신발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꽃신발
구분 : 방어구/신발
등급 : E-
제한 : 민첩 45 이상
효과 : 이동 속도+10%, 점프력+5%
기존의 낡은 신발은 이동 속도 5퍼센트 추가가 전부다. 하지만 꽃신발은 거기에 또 5퍼센트, 그리고 점프력도 5퍼센트 올려준다.
합성이 이래서 좋다. 성공만 하면 무조건 기존의 것보다 두 배 이상의 효과를 지닌다.
백건우는 다만 한 가지가 아쉬웠다.
‘꽃반지야 그러려니 하지만 사내가 꽃신발을 신어야 하다니.’
절대자는 대체 무슨 취향을 가지고 있는 걸까. 엿 먹으라는 것도 아니고 디자인이 참.
뭐, 어쩌랴. 일전에도 말했듯 모양새보단 실리가 중요한 법이다.
백건우는 더 나은 효과를 얻었음에 만족했다.
[현재 생존자 50명.]
다시 공터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데 남은 이용자의 수가 떴다. 두 개의 미션을 끝낸 것 치고는 사망자가 적었다.
슬슬 실력자만 남을 거라는 백건우의 말이 과연 틀린 게 아니었다.
[현재 생존자 45명.]
그날 오후, 여덟 번째 미션이 종료됐을 때도 사망자는 다섯에 불과했다. 예고 없이 시작됐는데도 이 정도니 엄청난 선방이라고 할 수 있겠지.
백건우는 보상으로 받은 스태미나 알약을 아작아작 씹으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아홉 번째 미션이 바로 이어졌었지.’
회귀 전에 정말 깜짝 놀랐다. 급작스런 여덟 번째 미션에 정신이 온데간데없었는데, 종료되자마자 아홉 번째 미션이 꼬리를 물었다.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십니까? 미션도 끝났는데.”
“낌새가 수상합니다.”
딱딱하고 짧은 답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이 일으키는 파장은 엄청 났다.
무기 내려놓고 발 뻗은 채 누워 있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어섰다.
똑같이 경계 자세!
알게 모르게 미션을 진두지휘하던 백건우였기에 그의 행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찍찍찍! 찍찍찍!”
“찍찍!”
“찍찍찍찍찍!”
이윽고 초보자의 숲 최악의 몬스터라 꼽히는 흡혈쥐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백건우의 감각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 낌새를 무슨 수로 눈치챌 수 있었을까?
어쨌거나 흡혈쥐.
놈들은 그런 타이틀을 가질 만하다. 엄청난 머릿수와 흡혈이라는 지랄 맞은 힘이 넌더리, 아니, 공포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무슨 쥐가 저래!”
“이빨 좀 봐! 강철도 물어뜯게 생겼어!”
“다들 힘내자고! 이놈들만 끝장내면 마지막 열 번째 미션이야!”
파이팅 외치는 사람들 뒤로 한 남자가 가시 돋은 몽둥이를 쥔 채 쥐새끼 속으로 돌진했다.
백건우였다.
퍼억! 퍼억!
흡혈쥐의 약점은 방어력이 최악이라는 점이다. 한 대 치면 저세상 갈 정도로 가죽이나 맷집이 약하다.
백건우는 그 점을 노려 광란의 춤사위를 벌였다.
퍼억! 퍼억! 퍼억!
복날 개 패듯 가시 몽둥이를 휘두르자 그에 반응해 알림이 좌르르 뜨기 시작했다.
[근력이 0.1 상승합니다!]
[민첩이 0.2 상승합니다!]
[크리티컬이 터집니다! 행운이 0.3 상승합니다!]
스탯은 예사였다.
[흡혈쥐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공격력과 이동 속도가 10퍼센트 하락합니다!]
[아군의 사기가 올라갑니다!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5퍼센트 상승합니다!]
적군은 약하게, 아군은 강하게 만드는 특수 효과까지 발동됐다. 이 모든 게 가시 몽둥이에 묻은 수많은 흡혈쥐들의 살가죽과 피 덕분이었다.
그렇게 장장 1시간여.
수백 마리에 달했던 흡혈쥐들이 혀 빼문 채 바닥에 드러누웠다. 간혹 부르르 몸을 떠는 놈이 몇 있었으나 톡 하고 발로 찍어 누르자 이내 숨통이 끊어졌다.
대학살!
그 말의 표본이라 해도 좋았다. 그야말로 거친 전장이었다.
‘후우. 지독스런 놈들.’
백건우는 가시 몽둥이를 내려놓으며 장비를 해제했다.
온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지저분할 정도로 많아서 어디 강가에 풍덩 빠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홉 번째 미션이 종료되었습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우선 모든 이용자의 스태미나와 체력이 풀로 차오릅니다.]
열 번째 미션, 보스전.
지친 몸으로 그 일을 해내기란 어렵다. 그래서 라프테니아 시스템이 나름 융통성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결과를 발표합니다.]
보상은 별거 없었다. 식량과 물, 그리고 보스전까지 육체를 안전하게 지켜줄 보호 실드가 전부였다.
아, 참고로 첫날 받았던 보호 실드는 진즉에 사라졌다. 라프테니아 시스템은 이용자들에게 그 정도로 자비롭지 못하거든.
‘보스전은 사흘 후. 근방을 돌면서 더 성장해야 한다.’
아홉 번째 미션을 막 끝낸 참이다. 땀이 비 오듯 흐를 정도로 고생했다.
약간은 휴식을 취해도 좋으련만 곧장 또 사냥을 이어가는 백건우였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장비 세팅!
가시 몽둥이, 흑광우 갑옷, 꽃반지, 꽃신발, 그리고 마지막으로 꽃목걸이가 남아 있었다.
이번 세팅은 이전 것들과 비교해 조금 특이점이 있었다.
회귀 전, 모든 이용자를 통틀어 단 한 명도 꽃목걸이를 만들지 못했다.
이유?
꽃목걸이의 재료가 되는 ‘윙윙거리는 꿀벌’이 초보자의 숲에서만 나온다. 밖으로 나가게 되면 절대 구할 수 없다.
‘회귀가 이런 복도 가져다주는군.’
백건우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올라갔다. 단순히 그런 특이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삼꽃 세트!
꽃반지, 꽃신발, 꽃목걸이로 이어지는 그것이 엄청난 효과를 가져다준다. 유명 대장장이가 직접 한 말이기에 의심할 여지는 없다.
과연 어떤 것일까?
이렇듯 지친 몸을 끌면서까지 가시 몽둥이를 드는 데엔 사실 이 의문도 크게 작용했다.
‘대왕벌을 잡아야 한다.’
윙윙거리는 꿀벌 재료는 대왕벌이란 몬스터를 죽여야 드랍되는 아이템이다.
주먹만 한 크기에 독성을 지닌 놈들인데, 흡혈쥐처럼 쪽수로 밀어붙이는 타입이라 상대하기가 좀 까다롭다.
‘흑광우 갑옷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많은 초보 이용자들이 대왕벌을 어쩌지 못한 이유.
놈들의 침을 상대할 방법이 없어서다. 웬만한 가죽은 벌에 빗방울 떨어지듯 구멍이 숭숭 뚫려 잡기도 전에 온몸이 부르트고 만다.
반면 흑광우 갑옷은 막아, 아니, 튕겨낼 정도로 놈들의 침에 강함을 보인다. 어떤 놈은 공격도 전에 도망가기도 한다.
잡은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아냐고?
아까 말한 대장장이의 말을 빌린 것이다. 그 할배가 분명 그렇게 말했거든.
“아주 제대로 살림 차렸구나.”
백건우는 30분 정도 걸어들어 가서 거대한 벌집을 발견했다. 이런 곳에 이런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기이하고 컸다.
“윙윙윙!”
“어딜!”
낯선 침입자의 등장에 한 놈이 까치를 연상케 하는 날개를 뽐내며 날아왔다.
퍼억!
가뿐히 피하며 가시 몽둥이를 내리치자 휘이잉 새총 맞은 참새처럼 흙바닥에 고꾸라졌다.
[민첩이 0.3 상승합니다!]
성가신 놈을 잡은 영향인지 겨우 한 마리에 0.3이나 되는 민첩이 올랐다. 흡혈쥐 대여섯 마리는 혀 빼물게 해야 얻는 수치인데.
꽃목걸이란 삼꽃 세트도 삼꽃 세트지만, 죽치고 사냥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어차피 보스전까진 사흘을 기다려야 하니 시간도 충분하고.
‘작업 좀 해볼까.’
계획을 전면 수정한 백건우는 가시 몽둥이를 높이 쳐들어 대왕벌집 중앙부를 툭 하고 건드렸다.
“윙윙윙윙윙!”
“윙윙윙!”
“윙윙윙윙!”
봇물 터지듯 대왕벌이 쏟아져 나왔다. 허공에 구름을 이루는 그 엄청난 마릿수에도 백건우의 미소는 끊일 줄 몰랐다.
‘환상적이군.’
***
꽃목걸이
구분 : 방어구/목걸이
등급 : E-
제한 : 지능 40 이상
효과 : 반응 속도+15%
다음 날.
백건우는 대왕벌 300여 마리를 잡아 꽃목걸이 합성에 성공했다.
주재료가 되는 낡은 목걸이는 대왕여왕벌에게서 얻었는데, 치고 빠지며 열댓 번 찜질해주니 알아서 목숨을 잃었다.
그 순간.
[삼꽃 세트를 완성했습니다! 모든 스탯이 5 상승합니다!]
과연 세트 효과는 대단했다. 현재 8개 스탯을 가지고 있으니 도합 40이 오른 셈이었다.
그런데 이어서 삼꽃 세트가 작아 보일 정도의 대박이 터졌다.
[‘세 개의 꽃을 만든 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초보자의 숲에서 나갈 시 연계 퀘스트로 연결됩니다!]
[명성이 150 상승합니다!]
업적과 명성도 좋지만, 퀘스트라니!
퀘스트는 RPG게임에서의 그것과 똑같다. 조건에 충족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백건우가 유난히 기뻐하는 건 그 퀘스트의 종류 때문이다.
연계!
단계를 거칠수록 보상이 커진다. 난이도도 그에 비례해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으나 돌아올 이득을 생각하면 그야 감수할 만하다.
‘바깥세상 첫 단추부터 제대로 뽕 뽑을 수 있겠군.’
뭐든 시작이 중요한 법이다. 그것만 잘 먹고 들어가면 앞날이 편하다.
물론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아니, 그 전에 초보자의 숲을 나가야 한다는 또 다른 전제 조건이 있다.
백건우는 주먹을 굳게 말아 쥐었다.
‘그 준비는 이미 끝냈지.’
보스전까지 아직 이틀이나 남았음에도 사실상 모든 채비를 갖췄다.
방패 장비가 남아 있긴 한데 초보자의 숲에서 치장하기엔 거추장스러웠다.
아니, 어쩌면 바깥에 나가서도.
‘한 손으론 마법, 나머지 한 손으론 검을 들게 될 텐데 구태여 방패를 들 필요가 없지.’
덧붙여 어차피 얻지도 못한다. 어떤 몬스터를 잡든 어떤 미션을 클리어하든 방패 비슷한 것도 나오지 않는다.
퍼억! 퍼억! 퍼억!
백건우는 이후 이틀 동안 스탯 올리기에만 열중했다.
이미 보스 잡기에 충분한 육체를 만들었지만, 현재에 안주해서 되겠는가.
장차 큰 사람이 되려면 더욱 더 앞서 나가야지.
‘단칼에 끝내주지.’
# 무법자
뜨거운 태양 아래 몹시도 땀이 흐르던 날.
백건우는 5분 후 보스전이 시작된다는 알림을 받았다.
회귀 전에는 이 순간에 적잖이 긴장했었는데. 혹여나 죽지는 않을까 머릿속으로 유서를 쓰기도 했었는데.
[보스는 매우 강력합니다. 개개인이 각기 다른 전장으로 이동돼 싸우기 때문에 도와줄 동료도 없습니다.]
이제는 그저 씨익 웃을 뿐이었다. 보스의 할아버지가 나오더라도 상대할 자신이 있으니까.
“후우. 꼭 이기자고, 꼭.”
“여기까지 온 이상 죽을 순 없지.”
“그렇지만 걱정돼.”
백건우와 다르게 남은 생존자들은 이마를 훔치며 조마조마한 기색을 보였다.
회귀 전의 백건우가 딱 저랬다고 할까.
아니, 조금 차이는 있겠다.
- 까짓 거 하면 되지.
라며 가슴 탕탕 치던 백건우였거든.
‘많이 살아남았다.’
보스전을 앞둔 현재, 남은 생존자는 39명.
회귀 전에 15명이었으니 그 두 배가 훨씬 넘었다. 보스전을 어떻게 치르느냐가 중요하겠지만, 통계로 따지면 최후에도 최소 스물 이상은 남을 것이다.
[곧 보스전이 시작됩니다. 준비해주십시오.]
주위를 돌아보는 사이, 보스전의 본격적인 서막이 올랐다. 몸이 붕 떠오르며 뜨거운 태양을 뚫고 세찬 바람이 불었다.
갑작스런 이상 상황에 생존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놀란 눈을 했다.
‘들어가겠군.’
백건우만은 침착했다. 냉철한 눈으로 다가올 다음을 기다렸다.
파파팟!
이윽고 저절로 눈이 감기며 육신이 어딘가로 이동됐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땐 여태까지 보던 숲 속이 사라지고 웬 쩍쩍 갈라진 폐허가 있었다. 마치 짙은 가뭄에 시달리는 논 같았다.
백건우는 개의치 않고 미리 착용한 장비를 재차 점검했다. 하나라도 잘못 들었거나 잘못 끼우면 보스에게 당할 수도 있거든.
공격력은 꽤나 높은 놈이라서.
바스락. 바스락.
‘왔다.’
보스의 인기척에 난타와 원샷원킬 스킬을 미리 장전해놓는 백건우였다.
오는 즉시 극심한 상처를 안길 수 있도록.
그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E급 마력석과 신비한 약초가 있는 곳에 가고 싶어서.
“크흐흐흐흥!”
호랑이의 그것을 띄고 있지만, 흑색에 몸집이 집채만 한 초보자의 숲의 보스!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최후의 관문이 되는 놈이 잠시 후 모습을 드러냈다. 질질 흘리는 침과 바위도 쪼갤 듯한 성난 이빨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백건우는 그런 놈을 상대로도 전혀 기죽지 않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퍼억!
심지어 선공을 가했다.
퍼억! 퍼억! 퍼억!
난타로 안면과 가슴, 그리고 복부를 연달아 세 번을 후리고 원샷원킬로 머리통을 갈랐다.
보스, 거대흑호가 순식간에 피칠갑이 됐다.
아무렴 풀 장비 세팅을 했다지만, 어떻게 이런 압도적인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일까?
해답은 백건우의 움직임에 있었다.
지난 20여 년간의 무수한 전투 경험들이 장비와 무관하게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크, 크흐흐흐흐흥.”
1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거대흑호가 겁먹은 개새끼처럼 바닥에 드러누웠다.
정확히는 고통스러워서 일어나질 못했다. 여기저기 쪼개지고 갈라지고 찢어지고 뜯겨진 상처로 얼룩진 탓이었다.
퍼억!
백건우는 놈의 동정에 말리지 않고 마지막 원샷원킬로 끝장을 냈다.
코끼리 저리 가라였던 놈이 꿱! 하고 길게 혀 빼물며 머리를 처박았다.
[초보자의 숲의 최종 보스를 잡았습니다! 모든 스탯이 3 상승합니다!]
[열 개의 미션을 모두 완벽하게, 그리고 1위로 끝냈습니다! 누구도 이런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모든 스탯이 추가적으로 5 상승합니다!]
[어떤 존재도 당신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초보자의 숲의 무법자입니다! 기존 칭호를 삭제하고 새로운 칭호를 받으시겠습니까?]
스탯이 대체 얼마나 오르는 건지. 계속되는 상승으로 인해 상태창이 번쩍거렸다.
백건우는 일단 상태창부터 열었다.
칭호 : 초보자의 숲의 난동꾼
업적 : 2
명성 : 250
이름 : 백건우
경력 : 1년 차
신장 : 184cm
체중 : 77kg
근력(73.8), 체력(70.1), 민첩(63.2)
살기(58.5), 정신(59.4), 지능(58.5)
행운(55.4), 매력(54.6)
‘난리났군.’
초보자의 숲에서 이 정도 스탯을 얻고 나갈 이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보스 한 마리 잡아 모든 스탯에 8을 더하다니!
하지만 이보다 시선이 끌리는 게 있었다. 난동꾼에 이은 새로운 칭호였다.
‘없었던 일을 경험하고 있어.’
회귀 전엔 난동꾼 칭호가 최고였다. 누구도 그 이상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삼꽃 세트 퀘스트부터 뭔가 조짐을 보이더니······.
‘얼른 보자.’
백건우는 더 못 참고 새로운 칭호를 개봉했다.
초보자의 숲의 무법자(히든)
구분 : 칭호
등급 : E
제한 : 올 스탯 300 이상
효과 : 공격 속도·이동 속도·반응 속도+30%, 무법자의 포효 스킬 개방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좀처럼 흥분하는 일이 없는데, 두 팔이 절로 만세를 불렀다.
히든!
좋은 칭호일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설마 그것일 줄은 몰랐다.
웃돈에 뒷돈을 줘도 구하기 힘든, 몬스터나 퀘스트로도 얻기 힘든 그것을 막 입문한 초보 이용자가 따낸 것이다.
백건우는 혀를 내둘렀다.
‘E급 칭호에서 이런 효과는 본 적이 없어.’
전투 중에 필요한 속도들을 무려 30퍼센트씩 올려주며 생전 처음 보는 스킬도 개방시켜준다.
전자에 놀라는 한편, 후자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무법자의 포효
구분 : 발동형
속성 : 무(無)
제한 : 정신력 90% 이상
마법 공격력 : -
마법 방어력 : -
효과 : 상대 사기 대폭 저하
하늘을 울리고 땅을 진동시키는 용사의 기백으로 상대의 사기를 대폭 떨어뜨린다. 단, 상대의 정신력이 시전자보다 높을 경우엔 발동되지 않는다.
마검사는 직업 특성상 정신 스탯, 즉 정신력이 좀 있는 편이다.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고 원래 마법이란 게 그쪽 힘을 많이 필요로 하거든.
고로, 무법자의 포효는 매우 달달한 스킬이 될 거란 뜻.
‘더 쉬워지겠어.’
E급 마력석과 신비한 약초를 지키는 그 문지기들에게 무법자의 포효를 발동하면 어떻게 될까?
급상승한 스탯과 전투 능력으로 가시 몽둥이를 휘두르면 또 어떻게 될까?
백건우는 칭호를 갈아 끼우며 다시 원래의 위치, 초보자의 숲으로 되돌아왔다. 스산했던 황폐한 땅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익숙한 초록빛 세상이 눈과 귀를 반겨주었다.
‘바로 간다.’
그의 발걸음이 순식간에 공터를 벗어났다.
근방엔 단 한 명의 이용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제일 먼저 보스전을 클리어했단 뜻이었다.
[전방의 절벽 다리 너머에 바깥세상이 있습니다. 나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두 시간을 걸어 도착한 초보자의 숲 최종 출구.
백건우는 알림을 뒤로 하고 다리 주위를 서성거렸다.
‘어디였더라.’
회귀 전에도 ‘그 비밀의 문’을 우연히 찾았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단 말이 걸려 쓸데없이 근처를 기웃거리던 중에.
한참을 나다니던 백건우의 시야에 요상한 수풀 하나가 들어왔다. 이상하리만치 거멓고 따끔따끔한 가시가 솟아 있었다.
‘저거다.’
막상 두 눈으로 직접 보니 딱 기억이 났다. 저걸 건드렸다가 문지기들을 맞닥뜨렸었다.
백건우는 해제했던 장비를 재착용한 후 거침없이 수풀을 헤집었다.
쿠웅! 쿠웅!
돌연 지반이 흔들리며 족히 4미터도 넘을 거대한 두 무사가 나타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장비 세팅에 투구 아래 비치는 눈빛이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개중 왼쪽에 있던 놈이 기다란 창을 높이 쳐들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하찮은 나부랭이 주제에 어디라고 이 문을 두드리느냐?”
“지랄하고 앉았네.”
“뭐, 뭣이?”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살기를 뿜어내던 문지기가 크게 놀랐다. 어느 정도였나면 그 큰 몸뚱이가 일순 흔들렸다.
‘거대흑호보다 강하지만 상대하기에 어려울 건 없다.’
백건우는 명상하듯 고요한 기색을 보였다. 철저히 준비하고 왔기에 떨 이유가 전무했다.
그가 가시 몽둥이를 쳐들고 맞서겠단 자세를 보이자 문지기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네 이놈! 공포가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여주마!”
“후회하게 될 게다, 그 멍청한 판단을!”
“입만 살았구나들. 싸움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가볍게 받아친 백건우는 높이 점프해 난타로 왼쪽 문지기부터 공략했다.
꽃신발의 효과 덕분에 원체 점프력이 좋고 무법자 칭호로 인해 속도 또한 빨랐다.
아, 물론 무법자의 포효를 발동한 상태에서.
퍼억! 퍼억! 퍼억! 퍼억!
눈 깜짝할 새 여기저기 네 번을 쳤고 뒤이어 원샷원킬로 아작을 냈다.
“끄어어어억!”
“뭐해! 그거 하나 못 막고!”
“빠, 빠르다! 너무 빨라!”
족제비가 야밤을 거닐 듯 백건우는 부드럽게, 그리고 유연하게 상대의 육체를 탐했다.
쿠우웅.
얼마 지나지 않아 연신 두드려 맞던 왼쪽 문지기가 무릎을 꿇었다. 입으론 솟구치는 피를, 가슴으론 터지는 피를 토했다. 은색으로 빛나던 갑옷이 피칠갑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제 네놈 차례다.”
“가, 감히!”
그 위풍당당하던 문지기가 잔뜩 기죽어 있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겉으론 여전히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지만, 저도 모르게 더듬는 말과 떠는 다리가 그 증거였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믿음직한 동료가 단 몇십 합에, 그것도 쪽도 못 쓰고 당했는데 어찌 침착할 수 있을까.
퍼억! 퍼억! 퍼억!
“저, 정체가 뭐지?”
“뭐긴. 초보 이용자지.”
남은 문지기도 순식간에 당했다. 부르르 몸 떨며 던진 물음표에 백건우는 짧게 대답하고 말았다.
띠링!
[근력, 민첩, 체력이 0.7 상승합니다!]
[난타와 원샷원킬이 더욱 강해집니다!]
[최하급 문지기의 창을 얻었습니다!]
강한 놈들이라 그런지 스탯 상승폭이 컸다. 좀처럼 변화없는 스킬 힘도 올랐다.
하지만 역시나 관심은 최하급 문지기의 창이란 것에 끌렸다. 아이템은 항상 달콤한 초콜릿이 되는 법이니까.
최하급 문지기의 창
구분 : 변환 무기구/창
등급 : E
제한 : 근력 80 이상
물리 공격력 : 130~150
마법 공격력 : -
효과 : 공격력+5%
초보자의 숲에 있는 비밀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창이다. 극강의 공격력으로 무엇이든 뚫어낸다. 변환 무기라 마검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무법자 칭호를 얻을 때처럼 또 한 번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E급인 것도 모자라 변환 무기라니!
흔치 않다. 회귀 전에도 몇 번 보지 못한 귀한 물건이다. 라프테니아 대륙에선 위험하면 그만큼 보상을 준다더니 더욱 확실히 알겠다.
게다가.
‘변환이 마검이라면 더욱 땡큐지.’
백건우는 즉각 무기를 변환하고 다시 정보를 열어 보았다.
최하급 문지기의 마검
구분 : 변환 무기구/마검
등급 : E
제한 : 마력 80 이상
물리 공격력 : 110~130
마법 공격력 : 130~150
효과 : 마법력+5%
최하급 문지기의 창이 마검으로 변환한 것이다. 물리 공격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극강의 마법 공격력을 가진다.
물리와 마법 공격력을 둘 다 가진 데다가 마법력이 더해지는 효과를 지닌다. 들기 위해 미개방 스탯인 마력을 80이나 필요로 하긴 하는데, 그거야 비밀의 문에 들어가 E급 마력석을 삼키면 오케이이리라.
‘그런데 최하급? 하급, 중급, 중상급, 상급, 최상급 이런 식으로 계속 있다는 것인가?’
최하급 문지기의 마검은 회귀 전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존재했는데 가진 자가 없었다고 하는 게 옳겠지.
각설하고, 이름으로 유추하건데 단계 별로 같은 무기가 있을 공산이 크다. 20여 년간 라프테니아 대륙에서 생활한 ‘감’에 의하면 분명 그렇다.
[비밀의 문이 열렸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어, 입장한다.’
백건우는 최하급 문지기의 마검을 인벤토리에 잘 넣은 후 수풀 속에 발을 디뎠다.
숲 한복판에 불과했던 곳이 두어 번 눈을 깜빡이자 괴상한 동굴로 변했다.
번쩍!
협소한 공간이었다. 방으로 따지면 채 10평이나 될까.
‘저거다.’
그 가장 귀퉁이에 E급 마력석인 반짝이는 돌 하나와 정체불명의 꽃이 하나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그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없는 백건우였다.
초보자의 숲에서 그토록 열심히 달렸던 이유!
모두 저 돌과 꽃을 얻기 위함이었으니까.
마력석
구분 : 소모품
등급 : E
제한 : -
효과 : 마력 스탯 상승
마력을 E급 수준까지 단번에 올려주는 신비한 돌이다. 신체 어디로든 섭취할 수 있다. 마력 스탯 미개방자도 가능하다.
이름 없는 꽃
구분 : 소모품
등급 : -
제한 : -
효과 : 마수 소환 스킬 개방
마수를 강제로 끄집어내는 소환 능력을 부여하는 정체불명의 꽃이다. 오롯이 입으로 씹어 삼켜야 하는데, 섭취 시 몸에 상당한 고통을 동반한다.
E급 마력석이야 설명 그대로일 뿐더러 회귀 전에도 익숙하게 본 터라 그렇게까지 놀랍진 않다.
하지만 이름 없는 꽃은 다르다.
‘마수 소환?’
회귀 전에도 들어보지 못한 생전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 겹경사
백건우는 우선 비밀의 문에서 빠져나왔다.
의도한 건 아니고 알림이 ‘아이템을 습득하여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라며 일방적으로 쫓아냈기 때문이었다.
‘이것부터 먹고 보자.’
먼저 E급 마력석을 가슴팍에 갖다 댔다. 주먹보다 약간 큰 게 서서히 연기로 화하며 몸에 흡수되었다.
띠링!
[마력석의 효과로 마력 스탯이 개방됩니다!]
상태창을 열어보니 스탯란에 마력이란 이름이, 그것도 130.7이란 수치로 생겨났다.
가히 기적과도 같은 일!
생짜 스탯이 50대가 아닌 100대에서 시작한다는 건 그 말이 아니고선 설명이 불가능하다. 막말로 최하급 문지기의 마검 착용도 누워서 떡 먹기가 된 거니까.
‘흠.’
마력석은 기분 좋게 먹었는데 문제는 이름 없는 꽃이었다. 마수 소환이 의미하는 바가 여전히 짐작 불가능했다.
섭취 시 상당한 고통을 동반한다는 말도 걸리고.
‘까짓 거.’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건우는 이내 아무렇지 않게 이름 없는 꽃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어떤 스킬이건 사냥에 도움은 된다. 회귀 전에 분비물을 던지는 이용자도 있었으니 두말하면 입만 아프겠지.
먹을 때의 고통도 어깨만 으쓱할 뿐이다. 살이 에이는 아픔도 수차례 견뎠는데 이만한 꽃이 얼마나 통증을 줄까.
[이름 없는 꽃의 효과로 히든 스킬, 마수 소환이 개방됩니다!]
생각보다 고통이 심해 이맛살을 찌푸리는데, 히든이란 말에 눈동자가 크게 뜨여진다.
‘히든이라고?’
이 비밀의 문에서 가장 중점에 뒀던 건 E급 마력석이다. 초장부터 높은 마력 수치를 줄 뿐더러 마법사의 길을 걷기 위한 초석이 되니까.
신비한 약초, 그러니까 이름 없는 꽃에 대해선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끽해봐야 그저 그런 스킬 하나 주겠지 하는 생각에.
그런데 히든이란다. 최고급 장비보다도 귀하다는 그 히든.
백건우는 꿀꺽 침 삼키며 스킬 정보를 열었다.
마수 소환(히든)
구분 : 발동형
속성 : 마(魔)
제한 : 마력 100 이상
마법 공격력 : -
마법 방어력 : -
효과 : 마력 스탯과 비례하는 마수 소환
마계의 생명체를 현세로 불러들이는 초극강의 소환 능력이다. 마력 스탯이 높을수록 더 강한 마수가 나오며 맥시멈 최상급 마수 이상도 가능하다.
대개 소환은 정령이나 짐승, 혹은 이상 생물체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지휘가 쉬울 뿐더러 마력 소모가 적거든.
잠깐, 요점은 이게 아니다.
백건우는 마계의 마수도 소환할 수 있다는 걸 회귀 전 20년을 통틀어 난생 처음 알았다.
인간이 마(魔)의 힘을?
한데 이내 곧 입꼬리를 빙글빙글 말려 올린다. 눈꼬리도 흐뭇하게 반달을 그린다.
‘이러면 솔플레잉이 편해지지.’
두 번째 라프테니아 인생에선 오롯이 1인 플레이만 하겠다는 게 계획이다. 회귀 전에 당하고 겪었던 배신과 불편함, 그리고 뒤쳐짐 등을 또 다시 반복하기 싫어서.
각설하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절대적인 한 가지가 있다.
혼자서도 싸울 수 있는 힘!
그게 없다면 몬스터 소굴 한 곳도 제대로 털지 못한다. 매번 도망가거나 툭툭 치고 빠지는 꼴에 불과하겠지.
마수 소환은 거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소환수를 방패막이로 세우며 뒤에서 마법을 난사하면 되니까.
간 좀 쳤다 싶으면 마검 들고 직접 칼부림을 해도 되고.
‘시험해 보자.’
백건우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마수 소환을 발동했다.
[마(魔)의 힘을 얻는 자, 세상을 지배하리라!]
[이용자의 마력 수치는 100. 최하급 마수 두 종류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세상을 지배한다라······.
괜스레 좋았다. 미래가 보장되는 느낌이랄까. 든든한 보험 하나 안고 가는 것도 같았다.
백건우는 확인한다, 라고 말하며 차분히 과정을 밟았다.
에놀드
구분 : 소환수
종족 : 마족
등급 : 최하급
몸길이/몸무게 : 100cm/50kg
물리 공격력 : 80~90
물리 방어력 : 80
특성 : 땅 속 숨기
돌출된 날카로운 앞니로 상대를 움켜쥔 후, 산성 침을 내뱉는 게형 마수다. 노예근성이 강해 일꾼이라고도 불린다. 마력 소모가 적어 대량 소환이 쉬우나 공격력, 공격 속도, 이동 속도, 방어력 등이 전반적으로 약해 주축으로 내세우긴 힘들다.
그레즈
구분 : 소환수
종족 : 마족
등급 : 최하급
신장/몸무게 : 130cm/45kg
물리 공격력 : 100~120
물리 방어력 : 100
특성 : 땅 속 숨기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 미친 듯이 상대를 찢는 개형 마수다. 마력이 높아질수록 공격 속도가 이동 속도와 상승한다. 마력 소모가 적고 무조건 두 마리씩 소환돼 효율은 좋지만, 체력이 적어 쉽게 죽는다.
워낙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어떤 녀석들인지 바로 감이 왔다. 하지만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겠지.
백건우는 130.7마력을 이용해 에놀드 한 마리와 그레즈 두 마리를 가볍게 불러들였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군주님을 뵙습니다.”
겉보기엔 영락없는 까만 괴물들. 쩍쩍 갈라진 피부에 특유의 끈적끈적한 녹색 타액, 그리고 험상궂은 인상이 그러했다.
한데 하는 짓은 정말로 군주를 따르는 군병이 따로 없었다. 아니, 똑같았다.
백건우는 에놀드와 그레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나는 너희의 무엇이냐?”
“하늘이십니다.”
“위대한 존재이십니다.”
만족스런 대답에 방긋 웃으며 다시 한 번 기특함을 표시하는 백건우였다.
방금 전 첫인상과 다르게 이젠 귀엽게 보인다. 약간 인상만 사나운 개구쟁이들이랄까.
물론 소환사이기 때문이겠지. 뭇사람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을 것이다.
‘본격적인 시작이다.’
백건우는 에놀드와 그레즈를 다시 마계에 돌려보내고 수풀을 벗어났다. 이제 초보자의 숲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갈 때였다.
그런데.
띠링!
[뛰어난 무력의 소유자인 당신은 기어코 숨겨진 장소, 첫 번째 비밀의 문 돌파에 성공했습니다!]
[두 번째 비밀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비밀의 문’ 연계 퀘스트를 받으시겠습니까?]
어쩐지 문지기가 떨어뜨린 무기에 왜 최하급이란 말이 붙어 있나 싶었다. 더 윗급 무기가 있지 않고서야 굳이 그 말을 쓸 필요가 없거든.
백건우는 아무쪼록 좋았다.
‘연계라면 언제나 예스지. 게다가 숨겨진 장소라면······ 무조건 이득이 될 거다.’
고개를 끄덕이자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비밀의 문 : 두 번째
구분 : 연계 퀘스트(2/7)
난이도 : 어려움
제한 : 첫 번째 비밀의 문을 연 자
보상 : 1,000만 베니
페리스 자작령 외곽 어딘가에 기이한 동굴이 하나 있다. 그곳을 찾아 문지기와 내부의 몬스터를 죽이고 두 번째 비밀의 문을 탈환하라. 다음 비밀의 문은 앞선 과제를 해결해야만 개방된다.
총 일곱 단계로 이뤄진 연계 퀘스트.
어려움 난이도라니 어딘가 모르게 씁쓸했다. 대개 초장엔 쉬움이나 보통 난이도를 주기 마련인데.
하나 백건우는 개의치 않았다. 일종의 숨겨진 퀘스트인데 이 정도야 감수할 만했다.
‘잘됐다. 페리스 자작령은 어차피 들려야 할 곳이거든.’
바깥세상의 첫 걸음은 마법사로의 전직이다. RPG게임처럼 상태창이나 스킬창에 변화를 주는 건 아니고 마법 길드에서 따로 인증을 받는다.
나 마법사요, 하는 증표 같은 것.
아무튼 그 마법 길드가 페리스 자작령에 있다. 겸사겸사 비밀의 문 퀘스트를 해결하면 되겠지.
‘보상으로 1천만 베니를 줘?’
뒤늦게 보상이 눈에 들어왔다. 난이도 때문인지 액수가 장난 아니었다.
아, 돈의 가치?
대한민국 원화를 떠올리면 된다. 그쪽의 1천만 원이 이쪽의 1천만 베니와 거의 같다.
백건우는 왠지 모르게 든든해진 가슴을 안고 이젠 정말로 초보자의 숲과 작별을 고했다.
근 보름간을 지낸 곳.
이미 한 번 경험했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늘 새롭고 숨 가쁘게 지나갔다.
아마, 목숨 걸고 싸웠기 때문이겠지.
[이곳은 초보자의 숲의 출구입니다. 나가면 절대 되돌아올 수 없습니다. 정말 나가시겠습니까?]
절벽 다리를 지나 도착한 출구.
아까 봤던 알림이었다. 이만큼 경각심을 준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으란 뜻이리라.
백건우는 나간다, 라고 말하며 통째 나무로 이뤄진 문을 잡아당겼다.
‘오랜만이군.’
바깥세상, 라프테니아 대륙!
푸르른 하늘과 둥실둥실 구름 아래 끝없는 나무가 펼쳐져 있었다.
또 숲?
그렇긴 한데 약간은 다르다. 초보자의 숲은 밑도 끝도 없이 숲만 있는데, 여긴 자이니 남작령으로 이어지거든.
‘거기서 이동 마차를 타고 페리스 남작령으로 가자.’
아직 말 등의 탈 것을 얻지 못한 상태다. 무작정 걸어가기보다 인근 영지에서 상인들의 행로를 밟는 게 좋을 것이다.
백건우는 밀빵과 생수로 간단히 요기하며 중간에 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자이니 남작령까지 가려면 3시간은 걸어야 할 테니 서둘러······.
띠링!
[‘세 개의 꽃을 만든 자 업적’으로 인해 새로운 퀘스트가 생겼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아차.
보스전이다, 비밀의 문이다, 뭐다 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삼꽃 세트의 효과로 바깥세상에 나오자마자 연계 퀘스트가 발동된다 했었는데.
‘확인한다.’
또 다른 꽃을 찾아라.
구분 : 연계 퀘스트(1/2)
난이도 : 어려움
제한 : 세 개의 꽃을 만든 자
보상 : 꽃갑옷
자이니 남작령 내곽에 골칫거리 건달이 한 명 있다. 그를 처리해 영지민들의 일상을 되찾아주어라.
삼꽃 세트가 끝이 아니었다. 꽃갑옷이란 게 또 있었다. 총 두 단계니 꽃무기도 있다고 봐야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한편, 의문도 들었다.
‘난이도는 또 어려움이군.’
새내기 이용자들은 보통이나 쉬움 난이도의 퀘스트만 하기 마련이다. 스탯과 장비가 마땅치 못해 그 위의 난이도를 도전했다간 시작부터 박살나거든.
하지만 백건우의 얼굴은 밝았다.
‘자이니 남작령의 골칫거리 건달이라면······ 그놈?’
3년 차 이용자, 미국인 톰.
도끼를 주 무기로 쓰는 전사형 이용자인데, 신장이 200센티미터가 넘고 체구도 어마어마 장한이다.
그래봤자 자이니 남작령 밖으로 나가면 흔하디흔한 유저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선 당해낼 자가 없다.
올 100스탯 유저.
거기다 연발도끼라는 스킬로 쩌억! 하고 내리찍으면 수준급 새내기 이용자도 단숨에 목이 날아간다.
왜 이리 잘 아냐고?
회귀 전에 들은 기억이 있으니까. 지나가다 두어 번 마주치기도 했고.
당시, 급작스런 일정 변경으로 인해 놈의 껄렁거림을 그냥 지나쳤는데 마침 잘됐다. 퀘스트하는 김에 그때의 아쉬움도 풀 수 있으리라.
백건우는 퀘스트창을 닫고 그렇게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초보자의 숲이 항구라면 바깥세상은 드넓은 바다가 되는 곳이니까.
참고로 바깥세상, 즉 라프테니아 대륙은 판타지 세계를 떠올리면 이해가 편하다.
영지, 영주, 마법사, 기사, 용병, 왕국, 제국, 황제, 엘프, 드워프, 오크 등등의 다양한 문화와 건물, 그리고 종족!
역사는 516년이지만 이건 표기상일 뿐 지구만큼이나 오래된 문명도 자랑한다.
‘저기다.’
세 시간쯤 걸었을까.
저 멀리 자이니란 이름 석 자가 박힌 커다란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자이니 남작령 남쪽 통행문!
어렴풋하던 것도 직접 확인하니 대번에 또렷한 기억으로 재생됐다.
백건우는 품에서 이름과 소속 등이 박힌 명패 하나를 꺼냈다. 라프테니아 대륙 이용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일종의 신분증이었다.
“오랜만의 외부인이군.”
통행문에 도착해 명패를 보여주자 문지기가 위아래로 스윽 훑어보았다.
다른 문지기는 오든지 말든지 쿨쿨 수면욕을 채우느라 정신없었다.
“들어가라.”
“수고하쇼.”
막 초보자의 숲을 나온 이용자의 신분은 평민.
용건만 있다면야 언제든 내곽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시장이나 영지 관리 등을 위해선 꼭 필요한 존재거든.
백건우는 가볍게 목례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허름한 시골 동네를 연상시키는 자이니 남작령의 전경이 펼쳐졌다.
‘여전하군.’
전반적인 영지 수준은 물론이요, 치안이나 재정이 극악을 달리기로 전부터 유명했다.
그러니까 시장 바닥의 유명 건달, ‘톰’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이겠지.
“얼마지?”
“2만 베니입니다.”
초보자의 숲을 나올 때부터 이미 늦은 오후였던지라 벌써 날이 저물어 있었다.
내일을 기약해야 할 상황이라 백건우는 주점과 식당을 겸업하는 근처 여관을 찾았다.
아무렴 하루 묵는 거라지만 숙박비가 굉장히 쌌다. 대실비라 해도 믿길 정도였다.
‘내일도 바쁘겠군.’
백건우는 룸에 올라와 뜨끈한 물에 몸을 지진 후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톰을 처리하고 이어서 바로 페리스 자작령으로 넘어가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15서클 마법사였습니다』 1-2권에 계속>
댓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