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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학사 1

2017.10.11 조회 11,236 추천 83


 무당학사 1권
 
 
 서장
 
 
 <협조 공문
 내용
 학문에 조예가 있고, 도교 경전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을 본산에 추천을 해 주기 바랍니다.
 추천을 해 준 자가 본산에 고용이 될 경우 그에 대해 장문인께서 친히 치하를 하실 것입니다.>
 
 짧게 적히고 무성의한 공문··· 하지만 이 공문을 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무성의한 공문이 아니었다.
 공문이 날아온 곳이 바로 무당산, 무당파였으니 말이다.
 
 
 제1장 죽대선생의 반찬 투정
 
 
 호북 방헌현.
 방헌현은 대나무가 유명한 마을이었다. 대나무로 만든 죽기가 유명했고,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죽엽청, 대나무를 이용한··· 어쨌든 대나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파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곳이 바로 방헌현이었다.
 그리고 방헌현에 한 가지 명물이 자리를 잡았다. 이름 하여 방헌학관, 한림원 대학사를 지낸 죽대선생 박현이 낙향을 하고 제자 한 명을 데리고 중원을 떠돌다 방헌현의 대나무들을 보고 정착을 한 것이다.
 사람들이 박현 자신을 보고 대나무를 뜻하는 죽대, 높여서 죽대선생이라고 칭하니 대나무가 우거진 방헌현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박현을 죽대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진정한 군자이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지조와 절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가 늘 차고 다니는 죽대, 즉 대나무 허리띠가 영향이 컸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매를 아끼는 것은 그들을 잘못 키우는 것이라는 엄사지도嚴師至道를 가진 박현은 언제 어느 때라도 제자들을 훈계할 수 있는 도구, 즉 죽대를 차고 다녔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박현을 죽대선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현은 죽대선생이라는 칭호를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다.
 죽대라는 의미가 대나무를 뜻하기에 군자가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호인 것이다. 그래서 박현은 아예 자신의 호를 죽대로 바꿨다.
 그런 그이니 방헌현의 대나무 숲이 마음에 들 수 밖에···.
 
 방헌현 외곽에 위치한 대나무 숲에 죽대선생이 연 방헌학관이 위치해 있었다.
 방헌학관의 문지기 오진은 입구를 쓸고 있었다.
 스스슥! 스스슥!
 작은 소리와 함께 입구 근처에 흩어져 있던 대나무 잎들이 한 군데로 모여졌다.
 대나무 잎들을 모아서 대나무 숲에 가져다 버린 오진이 문 옆에 빗자루를 내려놓고는 허리를 폈다.
 휘이익!
 한 줄기 바람이 부는 것과 함께 대나무 숲이 출렁거렸다. 대나무 숲에서 흘러나오는 청아한 선향에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은 오진이 중얼거렸다.
 "시발."
 작게 욕설을 뱉은 오진이 방금 내려놓은 빗자루를 다시 집어 들었다.
 대나무 숲에서 흘러나오는 선향을 맡는 것은 오진도 기분이 좋은 일이다. 단지···.
 후두둑!
 바람이 불고 나면 대나무 잎들이 비처럼 쏟아지지만 앉는다면 말이다.
 하늘에서 누가 쏟아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떨어지는 대나무 잎들을 보며 오진이 한숨을 쉬고는 다시 빗질을 하기 시작했다.
 방헌학관 입구를 지나 조금 들어가면 넓은 마당이 나온다.
 원래는 방헌학관에 수학을 하러 오는 인재들의 건강을 위해 아침에 간단한 운동을 시킬 생각으로 만들어진 마당이지만··· 지금은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죽대선생과 제자, 그리고 몇 몇의 고용인들 뿐이었다.
 마당을 지나면 진정한 방헌학관이라고 할 수 있는 네 개의 방이 나온다.
 매난국죽을 이름으로 삼는 학사들이 수학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네 개 방은 사용하지 않은 기간이 십년이었다. 즉 죽대선생이 정착을 하고 난 후 한 번도 학사들이 이 방에 들어 온 적이 없었다.
 매난국죽을 지나면 죽대선생과 그 제자가 머무는 별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별채에서 죽대선생과 제자, 호현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
 
 백발과 백염이 무척 잘 어울리는 노학사와 열여덟 소년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백발의 노학사 죽대선생은 요즘 심기가 많이 불편했다.
 젓가락을 들 생각을 하지 않고 얼굴이 굳어져 있는 죽대선생을 향해 제자이자 방헌학관의 총관을 맡고 있는 호현이 말을 걸었다.
 "스승님."
 호현의 부름에 죽대선생이 눈을 찡그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느냐?"
 "심기가 불편해 보이십니다."
 호현의 말에 죽대선생이 잘 말했다는 듯 밥상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죽순, 죽순, 죽순, 죽순··· 왜 찬이 모두 다 죽순 요리냐! 죽을 날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는 아무거나 처먹으라는 것이냐!"
 죽대선생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요 근래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들이 모두 죽순으로 된 요리들뿐이었던 것이다.
 한림원 대학사를 지낸 대단한 학식과 인격을 가진 죽대선생도 미각이라는 것을 가진 인간, 그리고 죽대선생은 미식가였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 반찬 투정을 하는 것 같아 그 동안 참고 지냈지만 죽순만 올라오는 밥상을 열흘 가까이 받자 죽대선생이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을 한 것이었다.
 "스승에게 죽순이나 먹이라고 내 너를 그리 가르쳤느냐!"
 반찬을 가지고 가르침까지 운운하는 죽대선생을 보며 호현이 한숨을 쉬었다.
 "네 이놈! 지금 스승이 말하는데 한숨을 내 쉬어! 이제는 네 학문의 경지가 나를 비웃을 경지에 오른 것이냐! 이제는 스승인 내가 우습게 여겨지느냐!"
 죽순 요리에 맺힌 것이 많았는지 죽대선생은 학문과 스승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화를 냈다.
 "스승님 제가 어찌."
 "그럼 왜! 반찬이 죽순 요리 하나 뿐이냐!"
 죽대선생의 일갈에 호현이 한숨을 쉬다가 입을 열었다.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돈? 무슨 돈?"
 "휴! 스승님 학관에 돈이 이제 없습니다. 여기 있는 죽순도 저와 철이 아줌마가 같이 대나무 숲에 가서 캐온 것들입니다."
 호현의 말에 죽대선생이 말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낙향을 할 때 가지고 온 돈이 꽤 있을 터인데? 그게 벌써 떨어지다니 말이 되느냐?"
 "스승님 저희가 이곳에 정착을 한 지가 십년입니다. 십년 동안 들어오는 것은 없고 나가기만 하니···."
 잠시 말을 멈췄던 호현이 이번 기회에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동안 스승님께서 모으신 고서적들의 구입비에 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어허! 어찌 학사라는 자가 서적 구입에 들어가는 돈에 아까워하는 기색을 보이느냐."
 "그 서적 구입에 들어가는 돈만 아껴도 죽순 요리가 아닌 스승님이 좋아하시는 고기 요리를 장만 할 수 있습니다."
 호현의 말에 죽대선생이 눈을 찡그렸다.
 '이 놈이 머리가 컸다고 이제는 대들어? 현이를 키울 때 매를 아끼지 말았어야 했음이야.'
 호현이 들으면 '언제 매를 아끼셨습니까? 그 죽대로 맞다가 살이 터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라고 할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 죽대선생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언제 쯤 돈이 들어오겠느냐?"
 죽대선생의 물음에 호현이 한숨을 쉬었다.
 "스승님··· 돈 들어올 곳은 없습니다."
 학관이 돈을 벌려면 학생들이 있어야 하는데··· 수학을 하고 싶다고 온 학사들을 시험해 본 죽대선생이 마음에 안 든다고 모두 쫓아 버린 것이다.
 그래서 방헌학관에는 현재 죽대선생이 낙향을 하면서 데리고 온 자신만이 있는 것이다.
 아니, 한 군데 방헌학관에 학생들 말고도 돈이 들어오는 구멍이 하나 있기는 했다.
 방헌현과 인근 현에 현관이 바뀌거나 호북성에 고위 관리가 임명이 되 내려오면 그들이 죽대선생에게 인사를 드리러 온다.
 죽대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한림원에서 그에게 수학을 한 학사들이 중앙 각부 요직에 남아 있어 그들과의 인맥은 살아 있는 것이다.
 허니 죽대선생과 안면을 트려는 관리들이 가끔 방헌학관을 찾아왔고, 뇌물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작은 성의를 표시하고 갔다.
 허나 문제는 요즘은 인사이동 시기가 아니라 선물을 들고 올 관리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죽대선생에게 경제관념이 없다는 것이었다.
 들어오는 돈보다 죽대선생이 사들이는 고서적 구입비로 나가는 돈이 더 많으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인 것이다.
 "뭐라? 그럼 계속 이 죽순이나 씹어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
 그렇지 않아도 돈을 해결하기 위해 죽대선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던 호현이 슬며시 말했다.
 "스승님 그래서 말인데··· 사형들에게···."
 사형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죽대선생이 손으로 식탁을 쳤다.
 탁!
 방금 전까지는 투정 비슷하게 화를 냈다면 지금 죽대선생은 진정 화가 난 듯 했다.
 "너에게··· 사형들은 없다."
 싸늘하게 식은 죽대선생의 음성에 호현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런··· 스승님께서 사형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실수를 했구나.'
 "죄송합니다."
 호현이 고개를 숙이는 것에 죽대선생이 한숨을 쉬고는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먹자구나."
 죽대선생이 죽순볶음을 집는 것을 본 호현이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조용히 밥을 먹던 죽대선생이 문득 호현을 바라보았다.
 "학관에 돈이 다 떨어졌다고?"
 "그렇습니다."
 "그럼 오씨 부부 급여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오씨 부부는 학관에서 숙식을 하면서 일을 하는 고용인으로 남편인 오진은 학관 문지기를 하고, 아내인 철이 아줌마는 음식과 집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번 달 급여를 못 주었습니다."
 호현의 말에 죽대선생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근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허! 오씨 부부는 이곳에서 버는 돈이 전부인데 그것을 못 주었다니··· 어찌한다."
 "스승님, 그렇지 않아도 제가 저희 학관의 재정을 늘릴 방도를 생각한 것이 있는데 말을 해도 되겠는지요."
 "그런 생각이라면 어서 말해 보거라."
 "스승님도 아시다시피 이제 두 달 후에 원시가 열립니다."
 명나라 과거는 동시, 원시, 향시, 회시, 전시 다섯 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원시는 이 중 두 번째 단계의 시험이었다.
 "그래서?"
 "원시를 준비하는 동생(동시 합격자)들에게 수업료를 받고 원시를 대비한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과거 준비를 이곳에서 시키자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호현의 답에 죽대선생이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호현이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에 정착한 후 십 년, 그 동안 스승님에게 사사를 받고 싶다고 찾아온 학사들의 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찾아온 학사들은 모두 돌아가야만 했다. 찾아온 학사들 중 죽대선생의 눈에 차는 자들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고작 원시를 준비하는 학사들을 받아들이라니··· 그것은 죽대선생의 자존심을 꺾으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저희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속으로 죽대선생에게 중얼거린 호현이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죽대선생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가르치겠다."
 자신이 말을 하기는 했지만 죽대선생이 승낙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호현이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헉! 스승님 진정이십니까?"
 "어쩌겠느냐···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삶이기는 하지만, 내 자존심 살리자고 밑에 있는 식구들을 굶길 수는 없는 일이니··· 또한 죽으면 사라질 지식 지금이라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해야겠지."
 잠시 말을 멈춘 죽대선생이 말을 이었다.
 "허나··· 배움에 대한 열의가 없는 자들은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없는 자는 저희 방헌학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동생들을 모아 보거라."
 "알겠습니다."
 죽대선생의 허락에 호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앉았다.
 '오늘 하루는 분주할 듯 하니 배를 채우고 움직여야겠다.'
 호현의 젓가락질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
 
 죽대선생이 동생들을 가르치기로 결정을 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죽대선생은 한림원 대학사를 지낸 대석학이다. 그런 사람이 십년 동안 학관에 학사들을 들이지 않다가 갑자기 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선언을 했으니··· 호북에 사는 학사들 그 중 동생들 입장에서는 가뭄에 소나기가 쏟아진 격이었다.
 대석학인 죽대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외에도 학사들에게는 한 가지 이로운 점이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가르친 사람이 죽대선생이라는 간판이었다.
 원시를 볼 때 감독관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한림원 대학사를 지낸 죽대선생을 무시할 수는 없을 터··· 같은 점수를 받은 학사가 있다면 죽대선생 밑에서 수학을 한 학사가 더 이로울 것이다.
 하여튼 이런저런 상황이 맞물리자 방헌학관의 문을 향한 동생들의 두들김이 계속 되었다.
 
 방헌학관은 연일 찾아오는 동생들로 때 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학관에 있는 네 개 수학실은 이미 꽉 차 있었고 수학실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학사들이 마당에 자기들이 알아서 천막을 치고 빼곡하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학사들로 터지기 일보 직전인 학관을 학사의와 학관까지 차려 입은 죽대선생이 둘러보고 있었다.
 죽대선생의 얼굴에는 짙은 짜증과 피곤함이 깃들어 있었다. 한림원에서 학사들을 가르쳐 본 적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제자를 들여 가르쳐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수 백명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가르침을 내린 적은 없었던 것이다.
 학관이 터질 듯 모여 있는 학사들을 보던 죽대선생이 뒤에 있는 호현을 바라보았다.
 "이보시게 이곳이 시장터인가?"
 "무슨 말씀이신지?"
 "이곳이 학사들이 조용히 자신의 학문을 익히며 마음을 수양하는 학관이 맞냐는 말일세."
 죽대선생의 말에 호현이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당연히 학관이 맞습니다. 그러니 저기 있는 학사들이 이렇게 모여서 수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허··· 수학이라니, 저렇게 번잡하게 모여 서적을 읽는다고 해서 수학이 되더란 말이냐? 수학이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옛 성인들의 가르침을 마음에 담는 것이지요."
 자신의 말을 받아치는 호현의 모습에 죽대선생이 눈을 찡그렸다.
 "그것을 잘 아는 네가 어찌 이렇게 학사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는 말이냐. 지금 저런 상태에서 학사들이 무슨 옛 성인들의 말을 마음에 담을 수 있겠느냐?"
 "그래도 어찌 하겠습니까. 스승님의 금과옥조와 같은 가르침을 받고자 천리 길이 멀다하지 않고 왔는데 내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금과옥조는 무슨··· 모두 원시 때문에 이곳에 모였다는 것을 다 알거늘."
 "원시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수학을 하고자 모인 것은 맞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들 덕에 죽순 요리는 이제 안 드셔도 되지 않습니까."
 죽순이라는 말에 죽대선생이 눈을 찡그렸다.
 그 말대로 동생들이 학관에 들어온 이후 반찬의 질과 종류가 확실히 좋아졌다.
 그것 하나는 동생들이 들어온 후 죽대선생이 느끼는 딱 한 가지 좋은 점이었다.
 "에잉! 내가 네 녀석을 잘못 가르쳤구나. 스승의 말에 한 치도 물러섬이 없어."
 자신의 말에 계속 반박을 하는 호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죽대선생이 휙 고개를 돌려버렸다.
 동생들에게 수업을 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죽대선생에게 호현이 슬며시 말했다.
 "매난국죽 사실의 문을 모두 떼어냈습니다."
 "문을?"
 "매난국죽 사실 앞에 있는 마루에서 스승님이 강연을 하시면 네 실 안에 있는 학사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돌아가면서 수업을 하시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것이 스승님이 편하실 것입니다."
 "알겠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학사들에게는 제가 강연을 할 생각입니다."
 "네가?"
 "이번에 원시가 치러지는 부의 세시 시험에 도교 경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도교 경전이라는 말에 죽대선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어떤 놈이 책임자이길래 국가의 중대사인 원시에 도교 경전을 사용한다는 말인가. 옛 성현의 말을 깨우치고 마음에 담으려면 평생을 전진해도 모자라거늘! 대체 누구냐? 이번 원시의 책임자인 학원의 원주가?"
 "동진 학사로 알고 있습니다."
 "동진? 설마 풍소경 그 미친 늙은이의 제자 그 동진?"
 "맞습니다."
 "허! 풍소경 그 미친 영감이 이제는 제자들을 시켜서 유림의 전통을 훼손하려 하는구나."
 풍소경은 죽대선생이 한림원에 있을 때 경쟁자 관계였던 유림의 거두였다.
 풍소경을 욕하던 죽대선생이 문득 얼굴이 구겨졌다.
 "네가 도경에 대해 강연을 하겠다는 말은··· 설마?"
 죽대선생의 말과 표정에 호현의 얼굴에 낭패함이 나타났다.
 '이런!'
 "보지 말라는 도경을 그 동안 보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겠지?"
 죽대선생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경지에 이르기 전 다른 곳에 시선을 파는 것이다.
 한 가지도 완수를 못한 자가 다른 곳을 파고드는 것 자체가 방만함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죽대선생의 눈에 호현은 아직 학문의 경지가 미완이었다.
 '여기서 잘못 말하면 파문을 당하겠구나.'
 예전에 호현이 도교, 불교 경전을 보다가 죽대선생에게 거의 파문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죽대선생은 유교 서적이 아닌 다른 책을 볼 경우 파문을 시키겠다고 선언을 했던 것이다.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스승님께서 내린 엄명을 거역하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내가 도경을 강연하겠다는 것이냐?"
 "얇은 지식이지만 예전에 본 노자도덕경이 있습니다."
 물론 호현이 본 도경은 노자도덕경 하나 만은 아니었다. 그 동안 스승인 죽대선생이 서점에 심부름을 보내면 하루 종일 그곳에 죽치고 앉아 도경과 불경을 보이는 대로 봤던 것이다.
 스승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 잘못인 것은 알고 있지만 도경과 불경에서 말하는 가르침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면 스승인 죽대선생이 대노를 할 터이니 이야기를 하지 않을 뿐이었다.
 "스승님이 도경에 대해 가지고 계신 생각을 알고는 있지만 천리 먼 길에서 온 저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호현의 설명에 죽대선생이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이냐?"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스승님에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동안 저를 어떻게 보신 것이옵니까."
 "흠··· 너를 잘 아니 묻는 것이다."
 죽대선생이 마당에 있는 학사들을 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동생들을 가르치기로 한 것··· 내 밑에서 수학을 한 자들이 원시에서 떨어지는 것도 내 체면이 걸린 일이니. 어쩔 수 없군. 네가 아는 도경 지식이라도 저들에게 알려 주거라."
 "알겠습니다."
 죽대선생이 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매난국죽 사실을 향해 가는 것을 보며 호현이 마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
 
 송충이가 기어가는 듯 짙은 눈썹을 가진 호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학사들을 흩어보았다.
 자신을 보는 학사들의 눈을 본 호현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들의 눈에서 자신을 깔보는 듯한 생각을 읽은 것이다.
 '배움을 청하러 온 자들이 남의 외양만 보고 사람을 업수이 여기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들을 내쫓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들은 학관에 수업료를 내고 들어온 자들 그럴 수는 없었다.
 이들이 낸 돈으로 오씨 부부에게 급여를 지급했고 죽대선생의 밥상에 고기를 올릴 수 있었다.
 고기반찬이 올라오자 아이처럼 좋아하던 죽대선생을 떠올린 호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내가 향시에 합격을 했을 때보다 더 좋아하시다니.'
 호현이 향시에 합격한 것은 작년 즉 열일곱의 나이였을 때다. 열일곱에 향시 합격은 전무후무한 일이기에 호현은 스승인 죽대선생도 좋아 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죽대선생은 당연한 일을 가지고 왜 그리 수선을 떠냐며 화를 내셨다.
 하지만 며칠 후 호현은 죽대선생의 서재에서 자신의 향시 합격증서가 족자에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제자가 자만에 빠질 것을 염려해 겉으로는 합격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말 했지만 호현의 향시 합격을 누구보다 더 기뻐한 것은 바로 죽대선생이었던 것이다.
 '밥상에 계속 고기반찬을 올리려면 이들을 가르칠 수밖에···.'
 스승님이 좋아하는 고기반찬을 위해 참기로 한 호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게다가 스승님이 주문을 해 놓은 고서적들에 대한 값도 치러야 하고 말이야.'
 이들이 내는 수업료가 없으면 고기반찬은커녕 스승님이 주문해 놓은 곰팡이 쓴 고서적들을 뜯어 먹어야 하는 것이다.
 입맛을 다신 호현이 학사들을 향해 말했다.
 "입관 상담을 하실 때 저를 보셨으니 따로 예의는 안 차리겠습니다. 죽대선생님의 제자 호현입니다. 그럼 이제 도경에 대한 강의를···."
 "그 전에 자네가 우리를 가르칠 능력이 되는 건가? 우리는 죽대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온 거지. 자네와 놀아주려고 온 것이 아닐세."
 "그래 맞아."
 "자네 말고 죽대선생님을 모시고 오게!"
 학사들이 보내는 야유에 호현이 한숨을 쉬었다. 호현 자신은 향시를 합격한 거인이다.
 그런 자신이 왜 향시도 아니고 원시 시험을 보는 학사들에게 이런 야유를 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여러분들의 도교 강의는 제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는 지금 다른 분들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습니다."
 호현의 말에 앞 줄에 앉아 있던 반백의 머리칼을 가진 오십 줄의 노학사가 입을 열었다.
 "좋네, 우리가 늦게 와 안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죽대선생님께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겠지."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을···."
 "그 전에 내가 자네에게 한 가지 묻겠네. 태극이 뭔가?"
 노학사의 물음에 호현이 눈을 찡그렸다.
 "지금 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네. 최소한 우리를 가르칠 자의 능력은 알아야 하지 않겠나? 나보다 못한 자에게 배우기 위해 그 먼 길을 온 것이 아닐세."
 노학사의 대답에 호현이 학사들을 흩어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답변을 하면 당장 이런저런 반박을 할 듯 입술이 달싹거리고 있었다.
 '가르침을 청하는 자들이 어찌 이리 건방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하루를 가르쳐도 저들에게는 내가 스승이 되거늘!'
 엄격한 스승 밑에서 자라 스승 보기를 하늘같이 여기는 호현으로서는 지금 앞에 있는 자들이 하는 행동은 상상도 해 본적이 없는 무례한 행위였다.
 화가 나는 것을 느낀 호현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태극에 대해 물으셨습니까."
 "그렇네. 자네가 생각하는 태극을 이야기 해 보게."
 노학사의 말에 호현이 노자도덕경을 떠올렸다.
 '되도록 쉽게 설명해야겠구나.'
 도교의 기본이고 핵심이자 기본인 노자도덕경과 태극을 떠올린 호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물은 음을 받치고 양을 포용하여 조화를 이룹니다. 물처럼 행동하고 물처럼 생각하니 태극은 물과 같다 생각합니다."
 호현의 말에 노학사가 비웃음을 흘렸다.
 "하! 말은 번드르르하군! 허나! 태극은 음양의 이치이네. 태극은 물과 같다고 누가 그러던가? 물이 있으면 불이 있고 바람이 있으면 땅이 있듯···."
 노학사의 말에 호현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말한 태극의 뜻을 이해를 못하는군. 도교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기는 한 것인가?'
 도경의 기본 서적인 노자도덕경, 그 중 상선약수를 예로 들어서 설명을 했음에도 노학사가 이해를 못하니 절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호현이었다.
 노학사는 자신의 말에 심취해 호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태극이란 우주의 섭리를 담고 만물의 이치를···."
 주위에 있는 학사들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노학사가 흥에 겨운지 입에서 침까지 튀기며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한숨을 쉰 호현이 입을 열려는 순간 학사들 틈에서 한 청년이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혹시 호현 학사가 아니시오?"
 자신을 알아보는 청년의 모습에 호현이 그를 바라보다 그가 누구인지 기억을 해 냈다.
 '사년 전 원시를 볼 때 봤던 사람이군. 이름이 뭐였더라··· 진충이었지?'
 청년의 이름을 기억해 낸 호현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진충 학사님이시군요."
 자신을 기억하는 호현의 모습에 진충이 웃으며 마주 포권을 했다.
 "역시 호현 학사가 맞군요. 사년 전에 보고 지금 처음 보는데 제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니 영광입니다."
 "진충 학사님도 제 이름을 기억하시잖습니까."
 "그저 그런 원시 시험 응시생인 나와 호현 학사가 어디 같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한참 신이 나서 떠들던 자신의 말을 중간에 끊고 나타난 진충을 못 마땅하다는 듯 보던 노학사가 잘 걸렸다는 듯 끼어들었다.
 "자네! 어찌 학사라는 자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깎아 내리는 것인가? 게다가 지금 자네가 한 말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그저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격이 아닌가!"
 노학사의 말에 진충이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어르신은 이 분 호현 학사님이 어떤 분인 줄 알고 그 앞에서 연설을 하고 계십니까?"
 "죽대선생님의 제자가 아닌가.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 아무리 대석학이신 죽대선생님의 제자라 하나 저렇게 어린 자가 지금 누구를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노학사의 말에 진충이 한숨을 쉬고는 호현을 가리켰다.
 "이 호현 학사는 열 네 살의 나이에 원시에 급제하고 17살의 나이에 향시를 합격한 거인擧人입니다."
 진충의 말에 노학사와 다른 학사들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반백이 되도록 원시에 합격을 하지 못한 학사들도 있다.
 평생을 공부해도 향시를 합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열 넷에 원시에 합격하고 17살에 향시를 합격했다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공자 앞에서 문자를 썼다는 것을 깨달은 노학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기 호현 학사가 정말 향시를 합격한 거인··· 입니까?"
 하대를 하던 방금 전과 달리 슬며시 존대를 하는 노학사의 물음에 호현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입니다."
 호현의 말에 노학사가 멍하니 그를 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 나이 오십이 넘도록 원시를 넘지 못했거늘··· 호현 학사는 열일곱의 나이에 벌써 향시를 합격하다니··· 하아!"
 한숨을 쉬던 노학사가 호현을 향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봉원에서 온 오가라 합니다. 내 눈 앞의 우물을 보지 못하고 물이 없다 타박을 했으니··· 내 사과를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는 더 이상 호현 앞에 서 있기 민망한지 서둘러 마당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모습을 보던 호현이 방금 전까지 깔보던 눈빛은 사라지고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학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도교 강의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자신의 말에 학사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만보고 있자 호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첫 번째로··· 일단 방금 전에 제가 말을 한 태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도교의 가장 큰 사상 중 하나가 바로 노자의 상선약수입니다. 상선약수에 대해 말을 해 보실 분 계십니까?"
 호현의 말에 진충이 웃으며 말했다.
 "상선약수에 대해서 모르는 학사도 있겠습니까? 상선약수는 상선上善 즉 높은 선은 약수若水 물과 같다는 뜻입니다. 물은 형체가 없고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그 모양이 변하니, 한 가지로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마음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충의 말을 듣고 있던 호현은 더 이상 말이 이어지지 않자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더 하실 말이 없으십니까?"
 "네? 더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지금 하신 말은 책에··· 휴! 아닙니다.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호현의 말에 진충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제가 몇 가지 부연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선약수는 도교의 시조인 태상노군 노자의 사상을 뜻합니다. 노자의 도는 물과 같다는 의미이지요. 여기서 물은 도를 뜻합니다. 물은 형체가 없고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그 모양이 변합니다. 그 말은 한 가지로 고정되지 않고 사람에 따라 그 도의 깨달음이 모두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은 가다가 막히면 머무르고, 뚫리면 흐르며 늘 낮은 곳을 향해 움직입니다. 이것은 흐름을 거슬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흐름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는 것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의 도입니다."
 호현의 설명에 학사들이 멍하니 그를 보다가 한 학사가 급히 물었다.
 "아까 호현 학사께서 하신 답은 태극인데 왜 상선약수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것인지요?"
 "제 태극에 대한 깨달음이 물이기 때문입니다."
 호현의 말에 학사들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호현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깨달음을 이해 못하는 학사들이 답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도라는 것은 천인천색을 띠는 것, 자신이 깨우친 도를 다른 사람이 이해하라는 것도 무리였다.
 깨닫는 도는 모든 사람마다 다른 것이니 말이다.
 "제가 한 말 중에 태극에 대한 이야기는 머리 속에서 지우시기 바랍니다. 제가 말을 한 태극의 깨달음은 제가 깨우친 것··· 여러분들은 각자 자신만의 태극을 깨달으시면 되는 것입니다. 아! 하지만 상선약수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을 해 두시기 바랍니다. 혹시 이에 대한 문제가 나오면 그대로 적으셔도 시험관이 좋은 점수를 줄 것입니다."
 딱딱한 분위기를 무마시킬 겸 호현이 웃으며 말을 했지만 학사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 적어 놔야겠다."
 "붓."
 "호현 학사님 다시 한 번 말을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상선약수에 대해 한 말을 받아 적어 놓으려는 학사들의 모습에 호현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호현의 눈에 진충이 종이에다 자신이 한 말을 적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 모습들을 본 호현이 한숨을 내 쉬었다.
 '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려나···.'
 
 
 제2장 무단표국
 
 
 방헌현 유일한 표국인 무단표국의 연무장에서 사십 중반의 남자가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우우우웅!
 검에서 울리는 진동음과 함께 남자의 검이 부드럽게 주위를 휘어 감았다.
 스스스슥!
 부드럽지만 강렬한 검세가 뿜어지며 주변에 있던 흙과 먼지들이 남자를 중심으로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중년인이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팟!
 검을 긋는 동작과 함께 회오리치던 흙먼지들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검집에 검을 넣은 중년인이 주위에 흩어져 있는 흙먼지들을 흩어보았다.
 중년인의 주위 일장 이내에 둥그렇게 흙먼지들이 쌓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중년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유운검법의 성취가 8성에서 더 이상 오르지가 않는구나."
 유운검법의 성취가 8성을 넘으면 흙먼지들이 주위 일장이 아니라 2장 밖까지 남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흔적은 그가 유운검법 8성을 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쾅!
 연무장으로 통하는 대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한 뚱뚱한 중년인이 나타났다.
 그 모습에 중년인, 무단표국의 국주 진유검 호불위가 눈을 찡그렸다.
 이곳은 호불위가 연무를 하는 개인 연무장, 자신이 이곳에서 연무를 할 때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국주님! 국주님! 큰일 났습니다!"
 호들갑을 떨며 다가오는 무단표국의 총관 금부식을 보며 호불위가 한숨을 쉬었다.
 "내 연무를 방해하면서 나타날 정도의 사안이기를 바라네."
 금 총관이 큰일이라는 소리를 거듭 외치고 있었지만 호불위는 그리 걱정이 되지 않았다.
 자신은 무당의 속가 제자, 그것도 무당파 장로인 청명진인의 속가 제자다.
 그런 자신과 무단표국을 어렵게 할 문파와 인물은··· 너무 많아 셀 수는 없지만, 그런 인물과 문파는 호불위가 알아서 피해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인물과 문파는 감히 무당파의 비호를 받는 무단표국과 호불위를 건들지 않고 말이다.
 "정말 큰일 났습니다."
 "그러니 그 큰일이 뭔지 어서 말해보게."
 금부식이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무당파에서 서찰이 왔습니다."
 서찰을 본 호불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당>
 
 간단한 두 글자였지만 호불위가 한숨을 쉬었다.
 '돈을 보내라는 서찰인가?'
 "안 뜯어보십니까?"
 "끄응! 뜯어봐야지."
 서찰 안에 적혀 있을 내용에 슬며시 겁이 나는 호불위가 서찰의 봉인을 풀고는 내용물을 꺼냈다.
 
 <협조 공문
 내용
 학문에 조예가 있고, 도교 경전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을 본산에 추천을 해 주기 바랍니다.
 추천을 해 준 자가 본산에 고용이 될 경우 그에 대해 장문인께서 친히 치하를 하실 것입니다.
 공문을 받은 후 7일 이내에 위 사항과 맞는 사람을 데리고 본산으로 오기 바랍니다.>
 
 서찰에 적힌 내용을 읽은 호불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 장문인께서 친히 치하를 하신다고?'
 얼굴이 굳어지는 호불위의 모습에 금부식이 급히 물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돈을 보내라는 서찰이라면 거절을 하셔야 합니다. 방금 전에 이야기 했지만 저희 재정도 넉넉한 편은 아닙니다."
 정색을 하는 금부식의 말에 호불위가 고개를 저었다.
 "돈을 보내라는 내용이 아니네."
 호불위가 서찰을 내밀자 금부식이 급히 그 내용을 살폈다. 무단표국의 내정을 살피는 그로서는 무당파의 요구가 무언지 알아야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 말이다.
 서찰 내용을 본 금부식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이상하군요. 내용을 보면 학사를 고용하겠다는 것 같은데··· 무당파에서 왜 학사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네?"
 "그럼 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까?"
 "마지막 문장을 보게. 추천을 해 준 자가 고용이 될 경우 장문인께서 친히 치하를 하신다는 것 말이네."
 호불위의 말에 금부식이 서찰을 다시 한 번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중요한 겁니까? 새해마다 국주께서 장문인을 만나고 오시잖습니까?"
 금부식의 말에 호불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장문인을 만나고 온다는 것은 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한 허풍일 뿐이었다.
 물론 호불위는 새해마다 무당파에 갔다 오기는 한다. 사부인 청명진인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때까지 호불위가 무당파 장문인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삼십 년 전 무당파 속가로 들어갈 때 단 한 번··· 그리고 그 때는 장문인이 일대 제자였지, 장문인이 아닐 때였다.
 즉··· 호불위는 정식으로 무당파 장문인을 만났던 적이 없었다. 아마 장문인은 호불위라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장문인은 나 같은 사람 모른다는 말은 생략하기로 한 호불위가 연무장을 나섰다.
 자신의 뒤를 따라 오는 금부식을 향해 호불위가 말했다.
 "우리는 받아 본 적이 없지만 가끔 본산에서 속가 제자들에게 협조 공문을 보내네."
 "우리도 돈 보내라는 협조 공문 받잖습니까?"
 "돈이야 무당의 무공을 익힌 속가라면 누구라도 보내는 것이니 이것과는 별개의 것이지."
 "그럼 이건 다릅니까?"
 "물론이네. 이런 식으로 본산에서 협조 공문을 보냈을 때 그것을 잘 이행하면 본산에서 따로 보상을 주네."
 "장문인의 치하 말입니까? 하긴 무당파 장문인이 직접 치하를 했다는 것을 사방팔방에 알리면 본 표국의 위상이 올라가겠네요."
 금부식의 말에 호불위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 뿐만이 아니지, 일을 잘 처리하면 본산에서 적당한 무공 하나를 더 가르쳐 줄 것이니 말이야. 잘 됐어 이번 기회에 유운검법 후반을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어. 그렇게 되면 8성을 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유운검법은 무당이 속가 제자에게 가르치는 무공 중 상위에 속해 있는 검법이었다.
 운 좋게 유운검법을 익힌 호불위는 그 덕에 일류 고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속가제자인 호불위는 유운검법의 전 초식을 배울 수는 없었다. 전 삼식, 중 삼식, 후 삼식으로 나뉘는 초식 중 후 삼식의 마지막 초식 만운을 익히지 못한 것이다.
 만운만 익힐 수 있다면 절정의 경지도 불가능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든 호불위가 금부식을 향해 말했다.
 "이 근처에 유명한 학관이 있던가?"
 "한림원 학사를 지내셨던 죽대 선생의 방헌학관이 있습니다. 방헌학관에서 학사를 찾으시려는 것입니까?"
 "그렇네."
 "흠··· 원시가 보름 후 예정이라 지금은 학사를 구하기 어려 울 텐데."
 표국을 통해 원시를 준비하는 학사들이 서적들을 구해가기에 시험이 다가온 것을 알고 있는 금부식이 난감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호불위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가보세."
 호불위의 말에 금부식이 입맛을 다시고는 그를 데리고 방헌학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공문이 나한테만 오지는 않았을터··· 다른 속가들보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
 
 금 총관과 함께 방헌학관이 있는 곳으로 향하던 호불위는 빽빽하게 자리한 죽림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나무가 참 좋군."
 "저희 현에서 자랑하는 죽림이잖습니까."
 "그렇지. 흡! 하! 죽림에서 나는 음식 냄새가 참 향기··· 응?"
 죽림에서 싱그러운 대나무 향기를 맡을 거라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음식 냄새가 맡아지자 호불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코가 잘못 됐나? 웬 음식 냄새지?'
 코를 벌렁거리며 숨을 들이신 호불위는 역시 방금과 같은 음식 냄새를 맡았다.
 "금 총관 혹시 음식 냄새 안 나나?"
 "음식 냄새가 나는군요. 죽림에서 왜 음식 냄새가 나죠?"
 금 총관이 의아해 하는 것을 본 호불위도 고개를 갸웃거리다 멀리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건?"
 호불위가 보는 것을 금 총관도 보고는 그제서야 영문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방헌학관에 수백의 학사들이 입관을 했다고 하더니··· 학사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음식 가판이 들어섰나 봅니다."
 "시장통도 아니고 왜 학관 앞에 가판을 연다는 말인가?"
 "글세요."
 호불위와 금 총관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이 어느새 둘은 방헌학관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금 총관의 말대로 방헌학관 입구 양 옆으로는 음식들을 만들어 파는 간이 가판들이 늘어서 있었다.
 만두, 국수, 밥 등 각양각색의 음식 가판들과 함께 그 뒤로 천막이 쳐져 있고 간판이 적혀 있었다.
 
 <학관 숙소
 방헌학관 입관생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숙식을 제공합니다.>
 
 간판에 적힌 내용을 본 호불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천막이 숙소란 말인가?"
 호불위와 금 총관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중년의 남자가 다가왔다.
 "방헌학관에 잘 오셨습니다. 숙박은 구하셨습니까?"
 중년인의 물음에 호불위가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중년인이 웃으며 말했다.
 "학관 내부에서는 잠을 잘 공간이 없습니다. 해서 학관에 입관을 하시면 숙식을 밖에서 해결을 해야 합니다. 수학 하시기에도 바쁜 학사님들이 현에 있는 객잔에 갔다가 언제 다시 들어오시겠습니까? 그래서 학관 바로 앞에 저렴한 가격으로 쉴 수 있는 숙소를 마련을 해 놓았습니다. 그곳에서 간단한 식사도 가능합니다."
 중년 남자의 말에 금 총관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학관에 입관을 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네."
 "그럼 무슨 일로?"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그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금 총관이 중년인을 지나치며 가려하자 그가 급히 금 총관의 앞을 막았다.
 "저는 장사치가 아닙니다. 저는 방헌학관의 문지기를 하고 있는 오진이라고 합니다."
 "학관의 문지기?"
 방금까지 호객 행위를 하던 오진이 방헌학관 관련자라는 말에 호불위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문지기라는 자가 왜 호객 행위를 하는 건가?"
 "그건···."
 우물쭈물하는 오진을 향해 호불위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문이 열리며 학사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배고프다. 오늘은 뭘 먹지."
 "어제 국수 괜찮던데."
 "그제도 국수를 먹었지 아마."
 "그럼 만두 먹지 뭐."
 학사들이 점심으로 뭘 먹을지 이야기하며 근처 음식 가판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마지막으로 호현이 걸어 나왔다. 점심 때가 돼서 그런지 학관 앞에 자리 잡은 가판에서는 맛있는 음식 냄새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흠! 냄새 좋다.'
 방헌학관에서 동생들을 받아 들인지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났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변한 것이 바로 학관 입구 풍경이었다.
 식사 때가 되면 동생들은 객잔에 가서 밥을 먹고 돌아왔는데 그 수가 꽤 되다보니 어느새 학관 앞에 음식 가판이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죽대선생이 신성한 학관 앞에 음식 냄새를 풍긴다하여 노발대발하며 화를 냈다.
 하지만 가판 주인들이 원하는 음식이 있으면 자신들이 무료로 만들어 주겠다는 말에 죽대선생이 슬그머니 물러섰다.
 그 이후 죽대선생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음식 가판에서 무료로 음식들을 즐길 수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맞는 듯 요 근래 군것질을 즐기는 죽대선생이었다.
 오늘도 죽대선생이 가지고 오라고 시킨 음식들을 떠올리며 호현이 오진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진을 찾던 호현은 한 쪽에서 낯선 사람 둘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오진 아저씨,"
 "부르셨습니까."
 호현의 부름에 오진이 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스승님께서 오늘은 만두탕을 드시겠답니다. 그리고 당과 하고요. 저는 국수하고 돼지 볶음으로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관주님을 찾아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오진이 무단표국 사람들을 가리키자 호현이 그 둘을 흩어보았다.
 '학사는 아닌 것 같은데?'
 호불위들을 보던 호현이 그들에게 다가가 포권을 했다.
 "방헌학관의 총관을 맡고 있는 호현입니다. 원시 준비를 하는 분들은 아닌 듯 한데··· 무슨 일로 관주님을 찾으십니까?"
 호현의 말에 호불위가 자신들을 소개했다.
 "무단표국에서 온 국주 호불위와 총관 금부식이 관주님에게 긴히 상의 드릴 일이 있네."
 "무슨 일인지 먼저 물어도 되겠습니까?"
 "학사 한 명을 소개 받고 싶어서 왔네."
 "학사?"
 호불위를 보던 호현이 일단 그 둘을 안으로 들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스승을 찾아온 손님들이니 말이다.
 호현을 따라 방헌학관에 들어온 금 총관이 문득 입을 열었다.
 "문지기가 호객 행위를 하던데···."
 금 총관의 말에 호현이 걸음을 옮기며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이미 알고 있었다는 호현의 반응에 호불위가 의아한 듯 말했다.
 "나에게는 없지만··· 방헌학관에서 일을 하는 자가 사사로이 호객 행위를 하는데 괜찮다는 말인가?"
 "학관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사람이 남인 것보다는 낫습니다."
 "응? 그럼 문지기가 가판의 주인인가?"
 "그건 아닙니다. 그리고 문지기가 아니라 오진 아저씨입니다."
 오진이 학관에 고용이 된 자이기는 하지만 십 년을 같이 보낸 사람이다. 고용인이라고 하기보다는 호현에게는 가족과 같은 사이였다.
 그런 오진을 계속 문지기, 문지기 하니 호현으로서는 기분이 안 좋을 수 밖에···.
 기분이 나빠 보이는 호현의 모습에 금 총관이 입맛을 다셨다.
 '나이도 어린놈이 되게 빡빡하게 구는군.'
 호현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지금 아쉬운 소리를 하러 온 것은 자신들이다.
 게다가 나이가 어려도 방헌학관의 총관직을 맡고 있다는데 호현에게 안 좋은 인상을 주면 손해를 보는 것은 자신들이다.
 그것을 떠올린 금 총관이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방헌학관에 이렇게 많은 학사들이 입관을 한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금 총관과 더 이야기하기 싫은 호현이 입을 다물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런 호현의 뒤를 따라 걸어가던 금 총관이 문득 머리에 호현의 이름이 떠올랐다.
 '가만··· 호현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어디서 들었더··· 아!'
 호현의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한 금 총관이 급히 호현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 호현 학사가 그 유명한 호현 학사요?"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금 총관을 향해 호현이 고개를 돌렸다.
 "제가 호현 학사인 것은 맞지만 유명한 호현 학사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호현의 말에 그제서야 자신이 질문을 잘못 했다는 것을 안 금 총관이 말했다.
 "작년에 거인擧人(향시에 합격한 자를 칭하는 말)이 되신 호현 학사가 맞습니까?"
 "작년에 거인이 된 것은 맞습니다."
 "아! 이거 거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금 총관이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할 때 호현이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손가락을 입에 댔다.
 어느새 죽대선생이 쉬고 있는 내실에 도착을 한 것이다.
 "스승님, 무단표국에서 호불위 국주와 금부식 총관이 뵙기를 청합니다."
 호현의 말에 안에서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죽대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이거라."
 손님이 왔다고 해서인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진중해진 죽대선생이었다.
 드르륵!
 문을 연 호현이 그 둘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무단표국 국부 호불위입니다."
 "무단표국 총관 금부식입니다."
 두 사람의 인사에 죽대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를 가리켰다.
 "앉으시게."
 두 사람이 탁자에 앉자 죽대선생이 상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호현은 차를 내오거라."
 죽대선생의 명에 호현이 내실 한 쪽에 있는 주전자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사람들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쪼르르륵!
 맑은 찻물 소리와 함께 그윽한 차향이 흘러나왔다. 향을 맡은 금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
 "대석학이 드시는 차라 그런지 다향이 아주 좋습니다."
 슬며시 아부를 하는 금 총관을 힐끗 본 호현이 입을 열었다.
 "대나무 잎을 말려서 만든 죽엽차입니다. 씁쓸한 뒷맛이 있기는 하지만 정신을 맑게 해 주고 구취를 없애는 효과가 있지요."
 "구취?"
 "드셔보시면 효과를 좀 보실 겁니다."
 호현의 말에 금 총관이 눈을 찡그렸다. 지금 호현이 한 말에 의하면··· 자신에게 입 냄새가 난다고 놀리는 것이 아닌가?
 '이런 어린놈이 어른을 놀리다니!'
 금 총관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불위가 차를 마시다 눈을 찡그렸다.
 "맛이 쓰군."
 "대체로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쓴 편이죠. 금 총관님 어서 드십시오."
 "끄응!"
 금 총관이 차를 마시는 것을 보며 죽대선생이 입을 열었다.
 "그래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죽대선생의 말에 금 총관이 찻잔을 내려놓고 자신들이 온 이유를 설명했다.
 "······ 해서 방헌학관의 학식이 있는 학사 한 분을 모셨으면 합니다."
 금 총관의 사정 설명에 죽대선생이 눈을 찡그렸다.
 "말은 잘 들었네. 하지만 불가하네."
 죽대선생이 거절을 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금 총관이 급히 말했다.
 "무당파의 일입니다. 무당파와 연을 맺는다는 것이 호북에서 무슨 의미인지 모르십니까?"
 "학사는 옛 성현들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그 뜻을 잇는 자들이지 도관 나부랭이들에게 부림을 받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네."
 "지금 무당파를 도관 나부랭이라 하셨습니까?"
 죽대선생의 말에 가만히 있던 호불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비록 속가라 하나 무당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그로서는 도관 나부랭이라는 말을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이다.
 표국 이름도 무당파와 비슷하게 무단표국으로 지은 호불위인 것이다. 물론 무당과 무단은 그 의미 자체가 아예 틀리지만 말이다.
 싸늘하게 식은 호불위의 말에 죽대선생의 얼굴에 비웃는 표정이 어렸다.
 "왜 들고 있는 칼로 찌르려고?"
 "으득!"
 호불위가 화를 삭히기 위해 이빨을 깨물었다. 그런 호불위를 보던 죽대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학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무당인지 뭔지에 가서 일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네. 그만들 물러가게."
 죽대선생의 축객령에 호불위도 더 이상 이곳에 있기 싫은지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런 호불위의 손을 금 총관이 슬쩍 잡더니 그 귀에 속삭였다.
 "밖에 모여 있는 학사들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호북의 어지간한 실력을 가진 학사들은 대부분 이곳에 모여 원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학사를 구하지 못하면 어디서 구하실 생각입니까?"
 호불위의 말에 입술을 깨문 호불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당한 무당의 속가인 자신이 대석학이라고는 하지만 학사에게 이런 꼴을 당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휴! 알겠네."
 한숨을 쉰 호불위가 애써 웃는 얼굴로 죽대선생을 향해 말했다.
 "죽대선생님 이번 일이 잘 되면 방헌학관을 무당파가 기억을 할 것입니다. 대무당파가 말입니다. 그 의미를 잘 생각해 주십시오."
 "더 이상 할 말이 없···."
 고개를 젓던 죽대선생이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수염을 쓰다듬었다.
 "무당파라··· 예전에 무당파라는 이름을 들은 기억이 나는데··· 어디서 들었더라?"
 무당파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한 죽대선생의 모습에 호불위는 어이가 없었다.
 다른 무림 문파들과 다르게 무당파는 도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을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기에 호북성에서는 무당파 도사는 양민들에게 신성시까지 되는 것이다.
 '노망난 늙은이 같으니라고 세상에 구파일방 중 하나이자 호북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무당파를 모르는 거야?'
 하지만 그것은 무림인들의 상식이지 학사들의 상식이 아니었다.
 구파일방이라는 것이야 무림인들에게야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죽대선생에게는 모두 칼 들고 설치는 무식한 무림인들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학사들이 구파일방과 무림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많이 알지 못해서 그렇지 학사들도 일반 민간인들 수준 정도의 무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단지 죽대선생은 평생을 유림과 황실에서만 살았기에 무림을 전혀 모르는 특수한 경우였다.
 게다가 호북에 정착을 한 후에도 학관 밖을 잘 나가지 않아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서도 조금 어두운 편이었다.
 예전 기억을 천천히 더듬던 죽대선생이 문득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황궁에 있는 황도관 관주 말코가 무당파라고 했던 것 같은데?"
 황도관은 황실에서 도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어진 황궁 전용 도관이었다.
 "어느 분을 말하시는지?"
 호현이 죽대선생의 서동 자격으로 한림원에 있을 때 황도관 관주가 두 번인가 바뀐 적이 있었다.
 "그 있잖아 도사 같지 않게 술 좋아하던 놈."
 "아! 청경진인을 말하시는군요."
 "그래 청경 말코··· 그 놈이 예전에 사문이 무당파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저도 그 기억이 나는군요. 청경 말··· 흠!"
 스승이 말코라고 부른다고 자기까지 말코라고 부를 수는 없기에 급히 말을 멈췄던 호현이 말을 이었다.
 "청경진인의 제자인 명오 도장이 사문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청경진인과 죽대선생은 우연히 마음을 통한 후 자주 술자리를 같이 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을 귀엽다는 듯 보살펴 주던 명오 도장을 떠올린 호현이 말을 이었다.
 "저도 무당파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죽대선생과 호현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호불위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이 둘이 나누는 대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호불위도 아는 무당파 고수들이니 말이다.
 게다가 청경진인은 무당파 장로의 신분을 가진 인물이었다.
 "청경 사숙을 아십니까?"
 본문의 존사를 죽대선생이 안다는 생각에 호불위의 목소리는 정중하게 바뀌어 있었다.
 "사숙?"
 "청경 사숙의 사제인 청명진인이 제 사부님 되십니다. 청경 사숙의 제자인 명오 도장은 저에게는 사형이 되십니다."
 "청경은 어떻게 잘 지내는가? 낙향을 하고 난 후 보지를 못했으니 십년이 넘게 보지를 못했군."
 "이 년 전에 청경 사숙을 본산에서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건강은 하던가?"
 죽대선생의 말에 호불위가 속으로 웃었다.
 '무당파에서 손에 꼽히는 무위를 가진 고수에게 건강을 묻다니··· 무림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건강하십니다."
 "잘 됐군. 흠···."
 고개를 끄덕이던 죽대선생이 무슨 생각인가를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도관인 무당파에서 왜 학사를 구하는 건가?"
 "저도 그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학사들을 이상한 곳에 쓰려는 것은 아니겠지?"
 "당당한 정파인 무당에서 그럴 리가 없습니다."
 "위험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죽대선생의 마음이 조금 움직인 것을 안 금 총관이 급히 말했다.
 "학식이 있고 도교에 대한 지식이 있는 학사를 원하는 것을 보면 도교와 관련된 학문적 일과 관련이 되어 있는 듯합니다. 게다가 무당파에 고수가 아닌 사람이 없는데 위험한 일을 왜 학사님들에게 시키겠습니까?"
 호현이 죽대선생을 향해 말했다.
 "스승님 혹시 무당파에 학사를 보내실 생각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청경 말코가 있는 곳인데 그들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그렇지 않느냐? 나중에 청경 말코가 이 일을 들으면 단단히 삐질테고 말이야."
 청경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던 기억을 떠올리던 죽대선생이 문득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낙향을 하기 전에 청경 말코가 몸 생각하라고 단약을 하나 준 적이 있는데 기억하느냐? 이름이 뭐였더라··· 태··· 태···."
 죽대선생이 태, 태 하는 것과 단약이라는 말을 들은 호불위의 머리에 무당파에서 유명한 태자로 시작하는 영약이 떠올랐다.
 '설마 태청단은 아니겠지? 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자소단보다 한 단계 아래지만, 무당파에서 이대 영약으로 치는 것이고 먹으면 10년 치 내공이 쌓이는 무가지보 영약을 저런 학사에게 줬겠어.'
 기억을 더듬는 죽대선생을 향해 호현이 입을 열었다.
 "태청단이라고 들은 것 같습니다."
 "아! 맞다, 태청단··· 그거 참 맛있었는데."
 태청단을 먹을 때 입가에 감돌던 선향과 먹는 즉시 몸에 퍼지던 상쾌한 약기운을 떠올리자 죽대선생의 입안에 침이 고였다.
 쿵!
 두 사람의 말을 들은 호불위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청경 사숙이 태청단을 줬다는 말입니까?"
 경악에 찬 호불위의 모습에 죽대선생이 눈을 찡그렸다.
 '역시 칼 들고 다니는 놈들은 정신 수양이 덜 되어 있다는 말이야. 고작 단약 하나 가지고 저리 수선을 떨다니.'
 칼 든 놈들하고는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호불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호··· 혹시 태청단 복용을?"
 "했네."
 "헉! 드셨습니까?"
 죽대선생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호불위를 바라보았다.
 "그럼 먹으라고 준 건데 버리나? 당연히 먹었지."
 태청단을 먹었다는 말에 멍하니 있던 호불위가 침을 삼켰다.
 "꿀꺽! 그럼 어떻게 드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은 것인가?"
 "부탁드리겠습니다."
 호불위의 눈동자에 어린 긴장감을 읽은 죽대선생이 예전 기억을 떠올리다가 말했다.
 "내가 관직을 그만두고 북경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에 몸살 기운이 나서 먹었네. 약효는 좋더군. 단약을 먹으니 바로 몸살 기운이 사라졌으니 말이야."
 쿵!
 "고··· 고작 몸살에 태청단을 복용하셨다는 말입니까?"
 "그렇네. 그리고 고작 몸살이라니 그 때 얼마나 몸살이 심한지 나는 죽을 뻔 했네."
 '몸살 때문에 죽는 사람이 어디에 있소!'
 속으로 고함을 지르던 호불위가 급히 물었다.
 "태청단을 드시고 운기조식은 하셨습니까?"
 "운기조식?"
 운기조식이라는 것을 죽대선생이 모르는 듯 하자 호불위가 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럼 운기조식은 무인들이 하는 것 같은데, 학사인 내가 왜 운기조식 같은 것을 하나?"
 쿵!
 운기조식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호불위의 얼굴이 종이장처럼 구겨졌다.
 '이런 병신 같은 노인네가 그 귀한 영약을 쳐 먹고 운기조식도 안 하다니!'
 사람의 자질과 체질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먹으면 십년 치 내공을 쌓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태청단이다.
 자질이 뛰어나고 운이 좋은 자는 십년이 아니라 최대 십오년 내공이 쌓이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태청단을 먹고 운기조식을 해서 그 약 기운을 흡수를 했을 때 이야기다.
 죽대선생처럼 태청단을 먹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면··· 태청단 약기운의 태반이 흡수가 되지 못하고 똥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 귀한 영약이 병신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죽대선생의 똥이 돼서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호불위는 당장 그를 쳐 죽이고 싶었다.
 자신이 먹었다면 절정의 경지에 올려 줄 수도 있을 태청단이 그 가치를 모르는 죽대선생을 만나 똥이 됐으니···.
 호불위가 분노와 질투, 거기에 허탈함까지 섞인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죽대선생을 바라보았다.
 그런 호불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죽대선생이 잘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군. 그렇지 않아도 요새 나이가 들어 기력이 예전만 못했는데 몸보신이나 하게 청경 말코에게 태청단이나 몇 개 얻어야겠어."
 죽대선생의 말에 호불위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해마다 상당한 금액의 기부금을 무당에 보내는 자신에게는 한 알도 떨어지지 않는 영약이 태청단이다.
 그런 무가지보를 몸보신용 보약재로 여기는 죽대선생을 당장이라도 후려치고 싶은지 호불위의 손이 들썩였다.
 '이런 미친 늙은이가 본문의 무가지보 영약을 뭐로 생각을 하는 거야!'
 속으로 절규를 지를 때 호현이 말했다.
 "그럼 청경진인에게 태청단 좀 보내달라는 서찰을 작성할까요?"
 호현의 말에 잘 생각했다는 듯 죽대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난 김에 지금 해야겠군. 지필묵을 가져오거라."
 '태청단을 편지 한 통으로 꿀꺽 할 생각을 해? 이런 미친 개 잡놈의 새끼들아!'
 스승과 제자가 하는 꼴에 극심한 분노를 느낀 호불위가 안간힘을 내며 화를 참고 있을 때 죽대선생이 문득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어디가 불편한가? 왜 그렇게 몸을 떨어대는 건가?"
 "으드득!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호불위의 말에 호현이 가져온 지필묵에 죽대선생이 글을 적은 후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봉투를 호불위에게 내밀었다.
 "마침 잘 됐군. 표국이니 편지 배달도 할 터 이것을 청경 말코에게 보내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가 무당의 노여움이 나한테 떨어지는 것 아냐?'
 무당파에 몸보신하게 태청단을 보내라는 편지를 받아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호현이 말했다.
 "스승님 십년이나 연락을 안 하다가 뜬금없이 태청단을 보내라고 하면 청경진인께서 서운해 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그렇군."
 호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긴 죽대선생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호불위를 향해 말했다.
 "무당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균현에 있으니··· 여기서 거리로만 따지면 사 백리 길이 조금 넘을 것입니다."
 "흠!"
 사 백리라는 말에 고민이 되는지 죽대선생이 수염을 쓰다듬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 나이에 그런 먼 길을 움직이는 것은 좀 그렇군. 귀찮기도 하고 말이야."
 '태청단을 받으러 가는 길이 귀찮아?'
 만약 호불위 자신에게 태청단을 줄 테니 받아 가라는 말이 있다면 그는 만리 길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 갈 것이다.
 그런데 그런 태청단을 얻을 생각을 하는 자가 고작 사 백리 길이 멀다고 귀찮아하니··· 열이 받아 속이 점점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호불위였다.
 "표국 사람들을 보내면 성의가 조금 없어 보이니 차라리 제가 직접 가서 받아 올까요?"
 호현의 말에 죽대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괜찮군."
 "그리고 선물도 하나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빈손으로 가서 보약 달라고 하면 청경진인 성격에 화를 내실 듯한데···."
 "하긴 청경 말코가 성격이 욱하는 것이 있기는 했지."
 "뒷끝도 좀 있으셨지요."
 "선물이라···."
 청경진인에게 보낼 선물을 고민하는 죽대선생을 보며 호현이 말했다.
 "아니면 이번에 무당에서 학사가 필요한 일이 있는 듯하니 제가 그들 일을 좀 도와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호현의 말에 죽대선생이 눈을 찡그렸다. 도사들에게 자신의 제자가 부림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 마음을 읽은 호현이 급히 말했다.
 "태청단을 얻어 오려면 어차피 무당에 가서 청경진인을 만나야 합니다. 간 김에 스승님의 옛 지인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이 제자의 당연한 소임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어려움에 처한 지인을 돕는 것도 군자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지 않는 것은 군자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기는 하지. 그런데 네가 가면 학사들의 도경 수업은 어찌 하느냐?"
 죽대선생이 대석학이기는 하나 도경 쪽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시에 나올 만한 도경 수업은 마무리가 된 상태입니다."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금 총관이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얼굴이 붉어진 호불위의 옆구리를 찔렀다.
 "일이 잘 풀릴 모양입니다."
 자신의 말에 아무 답도 하지 않고 얼굴이 굳어져 있는 호불위를 이상하다는 듯 보던 금 총관이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 죽대선생은 호현을 무당파로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호불위를 향해 말했다.
 "우리 둘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설명은 하지 않겠네. 무당파로 언제 갈 것인가?"
 죽대선생의 말에 호불위가 힐끗 호현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어린 학사가 능력이 되기는 하는 건가? 괜히 본산에 데리고 갔다가 어디서 이상한 놈 데리고 왔다고 꾸중만 들으면 내 손해인데··· 아니야 청경 사숙과 저 늙은이가 절친한 사이일 수도 있어. 하긴 절친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청경 사숙이 그 귀한 태청단을 내놔겠어? 그러면 능력이 안 되도 청경 사숙의 입김이 있으면 무당에서 저 어린놈을 고용할 수도 있겠어.'
 능력보다는 인맥이라는 생각을 한 호불위가 말했다.
 "학사님만 준비 되시면 바로 출발을 하겠습니다."
 "알겠네."
 호현을 미덥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을 때 금 총관이 웃으며 호불위의 귀에 속삭였다.
 "일이 잘 되려고 하니 술술 풀리는군요. 이게 다 국주님이 평소 쌓으신 공덕인 듯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호현 학사가 무당파에 고용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말입니다."
 "하긴 청경 사숙의 입김이라면 학사 하나 고용 시키는 것이야 문제가 아니겠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서 왜 청경진인의 이름이 나옵니까? 아! 국주님 혹시 호현 학사님에 대해 모르십니까?"
 "내가 알아야 하는 이름인가?"
 "세상에 어떻게 방헌에서 표국을 하는 국주님이 호현 학사를 모르십니까? 아까 제가 호현 학사와 한 이야기도 들으셨잖습니까?"
 "이야기?"
 "제가 호현 학사를 거인이라고 했잖습니까?"
 "거인?"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호불위의 모습에 금 총관이 한숨을 쉬었다.
 '어찌 무식해도 이리 무식할 수 있다는 말인가? 거인이라는 뜻조차도 모르다니.'
 거인에 대해 모르는 호불위에게 금 총관이 호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아홉살에 동시를 합격하고 열넷에 원시 합격, 작년 열일곱의 나이에 향시까지 합격한 천재 학사가 바로 저 호현 학사잖습니까."
 거인은 몰라도 향시에 대해서는 아는지 호불위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그리고는 호현을 놀람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렇게 어린 사람이 향시에 합격을 해?'
 
 
 제3장 무당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놀람에 찬 눈으로 호현을 보던 호불위가 금부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향시를 합격했다고? 저 어린 학사가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제 저 호현 학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아시겠습니까? 무림인으로 따지면 열여덟 나이에 절정 고수에 이른 것과 같은 겁니다."
 "절정 고수? 그럼 천재라는 말인가?"
 깜짝 놀라는 호불위를 향해 금 총관이 고개를 저었다.
 "천재라는 말도 약합니다. 괴물이라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금 총관의 말에 호불위가 호현을 새삼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저 학사의 눈동자에 총명함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군. 아! 향시까지 합격한 학사라면··· 흐흐흐! 무당파에 고용이 되는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틀림없겠군."
 '애숭이가 아니라 복덩어리였군.'
 죽대선생과 이야기를 하던 호현은 갑자기 몸에 이는 오한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자신을 빨아먹을 듯 바라보는 호불위를 볼 수 있었다.
 '저 사람 왜 나를 저렇게 보는 거지?'
 호현을 사랑스럽다는 듯 보던 호불위가 물었다.
 "호현 학사 출발 준비하는데 오래 걸리는가?"
 "갈아입을 옷들만 몇 벌 챙기면 됩니다."
 "알겠네. 그럼 학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준비가 되면 나오게나."
 호불위가 금 총관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죽대선생이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호불위에게 주려던 서찰과 함께 호현에게 내밀었다.
 "이건 노자로 쓰거라."
 죽대선생이 건네주는 주머니를 본 호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모습에 죽대선생이 아차 싶었는지 슬며시 호현의 눈치를 보았다.
 "어디서 나신 돈이옵니까?"
 '이런···.'
 우물쭈물 답을 하지 못하는 죽대선생을 보며 호현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동생들이 낸 수업료는 학관 운영자금으로 사용을 하고 여기저기에 밀린 빚을 청산하느라 아직 죽대선생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즉, 죽대선생은 지금 돈이 하나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돈 주머니를 내미니···.
 '스승님 비상금이군.'
 학관에 돈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 비상금을 축적했다는 사실에 추궁을 하고 싶었지만··· 그 비상금을 노자로 주니···.
 '휴! 이번만 넘어가야겠군.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스승님이 비상금을 주신 것이니.'
 변명을 해야 하나 아니면 불호령을 내려 일을 덮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며 우물쭈물하는 죽대선생을 향해 호현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스승님이 주신 노자 감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응? 응! 그래··· 몸 건강히 잘 다녀오거라. 되도록 빨리 돌아오고."
 "알겠습니다. 그럼 그 동안 보중하십시오."
 고개를 숙여 보인 호현이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죽대선생의 말이 뒤에서 들려왔다.
 "잡학은 잡학일 뿐이다. 너무 깊게 파고들지 말거라."
 죽대선생의 말에 잠시 멈칫했던 호현이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죽대선생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녀석··· 도관에 간다니 너무 좋아하는군.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외도 휴가라 생각하고 돌아오면 더욱 성심을 다해 학문을 탐해야 할 것이다."
 한림원 대학사까지 지낸 죽대선생이다. 그 학문과 식견이 범상할 수는 없는 일······.
 게다가 구중심처에 있는 한림원, 학문을 익히는 일을 즐거움으로 삼는 학사들의 모임이라고 하지만 그 사이에도 모략은 존재한다.
 그런 곳의 수장을 한 죽대선생이니 제자의 생각 정도는 손금을 보듯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유학 이외의 학문을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죽대선생이 그런데도 호현을 무당파로 보내기로 한 것은 제자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막아서 그렇지 호현이 도경과 불경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그 동안 늙은 자신을 보살피며 학관 살림을 하느라 힘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물론 호현을 무당파에 보내기로 결심한 것에는 몸보신을 할 태청단도 큰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천리마도 매일 달리면 지치는 법··· 게다가 아직 어리니 휴식을 통해 더 높은 경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죽대선생이 문득 내실 한 쪽에 있는 서가에 다가갔다.
 서가를 뒤지며 무언가를 찾던 죽대선생은 곧 제목이 안 적힌 서적 한 권을 꺼내들었다.
 표지는 깨끗한 새것이지만 그 안은 낡디 낡은 고서적이었다. 표지만 죽대선생이 새로 만들어서 붙인 것이다.
 무명서적을 보던 죽대선생이 책을 펼쳤다. 새 표지가 넘어가자 원래 표지로 보이는 낡은 책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진도해>
 
 한림원에 있을 때 우연히 발견한 서적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는 전진교, 무림에는 전진파로 알려진 도가 일맥의 유산이었다.
 한림원 서가에 꼽혀 있는 것을 죽대선생이 빼 돌린 것이다. 물론 이 전진도해라는 서적이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빼 돌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유학을 공부해야 할 한림원 학사들이 있는 곳에 도교 서적이 버젓이 있는 것이 못마땅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빼낸 것이었다.
 파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워낙 고서적을 좋아하는 죽대선생이라 차마 파기는 하지 못하고 호현이 보지 못하게 표지만 새로 해서 서가에 보관을 해 둔 것이다.
 전진도해를 흩어보던 죽대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너무 현실적이지 못하고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쯔쯔쯔! 인간의 몸으로 신선이 되기를 바라다니··· 하늘과 뜻을 통하며 천인합일의 경지를 이루라? 어이가 없군. 어찌 인간이 하늘과 뜻을 통한다는 말인가?"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천인합일을 거론하는 전진도해를 본 죽대선생이 더 볼 필요가 없다는 듯 책을 덮었다.
 "이런 교리를 가지고 있는데 안 망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지."
 전진도해를 서가에 꼽은 죽대선생이 문득 방을 둘러보았다.
 "호현 그 작은 놈이 없다고 벌써 방이 썰렁해 보이는군. 그 어린 녀석이 벌써 내 품을 벗어날 때가 된 것인가?"
 늘 옆에 있던 호현이 며칠이지만 옆에 없다는 생각에 문득 외로움을 느끼는 죽대선생이었다.
 
 ***
 
 호북성 균현에 위치한 무당산에 일단의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무당산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말 중 하나가 중원의 영산이라는 표현과 빼어난 경치였다.
 하지만 문제는 빼어난 경치를 가진 명산치고 험하지 않은 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험한 산세는 백면서생인 호현에게 끔찍하리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주고 있었다.
 "헉헉헉! 국주님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까?"
 호현의 물음에 호불위가 입맛을 다시며 그를 돌아보았다.
 "자네 걸음으로는 한 시진은 더 가야 할 듯 하네."
 한 시진이나 더 가야한다는 말에 호현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나는 죽었다.'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든 상황에서 한 시진이라니······.
 휘익! 휘익!
 창백하게 얼굴이 굳어 있는 호현의 뒤로 한 사람이 날듯이 달리며 산 위를 오르다 호불위를 보고는 그 옆에 내려섰다.
 "호 사형 아니십니까."
 자신의 옆에 내려선 사람을 본 호불위가 웃으며 포권을 해 보였다.
 "오 사제 잘 지냈나."
 호불위의 말에 오 사제, 오태석이 웃으며 등에 업고 있던 사람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호불위가 눈을 찡그렸다. 오태석의 등에 업혀 있던 사람이 학사 복장을 하고 있던 것이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그 동안 무당산을 오르다 호불위를 보고 인사를 한 속가 사형들과 사제들은 모두 학사들을 한 명씩 업고 있었던 것이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도 사람을 업고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거기에 경공까지 시전하며 달리니 오태석의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숨을 고르며 땀을 닦던 오태석이 말했다.
 "호 사형도 공문을 받으셨나 보군요."
 "그러는 자네도 공문을 받았나보군."
 "후! 그러니 이렇게 학사를 업고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단표국은 잘 되십니까?"
 "나야 늘 그렇지 뭐. 그나저나 표국 일도 요새는 많이 힘들어 어찌 된 것이 본파 속가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표국 사업에 뛰어드는 것인지."
 호불위의 말대로 무당파 속가 제자들은 열 중 다섯은 표국을 차리거나 표국에서 일을 하는 형편이었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자기도 표국을 운영하니 다른 속가들도 표국을 차리거나 표국에서 일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들 호북에서 표국을 차리고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로서야 무당의 영향권 밖에서 표국을 차리는 것보다는 확실한 무당의 비호를 받을 수 있는 호북이 안전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물론 호불위도 그것 때문에 호북에서 표국을 차린 것이지만 말이다.
 "후후후! 이거 호 사형 사업이 그리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진검장에서 표국을 이용할 일이 있으면 무단표국을 이용하면 안 되겠나?"
 오태석은 호북의 중소세가 중 하나인 진검장의 장주였다. 표물을 부탁하는 호불위의 말에 오태석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어렸다.
 "저도 호 사형을 도와주고 싶기는 하지만··· 저희 진검장과 거래를 하는 표국이 석진 사형이 일을 하는 곳이라···."
 석 사형이라는 말에 호불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도 무당의 속가 제자였다.
 같은 속가 제자끼리 표물건으로 얼굴을 붉힐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군. 잊어버리게."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것이 뭐가 있나. 그럼 먼저 올라가시게."
 "같이 올라가시죠?"
 "쩝! 내가 모시고! 온! 학사께서는 튼튼한 다리가 있는데 왜! 남의 등을 업히냐고! 절대! 업혀서는 가지 않으시겠다는군!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굼벵이 기어가듯 가는 중이라네!"
 호현에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을 한 호불위가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있는 돌을 발로 쳤다.
 탁!
 돌이 근처 나무에 맞고 떨어지는 것을 보던 오태석이 힐끗 호현을 보고는 자신이 데리고 온 학사를 업고는 말했다.
 "그럼 해검지에서 뵙겠습니다."
 "그러시게."
 오태석이 학사를 업고 산 위를 향해 경공을 시전하는 것을 보던 호불위가 짜증 섞인 얼굴로 호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말고 자네도 저 학사처럼 내 등에 업혀서 가는 것이 어떤가? 자네가 괜한 고집을 피우는 통에 지금 우리를 앞질러 간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 줄 아나?"
 다른 속가들보다 먼저 무당파에 당도를 하려던 자신의 계획이 죽어도 업혀서 도교의 영산, 무당을 오를 수 없다는 호현의 고집 때문에 틀어져 호불위는 속으로 열불이 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속가들보다 한시라도 빨리 학사를 데리고 왔다는 것은 그가 무당파를 그 만큼 생각한다는 것을 무당파 사람들에게 대외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헉헉헉! 힘든데 말 시키지 마십시오."
 자신을 노려보는 호불위에게 중얼거린 호현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힘이 들기는 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제 자리일 뿐인 것이다.
 '무당산이 하늘에 닿아 있는 것도 아니고 가다보면 끝이 나겠지.'
 길은 언제가 끝이 난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으며 호현이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산을 오르며 자신들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십여명이 넘을 때 쯤 호현과 호불위는 무당파 입구라고 할 수 있는 해검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해검지에는 호현들을 앞질러 간 무당 속가 제자들과 학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당파 제자들로 보이는 순백의 도복을 입은 도사들이 그들에게 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해검지를 책임지고 있는 무당파 일대 제자 명수는 해검지에 속속 도착하는 속가 제자들과 그들이 데리고 온 학사들에게 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물을 나눠주던 명수는 학사 한 명을 업고 해검지에 도착하는 중년인을 보고는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오느라 수고했네.
 명수의 말에 업고 온 학사를 막 내려놓던 진검장 장주 오태석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문에서 부르는데 수고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사형은 잘 지내셨습니까?"
 오태석이 비록 속가이기는 하지만 명수의 스승인 청정진인에게 사사를 받았다. 그러니 오태석과 명수는 같은 스승을 둔 사형제 간인 것이다.
 "산에서 지내는 내가 잘못 지낼 일이 무엇이 있겠나?"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형 본산에서 학사는 왜 모으는 겁니까? 오는 길에 보니 저 말고도 속가 문인들이 학사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무당서고 중에는 도경을 모아 놓는 곳이 있네. 그런데 도경을 모으기만 했지 정리를 하지 않아 도경을 모아 놓는 서고가 포화 지경이 되고 말았다네."
 "포화지경?"
 "그 뿐이었다면 문제가 그리 크지 않았겠지만 장문인께서 우연히 서고가 그 지경인 것을 보시고는 대노를 하셨지."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도경 서고를 정리를 하려고 학사들을 모은 것일세."
 명수의 설명에 오태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작 서고 정리 할 학사를 모으는데 공문까지 보냈다는 말입니까?"
 "고작이라고 할 경지가 아니네. 가서 보게 되면··· 휴! 아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네. 서고에 있는 서가란 서가에는 도경들은 가득 차 있고, 서가에 넣을 자리가 없는 도경들은 이리저리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네."
 "그 정도입니까?"
 "자네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네."
 오태석과 이야기를 한참을 나누던 명수의 눈에 해검지에 다가오는 한 학사가 눈에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너무나 힘겹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중년인의 모습도 말이다.
 그 모습에 명수가 물통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명수가 호불위 사형을 뵙습니다."
 호불위가 속가로 입문한 것이 명수보다 먼저이기에, 명수가 호불위에게 예의를 표했다.
 엄격한 무당의 규율은 본산 제자라해도 속가 제자들의 배분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명수의 인사에 호불위도 포권을 했다.
 "오랜만이네."
 "올해 원정에 뵙으니 반 년만이군요."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나?"
 둘이 인사를 나눌 때 힘들게 호흡을 이어나가던 호현은 명수가 들고 온 물통을 보았다.
 '무··· 물이다.'
 그렇지 않아도 험한 산을 오르느라 타는 갈증에 목이 찢어질 지경이었는데 눈앞에 물통이 보이자 호현이 급히 명수에게 다가갔다.
 "무··· 물 좀."
 호현의 갈라진 목소리에 명수가 미소를 지으며 물통에서 물을 떠서 건네주었다.
 "벌컥! 벌컥!"
 급하게 물을 마시는 호현에게 명수가 급히 말했다.
 "너무 급하게 마시면···."
 "커억! 콜록! 콜록!"
 명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현이 기침을 하며 물을 토해냈다.
 "이거 참··· 사례 걸립니다."
 기침을 하는 호현을 보며 고개를 저은 명수가 그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툭! 툭! 툭!
 기침을 해대는 호현을 보며 호불위가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내 등에 업혀 왔으면 얼마나 좋나. 괜한 고집은 왜 부려서는···."
 "휴! 어찌 당당한 사내 대장부가 내 두 발 놔두고 남의 등에 기대어 산을 오른단 말입니까?"
 "마음대로 하게."
 명수가 준 물을 먹고 나니 이제 어느 정도 살 것 같은 호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검지 주위에는 자신과 비슷한 복장을 입은 학사들이 십여 명이 쉬고 있었다.
 '나 말고도 학사들을 더 모은 건가?'
 "무당파에서 저 같은 학사들을 많이 모으는 모양이군요."
 호불위도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호현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직 옆에 있는 명수를 보고는 그에게 물었다.
 "학사들을 모으는 것에 대해 혹시 아는 것이 있나?"
 호불위의 물음에 명수가 오태석에게 해 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호현이 급히 물었다.
 "도경들이 창고 하나 가득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네."
 '세상에 도경이 창고 하나라니···.'
 도경이 가득 차 있는 서고를 떠올린 호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스승인 죽대선생이 도경이나 불경등을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보고 싶어도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런 도경들이 창고에 하나 가득 있다니···.
 도경들로 가득 차있는 서고를 떠올리자 호현의 몸이 달아올랐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서 올라가시죠."
 방금 전까지 더위 먹은 개처럼 헥헥 거리며 힘들어 하던 호현이 서두르는 모습에 호불위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죽을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힘이 솟나보군."
 "도경들이 서고에 가득이라잖습니까."
 방헌에서 균현까지 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호현이 도경, 불경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들은 호불위가 물었다.
 "도경이 그리 좋나?"
 "그럼요."
 '무공비급도 아니고 답답한 철학 이야기나 하나 가득인 도경이 뭐가 그리 좋다고··· 학사란 존재는 알 수가 없군.'
 호불위도 무당파에서 수련을 하던 시절 속가 제자들이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노자도덕경을 읽은 적이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고 있어야 했던 그 끔찍한 기억을 되새기며 호불위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할 수가 없군.'
 그런 호불위에게 어서 무당파에 가자고 호현이 재촉했다.
 "어서 움직이시죠."
 "휴! 자네를 데리고 언제 무당파에 도착을 할지."
 "네? 무당파에 다 온 것이 아닙니까?"
 호현의 말에 호불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무당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해검지이네."
 "초입? 그럼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까?"
 "해검지는 무당파로 오르는 중간에 위치해 있네. 그러니 지금까지 올라온 만큼 더 올라가야 무당파가 보일 걸세."
 그 말에 호현의 얼굴의 핏기가 사라졌다.
 '여기가 고작 절반이라고?'
 핏기가 가신 호현을 본 호불위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부터는 무당파에서 계단을 만들어 놨으니 그래도 조금 수월할 것이네."
 '계단이 있다고 그 거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에구! 나는 죽었다.'
 속으로 한숨을 쉬던 호현이 애써 마음을 다 잡았다.
 
 오르고 오르다보면 산의 정상에 오르는 법이요
 걷다 걸으면 길의 끝이 나오는 법이라
 멈춰 있으면 영원히 그 자리이나
 정진하고 또 정진하면 새로운 자리에 도착하리라
 
 속으로 시 한 수를 읊으며 마음을 잡은 호현이 호불위에게 말했다.
 "가시죠."
 "그러세."
 호불위가 걸음을 옮기자 휴식을 취하고 있던 다른 속가들과 학사들도 무당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해검지를 넘으면 무당파 영역이다. 그래서인지 학사들도 무인들에게 업혀 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자기 발로 무당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를 올라갔을까? 무당파로 오르는 계단을 오르던 학사들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그 그 중 일부는 계단 옆에 있는 숲에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헉헉헉!"
 "우엑!"
 "얼마나 더 가야 하오?"
 "그냥 업어주면 안 됩니까?"
 업어달라고까지 칭얼대는 학사들의 모습에 속가 무인들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허약한 자들이 무슨 필요라고."
 오태석의 말에 호불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네. 우리끼리 올라갔으면 이미 무당파에서 점심 먹고 휴식까지 취했을텐데··· 저들을 데리고 언제 올라갈지. 답답하기만 하구만."
 한숨을 쉬는 호불위의 말에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오태석이 문득 호현을 바라보았다.
 호현 역시 다른 학사들과 못지않게 지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호현을 보던 오태석이 호불위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호 사형이 데리고 온 학사 나이가 너무 어린 것 아닙니까?"
 "무슨 말인가?"
 "나이 많다고 학식이 뛰어나라는 법은 없지만, 저렇게 어린 친구가 학식이 높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오태석의 말에 호불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 그건 걱정하지 말게. 방헌에서 가장 뛰어난 학사 중 한 명이니 말이네."
 호불위의 말에 땅을 보며 구토를 하던 중년 학사가 침을 닦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헉헉헉! 방헌이라면 한림원 대학사를 지내신 죽대선생이 여신 방헌학관이 있는 곳 아니오?"
 "방헌학관을 아시오?"
 "한림원 대학사께서 여신 학관인데 모를 일이 없지요."
 오태석이 중년 학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모신 진만 학사님입니다. 진검장 근처에서 학관을 열고 계시지요."
 오태석의 소개에 호불위의 눈이 슬쩍 찡그러졌다.
 '오 사제가 이번에 힘을 많이 쏟았군. 학관주라니··· 그럼 내가 데리고 온 호현 학사가 밀리는 것 아닌가? 저 자는 학관을 가지고 있는 학관주고 호현 학사는 학관에서 공부하는 학사니 말이야.'
 오태석에게 밀리겠다는 생각에 심기가 불편해진 호불위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오태석이었다.
 학관을 맡고 있는 진만 학사를 초빙하는데 들인 돈만 해도 상당한 액수였다.
 그리고 지금 호불위가 낭패한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진만을 데리고 온 선택이 옳은 것 같았다.
 '흐흐흐! 다른 사형제들도 학사들을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진만 학사 수준을 넘는 자들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뛰어난 학사를 데리고 왔으니 내가 무당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장문인이 헤아려 주시겠지.'
 두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진만은 호현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헉헉헉! 방헌학관에서 온 것인가?"
 "헉헉헉! 그렇습니다."
 "방헌신사를 본 적이 있는가?"
 "방헌신사?"
 "방헌신사를 모르나?"
 "헉헉헉! 모르겠습니다."
 "방헌학관에서 온 자가 어찌 방헌신사를 모르나?"
 '그게 뭔데?'
 힘들어 죽겠는데 계속 말을 거는 진만에게 귀찮음을 느낀 호현이 그를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호현이 걸어가자 주위에 있던 학사들이 진만에게 다가왔다.
 "방헌신사라면 방헌학관에서 나온 천재 학사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네."
 진만의 말에 다른 학사들이 방헌신사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 방헌신사가 열 넷의 나이에 원시를 합격하고 열일곱에 향시를 합격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일까?"
 "내 생각에도 소문이 과장이 된 것 같네. 아무리 천재라도 열 넷의 나이에 원시를 합격했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 나이라면 동시도 합격을 못할 것이네."
 "하긴 그런 자가 있었다면 진작에 소문이 났을 겁니다. 방헌신사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이··· 방헌학관에서 동생들을 받아들이고 얼마 되지 않아서잖습니까?"
 지금 여기서 말하는 방헌신사는 바로 호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방헌에서 나온 새로운 스승이라는 의미를 가진 방헌신사··· 방헌학관에 입관한 학사들을 통해 입소문을 타고 호북에 전해진 것이다.
 호현은 학사들이 자기 이야기 하는 줄도 모르고 앞에서 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계단이 빨리 사라지기만을 바라며···.
 그리고 학사들의 방헌신사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그렇지. 대석학인 죽대선생에게 이런 말을 하기 그렇지만··· 죽대선생이 동생들을 받아들이려고 소문을 퍼뜨린 것이 아닌가 싶네."
 "죽대선생이요? 그건 아니겠죠. 한림원 대학사라는 간판만 가지고도 학사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 텐데 굳이 그런 소문을 낼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그럼 자네는 열일곱에 향시 합격을 한 거인이 있다는 것을 믿나? 나는 믿을 수 없네."
 학사들의 이야기에 진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내가 동시를 합격한 것이 열일곱이니···."
 학사들이 감탄했다는 듯 진만을 바라보았다.
 "대단하십니다. 열일곱에 동시를 합격하시다니···."
 "대단하시군요."
 학사들이 이야기를 하며 무당을 오르고 있을 때 호불위는 다른 속가무인들과 섞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호불위의 얼굴에는 슬며시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진만이라는 학사는 열일곱에 동시에 합격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 말을 들은 다른 학사들은 대단하다는 듯 진만을 추켜 세워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데리고 온 호현은 아홉 살에 동시에 합격을 했다.
 그 말은··· 지금 이곳에 있는 그 어느 학사보다도 호현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흐흐흐! 괜한 걱정을 했군. 하긴 뱀의 대가리가 어디 용 꼬리에 비하겠어.'
 기분이 좋아진 호불위가 웃자 오태석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인상을 구기고 있던 호불위가 웃으니 말이다.
 "호 사형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각났습니까?"
 "후후후! 그런 일이 있네."
 웃으며 말하던 호불위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아!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학사들 손이라도 잡아끌어 주면 어떻겠나? 업고 가는 것이야 무당 어르신들이 보면 정색을 하시겠지만 손을 잡고 끌어 주는 것 가지고는 뭐라 하지 않을 걸세."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속가 무인들이 학사들의 손을 잡고 끌어주자 호불위도 호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소형제 잡게."
 "괜찮습니다."
 "어허! 앞으로 올라야 할 계단이 한두 개가 아닌데 이러다 지쳐서 기어가겠네."
 "손잡고 끌어주셔도 어차피 걷는 것은 제 다리입니다."
 호현의 말에 호불위가 모르는 소리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호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왜? 응?"
 호불위의 손을 떼어내려던 호현은 순간 그가 잡은 손에서 이상한 기운이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그 기운은 자신의 몸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이게 뭐지?'
 호현이 의아한 눈으로 호불위를 바라보자 그가 웃으며 손을 떼어냈다.
 "어떤가 이래도 손을 잡고 가지 않을 텐가?"
 "방금 뭘 하신 거죠?"
 "별 것 아니네. 내공을 조금 자네의 몸에 넣어 준 것이지."
 "아! 이게 무인들이 가진다는 그 내공입니까?"
 "그렇네. 그래서··· 손을 잡을 텐가 말 건가?"
 호불위의 말에 호현이 고민이 되는 듯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남자와 손을 잡고 산을 오르는 것이 조금 꺼려지기는 했지만··· 방금 전 호불위가 넣어준 내공 덕에 호흡도 안정이 되고 방금까지 후들거리던 다리도 안정이 되어 있었다.
 '휴! 어쩔 수 없지. 도교의 본산인 무당에 기어서 올라갈 수는 없잖아.'
 호현이 호불위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호불위가 말했다.
 "내공을 주입하는 것은 나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네. 그러니 내공을 받는 동안에는 방금처럼 입을 열거나 말을 하면 안 되네. 나한테도 말을 걸지 말고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가도록 하세."
 말과 함께 호불위가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현과 호불위가 무당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학사들과 무인들은 곧 무당파의 산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4장 회(回)
 
 
 무당파 산문 앞에 도착한 호현은 흑발과 백염을 드리운 한 노도사를 볼 수 있었다.
 노도사는 먼저 도착한 속가 무인들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신기하네. 흑발과 백염이라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그것도 흑발은 칠흑같이 어두운 시커먼 색이었고, 백염은 순백의 눈처럼 하얗기만 했다.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보고 있을 때 호불위가 다른 속가 무인들처럼 노도사를 향해 공손하게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속가제자 호불위가 청현 사숙님을 뵙습니다."
 호불위의 인사에 청현진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호 사질의 신수는 갈수록 좋아지는군. 좋은 일이야."
 "감사합니다."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호불위를 보던 청현진인이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호 사질도 학사 선생을 모셔 왔나보군. 번거로웠을 텐데 고맙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군. 태청전으로 가시게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학사들이 모여 있을 것이네."
 청현진인에게 호불위가 포권을 한 번 하고는 호현을 데리고 무당파 산문을 지나갔다.
 무당파 산문을 바라보던 호현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여기가 도교의 본산··· 흡! 하! 역시 공기부터가 다르구나. 공기에 선기가 흐르는 듯해.'
 무당파 안에 들어온 것만으로 선경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드는 호현이 천천히 산문을 넘어섰다.
 그리고 호현의 눈앞에 호화롭지 않지만 선기가 흐르는 듯한 도가의 건축물들이 나타났다.
 쿵!
 무당파 건물들에서 현기와 선기··· 그리고 무언가 묘한 기운들을 호현은 느꼈다.
 '머··· 멋지다.'
 속으로 감탄성을 지르며 주위 건물들을 정신없이 구경하는 호현을 호불위가 툭 쳤다.
 "뭐 하나? 사람들 가는 것 안 보이나?"
 호불위가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가리키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호현이 급히 그들 뒤를 따라 걸어갔다.
 사람들을 따라 태청전이 있는 곳에 도착한 호현은 넓은 연무장 가득 모여 있는 학사들과 무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호불위도 보고는 눈을 찡그렸다.
 "공문을 받고 바로 움직였거늘··· 어떻게 우리들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는 거지?"
 호불위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오태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가 공문을 늦게 받은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가 있는 정검문은 무당파에서 열흘 거리입니다. 그리고 호 사형의 무단표국에서는 5일 거리입니다."
 "그런데?"
 "저도 공문을 받고 바로 움직였고, 호 사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무당파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 말은 공문이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일찍 도착을 하게하고 거리가 가까운 사람은 늦게 도착하게 준비가 됐다는 말입니다. 저는 공문을 10일 전에 받았습니다. 호 사형은 언제 받았습니까?"
 "나는 오일 전이네."
 "그럼 제 생각이 맞군요. 거리에 따라 공문서 도착하는 시기를 다르게 했다는 것이요."
 그 설명에 호불위가 눈을 찡그렸다.
 "왜?"
 "쩝! 그건 저도 모르죠. 사형제들하고 인사나 나누죠.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오태석의 말에 호불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현에게 말했다.
 "나는 사형제들과 인사를 나눌 터이니 소형제는 다른 학사들하고 안면이나 트게."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청경진인은 언제 만날 수 있는 것입니까?"
 "청경 사숙?"
 청경진인을 찾는 호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호불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호현이 청경진인을 찾는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죽대선생의 편지 때문인가?"
 "네."
 "휴! 알겠네. 일단 기다리게. 내가 청경사숙을 만날 수 있는지 알아보겠네."
 말과 함께 호불위가 사람들에게 다가가자 호현이 태청전 건물을 구경했다.
 '무당파 건물이라 현묘하게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건물에 현기가 있어 무당파가 현묘해 보이는 것인가?'
 호현은 무당파의 매력에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학사들은 학사들끼리 속가 무인들은 속가 무인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현만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채 태청전을 구경하고 있었다.
 주위를 구경하던 호현이 태청전 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청전의 뒤가 궁금했던 것이다.

댓글(7)

    
종이책으로 읽었던걸 전자책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2020.10.05 00:54
joyfull77    
쩝...끝이 허무하네요. ㅜ ㅜ 그 많던 떡밥은 어찌하오리까. 습작인듯 습작아닌 작품이라니 킁
2020.10.24 09:04
엔토르    
대여로 볼만함..떡밥 회수가 아쉽기는 아지만..
2021.02.04 02:17
na*******    
추천
2021.06.07 08:59
파란ㅎㅏ늘    
다시봐도 재밌어요
2021.06.22 00:58
뿌꾸shkim    
대여...재밌을듯
2022.04.18 20:23
율문    
다들 항마력 대단하신듯. 재밌다가도 개연성 떨어지는 전개, 쓸모없는 서술로 인한 느린 전개, 앞뒤 안맞는 설정. 뒷부분으로 갈수록 맞춤법 어긋난 표기, 오타 작렬
2022.10.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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